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6. 29. 18:29

- 나홀로 전력 60분

- 타이야마님을 위한 소재는 '벽, 상흔', 중심 대사는 '네가 미안해 할거 없어. 모두 내가 한거니까.' 입니다. 씁쓸한 분위기로 연성하세요.

 

 

 




 타이치, 왜 여기에서 이러고 있어. 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한 없이 다정하다. 대답을 바라지 않는 물음에 타이치는 무릎 사이에 묻고 있던 고개를 들어 올리며 베시시 웃었다. 복도에 위치한 창밖으로 보이는 바깥은 어느새 깜깜해져 있었다. 야마토의 자취방 앞에 주저앉았을 때만해도 밖에 훤했는데, 시간이 이렇게나 지나가버린 것이었다. 자신이 그렇게 오랜 시간을 기다리고, 그저 그만을 기다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의 대답을 바라지 않는 물음은 퍽이나 다정하다.



“ 너 기다렸지.”


“ 웃기고 있네.”



 우습지도 않다는 듯 입 꼬리를 비틀어 웃기 전, 잠시 굳은 너의 얼굴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자신이 해야 하는 행동은 그것을 모르는 척 자연스레 자신에게 뻗어오는 너의 손을 잡고 일어서는 것 밖에 없었다. 몸을 일으킬 때 코끝에 스쳐지나간 너의 목덜미에서 나는 네 것이 아닌 여자 향수의 향마저 모르는 척 하며. 언제나 네가 그래왔듯이. 서로의 속마음까지 모두 다 알고 있음에도, 우리는 서로에게 다 비쳐 보이는 거짓말을 해야만 했다.


 자신이 일어선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야마토는 바지 주머니 안에서 열쇠를 꺼내었다. 달랑거리는 야마토를 본 따 만든 인형 옆에 보지 못한 열쇠고리가 달려있었다. 여자에게 인기 많은 그의 열쇠고리가 한 두 개쯤 바뀌는 것은 항상 있는 일이었기에 하나하나 물어보기 지겹다. 어색한 손놀림으로 열쇠고리를 손바닥에 쥔 야마토가 문고리에 열쇠를 끼워 넣는다. 야마토의 손놀림이 어색하다는 것을 자신이 눈치 챈 것처럼 야마토 또한 자신의 시선을 눈치 챈 것이다. 이렇게 서로의 행동 하나하나에 신경이 바짝 설 수 밖에 없는 사이였다. 그럼에도 이렇게 그를 기다리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



“ 들어와서 물이나 한 잔 마시고 가. 손도 치료해줄 테니까.”



 철컹, 소리 내며 열쇠가 돌아가고 문이 열린다. 슬쩍 보이는 방 안은 아직 불을 켜지 않아 어두웠다. 언젠가 어렸던 자신이 그저 노는 것을 목적으로 야마토의 집에 즐거이 놀러갔을 때, 홀로 있던 야마토의 뒤로 보인 것처럼. 필요 없다며 고개를 돌려버리는 그의 집 문을 비집고 쿵쾅쿵쾅 들어와 거실에 누워버렸던 어린 시절처럼 아무런 부담 없이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나간 세월만큼 쌓여버린 생각과 감정들이 벽처럼 자신들의 사이를 막아버린 것 같은 기분이다. 타이치는 어떻게 알았냐며 다시금 실실 웃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상처가 생겨버린 주먹을 꾹 쥐었다 펴보이며.


 밖에서 닫혀있는 창문을 통해 불이 꺼져있는 것을 확인했음에도 굳이 벨을 눌러보는 것은 버릇과 비슷했다. 어린 시절처럼 외로워 보이는, 약간의 겁을 먹은 것 같은, 그럼에도 누군가 왔다는 사실에 조금 기대해버리는 표정의 야마토가 나온다면 좋겠다는 기대감이 아직도 약간이나마 남아있었다. 결코 사라지지 않는 미련처럼. 이제는 야마토가 집에서 홀로 밥을 먹고, 텔레비전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그럼에도 빠르게 가지 않는 시계를 한없이 눈으로 살피다가 차게 식어버린 이불 속에 들어가 홀로 잠에 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자신들 이외의 친구가 생기고 서서히 홀로 서나가는 야마토를 바로 옆에서 보고 있었음에도 그 때의 야마토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자신이 아직도 어렸던 그 시절에 머물러 있었던 것 같아 꽈악 쥔 주먹을 벽에 휘둘렀던가. 욱씬욱씬 올라오는 그 주먹의 통증에 그제야 자신이 이렇게 현재에 서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받으며 열리지 않는 문 옆에 다시금 주저앉았던가.


 자신이 이렇게 기다릴 수 있었던 이유는, 결국에는 열리는 그 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이어져온 자신의 이 미련에 야마토는 단 한 번도 도망가려 하지 않는다. 자신은 언제부터인가 늦게 들어오는 그에게 이유를 물어본 적이 없고, 그는 기다리는 자신을 거부한 적이 없다. 자신이 그를 기다리지 않으면 반대로 그가 자신에게 찾아오기도 했다. 나의 감정과 그의 감정이 같다는 사실은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암묵적으로 서로 모르는 척 하기로 한 것이다.


 타이치는, 이것이 자신의 일방적인 관계였으면 했다. 얽힌 관계일수록 멀어지기 두려우니까. 언제나 자신이 이렇게 기다려야만 하는 관계가 편하니까. 문을 열어주는 야마토의 마음을 애써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생각하고 싶지 조차 않았다. 자신의 일방적인 감정인 그대로, 언제나 이대로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관계가 진전되지 않았으면, 했다.


 타이치는 실례하겠습니다, 하며 장난스럽게 웃는다. 야마토는 언제부터 그런 인사를 했냐며 어이없는 웃음을 흘린다. 겁쟁이들은 웃는 얼굴이다. 그리고, 겁쟁이들은 그 웃는 얼굴이 영원했으면, 하는 바보 같은 소원을 가지고 있었다.

 

Posted by 하리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