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2. 6. 01:23







 다이스케 군은 항상 타케루 군 이야기만 하는구나?

 

 모처럼 히카리와 단 둘이 하교를 하는 날이었다. 히카리에게 잘 보여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차서 엄청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던 다이스케가 눈을 조금 깜빡였다. 에, 나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더라? 자신이 방금 전까지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아 바보같이 눈만 깜빡이고 있자 자신의 표정을 본 히카리가 꺄르르 웃었다. 친해진 것 같아서 다행이야. 살짝 앞서나가는 그녀의 뒤를 쫓아가며 다이스케는 괜히 입술을 삐죽인다. 모처럼 히카리와 단 둘이 있는 시간에 타케루의 이야기를 했다니, 엄청난 시간 낭비를 한 것 같았다. 좀 더 그녀에게 잘 보일만한 이야기를 했으면 좋았을 텐데. 괜히 이 자리에 없는 타케루를 마음속으로 탓하며 다이스케는 다시금 히카리를 향해 입을 열었다. 오늘 점심시간에 한 축구에서 골을 넣은 이야기, 오후 수업이 졸렸던 이야기를 늘어놓았지만 아까 전 히카리가 자신에게 한 말이 도저히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내가 타케루 녀석의 이야기만 한다고?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내가 어째서 자신에게 이득도 없는 녀석의 이야기만 한단 말인가. 공부도 자신보다 더 잘 하고, 축구는 내가 더 잘하지만 농구라던가 다른 쪽 운동은 운이 좋아서 점수를 더 잘 받고(절대로 시험 날 타케루 녀석이 운이 좋았고, 자신이 운이 나빴을 뿐이라고 다이스케는 믿고 있다), 여자애들의 인기만 독차지하고, 특히 히카리의 관심을 고마운지도 모르고 받고 있는 녀석을! 아무리 수업 시간에 조용히 칠판을 바라보고 있는 녀석의 뒤통수를 노려봐도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다이스케는 어쩐지 심통이 나는 것이다. 수업시간에 집중을 하지 않는다며 선생님께 교실 뒤로 나가 있으라는 벌을 받게 되었을 때, 자신을 바라보며 작게 웃는 녀석이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것은 여담이었다.

 


“ 다이스케는 항상 타케루 군의 험담만 하잖아?”

 


 질투쟁이. 가볍게 덧붙인 미야코가 컴퓨터를 향하고 있던 시선을 돌려 자신을 살짝 흘겨본다. 입술을 삐죽거리고 있는 것을 봐서는 그녀도 자신에게 심술을 내고 있을 뿐인 것 같았지만, 다이스케는 고개를 픽 돌리며 질투쟁이라 미안하다! 한다. 수업이 끝날 때까지 머릿속에서 타케루 녀석에 대한 것이 사라지지 않아서 다른 녀석들에게도 물어보기 위해 종례가 끝나자마자 컴퓨터실로 달려왔다. 하필 있던 사람이 미야코였기에 조금 망설였지만 예상했던 것처럼 심술이 잔뜩 섞인 대답이 돌아온다. 다른 녀석이 있었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이오리 녀석일지라도 비슷한 대답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곧 뒤따라왔다. 대체 뭘 잘못했다고 주변에 적 밖에 없는 것인지 괜시리 짜증이 났다.

 

 아, 됐어! 돌아갈래! 괜히 잔뜩 짜증을 잔뜩 담아 외치며 쿵쾅쿵쾅 뒷문으로 향한다. 뒤에서 어디 가냐는 미야코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 같았지만 일부러 흥! 하고 외치며 무시했다. 자신이 화가 난 이유가 그녀의 탓이 아님을 알고 있었지만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다른 녀석들이 오기 전에 머리나 식힐 심산으로 밖으로 나가기 위해 뒷문을 향해 손을 뻗는 순간, 드르륵, 하고 문이 먼저 열렸다. 아, 젠장. 제일 보기 싫은 순간에 제일 보고 싶지 않은 녀석이 눈앞에 나타나고 난리다.

 


" 다이스케 군? 한참 찾았잖아. 먼저 가면 간다고 말이라도, “

“ 내버려둬!”

 


 확 치밀어 오르는 기분에 소리를 지르고 나니 또다시 심술을 부려버렸다는 생각에 아차 싶었다. 뭐야, 그렇게 말 할 필요까지는 없잖아. 살짝 인상을 찌푸리던 타케루가 짧게 한숨을 내쉬더니 됐어, 하고 걸음을 옮긴다. 자신을 지나쳐간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면서도 차마 잡을 수 없어 다이스케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녀석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하고 싶은 말도, 감정도, 표현도 모두 숨긴 채로 혼자 납득해버린다. 순간순간 느낀 것을 바로 표현하는 자신과는 정 반대인 그의 모습에 항상 짜증이 났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면 되잖아. 타케루 녀석의 뒤에서 들어오던 히카리와 자신의 뒤에 있던 미야코가 작게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렸다. 꽈악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녀석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어쩐지 뒤를 돌아볼 수 없었다.

