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7. 1. 21:20

- 유희왕 온리전 데스티니 드로에 발간된 십만 배포본 [ 일생의 파트너가 되어도 곤란하지 않은 십만 배포본 ]에 그냥 십마니로도 참여했었습니당

- 태그포스의 인생의 파트너 <-짤만 보고 혼자서 한 망상입니다 태그포스 내용과는 전혀 관련 없으며 내용이 달라도(다르겠지만) 태그포스를 해보지도 않은 저는 모릅니당^0^ㅎㅎ

 



 


 정령들도 모두 잠든 한 밤중, 조용히 스탠드의 불을 켜고 펜을 집어든 만죠메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그런 만죠메의 인기척에 살짝 눈을 뜬 옐로가 형님께서 왠일로 공부를 하시려는 걸까, 하며 작게 중얼거리다 끝조차 맺지 못한 채로 까무룩 잠이 들어버릴 때까지 만죠메의 펜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요즘 따라 자신이 이상했다. 수업시간에도 툭하게 멍하게 있곤 했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으며, 심지어는 정신을 못 차리다가 오므라이스 위에 케첩이 아닌 타바스코를 뿌려버리기까지 했다. 대체 자신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 수 없어 아무리 고개를 저어 봤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면 또다시 칠판이 아닌 다른 곳을 보고 있었고, 눈앞에는 쥬다이가 있었다. 처음엔 장난스러운 얼굴로 얄밉게 웃고 있던 그가 점점 진지한 얼굴로 변했다. 멀리 떨어져있는 것 같았지만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쥬다이의 손길이 자신에게 닿은 것 같다는 착각이 드는 순간, 만죠메는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쥬다이의 생각으로 잠을 설치던 오늘, 만죠메는 결국 이불을 걷고 자리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지금 당장 그와 자신과의 관계를 정확하게 정의내리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새하얀 종이에 커다랗게 유우키 쥬다이의 이름을 써넣고, 만죠메는 한참을 고민했다.


 유우키 쥬다이와는 악연이었다.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고, 지금도 라이벌로써 이기고 싶었다. 분명 자신이 그를 바라보는 것도 그것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라이벌이 생기면 이렇게 항상 보고 싶고, 그 녀석의 얼굴만 눈앞에서 아른거리고, 생각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지금까지 라이벌이라는 것을 만들어본 적이 없던 만죠메로써는 알 수 없었다. 라이벌, 하고 적힌 글자가 자신을 비난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목적을 가졌거나 같은 분야에서 일하면서 이기거나 앞서려고 서로 겨루는 힘, 재주, 기량 따위가 서로 비슷하여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상대. 사전적인 정의를 생각해보면 분명 자신과 유우키 쥬다이는 라이벌이 맞다.(옆에서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하며 누군가가 비웃은 것 같았지만 만죠메는 쿨하게 무시하기로 했다.) 하지만 조금 더 복잡한, 어떠한 감정이 더 깊숙한 곳에 있는 것 같은 기분.


 아, 그래. 사실은. 만죠메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쥬다이를 생각하는 것을 라이벌이라는 허울 속에 숨겨두고 애써 무시하고 있다는 것을 만죠메는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만죠메는 그것을 다시 꺼내보기 두려워했다. 차마 그와 자신의 사이에 우정과 라이벌이라는 관계 외의 다른 것을 들이대기가 무서웠다. 혹시나 그가 눈치 채버릴 까봐, 그가 이것이 아니라고 부정할 까봐, 만죠메는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눈을 돌려버렸다. 굳이 이렇게 정리하려고 하지 않아도 만죠메의 머릿속은 깔끔하게 답을 도출해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종이의 끝에 아주아주 조그맣게 움직이던 펜이 좋아, 라는 글씨를 쓰다말고 멈추었다. 자신의 마음을 글씨로 확인하다니 이것만큼 부끄러운 것이 없었기에 재빨리 새까맣게 칠해버린 만죠메가 다시 머리를 부여잡았다. 이런 남사스러운 글자말고, 조금 더 순화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조금 더 명확하게, 조금 더 확실하게.



“ …아, 정말!”



 얌전히 자고 있던 정령들이 모조리 깰 만큼 큰 소리로 짜증을 내며 이불 속으로 들어가 버린 만죠메의 방 쓰레기통엔,


『내 인생의 파트너가 되어줘, 쥬다이.』


볼펜으로 지우려 애쓴 흔적이 가득한, 정성이 가득 담긴 잔뜩 구겨진 편지가 하나.

Posted by 하리쿠
2016. 7. 1. 21:18

- 유희왕 온리전 데스티니 드로에 발간된 십만 배포본 [ 일생의 파트너가 되어도 곤란하지 않은 십만 배포본 ]에 ts 십마니로 참여했었습니당






 아, 하는 짧은 소리가 들려 만죠메는 고개를 들었다. 반대편에 앉아서 공부를 하던 쥬다이가 인상을 찌푸리더니 입술을 꾸욱 누르는 것이 보였다. 건조한 바깥 날씨에 가습기를 틀어놓았지만 그럼에도 습기가 부족해 입술이 갈라져 버린 것일까. 천천히 떨어지는 그녀의 손가락에 옅은 핏물이 보인 것 같았다. 멍하게 바라보는 만죠메의 시선을 눈치 챈 쥬다이가 어색하게 웃으며 아무것도 아니야, 라고 했지만 혀로 꾸욱 누르는 것을 보아하니 아마 꽤나 신경 쓰이는 것 같았다. 잠시 고민하던 만죠메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책상으로 향했다. 한참을 파우치를 뒤적이던 만죠메의 손에 들린 것은 스틱 형태로 된 립밤이었다. 별로 화장이나 꾸미는 것에 관심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유독 피부가 연약한 입술이 자주 텄기 때문에 챙기고 다니곤 했었다.



“ 아냐, 괜찮아.”


“ 됐으니까 가만히 있어봐.”



 퐁, 하고 뚜껑을 여니 옅은 오렌지향이 올라왔다. 자신이 꺼내 든 것에 괜찮다며 손을 내젓는 그녀를 대충 진정시키고 가까이 다가가자 시선이 가까이서 마주 닿아 순식간에 공기가 후끈 달아올랐다는 착각이 들었다. 사실 달아오른 것은 자신의 얼굴일 것이다.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과 예쁜 입술에서 도저히 시선이 벗어나지 않아 만죠메는 조금 침을 꼴깍 삼켰다. 이렇게 긴장해버릴 줄 알았다면 그녀에게 직접 바르라고 할 걸 그랬다. 그럼에도 이미 자세를 잡아버린 것은 어쩔 수 없어서, 만죠메는 립밤을 잡은 손에 조금 힘을 주었다. 플라스틱으로 된 표면에 잘 정돈된 손톱 끝이 닿아 살짝 떨렸다. 있는 힘껏 긴장을 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속눈썹 긴 눈을 깜빡거리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를, 좋아하고 있는 걸.


 오늘도, 쥬다이가 자신의 집에 놀러온다는 말에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서 얼마나 방 청소를 하고, 일부러 집임에도 불구하고 제일 예쁜 치마로 차려입고, 그것도 모자라 입술에 립밤과 잘 바르지도 않는 틴트까지 열심히 발랐는지 모른다. 머리를 풀까, 아니면 묶을까 거울을 보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묶은 것이 더 예쁘다 했던 그녀의 말에 몇 번이나 실수하며 다시 올려 묶기도 했다. 혹시나 긴장한 자신의 모습을 들켜 버릴까봐 처음 그녀가 방에 들어올 때엔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 했다. 게다가 자신이 그렇게 부끄러워했다는 것을 그녀에게 들키는 것은 더 부끄러워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몰랐다. 그런 자신과는 다르게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들어와, 예쁘게 꾸며진 자신의 방을 이곳저곳 둘러보는 그녀의 모습을 보는 것마저 행복해 몇 번이나 식은땀이 흐르는 손바닥을 옷에 문질렀다. 같이 공부를 하는 순간에서도, 몇 번이나 귓가에서 들려오는 그녀의 숨소리가 긴장되어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그녀에게 들리지 않기를, 하고 몇 번이나 심호흡을 했지만 커다랗게 쿵쾅거리는 심장은 지금까지도 마찬가지였다.


 립밤이 닿는 순간까지 쥬다이는 멍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입술의 모양을 따라 바르고, 상처가 생긴 부분은 특히 신경을 써서 빙글빙글 돌려 꼼꼼히 바르고 나니 그녀의 입술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보여 어쩐지 더 부끄러워졌다. 다, 됐다. 어쩐지 그녀의 입술을 한참을 바라보던 자신이 이상해서 급하게 립밤을 떼어냈더니 자신을 보고 있던 쥬다이가 눈을 살풋 휘어 웃었다.



“ 고마워, 쥰.”



 그것에 대답을 하기도 전에 눈앞에서 쥬다이의 갈색의 머리칼이 살랑거렸다. 바른지 시간이 지나 건조해진 자신의 입술에 따듯하고 미끌거리는 쥬다이의 입술이 닿았다는 것을 알아채는 것에는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눈을 감는 것조차 잊어버려 트여있는 시야에는 꼬옥 눈을 감고 있는 쥬다이의 눈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 보였다. 맞닿았다 떨어진 입술에서 립밤과 동일한 달콤한 오렌지 향이 올라왔다. 어째서, 하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쥬다이의 고개가 조금 갸웃거렸다.



“ 키스 해달라는 거 아니었어?”



 씨익 웃어 보이는 그녀에게, 만죠메는 차마 부정조차 할 수 없었다.

Posted by 하리쿠
2015. 12. 25. 01:30








 딸랑딸랑, 하고 자동문에 달려있는 종이 작게 울었다. 며칠 안 남은 행사에 잔뜩 젖은 거리처럼 붉은 색의 리본을 달고 있는 종을 잠시 바라보다가, 쥬다이는 가게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둘둘 두른 목도리가 무색할 정도로 실내는 따듯하다. 향긋하게 풍겨오는 갓 구운 빵 내음을 맡으며 케이크가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충동적으로 들어온 빵 가게는 꽤나 인기가 있는 곳이었는지 한쪽 구석에 마련되어 있는 테이블엔 이미 연인들이 한 가득 있었다. 한데 섞인 재잘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가벼운 음악을 대충 흘리며 쥬다이는 조용히 케이크를 내려다보았다.

