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0. 11. 00:49

- 유희왕 온리 데스티니 드로에서 무료배포 했던 글입니다.

- 약간의 모브 소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사와타리 씨의 고집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점심시간엔 매점이 제일 붐비는 것을 알면서도 굳이 가서 입가심할 우유를 사오라며 자신을 시킨 것이다. 사람이 많은 곳엔 직접 가고 싶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래도 어째서 자신인지 야마베는 조금 억울한 눈빛으로 카키모토나 오오토모를 바라보았지만 그들은 안쓰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볼 뿐이었다. 다음에 사와타리 씨가 이런 요구를 하면 절대로 다른 놈들에게 시킬 것이라고 생각하며 야마베는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이제 한 층만 더 내려가면 매점이라 조금 발걸음을 서두르는데, 옆으로 지나가던 남학생들 사이에서 말소리가 하나 튀어나왔다.



“ 야, 야마베.”



 자신을 부르는 것이었기에 야마베는 걸음을 멈추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보며 키득키득 웃고 있는 것이 영 마음에 안 들어 인상을 찌푸렸더니 자신을 부른 것 같은 남학생이 미안미안, 하고 손을 내저어 주위에 있던 학생들을 조용히 시키고는 야마베에게 다가왔다. 딱히 눈썰미가 좋은 편이 아니라 몰랐지만, 그는 자신과 같은 반 학생이었다. 오늘도 분명, 수학 시간에 불림을 받아 앞으로 나갔다가 문제를 풀지 못하고, 같이 나갔던 사와타리 씨가 그 문제를 멋지게 풀어내는 바람에 반 아이들의 웃음을 샀던 일이 있었던 것 같았다. 그것 외에도 사와타리 씨는 학교에서 만큼은(정확히는 선생님들 앞에서) 모범생처럼 행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그와 부딪히는 일이 많았다. 항상 사와타리의 옆에 있었기 때문에 어쩐지 눈에 익은 같은 반 학생에게 야마베는 왜, 하고 설렁설렁 대꾸를 해주었다.



“ 사와타리 녀석 말이야. 지금 어디 있냐?”


“ 엉? 아마 교실에 있을 걸? 다음이 이동 수업이니까 그쪽으로 갔던가.”



 아아, 그러냐. 고마워. 하고 떠나가는 녀석들의 기분 나쁜 웃음이 어쩐지 이상했지만 야마베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말한 대로 다음 교시는 이동 수업이었기 때문에 빨리 교실로 돌아가야만 했다. 사와타리 씨는 결코 자신을 기다리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서둘러 우유를 사들고 교과서를 챙기러 가야하는 것이었다. 끝나가는 점심시간에 더욱 탄력을 받아 붐비는 매점을 질린 눈으로 바라본 야마베가 심호흡을 한 번하고 학생들의 사이로 끼어들었다. 오늘은 딸기 우유라고 했지. 매점 냉장고에 보이는 몇 없는 딸기 우유에 괜히 긴장이 되었다. 혹시나 다 팔려 자신이 초코 우유를 사간다면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신경질을 낼 그가 눈에 선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초코 우유라고 해서 그가 맛있게 마시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 아, 정말. 종이 쳤잖아!”



 간신히 마지막 한 개 남은 딸기 우유를 겟하고 밖으로 빠져 나오자마자 울리는 종소리에 야마베는 뛰기 시작했다. 그냥 교실에서 하는 수업이면 선생님이 들어오실 때까지 시간은 남아있지만 이동 수업은 달랐기 때문에 자신의 교실까지 다다랐을 때에는 숨이 턱까지 차올라있었다. 허겁지겁 연 교실에는 당연히 아무도 없었다. 사와타리 씨는 아니더라도 카키모토나 오오토모 둘 중 한 명은 남아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를 했던 자신을 바보 같다고 생각하며 교과서를 챙기는데, 사와타리 씨의 자리에 다음 시간인 과학 교과서가 보였다. 혹시나 깜빡하고 챙겨가지 않은 것일까 싶어 함께 챙기고 야마베는 과학실을 향해 뛰었다. 도착한 과학실에 선생님이 아직 들어오지 않은 것에 안도하며 들어가는데, 사와타리 씨의 자리가 비어있었다. 같이 앉는 다른 녀석들에게 물어봐도 아무도 모르겠다는 말에 야마베는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재빨리 고개를 들어 다른 학생들을 살피니 아까 자신에게 사와타리 씨의 위치를 묻던 학생들이 보이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사와타리 씨를 찾으러 가고 싶었지만 금세 들어오는 선생님 때문에 실행하지도 못하고, 야마베는 어쩐지 몰려오는 불안감에 손톱을 잘근잘근 씹었다. 이 예감이 그저 자신의 착각이었으면, 했다.


