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2. 21. 21:30






 나는 잘 모르겠어. 명백하게 다음 이야기를 거절하는 그녀의 말에 다이스케는 저도 모르게 울컥한 감정을 애써 억눌렀다. 더 하고 싶은 말은 있었지만 이대로 갔다간 평소처럼 싸움이 날 것 같았기에 다이스케는 차라리 밖으로 나가는 것을 선택했다. 자신의 말에 차가운 반응을 보이는 히카리도 그렇고,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도 않던 이오리 녀석도 그렇고, 하나같이 꽉 막힌 녀석들이었다.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반응이라는 것이 더 짜증이 났다. 뒤에서 쫑쫑거리며 쫓아오는 치비몬의 소리를 들으며 밖으로 나간 컴퓨터실의 밖에는 타케루 녀석이 있었다. 이오리 녀석보다 더 디지몬 카이저를 싫어하면 싫어했지, 덜할 녀석은 아니었으니 어짜피 반응도 비슷하겠지, 싶어 괜히 더 심술을 내며 지나쳤다.

 

 잔뜩 힘을 담아 쿵쾅거리며 계단을 내려와도 도저히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처음부터 잘 되지 않을 것임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냉담한 반응이 돌아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적어도 히카리만은 들어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자신을 외면하던 그녀의 살포시 내려앉은 속눈썹을 생각하며 다이스케는 괜히 분통을 가득 담아 벽을 한 번 걷어찼다. 발끝에서부터 찌르르 올라오는 통증에 눈물이 절로 나왔다. 얼얼한 발가락이 자신에게 바보, 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아 입술을 조금 삐죽였다. 이 녀석들이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이치죠우지 녀석에게 직접 말하는 수밖에! 가방을 고쳐 메는 다이스케의 표정이 단숨에 밝아진다.

 


“ 다이스케, 어디 가려고?”

“ 이치죠우지 녀석에게!”

 


 어깨에 메고 있던 운동 가방에서 고개를 빼꼼 내민 치비몬이다. 다른 녀석이었다면 분명 자신을 막으려 했을지도 모르지만, 치비몬은 자신과 마음이 잘 맞았기 때문에 이해해 줄 것이었다. 에, 어디로? 이어지는 치비몬의 목소리에 교문을 뛰쳐나가려던 다이스케의 뜀박질이 멈칫, 했다. 그러고 보니 자신은 지금 이치죠우지 녀석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 어색하게 웃음을 지으며 치비몬을 바라보자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쉬는 모습이 보였다. 젠장, 괜히 부끄러워졌다. 어떻게든 되겠지! 빽 하고 외치고는 다시 달리기에 시동을 걸었다. 타마치에 가면 어떻게든 만나겠지. 뭣하면 이치죠우지네 학교나, 멘션 앞에서 기다리면 될 일이었다. 워낙 유명한 녀석이었던 터라 뉴스나 잡지만 들여다봐도 대략적인 동선 유추는 가능했다. 디지털 세계에서 돌아온 지 오래 되지 않았으니 다른 곳에는 들르지 않을 거라고 대충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원래 주인에게 돌아가고 싶어. 자신에게 반응하며 빛나는 황금의 디지멘탈이 그렇게 말했다고 생각했다. 처음 들어 올린 용기의 디지멘탈도, 자신에게 날아왔던 우정의 디지멘탈도 말을 하지는 않았기에 착각이라고 생각했지만 뇌 속으로 직접 들어오는 간절한 목소리가 도저히 사라지지 않았다. 기적의 진화를 일으킨 디지멘탈이 찾는 사람은 그것에서 나오던 따스하고 영롱한 빛만큼 다정한 사람일 것이라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간절히 찾는 사람이 누굴까, 하고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이치죠우지 녀석의 것이었다. 처음 녀석이 디지몬 카이저라는 사실을 알았을 땐 배신감에 마구마구 짜증이 났지만, 카이저의 옷을 집어던지고 혼이 나간 것 같은 녀석의 얼굴을 보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어째서 그런 짓을 했느냐는 물음도 진심으로 게임으로 생각했던 것 같은 녀석의 반응에 모두 사라진 것이었다. 어째서 그렇게 지친 표정을 짓는 거야. 어째서 그렇게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는 거야. 자신의 말을 따라서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가는 녀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꽈악 쥔 손바닥 안에 문장의 온기가 남아있는 것 같았다. 얇은 천을 넘어 서서히 스며드는 따스한 감정. 기적의 디지멘탈에서 나오던 간절히 무언가를 호소하는, 상냥하고 따듯한 온기. 그것이 진짜 이치죠우지라는, 어쩐지 그런 기분이 들었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자신도 몇 번이나 시험지에 이름을 깜빡하기도 했고, 중요한 슛을 헛발짓을 하기도 했고, 히카리의 앞에서 농구공을 얼굴로 받아내기도 했고, 실수로 창문을 깨기도 했다. 매번 실수를 하는 것은 자신이고, 그것을 용서해 주는 것은 주변 사람들이다. 실수를 하며 자신은 시험지에 이름을 확인하고 되었고-비록 점수는 변하지 않더라도-, 슛의 정확도도 늘었고, 농구는 아직 조금 부족하지만 실수는 줄게 되었다. 자신은 언제나 그런 환경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이치죠우지에게도 용서해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맞다는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이치죠우지에게 가는 이유는 충분했다.

