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6. 4. 02:28

- 카스카+시즈오 굳이 커플을 넣자면 카스시즈




 

 

" 어엉-? 말을 하라고, 이 자식아!"

 

 

 헤이와지마 카스카는, 자신의 앞에서 입을 쩍 벌리고 더러운 냄새를 풍기고 있는 남자를 보면서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러한 카스카에게 남자는 더욱 더 화를 내며 더러운 말을 쏟아내어서, 침이 튈 것 같아 카스카는 몸을 조금 뒤쪽으로 빼었다. 등에 닿은 벽의 차가운 기운이 교복 셔츠를 타고 스며들어왔다.

 

 카스카는 사실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무명시절도 거의 없다시피 했고, 반반한 얼굴 탓에 모델로써도 금방 인기를 몰았고, 몇 달 전에 개봉한 영화 덕분에 엄청난 상승세를 보였기 때문에 적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예의가 없는 편도 아니라 촬영 내내 인사도 잘 하고 다니고 했지만 워낙 조용한 성격 탓에 ‘기분 나쁘다’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었다. 세간의 평가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지만, 이렇게 대놓고 자신을 해코지 하려 드는 것은 곤란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고민하고 있는데 남자의 뒤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 형.”

 

 

 하고 부르자마자, 자신의 앞에서 본격적으로 협박을 하고 있던 남자의 얼굴에 자신의 형, 헤이와지마 시즈오의 주먹이 꽂아졌다. 내-- 동생에게 무슨 짓이야--! 하는 찢어질 듯 한 큰 소리는 뒤따라오듯 들려왔다. 순식간에 얼굴이 구겨지며 저 멀리로 날아가 버린 남자에 깜짝 놀라며 그 남자의 패거리들이 시즈오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숫자로 이길 수 있을 거라 판단한 것인지 남자들의 얼굴에는 별다른 초조함이 보이지 않아서, 형의 평판을 모르는 사람들이구나, 하고 카스카는 생각했다. 하! 하며 시즈오는 얼굴에 비웃음을 띄우며 손가락 관절에서 뚜둑, 하는 소리를 내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카스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였다. 너 예쁘게 생겼구나, 하고 다가온 아저씨들이 자신을 멋대로 끌고 가려고 했을 때, 저 멀리서 자신의 형이 들고 있던 목발을 집어 던지며 다가와 붕대를 감은 다리를 이끌고 자신을 데려가려는 아저씨들을 때려눕혔다. 실신한 아저씨들의 사이로 쿵쿵거리며 다가와 자신의 손을 잡고 그 곳을 빠져나갔던 형은 그대로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갔었다. 덕분에 다리뿐만 아니라 팔에까지 깁스를 해야 했지만, 형은 병원 침대에 뚱하게 누워있으면서도 자신에게 괜찮냐, 하고 물었었다.

 

 생각을 마치고 나니 이미 상황은 종료되어 있었다. 형이 별다른 무기도 들지 않은 남자들에게 질 리가 없었기 때문에 카스카는 애초에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고 있었다. 떡이 되어 누워있는 남자들 사이로 상처 하나 없이 서있던 형이 천천히 다가와 언제 화를 내던 사람이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멋쩍게 웃었다.

 

 

“ 괜찮냐, 카스카.”

 

 

 시즈오의 물음에 카스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냐, 하고 시즈오는 카스카의 손목을 잡고 그 곳을 빠져나갔다. 형은 언제나 강했고, 자신이 어떤 일을 당할 때마다 제일 먼저 찾아오는 사람이었다. 그런 형의 뒷모습은 단지 자신보다 큰 키 때문이 아니더라도 크고 반짝반짝거렸다. 고마워, 형. 조용히 중얼거리자 형은 뒤를 돌아보며 기분 좋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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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라라라 2기 확정 축하 합작에 헤이와지마 형제로 참여했습니다

합작은 이쪽- iro030.wix.com/drrr 에서 감상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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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리쿠
2014. 6. 4. 02:19

- 케스 in 듀라쁘띠 온리에 내고 싶었지만 펑크가 난 원고를 앞부분만 잘라왔습니다

 

 

 

 

 

 

 

 

 헤이와지마 시즈오의 일터는 골목 구석, 조용한 곳에 있었다. 시즈오(静雄)라는 그의 이름에 걸맞는 곳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자체도 시끄러운 곳은 싫어했기 때문에 이곳에서 일하는 것을 마음에 들어 하는 듯 했다. 무엇보다 상사가 자신을 아는 사람이다, 라는 것이 제일 큰 이유겠지만 말이다.

 

 

 

 오후 7시 즈음 천천히 출근을 하면 언제나 먼저 나와 글라스를 닦고 있던 자신의 상사, 다나카 톰이 보였다. 처음 그가 자신에게 출근해도 좋다고 말해주었을 때엔 누구보다 먼저 나와 열심히 하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어디에서 일해야 하나 막막한 상태인 저를 받아준 상대이기도 했고, 그 이전에 자신이 중학교를 다니던 때 동경하고 있던 선배이자 말썽쟁이였던 자신을 다룰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몇 시에 나오던 먼저 나와 있었다. 오픈보다 1시간 이른 7시에 나와도, 더 서둘러 6시에 나와도, 심지어 근처에 나올 일이 있어 잠깐 들렀을 때에 조차 그는 안에 있었다. 이쯤 되면 먼저 나오겠다는 생각이 헛된 것임을 알 수 있었기에 시즈오는 조용히 포기했다. 일을 시작한지 한 달쯤 되었을 때 마감작업을 하며 넌지시 말하니 톰은 껄껄 웃으면서 그랬냐, 하고 말했다. 사장인 내가 제일 먼저 나오는 게 당연하잖아. 덧붙이는 말에 시즈오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것은 반년도 더 된 이야기였다.

 

 시즈오가 출근을 하고 앞에 나와 바닥을 닦는다던지 테이블을 정리하는 등의 오픈준비를 하고 있으면 30분쯤 지나 바로나가 들어온다. 이 작은 바의 유일한 여자 직원인 바로나는 들어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벌써 단골까지 만들었다. 앳된 얼굴에 새하얀 피부, 들어올 곳은 들어가고 나올 곳은 나온 좋은 몸매에 잘 어울리는 예쁜 금발까지. 남자들이 좋아할만한 요소는 충분히 가지고 있으니 당연했다.

 

 

“ 출근, 완료입니다.”

 

 

 …비록 말을 하는 것이 서투르긴 했어도 대부분 귀엽다고 넘어가는 듯 했다.

 

 여기까지가 시즈오의 평범한 오픈 전 루트였다. 오늘은 제발 조용히 넘어가기를 속으로 생각하며 시즈오는 가게 안쪽으로 들어갔다. 어짜피 항상 바텐더 복장을 하고 다니기 때문에 딱히 옷을 갈아입는다던가 하는 짓은 하지 않아도 되지만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울을 보며 머리손질 같은 간단한 것은 매일 하고 있었다. 병아리색으로 염색된 안쪽에서 자라고 있는 검은 머리를 보며 슬슬 뿌리염색을 할 때가 되었나, 하고 생각하고 있을 무렵

 

 

“ 시즈오-.”

 

 

 하고 상사인 톰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자신을 부르기 전 어렴풋이 문에 매달려있던 작은 종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에 누군가 온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톰이 자신을 불러낼 상대는 딱 한 명밖에 없었다. 귀찮아 죽겠다고 생각하며 시즈오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상대는 자신이 귀찮아 할만한 인물이 맞았다. 미성년자 출입금지라고 문 앞에 분명 쓰여있것만 그것을 싸그리 무시하고 교복까지 예쁘게 챙겨 입고 온, 며칠 전부터 자신을 집요하게 쫓아다니며 괴롭히는 건방진 고등학생이었다.

 

 

“ 시즈~.”

 

 

 말하는 싸가지조차 건방지다. 시즈오는 누가 봐도 ‘귀찮다’라고 느낄법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었다. 여긴 미성년자 출입 금지라고. 아직 오픈 전이잖아? 올 때마다 같은 레파토리였지만 시즈오는 항상 소년을 볼 때마다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물론, 소년도 마찬가지였지만.

 

 

 소년의 이름은 오리하라 이자야. 자신의 말로는 학교에서 꽤나 유명하다고 했다. 시즈오 자신도 학교에 다닐 때엔 유명세를 날렸기에 아아, 그러냐. 하고 대충 답했다. 자신을 알고 있었는지 거리에서 뜬금없이 인사를 해온 것이 첫 만남이었다. 그런 식으로 시비 거는 사람도 많았지만, 시즈오는 원래 사람 얼굴을 잘 외우지 못했다. 그렇기에 누구지, 싶어서 한참을 고민하는데 그 동안 잘 부탁한다느니 생각보다 몸집이 작다느니 시즈라고 불러도 되냐느니 하는 실례되는 소리만 잔뜩 늘어놓다가, ‘시즈’라는 말에 욱한 시즈오가 노려보자 쌩하고 도망가고 말았다. 한 마디만 더 했으면 옆에 있는 표지판이라도 집어 던지려고 했것만 이따가 봐, 라는 이상한 소리만 하고 이자야는 뒤도 안돌아보고 가버리는 바람에 아쉽게도 실행하지 못했다.

 

 그것 때문에 기분이 안 좋은 상태에서 출근을 했을 때, 시즈오를 맞아준 것은 바로 그 소년이었다. 자신의 사장인 톰 씨와 얘기를 하고 있던 모양인지 그의 앞엔 작은 글라스가 있었다.

 

 

“ 오오, 시즈오. 네 손님이다.”

