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8. 22. 21:19

* 절단 소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타이치와 야마토가 병들어있습니다.

 

 

 

 





 

 

 

 

 똑똑. 문 앞에 선 죠가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조용한 그 집안에서는 들릴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죠는 얌전히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시선을 조금 옆으로 돌리면 이시다 야마토, 라고 쓰인 문패가 있다. 이 집안에 있을 그를 생각하기만 해도 긴장감에 침을 꿀꺽, 하고 넘어간다. 양 손으로 메고 있던 크로스백의 가방끈을 꼬옥 쥔 죠가 문 안쪽에서 조용히 들리는 발소리에 문에서부터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자신이 두드리고, 문이 열리기까지엔 시간이 조금 소요된다. 그것이 그들이 자신을 받아주기까지의, 그들만의 방어막이었다. 약간의 의식 같은 것이었다. 그 시간동안 자신은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더라도 놀라지 않는다, 는 다짐을 한다. 문이 열리면 흘러나올 공기의 무거움의 무섭다. 상상만 해도 짓눌려버릴 것 같은 느낌에 죠는 차라리 빨리 문이 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시간을 견디면 잠시나마 그들의 사이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것이 자신이 자신에게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위로였다.


 문은 소리 없이 열린다. 천천히 열린 문 안에서 나온 타이치는 생각보다 멀쩡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자신을 초대하고도 몇 번이나 차마 못 볼 몰골로 나온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라, 죠는 처음 타이치를 마주하는 것부터 긴장을 하고 있어야만 했다. 왔어? 그런 죠의 마음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는 듯이 타이치는 능숙하게 웃음지어 보인다. 휘어진 눈동자가 자신의 모든 것을 꿰뚫어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여기에 오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도, 그럼에도 보고 싶다는 모순된 마음으로 부름에 응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모르는 척 하는 그를 알고 있었다. 애써 침착하게 대답하며 죠는 천천히 집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식은땀이 목덜미를 타고 삐질삐질 흘렀다. 집 안의 진득한 공기가 자신을 집어삼킬 것 같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돌아갈 수는 없었다. 유난히도 야마토의 집 안 공기는 질척하게 들러붙어온다. 이것의 출처가 자신의 마음인지, 아니면 타이치의 행동인지, 그것도 아니면 야마토의 심정인지 알 수 없었다.


 신발을 벗고 집 안에 발을 들이면 제일 먼저 보이는 거실을 죠는 제대로 바라볼 수 없었다. 이곳에 붉은 것이 가득했던 순간을 자신은 알고 있다. 아, 그래. 지금 이러한 방문의 시작지점이었다. 여름방학의 시작. 평소와 다름없이 공부를 하고 있던 날, 평소와 다름없이 타이치에게서 연락이 왔다. 삑삑 울리는 휴대폰을 한 번 바라보고, 오늘도 타이치 녀석은 건강하구만, 이라던가 이번 방학에도 일주일 전에 방학 숙제를 도와달라며 연락이 오는 거 아니야? 따위의 평소와 다름없는 생각을 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받았었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마자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시간 있냐고 물어보는 타이치의 가벼운 목소리에조차 평소와 다름없음이 느껴져 죠는 마음이 매우 느슨해져있다고 할 수 있었다. 타이치의 말을 들으면서도, 조금의 위화감조차 느낄 수 없었을 만큼.



“ 지금 야마토네 집으로 와줄 수 있어? 붕대나 소독약 같은 거 들고.”


“ 응? 다쳤어? 나보다는 병원에 가는 쪽이,”


“ 아니, 죠가 와야 해.”



 자신의 말까지 끊어가며 단호하게 요구하는 타이치의 목소리에 고개를 조금 갸웃하긴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럼에도 크게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의료도구를 챙겨 밖으로 뛰어나간 것은 타이치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평소와 다름없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병원이 안 된다는 것은 혹시나 디지몬이라는 소리가 아닐까, 가끔 열리는 디지몬 세계로 가는 문에서 아구몬이나 가부몬이 나왔을 지도 몰라. 어쩌면 고마몬도 함께 있지 않을까. 그 중 누군가가 다친 걸지도 몰라. 디지몬의 일이라면 일반 병원에는 갈 수 없겠지. 그 세계에서 돌아온 이후로 더 중점적으로 의학 공부를 했다고 해도 이제 겨우 중학교 2학년밖에 되지 않은 일반 학생인 자신이 어느 정도까지 도와줄 수 있을까, 따위의 생각을 하며 자신은 꽤나 침착하게 야마토의 집에 다다랐던 것 같다. 초등학생 때의 자신이라면 더 허둥지둥 대며 어쩔 줄 몰라 했을 텐데, 그래도 자신이 성장하긴 했구나, 하는 뿌듯함마저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 아, 왔어?”