 

 새빨간 딸기가 장식 되어있는 케이크. 초콜릿색 롤 케이크에 새하얀 생크림을 얹어 눈 쌓인 나무 집을 연상케 하는 케이크. 작은 산타와 루돌프 장난감이 꽂혀있는 달콤한 초콜릿으로 코팅 된 케이크. 그 위에 투명한 녹색 빛의 설탕으로 쓰여 있는 Merry christmas, 라는 글자를 멍하게 내려다본다.

 

 내가, 왜 외출을 하기로 마음먹었더라. 그것도 오늘 같은 날. 이런 가게에.

 

 이렇게 여러 종류의 케이크를, 자신은 3년 전에도 본 적이 있다. 어떤 케이크가 맘에 드느냐고 살짝 들뜬 목소리로 물어보던 연인이 보여준 인터넷 사이트엔 한 눈에 보기에도 맛있어 보이는 케이크들이 잔뜩 있었다. 단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이런 행사는 무슨 일이 있어도 분위기를 내고야 마는 그의 성격을 알고 있었기에 쥬다이는 얌전히 그가 자신에게 들이미는 화면을 눈에 담았다. 스크롤을 대강대강 내리며 난 이런 것보다는 직접 가서 고르는 게 더 좋은데. 하고 중얼거리는 말을 들은 것인지 표정을 구기던 자신의 연인은, 며칠 후 늦은 밤에 츄리닝만 입은 자신을 이끌고 기어코 케이크 전문점으로 데려가는 것이었다.

 

 후즐근한 차림의 자신과는 다르게 일이 끝나고 바로 온 만죠메 녀석은 쫙 빼입은 정장 차림이었다. 누가 봐도 가격대가 꽤나 나갈 것 같은 가게 안 풍경에 쥬다이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여간 쓸데없는 것에 진지한 녀석이다. 생일날, 장난 식으로 직접 만든 케이크를 먹고 싶다고 했다가 집으로 배달 온 엄청난 양의 재료에 놀랐던 기억이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이런 장면을 생각하고 말을 했어야 하는 건데, 그러지 못한 자신이 잘못했다고 대충 넘기며 쥬다이는 작은 케이크들을 훑어보았다.

 

“ 찾으시는 케이크라도 있으세요?”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시선을 돌리면 급하게 음악 소리가 귓속으로 들어온다. 혼자 케이크를 내려다보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는 점원이 친절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또 상념에 빠져있었나. 눈을 꾸욱 감았다 뜬 쥬다이가 손가락을 들어 작은 케이크 하나를 가리켰다. 이걸로, 주세요. 쇼케이스 안에서 꺼내져 점원의 손길에 따라 아기자기하게 포장되는 케이크의 색은 옅은 갈색이었다. 그래. 전에도 똑같은 것을 골랐던 것 같다. 단 것을 좋아하지 않는 자신의 연인도 함께 먹을 수 있는 것을 찾다가. 그가 즐겨 마시던 커피와 비슷한 향이 나던 것을 골랐던 것 같다. 3년 동안 쳐다보지도 않던 케이크였는데, 마치 어제 먹은 것처럼 뇌 내에 맛이 생생하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뒤로 이어지는 따듯한 인사와 다르게 밖은 쌀쌀했다. 케이크 상자를 쥐고 있는 손이 단번에 차가워졌다. 괜히 샀나, 하는 후회감과 함께 내려다본 케이크 박스는 아무런 잘못도 없이 단지 들려있을 뿐이었다. 어서 집에 들어가야지, 하고 한 숨 내쉰 눈앞이 하이얗다. 목도리 안으로 고개를 조금 더 집어넣으며 쥬다이는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순식간에 지나간 전자제품 매장 유리벽 안의 커다란 텔레비전 안에서 오늘 밤에는 폭설이 온다는 뉴스를 전하는 예쁜 누나의 모습이 보였다. 잠깐 지나간 헤드라인에 익숙한 이름이 보인 것도 같았지만 쥬다이는 그것에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괴로운 기억을 떠올려봤자 자신에게 득이 되는 것은 없다. 지금까지 괴로워하고, 후회하고, 힘들어 하며 쥬다이는 그것에 무덤덤하게 대처하는 법을 배웠다. 자신에게는 죄가 너무나도 많았기에.

 

 실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뉴스였다. 어서 집에 들어가서 환기를 위해 열어둔 창문을 닫아둬야겠다. 오늘은 추울지도 모르니 난로를 더 때고, 저녁은 따듯한 스프로 할까. 곧 냉장고가 텅 비어있던 것이 생각났지만, 1인분정도는 만들 수 있었으므로 상관없었다. 혼자 살면 냉장고가 가득 차있어 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몇 번이나 음식을 버리면서 깨달았다. 생각보다 음식 만들기는 번거롭다는 것도. 생각보다 혼자 식탁에 앉아있기는 쓸쓸하다는 것도.

 

 


“ 다녀왔습니다.”

 


 어서와, 하고 옆에 있던 유벨이 자연스럽게 대답해주는 것을 들으며 쥬다이는 신고 있던 신발을 벗었다. 창문을 열어 두었던 집 안은 쌀쌀했다. 밖과 거의 공기의 온도차가 없는 것을 느끼며 쥬다이는 종종걸음으로 창문을 닫고 난방을 켰다. 아직 따듯해지려면 한참은 걸릴 것이기 때문에 쥬다이는 목도리만 풀고는 옷깃을 조금 더 여몄다. 어두운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익숙하다고 생각했지만, 새삼 밖에 나갔다 오니 조금 더 추웠다. 텅 빈 방에서 차가운 몸을 끌어안으며 닫힌 문을 바라보는 것은 익숙했는데. 익숙했어야만 했는데.

 

 너는 신경 쓰지 말고 있어라. 아직까지도 울리는 핸드폰을 억세게 쥐고는 급하게 나가는 연인의 등은 그렇게도 강인해 보이더랬다.

 

 닫히는 문소리가 그날따라 너무나도 무서워 쥬다이는 어깨를 떨었다. 따라오는 뉴스 앵커의 말소리가 침착해 더욱 더 소름이 끼쳤다. 자신은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두려운데. 아직까지도 덜덜 떨리는 손가락의 느낌이 선명하게 전해져 오는데. 도리어 패닉에 빠진 자신을 진정시키며, 이런 일은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침착하게 대응하는 만죠메의 표정은 덤덤했다. 지금까지 쌓아오던 일이 모조리 허사로 돌아간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만죠메가 자신과 키스를 하는 사진이 언론에 퍼졌다. 뉴스에 대문짝만하게 뜬 사진을 보며 그 때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생각날 수 있을 정도로 며칠 지나지 않은 일이었다. 만죠메가 어떤 달콤한 목소리로 자신을 불렀는지, 따듯한 손으로 어떻게 자신을 어루만졌는지 아직까지도 생생했음에도 그것을 기분 좋게 떠올릴 수 없었다. 누가 봐도 그 사진은 자신과 만죠메였다. 당연하게도 아직까지 일본사회는 동성애자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의 핸드폰에 수없이 쌓인 전화 중엔 분명 그의 스폰서를 끊겠다는 종류의 것도 있을 것이다. 뉴스에 지나가는 ‘충격’ 이라는 글자가 눈에 뚜렷하게 박혀들어왔다.

 

 프로로 데뷔하지 않은 자신과는 다르게 만죠메는 차근차근 프로의 길을 밟았다. 형님들의 힘을 빌리지 않고 당당하게 만죠메 가문에게 인정받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던 만죠메는, 어제 자신에게 기뻐 보이는 목소리로 다음 날이면 정식으로 만죠메 그룹이 자신의 스폰사로 들어오게 된다고 말했다. 조금 취기가 섞여있는 목소리로, 정말 행복한 표정을 하고, 자신에게 그렇게 말했다. 자신은 더 이상 형제들의 열등생이 아니라고. 형님들께 인정받았다고. 늦게 들어온 이유가 단순한 크리스마스 파티가 아닌 형님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던 것이었다. 웃으며 안겨오는 자신의 연인에게 수 없이 키스를 해주며 그의 주머니에서 떨리는 핸드폰의 배터리를 뺀 것은 자신이었던가, 아니면 만죠메였던가. 그것이 중요한 전화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한 채로. 자신들은 얼마나 행복하게 밤을 보냈던가. 얼마나 달콤하고 따듯한 크리스마스를 보냈던가.

 

 그것이 마지막으로 함께하는 밤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한 채로.

 


“ …윽, 으…….”


 

 순간적으로 올라오는 구역질에 쥬다이는 벽을 타고 주르르 미끄러져 내려왔다. 마른 등의 척추에 오돌토돌하게 닿아오는 벽이 아팠지만 아무래도 괜찮았다. 그 날에도 만죠메가 떠난 닫힌 문과, 들려오는 여자 앵커의 목소리를 들으며 헛구역질을 했다. 그대로 화장실에 달려가서 어젯밤에 먹은, 밤새 소화되어 거의 남지 않은 케이크와 위액들을 꾸역꾸역 게워내고 나서야 자신은 숨을 들이쉴 수 있었다. 산소가 모자라 시야가 두어번 뒤바뀌고, 흔들리는 몸을 몇 번이나 다잡고 화장실의 밖으로 나왔을 때에도 만죠메의 방에는 변화가 없어서 얼마나 다리가 떨렸던가. 지금 만죠메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무슨 생각을 하며 전화를 받고, 무슨 생각을 하며 그의 얘기를 해대는 언론의 목소리를 듣고 있을까. 지금까지 그가 쌓아온 일은, 앞으로의 그의 길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것을 모두 감내하고도 그는 자신에게 그렇게 담담하게 굴 수 있었다는 것인가.

 

 자신은, 그가 돌아오면 어떤 표정으로 그를 맞이해야 하는 것인가.

 만죠메는, 어떤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을까.

 

 자신은, 그의 옆에 있는 것이 맞는 것인가.

 

 그렇게 자신은 그 자리를 도망쳤던 것 같다. 만죠메가 돌아오는 것을 보지도 않은 채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렇게. 만죠메를 홀로 남겨두고.