 

 

 타마치에 도착했을 때엔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천천히 붉어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다이스케는 전에도 와 본적이 있던 이치죠우지가 산다던 멘션 앞을 서성대다가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이미 학교는 끝났을 시간이었다. 사립인 이치죠우지네 학교가 언제 마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늦게까지 잡아 두지는 않을 것이다. 잡지에서 읽기에는 따로 하고 있는 부활동도 없다고 했으니 귀가부일테니 집으로 오는 중이겠지. 이대로 학교로 가는 길을 따라 가면 만날 수 있으리라. 꽤나 엉망인 추리였지만 서둘러 그의 학교로 향하면, 강을 따라 흐르는 길에서 익숙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소리 없이 내려앉은 저녁 같은 이치죠우지였다.

 

 그에게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한참을 생각해봤지만, 그의 얼굴을 볼 때까지 아무런 결론도 내릴 수 없었다. 어색함을 지우려 인사를 하고, 조용히 할 얘기가 있다며 그를 불러내자 이치죠우지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는 것이다. 그 때처럼 지친 표정도, 울 것 같은 표정도, 축구를 할 때의 자신만만한 표정도 모두 지우고 있던 녀석은 입술을 꾸욱 닫고는 조금 망설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시선이 자신에게 닿으려다 금방 강변으로 떨어졌다. 녀석의 표정은 예전과는 다른 서늘함이 감돌고 있었다. 조용히 계단을 내려가는 뒷모습 또한. 멀어져가는 뒷모습은 가까웠지만 잡히지 않을 것 같았다.

 

 조용히 흐르고 있는 강변에선 자신과 이치죠우지의 사이에는 커다란 거리가 있었다. 딱 세 걸음. 그 만큼만 더 걸어가면 될 것 같았지만 온 몸으로 자신을 거부하는 것 같은 녀석에게 더 이상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마치 자신과 그의 마음의 거리처럼. 그것을 육안으로 확인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지만 며칠 전까지만 해도 치고 박고 싸우던 사이였기에 당연한 거리였다. 딱 세 걸음이 모자란 사이를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아 고개를 돌리자 이치죠우지 쪽에서 먼저 입을 열었다.

 


“ …그래서, 할 얘기는?”


 

 함께 축구를 하면서 들었던 자신감으로 가득한 목소리도, 디지몬들에게 명령을 하던 찢어질 것 같은 목소리도, 엎드려 절규하던 슬픔이 흘러내리는 목소리도 사라져버린 녀석은 조금 더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렇게 꺼질 것 같은 소리를 낼 수 있었으면서, 마음 속에 따듯하게 내려앉는 소리를 낼 수 있었으면서 어째서 그런 짓을 한 거야. 다시 튀어나올 것 같은 물음을 억누르며 다이스케는 입 안에서 조금 말을 골랐다.

 


“ 모두와 디지몬들에게 사과해주지 않을래? 물론, 네가 그럴 생각이 있을 때의 이야기지만.”

 


 기회는 이쪽에서 만들어줄게. 어때? 조용히 묻는 자신의 말에 반응하는 녀석의 표정을 살피고 싶었지만 다이스케는 조금 더 강가에 시선을 집중했다. 물의 흐름을 따라 흔들리는 자신의 표정이 복잡하다.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해놓고,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해놓고 그와 지신의 거리는 이 정도였던 것이다. 또 다시 거절당할까 무서웠다. 이치죠우지 녀석도 싫다고 한다면 그와 모두의 거리는 영원히 좁혀지지 않는 것이다. 세 걸음, 겨우 세 걸음 남았는데. 긍정하는 녀석에게 다가가도, 도저히 좁혀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 …하지만, 사과한다고 용서해줄까?”