 벨을 누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문을 열며 자신을 맞이하는 타이치의 목소리는 경쾌하기까지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서 들어와, 들어와. 야마토의 집이 마치 자신의 것인 마냥 자연스럽게 인도하는 그를 보며 곧 너네 집이냐, 하는 야마토의 자연스러운 딴지가 들어올 것까지 예상하며 짧게 웃으며 들어선 야마토의 집에서는 피비릿내가 나고 있었다. 온 집 안을 가득 메울 정도로 꽉 찬 냄새에 당황한 죠가 타이치를 향해 입을 열려는 순간 손목을 잡혔다. 신발조차 벗지 못한 채 타이치의 손에 이끌려 거실로 향한 죠가 본 광경은, 절대로 그가 상상하지 못할 범위 내였다.


 피 범벅이 된 거실 안에 두 다리가 잘린 야마토가 쓰러져 있었다. 아니, 쓰러져 있다기 보단 얌전히 누워 있었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잘려진 다리와 허벅지의 절단면을 본 순간 죠는 소리조차 지르지 못한 채로 뒷걸음질을 쳤다. 야마토와는 멀어지는 자신과는 다르게 터벅터벅 야마토에게 다가간 타이치가 천천히 손을 뻗어 지혈을 위해 묶어놓은 것 같은 절단면의 약간 위를 쓰다듬는다.



“ 이제 어떻게 해야 해? 일단 찾아본 대로 해보려 했는데, 영 제대로 안 돼서. 나, 손재주 없으니까 말이야.”



 너무나도 무덤덤하게 말을 이어가는 타이치에게 새삼스레 위화감이 느껴진다. 잠시 숨을 멈추었을 정도로 당황한 것은 맞았지만, 이대로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야마토에게 큰 일이 생길 수도 있었기에 죠는 애써 자신을 다잡으며 가방 안에 넣어둔 의료용 장갑을 꺼내었다. 매, 맨 손으로 만지만 안 돼. 상, 처가 더, 덧날 수도…. 띄엄띄엄 말을 꺼내는 와중에서도 제대로 야마토의 환부를 바라볼 수 없어 시선이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잔인한 영화도 본 적 있었고, 집에 산처럼 쌓여있는 의료용 도서에 있는 더 징그러운 사진도 잔뜩 봤었지만 그 대상이 야마토라고 생각하니 몸이 떨릴만큼 무서웠다. 피부에 달라붙어오는 의료용 장갑을 낀 후에도 멈추지 않는 떨림에 죠는 주먹을 꾹 쥐고는 야마토의 옆에 주저앉았다. 헉, 헉, 하는 짧은 호흡이 들려온다. 다행히도, 아직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듯 했다. 죠가 야마토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을 보며 타이치가 이리저리 널려있던 물건들을 하나 둘 씩 챙겨온다.



“ 뭐가 괜찮을지 몰라서 다 준비했었어. 필요하면 써도 돼.”



 약국에서 구매할 수 있는 최대한의 용량의 과산화수소수, 알코올, 포바딘 같은 것들이 한 곳에 모이기 시작한다. 자신이 가져온 것보다 많은 양의 붕대와 거즈도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처음부터 이 상황을 예상한 것 같은 준비성에 죠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최악의 상황을 애써 지우려 애를 써야만 했다. 그럴 리가 없었다. 왜 야마토가 이렇게 있는 것이며, 타이치는 여기에 있는 것일까. 왜 타이치는 이렇게도 침착하게 자신을 부른 거지? 자신은,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떨리는 손으로 야마토의 환부를 향해 과산화수소수를 쏟아 부은 죠가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 나, 나보다는 빨리 병원에 가는 편이….”


“ 가지 않아.”


“ 야마토가 위험할 수도…!”


“ 아니, 야마토는 죽지 않아.”



