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2. 26. 02:13

- 딱히 전 내용과 이어지지는 않지만 설정은 공유하고 있습니다.

- 백합주의 약간 수위 주의~







 네가 누워있는 모양에 따라 주름이 가있는 침대 시트는 먼지 하나 없이 새하얗다. 다른 누구도 아닌 네가 쓸 것에 조금의 더러움이라도 있어서는 안 되었기 때문에 당연했다. 스프링에 따라 출렁이는 침대에 몸을 맡기고 고개 하나 들지 못한 채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켄은 입술을 부드럽게 휘어 웃었다. 얇은 천에 의해 입이 막혀있는 그녀가 웃음 하나 짓지 못하고 몸을 조금 떨었다. 네가 웃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천을 제거하면 분명 자신이 듣고 싶지 않은 말을 할 것이기에 그럴 수는 없었다. 자신에게 꽂혀있는 시선에 물기가 가득하다.



“ 다이스케….”



 작게 중얼거리며 손을 뻗으면 도망가려는 듯이 몸을 조금 뒤로 내뺀다. 묶여있는 팔과 다리로는 그것에 한계가 있을 것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다이스케는 한가득 맺혀있는 눈물을 또르륵 흘려보내며 바들바들 떠는 것이다. 다이스케의 짧은 스커트 밑으로 길게 뻗어있는 허벅지 위에 살짝 올라타 그녀를 내려다보면 무언가 말하고 싶다는 듯이 입술 사이에 있는 천을 짓씹으며 고개를 젓는 그녀가 예쁘다. 옆으로 쏟아진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기며 켄은 다시 한 번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잔뜩 젖은 눈가에 그녀에게 예쁘게 보이기 위해 방금 덧바른 붉은 입술이 비쳐보였다.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너는 이렇게나 예쁘고 아름다운데, 너를 위해 쓸데없는 단장을 하는 자신의 모습은 한없이 추악하다.


 툭, 하고 다이스케가 앙 문 입술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색이 옅은 입술에 곧 붉은색 핏기가 돌기 시작한다. 예쁜 몸에 상처 내지 말아줘. 옆 서랍 뒤에 올려져있는 립밤을 발라주기 위해 집어 올리니 시선이 따라온다. 힘을 주어 연 립밤에서는 장미향이 났다. 쭉 써오던 것이었지만 향을 맡은 것은 처음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바를 때에는 자신의 추악함에 사라져버린 향기도 다이스케가 바를 때엔 그 향을 뽐내는구나. 어쩐지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새끼손가락 끝을 살짝 굳어있는 립밤 위에 올리고 부드럽게 굴린다. 체온에 조금씩 녹아가는 분홍색의 립밤이 손가락의 표면에 진득하게 묻어나왔다. 립밤을 서랍의 위에 달각, 하고 올려놓고 켄은 다이스케를 향해 몸을 내렸다. 흐트러진 교복의 옆에 체중지지를 위해 놓여진 손과 그 옆의 겁에 질린 표정을 한 다이스케. 그리고 그 위로 쏟아지는 자신의 그림자가 어쩐지 조금 기분 좋았다.



“ 아프겠다…….”



 작게 중얼거리며 새끼손가락 끝을 다이스케의 입술에 가져다대었다. 잔뜩 터버린 다이스케의 입술 표면은 까끌까끌했다. 입술의 선을 따라 새끼손가락을 움직이자 움찔, 하고 눈을 꾸욱 감던 다이스케가 다시 물기어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다. 약간 색이 있는 립밤이었기에 조금 분홍색을 띄게 된 다이스케의 입술이 예쁘다고 생각했다. 자신도 같은 것을 발랐기 때문에 아마 같은 향일테이지만, 다이스케의 그것은 좀 더 아름다운 향을 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입술을 가까이 가져다 대면 향을 맡을 수 있을까. 립밤으로 번들거리는 그의 작은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짓누르면 어떤 느낌일까. 생각만 해도 황홀해지는 느낌이었지만 켄은 그 즐거움은 조금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조금 더, 소중하게 다루고 싶었다. 연약하고 깨지기 쉬운 유리 인형처럼.


 그녀의 입술에 립밤을 꼼꼼하게 바른 켄이 조금 허리를 들어올리며 손끝을 자신의 입가로 가져가 덧발랐다. 굳이 한 번 더 바를 필요는 없었지만, 자신의 손가락이 다이스케의 입술에 닿았다는 생각을 하면 마치 키스라도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이스케의 온기가 마치 손가락이 남아있는 것 같아 자신의 아랫입술을 한 번 훑는 것만으로도 허리가 움찔거릴 정도로 좋았다. 손가락을 떼어내자 바른지 얼마 안 된 립 때문인지 손가락 끝에 붉은 것이 묻어나 있었다. 마치 그녀를 향한 자신의 숨길 수 없는 욕망처럼.