 


 녀석의 시선이 조금 더 아래로 떨어졌다. 조심스럽고, 머뭇거리는 그의 심정이 사르르 묻어난다. 표정은 바뀌지 않지만 그럼에도 보이는 감정이 안쓰럽다. 심한 짓을 했지. 용서 받을 수 없는 짓을 했지. 녀석을 용서할 수 없는 다른 아이들의 감정도, 다른 아이들에게 다가갈 수 없는 이치죠우지 녀석의 감정도 이해할 수 있었기에 다이스케는 그를 향해 웃어줄 수 있었다. 자신이 그를 이해한 것처럼, 분명 다른 아이들도 이해해줄 날이 올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조용히 내려앉은 노을에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보며 이치죠우지 녀석은 무슨 생각을 할까. 자신처럼 확연히 보이는 거리감이 싫었을까. 아니면 자신과 있는 것 자체가 불편할까. 동료라는 자신의 말에 놀라며 고개를 돌리는 녀석의 머리칼이 가득 퍼진 붉은 빛을 받아 하늘하늘 빛난다. 겨우 시선이 마주한다. 녀석의 눈동자에 자신이 비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기쁘다. 새하얀 피부에 흘러내릴 듯이 가득 노을을 담고 있는 녀석의 놀란 얼굴은 자신과 같은 남자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예쁘다. 어쩐지, 계속해서 시선이 가는 녀석이었다.

 


“ 미안, 그 동료에 들어가는 건 사양할게.”

 


 다시금 시선을 돌리며 조용히 속삭이는 녀석의 표정에서 다시 감정이 사라졌다. 덤덤하게 강물을 바라보던 녀석이 자신이 다가가기가 무섭게 발걸음을 돌린다. 간신히 좁혔던 육체적 거리조차 용납하지 않는다는 듯이 빠른 걸음으로 멀어져가는 녀석의 뒷모습을 자신은 그저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조금, 빨랐던 걸까. 조급하게 나아가던 발걸음이 자신과 거리가 어느 정도 벌어지자 안정된다. 견고히 쌓아올려져 있는 벽의 너머를 자신은 아직 완전하게 바라볼 수 없었다.

 

 며칠 전까지 진심으로 싸우던 상대다. 녀석은 아직 디지털 세계에 대한 것도 제대로 알지 못했고, 자신과 선택받은 아이들에 대한 것도 알지 못했다. 뉴스에선 다시 돌아온 녀석이 몇 날 며칠이고 잠들어 있다는 소리도 했던 것 같다. 섬세함이 부족했던 걸까, 하는 후회가 조금 들었지만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이 위태한 녀석을 그대로 놔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동료가 되지 못하는 이유도, 자신들에게 거리를 두는 이유도 조금 더 시간을 두고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 힘들구나, 동료라는 건.”

 


 귀여운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치비몬을 끌어안아주며 다이스케는 그러게, 했다. 처음엔 싸우는 것만을 생각했다. 정체를 밝혀내고 그의 야망을 막을 것이라고, 반드시 결판을 낼 것이라고 다짐했었다. 다가가지 못 한 세 걸음. 그것을 좁혀나가는 것이 새로 그들에게 주어진 과제였다.

 

 고개를 돌려 바라본 붉어진 강물에 비친 녀석의 모습이 사라지지 않는다. 꽈악 쥔 주먹에서 다시금 따스한 기운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그것이 이치죠우지의 진심이라고, 다이스케는 그렇게 생각했다. 소리 없이 내려앉은 노을에 마음 한 편이 간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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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른 합작에 다이켄으로 참가했습니다.

한 달이 넘었는데도 합작이 공개되지 않아 올려봐요. 합작이 공개되면 주소 첨부하겠습니다


Posted by 하리쿠
2016. 2. 6. 01:23







 다이스케 군은 항상 타케루 군 이야기만 하는구나?