 어째서 그렇게 단정할 수 있는 거야? 하고 묻고 싶은 만큼 단호한 목소리였다. 한 번 고집을 부리면 잘 철회하지 않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자신이 아는 타이치는 상황 판단을 못 할 정도는 아니었다. 자신은 아직 의대에 다다르지도 못한 그저 의대 지망인 중학생이고, 야마토는 진짜 환자다. 심지어 제대로 된 지식도 없는 자신이 보더라도 심각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왜 이렇게까지 고집을 부리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실제로 환자를 대하는 것은 팔이 부러진 오가몬을 휴지로 치료해준 이후 처음이다. 그럼에도, 그 때의 자신은 생각보다 침착하게 응급처치를 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야마토에게 조금이나마 더 도움이 될 수 있을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며.


 아직도 거실을 보면 야마토가 누워 있던 그 때가 생각이 난다. 그리고, 아마 타이치는 자신이 그러한 탓으로 거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몇 번이나 타이치의 부탁으로 야마토의 집에 왔지만 그 이후로는 야마토가 거실에 누워있지 않았다. 자신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라고 생각한다. 곧바로 야마토의 침실로 걸음을 옮기면 자고 있었던 것인지 잔뜩 졸린 눈을 한 야마토가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로 끔뻑끔뻑 졸고 있었다. 잘려있는 허벅지를 조이고 있는 붕대는 타이치가 틈틈이 갈아주고 있는지 깔끔하다. 바닥에 늘어져있는 얼룩덜룩한 붕대와 의료용 장갑, 한데 뭉쳐진 거즈를 순서대로 바라보던 죠의 얼굴이 급격이 빨갛게 물들었다. 팟, 하고 소리가 날 정도로 고개를 돌려버린 죠를 보던 타이치가 깔깔 웃으며 자신이 바라보고 있던 것을 손에 쥔다.



“ 아하하, 미안, 미안. 청소하는 걸 까먹었어.”



 깔끔하게 포물선을 그리며 쓰레기통 안으로 들어가는 고무에서 정체를 알고 싶지 않은 희뿌연 액체가 조금 흐른다. 이런 것까지는 알고 싶지 않았는데. 빤히 바라보고 말았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아 서둘러 의료용 장갑을 낀 죠가 야마토의 다리에 둘러져 있는 붕대를 푼다. 빨리 제대로 청소하라는 야마토의 잔소리에 타이치가 장난스럽게 받아치며 더러워진 방 안을 청소해나간다.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이다. 야마토의 다리가 잘려진 것을 제외하면.


 처음 응급처치 후 집에 돌아가고, 자신은 필사적으로 책과 인터넷을 뒤졌다. 절단 쪽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자신이 야마토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너무나도 없다는 사실에 몰려온 죄책감의 양은 어마어마했다. 실제로 이러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조금도 할 수 없었음이 당연했고, 그것에 죠가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었음에도 그러했다. 책에서는 절단 시 환부를 피부로 감싸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쓰여 있었지만, 그 정도까지의 기술은 죠에게 없었다. 제대로 후처리를 하지 않은 야마토의 환부에 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 외에는, 책을 뒤지고 있는 죠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다행히도 야마토는 아직까지는 멀쩡했다. 타이치가 열심히 소독해주며 치료에 힘쓰고 있는 것을 반증하고 있기도 했고, 자신이 야매로나마 얻은 지식의 결과이기도 했다. 붕대를 풀어 외관상으로는 큰 이상이 없는 환부를 확인하고 나서야 죠는 무거웠던 공기를 가득 내려놓을 수 있었다.



“ 그거, 나도 할 수 있는 거야?”



 확인을 마치고 나서, 절단된 부위의 구축을 막기 위해 꾹꾹 눌러 스트레칭을 해주고 있는 죠를 향해 타이치가 물었다. 청소를 끝낸 후 타이치는 감시하는 것처럼 벽에 몸을 기댄 후 자신과 야마토를 바라본다. 그 내려다보는 눈빛이 조금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타이치가 자신의 행동을 유심히 바라보며 열심히 따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무어라 할 수는 없었다. 실제로 타이치의 붕대 매는 실력이 조금씩 늘고 있었다.



“ 아, 응. 여기 허벅지 앞에 근육이 짧아지기 쉬우니까 이렇게 늘려서….”


“ 응, 응.”



 천천히 설명을 시작하자 그 앞에 쪼그려 앉아서 고개를 끄덕이는 타이치가 오늘도 마찬가지로 평소와 같다. 하지만 자신이 해야 하는 것 마냥 무섭게 집중하는 타이치의 눈빛이 두려울 정도로 야마토의 다리를 향해 고정되어 있다. 거기서 흘러나오는 집착이, 죠는 손이 떨릴 정도로 무서웠다. 그리고 그것의 결정체가 자신의 손이 닿아있는 이 다리다. 여기까지만 생각해 보면 순전히 타이치만의 집착이었지만, 심지어는 그것조차 아니었다.