 

 외국에서 자리를 잡는 것은 쉬웠다. 원래 여행을 다니고 있기도 했으니까. 얼굴이 알려져있던 그와는 다르게 자신은 매니악한 몇몇을 제외한 사람들은 모르는 무명 듀얼리스트에 불과했으니까. 아무리 세상을 몇 번이나 구했어도, 대중들은 자신보다는 프로로 활동하는 만죠메를 더 기억하니까. 사진 속의 자신은 만죠메와 키스하던 모브 남자A일 뿐이니까. 그의 앞길을 막아버리는 그런 지나가는 남자였을 뿐이니까. 그렇게 자신은 모든 것을 만죠메에게 맡기고, 모두의 기억 속에서 자신이 사라지기를, 자신의 기억조차도 시간 속에 묻혀버리기를 기다렸다. 겨우 3년이라는 시간으로는 함께 한 잠자리의 온기조차 지워버릴 수 없음에도 자신은 그저 잊히기를 차가운 이불 안에서 바르작대며 기다렸다.


 그렇게 도망친 자신과는 다르게 만죠메는 몇 개월이 지나자 다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자신이 집 밖에조차 나가지 못할 때. 텔레비전조차 켜지 못할 때. 닫힌 문조차 두려워하고 있을 때, 만죠메는 그 지옥 밑바닥에서 다시 불사조처럼 되살아났다. 예전, 그가 고등학생 때 했던 것처럼. 귀를 닫고 있던 대중문화의 소식에 조금씩 다시 귀를 기울였을 때 들려온 소식은 만죠메의 우승 소식이었다. 그는 자신이 없이도 열심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1위 트로피를 손에 쥐고 자신만만하게 웃고 있는 그의 옆에는 자신의 존재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쥬다이는 안심할 수 있었다. 안심한 구실을 찾을 수 있었다. 방구석에 홀로 제자리에 있던 자신과 앞으로 나아가는 만죠메. 예전, 우리가 고등학생이었을 때처럼.

 

 다시금 몰려오는 죄책감에 괴로워하며 쥬다이는 떨리는 손으로 리모컨을 집었다. 먼지가 뽀얗게 앉아있는 리모컨을 눌러 텔레비전을 켜고는 뉴스에 채널을 맞춘다. 1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아마 메인 뉴스는 끝났겠지만, 그래도 뉴스가 하는 곳은 있으리라. 자신이 최근에 언제 만죠메의 기사를 찾았더라. 만죠메가 만죠메 그룹으로 들어갔다는 얘기까지였나. 세계적인 행사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는 얘기까지였나. 아니면, 그것으로 인해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큰 회사와 혼담이 오간다는 얘기까지였나. 기억을 더듬으며 시작하는 뉴스의 헤드라인을 바라보는 쥬다이에게 보인 것은,

 

 만죠메의 은퇴 선언이었다. 아니, 은퇴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미 얘기가 꽤나 진행된 것인지 하나도 놀라워 보이지 않는 표정으로 만죠메 프로의 은퇴에 대한 말을 전하는 앵커들을 바라보며 쥬다이는 거의 기어가듯 텔레비전 앞으로 향했다. 뉴스 화면에 보이는 드로를 하는 만죠메, 손을 높이 들며 썬더콜을 하는 만죠메, 우승 트로피를 받으며 자신만만하게 웃는 만죠메는 분명 자신이 아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아는 만죠메는 그의 꿈을 이렇게나 쉽게 내려놓을 사람이 아니다. 어딘가 잘못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지만 뉴스에서 들려오는 오늘 아침 매니저에게 전송되었다던 은퇴에 대한 편지 내용을 쥬다이는 멍하게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고마웠다는 내용, 자신들을 지지해주는 형님들에게 미안하다는 내용, 동료 듀얼리스트들에 대한 내용.

 

 뇌까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문자의 흐름을 들으며 쥬다이는 급하게 휴대폰을 꺼내다가, 그대로 떨어뜨렸다. 그렇게 도망친 자신에게 어떤 권리가 있어서 이유를 묻겠는가. 자신에게는 자신이 없는 연인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조차 주제넘은 짓인데.

 


“ ……아하, 하, 하하….”



 도망쳤던 3년 전의 자신도, 그동안 수없이 오던 연인의 연락을 무시해버린 자신도, 그가 무사히 지낸다는 소식을 듣고 죄책감을 덜어버리는 자신도, 그의 은퇴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에게 연락을 하려했던 자신도 너무나 혐오스러웠지만, 자신이 옆에 있지 않아 행복해지지 못한 연인의 소식에 안도해버리는 지금의 자신이 제일 역겨워 쥬다이는 차라리 웃었다. 웃지 않고서는 자신에 대한 혐오감을 지울 수 없을 것 같았다.

 

――――쾅쾅쾅.

 

 그렇게 피식피식 웃고 있던 쥬다이는 들려오는 소리에 몸을 움찔 떨었다. 현관문 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아무도 올만한 사람이 없었기에 초인종마저 달아놓지 않은 집이었다. 가끔 집으로 찾아오는 잡상인이 오기엔 자정이 넘긴 시간은 너무나도 늦었다. 쥬다이는 잠시 웃는 것을 멈추고 멍한 눈으로 현관문을 바라보았다. 잠시 시간차를 두고, 쾅쾅쾅, 하고 다시 문이 울었다. 올, 사람이 있을 리가 없는데. 쥬다이는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한 사람의 얼굴을 애써 지우며 쥬다이는 주먹을 꽈악 쥐었다. 올 사람이 있을 리가 없는데. 없음을 알고 있는데.

 

 쥬다이는 침을 조금 꿀꺽, 하고 삼키며 문을 향해 다가갔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조금 심호흡을 했지만 도저히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고, 그럴 리가 없지 않느냐고 아무리 자신을 타일러도 제멋대로 손끝이 떨렸다. 누구세요, 라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 만약에 아니라면, 조금이라도 실망을 늦추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쥬다이는 문의 손잡이를 단단히 잡았다. 차가운 쇠의 기운에 손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오늘은 밖이 추웠다. 해가 진지 꽤나 시간이 지났으므로 아마 밖은 더 추워졌을 것이다. 오늘은 눈이 온다고 했다. 아마 이미 내리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밖에 쌓이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추운 날에, 눈까지 펑펑 오는 날에, 이렇게 늦은 시간에. 조금씩 열린 문의 너머에는 네가 서있었다.

 


“ …만죠메.”

 


 쥐어짜듯 내뱉은 쥬다이의 목소리에 만죠메는 어깨를 조금 떨었다. 우산조차 쓰지 않은 만죠메의 머리위에는, 어깨 위에는 눈이 소복소복 쌓여있었다. 뼈까지 서늘해지는 추운 날씨에 맞지 않는 차림의 만죠메는 아무래도 하얀 피부가 더 창백하게 질려있었다. 살까지 빠진 것 같은 야윈 얼굴을 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만죠메를 보며 쥬다이는 차마 들어오라는 말 한마디 건내지 못했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연인의 모습이었다. 아니, 과연 그가 아직도 자신을 연인으로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 …나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말라붙은 입술이 찢어지듯 열렸다. 잔뜩 쉬어버린 목소리였다. 텔레비전 속에서 보이는 자신만만하고 당당한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텔레비전에서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사실은 그와 함께 살면서 알고 있었는데. 강한 척 하는 그를 가장 가까이서 보고 있었는데, 자신은 자신을 위해서 그는 괜찮을 것이라고 애써 모르는 척 하고 있었다. 나에게 중요한 건 형님들의 인정도, 대중들의 시선도, 사회적 위치도 아니야. 네가 나를 위해 사라져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모든 걸 버린 이런 나라도.

 


“ …….”


“ 이런, 나라도. …받아줄래?”

 


 바들바들 떠는 입술을 짓이기며 흘러나온 말이 간절해 애달프다. 그를 놓아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는데. 언제나 자신의 예상을 빗나가는 행동만을 하는 그에게 놀라기도 지쳤다. 그래, 만죠메는 이런 남자였다. 자신은 이런 그를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만죠메. 쏟아지듯 끌어안은 그의 몸은 차가웠다. 그가 연락까지 받지 않던 자신의 거처를 찾는 데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을지 모른다. 그도 자신처럼, 몇 번이나 상대방을 위해 망설였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만죠메는 자신을 찾아내고, 그동안 휘어잡은 모든 것들까지 버리고 달려왔다. 아니, 버리기 위해 잡았을런지도 모른다. 이 순간을 위해서.

 


“ 미안해…. 내가 미안해…….”


“ ……바보자식.”

 


 복받치는 감정에 쥬다이는 만죠메를 조금 더 강하게 끌어안았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가락이 놓칠세랴 만죠메의 허리를 붙들었다. 어디에도 도망가지 않음에도. 잔뜩 젖어버린 시야를 몇 번이나 끔벅이며 쥬다이는 그의 이름을 불렀다. 질책하는 목소리마저 달콤해 눈물이 끊이지 않았다. 천천히 쥬다이의 어깨에 기대오는 만죠메의 고개도 이미 축축했다. 좋아해, 좋아해. 그동안 막혀있던 것에 불만을 표출하듯 흘러넘치는 감정에 마음 안쪽이 금방이라도 터질듯이 아팠다.

 

 추운 날씨는 아무래도 상관없어질 정도로, 너의 앞길을 막는다는 사실조차도 아무래도 좋아질 정도로, 그동안 떨어져있던 시간조차 괜찮을 정도로, 엇나갔던 감정도, 표현도, 그동안의 괴로움도 모두 잊을 수 있을 정도로. 네가 좋았다.

 

 ‘너’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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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왕 크리스마스 합작에 십만으로 참여했습니다.

원본은http://blog.naver.com/oats_flower/220577232343 이쪽에서 감상해주세요 


어째 크리스마스랑 점점 관련이 없어진 기분..

Posted by 하리쿠
2015. 11. 5. 02:25

- 슬럼프.. 내용도 항상 비슷해서 화난다 영 맘에 안들어서 버림..ㅠㅠ







 하얗구나. 자신의 팔을 잡아챈 만죠메의 새하얀 손목을 내려다보며 쥬다이는 멍하게 생각했다. 커다란 보름달이 뜬 평소보다 환한 밤,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얇은 달빛이 만죠메를 조각조각 비추고 있었다. 그것을 받아 빛나는 만죠메의 살결이 평소보다 현기증 나도록 하얘서, 그래서 그가 입을 열어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낼 때까지 아무런 반응조차 할 수 없었다. 걷어 올려진 소매로 인해 차가운 공기가 피부에 닿았지만, 만죠메에게 잡힌 부분에서부터 신경을 타고 흘러들어오는 뜨거운 기운이 심장까지 퍼져와 아무래도 좋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또 다시 피를 빨리겠구나. 몸에 각인되어 있는 두려움에 팔이 저도 모르게 바들바들 떨렸다.



…….”