 

 모처럼 히카리와 단 둘이 하교를 하는 날이었다. 히카리에게 잘 보여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차서 엄청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던 다이스케가 눈을 조금 깜빡였다. 에, 나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더라? 자신이 방금 전까지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아 바보같이 눈만 깜빡이고 있자 자신의 표정을 본 히카리가 꺄르르 웃었다. 친해진 것 같아서 다행이야. 살짝 앞서나가는 그녀의 뒤를 쫓아가며 다이스케는 괜히 입술을 삐죽인다. 모처럼 히카리와 단 둘이 있는 시간에 타케루의 이야기를 했다니, 엄청난 시간 낭비를 한 것 같았다. 좀 더 그녀에게 잘 보일만한 이야기를 했으면 좋았을 텐데. 괜히 이 자리에 없는 타케루를 마음속으로 탓하며 다이스케는 다시금 히카리를 향해 입을 열었다. 오늘 점심시간에 한 축구에서 골을 넣은 이야기, 오후 수업이 졸렸던 이야기를 늘어놓았지만 아까 전 히카리가 자신에게 한 말이 도저히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내가 타케루 녀석의 이야기만 한다고?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내가 어째서 자신에게 이득도 없는 녀석의 이야기만 한단 말인가. 공부도 자신보다 더 잘 하고, 축구는 내가 더 잘하지만 농구라던가 다른 쪽 운동은 운이 좋아서 점수를 더 잘 받고(절대로 시험 날 타케루 녀석이 운이 좋았고, 자신이 운이 나빴을 뿐이라고 다이스케는 믿고 있다), 여자애들의 인기만 독차지하고, 특히 히카리의 관심을 고마운지도 모르고 받고 있는 녀석을! 아무리 수업 시간에 조용히 칠판을 바라보고 있는 녀석의 뒤통수를 노려봐도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다이스케는 어쩐지 심통이 나는 것이다. 수업시간에 집중을 하지 않는다며 선생님께 교실 뒤로 나가 있으라는 벌을 받게 되었을 때, 자신을 바라보며 작게 웃는 녀석이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것은 여담이었다.

 


“ 다이스케는 항상 타케루 군의 험담만 하잖아?”

 


 질투쟁이. 가볍게 덧붙인 미야코가 컴퓨터를 향하고 있던 시선을 돌려 자신을 살짝 흘겨본다. 입술을 삐죽거리고 있는 것을 봐서는 그녀도 자신에게 심술을 내고 있을 뿐인 것 같았지만, 다이스케는 고개를 픽 돌리며 질투쟁이라 미안하다! 한다. 수업이 끝날 때까지 머릿속에서 타케루 녀석에 대한 것이 사라지지 않아서 다른 녀석들에게도 물어보기 위해 종례가 끝나자마자 컴퓨터실로 달려왔다. 하필 있던 사람이 미야코였기에 조금 망설였지만 예상했던 것처럼 심술이 잔뜩 섞인 대답이 돌아온다. 다른 녀석이 있었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이오리 녀석일지라도 비슷한 대답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곧 뒤따라왔다. 대체 뭘 잘못했다고 주변에 적 밖에 없는 것인지 괜시리 짜증이 났다.

 

 아, 됐어! 돌아갈래! 괜히 잔뜩 짜증을 잔뜩 담아 외치며 쿵쾅쿵쾅 뒷문으로 향한다. 뒤에서 어디 가냐는 미야코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 같았지만 일부러 흥! 하고 외치며 무시했다. 자신이 화가 난 이유가 그녀의 탓이 아님을 알고 있었지만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다른 녀석들이 오기 전에 머리나 식힐 심산으로 밖으로 나가기 위해 뒷문을 향해 손을 뻗는 순간, 드르륵, 하고 문이 먼저 열렸다. 아, 젠장. 제일 보기 싫은 순간에 제일 보고 싶지 않은 녀석이 눈앞에 나타나고 난리다.

 


" 다이스케 군? 한참 찾았잖아. 먼저 가면 간다고 말이라도, “

“ 내버려둬!”

 


 확 치밀어 오르는 기분에 소리를 지르고 나니 또다시 심술을 부려버렸다는 생각에 아차 싶었다. 뭐야, 그렇게 말 할 필요까지는 없잖아. 살짝 인상을 찌푸리던 타케루가 짧게 한숨을 내쉬더니 됐어, 하고 걸음을 옮긴다. 자신을 지나쳐간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면서도 차마 잡을 수 없어 다이스케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녀석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하고 싶은 말도, 감정도, 표현도 모두 숨긴 채로 혼자 납득해버린다. 순간순간 느낀 것을 바로 표현하는 자신과는 정 반대인 그의 모습에 항상 짜증이 났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면 되잖아. 타케루 녀석의 뒤에서 들어오던 히카리와 자신의 뒤에 있던 미야코가 작게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렸다. 꽈악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녀석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어쩐지 뒤를 돌아볼 수 없었다.