 보이지 않던 학생이 돌아온 것은 수업이 시작하고도 30분정도 지난 다음이었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정말 자신이 예상하고 있는 일인가, 하는 생각을 하느라 하나도 들어오지 않던 수업 사이에 드르륵,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만 크게 들렸다. 두 시간을 연속으로 하는 수업이었기에 빠질 수 없는 것인지 들어온 녀석들이 능청스럽게 늦어서 죄송합니다, 하고 사과하며 자리에 앉는 것을 노려보던 야마베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수업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쉬는 시간이 올 때까지 기다리려 했지만, 녀석들의 얼굴을 보니 불안감이 배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께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얼버무리며 교실 문을 여는데, 어쩐지 뒤로 보이는 방금 들어온 녀석들이 자신을 보며 싱글싱글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제일 먼저 교실을 다시 둘러보고, 혹시나 싶어 학교의 뒤뜰까지 가보았지만 사와타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만화 같은 곳에서 자주 나오는 체육 창고도 열려있지 않아 야마베는 아래층부터 화장실 안을 살피기 시작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녀석들이 물어볼 때 대답을 하지 말 것을 그랬다. 괜히 안쪽에서 올라오는 죄책감에 서서히 뛰기 시작한 다리가 아프고 숨이 점점 차올라 땀이 흐르는 것 같다고 느낄 즈음, 자신의 교실에서 살짝 떨어진 화장실 안쪽에, 그가 있었다.



“ 사와타리 씨!”



 있었다기보다는 버려져 있었다는 표현이 더 맞았다. 맨 마지막 칸의 변기 옆에 잔뜩 구겨져 있는 그를 보자마자 몸이 먼저 튀어갔다. 자신의 예감이 맞았던 것이었다. 야마베는 차마 그가 무슨 짓을 당했는지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목소리에 반응하는 듯이 인상을 잔뜩 찌푸린 그의 옷은 엉망이었다. 화장실 바닥에 굴러 잔뜩 젖고, 더러워진 바지엔 차마 무엇인지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허여멀겋고 기분 나쁜 액체가 묻어있었다. 들어오기 전부터 소름끼치는 냄새가 난다 했더니, 아마 이것이었던 듯 했다. 이리저리 흐트러진 머리에 반쯤 드러난 피부, 상처투성이인 몸에 비릿한 냄새까지. 보기만 해도 그가 어떠한 짓을 당했는지 상상할 수 있었기에 야마베는 저도 모르게 이를 꽉 물었다. 그는, 윤간을 당한 것이었다.



“ 응, 으….”



 바닥에 구겨져 있는 그를 천천히 일으키니 정신이 드는 듯이 작은 신음소리가 들렸다. 잔뜩 터진 입술과 이리저리 꽉 잡혀 손가락 모양으로 생긴 울혈자국, 멍 자국 같은 것들을 보아하니 그가 얼마나 필사적으로 저항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교실에 있었기에 자신이 알려주지 않았더라도 그 무리들은 찾을 수 있었겠지만, 그럼에도 죄책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었다. 일어서려는 듯이 이리저리 흔들리던 다리가 차마 바닥에 닿지 못하고 자꾸 쓰러졌다. 중력을 이기지도 못 할 정도로 힘을 줄 수 없는 것인가, 싶어 허리를 꽉 잡고 일으켰더니 반쯤 뜨여있던 사와타리의 눈이 갑자기 커졌다. 동시에 몸이 한 번 크게 떨더니 자신을 급하게 올려다보는 것이, 자신을 그를 괴롭히던 놈들이라고 생각했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잠시 자신의 얼굴을 확인하는 듯이 눈을 이리저리 굴리던 사와타리가 숨을 몇 번 크게 헐떡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야, 야마베…?”


“ 네, 사와타리 씨. 괜찮으세요?”



