2016. 6. 28. 03:39

 켄에게 고백했다.


 더운 여름하늘, 신나게 달리느라 땀에 젖은 등판, 목구멍을 넘어가는 시원한 음료수. 뛰는 게 많이 빨라졌네, 하며 장난스럽게 말을 걸어오는 너를 바라보자 그늘 안에 있는 우리들을 향해 살며시 다가오는 서늘한 바람. 흩날리는 가벼운 머리칼과 그것이 불편한지 얇은 손가락을 들어 귀 뒤로 넘기는 너의 별 의미 없는 행동. 그것들을 이유라고 들 수 없을 만큼 네가 너무나도 예뻐 바람에 흘러가듯이 좋아해, 하고 흘러넘친 감정에 이름을 붙였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 듯이 나를 바라보는 네가 예쁘다. 단정한 머리칼도, 함께 축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름철의 뜨거운 태양 볕에 검게 타버린 나와는 다르게 살짝 붉어졌을 뿐 새하얀 피부도, 놀란 탓에 살짝 작아진 동공도, 그 밖의 짙은 눈동자의 색까지도 하나도 빠짐 없이 예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때의 내 표정은 아마, 세상에서 제일 부끄러웠을 것이다.


 무언가 생각하는 듯이 벌어진 입술이 꾹 닫힌다. 장난 끼 하나 없는 내 얼굴에 눈치 빠른 켄은 이것이 진심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챘을 것이다. 이렇게 아무런 무드 없이 고백할 생각은 없었는데, 주체할 새도 없이 넘쳐버린 감정을 어찌 주워 담을 수가 없다. 응, 하고 입술도 벌리지 않은 채로 대답한 켄이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그의 놀람은 자신의 감정을 알아챈 그것이 아니다. 평범한 이성관계가 아닌 같은 것이 달린 남자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처음 안 사람이 저렇게 덤덤한 반응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눈치 채고 있었구나, 내 마음을. 남의 감정에 민감하고 눈치 빠른 그가 자신의 서투른 눈속임에 넘어갈 리가 없었음을 새삼 깨달은 것 같아 다이스케는 숨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과거의 자신을 비웃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시선을 앞에 고정한 너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내렸다. 꼼지락 거리는 자신의 손끝이 뭉툭하다. 등을 타고 땀이 흘러내리는 감각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느껴져 순간 너무나도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말 없는 너의 반응이, 아무런 대화 없이 흘러가는 시간이, 그 무거운 공기가 무섭다. 이런 분위기를 만들려 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쏟아버린 물을 어찌할 수가 없다. 조금만 더 숨겨놓을 것을, 그가 모른 척 해준 그 시간들을 헛되게 하는 짓만은 하지 말 것을, 지금까지도 잘 했는데, 어째서 오늘 자신은 저질러버린 것일까. 울컥 차오르는 후회에 이를 악 문 다이스케를 향해 조용히 켄은 그래서? 하고 물었다.



“ 어?”


“ 그래서, 나한테 뭘 원해?”



 너의 표정은 아직도 복잡하다. 얼굴만으로 남의 감정을 읽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아직 나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다. 친구로는 있을 수 있지만, 그 이상으로 선을 넘으면 닿을 수 없을 만큼 거리가 멀어져버린다. 나는 왜 켄에게 말하고야 말았을까, 대체 그에게서 무엇을 원했던 것일까. 보통 좋아하는 사람과 무얼 하는 것인지, 무얼 하고 싶은 것인지 아직 알 수 없어 다이스케는 조심히 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켄의 시선이 한없이 진지하다. 내 표정을 살피는 듯이, 반응을 두려워하는 듯이, 조금은 기대하는 듯이, 그것을 애써 숨기려 하는 듯이 조금 흔들리던 동공이 조심히 깜빡였다.



“ …모르겠어.”