 

 디지털 세계에 가서도 타케루와의 어색한 분위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을 배려하여 괜히 이오리, 히카리와 같은 팀이 되겠다며 먼저 가버린 미야코도, 어둠의 탑에 협공을 날리는 화염드라몬과 페가수스몬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었다. 잔뜩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상황을 모르는 호크몬과 아르마지몬의 등을 쭉쭉 밀어대는 미야코의 뒷모습을 보며 타케루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자신들이 싸우는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고, 차라리 평소처럼 내버려 뒀으면 좋았을 것을. 둘만 남게 되는 것은 역효과인 것도 모르고.

 

 큰 소리를 내며 쓰러져가는 어둠의 탑을 바라보는 타케루 녀석의 표정엔 색이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는 얼굴. 어째서 자신은 그렇게도 타케루에 대해 안 좋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가. 잘난 녀석에게 질투심을 느꼈기 때문에? 히카리와 친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어서? …속을 알 수 없는 건 어떤 사람이나 똑같은데, 왜 하필 타케루 녀석만?

 

 어둠의 탑을 쓰러뜨렸다며 칭찬해 달라는 듯이 안겨오는 파닥몬을 끌어안은 타케루 녀석이 자신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해냈구나, 다이스케 군. 평소와 다름없이 미소 짓는 녀석의 표정에서 위화감이 느껴진다. 여전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는 얼굴. 도대체 정답을 찾을 수 없는 내 마음속처럼. 왜, 하필 타케루 녀석만? 마치 딱 달라붙은 것 같은 입술을 간신히 떨어뜨리며 다이스케는 그래, 했다.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는 것 같다.

 

 


“ 나 잠시 교실에 올라갔다 올게. 먼저 가.”


 

 다 같이 학교를 빠져나왔을 때 즈음이었다. 갑자기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멈추어 선 타케루가 숙제를 놓고 와서, 한다. 그러고 보니 오늘 수학 숙제가 있었던가. 교실의 뒤에 나가 서있으면서도 여전히 수업에 집중이 되지 않아 선생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않은 탓인가 숙제의 유무자체도 가물가물하다. 만약 있어도 그 전 쉬는 시간에 풀거나 제대로 풀어가지 않아 혼나는 것이 일상다반사인 다이스케와 다르게 타케루는 성실하게 숙제를 해가고는 했다. 과연 인기 많고 공부 잘하는 이케맨이라는 건가. 여전히 삐딱한 생각만 차오른다.

  


“ 나도 같이 가, 타케루 군.”

“ 앗, 나도!”

 


 히카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외친 다이스케가 학교 방향으로 몸을 돌린다. 히카리가 간다고 하기에 자동 반사적으로 같이 가겠다고 한 것이었지만 또다시 녀석에게 질투를 해버렸다는 생각에 아차, 싶었다. 하지만 타케루 녀석과 히카리를 단 둘이 보내기는 싫다는 마음이 더 컸기에 다이스케는 재밌다는 듯이 웃는 타케루의 얼굴을 조금 노려볼 뿐이었다. 복잡한 자신의 속도 모르고, 언제나와 같은 반응.

 

 잠깐, 히카리. 짧게 외치며 미야코가 학교로 향하려던 히카리의 손을 잡는다. 생글생글 웃는 얼굴을 한 그녀의 얼굴에서 무언가 꿍꿍이를 꾸미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미야코와 시선을 마주하던 히카리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아! 하고 작은 탄성을 뱉었다.

 


“ 오늘 미야코 언니랑 약속이 있었어. 미안해, 타케루 군! 다이스케 군과 같이 다녀와!”

 


 여전히 웃는 얼굴을 한 히카리와 미야코가 꺄르르 웃으며 이오리까지 데리고 가버리는 것이었다. 상황파악이 되지 않은 삐삐몬이 무어라 말하려는 것을 손바닥으로 입을 막아버린 미야코가 어색하게 웃었다. 내가 같이 가겠다는 이유가 뭐였는데! 뒤도 보지 않고 떠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다이스케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실망스러운 마음에 고개가 푹 숙여진다. 옆에서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아하하, 하고 웃던 타케루가 학교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한 번 따라가겠다고 말한 이상 히카리가 가버렸다고 해서 철회할 수는 없었기에 하는 수 없이 뒤를 따르던 다이스케의 발걸음이 힘이 빠져 터벅터벅했다.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내내 타케루와 자신 사이에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괜히 어색한 마음에 쳇, 이라던가 히카리랑 가고 싶었는데, 따위의 볼멘소리를 중얼거렸지만 앞서가는 타케루에게는 반응이 돌아오지 않는다. 진심이 아니었는데. 물론 히카리와 함께 가는 것을 원했던 것은 맞지만 타케루 녀석과 있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고는 다시 입술을 삐죽인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면 되는데, 그러지 않는 타케루 녀석이 마치 전염되어 온 것 같았다.

 


“ 다이스케 군.”