 

 

 톰 씨는 그렇게 말했다. -나중에 들은 것이지만 이자야는 자연스럽게 가게 안에 들어와서 시즈를 보러 왔다. 하며 아는 사람인양 굴었다고 했다.- 톰 씨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자야가 싱글싱글 웃으며 이름을 부르며 인사 해와서, 밖에 걸려있던 간판을 던질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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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리쿠
2013. 6. 7. 01:19

 이자야는 다른 사람과 있을 때에는 잠을 청하지 않는다. 직업 관계상 적도 많고, 애초에 남에게 빈틈을 보이지 않으려는 성격 탓이 컸다. 잠귀도 밝기 때문에 옆에서 누군가가 움직이고 있으면 자다가도 금방 깨버리곤 했다. 그래서, 오늘도 이자야가 잠에서 깬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상체를 일으켜 시계를 확인해 보니 이제 슬슬 해가 뜰 시간이었다. 자정을 넘기고도 한참 뒤에야 잠에 들었으니 제대로 잔 시간은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밖에 되지 않았다. 베게에 눌린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이자야는 자신을 깨워놓은 장본인을 바라보았다. 남은 자신의 뒤척임 때문에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잠에서 깼는데 정작 본인은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다. 정말 무신경한 남자였다. 잠 좀 자라고 매일같이 잔소리를 하는 주제에 막상 그 잠을 깨우는 것이 자신이라는 것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오늘은 꼭 그에게 얌전히 자라고 한마디 해야겠다고 생각하다가도 우연히 들어온 그의 얼굴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인상을 쓰고 폭력으로 먹고 살고 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닌 남자인 주제에 그의 자는 얼굴은 누구보다 평온했다. 밋밋한 미간과 졸음을 불러일으키는 닫힌 눈꺼풀은 고등학교 때부터 자신이 좋아하던 것 중 하나였다. 저 얼굴에 항상 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이자야는 오늘도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기로 했다. 잠을 깨운 것에 대한 보답은 저 얼굴이면 충분했다.

 

 항상 이렇게 잠에서 깸에도 불구하고 굳이 그와 한 침대를 고집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자신은 일 관계상 툭하면 외박을 하지만, 그에게는 항상 집에서 잠을 자라고 말을 하는 이유 또한 이것이었다. 잠을 자는 동안에는 누구나 긴장이 풀리기 마련이었다. 이케부쿠로 최강이라고 이름 붙여진 남자의 누구보다 평화로운 얼굴을 자신만이 볼 수 있다는 생각만 해도 온 몸이 짜릿짜릿해져 오는 것이었다.

 

 이자야는 천천히 손을 내려 잠들어있는 그의 허리에 손을 대었다. 겉보기엔 그다지 근육이 있어 보이지 않지만 조금만 힘을 주어 만지면 금방 단단한 것이 만져진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가 끌어안으면 체격 차이상 안겨버리는 자신이 매일같이 기대어 자는 곳이었다. 이자야의 허리가 천천히 숙여지다 자신이 손을 얻고 있는 허리 주위에 머물고는 곧 다시 펴졌다.

 

 

“ 잘 자, 시즈.”

 

 

 침대 위의 남자는 아직도 잠에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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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리쿠
2013. 1. 18. 23:35

 하암. 육비는 안쪽에서부터 올라오는 하품을 간신히 속으로 삼켰다. 눈을 굴려 자신의 앞을 가리고 있는 사람의 뒤를 바라보아도 그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는 평범한 표정을 하고있는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는 지루한 풍경만이 보일 뿐이었다. 카페숍같은 곳에 들어가 사람들이 무슨 대화를 하는지, 아니면 유리 밖의 사람들이 어떻게 걷는지, 전화를 무슨 표정으로 하는지, 같이 있는 사람과의 분위기는 어떤지 따위를 구경하는 것이 차라리 덜 심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것이 자신의 취미인 것은 아니었지만. 육비가 이렇게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유는 자신의 앞에 서있는 자신의 연인, 츠키시마 때문이었다. 자신보다 키가 훨씬 크기에 고개를 숙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앞의 시야를 완전히 가리고 있었다. 시선을 조금 밑으로 내리면 앞으로 뻗어져 있는 자신의 손과, 그것의 주위를 헤메고 있는 츠키시마의 손이 있었다. 육비는 몇 번째인지 세기조차 포기한 한숨을 내쉬었고, 그와 동시에 츠키시마의 어깨가 움찔, 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오늘은 데이트를 하는 날이었다. 육비는 보통 그렇게 칭했지만 츠키는 그것조차 부끄러운 모양인지 입 안에서 웅얼거리곤 했다. 아무튼, 데이트. 평소와 다름없이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하는 츠키를 배려한 육비가 몸소 츠키시마 역까지 온 날이었다. 열차 시간 계산을 잘못한 바람에 평소보다 20분이나 일찍 도착한 육비가 자신의 실수가 못마땅한 듯이 혀를 차며 밖으로 나왔을 때에는, 언제부터 나와있었는지 모를 츠키시마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도 빨리 나왔나보네. 생각을 마치고 육비는 언제나처럼 츠키시마에게 인사를 건내었고, 또한 언제나처럼 자신과 눈도 마주치지 못하며 쑥쓰럽게 그것을 답하는 츠키시마의 대답을 기다렸것만, 그것만큼은 평소와 같지 않았다. 츠키시마가 자신에게 인사를 건내는 대신 부탁 하나를 먼저 해왔던 것이다. 엄청난 것을 각오한 비장한 표정으로 두 손까지 꽉 쥔 츠키시마가 조금의-약 2분- 뜸을 들인 후 입을 열었다.

 

" 오늘은 제가 먼저 손을 잡아보고 싶어요, 육비씨!"

 

 츠키시마로써는 엄청난 제안이었다. 델릭가 또 이상한 말을 했나보군, 하고 가볍게 넘긴 육비가 그것을 허락한 기점에서, -육비는 시선을 내려 시계를 보았다.- …정확히 48분이 지나가고 있었다. 지금까지 기다린 육비의 인내심도 대단한 것이었지만, 지금까지 손 하나 못잡고 쩔쩔 매는 츠키시마 또한 대단했다.

 

" 조금만, 조, 조금만 더…!"

 

 자신이 한숨을 쉴 때마다 조그마하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내는 것이 너무나 츠키시마 다웠기에 귀엽다고는 생각했지만, 지루한 것은 지루한 것이었다. 사실, 그 중얼거림을 듣기 위해 일부러 크게 한숨을 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잡아 보라고 내밀고 있는 손에 고정되어 집중하고 있는 눈이 참 보기 좋다고 생각하며 육비는 시선을 자신의 손쪽으로 떨구었다. 이미 새빨갛게 달아오른 귓볼같이 츠키시마의 떨리는 손끝 또한 달아올라 있었다. 평소 자신과 만날 때에 내미는 손은 부끄러워 하면서도 잘도 잡더만 이렇게 자신이 밝히고 잡는 것은 평소보다 훨씬 더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대체 무슨말을 듣고 와서 이런 바람이 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러한 시도도 나쁘지는 않다고 육비는 생각했다. 언제나 그와 자신의 관계는 자신이 이끌고 츠키시마가 따라오는 것이 대부분 이었기 때문이었다. 부창부수(夫唱婦受)를 그대로 실현한듯이. 그래서 흔쾌히 허락했던 것인데 이래서는 답이 없다. 턱없이 진지해 보이는 츠키시마의 표정은 마치 세계 기록에 도전하는 선수들의 그것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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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리쿠
2013. 1. 18.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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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18.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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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18. 23:24

- 형이랑 나에게 보내는 키워드: TV, 몸살, 차가운 손 kr.shindanmaker.com/215124

 

 

 

 

 

 

사이케가 아프다고 했다.

델릭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자신과 매우 비슷한 목소리- 츠가루를 통해 이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자신도 모르게 들고 있던 감자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냥 알려두는게 맞는 것 같아서요. 라는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끝기고 나서도, 델릭은 잠시 떨어진 감자를 주을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프로그램에게도 병이란 것이 존재하나? -라는 생각이 첫번째로 떠올랐다. 하지만 프로그램인 자신들에게도 피곤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였고, 온도까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인간과 닮은 그들이었기에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건물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던 츠가루가 쓰러져있는 사이케를 발견하자마자 이자야에게 옮겨 주었다고 했다. 그렇게 큰 상처를 입었던 츠가루도 일주일도 안걸려서 고쳐내었던 이자야에게 옮겨진 만큼 사이케는 큰 이상이 없을 것이다.

생각을 마친 델릭은 곧 떨어뜨린 감자를 주워들었다. 바닥에 닿은 껍질이 약간 벗겨져 있어서, 이건 영락없이 살 수 밖에 없었다. 들고있던 시장 바구니에 들고 있던 감자를 넣은 델릭은 일단 눈에 띄는 야채들에게 손을 뻗었다. 계산대로 가는 델릭의 발걸음은 평상시보다 조금 더 빨랐다. 카드를 내미는 손은 약간 떨렸고, 시장을 나와 집으로 향하는 델릭의 옆으로 거리들이 휙휙 지나갔다. 머릿속에는 사지못한, 오늘 저녁으로 만들 닭감자조림의 재료인 닭과 대파들이 떠올랐지만 아무래도 상관 없다고 생각했다. 사이케는 괜찮을 것이리라. 하지만 아픈 형의 곁에 자신이 없는 것이 말이 안된다. 떠밀리듯 집으로 들이닥친 델릭의 신발이 이리저리 거칠게 벗겨져 우당탕, 했다.

사이케는 자신의 침대에 누워 자고있었다. 숨을 고르기도 이전에 보이는 멀쩡한 모습에 맥이 풀렸다. 츠가루의 말만 들으면 -사람의 경우엔- 일주일 입원이라도 해야할 것 같았는데, 막상 그런것도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델릭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사이케가 누워있는 침대 옆에 엉덩이를 붙였다. 엄살이 너무 심하잖아. 사이케의 이마라도 찰싹찰싹 때릴까 싶었지만, 여기서 공격해야 할 것은 츠가루의 어휘선택이었기에 관두었다. 요새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밖으로 나다녔으니 힘들법도 했다. 자는 모습을 조금 훔쳐보다 거실로 나온 델릭운 대충 던져놓느라 바닥에서 구르고 있는 당근을 주워들며 저녁 계획을 세웠다. 죽이라도 만들 계획으로 닭이건 뭐건 아무것도 사오지 않았기에, 선택사항은 죽 외에는 없었다. 이것 가지고는 배가 부르지 않는다며 불평을 할 선배의 얼굴을 떠올리며 델릭은 룰루랄라 찹쌀을 씻기 시작했다.

" 데- 리-!"