 

 디지털 세계에 가서도 타케루와의 어색한 분위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을 배려하여 괜히 이오리, 히카리와 같은 팀이 되겠다며 먼저 가버린 미야코도, 어둠의 탑에 협공을 날리는 화염드라몬과 페가수스몬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었다. 잔뜩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상황을 모르는 호크몬과 아르마지몬의 등을 쭉쭉 밀어대는 미야코의 뒷모습을 보며 타케루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자신들이 싸우는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고, 차라리 평소처럼 내버려 뒀으면 좋았을 것을. 둘만 남게 되는 것은 역효과인 것도 모르고.

 

 큰 소리를 내며 쓰러져가는 어둠의 탑을 바라보는 타케루 녀석의 표정엔 색이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는 얼굴. 어째서 자신은 그렇게도 타케루에 대해 안 좋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가. 잘난 녀석에게 질투심을 느꼈기 때문에? 히카리와 친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어서? …속을 알 수 없는 건 어떤 사람이나 똑같은데, 왜 하필 타케루 녀석만?

 

 어둠의 탑을 쓰러뜨렸다며 칭찬해 달라는 듯이 안겨오는 파닥몬을 끌어안은 타케루 녀석이 자신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해냈구나, 다이스케 군. 평소와 다름없이 미소 짓는 녀석의 표정에서 위화감이 느껴진다. 여전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는 얼굴. 도대체 정답을 찾을 수 없는 내 마음속처럼. 왜, 하필 타케루 녀석만? 마치 딱 달라붙은 것 같은 입술을 간신히 떨어뜨리며 다이스케는 그래, 했다.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는 것 같다.

 

 


“ 나 잠시 교실에 올라갔다 올게. 먼저 가.”


 

 다 같이 학교를 빠져나왔을 때 즈음이었다. 갑자기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멈추어 선 타케루가 숙제를 놓고 와서, 한다. 그러고 보니 오늘 수학 숙제가 있었던가. 교실의 뒤에 나가 서있으면서도 여전히 수업에 집중이 되지 않아 선생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않은 탓인가 숙제의 유무자체도 가물가물하다. 만약 있어도 그 전 쉬는 시간에 풀거나 제대로 풀어가지 않아 혼나는 것이 일상다반사인 다이스케와 다르게 타케루는 성실하게 숙제를 해가고는 했다. 과연 인기 많고 공부 잘하는 이케맨이라는 건가. 여전히 삐딱한 생각만 차오른다.

  


“ 나도 같이 가, 타케루 군.”

“ 앗, 나도!”

 


 히카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외친 다이스케가 학교 방향으로 몸을 돌린다. 히카리가 간다고 하기에 자동 반사적으로 같이 가겠다고 한 것이었지만 또다시 녀석에게 질투를 해버렸다는 생각에 아차, 싶었다. 하지만 타케루 녀석과 히카리를 단 둘이 보내기는 싫다는 마음이 더 컸기에 다이스케는 재밌다는 듯이 웃는 타케루의 얼굴을 조금 노려볼 뿐이었다. 복잡한 자신의 속도 모르고, 언제나와 같은 반응.

 

 잠깐, 히카리. 짧게 외치며 미야코가 학교로 향하려던 히카리의 손을 잡는다. 생글생글 웃는 얼굴을 한 그녀의 얼굴에서 무언가 꿍꿍이를 꾸미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미야코와 시선을 마주하던 히카리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아! 하고 작은 탄성을 뱉었다.

 


“ 오늘 미야코 언니랑 약속이 있었어. 미안해, 타케루 군! 다이스케 군과 같이 다녀와!”