 식어버린 피부를 꾸욱 짓누르는 송곳니는 마치 불에 달군 것처럼 뜨거웠다. 어쩌면 예전의 기억 탓일런지도 몰랐다. 만죠메는 그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듯이 온 몸이 차가웠고, 지금 자신을 붙잡고 있는 손 또한 마찬가지였다. 닿아있는 부분에서 퍼지는 뜨거운 기운은 그 차가운 피부에 대한 신체의 반사작용일 수도 있었고, 그저 강하게 잡혀 혈액이 몰린 것일 수도 있었고, 그에 대한 감정의 표현일 수도 있었다. 이유조차 찾지 못한 뜨거움이 제멋대로 몸 안을 돌아다니며 자신을 이리저리 휘둘렀다. 점차 뜨거워지는 혈액의 흐름이 혈관을 타고 느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무렵, 피부가 뚫리는 소리가 뼈를 타고 들렸다.


 으득. 이제는 익숙해질 법 한 고통에 쥬다이는 이를 악물었다. 저도 모르게 샐 뻔 했던 신음이 간신히 목 뒤로 삼켜진다. 표피층을 넘어 진피층, 그리고 혈관까지 꿰뚫어오는 날카로운 이의 아찔함에 저도 모르게 얼굴이 구겨졌다. 자신의 안으로 들어온 뼈의 차가움을 느끼기도 전에 팔을 타고 흘러내리는 자신의 혈액이 소름 돋아 쥬다이는 조금 몸을 떨었다. 자신의 피부를 타고 자신의 몸 안에 있던 은밀한 붉은 액체가 흘러내리는 감각은 몇 번을 느껴도 몸이 떨릴 정도로 무서웠다. 그리고, 그것을 빨아들이고 있는 만죠메 또한.


 그럼에도 자신의 팔에 입술을 파묻고 있는 그의 얼굴을 보고 있자면 올라오는 고통도, 피가 빨리고 있는 소리도, 감각도, 점점 떨려오는 근육조차도, 모조리 아무래도 좋아지는 것이다. 끈적하게 늘어지는 그의 타액엔 마취작용이 있는 것인지 점차 멀어지는 고통과 의식을 간신히 붙잡으며 쥬다이는 쓰러지려는 몸을 벽에 기대어 섰다. 하아, 하고 금방이라도 멎을 것 같은 숨이 입가에서 터졌다. 피가 모자라 팔이 저려와 금방이라도 툭, 하고 떨어질 것 같았지만 자신의 팔이 떨릴수록 단단하게 죄어오는 만죠메의 손덕분에 아슬아슬하게 붙들려있었다. 둔해지는 다섯 손가락이 피부를 누르는 감각에 멍하게 그의 손가락을 바라보며 예쁘구나, 하고 생각했다.



만죠메…….”



 더 이상 빨리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은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하나의 신호와도 같은 것이었다. 마치 어머니의 젖에 원시적인 반사 작용을 일으키는 아기같이 자신의 팔에 매달리던 만죠메가 자신의 피부 사이에서 이를 천천히 빼어내는 것이다. 그는 절대로 자신에게 무리하게 바라지 않았다. 바라보고 있자면 자신의 피부 밑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구멍에서 흘러내리는 혈액조차 아쉽다는 듯이 혀를 내밀어 핥아오는 만죠메를 반대쪽 손으로 쓰다듬으며 쥬다이는 조금 웃었다.


 만죠메의 정체는 굳이 소리 내어 묻지 않았다. 만죠메 또한 굳이 자신에게 말해주지 않았다. 카드의 정령도, 뱀파이어도, 심지어 죽었다가 살아난 파라오조차 있는 세상에 인간 외 생물 같은 것이 어떤 놀라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쥬다이는 자신에게 몸을 겹쳐오며 팔을 강하게 잡아채는 그를 거절하지 않았고, 몇 번이고 내어주고 있었다. 이리저리 멍들고 덕지덕지 밴드가 붙어있는 자신의 팔이 하나의 훈장 같았다.

Posted by 하리쿠
2015. 10. 11. 00:57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2015. 10. 11. 00:49

- 유희왕 온리 데스티니 드로에서 무료배포 했던 글입니다.

- 약간의 모브 소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사와타리 씨의 고집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점심시간엔 매점이 제일 붐비는 것을 알면서도 굳이 가서 입가심할 우유를 사오라며 자신을 시킨 것이다. 사람이 많은 곳엔 직접 가고 싶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래도 어째서 자신인지 야마베는 조금 억울한 눈빛으로 카키모토나 오오토모를 바라보았지만 그들은 안쓰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볼 뿐이었다. 다음에 사와타리 씨가 이런 요구를 하면 절대로 다른 놈들에게 시킬 것이라고 생각하며 야마베는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이제 한 층만 더 내려가면 매점이라 조금 발걸음을 서두르는데, 옆으로 지나가던 남학생들 사이에서 말소리가 하나 튀어나왔다.



“ 야, 야마베.”



 자신을 부르는 것이었기에 야마베는 걸음을 멈추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보며 키득키득 웃고 있는 것이 영 마음에 안 들어 인상을 찌푸렸더니 자신을 부른 것 같은 남학생이 미안미안, 하고 손을 내저어 주위에 있던 학생들을 조용히 시키고는 야마베에게 다가왔다. 딱히 눈썰미가 좋은 편이 아니라 몰랐지만, 그는 자신과 같은 반 학생이었다. 오늘도 분명, 수학 시간에 불림을 받아 앞으로 나갔다가 문제를 풀지 못하고, 같이 나갔던 사와타리 씨가 그 문제를 멋지게 풀어내는 바람에 반 아이들의 웃음을 샀던 일이 있었던 것 같았다. 그것 외에도 사와타리 씨는 학교에서 만큼은(정확히는 선생님들 앞에서) 모범생처럼 행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그와 부딪히는 일이 많았다. 항상 사와타리의 옆에 있었기 때문에 어쩐지 눈에 익은 같은 반 학생에게 야마베는 왜, 하고 설렁설렁 대꾸를 해주었다.



“ 사와타리 녀석 말이야. 지금 어디 있냐?”


“ 엉? 아마 교실에 있을 걸? 다음이 이동 수업이니까 그쪽으로 갔던가.”



 아아, 그러냐. 고마워. 하고 떠나가는 녀석들의 기분 나쁜 웃음이 어쩐지 이상했지만 야마베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말한 대로 다음 교시는 이동 수업이었기 때문에 빨리 교실로 돌아가야만 했다. 사와타리 씨는 결코 자신을 기다리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서둘러 우유를 사들고 교과서를 챙기러 가야하는 것이었다. 끝나가는 점심시간에 더욱 탄력을 받아 붐비는 매점을 질린 눈으로 바라본 야마베가 심호흡을 한 번하고 학생들의 사이로 끼어들었다. 오늘은 딸기 우유라고 했지. 매점 냉장고에 보이는 몇 없는 딸기 우유에 괜히 긴장이 되었다. 혹시나 다 팔려 자신이 초코 우유를 사간다면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신경질을 낼 그가 눈에 선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초코 우유라고 해서 그가 맛있게 마시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 아, 정말. 종이 쳤잖아!”



 간신히 마지막 한 개 남은 딸기 우유를 겟하고 밖으로 빠져 나오자마자 울리는 종소리에 야마베는 뛰기 시작했다. 그냥 교실에서 하는 수업이면 선생님이 들어오실 때까지 시간은 남아있지만 이동 수업은 달랐기 때문에 자신의 교실까지 다다랐을 때에는 숨이 턱까지 차올라있었다. 허겁지겁 연 교실에는 당연히 아무도 없었다. 사와타리 씨는 아니더라도 카키모토나 오오토모 둘 중 한 명은 남아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를 했던 자신을 바보 같다고 생각하며 교과서를 챙기는데, 사와타리 씨의 자리에 다음 시간인 과학 교과서가 보였다. 혹시나 깜빡하고 챙겨가지 않은 것일까 싶어 함께 챙기고 야마베는 과학실을 향해 뛰었다. 도착한 과학실에 선생님이 아직 들어오지 않은 것에 안도하며 들어가는데, 사와타리 씨의 자리가 비어있었다. 같이 앉는 다른 녀석들에게 물어봐도 아무도 모르겠다는 말에 야마베는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재빨리 고개를 들어 다른 학생들을 살피니 아까 자신에게 사와타리 씨의 위치를 묻던 학생들이 보이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사와타리 씨를 찾으러 가고 싶었지만 금세 들어오는 선생님 때문에 실행하지도 못하고, 야마베는 어쩐지 몰려오는 불안감에 손톱을 잘근잘근 씹었다. 이 예감이 그저 자신의 착각이었으면, 했다.


 보이지 않던 학생이 돌아온 것은 수업이 시작하고도 30분정도 지난 다음이었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정말 자신이 예상하고 있는 일인가, 하는 생각을 하느라 하나도 들어오지 않던 수업 사이에 드르륵,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만 크게 들렸다. 두 시간을 연속으로 하는 수업이었기에 빠질 수 없는 것인지 들어온 녀석들이 능청스럽게 늦어서 죄송합니다, 하고 사과하며 자리에 앉는 것을 노려보던 야마베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수업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쉬는 시간이 올 때까지 기다리려 했지만, 녀석들의 얼굴을 보니 불안감이 배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께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얼버무리며 교실 문을 여는데, 어쩐지 뒤로 보이는 방금 들어온 녀석들이 자신을 보며 싱글싱글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제일 먼저 교실을 다시 둘러보고, 혹시나 싶어 학교의 뒤뜰까지 가보았지만 사와타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만화 같은 곳에서 자주 나오는 체육 창고도 열려있지 않아 야마베는 아래층부터 화장실 안을 살피기 시작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녀석들이 물어볼 때 대답을 하지 말 것을 그랬다. 괜히 안쪽에서 올라오는 죄책감에 서서히 뛰기 시작한 다리가 아프고 숨이 점점 차올라 땀이 흐르는 것 같다고 느낄 즈음, 자신의 교실에서 살짝 떨어진 화장실 안쪽에, 그가 있었다.



“ 사와타리 씨!”