“ 다이스케….”


“ …우…….”



 작게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흐트러진 교복 위로 손을 내렸다. 작게 바스락거리는 교복 블라우스가 손끝에서 애처롭게 올라가고 있었다. 조금씩, 조금씩 밑으로 드러나는 아랫배가 예뻤다. 운동을 하고 있는 그녀였기에 하얗다고는 말할 수 없었지만, 창백하여 보는 사람의 눈살을 찌푸려지게 하는 자신의 것보다는 훨씬 분홍 빛깔을 띄고 있었다. 자신의 감추어진 부분이 보여지고 있다는 생각에 다이스케는 눈을 꼬옥 감으며 작게 우는 소리를 내었다. 막힌 목에서 울리는 소리마저 예쁘다고 생각하며 켄은 부셔지랴 천천히 그녀의 배에 손가락을 얹었다.



“ 부드러워, 다이스케….”



 그녀의 피부를 살며시 쓸어 올리자 우는 소리가 조금 더 커졌다. 그녀의 안쪽 피부에 손이 닿았다는 것만으로도 손가락이 바들바들 떨릴 정도로 흥분되어 켄은 저도 모르게 숨이 달콤해진다. 살짝 힘을 주어 누르면 약간의 살집이 있어 말랑거리는 아랫배가 참을 수 없었다. 당장이라도 이를 세워 자신의 흔적을 남겨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켄은 조금 더 아랫입술을 깨무는 것으로 대신했다. 조금 더, 조금 더 나중에. 한 번 그녀를 맛봤다간 끝까지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녀의 아랫배를 만지작거리고 있으면 도망가려는 듯이 묶인 팔을 몇 번이나 꼼지락거리고, 다리를 비트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자신이 앉아있는 엉덩이 아래에서 다이스케의 허벅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조금만 더 움직이면 짧은 그녀의 스커트 아래에서 속옷이라도 보일 것 같아 켄은 그녀를 조금 힘을 주어 누르며 쉬이, 하고 작게 바람소리를 내었다. 자신의 목소리에 움찔, 하고 허리를 떤 그녀가 다시 보석 같은 눈물을 흘려보냈다. 점점히 젖어가는 시트의 색이 짙어진다.



" 울지 마…….“



 허리를 조금 숙여 그녀의 귓가에 속삭이고는 천천히 손을 그녀의 허리선에 따라 쓸어올렸다. 손가락 피부에 얇게 느껴지는 그녀의 세포 하나하나가 푸딩처럼 달콤하고 부드러웠다. 몇 번이나, 몇 번이나 이렇게 하고 싶었어, 다이스케. 그녀의 묶여져 붉게 달아오른 손목에 소중하게 키스를 떨어뜨리며 켄은 손끝에 닿아온 그녀의 속옷을 만지작거렸다. 다이스케의 표정이 더 울 것 같이 변했다. 필사적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그녀가 이 이상 진행하면 되돌릴 수 없어, 하고 비난하고 있는 것 같았다.



“ 이미 되돌릴 수 없는걸.”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속옷 안으로 들어간 켄의 손끝에 다이스케의 작은 밑 가슴이 닿은 순간, 켄은 떨어지듯 정신을 깨웠다.

 




-


“ 이봐, 켄! 괜찮은 거야? 어디 아파?”



 핫, 하고 퍼뜩 고개를 올린 켄이 눈을 조금 깜빡이자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는 다이스케가 보였다. 바로 앞에서 깜빡이는 그녀의 속눈썹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릴 것 같아 켄은 흠칫, 하며 몸을 뒤로 물렸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작게 대답하니 금방 흥미를 잃으며 멀어져가는 그녀를 붙잡을까, 하고 고민했지만 켄은 그녀의 뒤를 따라가는 것으로 대신했다. 아, 그래. 다이스케의 집에 놀러가는 중이었지. 다이스케가 속해있는 학교의 축구부 시합이 있다고 해서 보러왔다가, 자신이 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챈 그녀가 함께 뒷풀이를 가자던 같은 팀원들의 권유를 모두 거절하고 자신에게 달려왔었다. 누구보다도 소중하다고 말하는 것 같은 생각에 그녀의 저녁 초대를 기쁘게 받아들였지. 그래, 그렇게 함께 돌아가던 중이었다.