 솔직하게 대답하자 켄의 날카로운 눈꼬리가 가늘게 휘어진다. 그걸로 됐어. 예쁘게 웃으며 가볍게 일어선 켄은 웃고 있는 것 같았다. 너희 집으로 가자. 아줌마께서 기다리시겠어. 너의 목소리는 어딘가 후련해보였다. 사뿐사뿐 앞으로 나아가는 네게 홀린 듯이 따라나선 내 발걸음은, 마치 진득이는 것이라도 밟은 듯이 떼는 것 하나하나가 힘들 정도다. 역시 실언을 해버렸다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마치 죄라도 지어버린 것 같아 다이스케는 입술을 조금 깨물었다. 시간을 돌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켄을 보며 호들갑을 떠는 가족들은 항상 부끄러웠지만, 오늘은 그런 분위기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함께 놀아줘서 기쁘다고, 나도 켄처럼 축구를 잘했으면 좋겠다고, 동시에 공부도 했으면 소원이 없겠다며 켄이 저녁을 먹는 내내 입 아프게 떠들어대는 엄마를 보며 다이스케는 조금 입술을 삐죽이는 것으로 그쳤다. 집에 오는 내내 켄과의 사이가 불편했다. 바로 단 둘이 되어버린다면, 자신은 그 분위기에 짓눌려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처음 집에 놀러왔을 때와는 다르게 능숙하게 받아치는 켄이 웃었다. 그가 그의 팬들을 대할 때 짓는 웃음이었다.



“ 나, 가서 간식이라도 가지고 올게.”



 오늘 그를 초대한 목적은 숙제의 도움을 바랬기 때문이었다. 숙제는 혼자 하는 것이라 잔소리를 하면서도 켄은 결국 자신에게 상냥했다. 자신의 상상 속 오늘은 켄과 어색하지 않은 평소와 같은 하루였다. 자신은 끝까지 게으름을 피울 것이고, 켄은 그런 자신을 달래며, 때로는 조금 심술을 부리며 함께 숙제를 해 나갈 것이었다. 결국 자신은 자신을 도발하는 켄에게,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짓는 켄에게 넘어가 끝까지 숙제를 끝내겠지. 그리고 우리는 그 성취감에 함께 마주보며 웃을 터였다. 이렇게 내가 도망쳐 나오는 것이 아닌.


 자신이 들고 있는 쟁반에는 두 개의 오렌지 주스와, 쿠키가 놓여 있다. 켄에게 한 문제라도 더 배우라는 둥, 켄을 조금이라도 본받으라는 둥의 이야기를 하는 엄마에게서 팩 등을 돌려 후다닥 자신의 방으로 향했지만 다이스케는 자신의 방문 앞에서 조금 더 망설여야만했다. 나는 켄에게 고백을 하여 무엇을 원했던 것일까. 보통 고백을 하면 어떻게 되지? 연인 관계가 되나? 나는 켄과 연인 관계가 되고 싶었던 것일까? 정말? 켄은, 왜 그런 자신을 향해 웃었던 것일까. 온통 모르겠는 것 투성이다. 이렇게 돼서는 후에 할 공부에 집중을 할 수도-평소에도 그다지 집중을 하지는 않지만-, 켄과 함께 있는 공기에 안도할 수도 없지 않은가.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간 손에 쥐고 있는 쟁반이 조금 떨렸다.



“ 안 들어와?”



 자신이 무어라 입을 열기도 전에 문이 살며시 열렸다. 자신이 앞에 서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켄은 문을 채 다 열기도 전에 목소리를 그 틈사이로 흘려 넣었다. 고개를 살짝 기울인 켄을 따라 머리카락이 어깨 위로 사르르 내려앉아 있다. 그런 그와 눈조차 마주치지 못한 채로 다이스케는 어색하게 웃었다. 미안, 남는 손이 없어서 고민하고 있었어. 자신이 들어도 확실하게 떨리고 있는 목소리에 켄은 조용히 웃으며 그랬구나, 했다. 많은 것을 품고 있는 목소리였다.



“ 저기 말이야, 다이스케.”



 나의 오렌지 주스가 바닥을 보이고, 켄의 오렌지 주스가 반 정도 없어졌을 시점이었다. 나가서 주스를 더 받아와야 하나, 이 문제까지만 풀고 나갈까, 를 고민하고 있던 나를 켄이 조용히 불렀다. 문제를 푸는 것에 집중하지 못하면 어쩌지, 하고 걱정했지만 정 반대로 자신은 완전히 책에 집중을 하고 있었다. 애써 모든 신경을 다른 것으로 돌리려 하는 자신이 조금 우습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다이스케는 최대한 이 어색한 분위기를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