 있었다기보다는 버려져 있었다는 표현이 더 맞았다. 맨 마지막 칸의 변기 옆에 잔뜩 구겨져 있는 그를 보자마자 몸이 먼저 튀어갔다. 자신의 예감이 맞았던 것이었다. 야마베는 차마 그가 무슨 짓을 당했는지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목소리에 반응하는 듯이 인상을 잔뜩 찌푸린 그의 옷은 엉망이었다. 화장실 바닥에 굴러 잔뜩 젖고, 더러워진 바지엔 차마 무엇인지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허여멀겋고 기분 나쁜 액체가 묻어있었다. 들어오기 전부터 소름끼치는 냄새가 난다 했더니, 아마 이것이었던 듯 했다. 이리저리 흐트러진 머리에 반쯤 드러난 피부, 상처투성이인 몸에 비릿한 냄새까지. 보기만 해도 그가 어떠한 짓을 당했는지 상상할 수 있었기에 야마베는 저도 모르게 이를 꽉 물었다. 그는, 윤간을 당한 것이었다.



“ 응, 으….”



 바닥에 구겨져 있는 그를 천천히 일으키니 정신이 드는 듯이 작은 신음소리가 들렸다. 잔뜩 터진 입술과 이리저리 꽉 잡혀 손가락 모양으로 생긴 울혈자국, 멍 자국 같은 것들을 보아하니 그가 얼마나 필사적으로 저항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교실에 있었기에 자신이 알려주지 않았더라도 그 무리들은 찾을 수 있었겠지만, 그럼에도 죄책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었다. 일어서려는 듯이 이리저리 흔들리던 다리가 차마 바닥에 닿지 못하고 자꾸 쓰러졌다. 중력을 이기지도 못 할 정도로 힘을 줄 수 없는 것인가, 싶어 허리를 꽉 잡고 일으켰더니 반쯤 뜨여있던 사와타리의 눈이 갑자기 커졌다. 동시에 몸이 한 번 크게 떨더니 자신을 급하게 올려다보는 것이, 자신을 그를 괴롭히던 놈들이라고 생각했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잠시 자신의 얼굴을 확인하는 듯이 눈을 이리저리 굴리던 사와타리가 숨을 몇 번 크게 헐떡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야, 야마베…?”


“ 네, 사와타리 씨. 괜찮으세요?”



 자신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사와타리는 숨을 천천히 잠재우고는 안심하는 듯 한 표정을 했다. 천천히 들락거리는 사와타리 씨의 숨이 따듯하다고 생각하는데, 수업이 끝나는 종이 치는 것이 들렸다. 아무런 생각 없이 그것을 듣고 있다가 문득 자신이 있는 곳이 화장실이라는 것을 떠올리고 급하게 문을 잠구었다. 사와타리 씨의 상태를 보아하니 당장 여기서 벗어날 수는 없었고, 지금 그가 남에게 보여줄 수 있을만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선택이 맞았는지 곧 밖에선 다른 남학생들이 들어와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 사와타리 씨는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멍한 상태로 숨만 내뱉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손끝에 닿아오는 그의 몸이 차다. 추운 겨울 날, 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는 화장실에 옷도 못 입은 채로 버려져 있었기에 당연했다. 일단 변기에 그를 앉히고 자신의 교복 마이를 둘러주고 나니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하반신이 보였다. 순간 붉어진 얼굴을 감추려 허둥지둥 구석에 버려져 있던 속옷을 그에게 건네주며 등을 돌렸다. 겨우 같은 남성의 세 번째 다리를 본 정도로 이렇게까지 부끄러워지다니! 야마베는 괜히 머리를 허공에 이리저리 내저으며 사와타리에게 바지를 가져오겠다며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다행히 학생들이 많이 쓰는 쪽의 화장실이 아니었기 때문에 쉬는 시간이었음에도 사람이 거의 없었다. 교실로 돌아가는 와중에도 자꾸만 화장실에 홀로 앉아있을 사와타리의 생각이 나서, 야마베는 괜히 얼굴이 붉어질 것만 같았다.


 학생들이 모두 과학실로 빠진 교실엔 아무도 없었다. 마침 어제 체육이 들어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사물함에는 체육복이 있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미리 빨아두는 건데. 걱정되는 마음에 바지에 코를 묻고 킁킁대자 역시나 약하게였지만 땀 냄새가 났다. 과연 이런 것을 사와타리 씨에게 입으라 줘도 될까, 하는 걱정을 했지만 어제 분명 카키모토가 사와타리 씨의 체육복 주머니를 집까지 들어주었던 기억이 났기 때문에, 이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체육복을 들고 화장실로 조심히 들어와 그가 있을 마지막 칸의 문을 똑똑, 하고 두드렸다. 혹시나 밖에서 누군가가 지나가다가 볼까봐 미리 문을 닫아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 사와타리 씨, 저에요. 야마베요.”



 잠시 망설이다가 잠금장치를 풀어준 사와타리가 화장실 변기에 쪼그려 앉은 채로 야마베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신발은 비싼 것이라 시기를 산 것인지 변기 안에 버려져 있었기 때문에, 더러운 화장실 바닥을 양말로 딛기 싫었던 모양이었다. 일단 바지를 그에게 넘겨주니 머뭇거리더니 정말 싫은 표정을 하고 받아드는 것이 보였다. 다른 사람이, 그것도 어제 입었던 것을 입으려니 기분이 찜찜한 것도 이해가 갈 것 같아 야마베는 어색하게 웃으며 그것밖에 없었어요, 했다. 자신이 나간 사이에 나름 정리를 한 것인지 그의 맨다리에 잔뜩 묻어있던 정액들이 사라지고, 휴지통에 버려져 있는 휴지가 늘었다. 그럼에도 아직도 옅은 핏자국이나 거뭇거뭇한 것들이 남아 있어서, 야마베는 품속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물에 적셔왔다. 참고로, 야마베는 손수건 같은 것을 챙기고 다니는 남자는 아니었지만 사와타리가 필요로 했기 때문에 항상 가지고 다녔다. 그것은 오오토모도, 카키모토도 마찬가지였지만.



“ 닦아 드릴게요.”


“ 아냐, 내가 할…, 읏,”



 자신을 향해 손을 뻗던 사와타리가 잠시 표정을 굳혔다. 말을 하다가 찢어진 입술이 아팠던 것인지, 아니면 맞은 곳이 아픈 것인지, 아니면 좁은 장소에 처박혀 있느라 굳은 근육이 삐걱거린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차마 자신이 상상도 할 수 없는 곳이 아팠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표정을 찌푸리면서도 입술을 꽉 다물고 아픔을 삼키는 그의 얼굴이 어쩐지 애처로워 보여 야마베는 작게 한숨을 푹 내쉬고는 아프잖아요, 했다. 싫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아무런 대답을 못하는 사와타리의 팔목을 잡고 야마베는 천천히 손수건을 종아리로 가져다 대었다. 물이 차가웠는지 손수건이 닿지 사와타리의 몸이 잠시 움찔거렸다. 천천히 손수건을 문대어 거뭇한 먼지와 핏자국을 닦아내었다. 하얗게 눌러 붙은 더러운 것들을 닦을 때엔 자신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다. 종아리를 닦던 손수건이 살짝 말랑거리는 허벅지에 닿을 때엔 사와타리가 조금 더 입술을 깨무는 것이 보였다. 남들에게 잘 보여 지지 않는 부분에 손이 닿는 것이 수치스러운 것일까, 아니면 아까 전 다른 남자애들에게 당했던 일이 생각나는 것일까. 야마베는 괜히 궁금해지는 마음에 조금 시선을 올려 사와타리의 얼굴을 살피었더니 붉게 부어오른 눈가에 다시 눈물이 맺히는 것이 보였다.



“ 가만 안 둘 거야, 그 녀석들…. 가만 안 둘 거야….”



 앙 다문 입술이 조금씩 들썩거리고 꽉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훌쩍이느라 달아오른 볼과 들썩이는 작은 어깨가 어쩐지 계속 눈길이 가는 바람에 야마베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문득 자신이 그의 다리 사이에 있는 것을 깨닫고 순간 부끄러워져버렸다. 단지 다친 그의 상처를 닦아주기 위해서였는데 어째서 이렇게까지 부끄러워지는지 알 수 없어 야마베는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났다. 꼬물꼬물거리며 상처에 천이 닿지 않게 천천히 바지를 입는 사와타리의 벌어진 다리 사이와 드러난 허벅지가 괜히 하얗게 눈에 들어와 괜히 등을 돌리니 청각만 더 예민해져 천이 피부에 스치는 소리가 더욱 귀를 자극했다. 사, 사와타리 씨. 보건실에 데려다 드릴까요? 어째서인지 목소리는 떨려서 나왔다.



“ 아니, 이런 모습을 보일 수는 없지. …집으로 가자.”



 조금 갈라져있는 그의 목소리조차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 것인지 야마베는 알 수 없었다. 빨리 그를 데려가야 한다는 생각에 허둥지둥 오오토모에게 가방을 챙겨달라는 메일을 보내고, 아직 제대로 설 수 없는 그를 부축하는데, 닿은 곳에서 어쩐지 열이 나는 것 같았다. 가까이에 있는 그의 얼굴을 볼 수조차 없어 야마베는 괜히 고개를 돌리며 천천히 화장실에서 나섰다. 걸을 때마다 몸이 아픈 것인지 인상을 찌푸리는 그의 표정과 작게 새는 신음에 심장이 덜컹거렸다.

사와타리 씨를 집으로 데려다주고 가는 길, 어쩐지 눈앞에 어른거리는 그의 모습에 야마베는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대체 자신이 왜 이러는 것인가. 다음 날, 그의 얼굴을 어떻게 봐야할지 고민하는 야마베의 뒷모습은 쓸쓸하기만 했다.





-

너무 급하게 써서..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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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리쿠
2015. 7. 14. 00:24

- 원고로 하던거였는데 모종의 이유로 그냥 공개.. 뒤는 이을지 안이을지 모릅니당








 형님들께서 마련해 주신 요양지는 생각보다 구석진 곳에 있었다. 보통 타고 다니던 리무진보다 작은 차가 향한 곳은 바다를 옆에 둔 어느 한적한 마을이었고, 도착한 곳은 그 마을에서도 조금 떨어진 별장이었다. 나의 건강을 위해 지었다고 형님들은 말했지만, 사실 병원에 있어봤자 차도가 보이지 않는 자신을 신경 쓰지 않으려 보내버렸다는 것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만죠메는 혼자 살기엔 커다란 별장을 고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 수는 없었다.