 앞서나가는 그녀의 높게 올려 묶은 머리칼이 걸을 때마다 하늘하늘 흐드러진다. 노을을 받아 붉게 빛나는 그녀의 머리칼을 보며, 살랑거리는 머리카락의 사이로 보이는 목덜미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상상을 해버린 것 같았다. 그 전에도 몇 번이나 한 것이 있는 그런 상상을. 상상 속에서 닿았던 그녀의 부드러운 밑 가슴의 느낌이 손끝에 남아있는 것 같아 켄은 손가락을 조금 부볐다.


 다이스케, 너를 원해. 뒷모습에 작게 중얼거린 켄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와 나란히 걸어가며 웃었다. 언젠가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르고 싶어. 아직, 아직은 아니야.


 이런 나를 네가 싫어하면 어떻게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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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리쿠
2015. 12. 25. 01:30








 딸랑딸랑, 하고 자동문에 달려있는 종이 작게 울었다. 며칠 안 남은 행사에 잔뜩 젖은 거리처럼 붉은 색의 리본을 달고 있는 종을 잠시 바라보다가, 쥬다이는 가게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둘둘 두른 목도리가 무색할 정도로 실내는 따듯하다. 향긋하게 풍겨오는 갓 구운 빵 내음을 맡으며 케이크가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충동적으로 들어온 빵 가게는 꽤나 인기가 있는 곳이었는지 한쪽 구석에 마련되어 있는 테이블엔 이미 연인들이 한 가득 있었다. 한데 섞인 재잘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가벼운 음악을 대충 흘리며 쥬다이는 조용히 케이크를 내려다보았다.

 

 새빨간 딸기가 장식 되어있는 케이크. 초콜릿색 롤 케이크에 새하얀 생크림을 얹어 눈 쌓인 나무 집을 연상케 하는 케이크. 작은 산타와 루돌프 장난감이 꽂혀있는 달콤한 초콜릿으로 코팅 된 케이크. 그 위에 투명한 녹색 빛의 설탕으로 쓰여 있는 Merry christmas, 라는 글자를 멍하게 내려다본다.

 

 내가, 왜 외출을 하기로 마음먹었더라. 그것도 오늘 같은 날. 이런 가게에.

 

 이렇게 여러 종류의 케이크를, 자신은 3년 전에도 본 적이 있다. 어떤 케이크가 맘에 드느냐고 살짝 들뜬 목소리로 물어보던 연인이 보여준 인터넷 사이트엔 한 눈에 보기에도 맛있어 보이는 케이크들이 잔뜩 있었다. 단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이런 행사는 무슨 일이 있어도 분위기를 내고야 마는 그의 성격을 알고 있었기에 쥬다이는 얌전히 그가 자신에게 들이미는 화면을 눈에 담았다. 스크롤을 대강대강 내리며 난 이런 것보다는 직접 가서 고르는 게 더 좋은데. 하고 중얼거리는 말을 들은 것인지 표정을 구기던 자신의 연인은, 며칠 후 늦은 밤에 츄리닝만 입은 자신을 이끌고 기어코 케이크 전문점으로 데려가는 것이었다.

 

 후즐근한 차림의 자신과는 다르게 일이 끝나고 바로 온 만죠메 녀석은 쫙 빼입은 정장 차림이었다. 누가 봐도 가격대가 꽤나 나갈 것 같은 가게 안 풍경에 쥬다이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여간 쓸데없는 것에 진지한 녀석이다. 생일날, 장난 식으로 직접 만든 케이크를 먹고 싶다고 했다가 집으로 배달 온 엄청난 양의 재료에 놀랐던 기억이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이런 장면을 생각하고 말을 했어야 하는 건데, 그러지 못한 자신이 잘못했다고 대충 넘기며 쥬다이는 작은 케이크들을 훑어보았다.

 