 


 여전히 웃는 얼굴을 한 히카리와 미야코가 꺄르르 웃으며 이오리까지 데리고 가버리는 것이었다. 상황파악이 되지 않은 삐삐몬이 무어라 말하려는 것을 손바닥으로 입을 막아버린 미야코가 어색하게 웃었다. 내가 같이 가겠다는 이유가 뭐였는데! 뒤도 보지 않고 떠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다이스케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실망스러운 마음에 고개가 푹 숙여진다. 옆에서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아하하, 하고 웃던 타케루가 학교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한 번 따라가겠다고 말한 이상 히카리가 가버렸다고 해서 철회할 수는 없었기에 하는 수 없이 뒤를 따르던 다이스케의 발걸음이 힘이 빠져 터벅터벅했다.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내내 타케루와 자신 사이에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괜히 어색한 마음에 쳇, 이라던가 히카리랑 가고 싶었는데, 따위의 볼멘소리를 중얼거렸지만 앞서가는 타케루에게는 반응이 돌아오지 않는다. 진심이 아니었는데. 물론 히카리와 함께 가는 것을 원했던 것은 맞지만 타케루 녀석과 있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고는 다시 입술을 삐죽인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면 되는데, 그러지 않는 타케루 녀석이 마치 전염되어 온 것 같았다.

 


“ 다이스케 군.”

 


 타케루가 교실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을 보며 다이스케는 삐딱하게 교실 벽에 기대어 섰다. 그의 자리 앞에 서는 것까지 흘끗대다 시선을 창밖으로 옮긴다. 당번이 닫는 것을 깜빡했는지 열려있는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디지털 세계에서 돌아왔을 때보다 훨씬 밖이 어둡다. 집에 돌아가면 밤이 되겠지, 저녁 먹기 전까지 돌아갈 수 있을까, 나도 숙제 할 공책이나 들고 갈까, 따위의 생각을 하며 흘러가는 붉게 물든 구름을 바라보는데 옆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팔짱을 끼고 있던 다이스케가 창밖을 보던 그대로 눈동자만 굴려 타케루를 바라본다. 한 쪽 손에 노트를 쥐고 있던 타케루가 자신을 보고 있다. 그의 뒤에서 커튼이 조금 흩날렸다.

 


“ 내가 싫다면 그렇게 말해도 괜찮아.”

 

 

 교실 안에 노을이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확산된 빛에 물들어가는 교실이 붉다. 작은 바람이 미아처럼 교실 안을 돌아다녔다. 조금 사각거리는 얇은 금색 머리칼을 하고, 하얀 피부를 노을로 물들이고 있는 타케루의 표정은 여전히 알 수 없었지만, 조금 슬퍼 보인다고 다이스케는 생각했다. 그에게 무어라 말을 해야 하는 지 알 수 없어 오물거리던 입술이 꾸욱 닫힌다. 입 안에서 이가 갈리는 소리가 울렸다. 복잡한 자신의 마음도 모르고, 고개를 조금 숙인 타케루가 고개를 들어 올리며 평소처럼 웃었다. 노을이 반짝였다. 교실바닥과 실내화가 마찰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자신은 타케루 녀석이 싫은 것이 아니었다. 자신보다 공부를 잘 하는 녀석도, 운동을 잘 하는 녀석도, 심지어 축구를 잘 하는 녀석도 한참은 있다. 인기가 많은 녀석도 있다. 물론 자신과 같은 나이 중에서 히카리와 녀석만큼 친한 남자애는 없었지만, 그렇다면 자신이 더 히카리와 친해지면 되는 것이다. 그럴 기회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심술을 내는 것은, 그러니까, 타케루 녀석이 옆에 있으니까. 자꾸 시선이 가서, 녀석이 자꾸만 보이니까, 조금 울컥하는 기분이 되어버려서. 사실 숨겨오던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그것을 그대로 내비쳐 보이기도 부끄럽고, 심지어는 마주하기조차 민망해서. 자신의 마음을 자신조차 알 수 없어서.

 

 천천히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타케루의 걸음걸이가 빠르다. 또 다시 녀석을 잡을 틈도 없이 옆모습만 바라보는 것은 싫었다. 대체 왜 녀석에게만 관련되면 감성적이 되는 것인지, 괜히 무언가 막혀 있는 것처럼 속이 답답해지는 것인지, 자꾸만 시선 끝에 녀석이 걸리는 것인지 누군가 아는 사람이 있다면 멱살이라도 잡고 물어보고 싶은 기분이었다. 자신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않고 지나치려는 녀석의 흔들리는 손목을 재빨리 잡아챘다. 한 손 가득히 들어오는 손목. 몸을 돌리자 조금 놀란 눈을 한 타케루와 시선이 마주쳤다. 커튼이 거칠어지는 바람에 이리저리 마찰하는 소리가 들렸다.

 


“ 나는!”