 만죠메가 처음으로 안에 들어서 한 일은, 자신의 시중을 들어주기 위해 있던 가정부와 집사들을 모두 내쫓는 것이었다. 옷을 받아주겠다며 옆으로 다가온 여자에게 필요 없으니 당장 나가라며 소리쳤다. 당황하는 눈빛들이 쏟아졌지만 그것에 주춤할 자신이 아니었다. 너희들은 모두 해고를 할 것이고, 만약 필요하다면 본가로 보내줄 테니 당장 짐을 싸라고 한바탕 난리를 치고 나서야 부랴부랴 방으로 돌아가는 그들을 볼 수 있었다. 아마 그들은 자신을 욕 할 것이다. 운전기사만 제외하면 모두 처음 보는 얼굴이었고, 자신은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을 향해 화를 낸 것이었다. 병원에서 자신의 병수발을 들어주던 사람들도 모두 내쫓았고, 본가에 있던 가정부들도 자신의 짜증에 견디지 못해 모두 그만두었다. 형님들께서는 생각해서 새로운 사람들을 뽑아 보내준 것이겠지만 아무것도 필요 없었다.


 자신의 병이 낫지 않을 것이라는 건 알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약했던 몸이었다. 언제 발작을 일으켜 쓰러질지도 모르는데, 그런 꼴사나운 모습을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고, 아무리 치료를 받아봤자 차도도 없을 테니 병수발 따위를 받고 싶지도 않았다. 이런 큰 별장 따위 필요 없다고, 혼자 살 수 있는 공간이면 된다고 형님들께 말했지만 아마 이 크기의 집과 사람들은 형님들의 최소한의 형제간의 우애, 혹은 죄책감일 것이다. 어짜피 곧 죽을 사람일 것을 왜 굳이 신경을 쓰는 것인지 만죠메로써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만죠메 그룹에 도움은커녕 방해만 되는 열등생 따위, 더 이상 필요 없을 터인데. 성급하게 집에서 쫓겨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만죠메는 들고 있던 가방을 조금 더 꽈악 쥐었다. 식료품은 제가 사다 드리겠습니다. 뒤에서 운전사가 말했다. 자신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유일하게 남아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아마 자신이 다 내쫓을 것이라는 것을 예측한 모양이었다.



“ …필요 없어.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돌아가.”


“ 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군말 없이 고개를 숙이는 운전사의 태도는 나쁘지 않았다. 넓은 거실과는 떨어져 있는 2층의 방을 써야겠다고 생각하며 계단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형님들께서는 생각보다 도련님을 걱정하고 계십니다. 너무 미워하지 말아주세요. 금방이라도 나갈듯이 문을 잡고 있는 운전사의 표정은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확인할 수 없었다. 쓸데없는 참견이니까 당장 나가라, 하고 일갈하고 나서도 그의 말은 생각보다 기분이 나빴기 때문에 내딛어지는 발에 조금 힘이 들어갔다. 그럼에도 해고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은 아마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이기 때문이겠지.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기분이 나빴다. 하여간 오래 산 영감들은 남의 속을 너무 잘 파악해서 문제였다.


 처음부터 2층은 자신을 위해 지어진 것인지 문이 하나밖에 없었다. 어렸을 적부터 자신은 살짝 높은 층을 좋아했다는 것을 신경써준 것 같아서 만죠메는 괜히 입술을 조금 삐죽였다. 고급스러운 손잡이는 손에 감기는 느낌도 병실과는 달랐고, 문 또한 조금의 삐걱임 없이 열렸다. 쓸데없는 소리로 시끄러운 것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나마 마음에 든다는 생각이 들었던 참에, 그런 만죠메의 감성을 방해하는 목소리 하나가 끼어들었다.



“ 여어, 왔어? 기다리고 있었다구.”



 자신이 싫어하는 세상에 아무 걱정도 없는 것 같은 아주 가벼운 목소리를 가진, 자신의 방에 멋대로 침입해 온 처음 보는 남자였다. 게다가 초면에 반말까지 찍찍 해대다니 예의라는 것을 조금도 모르는 녀석인 것 같아서 만죠메의 인상이 조금 더 찡그려졌다. 자신의 집에 있는 것 보면 형님들이 보낸 고용인인 것 같기도 한데 멋대로 반말이라니. 남의 침대에 멋대로 걸터앉아 가볍게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아 만죠메는 들고 있던 짐을 힘을 주어 내려놓고는, 불쾌함이 잔뜩 묻어있는 목소리로 답했다.



“ 네 놈은 누구야. 고용인이라면 당장 내 집에서 나가.”


“ 음-. 그건 안 되겠는데.”



 자신을 향해 씨익 웃어 보인 남자는 호이, 하고 장난스럽게 침대에서 내려와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난 고용인이 아니거든. 자신과 나이대도 비슷해 보이는 남자는 여전히 가벼운 발걸음으로 자신을 스쳐지나갔다. 배고프지 않아? 밥 차려올게. 자신이 매서운 눈초리로 쏘아보든 말든 남자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으며 방에서 나가 1층으로 향했다. 고용인도 아닌데 남의 집에 멋대로 쳐들어와 멋대로 행동하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행동에 만죠메 역시 쿵쾅거리며 계단을 내려갔다. 이미 이 집의 구조를 알고 있는 것인지 남자는 벌써 1층의 안쪽에 있는 부엌의 냉장고를 뒤지고 있었다.



“ 뭐 하는 거야. 못 들었어? 내 집에서 당장 나가라고!”


“ 거 참 말 많네. 요리하는데 집중할 수가 없으니까 그냥 올라가 있을래? 만죠메.”



 낯선 남자의 입에서 나온 자신의 이름에 만죠메의 눈썹이 조금 움찔거렸다. 감히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을 이렇게나 무시하다니! 이렇게 불쾌한 사람은 만죠메의 인생에서 처음이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뒤를 돌아 냄비에 물을 올리고 있는 남자에게 다가가 만죠메는 거칠게 멱살을 잡았다. 남자의 손에 들려있던 냄비가 바닥에 떨어져 귀 아픈 소리를 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남자의 조금 놀란 것 같은 동그랗게 뜨여진 눈과 시선을 마주하자 화가 더욱 치밀었다.



“ 야, 너 뭐야. 사람의 말이 말 같이 안 들려? 신고하기 전에 빨리 나가!”



 오랫동안 병실에 있으면서 산책조차 제대로 하지 않아 폐활량이 낮아진 것인지, 아니면 그저 감정이 격해진 탓인지 벅차온 숨에 만죠메는 한참을 숨을 헐떡였다. 자신에게 멱살이 잡힌 남자는 자신이 숨을 고를 때까지 기다려주다가, 천천히 손을 풀었다. 더 이상 소리를 지를 기력이 남아있지 않아 그저 눈에 잔뜩 힘을 주고 노려봤더니 남자는 그대로 자신의 등을 밀어 2층까지 데려가는 것이었다. 뭐 하는 거야, 당장 나가, 하고 아무리 짜증을 내어도 남자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굳이 힘을 주어 자신을 침대에까지 눕혔다.



" 조용히 있고 싶어서 여기로 온 거 아니야? 금방 밥 만들어 올 테니까 얌전히 있어."



 마지막으로 이불 위를 툭툭 두드리는 것까지 자신을 한없이 얕보고 있는 것 같아 짜증이 났다. 만죠메는 남자가 작게 문을 닫고 나가는 것을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지만, 곧 놔버렸다. '조용히 있고 싶어서' 남자가 한 말이 맞았다. 낫지 않는 병에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는 치료사들을 보고 싶지 않아서. 평생 병원 신세를 져야 하는 귀찮은 동생을 돌봐야 하는 형들을 볼 면목이 없어서. 매일같이 사람이 죽어나가는 병원의 답답한 공기 안에 더 이상 있고 싶지 않아서 자신은 형들에게 요양을 보내달라고 한 것이 맞았다. 게다가 핸드폰으로 연락을 한다면 누구에게 한단 말인가? 형님들? 경찰? 어느 쪽이던 귀찮아질 것임이 분명했다. 게다가 이 나이가 되서 겨우 이런 일도 해결하지 못하다니! 이것은 굴욕이었다.


 생각해 보면 전에도 자신을 이렇게 귀찮게 굴던 간호사가 있었던 것 같다. 식욕이 없어 먹지 않겠다고 하면 굳이 한 숟가락만 더 먹으라고 한다던가, 올 때마다 산책 좀 하라고 잔소리를 하던 간호사도 결국 자신의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밥을 가져온다면 먹지 않으면 된다. 말을 건다면 무시하면 된다. 그렇게 한다면 왜 이 곳에 있는지 모를 저 남자도 분명 자신을 포기할 것이었다. 요양을 선택한 것은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싶지 않아서도, 형님들께 부담이 되고 싶지 않아서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제일 큰 이유는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끝내고 싶어서도 있었다. 자신의 몸 상태는 자신이 제일 잘 알았다. 건강 상태가 악화되었다고 해서 별로 고치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이런 상태로 오래 살 마음도 없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좋았다. 오히려 치료 없이 조금이라도 이 질긴 목숨이 빨리 끊어진다면 그 쪽이 더 좋은 것이었다. 만죠메는 눈을 감고 자신이 이곳으로 오면서 했던 생각을 다시 떠올렸다. 햇빛이 비치는 깨끗한 침대 안에서 조용히 꺼져가는 자신의 목숨. 그래. 자신은 그것을 위해 온 것이었다. 그러니까, 지금의 자신에게 저 남자는 방해였다.



“ 어라, 만죠메. 벌써 자는 거야? 밥도 안 먹고?”



 남자는 비교적 빨리 음식을 들고 나타났다. 애초에 배도 고프지 않았고, 정체도 알 수 없는 저런 남자가 만든 음식을 먹을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낮잠이라도 자기 위해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던 상태였다. 아직 밖은 밝은 대낮이었고, 병원에서 이미 오래 자고 왔기 때문에 딱히 졸리지는 않았기 때문에 감은 눈동자 너머로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이대로 눈을 감고 있으면 나가지 않을까 싶어 미동도 않고 자는 척을 하고 있는데, 남자가 움직이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것일까, 왜 나가지도 않고 있는 것일까, 싶어 살짝 실눈을 떴다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저도 모르게 인상이 확 찌푸려졌다.



“ 깼어? 아니면 자는 척이었나? 아무튼, 뭔가 먹고 자는 게 좋아. 아무것도 안 먹었다고 들었다구.”