“ 찾으시는 케이크라도 있으세요?”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시선을 돌리면 급하게 음악 소리가 귓속으로 들어온다. 혼자 케이크를 내려다보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는 점원이 친절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또 상념에 빠져있었나. 눈을 꾸욱 감았다 뜬 쥬다이가 손가락을 들어 작은 케이크 하나를 가리켰다. 이걸로, 주세요. 쇼케이스 안에서 꺼내져 점원의 손길에 따라 아기자기하게 포장되는 케이크의 색은 옅은 갈색이었다. 그래. 전에도 똑같은 것을 골랐던 것 같다. 단 것을 좋아하지 않는 자신의 연인도 함께 먹을 수 있는 것을 찾다가. 그가 즐겨 마시던 커피와 비슷한 향이 나던 것을 골랐던 것 같다. 3년 동안 쳐다보지도 않던 케이크였는데, 마치 어제 먹은 것처럼 뇌 내에 맛이 생생하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뒤로 이어지는 따듯한 인사와 다르게 밖은 쌀쌀했다. 케이크 상자를 쥐고 있는 손이 단번에 차가워졌다. 괜히 샀나, 하는 후회감과 함께 내려다본 케이크 박스는 아무런 잘못도 없이 단지 들려있을 뿐이었다. 어서 집에 들어가야지, 하고 한 숨 내쉰 눈앞이 하이얗다. 목도리 안으로 고개를 조금 더 집어넣으며 쥬다이는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순식간에 지나간 전자제품 매장 유리벽 안의 커다란 텔레비전 안에서 오늘 밤에는 폭설이 온다는 뉴스를 전하는 예쁜 누나의 모습이 보였다. 잠깐 지나간 헤드라인에 익숙한 이름이 보인 것도 같았지만 쥬다이는 그것에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괴로운 기억을 떠올려봤자 자신에게 득이 되는 것은 없다. 지금까지 괴로워하고, 후회하고, 힘들어 하며 쥬다이는 그것에 무덤덤하게 대처하는 법을 배웠다. 자신에게는 죄가 너무나도 많았기에.

 

 실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뉴스였다. 어서 집에 들어가서 환기를 위해 열어둔 창문을 닫아둬야겠다. 오늘은 추울지도 모르니 난로를 더 때고, 저녁은 따듯한 스프로 할까. 곧 냉장고가 텅 비어있던 것이 생각났지만, 1인분정도는 만들 수 있었으므로 상관없었다. 혼자 살면 냉장고가 가득 차있어 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몇 번이나 음식을 버리면서 깨달았다. 생각보다 음식 만들기는 번거롭다는 것도. 생각보다 혼자 식탁에 앉아있기는 쓸쓸하다는 것도.

 

 


“ 다녀왔습니다.”

 


 어서와, 하고 옆에 있던 유벨이 자연스럽게 대답해주는 것을 들으며 쥬다이는 신고 있던 신발을 벗었다. 창문을 열어 두었던 집 안은 쌀쌀했다. 밖과 거의 공기의 온도차가 없는 것을 느끼며 쥬다이는 종종걸음으로 창문을 닫고 난방을 켰다. 아직 따듯해지려면 한참은 걸릴 것이기 때문에 쥬다이는 목도리만 풀고는 옷깃을 조금 더 여몄다. 어두운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익숙하다고 생각했지만, 새삼 밖에 나갔다 오니 조금 더 추웠다. 텅 빈 방에서 차가운 몸을 끌어안으며 닫힌 문을 바라보는 것은 익숙했는데. 익숙했어야만 했는데.

 

 너는 신경 쓰지 말고 있어라. 아직까지도 울리는 핸드폰을 억세게 쥐고는 급하게 나가는 연인의 등은 그렇게도 강인해 보이더랬다.

 

 닫히는 문소리가 그날따라 너무나도 무서워 쥬다이는 어깨를 떨었다. 따라오는 뉴스 앵커의 말소리가 침착해 더욱 더 소름이 끼쳤다. 자신은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두려운데. 아직까지도 덜덜 떨리는 손가락의 느낌이 선명하게 전해져 오는데. 도리어 패닉에 빠진 자신을 진정시키며, 이런 일은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침착하게 대응하는 만죠메의 표정은 덤덤했다. 지금까지 쌓아오던 일이 모조리 허사로 돌아간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만죠메가 자신과 키스를 하는 사진이 언론에 퍼졌다. 뉴스에 대문짝만하게 뜬 사진을 보며 그 때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생각날 수 있을 정도로 며칠 지나지 않은 일이었다. 만죠메가 어떤 달콤한 목소리로 자신을 불렀는지, 따듯한 손으로 어떻게 자신을 어루만졌는지 아직까지도 생생했음에도 그것을 기분 좋게 떠올릴 수 없었다. 누가 봐도 그 사진은 자신과 만죠메였다. 당연하게도 아직까지 일본사회는 동성애자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의 핸드폰에 수없이 쌓인 전화 중엔 분명 그의 스폰서를 끊겠다는 종류의 것도 있을 것이다. 뉴스에 지나가는 ‘충격’ 이라는 글자가 눈에 뚜렷하게 박혀들어왔다.