 


 또 다시 소리를 질러버리는 자신이 싫었지만 감정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막혀있던 댐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감정이라는 물들이 걷잡을 수 없이 자신에게 몰아치고 있었다. 자신은 그것에 이름을 붙일 수 없다. 11년밖에 살지 않은 자신은, 이것이 어떠한 감정인지조차 정의하지 못하니까.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하고 싶은지 조차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 그를 그냥 보내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닿아온 손목에서 두근, 두근 하는 맥박 소리가 손바닥을 통해 전해져왔다. 순간 몸이 화끈 달아올랐다.

 


“ …네가 싫지 않아.”


 

 꽉 쥐었던 손에서 조금씩 힘이 빠져나갔다. 한참을 말을 골랐지만 더 이상 어떤 말을 해야 좋은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의 감정이 가득 묻어나온 그 말은 매우 부끄럽다고 생각했다. 얼굴까지 치밀어 오르는 열기를 보이고 싶지 않아 고개를 숙였다. 힘 빠진 손에서 타케루의 손목이 빠져나가 툭, 하고 떨어졌다. 타케루의 얼굴을 보고 싶었지만, 볼 수 없었다. 그의 대답을 듣기조차 부끄러워 도망가고 싶었다. 스읍, 하고 그가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목소리가 들리기 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생각했다.

 


“ ……응.”

 


 타케루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귀 속에 확실히 박혀 들어왔다. 손목이 빠져나간 손바닥 안에서 그의 온기가 두근거리고 있었다. 대체 이 두근거림을 무어라 설명해야할 것인지, 다이스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교실 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잦아들었다.

 

 언젠가, 어른이 되면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

디지몬 다이타케 합작 [그 날의 우리]에 소학생 버전으로 참여했습니다

합작은 이쪽-> http://moment0710.tistory.com/notice 에서 감상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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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리쿠
2016. 2. 5. 23:27

- whiteberry의 나1츠2마츠리 라는 곡의 가사를 보자마자 오사무의 생각이 났습니다. (숫자는 검색 방지용)







 나에게 새 유카타를 입혀주시던 마마가 울고 있었다. 옷장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던 곱게 다려진 새 옷의 의미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 눈물의 의미를 묻지 않았다. 괜히 눈물이 많은 그녀에게 다시금 슬픈 기분을 안겨주고 싶지 않았다. 몇 번이나 빳빳하게 서있는 옷깃을 매만져주고, 애절한 손길로 오비를 몇 번이나 정리해주며 웃는 그녀의 뺨에 한 줄기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것을 모르는 척 하느라 애써 시선을 그녀의 손끝으로 내렸다. 잘 어울리는 구나, 켄. 울음 섞인 목소리에 괜히 목이 메였다.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어색하게 입 꼬리를 올려 웃는다. 자신의 체형보다 조금 큰 옷. 그럼에도 그녀는 기쁜 듯이 울면서 웃고 있었다.


 오사무가 키가 많이 컸구나. 자신이 유치원에 다니던 때, 형의 옷맵시를 만져주던 마마께서 기뻐하며 말했었다. 발목 위로 올라오는 유카타가 어색한지 형이 볼을 조금 긁적였다. 초등학교에 올라간 형은 키가 자신이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형의 키가 클수록 점점 그가 자신에게 닿을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리는 것 같아 켄은 몇 번이나 그의 옆에서 발끝으로 서서 키를 재보고는 했다. 형보다 크고 싶어서 우유도 남기지 않고 마셨지만 격차는 좁혀지지 않아 입술을 삐죽이던 어린 나날. 형이 커져서 못 입게 된 옷을 또다시 물려 입는 것이 싫다는 어린 생각을 하며 울상을 짓던 어린 나날이 있었다.


 짧은 유카타를 입은 형과 형의 유카타를 입은 자신이 손을 꼬옥 붙잡고 마지막으로 갔던 여름 축제는, 솔직히 말해서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 이후로 형은 여름 축제를 편안하게 즐긴 적이 없었다. 아직 어린 자신은 몇 번이나 함께 하자고 손을 이끌었지만 형은 그런 자신의 손을 거칠게 쳐내곤 했다. 3학년, 형제 자매와 함께 여름 축제를 즐기러 간다는 반 친구들의 말에 마마를 졸라 간신히 허락을 얻어냈을 때엔 이미 축제 시즌이 끝난 후였다. 그러고 보니 오사무의 유카타가 짧았지, 하고 생각난 듯이 중얼거린 그녀는 그 후 분명 새 유카타를 샀을 것이다. 그대로 아무에게도 입혀지지 못한 채로 옷장 깊숙한 곳에 들어가게 되었겠지만.