 그 새하얗게 머리가 샌 할아버지랑 통화했거든. 남자의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도 만죠메에게는 한없이 불쾌하게 다가왔다. 머리가 샌 할아버지는 아마 운전사 영감을 말하는 것이겠지. 이제 남자는 아예 멋대로 내가 누워있는 침대에 엉덩이까지 붙이고 앉아있었다. 어째서 자신이 이렇게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스스럼없이 다가와 말을 걸 수 있는지 신기할 다름이었다. 만죠메가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홱 돌리자 남자의 입에서 조금 웃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대체 이렇게 예의 없는 사람을 앞에 두고 뭘 하고 있는 것인지 이해 할 수 없어 조금 더 이불 속으로 파고들며 나가, 하고 딱 잘라 말했다.



“ 밥은 안 먹어?”


“ 안 먹으니까 나가라고.”



 에에이, 그래도 한 입만 먹어봐. 남자는 계속해서 끈질기게 말을 걸어왔다. 요리도 못하는 자신이 열심히 만들었다느니, 안에 재료가 엄청 많았으니 저녁엔 좀 더 맛있게 만들겠다느니 하며 쉬지도 않고 떠드는 남자의 목소리에 결국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밀고 말았다. 원래 신경질 적인 성격이긴 했지만 이 남자는 정말 사람을 화나게 하는데 재주라도 있는 것 같았다. 누워있던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니 남자의 눈이 조금 동그랗게 변했다. 와장창! 옆 탁자에 올려져 있던 남자가 들고 온 쟁반을 들고 성큼성큼 방의 밖으로 나가 바닥으로 던져버리자 그릇이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게도 났다. 당장 나가라고!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자 남자의 바보 같은 얼굴도 조금 움찔거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있던 정마저 모두 사라질 행동이었다. 남자는 조금 곤란하다는 듯이 머리를 조금 긁적이고, 내 눈치를 조금 살피는 듯이 나와 시선을 마주치더니 아까보다는 조금 장난기가 사라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미안, 그러고 보니 내 소개도 아직 안했네. 내 이름은 유우키 쥬다이. 나이는 아마 너랑 같을 거야. 너와 같이 살려고 왔어. 일단 진정하고. 음….”



 자신을 유우키 쥬다이라고 소개한 남자는 자신의 강경한 태도에 당황이라도 한 모양이었다. 어떻게든 말을 이어가려는 모습에 다시 목소리에 힘을 주어 나가, 하자 벌어져있던 남자의 입이 다물어졌다. 남자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이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다가 멋대로 앉아있던 침대에서 슬그머니 일어났다. 남자가 터벅거리는 시끄러운 슬리퍼 소리가 울렸다. 남자는 굳이 거부하는 자신을 다시 침대에까지 데려다놓고, 저녁에 또 오겠다며 나가버렸다. 닫힌 문의 밖에서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아마 자신이 깨버린 그릇을 치우고 있는 모양이었다. 왜 이런 취급을 받으면서까지 나가지 않는지. 왜 또 오겠다고 하는지 묻고 싶었지만 만죠메는 그냥 안으로 삭혀두기로 했다. 만약 자신이 그에게 관심을 가진다면 아마 나가지 않을 것이다. 유우키 쥬다이. 심지어 이름조차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만죠메는 신경질적으로 자리에 누웠다. 자신은 저 남자의 이름을 부르는 일이 없을 것이고, 없어야만 했다.

 



 생각보다 잠이 들어 있었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새로 지은 집의 고약한 냄새의 탓인지, 아니면 아직 길들여지지 않아 심하게 사각거리는 이불이 불편했던 것인지, 아니면 어색한 공기의 탓인지 생각나는 것은 산더미같이 있었기 때문에 만죠메는 이유를 찾는 것을 포기하고 몸을 일으켰다. 옆에 걸려있는 시계를 흘끗 보니 2시간도 흘러있지 않았다. 아직도 하루를 끝내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저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졌다. 병실에서는 놓여있던 책을 읽거나, 오래 전에 다니기를 그만둔 학교의 공부를 하거나, 수면제에 취해 잠을 자거나 하는 생활을 했다. 가끔 그것이 지루하면 나가서 산책을 했고, 병원 밖에 나가지 말라던 간호사의 말을 무시하고 서점에 들렀다. 아직 다 읽지 못한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직 자신의 짐은 이 집에 다 도착하지 못했기 때문에 한 권도 있지 않았다. 이곳으로 향하던 리무진의 안에서 운전사 영감에게 내일 중으로 모두 옮기겠다는 말을 들었지만 당장 지금 할 일이 없으니 지루한 것이었다. 한 권 정도는 챙겨올걸, 하는 후회를 하며 만죠메는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직 자신은 이 집의 구조조차도 잘 몰랐다. 이왕 할 일도 없으니 집 안을 돌아보고, 이 근처를 산책이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은 겉에서 본 것만큼이나 컸다. 2층은 자신을 위한 커다란 방과 커다란 욕실이 있었고, 1층은 고용인들이 지내는 공간인지 여러 개의 방들이 있었다. 자신이 모두 내쫓았기 때문에 텅 비어있는 방이 묘하게 커보였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청소나 빨래를 할 사람을 불러야지. 조금 나가면 인가가 있으니 식재료도 살 수 있으니 사는 것에는 지장이 없겠어. 따위의 생각을 하며 집안을 둘러보다가 문득 만죠메의 머리를 스친 생각이 있었다. 집 안은 텅 비어있었다. 그렇다면 그 남자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인가? 자신이 깨뜨린 그릇과 바닥에 널부러져 있던 음식물들이 사라진 것을 보니 착실하게 청소를 한 것 같은데, 혹시나 자신의 행동에 질려 나간 것일까? 겨우 이 정도에 나갈 거면서 어째서 그렇게나 자신을 귀찮게 한 것인지. 그나마 하루 만에 나가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만죠메는 밖으로 나가기 위해 문을 열었다.



“ 어라, 만죠메. 잘 잤어?”



 그리고 그 생각은 밖으로 한 발자국 내딛자마자 사라졌다.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뻔뻔한 목소리로 남자가 인사를 해 온 것이었다. 아쉽게도 남자는 그저 정원정리를 하기 위해 집 안에 있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누가 이기나 해보자고. 절대로 이 집에서 제 발로 나가게 해주겠다고 다짐하며 만죠메는 남자에게서 흥! 하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차를 타고 올 때엔 몰랐지만, 별장이 위치한 장소는 꽤나 괜찮은 곳이었다. 바로 옆에 깨끗한 공기가 올라오는 숲이 있었고, 조금만 걸어가면 시원한 바다가 있었다. 꽤나 걸어야 했지만 숲의 밖으로 나가면 인가도 있었고, 자신이 잠시 둘러본 것만으로도 가볍게 인사해오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봐선 민심도 좋은 것 같았다. 그저 시골 촌구석이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있을 것은 다 있는 길거리까지 확인한 만죠메는 서서히 아파오는 다리를 자각하며 별장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어두워진 주위에 차고 있는 시계를 확인해보면 7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숲 주변엔 딱히 가로등 같은 것이 없기 때문에 어두워지면 다시 돌아갈 방법이 없어서, 서둘러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서둘렀다. 사실 조금만 두리번거리다가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저녁시간에 맞추어서 돌아가면 그 귀찮은 남자가 또 밥을 먹으라며 귀찮게 굴 것 같아서 조금 더 걷는다는 것이 벌써 이 시간이었다. 하여간, 정말 도움이 조금도 되지 않는 남자였다.


 마을에 있을 때엔 몰랐지만, 숲은 정말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아무리 눈이 어둠에 익숙해져있다고 해도 눈앞만 보일 뿐 먼 곳은 보이지 조차 않았다. 다행히 길은 하나뿐이었기 때문에 자신이 이상한 곳으로 들어가지 않는 한 길을 잃을 염려는 없을 것이지만, 혹시나 산짐승이라도 나타날까 긴장이 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숲속의 싸늘한 공기까지 올라와 얇은 옷을 입고 있던 만죠메는 팔위로 돋은 소름을 쓰다듬어 가라앉혔다. 앞으론 이런 밤중까지 돌아다니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돌아갈 거리를 계산하고 있는데 저 멀리서 불빛이 보였다. 자신의 별장에서 나온 불빛일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에 만죠메는 천천히 그 불빛을 바라보며 걸음을 옮겼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 상태에서 걸을 때엔 속도도 나지 않고 다리만 아팠지만, 별장이 보이자 저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졌다. 어서 들어가서 족욕이라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종종걸음으로 별장을 향해 가면, 문 앞에 자신을 기다리는 이가 있었다.



“ 늦었잖아, 만죠메. 이 시간까지 돌아다니면 안 된다구?”



 그 남자였다. 현관 쪽의 불을 밝게 켠 채로 자신을 기다리던 남자는 살짝 쌀쌀한 공기에 아까 전엔 보지 못한 붉은 색의 자켓을 걸치고, 언제부터 기다린 것인지는 몰라도 자신을 발견하자마자 밝게 웃으며 다가오는 것이었다. 왜 굳이 밖에까지 나와서 자신을 기다린 것인지, 그렇게 무시하는 자신이 기분 나쁘지도 않은 것인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물음을 간신히 삼켰다. 집에 돌아왔을 때, 고용인이 아닌 누군가가 자신을 기다리는 느낌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어쩐지 가슴 안쪽이 간질간질한 것도 같아서 만죠메는 멍하게 바라보다가, 이럴 때가 아니라는 것을 퍼뜩 깨닫고 성큼성큼 걸어서 지나쳤다.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뒤에서 키득키득 웃는 소리가 들렸다.


 별장의 문을 열면 맛있는 냄새가 났다. 그동안 이런저런 요리를 고민해 본 것인지 아까와는 다르게 국도 끓여져 있었고, 반찬도 여러 개 놓여 있는 탁자가 보였지만 만죠메는 그것을 지나쳐 2층 계단으로 향했다. 뒤에서 고생해서 만든거라느니, 데워줄 테니 같이 먹자느니, 배고파 죽겠다느니 하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자신도 배가 고프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워낙 굶는 것에 익숙하기도 했고, 아무리 저 남자가 자신을 기다려줬다고는 해도 저 남자가 만든 것을 먹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저 남자를 쫓아내는 것이었다. 밥은 다음에 먹어도 괜찮았기 때문에 2층까지 따라오려는 남자에게 큰 소리로 먹지 않겠다고 소리치곤 문을 쾅 닫아버렸다. 다행히도 남자는 방 안까지 따라 들어오지는 않았다. 분명 밖에서는 족욕을 해야겠다느니, 다리가 아프다느니 하는 생각을 했었지만 막상 방에 들어와 침대에 누우니 마치 그곳만 중력이 세게 작용하는 듯이 몸이 일으켜지지를 않았다. 병실에 살게 된 이후 이렇게 오랫동안 걸어본 적이 없으니 아마 몸이 많이 피곤했던 것 같았다. 씻고 자야하는데, 씻고 자야하는데, 하는 생각을 하다가 어느새 만죠메는 까무룩 잠이 들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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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릭님께 드리는 연성 사다리타기! 늦어서 죄송합니닷.. 짧아서 더 죄송합니닷...