 

 프로로 데뷔하지 않은 자신과는 다르게 만죠메는 차근차근 프로의 길을 밟았다. 형님들의 힘을 빌리지 않고 당당하게 만죠메 가문에게 인정받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던 만죠메는, 어제 자신에게 기뻐 보이는 목소리로 다음 날이면 정식으로 만죠메 그룹이 자신의 스폰사로 들어오게 된다고 말했다. 조금 취기가 섞여있는 목소리로, 정말 행복한 표정을 하고, 자신에게 그렇게 말했다. 자신은 더 이상 형제들의 열등생이 아니라고. 형님들께 인정받았다고. 늦게 들어온 이유가 단순한 크리스마스 파티가 아닌 형님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던 것이었다. 웃으며 안겨오는 자신의 연인에게 수 없이 키스를 해주며 그의 주머니에서 떨리는 핸드폰의 배터리를 뺀 것은 자신이었던가, 아니면 만죠메였던가. 그것이 중요한 전화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한 채로. 자신들은 얼마나 행복하게 밤을 보냈던가. 얼마나 달콤하고 따듯한 크리스마스를 보냈던가.

 

 그것이 마지막으로 함께하는 밤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한 채로.

 


“ …윽, 으…….”


 

 순간적으로 올라오는 구역질에 쥬다이는 벽을 타고 주르르 미끄러져 내려왔다. 마른 등의 척추에 오돌토돌하게 닿아오는 벽이 아팠지만 아무래도 괜찮았다. 그 날에도 만죠메가 떠난 닫힌 문과, 들려오는 여자 앵커의 목소리를 들으며 헛구역질을 했다. 그대로 화장실에 달려가서 어젯밤에 먹은, 밤새 소화되어 거의 남지 않은 케이크와 위액들을 꾸역꾸역 게워내고 나서야 자신은 숨을 들이쉴 수 있었다. 산소가 모자라 시야가 두어번 뒤바뀌고, 흔들리는 몸을 몇 번이나 다잡고 화장실의 밖으로 나왔을 때에도 만죠메의 방에는 변화가 없어서 얼마나 다리가 떨렸던가. 지금 만죠메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무슨 생각을 하며 전화를 받고, 무슨 생각을 하며 그의 얘기를 해대는 언론의 목소리를 듣고 있을까. 지금까지 그가 쌓아온 일은, 앞으로의 그의 길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것을 모두 감내하고도 그는 자신에게 그렇게 담담하게 굴 수 있었다는 것인가.

 

 자신은, 그가 돌아오면 어떤 표정으로 그를 맞이해야 하는 것인가.

 만죠메는, 어떤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을까.

 

 자신은, 그의 옆에 있는 것이 맞는 것인가.

 

 그렇게 자신은 그 자리를 도망쳤던 것 같다. 만죠메가 돌아오는 것을 보지도 않은 채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렇게. 만죠메를 홀로 남겨두고.

 

 외국에서 자리를 잡는 것은 쉬웠다. 원래 여행을 다니고 있기도 했으니까. 얼굴이 알려져있던 그와는 다르게 자신은 매니악한 몇몇을 제외한 사람들은 모르는 무명 듀얼리스트에 불과했으니까. 아무리 세상을 몇 번이나 구했어도, 대중들은 자신보다는 프로로 활동하는 만죠메를 더 기억하니까. 사진 속의 자신은 만죠메와 키스하던 모브 남자A일 뿐이니까. 그의 앞길을 막아버리는 그런 지나가는 남자였을 뿐이니까. 그렇게 자신은 모든 것을 만죠메에게 맡기고, 모두의 기억 속에서 자신이 사라지기를, 자신의 기억조차도 시간 속에 묻혀버리기를 기다렸다. 겨우 3년이라는 시간으로는 함께 한 잠자리의 온기조차 지워버릴 수 없음에도 자신은 그저 잊히기를 차가운 이불 안에서 바르작대며 기다렸다.


 그렇게 도망친 자신과는 다르게 만죠메는 몇 개월이 지나자 다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자신이 집 밖에조차 나가지 못할 때. 텔레비전조차 켜지 못할 때. 닫힌 문조차 두려워하고 있을 때, 만죠메는 그 지옥 밑바닥에서 다시 불사조처럼 되살아났다. 예전, 그가 고등학생 때 했던 것처럼. 귀를 닫고 있던 대중문화의 소식에 조금씩 다시 귀를 기울였을 때 들려온 소식은 만죠메의 우승 소식이었다. 그는 자신이 없이도 열심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1위 트로피를 손에 쥐고 자신만만하게 웃고 있는 그의 옆에는 자신의 존재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쥬다이는 안심할 수 있었다. 안심한 구실을 찾을 수 있었다. 방구석에 홀로 제자리에 있던 자신과 앞으로 나아가는 만죠메. 예전, 우리가 고등학생이었을 때처럼.