 야마토에게 병원에 가자고 말해본 적이 있었다. 타이치를 설득해 보자고. 이러다가 너가 어떻게 된다면 견딜 수 없을 것 같다고. 이건 꼭 병원에 가야 하는 거라고. 왜 이렇게 된 것이냐고. 왜 이렇게 될 때까지 가만히 있었냐고. 자신의 물음에 야마토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 내가 허락했어.”



 -하고. 얌전히 누워 있던 그 날의 야마토에게서 느낀 위화감의 정체였다. 야마토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타이치에게 자신의 몸을 맡겨버린 것이었다. 눈을 동그랗게 뜬 자신을 보며 야마토가 입술로 고운 호를 만들었다. 그의 웃음도 너무나도 평소와 같아서, 순간 소름이 돋았다. 나는 이제 타이치에게서 도망치지 못해. 그리고, 타이치도 나에게서 벗어나지 못해. 그게 이유야. 너무나도 덤덤히 이어지는 말에 죠는 한동안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다. 물이라도 가져오겠다며 나간 타이치가 돌아올 때까지. 당황한 자신은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이 타이치는 물을 야마토에게 건내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건다. 멀쩡한 팔으로 몸을 일으켜 물을 받아 마시는 야마토 또한 그것을 장난스럽게 받아친다.


이것 또한 너무나도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이다. 야마토의 다리가 잘려진 것을 제외하면.


 그 엄청난 위화감을 죠는 얌전히 견딜 수 없었다. 집에 돌아가던 때, 야마토는 죠에게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아 달라.’ 고 했다. 자신이 야마토의 말을 들어줄 수 없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더라도 자신은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이것이 잘못된 선택임을 알고는 있다. 그럼에도, 죠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이것 외에는 없었다. 다른 친구들도, 심지어 그들의 부모님과 동생들조차 모르는 이 행위들을 얌전히 묵인하고 그들을 도와주며 그들이 혹시나 그들의 집착과 광기에 삼켜져 더한 짓을 저지르지는 않을까 노심초사 확인하러 오는 것 밖에 없었다.



“ 곧 여름 방학이 끝나. 더 이상 숨길 수 없어. 네 아버지도 돌아오실 거야.”


“ 아, 그러네. 이제 어떻게 할까.”



 먹을 거라도 가져오겠다며 타이치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죠는 조심스레 야마토에게 말을 걸었다. 이 상황에서 그나마 냉정한 야마토에게 현실을 일깨워 주어야만 했다. 우리가 만났던 때처럼, 꿈만 같던 방학은 이제 끝나고 있다. 이제 그들도, 자신도 현실로 돌아와야 할 때이다. 현실적으로 이 행위들을 들키지 않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야마토는 마치 다른 사람의 일은 마냥 덤덤하게 답했다. 냉정한 야마토라면 이후의 일도 생각해 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정말 그들은 그들 간의 집착에 몸을 맡겨버린 것이었다. 후의 일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답지 않게.


 타이치가 디지몬 세계에서 돌아온 이후 멍하게 지내는 날이 많아졌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좋아하던 축구도 하지 않고 있다며 걱정하는 코시로의 목소리도 들었다. 그렇게 함께 지내던 디지몬들과 떨어졌으니 당연했다. 자신도 가슴 한 켠이 텅 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도 원했던 숙제를 하다가도 떠오르는 고마몬의 밝은 미소에 펜을 멈춘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야마토 또한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그럼에도 어딘가 후련해 보였다. 그곳에서 많은 성장을 한 자신들과는 다르게 타이치는 조금 멈춰서있는 것 같았다. 가끔씩 게이트가 열린다는 것을 알고, 타이치가 다시 축구를 시작하고 나서도 아마 상실감을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 때 즈음이었다. 타이치와 야마토가 사귄다는 말을 들은 것은. 타이치가 멈춰 설 때 그를 이끌어주는 것은 항상 야마토의 몫이었다. 그 소식에 놀라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금세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그 둘이라면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그 파국이 이것이다. 자신도, 이것을 해결할 방법 따윈 생각나지 않는다.



“ 아, 그러고 보니 말이야, 죠.”



 타이치처럼, 야마토 또한 너무나도 평소처럼 자신에게 말을 걸어온다. 방금 자신의 물음조차 없었던 일처럼.



“ 자르기 전에, 타이치의 손이 떨렸었어. 지금의 너처럼.”