냉장고에 있던 푸딩을 먹으며 TV를 보고 있던 델릭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 자신을 부른 사람- 형의 방으로 들어갔다. 곤히 자고 있던 아까의 모습과는 다르게 이불을 뒤집어쓰고 빼꼼히 나와있는 눈만 깜빡깜빡 거리던 사이케가 들어온 델릭을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이제 좀 괜찮냐? 하고 델릭이 묻자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모양이 아무래도 다 나은 모양이었다.

" 아파! 사이케 많이 아파!"

잔뜩 심통난 목소리를 하고는 획 등을 돌리는 사이케를 보고 델릭은 어쩔 수 없이 그의 침대 옆에 다시 앉았다. 삐걱거리는 침대의 무게감을 들으면서도 사이케는 델릭쪽으로 돌아 누울 생각도 안하고 등만 내보이고 있었다. 어디서 이렇게 삐져 온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럴 때에는 얌전히 져 주는 편이 나았다. 이불위로 삐죽이 나와있는 동그란 두상을 쓰다듬으며 델릭을 조용히 그의 기분에 맞추어 주기로 했다. 사이케는 아프니까 건들이면 안 돼. 하는 어투가 많이 누그러져 있어서 델릭은 조금 웃었다. 두상을 쓰다듬던 손이 땀에 살짝 젖은 목쪽으로 내려가자 사이케는 소리를 빽 질렀고, 그 반응에 껄껄 웃으며 델릭은 죽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 눕는 소리가 나서 델릭은 괜시리 기분이 좋았다.

델릭이 불려놓은 찹쌀과 잘게 자른 야채들로 죽을 하는 동안 틈틈히 사이케의 방을 들여다봤지만, 사이케는 이불에서 나오기 싫은지 빼꼽히 내어놓은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아프지 않은 것을 다 들킨 주제에 열심히 아픈 흉내를 내고 있는 사이케가 귀여워서 델릭은 하나밖에 남지 않은 달걀을 꺼냈다. 시장에서 달걀을 사오는 것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어서, 마지막 달걀으로는 자신이 야참으로 바닐라 아이스크림이라도 해 먹으려 했는데 그냥 형에게 주기로 한 것이었다. 야채죽에 달걀을 넣는 것은 아직 해본적이 없어서 맛이 있을까 잠시 고민은 했지만 다 해놓고 먹어보니 의외로 괜찮았기에 델릭은 그것을 그릇에 예쁘게 담았다. 김가루를 조금 뿌렸음에도 어딘가 허전해 보여서 남은 당근으로 토끼모양을 내서 얹었다.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사이케는 분명 마음에 들어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예상은 맞았다. 방으로 들고 가자마자 사이케가 벌떡 일어나서는 토끼! 하고 소리를 친 것이었다. 젓가락으로 낼름 그것을 집어먹은 사이케가 그제서야 아차 싶었는지 다시 이불을 덮고 누웠다. 자신은 환자니까 어서 먹여달라는 투정이 귀여워서 델릭은 큰 소리로 웃었다. 사이케는 자신이 말하고서도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는지 어서 먹여달라고 재촉을 했고, 델릭은 다시 한 번 껄껄 웃었다.

" 어떠냐?"

" 사이케를 위해서 만들어 준거니까 맛있다고 해줄께."

하얗게 연기가 오르는 죽이 뜨거울까 손수 후후 불어서 먹여주자 사이케는 냠냠 잘도 받아 먹었다. 주는 족족히 받아먹으면서 더 달라고 입을 벌리는 모습이 언젠가 시즈오와 나란히 앉아 보던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아기새같았다. 쪼끄만한 형이 괜시리 뿌듯해지는 순간이었다. 열심히 먹던 사이케가 죽이 반쯤 없어진 것을 굳이 고개를 들어 보고는 그만 먹을래! 하며 이불속으로 폭 들어갔다. 더이상 줘봤자 먹지 않을 것 같아서 숟가락에 남아있던 것을 자신의 입에 밀어넣은 델릭이 그릇을 내려놓았다. 가서 설거지나 할 심상으로 일어나려 자세를 잡는 델릭의 옷깃 끝에 잡아당기는 감각이 느껴졌다. 언제부터인지 자신의 셔츠 끝을 잡고 있던 사이케가 다시 이불에서 눈만 빼꼼히 내놓는 것이었다.

" 사이케 아프니까 같이 자!"

어리광이 잔뜩 담긴 말이었다. 결국에 사이케가 원하는 것은 이쪽인 것 같았다. 자신은 게임하느라 바빴고 사이케도 역시 일 때문에 밖으로 나돌아다녔기 때문에 이렇게 둘이 있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제대로 챙겨주는 것 또한 그랬다. 그래서 델릭은 애써 아픈 척-전혀 아파보이지 않지만- 연기를 하는 사이케에게 조금 속아주기로 했다. 사이케가 덮고 있던 이불을 걷고 안으로 들어가자 따듯한 기운이 물씬 풍겨왔다. 자신보다 한참은 체격이 작은 사이케가 자연스레 품 안에 쏙 들어와서 그대로 끌어안으니 얼굴을 가슴팍에 부비면서 덩달아 안아오는 것이 역시 이것이 정답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불 속에 얼마나 있었는지 손이 닿은 사이케의 등은 후끈후끈했다. 물론 밖에 있었던 자신과의 온도 차이 때문에 더더욱 그렇게 느껴졌을지도 모르지만, 뭐, 따듯하니 그러려니 했다.

고개를 살짝 숙이자 보이는 동그란 두상이 귀여워 조금 쓰다듬자 곧바로 자신을 바라봐오는 눈이 동그랬다. 같이 자자고 한 주제에 눈이 이렇게 말똥말똥해서야 잠은 커녕 눈을 감고 싶지도 않잖냐. 그건 사이케 쪽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서 델릭은 고개를 내려 얼굴을 가까이 대었다. 키스라도 하려는 듯이 다가오는 델릭에 사이케가 눈을 꼭 감고 응하려 했지만, 입술에 닿기를 몇미리 남겨두고 소리만 쪽, 하고 내는 것이 아닌가. 델릭은 눈을 꼭 감고있는 사이케를 보며 풋 웃으며 놀리려는 마음 100%인 것을 숨기려 하지 않아서, 사이케는 입술을 조금 삐죽이며 델릭에게 확 덮쳐들며 볼에 쪽! 하고 큰 소리가 나게 뽀뽀를 해주었다. 델릭은 사이케가 이렇게 나올 줄 알았다는 듯이 장난끼 어린 미소를 지으며 얌전히 당해줄 뿐이었다.

하핫, 먼저 달려들었다 이거지?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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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리쿠
2013. 1. 17. 23:36

- 이자야(@izaya_s_krbot), 시즈오(@shizuo_b_krbot), 히비야(@hibiya_s_krbot), 츠가루(@tsugaru_b_krbot), 사이케(@saike138_krbot), 델릭(@delic420_krbot) 기반. 봇을 모르면 좀... 이해가 안되실꺼에요.

**

잠들 수 없는 밤이었다.

옆에서 들려오는 자신의 것이 아닌 숨소리가 오늘따라 너무나 거슬렸다. 자주 외국으로 나가시는 부모님과 자신들만 있으면 된다는 주의의 쌍둥이 여동생 탓에 혼자 자는 것이 익숙했으므로, 몇 년 만에 다른 사람과 같이 잔다는 생활에 쉽게 익숙해질리가 없었다. 자신이 먼저 꺼낸 제안이었고, 잊고 있는 틈에 뜬금없는 방향으로 동의를 받았다.-그때의 기억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니었기에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그 때로부터 조금의 시간이 지나자 어느새 같은 집에서 살고 있었고, 같은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처음부터 침대를 한개만 살 생각이었으므로 당연했지만. 첫날은 살해당할까봐 잠을 이루지 못했고, 그 후도 비슷했던 것 같았다.

12시면 빠릿하게 잠을 자야만 한다는 의외로 바른생활 사나이인 시즈오는 이자야의 입장에서는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직 새벽 1시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깊게 잠들어있는 시즈오를 보고 있다가, 마시고 있던 커피를 내려놓으며 컴퓨터를 끄고 옆에 누웠던 것 같았다. 그리고 30분이 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잠이 오지 않는 것이었다. 보통 잠이 오지 않음에도 침대에 누워있는 행위는 너무나도 시간낭비 같았기에, 이자야로써는 당장이라도 일어나서 다시 일에 집중하고 싶었지만, 옆에서 자고 있는 남자를 보면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잠이 오는 것도 아니었기에, 이자야는 작은 한숨을 내쉬며 몸을 옆으로 돌렸다. 헤이와지마 시즈오. 이케부쿠로 최강의 남자이나 자신의 영원한 숙적이 바로 옆에서 잠들어 있었다. 잠이 올리가 없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잘 자왔는데, 오늘따라 왜 잠이 오지 않는 것인지 궁금할 노릇이었다.

시즈오의 얼굴을 잠시 감상하던 이자야는 이내 몸을 일으켰다. '그' 헤이와지마 시즈오가 무방비한 상태로 옆에서 자고 있다. 이자야는 조심스레 그의 목을 두 손을 감쌌다. 조금만 힘을 주면 천천히 뛰고 있는 맥박이 손의 피부사이로 느껴졌다. 이대로 목을 조르면 깰까? 갑자기 나를 걷어차버릴까? 이러려고 동거를 제안한 거냐고 화를 낼까? …죽을까? 누구보다 죽이기를 원했던 시즈가, 이런것 하나로 죽어버릴까? 그 괴물이? 인간도 아닌주제에. ……기분나빠.

이자야는 인상을 찌푸리며 천천히 손에 힘을 넣었다. 맥박의 움직임이 점점 빨라지는 것이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다가온다. 일어나. 시즈오의 입에서 나오는 숨소리가 점점 가빠지는 것이 들린다. 일어나. 시즈오의 얼굴이 살짝 구겨진다. 일어나. 손에 닿아있는 목의 피부가 발갛게 달아오르는 것이 보인다. 일어나서, …일어나서?

일어나서 뭘?