 

 다시금 몰려오는 죄책감에 괴로워하며 쥬다이는 떨리는 손으로 리모컨을 집었다. 먼지가 뽀얗게 앉아있는 리모컨을 눌러 텔레비전을 켜고는 뉴스에 채널을 맞춘다. 1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아마 메인 뉴스는 끝났겠지만, 그래도 뉴스가 하는 곳은 있으리라. 자신이 최근에 언제 만죠메의 기사를 찾았더라. 만죠메가 만죠메 그룹으로 들어갔다는 얘기까지였나. 세계적인 행사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는 얘기까지였나. 아니면, 그것으로 인해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큰 회사와 혼담이 오간다는 얘기까지였나. 기억을 더듬으며 시작하는 뉴스의 헤드라인을 바라보는 쥬다이에게 보인 것은,

 

 만죠메의 은퇴 선언이었다. 아니, 은퇴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미 얘기가 꽤나 진행된 것인지 하나도 놀라워 보이지 않는 표정으로 만죠메 프로의 은퇴에 대한 말을 전하는 앵커들을 바라보며 쥬다이는 거의 기어가듯 텔레비전 앞으로 향했다. 뉴스 화면에 보이는 드로를 하는 만죠메, 손을 높이 들며 썬더콜을 하는 만죠메, 우승 트로피를 받으며 자신만만하게 웃는 만죠메는 분명 자신이 아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아는 만죠메는 그의 꿈을 이렇게나 쉽게 내려놓을 사람이 아니다. 어딘가 잘못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지만 뉴스에서 들려오는 오늘 아침 매니저에게 전송되었다던 은퇴에 대한 편지 내용을 쥬다이는 멍하게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고마웠다는 내용, 자신들을 지지해주는 형님들에게 미안하다는 내용, 동료 듀얼리스트들에 대한 내용.

 

 뇌까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문자의 흐름을 들으며 쥬다이는 급하게 휴대폰을 꺼내다가, 그대로 떨어뜨렸다. 그렇게 도망친 자신에게 어떤 권리가 있어서 이유를 묻겠는가. 자신에게는 자신이 없는 연인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조차 주제넘은 짓인데.

 


“ ……아하, 하, 하하….”



 도망쳤던 3년 전의 자신도, 그동안 수없이 오던 연인의 연락을 무시해버린 자신도, 그가 무사히 지낸다는 소식을 듣고 죄책감을 덜어버리는 자신도, 그의 은퇴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에게 연락을 하려했던 자신도 너무나 혐오스러웠지만, 자신이 옆에 있지 않아 행복해지지 못한 연인의 소식에 안도해버리는 지금의 자신이 제일 역겨워 쥬다이는 차라리 웃었다. 웃지 않고서는 자신에 대한 혐오감을 지울 수 없을 것 같았다.

 

――――쾅쾅쾅.

 

 그렇게 피식피식 웃고 있던 쥬다이는 들려오는 소리에 몸을 움찔 떨었다. 현관문 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아무도 올만한 사람이 없었기에 초인종마저 달아놓지 않은 집이었다. 가끔 집으로 찾아오는 잡상인이 오기엔 자정이 넘긴 시간은 너무나도 늦었다. 쥬다이는 잠시 웃는 것을 멈추고 멍한 눈으로 현관문을 바라보았다. 잠시 시간차를 두고, 쾅쾅쾅, 하고 다시 문이 울었다. 올, 사람이 있을 리가 없는데. 쥬다이는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한 사람의 얼굴을 애써 지우며 쥬다이는 주먹을 꽈악 쥐었다. 올 사람이 있을 리가 없는데. 없음을 알고 있는데.

 

 쥬다이는 침을 조금 꿀꺽, 하고 삼키며 문을 향해 다가갔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조금 심호흡을 했지만 도저히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고, 그럴 리가 없지 않느냐고 아무리 자신을 타일러도 제멋대로 손끝이 떨렸다. 누구세요, 라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 만약에 아니라면, 조금이라도 실망을 늦추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쥬다이는 문의 손잡이를 단단히 잡았다. 차가운 쇠의 기운에 손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오늘은 밖이 추웠다. 해가 진지 꽤나 시간이 지났으므로 아마 밖은 더 추워졌을 것이다. 오늘은 눈이 온다고 했다. 아마 이미 내리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밖에 쌓이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추운 날에, 눈까지 펑펑 오는 날에, 이렇게 늦은 시간에. 조금씩 열린 문의 너머에는 네가 서있었다.