 

그래, 그렇게 형은 12번째의 여름을 맞이하지도 못한 채로 그렇게도 짧은 생을 끝마쳤더라.

 


 자신의 마지막 여름 축제는 한낮이었다. 형은 사방으로 흩어져있는 길거리 상점들을 거들떠도 보지 않고 앞으로 쭉쭉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함께 축제에 가면 안 되냐고 손을 뻗고 싶었지만, 몇 번이나 거칠게 거절당했기 때문에 자신은 차마 그의 손끝에조차 닿지 못하고 있었다. 얼얼한 손등과 깜짝 놀라 주저앉은 자신. 두꺼운 안경알 속에 잔뜩 화난 얼굴을 하고 자신을 내려다보던 형의 모습은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다. 자신도 모르게 축 처진 어깨를 하고 종종걸음으로 형의 뒤를 밟았지만 그는 여전히 앞만 보고 걷고 있었다. 자신을 데려다주기 위하여 학원에 가는 방향이 아닌 쪽으로 오게 된 형은 조금 화가 나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하면 형의 화를 풀어줄 수 있을까, 하며 조금 눈치를 살피던 자신은 주머니 속에 손을 넣었다가, 동그랗게 잡히는 것에 방긋 웃었다.



“ 형아야, 선물!”



 자신이 잠시 길을 벗어난 것도 모른 채로 앞으로 나아가던 형의 걸음이 멈칫했다. 아직 제대로 개점도 하지 않은 가게에 달려 갔다 오느라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형의 웃는 얼굴을 볼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자신의 손에 쥐어져있던 사과 사탕을 한 번, 자신의 얼굴을 한 번 바라보던 형의 얼굴엔 아무런 표정도 없었기에 잠시 자신은 실수를 한 것인지 고민을 했어야만 했다. 사과 사탕이 아니라 초코 바나나를 사왔어야 했나, 아니면 형은 이제 여름 축제가 싫어진 것일까, 를 고민하는 사이에 자신을 내려다보던 형의 얼굴이 자신에게로 가까이 다가왔다. 사각, 하고 사과가 깨물리는 소리가 들렸다.



“ 나머지는 너 먹어.”



 짧게 중얼거리며 앞서나가는 형의 발걸음이 빨랐다. 아직 학원 시간까지는 한참 남아있었지만 어딘가 급해 보이는 그의 모습에 자신은 따라갈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 입밖에 먹어주지 않았지만, 그가 화내지 않고 자신의 선물을 받아줬다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잇자국이 나있는 사과의 옆을 깨물자 옅은 캐러멜 향과 상큼한 사과맛이 느껴졌다. 달달했다. 그것이 아마, 그의 마지막 축제 기억이겠지.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집 밖으로 나설 때엔 붉은 눈가를 하고도 자신을 향해 기쁜 듯이 웃어주고 있는 마마의 얼굴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형의 옷은 자신에게 약간 컸지만, 그것으로 괜찮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자신에게 작아질 즈음엔 아마 자신은 형보다 커져 있겠지. 형보다 크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더 이상 자라지 않는 형은 필연적으로 자신보다 작을 수밖에 없었다. 웃고 있는 마마가 누구를 보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처음으로 형의 옷을 물려 입은 것이 기뻤다.


 형은 아마 입을 수 없던 이 유카타를 입고 여유롭게 여름 축제를 즐기고 싶을 것이다. 여유롭게 자신과 사과 사탕도 먹고, 초코 바나나도 먹고, 금붕어 낚시도 하고, 풀밭에 누워 낮잠을 즐기는 고양이처럼 자유롭게 불꽃놀이를 구경하고 싶었겠지. 다이스케들과 함께 올려다 본 밤하늘에 수놓아진 이 불꽃을 학원이 끝나고 돌아오던 형은 보고 있었을까. 함께 여름 축제를 즐기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그리워하고 있었을까. 그 때 꼬옥 맞잡은 손의 온기를 느끼며 조금쯤은 웃었을까.

 

 형이 있던 여름은 먼 꿈의 속.

 

 하늘로 사라져 버린 위로 쏘아진 불꽃.

 

Posted by 하리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