손에서 힘이 쭉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일어나서, 뭘 하기를 바란거지? 쥐어진 피부에서 열이 조금 더 올라왔다. 살며시 목에서 손을 떼자, 손이 땀으로 축축하다는 것을 알았고, 그제서야 온 몸이 땀범벅이 되었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이자야는 신경질적으로 이불을 박차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어서 죽어버려, 괴물. 쿵쾅대는 심장은 다시 컴퓨터의 전원을 켜고 남은 커피를 한번에 들이마실 때까지 진정되지 않았다.

**

" 아♡"

인공적인 것이 분명한 콧소리 섞인 목소리가 바로 맞음편에서 들려왔음에도 불구하고 시즈오는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맞음편에 앉아서 감자튀김을 들고 있는 여자는 분명 초면이었다. 그러한 여자가 왜 톰 씨, 바로나와 함께 수금을 하고 있던 자신에게 다가와 아는척을 해온 것인지 시즈오의 상식선에서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시즈오의 기억상에서는 자신과 길거리에서 인사할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여성은 세르티외에는 없었다.-시즈오의 기억 안에 앙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이 여자는 자신에게 다가와 갑자기 팔짱을 끼며 시즈오빠는 칸라가 데려가겠어용♡ 이라며 여기까지 데려온 것일까? 칸라, 칸라.. 몇 번을 되뇌어 봐도 전혀 모르겠는 이름이었다. 자신이 아무리 머리가 나쁘다한들 이렇게 친하게 붙어오는 여자를 기억 못할 리가 없었다. 칸라라는 여자가 붙어온 순간 시즈오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예쁘게 화장되어있는 빨간 눈을 곱게 휘어웃는 여자의 미소에 당황하여 아무말도 못하고 그저 끌려와 버렸었다. 바로나를 향해 혀를 삐죽 내보인 여자는 자신에게 팔짱을 낀 채로 칸라는~ 칸라느은~ 하며 조잘조잘 말을 하기 시작했고, 시즈오는 그저 원래 자신의 이름을 자신이 부르던가? 하며 이 곳, 롯x리아까지 끌려온 것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햄버거 하나, 쉐이크 둘을 시킨 여자가 계산을 하려 하기에 이런것은 남자가 내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시즈오가 여자를 막으며 계산을 했다. 앗, 멋진 모습♡ 하며 꺄르르 웃는 여자가 햄버거를 받아올때까지 시즈오는 왜 자신이 여기 있는지 고민해보았지만,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여자는 원래 인스턴트를 먹지 않는다며 자신에게 햄버거를 들려주었고, 쉐이크 하나를 가져갔다. ????? 하면서도 시즈오가 햄버거를 베어먹는 사이 감자튀김을 조금 맛보는 듯하던 여자는 곧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그것을 내려놓았고, 그러다가 시즈오와 눈이 마주치자 다시 한 번 예쁘게 웃었다. 그리고 끝을 약간 깨물어먹는 감자튀김을 자신에게 내미는 것이었다.

" 칸라 팔 떨어질 것 같은데! 오빠 빨리 아~"

말꼬리를 잔뜩 늘리며 칸라가 감자튀김 끝으로 시즈오의 입술을 쿡쿡 찌르자 이거 조금 먹던거 아닌가? 하는 생각밖에 안하고 있던 시즈오는 잠자코 그것을 받아먹었다. 왜 자신이 여기에, 이러고 있는것인지 생각하기도 머리아프고, 여자와의 대화경험이 얼마 없었던 시즈오였기에 그저 그녀의 행동에 따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시즈오가 그것을 입에 물자 여자는 다시 꺄르르 웃었다. 감자튀김을 콕콕 찌르는 여자의 손톱은 반짝반짝 치장되어 있었다. 여자와 있음에 (혼자) 어색한 시즈오가 오물오물 감자튀김을 먹고 쉐이크를 조금 마셨다. 거의 바닥이 드러나있던 쉐이크가 어느새 반이나 차있었다.

" 칸라도 시즈오빠가 먹여줬음 좋겠는데에♡"

말을 끝마치자마자 감자튀김이 또다시 자신의 입에 들이밀어졌고, 시즈오가 그것을 받아먹자 여자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시즈오가 물고있는 감자튀김의 반대쪽을 살짝 깨문 여자의 입꼬리는 어색하게 반짝거렸지만, 자신에게 익숙한 모양새로 웃고있었다.

**

" 이자야! 사이케도 시즈쨩 만나보고 싶어!"

" 하?"

사무실에서 자신의 일에 집중하고 있던 이자야는 갑작스레 자신의 컴퓨터 안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인상을 찌푸렸다. 하고 있던 일을 방해받아서 인 것 같기도 했고, 자신의 사무실- 개인적인 공간에서 결코 듣기 싫은 이름이 갑자기 튀어나와서 인 것 같기도 했고, 그것을 입에 담은 사람-은 아니지만-이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서 인 것 같기도 했다. 거기다가 시즈쨩이라니. 모니터 안에서 보이는 사이케의 모습을 향해 시선을 돌린 이자야는 자신을 향해 깜박깜박 거리는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 히비야가 그랬어. 멋지신 분이라구. 사이케도 보고싶어! 이자야는 시즈쨩을 꼭꼭 숨겨놓고 보여주지 않으니까."

" 누가 꼭꼭 숨겨놓았다는 거야?"

" 에? 이자야는 시즈쨩을 집에 숨겨둔 거 아니야? 사이케 그거 이해할 수 있어! 사이케도 만약 시즈쨩 같은 사람이 있었으면 그랬을지도 모르는걸! 이자야는 시즈쨩을 하잖아? 시즈쨩은 좋겠다아-."

" 아니거든?"

" 하지만 사이케는 알고 있는걸. 사이케도 시즈쨩 보게 해줘!"

" ……."

" 응? 사이케한테도 시즈쨩 보여주면 안 돼? 응 ? 이자야아-."

" …시즈오."

" 에?"

" …시즈오, 라고 제대로 불러."

사이케가 그 후 시즈오를 닮은 안드로이드를 만드는 이자야를 본 것은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

졸음을 쫓기 위해 세수를 하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갔을 때에는 날이 밝아있었다. 화장실의 창문 밖으로 보이는 푸르스름한 기운과 빛은 결코 밤의 그것이 아니었다. 잠시 내다보던 이자야가 짧게 혀를 차고 거울으로 시선을 옮기자 눈 밑의 다크써클은 평소보다 조금 더 짙어져 있었다. 딱히 급한 일은 아니었지만, 어떻게든 일찍 끝내고 쉬고 싶었기에 밤 늦게까지 일을 끝내고 나서야 츠가루의 점검이 남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의뢰인에게 내일-정확히는 어제 받은 것이니 오늘.-까지 하겠다며 일을 받아놓지 말 것을 잘못했다고 생각했다. 가끔은 귀찮아지는 자신의 쓸데없는 일중독에 다시 한 번 혀를 차며 이자야는 물을 틀었다.

오늘까지 일을 끝내지 않았어도 마감이 아직 남아있었기에, 점검을 오늘, 일 마무리를 내일로 설정해도 될 법 했었는데, 점검을 잊어버리고 일을 끝내버렸으니 자신의 계획대로 일을 처리하려면 무리를 해서라도 츠가루에 대한 점검을 끝내놓아야 했다. 츠가루를 부르며 다 마셔버린 커피를 다시 내려 몇 번이나 마신 입 안이 텁텁하여 이자야는 칫솔을 들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점검까지 끝냈으니, 오늘 안에 받은 일을 처리하고 나면 잠을 잘 수 있었다. 잠을 잘 자지 않는 성격이라 하여도 아예 자지 않고 버틸 수는 없었다. 거울을 보며 치약이 뭍어있는 칫솔을 입에 문 이자야의 눈이 조금씩 감겼다. 그렇게, 아주 짧은 선잠을 잔 것 같았다.

덜컹. 순간적으로 다리의 힘이 풀려버려 내려앉아버린 몸뚱아리에 이자야는 퍼뜩 잠에서 깨었다. 세상에 이 오리하라 이자야가 서서 잠을 자다니. 다행히 다리에서 힘이 빠져나가자 마자 깨어난 덕분에 그대로 칫솔을 물고 넘어지는 대참사는 벌어지지 않았지만, 이자야는 자신이 이렇게까지 피곤할 정도로 몸관리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불쾌한 모양이었다. 때로는 잠을 자는 것 보다 조는 것이 더 정신을 차리게 하는 것에 도움을 줄 때가 있어서, 말짱해진 정신으로 빠르게 양치질을 끝낸 이자야가 수건으로 입가를 닦으며 밖으로 나왔다. 슬슬 시즈를 깨울 시간이었다.

그리고, 서서도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은 남자가 소파에서 자고 있었다.

" ………."

아침잠이 많기로는 세상 제일가는 -이자야 기준으로- 시즈오가 이런 아침에 잠이 깼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일어나자마자 소파에서 다시 잠들어 버린 것도 놀랍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마 어쩌다 잠에서 깨어 옆자리를 더들었지만 (당연하게도) 옆 자리가 비어있어 비몽사몽 이자야를 찾으러 나왔다가 다시 잠들어버린 모양이겠지. 눈에 보이는 것 같은 모습에 이자야는 얌전히 그에게로 다가갔다. 살풋 찌푸려져 있는 미간이 너무나도 시즈오다웠기에 이자야는 들고나온 수건을 소파에 걸쳐놓았다. 시즈오의 자는 얼굴은 그 어떤 모습보다 귀여웠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 중 하나였다. 동거 초. 아니, 라이진 고등학교 시절때부터 생각해오던 것을 다시 한 번 떠올리며 이자야는 시즈오의 뺨에 손을 대고는 그대로 그의 입술에 자신의 것을 가져다 대었다. 이유를 물으면 딱히 대답할 말이 없었고, 그럼에도 대답하라고 독촉한다면 피곤해서, 라고 말할 만한 충동에 가까운 행동의 결과였다. 짧게 입술을 가져다 대자 부드러운 것이 닿는 것이 느껴졌고, 습관적으로 눈을 감았다 뜨자 시즈오의 파란색 눈동자가 보였다.

파란색?