- 캐붕 주의!








 듀얼 대회가 있던 날이었다. 미리 얘기하지 않고 찾아간 듀얼장은 평소와는 달리 앞좌석이 아니었기 때문에 모습을 제대로 볼 수는 없었지만, 전광판에 비치는 모습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기 때문에 아무래도 괜찮았다. 순간순간 보이는 듀얼에 집중하는 진지한 모습은 자신에 앞에서 보여주는 표정과는 달라서 꽤나 좋아하는 부분이었다. 굳이 표까지 끊어가며 보러 와달라는 말을 거절했을 때의 그의 표정은 꽤나 볼만했었다. 아마, 그는 자신이 지금 이 장소에 왔을 줄은 조금도 생각하지 못 할 것이다. 오랜만에 보는 자신을 의식하지 않은 채 듀얼 하는 그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듀얼은 당연하게도 자신이 보러온 남자의 승리였다. 매너 있는 미소를 띄우고는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며 천천히 일어나 출구로 향했다. 그를 놀래키기 위해 가져온 작은 꽃 세 송이가 바스락거렸다. 지금 그가 있을 대기실로 들어가면 표정이 어떨까? 당황할까? 아니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을까. 이미 너무 익숙해져 눈에 보이는 반응이었다. 꽃을 들고 찾아온 자신의 모습에 그의 매니저는 자신을 쉽게 통과시켜 주었다. 인기가 많은 그였기에 이미 몰려있는 그의 팬들의 눈초리를 무시하는 것은 이미 익숙했다.


 작게 두드린 문의 너머는 조용했다. 천천히 문을 열었을 때에도 아무런 대답도 없어서 잠시 그가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곧 소파의 한쪽에 엎드려 자고 있는 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최대한 구두소리를 죽여 다가갔음에도 일어나지 않는 모습에 대회 때문에 피곤했나보다, 하는 짐작을 약간 할 뿐이었다. 조용히 감겨 있는 눈꺼풀을 잠시 바라보며 리오는 소파의 끝에 살짝 앉았다. 리오의 무게에 들썩거리는 소파에도 남자는 눈을 뜰 줄을 몰랐다. 흐음. 어쩐지 조금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들고 온 꽃을 옆 탁자에 내려놓으며 조금씩 뻗혀가는 셋팅된 머리를 쓰다듬자 손끝에 닿아오는 약간의 머리칼과 살짝 땀에 젖어있는 목덜미가 따듯했다. 에어컨이 틀어진 방의 싸늘한 공기에 식은 손끝에서 올라오는 따스한 기운이 어쩐지 간질간질해 잠시 손가락을 접었다 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실체가 있는 무언가가 묻은 것 마냥 사라지지 않았다. 만약 자신이 오늘 그의 초대에 응했더라면, 지금의 그는 피곤함도 숨기고 자신을 맞이하고 있었겠지. 



" 바보 같은 남자"



 -라고 말하면 그는 언제나 어색하게 웃으며 그거 아쉽군요, 하고 대답하곤 했지만, 그는 바보가 맞았다. 하여간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늘어놓는 것에 능숙한 남자였다. 물론, 그것을 알아채는 사람은 몇 되지 않을지라도. 그의 이러한 모습을 보기 위해 오지 않겠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하며 리오는 천천히 그에게로 다가갔다. 하필 엎드려 자는 틈에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 괘씸했지만 얼굴을 보면 참을 수 없을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그에게 불평은 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그래도 조금쯤은 탓을 해도 되겠지.


 척추의 선이 선명하게 보이는 뒷 목덜미에 살짝 남은 손톱자국은 당분간 그를 괴롭힐 지라도, 짧게 닿은 리오의 입술은 아마 자고 있는 포로써는 알아채지 못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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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리쿠
2015. 4. 25. 03:30

 오랜만에, TV에서 유우키 쥬다이 녀석을 봤다. 정말 지나가듯이 나온 듀얼 대회에서 1등을 했다는 듀얼 뉴스였기에 여전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만죠메는 핸드폰을 쥐었다. 이제 녀석의 번호 정도는 딱히 번호 등록부에 들어가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멍하게 신호가 가는 음을 들으며 만죠메는 마지막으로 쥬다이 녀석과 전화한 것이 언제였는지를 떠올렸다. 사실 목소리는 정말 고등학생 때 3년 동안 지겹도록 들어왔기 때문에 잊을 래야 잊을 수 없었다. 얼굴도, 탁자위에 놓은 사진만 봐도 알 수 있었으므로 녀석에 대한 것은 조금도 잊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슬슬 언제 만났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때 즈음이 된 것이다. 아마 슬슬, 쥬다이도 그렇게 느끼고 있을 터였다.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기 때문에 만죠메는 솔직하게 그에게 전화를 하기로 했다.



“ 어, 만죠메?”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평소 자신이 알던 것과 같았다. 자신이 어째서 전화한 지도 모르고 혼자 신나서는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 아냐며 물어보는 그에게 설렁설렁 대답을 해주며 약속을 잡았다. ‘밥을 먹으러 오겠다.’며 통보를 해오는 녀석에게 신경질을 내는 척 하며 시선 끝으로 시간을 살피었다. 1시. 아마 그는 점심을 먹는 것조차 잊은 채로 듀얼에 몰두했을 터였다. 8시쯤엔 도착할 것이라는 말을 들으며 만죠메는 전화를 끊었다. 대충 본 뉴스에 따르면 듀얼 대회는 시애틀 쪽에 있다고 했는데 7시간 안에 어떻게 올 생각인지 물어보려다가 만죠메는 그냥 입을 다물기로 했다. 녀석은 한다면 하는 놈이었고, 아마 그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으리라. 쥬다이라면 어떻게든 하겠지, 싶었다.


 약속이 정해지고 나면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혼자 살 때에는 요리를 잘 하지 않기 때문에 냉장고에 마땅한 것이 없었다. 지갑을 쥐는 손에 어쩐지 물기가 어려 있었다. 그 잠깐의 통화에, 시간이라는 이름의 긴장감이 방울졌던 모양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만큼 신경써주자는 생각에 시장에 가서 재료를 골랐다. 7시간이면 어떤 요리를 할 수 있지? 그러고보니 녀석, 조금 마른 것 같던데 영양제라도 사서 들려 보내야할까. 좋아하던 새우튀김도 살까. 이왕이면 갓 나온걸 먹이고 싶은데 시간에 맞춰서 배달시키는 편이 좋을까. 어디가 맛있더라. 평소라면 금방 끝낼 시장을 1시간을 훌쩍 넘겨 집에 돌아왔을 때에는 어쩐지 거실은 태풍이라도 맞은 듯이 엉망이었고, 그 가운데에는 유우키 쥬다이가 있었다. 나름 치우려는 노력이라도 한 것인지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화분으로 추정되는 도자기 조각들을 들고서.



“ 마, 만죠메. 이게 말이지….

“ …….”

“ 거, 으음. ……왔어?”



 두 손 가득한 봉투를 털썩 내려놓은 만죠메는 기가 차서 그의 말에 대답을 할 수 조차 없었다.

 



 그러니까, 시차를 잊어버렸다고 했다. 정말 그 다운 변명이라 만죠메는 머릿속을 가득 메운 잔소리를 늘어놓는 것을 포기했다. 그래, 쥬다이 놈이 시차를 생각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한 자신이 잘못한 것이었다. 조금 더 빨리 올 수 있었는데 대회장 앞에서 기자들에게 잡혔다 던지, 거꾸로 날아가는(여기서 딴지를 걸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바람에 돌아오느라 늦었다 던지 하는 말을 잔뜩 늘어놓은 쥬다이를 보며 만죠메는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눈까지 가려진 주제에 하여간 말은 많았다.


 결국 녀석이 오기 전에 한 상 가득 차려준다는 계획은 물 건너 간 것이었다. 그러니까 애써 사온 재료들도, 시켜놓은 최고급 새우튀김도, 자기 직전에 목을 축일 최고급 와인도 모두 쓸모가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쥬다이 녀석은 당장 무언가를 먹고 싶어 했기 때문에 만죠메는 그저 급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뒤에 있는 쥬다이는 자신의 넥타이로 눈을 가린 채 홀로 떠들고 있었다. 요리를 하고 있는 남자 뒤의 눈을 가린 남자라니 누가 보면 이상한 취미라고 생각할만한 광경이었지만, 요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으므로 어쩔 수 없었다. 이래서 진작 상을 차려놓으려고 했는데! 하여간 생각한대로는 되지 않는 녀석이었다. 삐뚤빼뚤 썰어 넣은 야채가 익어가는 냄새에 쥬다이의 보채는 소리가 늘었다.


 결국 상에는 상상했던 것 이하의 요리들이 놓였지만 쥬다이 녀석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 같았다. 제대로 뜸을 들이지도 못한 밥을 급하게 입으로 욱여넣는 녀석을 보고만 있어도 밥을 먹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는 아마 이것을 먹고 나면 다시 가버릴 것이다.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오래 붙들고 있을 이유를 만들어보려 더 많은 준비를 하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이었다. 자신은 차마 그를 붙들 수조차 없었다. 그저 허겁지겁 밥을 먹는 녀석의 얼굴이라는 액자에 가지 마, 가지 마, 하고 생각으로 외치는 관람객밖에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 맛있었다! 고마워, 만죠메.”



 하며 자신을 향해 웃어 보이는 녀석의 얼굴만 봐도 모든 것이 용서되어 버리는 멍청이였다. 창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커튼과 쥬다이의 머리카락이 함께 나풀거렸다. 열린 창문으로 들어온 바람은 아마 집 안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흘끗 시계를 보면 슬슬 마트에서 시킨 요리 재료들이 도착할 시간이었다. 쥬다이 녀석은 이미 갈 준비를 마치고 베란다에 서있었다. 


" 아아, 그래. 어서 가버려라, 멍청아."


내가 시킨 너에 대한 마음 한 보따리가 도착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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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리쿠
2015. 4. 19.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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