 


“ …만죠메.”

 


 쥐어짜듯 내뱉은 쥬다이의 목소리에 만죠메는 어깨를 조금 떨었다. 우산조차 쓰지 않은 만죠메의 머리위에는, 어깨 위에는 눈이 소복소복 쌓여있었다. 뼈까지 서늘해지는 추운 날씨에 맞지 않는 차림의 만죠메는 아무래도 하얀 피부가 더 창백하게 질려있었다. 살까지 빠진 것 같은 야윈 얼굴을 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만죠메를 보며 쥬다이는 차마 들어오라는 말 한마디 건내지 못했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연인의 모습이었다. 아니, 과연 그가 아직도 자신을 연인으로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 …나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말라붙은 입술이 찢어지듯 열렸다. 잔뜩 쉬어버린 목소리였다. 텔레비전 속에서 보이는 자신만만하고 당당한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텔레비전에서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사실은 그와 함께 살면서 알고 있었는데. 강한 척 하는 그를 가장 가까이서 보고 있었는데, 자신은 자신을 위해서 그는 괜찮을 것이라고 애써 모르는 척 하고 있었다. 나에게 중요한 건 형님들의 인정도, 대중들의 시선도, 사회적 위치도 아니야. 네가 나를 위해 사라져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모든 걸 버린 이런 나라도.

 


“ …….”


“ 이런, 나라도. …받아줄래?”

 


 바들바들 떠는 입술을 짓이기며 흘러나온 말이 간절해 애달프다. 그를 놓아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는데. 언제나 자신의 예상을 빗나가는 행동만을 하는 그에게 놀라기도 지쳤다. 그래, 만죠메는 이런 남자였다. 자신은 이런 그를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만죠메. 쏟아지듯 끌어안은 그의 몸은 차가웠다. 그가 연락까지 받지 않던 자신의 거처를 찾는 데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을지 모른다. 그도 자신처럼, 몇 번이나 상대방을 위해 망설였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만죠메는 자신을 찾아내고, 그동안 휘어잡은 모든 것들까지 버리고 달려왔다. 아니, 버리기 위해 잡았을런지도 모른다. 이 순간을 위해서.

 


“ 미안해…. 내가 미안해…….”


“ ……바보자식.”

 


 복받치는 감정에 쥬다이는 만죠메를 조금 더 강하게 끌어안았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가락이 놓칠세랴 만죠메의 허리를 붙들었다. 어디에도 도망가지 않음에도. 잔뜩 젖어버린 시야를 몇 번이나 끔벅이며 쥬다이는 그의 이름을 불렀다. 질책하는 목소리마저 달콤해 눈물이 끊이지 않았다. 천천히 쥬다이의 어깨에 기대오는 만죠메의 고개도 이미 축축했다. 좋아해, 좋아해. 그동안 막혀있던 것에 불만을 표출하듯 흘러넘치는 감정에 마음 안쪽이 금방이라도 터질듯이 아팠다.

 

 추운 날씨는 아무래도 상관없어질 정도로, 너의 앞길을 막는다는 사실조차도 아무래도 좋아질 정도로, 그동안 떨어져있던 시간조차 괜찮을 정도로, 엇나갔던 감정도, 표현도, 그동안의 괴로움도 모두 잊을 수 있을 정도로. 네가 좋았다.

 

 ‘너’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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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왕 크리스마스 합작에 십만으로 참여했습니다.

원본은http://blog.naver.com/oats_flower/220577232343 이쪽에서 감상해주세요 


어째 크리스마스랑 점점 관련이 없어진 기분..

Posted by 하리쿠
2015. 12. 3. 05:29

- 왜 매번 내용이 똑같지..w






 녀석의 집착에는 당해낼 수 없다.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야마토는 생각했다. 어머니를 닮아 하얀 피부에 유난히 눈에 띄게 남아있는 붉은 자국들이 어지럽다. 내일은 또 어떤 옷으로 자국들을 숨겨야 할지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피곤하다. 그나마 지금이 겨울인 것을 위안으로 삼으며 야마토는 수건으로 대충 물기를 제거하고는 욕실 밖으로 나왔다. 현관에서부터 자신과 녀석의 옷들이 허물처럼 이어져있었다. 하여간, 자신이 씻는 사이에 치우라고 말을 해도 들어먹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야마토는 짧게 한숨을 쉬며 그것들을 따라가며 주워 모았다.