그제서야 이자야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재빠르게 입술을 때자 마치 벌레라도 씹은 듯 한 표정을 하고 있는 츠가루가 시즈오의 자리에 있었다. 이자야가 굳어있는 동안 츠가루는 더러운 것이라도 입술에 닿은 마냥 손으로 미친듯이 입술을 부볐고, 짜증을 냈다. 적으로 간주해도 되냐. 거기까지 듣고는 이자야는 츠가루의 등을 떠밀듯이 하며 밖으로 내쫓아버렸다. 진심으로 혐오하며 금방이라도 자신을 죽일듯이 노려보는 츠가루의 뒤로 문을 쾅 닫아버린 이자야는 한숨을 내쉬며 터덜터덜 방으로 들어갔다.

…피곤해서 안되겠어. 일은 내일로 미루고 잠이나 자러 가야지.

**

눈을 떴을 때에는 자신보다 큰 남자가 자신을 안고 있었다. 이제는 익숙한 풍경에 이자야는 시즈오의 품에서 잠에서 깨기 위해 몇 번 눈을 깜박이고는 살며시 시즈오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아니, 빠져 나가려고 했다. 강하게 침대의 쪽으로 밀어넣는 힘만 없었더라면 실현됬을터지만, 이자야가 자신의 목 위에 허리에 둘러져있는 팔을 치우기 위해 손을 댄 순간 시즈오의 팔이 강하게 자신을 끌어당겼다. 갑자기 끌어당겨지기도 했고, 애초에 시즈오를 힘으로는 이길 수 없었던 이자야는 자연스레 시즈오의 품에 가득 안긴 꼴이 되어버렸다.

뭐하는거야, 시즈. 하며 이자야는 미간을 좁히며 다시 일어나기위해 힘을 주려했지만, 시즈오의 단단한 팔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몇 번 더 시도해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이자야는 하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고는 시즈오와 대화라도 하기 위해 고개를 들고 벌써 잠들어버린 것 같은 남자의 뺨을 몇 번 찰싹찰싹 때렸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아프다고 인상이라도 찌푸릴 정도의 세기였지만, 잠들어 있는데다가 보통 사람과는 다른 근육을 가지고 있는 시즈로써는 조금의 느낌도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통각이 아닌 손바닥이 뺨에 닿는다는 촉각 정도는 느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 왜 안 놔주는 건데. 응?"

" 가지마라."

…뭐? 뜬금없이 나온 소리에 멈칫, 한 이자야가 목소리를 약간 높이며 되물었지만, 시즈오는 대답할 생각이 없는지 허리에 두른 팔에 조금 더 힘을 줄 뿐이었다. 갑자기 나온 이건 뭐지? 시즈데레? …같이 있어달라는 건가? 깜짝 놀라 눈을 깜박깜박 거리며 시즈오를 올려다 보았 지만 시즈오는 눈도 뜨지 아니하고 다시 잠을 청하는 처럼 보였다. 이 남자가 이렇게 나오면 어쩔 수 없다는 것을 그동안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에 이자야는 한숨을 내쉬며 잠자코 시즈오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언제나처럼 전날에도 늦게 잠들었던 이자야였기에 금새 잠에 들 수 있었다. 날은 겨울이었고 시즈오의 품은 언제나처럼 따듯했기에, 그러니까 답지 않은 어리광에 넘어가서 같이 자주는 거라고 생각하며.

-

" …뭐?"

이자야는 핸드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뒷통수를 쾅 하고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오늘 시즈오 덕분에 오후 3시가 넘도록 잠을 자버렸기 때문에 나가야 했던 일에 늦어버려 그 장소에 가지 못했었다. 어쩔 수 없었기에 의뢰인에게 사과하고 대리인을 보낸 것이 정확히 3시 42분. 그리고 한시간이 채 지나지 않은 지금, 그 장소에서 큰 사고가 났다는 것이었다. 예상치 못한 사태였기에 그 곳에 간 의뢰인과 대리인을 포함한 사람들 전원이 중상을 입었다는 소식이 실시간으로 들려왔다. 자신이 갔다고 하더라도 한 시간 안에 처리하지 못할 일이었기에, 이자야는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아이폰의 액정으로 보이는 '과일가게'의 말을 들으면서 이자야는 천천히 머리 속을 정리해나갔다. 일이 이렇게 돌아간다면 자신에게 남은 패는 무엇이며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와중, 문득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혹시, 시즈가 짐승같은 감으로 이 사고를 자신에게로부터 막아준 것이 아닐까?

…설마. 이자야는 고개를 내저으며 애써 그 사실을 부정했다. 그 설마가 곧 사실임을 인정하는 자신의 미래는 생각치도 않으며.

**

안녕! 사이케야!

오늘 이자야가 이자야네에 잠깐 오라고 해서 무지 신나! 사이케 점검할 때도 아닌데 이자야가 집에 부른건 너무 오랜만이야! 가슴이 두근두근해서 이자야가 오라고 한 시간에서 1시간이나 일찍 컴퓨터에서 나와 대기하고 있어. 오늘은 항상 있던 나미에씨라는 여자가 없어. 이자야가 나미에씨가 있을 때에는 나오지 말랬으니까 만약 있었다면 사이케는 나오지 않았을꺼야. 사이케는 이자야 말을 잘 듣는 사이케인걸! 에, 말이 조금 이상하지만 사이케는 괜찮아! 왜냐하면 사이케는 사람이 아니니까 아이라고 할 수 없는걸. 아무튼 사이케는 지금 가슴이 무지무지 쿵쾅쿵쾅 한다는 거야! 집에 시즈쨩.. 아, 아니 이건 이자야가 부르지 말라구했으니까, 시즈오도 있을까? 사이케, 시즈오 너무 좋아! 이자야는 시즈오를 엄청 싫어하지만 시즈오는 상냥한걸? 내가 이자야랑 똑같이 생겨서 좀 거북해 하는 것 같지만, 사이케는 괜찮아. 아! 이자야가 시즈오를 엄청 싫어한다는건 거짓말이야! 이자야는 시즈오를 너무너무 좋아하는걸! 진짜야! 사이케는 거짓말 안해!

앗, 소파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방바닥에서 데굴데굴 하면서 놀고 있는 동안 한시간이 지나가버렸어! 사이케, 이키마스!

어떻게 하지? 두근거려서 문을 못열겠어! 사이케, 지금 이자야네 문 앞에 있어! 이 문을 지나면 사이케가 무~지 무지 좋아하는 이자야도 있고 시즈오도 있어! 야호! 사이케 너무 신나서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야! 당장이라도 뛰어들어가서 이자야를 와락! 하고 껴안고 싶지만 그러면 이자야가 싫어하니까 사이케는 하지 않을래! 그러니까 진정해야겠지? 천천히 심호흡을 하고 눈도 꽈악 감았다 뜨고! 두근두근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천천히 문고리를 잡았어! 사이케는 안드로이드니까 나지 않겠지만, 사람이라면 여기서 땀이 막 나지 않았을까? 사이케 그거 공포영화에서 봤어! 영화라면 여기서 귀신이 와악-! 하고 튀어나오는거지? 하지만 사이케가 여는 문에서 나오는건 이자야니까 절대절대 귀신이 아니야! 앗, 그래! 조심조심 들어가서 사이케가 이자야를 와악-! 하고 놀래켜주는건 어떨까? 푸푸풋!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 천천히~ 천천히~ 문을~!

" ………!"

사이케, 이자야를 놀래키려는 계획 실패해버렸어. 왜냐구? 지금, 지금! 이자야가 무지무지 바쁜 것 같아! 시즈오도 바빠! 왜냐구? 지금 이자야랑 시즈오가! 이자야랑 시즈오가! 뽀뽀츄! 사이케 깜짝 놀라서 에! 하고 소리 지를 뻔 했지만 손으로 입을 꾹 막았어! 여기서 이자야랑 시즈오를 방해하면 안 되잖아? 사이케 정말 방해 안하려고 했는데 잠깐 눈을 뜬 시즈오랑 눈이 마주쳐버렸어! 숨소리도 안내려고 숨도 꾹 참고 있었는데! 사이케 어떻게 하지? 다시 문으로 나갈까? 앗, 하지만 이자야, 키스 잘 해……. 사이케도 잘하는데, 역시 이자야가 더 잘하는 것 같아! 역시 이자야! 에? 시즈오 손이 올라간다? 에…?

………….

…이자야, 저 멀리 날아가 버렸어…. 아프겠다……….

**

달이 거의 다 가려져 얼마 남지 않은 그믐날, 히비야는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얌전히 감고 있던 눈을 살며시 뜬 히비야는 어두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잠시 기다렸다가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오늘 낮은 유난히 해가 좋았기에, 사용인들이 밖에 널어놓았던 이불은 포근포근해서 자기 좋았지만, 잠이 안 오는 것은 그것과는 별개였다. 밤늦게까지 이자야와 일하느라 피곤해하는 히비야를 생각해서 잠 자기 좋게 만들어 놓은 사용인들에게 마음속으로 작은 사과를 한 히비야는 천천히 침대에서 내려오며 한쪽 구석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실내화를 신었다. 하루종일 머릿속을 꽉 채워 놔주지 않는 사람-은 아니지만-이 있었다. 침대에 누우면서 부터 보고싶다고 생각했고, 그를 생각하느라 잠을 이루지 못한 것이었고, 얼굴이라도 보고 싶었기에 그의 발걸음은 당연스럽게도 성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방으로 향했다.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스레 미닫이 문을 연 히비야가 실내화를 벗고 조용히 다다미 바닥을 딛었다. 안에서 이불을 깔고 자고 있는 이- 츠가루를 위해 특별 제작한 일본식 방이었다. 서양식 성에 왠 다다미방? 이라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었지만 애초에 이 성 자체가 일본에 있는 것부터가 아이러니이었으므로 사용자를 비롯한 모두가 별로 신경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히비야는 자고 있는 츠가루를 깨우지 않기위해 옷깃이 서로 스치는 소리조차 나지 않도록 조심조심 문을 닫고 그의 머리맡에 앉았다. 특별히 크게 낸 창으로 달빛이 쏟아져 들어와 츠가루의 얼굴을 은은하게 비추었다. 고운 피부. 곧게 닫혀있는 눈꺼풀과 앙다문 입술, 달빛에 반짝이는 금발이 한데 어울려 무척이나 아름다운 광경이라고 히비야는 생각했다.