“ …….”


“ 그래서 내가 물었어. 무서워?”


“ …….”


“ 무섭지 않아, 라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이 대답 말이야. 어디서 들어본 것 같지 않아? 아, 죠 너는 그 자리에 없었나.”



 자신이 모르는 일을 생각하며 야마토는 키득키득 웃었다. 진심으로 즐거워 보이는 그 표정에 죠는 다시 한 번 넋을 놓을 뻔 했다. 어떠한 상황이 다가와도 놀라지 않겠다고 다짐 했지만, 이렇게 섬칫섬칫 느껴지는 그들의 어두운 밑면에는 도저히 적응할 수가 없었다. 야마토는 어딘가 상기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무엇이 그렇게 즐거운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야마토는 쾌감마저도 느끼는 것 같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 하나가 된다는 거 말이야, 생각보다 엄청 기분 좋아.”



 어쩌면, 야마토는 타이치보다 더 미쳐있을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 돌아갈게. 그…, 잘 알겠지만 야마토 붕대는 틈틈이 갈아주고. 스트레칭은 그렇게 자주 하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적당히 해줘.”


“ 응.”



 천천히 방문 앞을 나오는 자신이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이 이미 타이치와 야마토는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져있었다. 타이치가 야마토보다 작은 체구로 그의 품에 안기면 야마토는 팔을 뻗어 그의 목에 매달린다. 짧은 허벅다리로나마 어린아이처럼 허리를 감싸 안으면 타이치는 그를 가득 껴안은 채로 정말 사랑스럽다는 표정을 한 채로 입을 맞춘다. 또 시작됐군. 고개를 조금 저으며 죠는 빠른 걸음으로 밖으로 나갔다. 문 잠구는거 잊지 말고! 하고 소리를 쳤지만 답이 돌아오지 않을 것임은 알고 있었다. 슬슬 이 장면에 익숙해지고 있는 자신도, 이러한 그들을 보고 있음에도 얌전히 어울려주고 있는 자신도, 어쩐지 그들과 비슷해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밖으로 나오면 그렇게도 무거웠던 공기가 가벼워진다. 여름방학이 끝나가고 있었다. 그들에게도, 자신에게도.

 

 




**


 

 준비물은 모두 갖추어져있었다. 결심한 이후, 둘이서 열심히 조사하고 사모은 것이었다. 야마토는 웃으며 벽에 기대어 길게 누웠다. 짧은 체육복 바지를 입고, 허옇게 드러나 있는 허벅지가 예쁘다. 타이치는 침을 꿀꺽 삼키고, 손을 뻗어 그것을 쓰다듬었다. 이렇게 길게 쓰다듬을 수 있는 기회는 오늘이 마지막일 터다. 아쉬움과 기대감을 가득 담긴 손이 야마토의 허벅지 위에서 조금 떨리고 있었다. 야마토의 손이 그 위로 얹힌다. 그것에 용기를 얻은 타이치는 손을 뻗어 준비해 둔 끈으로 양 허벅지를 단단히 묶었다.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힘을 주니 야마토의 미간이 움찔, 한다. 조용히 진행되는 과정이 마치 하나의 의식 같았다. 타이치가 땀 젖은 손으로 날 선 칼을 쥔 순간,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동시에 둘의 입이 열렸다.

 

 


“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어.”

 

“ 돌이킬 생각 없어.”

 

 

 

 


 

 

 

Posted by 하리쿠
2016. 8. 11. 22:35

08.21 디지몬 피오케 '내일 날씨는 맑음. 때때로 아이스크림'에서 다이켄/태일매튜 개인지가 나옵니다.

수량조사는 이쪽에서 해주세요 -> http://naver.me/Glqq3tds



* 다이켄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세계]






100-130p(예정) / 8000원 / 떡제본


다이켄적 관점으로 바라본 원작 재해석+둘이 결국 사귀게 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약간의 소프트 얀데레 소재가 들어있습니다. 민감하신 분은 주의해주세요.





* 태일매튜(타이야마) [니가 밑이야!]


(아직 미완성입니다. 후에 추가합니다.)



20-30p(예정) / R19 / 3000-4000원(예정) / 중철


태일이와 매튜가 침대포지션으로 싸우는 내용입니다.

한극식 표현을 쓰고 있으며 약간의 비속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마감을 위해 달리고 있습니다orz 제발 책이 나왔으면 좋겟다....