 응? 아무렇지도 대답을 하자 켄의 손이 자신을 향해 뻗어져왔다. 손끝으로 볼을 살며시 쓸어내리며 켄은 조심히 자신의 고개를 그의 쪽으로 돌린다. 볼에 가해진 압력으로 켄과 시선이 마주하자 어깨가 움찔 떨렸다. 푹 내려진 시선에 켄의 노트가 보인다. 아까 전에도 저 페이지였던 것 같은데, 어째서인지 진도가 거의 나가있지 않다. 집중력 좋은 켄이 이럴 리가 없는데, 따위의 생각을 하며 그의 노트 위에 쓰여진 정갈한 글씨를 바라보는데 다시 한 번 위에서 다이스케, 하고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자신은 정말 이 분위기를 신경 쓰지 않는 척 하려 했다. 자신이 무심코 내뱉었던 그를 향한 감정도, 그것에 대한 그의 반응도, 그 찜찜함을 모두 모르는 척 하면 없었던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미련하게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왜, 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를 향해 답하려 벌어졌던 입이 그대로 제대로 된 단어조차 만들지 못하고 공중에서 뻐금거렸다. 뒤통수가 순식간에 바닥에 닿았음에도 아프지 않았던 것은 켄의 손이 받혀주었기 때문이었다. 눈을 깜빡였을 뿐인데 시야가 뒤바뀐다. 눈이 부실 정도로 반짝이던 형광등의 불빛이 켄으로 인해 가려진다. 마치 커튼처럼 내려온 켄의 머리칼이 자신의 시야를 오롯이 그만을 향하도록 만들고 있었다. 잠시 상황파악이 되지 않아 눈을 끔뻑이자 고운 호를 그리고 있던 켄의 입술이 움직였다.



“ 나를 좋아한다고 했지, 다이스케.”



 조곤조곤 말을 전해오는 켄의 목소리가 간지럽다. 너무나도 가까운 거리에 도망가고 싶었지만 자신의 몸 위에 올라탄 켄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자신의 옆에 말뚝처럼 박혀있는 켄의 팔이 단단하다. 눈을 굴려 자신이 향할 곳은 켄의 올곧은 시선밖에 없음을 알아채고 나서야 다이스케는 다시금 그와 마주할 수 있었다. 꿀꺽, 하고 작은 목구멍 사이로 침이 넘어갔다. 자신의 목울대가 울리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 …응.”


“ 이런 짓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좋아해?”



 켄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온다. 자신의 숨이 그에게 닿을까 급하게 숨을 들이쉰 다이스케가 눈을 꾸욱 감았다. 눈 깜짝할 새에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켄이 자신에게 했던 말이 제대로 이해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긴장된 몸이 흠칫흠칫 떨렸다. 시야가 가려졌음에도 그의 얼굴이, 입술 새로 조심스레 드나드는 그의 숨결이, 살짝 벌어져있을 입술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곧 닿을지도 몰라, 조금만 더 있으면. 그렇게 생각이 떠오를수록 숨조차 쉴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는 몸과는 별개로 시끄럽게 쿵쿵 뛰어대는 심장소리가 몸 안에서 제멋대로 울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눈을 감은 것을 승낙의 뜻이라고 생각한 것인지, 아니면 거부하지 않은 것을 그리 생각한 것인지 가려진 시야의 위화감이 점점 다가온다. 심장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입술이 닿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꾸욱 누르듯이 맞춰온 입술이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다이스케는 한동안 눈을 뜰 수 없었다. 마치 하늘하늘 내려온 꽃잎이 자신의 입술에 스쳐지나간 것 같은 짧은 키스-라고 말하기도 애매한-였기에 기다린 시간이 무색할 정도였던 것이다. 참고 있던 숨의 탓인지, 아니면 그 잠시나마 입술이 닿았다는 사실 탓인지 얼굴에 피가 몰려 단숨에 더워졌다. 살며시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어쩐지 붉어졌을 것만 같은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자신의 눈앞에는 여전히 빛을 등지고 있는 켄이 있었다. 자신은, 정말 그와 입을 맞춘 것이었다.


 무슨 말이라도 건네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런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조심히 벌어진 입술이 조금 오물거리다 닫힌다. 멍청하게 그저 켄을 바라보고 있자니 다시금 그의 입술이 휘어진다.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예쁜 미소라고 생각했다. 천천히 자신의 위에서 일어난 켄이 한껏 내려와 있던 머리칼을 조심스레 귀 뒤로 넘긴다. 얇은 손가락 끝에 엉겨있던 가는 머리칼이 단정하게 정리되는 모습을 다이스케는 몸을 일으키며 멍하게 보고 있어야만 했다. 여전히 그 고운 미소에 눈조차 떼지 못한 채.