츠가루는 그랬다. 처음 거울의 방에서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도 항상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이자야에게 처음으로 보안 프로그램이 올 것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에는 어떤 분일까 기대반 걱정반인 마음이었지만, 지금은 전혀 달랐다. 걱정 같은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 분이었다. 알면 알수록 누구보다 강하고 누구보다 아름다우신 분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이렇게 바라만 보고 있어도 마음을 따듯하게 해주시는 분이 있을 줄은 히비야로써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얌전히 보고만 있어도 좋았고, 눈을 뜨고 자신을 바라보며 잘 잤냐고 인사해주는 모습도, 자신이 일하러 가면 흔들 의자에 몸을 맞기고 앉아 책을 보고 있는 모습도, 지하에 있는 것이 무섭다며 이자야를 욕하는 모습까지도 좋았다.

천천히 차오르기 시작한 감정은 자각했을 때에는 어느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흘러 넘치고 있어서, 히비야는 종종 그에게 자신의 마음을 말하고 싶어질 때도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만난지 몇 개월 되지는 않았지만 동거를 하고 있고, 자신의 안전을 내맡기고 있는 상대에게, 조금 더 마음의 정리를 할 시간을 줘야 한다고, 그리고 또한 자신도 그래야 한다고. 언젠간 제대로 정리해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때가 분명 오리라고.

" …꼭 제대로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츠가루."

히비야의 입술이 아주 잠깐 츠가루의 이마 위 2mm의 공간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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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체 뭘 사온거야?"

선물을 사오라고 했더니 슈퍼라도 들른 것인지 두 손 가득 커다란 봉투를 들고 돌아온 시즈오를 보며 이자야는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런 말없이 사온 것들을 쏟아놓는 시즈오를 한 번 봤다가, 나오는 것들을 바라보곤 이자야는 다시 한 번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시즈오를 쳐다보았다. 봉투에서 나온 것들은 죄다 과자였다. 세상에 누가 이렇게 과자들을 두 봉지 가득 사며 누가 이렇게 많은 과자를 선물로 준단 말인가? 너무나도 시즈오 다운 생각에 이자야는 아직도 끊임없이 나오는 과자더미를 바라보며 입술을 삐죽였다.

" 애초에 박스에 다 안 들어 갈거라는 생각은 안한거야? 이걸 다 보내겠다고? 미쳤어?"

과자들을 가르키며 짜증을 내는 이자야의 모습에 어느 정도는 자신이 심했다는 자각이 있는건지 시즈오는 잠시 과자더미를 바라보다가 그 자리에 털썩 앉았다. 애초에 밥도 잘 안먹는 여자인데 과자만 줘서 삼시세끼 과자만 먹으면 어떻게 할 거냔 말이야. 길어지는 잔소리를 시즈오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 같았다. 아무리 말을 해도 대답조차 나오지 않자, 듣지 않는 것이라고 판단한 -그리고 그것이 맞았다- 이자야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시즈오는 과자 분류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제대로 안 먹는 여자이기에 이것저것 먹이고 싶어서 잔뜩 사온거겠지. 시즈오의 생각 정도는 금세 알아챌 수 있었다. 이자야는 자신이 먹기에 정말 맛있었던 것만 간추리는 시즈오를 내버려두고 핸드폰을 잡았다. 슬슬 자신이 주문한 것도 완성될 때가 되었다.

" 내가 말해둔 것도 오면 대충 시간이 맞을 거야. …날짜에 맞춰서 보내주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나."

" 그래도 당일날 보내면 2월 안에는 어떻게든 받을 거 아니냐."

그렇지. 가볍게 대답한 이자야가 주문제작한 것을 가지고 있을 사람에게 전화를 걸며 입꼬리를 올렸다. -기대하라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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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왔을 때에는 밤이 늦어있었다. 늦게까지 부려 먹을 거면 야근수당을 더 달라는 나미에에게 일말의 대꾸도 없이 조금의-이자야 기준에서- 돈을 더 입금해주고 같이 일을 하다 그녀를 돌려보낸 시간은 11시가 조금 넘어서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나지 않은 일을 잡고 있다가 시계를 보니 자정이 지나있었다. 벌써 돌아와 침대에 누웠을 자신의 동거인을 생각하며 이자야는 일을 자신의 메일로 보내었다. 마무리는 집에서 할 생각이었다. 집에 들어가서 시즈오의 자는 얼굴을 봤다간 자신도 금방 잠들어 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오늘은 그다지 피곤하지 않았기에 괜찮을 것 같았다. 컴퓨터를 종료하고 털코트를 집어 든 이자야가 현관에서 신고있던 슬리퍼를 실내화를 벗으려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나미에씨가 청소해놓은 사무실의 바닥은 깨끗했다.

자신의 집도 마찬가지였다. 자취생활에서부터 길러온 자신의 동거인의 청소실력은 어느 여자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출중했다. 비록 초기엔 요리는 영 엉망이었지만, 1년이 가까워진 지금은 꽤나 실력이 괜찮아져 있었다. 괴물도 발전 이란걸 한다고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비록 그것이 비웃음의 형태를 띄고 있다고 해도.- 사무실과는 다른 색상으로 구매해놓은 실내화에 자신의 발을 끼워 넣으며 이자야는 조용히 거실로 발을 옮겼다. 어두운 거실에 불을 켜고 목이 말라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에는 알 수 없는 까만 봉지가 하나 들어있었다. 왜 자신의 냉장고에 물건을 이렇게 쑤셔 넣어 둔거냐고 작은 짜증을 내며 그것을 집어 들고 안을 들여다보았을 때에는 어이없음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형형색색의 과일푸딩.

" ………."

할 말을 잃어버린 이자야가 그것들 중 하나를 집어 들었고, 아직 차가워지지 않은 푸딩에 시즈오가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즈오와 동거를 하면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습관이 몇 개 있었는데, 12시에는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는 것이나 밥을 먹고 나서는 푸딩이나 유제품 같은 것을 꼭 먹어야 한다는 것이 그것들 중에 속해있었고, 그리고 이것 또 한 마찬가지였다. 시즈오는 집에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꼭 과일을 한봉지씩 사가지고 들어왔다. 돈이 없을 때에는 지금처럼 푸딩이었다. 날짜를 대충 계산해보면 시즈오의 월급이 떨어질 때였다. 납득은 가지만 이해할 수 없는 습관이었다.

살짝 열려있는 문틈 사이로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 남자의 모습을 지켜보다 잠시 한숨을 내쉰 이자야는 그것을 대강 냉장고에 정리해 두고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일이나 해야지.

**

" 아얏!"

자신의 방문을 문을 열자마자 들려오는 소리에 델릭은 자연스레 시선을 소리가 난 밑으로 내렸다. 아마 방 안에서 나오려고 하다 문에 부딪쳐 넘어진 모양인지, 히비야가 넘어져있었다. 갑자기 일어난 일에 전혀 대비를 못한것인지 아무래도 짧은 치마가 이리저리 흐트러져있었다. 부딪친것으로 보이는 이마를 문지르던 히비야는 곧 깜짝 놀라며 치마끝을 붙잡아 밑으로 내렸다. 하얀 허벅지를 반쯤가리는 아이보리색 치마의 히비야의 손이 닿지못한 반대쪽치마가 말려 올라가, 호박팬티의 레이스 끝자락이 살짝 보였기에, 델릭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자신의 이상형은 키 155이하에 가슴 D컵 이하인 여자였지만, 히비야만큼은 예외였다. 히비야의 가슴이 지금처럼 봉긋하지 않고 완전히 절벽이었다고 해도 이 여자만큼은 여전히 예외였을 거라고 델릭은 생각했다.

" 잡으십쇼, 공주님."

델릭은 자신이 최대한 지을 수 있는 예의바르고 멋진 미소를 지어보이며 히비야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차마 델릭과 눈도 마주치고 못 하고 있던 히비야가 그를 올려다보더니 천천히 손을 잡았다. 하.. 공주님 손은 얇고 부드럽구만. 저도 모르게 감탄해버린 델릭이 허둥지둥 정신을 차리고는 아프지 않을 정도로 꽉 잡곤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혹시나 속이 보일까 치마에서 눈을 못 떼던 히비야는 일어나자마자 올라간 끝을 발견하곤 델릭의 눈치를 살피며 자연스레 정리했다. 재빨리 시선을 돌리며 못 본 척 한 델릭은 방금의 자신의 행동이 너무나도 매너가 넘치는 것 같아 자랑스러웠다.

" 감사합니다, 델릭 님."

히비야는 감사 인사를 하며 눈꼬리를 살짝 휘어 예쁘게 웃어보였다. 곧게 뻗어있는 속눈썹이 어울려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웃음이라고 델릭은 생각했다. 애써 헛기침을 하며 뿌듯함을 감추지 않던 델릭은 자신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 후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려는 히비야의 뒷모습을 보며 아까 본 호박팬티의 라인을 생각하며 침을...

" ………?"

아시바꿈

**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던 이자야는 무료함을 견딜 수가 없었다. 아무리 흘러넘치는 정보를 다루는 정보상이라고 해도 장시간동안 작은 휴대전화 액정만 들여다보고 있기는 심심했던 것이었다. 오랜만에 쇼핑이나 가자며 자신의 의견을 무시하고 차를 가져오라던 남자는 커다란 마트 안에 들어가서 깜깜 무소식이었다. 대체 얼마나 시간이 지난거지? 하고 시계를 들여다보니, 금방 오겠다며 시즈가 들어간 지 정확히 48분이 지나가고 있었다. 1시간도 지나가지 않았다는 사실에 조금 놀라며 이자야는 핸드폰을 주머니 속으로 밀어넣었다. 이렇게 전자기기만 들어다 볼 게 아니라, 그냥 돌아다니는 사람을 보는 것이 더 이득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그리고, 그렇게 마트 안을 쏘다니던 이자야의 눈에 띈 것은 수조 안에서 기어 다니던 문어였다.