 


 타케루가 교실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을 보며 다이스케는 삐딱하게 교실 벽에 기대어 섰다. 그의 자리 앞에 서는 것까지 흘끗대다 시선을 창밖으로 옮긴다. 당번이 닫는 것을 깜빡했는지 열려있는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디지털 세계에서 돌아왔을 때보다 훨씬 밖이 어둡다. 집에 돌아가면 밤이 되겠지, 저녁 먹기 전까지 돌아갈 수 있을까, 나도 숙제 할 공책이나 들고 갈까, 따위의 생각을 하며 흘러가는 붉게 물든 구름을 바라보는데 옆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팔짱을 끼고 있던 다이스케가 창밖을 보던 그대로 눈동자만 굴려 타케루를 바라본다. 한 쪽 손에 노트를 쥐고 있던 타케루가 자신을 보고 있다. 그의 뒤에서 커튼이 조금 흩날렸다.

 


“ 내가 싫다면 그렇게 말해도 괜찮아.”

 

 

 교실 안에 노을이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확산된 빛에 물들어가는 교실이 붉다. 작은 바람이 미아처럼 교실 안을 돌아다녔다. 조금 사각거리는 얇은 금색 머리칼을 하고, 하얀 피부를 노을로 물들이고 있는 타케루의 표정은 여전히 알 수 없었지만, 조금 슬퍼 보인다고 다이스케는 생각했다. 그에게 무어라 말을 해야 하는 지 알 수 없어 오물거리던 입술이 꾸욱 닫힌다. 입 안에서 이가 갈리는 소리가 울렸다. 복잡한 자신의 마음도 모르고, 고개를 조금 숙인 타케루가 고개를 들어 올리며 평소처럼 웃었다. 노을이 반짝였다. 교실바닥과 실내화가 마찰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자신은 타케루 녀석이 싫은 것이 아니었다. 자신보다 공부를 잘 하는 녀석도, 운동을 잘 하는 녀석도, 심지어 축구를 잘 하는 녀석도 한참은 있다. 인기가 많은 녀석도 있다. 물론 자신과 같은 나이 중에서 히카리와 녀석만큼 친한 남자애는 없었지만, 그렇다면 자신이 더 히카리와 친해지면 되는 것이다. 그럴 기회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심술을 내는 것은, 그러니까, 타케루 녀석이 옆에 있으니까. 자꾸 시선이 가서, 녀석이 자꾸만 보이니까, 조금 울컥하는 기분이 되어버려서. 사실 숨겨오던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그것을 그대로 내비쳐 보이기도 부끄럽고, 심지어는 마주하기조차 민망해서. 자신의 마음을 자신조차 알 수 없어서.

 

 천천히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타케루의 걸음걸이가 빠르다. 또 다시 녀석을 잡을 틈도 없이 옆모습만 바라보는 것은 싫었다. 대체 왜 녀석에게만 관련되면 감성적이 되는 것인지, 괜히 무언가 막혀 있는 것처럼 속이 답답해지는 것인지, 자꾸만 시선 끝에 녀석이 걸리는 것인지 누군가 아는 사람이 있다면 멱살이라도 잡고 물어보고 싶은 기분이었다. 자신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않고 지나치려는 녀석의 흔들리는 손목을 재빨리 잡아챘다. 한 손 가득히 들어오는 손목. 몸을 돌리자 조금 놀란 눈을 한 타케루와 시선이 마주쳤다. 커튼이 거칠어지는 바람에 이리저리 마찰하는 소리가 들렸다.

 


“ 나는!”

 


 또 다시 소리를 질러버리는 자신이 싫었지만 감정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막혀있던 댐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감정이라는 물들이 걷잡을 수 없이 자신에게 몰아치고 있었다. 자신은 그것에 이름을 붙일 수 없다. 11년밖에 살지 않은 자신은, 이것이 어떠한 감정인지조차 정의하지 못하니까.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하고 싶은지 조차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 그를 그냥 보내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닿아온 손목에서 두근, 두근 하는 맥박 소리가 손바닥을 통해 전해져왔다. 순간 몸이 화끈 달아올랐다.

 


“ …네가 싫지 않아.”


 

 꽉 쥐었던 손에서 조금씩 힘이 빠져나갔다. 한참을 말을 골랐지만 더 이상 어떤 말을 해야 좋은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의 감정이 가득 묻어나온 그 말은 매우 부끄럽다고 생각했다. 얼굴까지 치밀어 오르는 열기를 보이고 싶지 않아 고개를 숙였다. 힘 빠진 손에서 타케루의 손목이 빠져나가 툭, 하고 떨어졌다. 타케루의 얼굴을 보고 싶었지만, 볼 수 없었다. 그의 대답을 듣기조차 부끄러워 도망가고 싶었다. 스읍, 하고 그가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목소리가 들리기 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생각했다.

 


“ ……응.”

 


 타케루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귀 속에 확실히 박혀 들어왔다. 손목이 빠져나간 손바닥 안에서 그의 온기가 두근거리고 있었다. 대체 이 두근거림을 무어라 설명해야할 것인지, 다이스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교실 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잦아들었다.

 

 언젠가, 어른이 되면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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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몬 다이타케 합작 [그 날의 우리]에 소학생 버전으로 참여했습니다

합작은 이쪽-> http://moment0710.tistory.com/notice 에서 감상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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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리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