“ 저기, 다이스케.”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기던 얇은 손이 살포시 다이스케의 허벅지 위로 내려앉는다. 더듬는 듯이, 쓰다듬는 듯이 조금 압력을 가하여 내리누른 켄이 다이스케와 시선을 맞추기 위해 고개를 조금 숙였다. 휘어진 눈꼬리. 조금 올려다보는 눈동자. 하얀 피부. 어깨 위에 단정하게 내려앉은 머리칼. 그리고 여전히 예쁜, 방금 전 나와 닿았던 얇은 입술. 


 어째서 켄이 자신에게 키스를 해온 것인지, 자신은 그런 그를 받아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은 켄을 좋아하고 있었고, 그것을 전했다. 켄은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르는 척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와서, 왜? 켄은 나에게 무엇을 원하냐고 했지. 나는 무엇을 원해야만 했을까. 켄은 무슨 대답을 바랬을까. 나는, 이런 것을 바란 것일까. 이 모든 물음에 답을 내놓을 수 없었지만, 확실하게 알 수 있었던 것은 켄이 무언가를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그런 켄에게 확실하게 홀려가고 있다.



“ 더 한 것도 할 수 있어?”



 서서히 다가오는 켄의 말에 다이스케가 고개를 끄덕인 것은, 조금 뒤의 이야기.

 

Posted by 하리쿠
2016. 5. 17. 23:38

5.21 디 페스타 남아선호 에서 모브x이치죠우지 형제 책이 나옵니다.

수량조사는 이쪽을 참고해주세요 -> http://me2.do/5m9EOR9P



표지는 현운 님께서 수고해주셨습니다.


R19 / 50-60p(예정) / 6-7000원(예정)

모브 아저씨가 이치죠우지 형제에게 나쁜 짓을 하는 내용입니다. 페이지 내내 떡만 칩니다(...) 


모브, 페도필리아, 약간의 유아퇴행, 원조교제, 성폭행, 약한 스캇, 조교, 근친상간 등 여러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소재가 들어있습니다. 하나라도 민감하신 분께는 권해드리지 않습니다.

또한 본 책은 범죄 행위를 포함하고 있으며 따라할 시엔 법적인 처벌을 받을 수 있음을 명시합니다.


수량조사+극소량만 뽑아갈 예정이니 구매하실 분께서는 꼭 참여 부탁드립니다. 또한 1인 1권이며 신분증 확인 및 실명서명을 받고 있으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열심히 마감하고있습니다...orz 꼭 책이 나왔으면 좋겠다....

Posted by 하리쿠
2016. 4. 2. 04:19

- 약간의 켄미야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불륜 소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취향이 아니신 분들께서는 피해주세요.





 켄이 다이스케의 집으로 발을 들였을 때엔 이미 그에게는 옅게 술냄새가 나고 있었다. 손끝에서 바스락거리는 봉지 안에 있는 것을 핑계로 여기까지 발을 옮겼지만, 굳이 그럴 이유가 없었던 것이었다. 자신이 사온 것을 대충 받아든 다이스케가 말없이 작은 냉장고 안으로 그것을 넣는다. 냉장고 안에는, 아직 봉투에서 꺼내지 조차 않은 몇 개의 캔과 안주들이 이미 굴러다니고 있었다. 자신이 편의점에서 한참을 골랐던 것과 같이, 그도 아마 자신과 같은 고민을 하며 그 안을 몇 바퀴나 돌았으리라.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생각을 애써 잊어버리려는 듯이.



“ 적당히 앉아. 많이 더럽지만.”



 언제나 더럽잖아, 새삼. 익숙한 대답을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곤 켄은 조용히 바닥에 꿇어앉았다. 그가 자취를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히카리가 집들이 선물로 사다준 앙증맞은 방석은 이미 한쪽 구석에 쌓여있는 상자 안에 들어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방 안 가득하던 다이스케의 흔적들이 서서히 사라져가는 풍경을 차마 보고 싶지 않아 켄은 시선을 바닥으로 떨구었다. 방금 전까지 그가 씹고 있었을 오징어 다리 하나가 굴러다녔다. 다이스케는, 금방 그가 마시던 것과 살짝 다른 종류의 맥주 한 캔을 건네주었다. 별로 좋아하지 않던 술을 매일같이 마시게 된 것이 언제부터였더라. 이제는 익숙한 알코올 향이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불덩이라도 삼킨 것 같다.