마트 안에는 특별히 시선을 끄는 사람이 없었기에, 이자야는 그 수조 앞에서 멈추는것을 선택했다. 빨판으로 수조를 더듬으며 천천히 움직이는 문어를 이자야가 바라보고 있자, 곧 문어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이리저리 움직이던 다리의 움직임이 멈춤과 동시에 문어와 이자야의 시선이 마주쳤다.-이자야 혼자만의 느낌일지도 모르겠지만.- 이자야는 저도 모르게 눈에 힘을 주었다. 문어는 여전히 미동도 없이 이자야를 바라보고 있었고, 이자야는 조금씩 자신의 안구가 말라감을 느끼면서도 눈을 감지 않으려 눈꺼풀에 준 힘을 빼지 않았다. 눈이 빨갛게 충혈 될 때까지. 그리고 결국,

" …문어 주제에."

이자야의 패배였다.

-

" 엉? 그게 뭐냐?"

" 생문어. 이것도 계산해, 시즈."

" ..........."

" ………."

" ...가져다 놔라."

" ……응."

**

사이케는 매우 화가 나 있었다. 새벽 2시가 넘어도 돌아오지 않는 자신의 동생을 기다린지 벌써 4시간이 넘었다. 즉 밤 10시부터 기다리고 있었다는 소리인데, 그동안 도대체 몇 십통의 전화와 문자를 했는지 사이케 자신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괜히 잘못 없는 현관 앞에서 날아다니는 날파리들에게 신경질을 내고 있던 사이케에게 다가온 것은 자신의 동생 델릭이 아닌 츠가루였고, 그가 전한 말은 델릭이 이미 집에 돌아와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전화와 문자를 해댔으니 당연히 확인을 했을텐데, 자신의 눈에 띄고 싶지 않아 자신이 지키고 있는 입구을 놔두고 뒷문으로 들어온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일주일에 몇 번씩 이렇게 늦게 들어오면 제 입장이 곤란해요. 하나도 곤란해 보이지 않는 얼굴로 말을 건내는 츠가루를 무시하고 사이케는 집을 향해 뛰었다. 엘레베이터를 기다리는 도중에도 화가 나는 마음을 어쩔 수 없었고, 몇 번이나 주의를 줘도 이렇게 다른 여자를 만나며 늦게 들어오는 델릭에게 화를 내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씩씩거리며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집의 문을 쾅! 소리나게 열고 들어온 사이케가 우당탕하고 방으로 뛰어들어왔을 때 보인 것은, 너무나도 평온한 얼굴로 자고 있는 델릭이었다. 쿵쾅거리는 발소리를 숨기지 않으며 델릭의 옆으로 다가가서 그의 침대 옆에 앉아 자고 있는 그의 셔츠를 거의 찢다시피 하며 풀어내리자, 너무나도 자랑스럽게 내비치는 델릭의 목덜미 주변의 붉은 자국들이 보였고, 사이케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깨워서 화를 내고 싶었지만, 이렇게 늦은 시간에 큰 소리를 내면 이자야에게 혼날 것이 분명해 보였다. 사이케는 눈을 감고 천천히 심호흡을 하였다. 후-하. 후-하아.

…두고 봐, 데리. 자꾸 이렇게 나오면 재미 없어질 줄 알아.

**

이자야는 최대의 난관에 도착해있었다. 시즈와 동거한지 어연 10개월. 눈깜빡하는 사이에 총알같이 지나가버린 시간사이에 있었던 난관들 중 손가락안에 꼽을 수 있을 정도의 상황이라고 이자야는 감히 말할 수 있았다

시즈오의 길다란 꼬리가 눈앞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이틀 전인 22일. 고양이의 날이라고 하여 고양이 귀를 단 자신을 준 팔로워가 있었다. 시즈가 돌아오려면 한시간도 더 남았고, 급한 일은 몇 일 전 날밤을 새가며 해결했다.-7명이 동원된 대규모의 일이었다.- 한시간정도면 상관없겠지, 했던 깜짝 이벤트는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타임라인에 터무니없는 드림썰을 풀어놓는 팔로워를 비웃어주고 잠시 심호흡을 한 뒤 시작했것만, 갑자기 나타난 정보를 사고파는 고양이 때문에 타임라인에서 보이지 않던 팔로워들까지 튀어나와 자신에게 말을 걸어왔던 것이다.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30분만에 리밋걸리기 까지 체험을 했으면 말은 다한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2월 24일. 거꾸로 하면 시즈냥의 날이다. 이자냥의 파장으로 시즈냥 플사까지 받아버렸으므로, 게다가 자신도 조금정도는 기대가 됐으므로 시즈오가 일하고 돌아오자마자 고양이로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처음부터 자신의 감상목적으로 만든 것이긴 하지만 팔로워들에게도 보여주기는 해야했기에 이자야는 조금은 아까웠지만 그의 고양이를 타임라인에 풀어놓았다. 쉴새없이 몰아치는 멘션폭풍에 시즈냥은 조금 당황한 것인지 처음에는 귀가 약간씩 쫑긋거렸다. 그러한 귀를 가지고 두 손으로 핸드폰을 잡고 아이폰의 액정을 톡톡 두들기는 시즈냥의 모습은 솔직히 말해서 범죄급에 가까웠다.

" 시즈."

시즈냥하고 조금 떨어진 거리에 앉아서 그를 불러보았지만 대답이 없다. 눈은 액정속에 고정한 채 자신을 거들떠도 보지 않는 것이었다. 조금 입술을 삐죽이고 있을무렵, 핸드폰의 푸시가 울렸다. 시즈냥의 멘션이었다. 어짜피 자신은 바라보지도 않고 있었기에 하는 수 없이 이자야는 핸드폰을 잡았다. 2번째로 온 시즈냥의 멘션은 정말 숨이 막힐 정도로 귀여웠기에 베란다에 나가 심호흡을 해야 할 정도이기도 했다. 시즈냥은 정말 핸드폰에 온 신경을 쏟고 있었기에 불러도 듣지 조차 않아서 하는 수 없이 이자야도 다시 핸드폰을 잡았다. 시즈냥이 리밋이 와 컴퓨터를 잡고, 검지 손가락만을 이용한 독수리타법으로 아주아주 천천히 답을 보내고, 결국 자신까지 리밋이 오고, 시즈냥의 리밋이 풀려 다시 핸드폰을 잡고, 그리고…….

…저기, 이 고양이는 내 꺼란 말이지.

가만히 시즈냥이 타임라인에서 놀고 있는 모습을 구경하던 이자야가 시즈냥의 뒷통수를 바라보며 입술을 삐죽였다. 눈앞에서 흔들리는 꼬리는 멘션함의 사람들이 부추기는 만큼 잡고 싶은 모양새를 하고 있어서 충동은 끓어올랐지만, 고양이는 꼬리를 잡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다는 것을 책에서, 그리고 몇 일 전에 했던 자신의 이자냥 이벤트로써 알고 있었기에 굳이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실행에 옮겼다간 힘은 그대로인 시즈냥에 의해 그를 마음껏 즐기지도 못하고 기절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이 고양이를 타임라인에 풀어둘 생각은 없었다. 어느새 시간은 밤이었고, 슬슬 시즈냥과 둘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기에. 아직도 모니터를 노려다 보며 손가락 끝으로 톡톡 키보드를 눌러대는 시즈냥의 손의 위에 천천히 자신의 손을 겹치며 이자야는 다른 한쪽 손으로 시즈냥을 데려가겠다는 퍼블릭을 남겼다. 물음표를 세우고 자신을 바라보는 시즈냥의 귀가 약간 쫑긋, 했다.

들고 있던 핸드폰을 대강 아무대나 내려놓고 아직도 쫑긋거리는 시즈냥의 귀에 손을 가져다 대자 그것을 피하기 위해 노오란 털의 귀가 요리조리 움직였다. 사람은 할 수 없지만 귀에 근육 20~30개나 있다는 고양이는 할 수 있는 일. 싸울 때마다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자신을 바라보는 시즈의 기분이 이런걸까, 라는 생각이 들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삐져나왔다. 풋, 하고 입 밖으로 터트리자 뭐냐옹, 하고 인상을 찡그리는 모습이 재미있어 이자야는 큰 소리로 웃어버렸다. 시즈냥은 바로 손톱을 세우려 했지만 자신을 향해 손을 내젓는 이자야로 인해 금방 그만두었다. 뭐냐옹. 몇 번을 들어도 어색하고도 귀여운 소리울림이었다.

" 피곤하지 않아?"

시즈냥이 트위터를 하고 있는 내내 마시라고 옆에 놔두었던 딸기우유가 든 컵을 싱크대에 가져다 넣으며 넌즈시 물었다. 시즈냥이 리밋에 걸려 컴퓨터에 앉게 되었을 때 같다준 것이었고, 키보드에 신경 쓰고 있던지라 반도 마시지 않은 것이었지만, 이자야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그것을 그대로 싱크대에 흘려보냈다. 시즈가 딸기우유를 마시는 것 정도는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이자야가 시즈냥과 시간을 보내는 것은 두 번 다시는 없을 일이었다.

짐승은 질색하는 나를 이렇게까지 만든 대가는 받아가야겠어. 오늘만은 이 고양이를 귀여워 해보도록 할까.

**

" ……선배, 슬슬 깨워야 하지 않겠슴까."

" 가만히 있어요."

이 상황에서 델릭은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밥상머리 앞에서 졸고 있는 히비야라니, 몇 번이고 봐온 광경이었지만 그 앞에서 무슨 행동을 취했다간 언제 츠가루의 펀치가 날아올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어젯밤은 이자야가 늦게까지 일하는 바람에 히비야가 집에 오는 시간이 늦어졌었다. 순찰을 마치고 돌아온 츠가루가 4시까지는 왠만해선 자지 않는 델릭과 함께 TV를 보며 기다렸었고, 새벽녘이 되서야 돌아온 팬더가 된 히비야와 함께 잠자리에 들었었다. 하루에 12시간은 기본으로 자야하는 히비야였지만 오늘도 역시 바쁘다는 이자야의 말에 따라 8시간도 채 못자고 일어난 것이 이 일의 원인인 것 같았다.