Posted by 하리쿠
2016. 7. 1. 21:20

- 유희왕 온리전 데스티니 드로에 발간된 십만 배포본 [ 일생의 파트너가 되어도 곤란하지 않은 십만 배포본 ]에 그냥 십마니로도 참여했었습니당

- 태그포스의 인생의 파트너 <-짤만 보고 혼자서 한 망상입니다 태그포스 내용과는 전혀 관련 없으며 내용이 달라도(다르겠지만) 태그포스를 해보지도 않은 저는 모릅니당^0^ㅎㅎ

 



 


 정령들도 모두 잠든 한 밤중, 조용히 스탠드의 불을 켜고 펜을 집어든 만죠메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그런 만죠메의 인기척에 살짝 눈을 뜬 옐로가 형님께서 왠일로 공부를 하시려는 걸까, 하며 작게 중얼거리다 끝조차 맺지 못한 채로 까무룩 잠이 들어버릴 때까지 만죠메의 펜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요즘 따라 자신이 이상했다. 수업시간에도 툭하게 멍하게 있곤 했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으며, 심지어는 정신을 못 차리다가 오므라이스 위에 케첩이 아닌 타바스코를 뿌려버리기까지 했다. 대체 자신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 수 없어 아무리 고개를 저어 봤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면 또다시 칠판이 아닌 다른 곳을 보고 있었고, 눈앞에는 쥬다이가 있었다. 처음엔 장난스러운 얼굴로 얄밉게 웃고 있던 그가 점점 진지한 얼굴로 변했다. 멀리 떨어져있는 것 같았지만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쥬다이의 손길이 자신에게 닿은 것 같다는 착각이 드는 순간, 만죠메는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쥬다이의 생각으로 잠을 설치던 오늘, 만죠메는 결국 이불을 걷고 자리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지금 당장 그와 자신과의 관계를 정확하게 정의내리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새하얀 종이에 커다랗게 유우키 쥬다이의 이름을 써넣고, 만죠메는 한참을 고민했다.


 유우키 쥬다이와는 악연이었다.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고, 지금도 라이벌로써 이기고 싶었다. 분명 자신이 그를 바라보는 것도 그것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라이벌이 생기면 이렇게 항상 보고 싶고, 그 녀석의 얼굴만 눈앞에서 아른거리고, 생각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지금까지 라이벌이라는 것을 만들어본 적이 없던 만죠메로써는 알 수 없었다. 라이벌, 하고 적힌 글자가 자신을 비난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목적을 가졌거나 같은 분야에서 일하면서 이기거나 앞서려고 서로 겨루는 힘, 재주, 기량 따위가 서로 비슷하여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상대. 사전적인 정의를 생각해보면 분명 자신과 유우키 쥬다이는 라이벌이 맞다.(옆에서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하며 누군가가 비웃은 것 같았지만 만죠메는 쿨하게 무시하기로 했다.) 하지만 조금 더 복잡한, 어떠한 감정이 더 깊숙한 곳에 있는 것 같은 기분.


 아, 그래. 사실은. 만죠메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쥬다이를 생각하는 것을 라이벌이라는 허울 속에 숨겨두고 애써 무시하고 있다는 것을 만죠메는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만죠메는 그것을 다시 꺼내보기 두려워했다. 차마 그와 자신의 사이에 우정과 라이벌이라는 관계 외의 다른 것을 들이대기가 무서웠다. 혹시나 그가 눈치 채버릴 까봐, 그가 이것이 아니라고 부정할 까봐, 만죠메는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눈을 돌려버렸다. 굳이 이렇게 정리하려고 하지 않아도 만죠메의 머릿속은 깔끔하게 답을 도출해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종이의 끝에 아주아주 조그맣게 움직이던 펜이 좋아, 라는 글씨를 쓰다말고 멈추었다. 자신의 마음을 글씨로 확인하다니 이것만큼 부끄러운 것이 없었기에 재빨리 새까맣게 칠해버린 만죠메가 다시 머리를 부여잡았다. 이런 남사스러운 글자말고, 조금 더 순화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조금 더 명확하게, 조금 더 확실하게.



“ …아, 정말!”



 얌전히 자고 있던 정령들이 모조리 깰 만큼 큰 소리로 짜증을 내며 이불 속으로 들어가 버린 만죠메의 방 쓰레기통엔,


『내 인생의 파트너가 되어줘, 쥬다이.』


볼펜으로 지우려 애쓴 흔적이 가득한, 정성이 가득 담긴 잔뜩 구겨진 편지가 하나.

Posted by 하리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