 바지 사이에서 제대로 빠져나오지도 못한 속옷을 빼내면 자신은 어느새 침대 옆에 있었다. 정신없이 타오른 시간이 지나고 나자 급격하게 모든 것이 귀찮아지는 것이었다. 제대로 정리를 하고 시작할 것을, 하고 후회 해봐도 현관에서부터 진심으로 덤벼드는 녀석을 막아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물론, 정말 진심으로 밀어냈다면 이 상황까지는 오지 않았겠지만, 그 때엔 자신에게도 그 정도의 여유는 없었다.



비켜, 아버지 오시기 전에 치워야해.”



 잔뜩 구겨지고 젖어버린 시트 또한 빨아야했기에 야마토는 지금까지 주워온 옷가지들을 침대 구석에 쌓으며 넌지시 말했다. 지저분한 시트 위가 신경 쓰이지도 않는지 알몸으로 뒹굴거리고 있던 타이치 녀석이 자신을 보며 낄낄 웃었다. 나중에 해, 나중에 해. 노래하는 것처럼 흥얼거리던 녀석이 팔을 뻗어 자신의 허리를 끌어안는다. 잔뜩 풀어져있는 표정과는 다르게 팔뚝에 가해진 힘이 상당하다.



비키라니까.”



 팔뚝을 세게 꼬집으며 작게 짜증을 내면 바로 울상을 지으며 떨어져나가는 꼴이 천연덕스럽다. 별로 아프지도 않은 주제에 멍이라도 들면 어떻게 할 거냐고 징징거리는 목소리를 뒤로하고 야마토는 서랍에서 속옷을 꺼냈다. 자신의 온 몸에 이빨 자국을 만들어 놓은 녀석이 할 말은 아니다. 작게 째려보면 금세 장난 섞인 미소를 짓는 녀석을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자신이 개어놓은 속옷을 풀어 입고 있으면 자신을 바라보는 녀석의 시선이 날카로워진다. 피부에 달라붙어오는 속옷이 타고 올라오는 다리선을 눈으로 훑어 내리는 녀석은 명백하게 시선만으로 자신을 범하고 있었다. 얇게 뻗은 하얀 종아리를 지나 매끈한 허벅지를 걸쳐 단단한 엉덩이에 다다를 때까지. 마치 스트립쇼라도 하고 있는 기분이 들 정도로 노골적으로 성욕을 가득 담아 자신을 보고 있는 녀석이 눈꼬리를 조금 휘어 웃었다.



야마토.”



 목소리마저 끈적한 아저씨 같기는. 작게 혀를 차며 야마토는 순순히 그에게 다가가 허리를 내렸다. 입을 벌림과 동시에 급하게 혀부터 얽어오는 녀석의 입 안이 뜨겁다. 무엇에 또 스위치가 켜진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방금 갈아입은 속옷을 또 더럽힐 수는 없었기에 그를 진정시키려 손을 얹은 어깨가 생각보다 단단하다. 동계 훈련에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가. 키스에 집중하고 있는 녀석이 눈치 채지 못하게 살짝 눈을 떠 바라본 녀석의 등이 조금 더 말랐다. 살짝 굽은 어깨와 튀어나온 어깨뼈의 안쪽둘레. 확연히 눈에 띄는 척추뼈의 선과 도톰하게 힘이 들어가 있는 복근까지. 속옷을 입는 자신을 바라보던 그의 기분이 이런 것이었을까.


 아, 조금 꼴려버렸다. 다시금 뜨거워지는 자신의 하반신을 느끼며 야마토는 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감쌌다. 힘줄이 선 아래팔뚝까지 붉게 울혈이 퍼져있는 자신과는 다르게 그의 등은 깔끔하다. 자신은 옷조차 남들 앞에서 제대로 벗지 못하게 만들어놓고는 혼자 웃통을 까뒤집고 운동장을 뛰어다니느라 까맣게 탔던 여름보다는 하얗게 변해있는 피부를 보자, 어쩐지 조금 심술이 났다.



,”



 맞대고 있던 입술에서 짧은 신음이 흘렀다. 키스에 집중하다 몸을 움찔 떨며 반응해오는 그를 보며 작게 웃자 바로 자신의 뒷통수를 잡아오는 손길이 거칠다. 복수라도 하고 싶나보지? 공격적으로 바뀐 키스에 응해주며 야마토는 방금 전 자신이 세게 긁어내린 등의 피부를 더듬었다. 손가락 끝이 살짝 축축해져오는 것을 보면 피라도 흐르고 있는 것 같아 만족스럽다. 빨래거리가 하나 더 늘어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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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리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