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석으로 잡은 젓가락의 끝을 물고 들고있는 밥그릇을 떨어뜨리지 않는 히비야의 모습은 언제나 대단하다고 델릭은 생각했다. 위아래로 왔다갔다거리는 히비야의 고개가 조금만 더 숙여지면 책상에 이마라도 부딛칠 것 같아서 델릭은 그를 막고 싶었지만, 옆에 앉아 황홀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는 남자가 버티고 있는 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저쪽은 이미 딴세상이었다. 아무리 히비야가 졸면서 밥을 먹어 엄청난 양의 밥풀과 반찬들을 떨어뜨렸어도, 밥상머리 앞에서 자고 있어도 츠가루에게는 한없이 귀여워 보일 터였다. 히비야를 좋아하긴 하지만 저런 건 선배를 따라갈 수 없었던 델릭이었기에 이럴 때에는 질릴 수 밖에 없었다. 졸고 있던 히비야의 고개가 푹 숙여질 때까지 츠가루는 뿅 가버린 얼굴로 히비야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 어라, 저거 조금 위험…….

쾅.

아, 박았다.

**

" …하?"

막 일을 마치고 돌아온 이자야가 집의 문을 열었을 참이었다. 신발을 벗기 위해 시선을 아래로 내렸는데, 신발장의 구석에 무언가 어색한 것이 있었다. 오늘 집을 나갈 때에도 없었고, 앞으로 이 집에서 자신에게 나오지 않는 한 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 이자야의 인상이 무섭게 굳어졌다. 어제는 주말이었기에 시즈오가 집을 깨끗히 치워놓았었고, 하루종일 자신은 집에 붙어있지 않았기에 분명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는 말은 이 집에 사는 자신의 동거인의 것이라는 건데, 정말 생각치도 못했던 것이라 이자야는 인상을 찌푸릴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새빨간 피가 몇 방울. 시즈오가 흘리고 돌아왔다고 생각하기에는 괴리감이 있는 것이었다. 분명 자신은 아무것도 꾸민 일이 없었는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다쳐서 들어오는 일이 생길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었기에 이자야는 더 기분이 불쾌했다. …왜 남의 집에 이런 걸 흘려놓는거야? 기분 나쁘게. -라고 생각하며 핏자국이 드문드문 이어지는 방문으로 향하는 이자야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 !"

방문의 손잡이를 잡는 이자야의 손은 거칠었고 문은 거세게 열렸다. 자고 있는 남자에게 엉망진창 스텝이 꼬일 정도로 다가간 이자야는 성급한 손놀림으로 남자가 덥고 있는 이불을 걷어내었다. 이불을 걷어내자마자 옅게 올라오는 피 비릿내에 아무래도 잔뜩 구겨져있는 이자야의 얼굴이 조금 더 구겨졌다. 상처는 발목에서 약간 올라간 종아리 부분에 있었다. 거의 다 아물어 피가 뭉쳐있는 곳으로 추정한 것이었지만. 시즈오의 몸을 생각하면 그냥 가벼운 것이었겠지만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아무런 치료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집으로 돌아오는 바람에 이 상황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멍청하긴. 자기 몸 상태정도는 알아두란 말이야. 멍청한 괴물. ………무슨일 이라도 난 줄 알았잖아.

**

이자야와 델릭이 드물게 같이 길을 걷던 날이었다. 우연히 사무실에서 일찍 나온 이자야와 편의점이라도 들른 것인지 작은 봉다리를 들고있는 델릭이 집이 얼마남지 않은 거리에서 마주쳤지만 딱히 서로에게 인사할만큼 친한 관계는 아니었기에 -그렇다고 사이가 나쁜건 아니었다- 적당히 눈만 마주치고 서로에게 약간의 거리를 둔 채 걷고있었다. 대화가 트이기 시작한 것은 앞서 걸어가던 델릭이 자신들과는 반대쪽으로 지나가던 쭉빵미인의 잘빠진 다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는 것을 이자야가 보고 나서부터였다. 여자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델릭의 기반으로 된 사람의 얼굴로 저런 짓을 하고 있으니 이자야로써는 당연히 보기 싫었던 모양이었다.

" 너 진짜 안되겠다…."

" 야 내가 뭐"

질린다는 것을 조금도 숨기지 아니하고 보여주는 이자야의 말에 바로 전광석화처럼 받아치는 것이 역시 델릭답다고 생각했다. 뒤에서 따라오는 이자야를 보기위해 델릭이 걸음을 주춤하고 시선을 뒤로 넘김과 동시에 이자야가 옆에서 튀어나왔다. 여자가 그렇게 좋니? 당연한거 아님? 넌 호모라 모르겠지만. …아니거든? 호모는 다 호모가 아니라고 하지, 호모야. 그렇게 따지면 사이케와 그런짓을 하면서도 호모가 아니라고 하는 너도 호모야, 멍청아. 몇 번을 말해줘도 부정할 말을 애써 입 밖으로 꺼내고 싶지 않았기에 이자야는 떠오른 말을 속으로 삼키며 시끄러워, 로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델릭과 이야기를 하느라 옆을 미처 신경쓰지 못한 이자야는 옆에서 지나가던 한 여자와 어깨를 부딛쳤고, 동시에 돌아봤기 때문에 시선이 마주쳐 작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 앗, 죄송."

" ㅇㅇ 용서해드림."

"네가 왜 날 용서하는 건데."

" 자비심 넘치는 델릭님이기 때문이지. 내 옆의 쫌생이랑은 다르게 말이야."

진심으로 자신이 대단하다는 마냥 하는 델릭의 말에 이자야의 미간이 움찔, 했다. 자신은 절대 이런 성격으로 만들지 않았고, 수정할 때에도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는데 이 결과물은 대체 어디서 나왔다는 말인가.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을 디스하는 델릭을 보며 예전,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을 디스하던 츠가루를 떠올리고 나자 이자야는 머리까지 지끈거리는 것 같았다. 왜 만들어준 사람에게 조금도 친절하지 않은 것인지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붙들고 묻고싶은 기분이었다. 물론, 이 얼굴로 자신에게 잘해주거나 하면 그것도 그것대로 소름끼칠 터이지만. 아무튼, 방금 델릭의 말에는 뭔가 거슬리는 부분이 있었다.

누가 쫌생이인데? 너. 하아? 카드내놔, 쫌생아. 싫어.

…….

…………….

메가톤 쫌생이. 메가톤 멍청이 주제에.

누가 들으면 초등학생이 싸우는 것 같을 말싸움이었다. 이자야와 델릭은 걸으면서도 조금도 지지않으려는 듯이 서로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을 툭툭 내뱉었고, 그러는 사이에 어느새 집에 도착해 있었다. 건물의 문 앞에 이르기까지 쫑알거리며 싸우고 있던 둘 중 먼저 들어가기 위해 몸을 튼 사람은 델릭이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며 델릭은 선심쓰듯 어깨를 으쓱이며 입을 열었다.

" 아 겁나 유치하구만. 집에 들가서 일이나 하셔. 델릭님은 간다~."

델릭은 손까지 등 뒤로 흔들며 멋있게 퇴장하려 했지만, 그것을 막기 위해 자신에게 뻗어오는 손이 있었다. 그 손의 주인은 당연하게도 이자야. 한순간에 잡혀버린 손목에 델릭이 자연스레 몸을 이자야를 향해 돌렸다. 한 순간 자신보다 작은 이자야가 커 보인건 단순한 착각이었을까.

" 메가톤 쫌생이 호모한테 기게 해줄께."

이자야의 입술 끝이 어색하게 일그러진 것을 본 델릭의 뒷통수에 한기가 서렸다. …헉 조때따.

**

시즈오가 잠이 깰 때까지 이자야가 자고 있던 적은 처음이었다. 시즈오는 기본적으로 깊고 오래 자는 타입이었고, 이자야는 얇고 짧게 자는 타입이었기에 깨우기 전에는 정오가 다 될 때 까지 일어나지 않는 시즈오가 일어나기 전까지 이자야가 자고 있었던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뜨여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1cm정도 가늘게 열 때 까지 걸린 시간은 10분 남짓이었고-그동안 몇 번이나 잠들어 꿈까지 꿔버렸다.-, 눈동자를 굴려 본 시계의 시간은 오후 2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이자야의 눈 밑에는 옅게 다크서클이 있었다. 누구보다 몸을 험하게 굴리는 것 같은 주제에 의외로 몸을 챙겨서 웬만해선 생기지 않는 다크서클이었는데. 도대체 얼마나 안자고 일만 한 거냐고 불평하며 시즈오는 안고 있는 이자야의 몸을 조금 더 자신의 쪽으로 당겼다. 밖은 여름이라 안까 후끈후끈 했지만, 언제나 차가운 녀석이었다.

이자야가 품 안에서 작게 옹알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기본적으로 깊게 자지 못하는 것과는 다르게 이자야는 거의 꿈을 꾸지 않는다고 했다.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시즈, 하고 자신을 부르는 소리만큼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기에 시즈오는 잠자코 그를 안고 있기로 했다. 이자야는 자신의 품이 따듯해서 좋다고 했다. 남들보다는 체온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자야의 체온이 현저히 낮은 것 또한 사실이었기에 시즈오는 가끔 이자야가 느끼기에 자신은 조금 뜨겁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자신이 안고 있기에 차가운 정도라면 이자야 또한 비슷한 것을 느껴야 정상이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이자야는 항상 시즈오를 안고 자는것을 선택했다. 괜찮으니까 안고 있는 거겠지. 시즈오도 마찬가지였기에 그것에 대한 생각은 지우기로 했다.

그래서, 지금 할 수 있는 생각은 '잠을 잔다.' 밖에 없었다. 잠은 따듯할수록 잘 오니까, 몇 일씩이나 자지 못한 이자야도 자신이 안고 있으면 푹 잘 수 있지 않을까. 이왕 잘꺼면 평생 잠들어버리면 좋을텐데. 하며 내려다 본 이자야의 이불에 잔뜩 눌린 두상이 너무나 동그래서 시즈오는 문득 키스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을 들어 이마를 까면 동그란 이마가 나올거고, 그 밑의 콧잔등도 동그랄거고 그리고 그 밑에는…….

쪽.

시즈오가 어디에 입술을 가져다 대었는지는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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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리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