 자신이 미야코 씨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얘기한 것과, 다이스케가 미국으로 떠나가겠다고 결정한 것은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 아무렇지도 않게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하며 웃어보이는 다이스케를 향해 자신은 차마 함께 웃어줄 수 없었다. 다이스케는 전부터 외국으로 나가고 싶다는 말을 하곤 했지만, 그를 자신이 쫓아낸 것 같은 기분을 어찌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울 것 같은 얼굴을 하던 자신에게, 다이스케가 얼마나 단단한 손으로 붙들어 주었던가. 언제까지나, 자신은 그 손의 따듯함에 기대고 있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쭈욱.



“ 다이스케.”



 중얼거리듯 그의 이름을 부르자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침묵을 안주삼아 그저 입 안으로 술을 쏟던 다이스케의 손이 조금 멈칫했을 뿐이었다. 다이스케. 내 입에서 나오는 그의 이름은 미련이다. 추악함이고, 더러운 집착이다. 그의 상냥함을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그가 오늘 자신을 집으로 들인 것도, 자신에게 술을 권한 것도 모두 그의 상냥함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다. 뭐가 상냥함의 문장이야. 손 안에서 따듯하게 빛나던 그것이 아직도 제 손에 있었다면, 아주 오래전에 빛을 잃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들고 있던 맥주캔을 내려놓음과 동시에 다이스케에게 달려들었다. 차마 시선을 자신과 마주하지 못하고 내리깔고 있던 다이스케가 놀라 몸부림치는 것을 내리눌러 막았다. 마주한 입술 사이에서 술맛이 느껴졌다. 처음 그와 키스했을 때엔, 지금과 다르게 코코아를 마시고 있었다. 잔뜩 긴장하여 꽉 쥔 손바닥에서 흘러나오는 식은땀과 흥분한 공기, 귓가에 들려오는 거친 숨소리와 서로의 심장소리가 사랑이라고 굳게 믿었던 때가 있었다. 이제는 그 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혀가 얼얼할 정도로 느껴지는 알코올의 기운이 가끔 미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혀가 얼얼한 만큼, 속에서 흘러나오는 알콜 섞인 숨이 거칠어질 만큼, 점점 돌이킬 수 없어지는 기분이었다.



“ …취했어? 쉬어야겠다, 너.”



 입술을 떼어내자 붉어진 얼굴을 애써 숨기며 다이스케가 어깨를 살짝 밀어내었다. 신경 쓰지 않으려는 척 하는 것이 눈에 보여 입 안으로 살짝 웃었다. 아무렇지 않아야 했다. 아무 일도 없어야 했고, 아무래도 좋았다. 위에서 체중으로 누르고 있는 쪽이 더 유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를 조금 더 내리누르자 다이스케의 표정이 조금 더 복잡해졌다. 켄, 너…. 무어라 말을 하려는 그의 입술을 다시 한 번 자신의 것으로 막았다. 나는 조금도 취하지 않았어, 다이스케. 술이 위 안으로 들어갈수록, 몸이 뜨거워질수록 반대로 싸늘하게 식어가는 머릿속이 신기할 정도였어. 오히려 죽을 만큼 멀쩡해서, 모두 잊고 싶었는데, 알코올로 모두 지워버리고 싶었는데 지우려 할수록 선명해서 비참할 지경이었어.


 아, 그래. 사실 다이스케가 방금 하려던 말이 자신이 제일 신경 쓰고 싶지 않던 것이었다. 정처 없이 돌아다니면, 아는 지인과 머리가 돌아버릴 만큼 술을 마시면, 그러면 잊혀질 줄 알았는데. 그럼에도 너무나도 확연하게 남아서 결코 잊히지 않는 것이 있었다. 뇌가 녹아버릴 만큼의 쾌락으로 모든 신경을 돌려서, 잠시라도, 아주 잠깐만이라도 잊어버리고 싶은 것. 그렇기에 켄은 조금 더 다이스케에게 깊숙하게 입 맞추며 그의 허리를 쓸었다. 약간의 반항을 하려 꿈질거리는 다이스케는 진심으로 자신을 밀어내지 못했다. 자신이 무엇에서 도망치려 하는 것인지 알고 있기에. 그것을 알려주고 싶으면서도, 굳이 일깨워주고 싶지 않았기에.


 아, 그래. 내일이 자신과 미야코 씨의 결혼식이라는 것을.


 조금 더 힘을 주어 무릎으로 다이스케의 사타구니를 문지르면 아래서 참는 듯 한 신음소리가 들렸다. 참지 않아도 좋아. 모두 들려줘. 먼저 유혹을 하고 있으면서도 쫓기는 것 같은 자신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급하게 다이스케의 목덜미로 입술을 묻었다.


 나는, 최악의 쓰레기였다.

 


Posted by 하리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