 자신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사와타리는 숨을 천천히 잠재우고는 안심하는 듯 한 표정을 했다. 천천히 들락거리는 사와타리 씨의 숨이 따듯하다고 생각하는데, 수업이 끝나는 종이 치는 것이 들렸다. 아무런 생각 없이 그것을 듣고 있다가 문득 자신이 있는 곳이 화장실이라는 것을 떠올리고 급하게 문을 잠구었다. 사와타리 씨의 상태를 보아하니 당장 여기서 벗어날 수는 없었고, 지금 그가 남에게 보여줄 수 있을만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선택이 맞았는지 곧 밖에선 다른 남학생들이 들어와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 사와타리 씨는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멍한 상태로 숨만 내뱉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손끝에 닿아오는 그의 몸이 차다. 추운 겨울 날, 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는 화장실에 옷도 못 입은 채로 버려져 있었기에 당연했다. 일단 변기에 그를 앉히고 자신의 교복 마이를 둘러주고 나니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하반신이 보였다. 순간 붉어진 얼굴을 감추려 허둥지둥 구석에 버려져 있던 속옷을 그에게 건네주며 등을 돌렸다. 겨우 같은 남성의 세 번째 다리를 본 정도로 이렇게까지 부끄러워지다니! 야마베는 괜히 머리를 허공에 이리저리 내저으며 사와타리에게 바지를 가져오겠다며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다행히 학생들이 많이 쓰는 쪽의 화장실이 아니었기 때문에 쉬는 시간이었음에도 사람이 거의 없었다. 교실로 돌아가는 와중에도 자꾸만 화장실에 홀로 앉아있을 사와타리의 생각이 나서, 야마베는 괜히 얼굴이 붉어질 것만 같았다.


 학생들이 모두 과학실로 빠진 교실엔 아무도 없었다. 마침 어제 체육이 들어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사물함에는 체육복이 있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미리 빨아두는 건데. 걱정되는 마음에 바지에 코를 묻고 킁킁대자 역시나 약하게였지만 땀 냄새가 났다. 과연 이런 것을 사와타리 씨에게 입으라 줘도 될까, 하는 걱정을 했지만 어제 분명 카키모토가 사와타리 씨의 체육복 주머니를 집까지 들어주었던 기억이 났기 때문에, 이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체육복을 들고 화장실로 조심히 들어와 그가 있을 마지막 칸의 문을 똑똑, 하고 두드렸다. 혹시나 밖에서 누군가가 지나가다가 볼까봐 미리 문을 닫아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 사와타리 씨, 저에요. 야마베요.”



 잠시 망설이다가 잠금장치를 풀어준 사와타리가 화장실 변기에 쪼그려 앉은 채로 야마베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신발은 비싼 것이라 시기를 산 것인지 변기 안에 버려져 있었기 때문에, 더러운 화장실 바닥을 양말로 딛기 싫었던 모양이었다. 일단 바지를 그에게 넘겨주니 머뭇거리더니 정말 싫은 표정을 하고 받아드는 것이 보였다. 다른 사람이, 그것도 어제 입었던 것을 입으려니 기분이 찜찜한 것도 이해가 갈 것 같아 야마베는 어색하게 웃으며 그것밖에 없었어요, 했다. 자신이 나간 사이에 나름 정리를 한 것인지 그의 맨다리에 잔뜩 묻어있던 정액들이 사라지고, 휴지통에 버려져 있는 휴지가 늘었다. 그럼에도 아직도 옅은 핏자국이나 거뭇거뭇한 것들이 남아 있어서, 야마베는 품속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물에 적셔왔다. 참고로, 야마베는 손수건 같은 것을 챙기고 다니는 남자는 아니었지만 사와타리가 필요로 했기 때문에 항상 가지고 다녔다. 그것은 오오토모도, 카키모토도 마찬가지였지만.



“ 닦아 드릴게요.”


“ 아냐, 내가 할…, 읏,”



 자신을 향해 손을 뻗던 사와타리가 잠시 표정을 굳혔다. 말을 하다가 찢어진 입술이 아팠던 것인지, 아니면 맞은 곳이 아픈 것인지, 아니면 좁은 장소에 처박혀 있느라 굳은 근육이 삐걱거린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차마 자신이 상상도 할 수 없는 곳이 아팠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표정을 찌푸리면서도 입술을 꽉 다물고 아픔을 삼키는 그의 얼굴이 어쩐지 애처로워 보여 야마베는 작게 한숨을 푹 내쉬고는 아프잖아요, 했다. 싫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아무런 대답을 못하는 사와타리의 팔목을 잡고 야마베는 천천히 손수건을 종아리로 가져다 대었다. 물이 차가웠는지 손수건이 닿지 사와타리의 몸이 잠시 움찔거렸다. 천천히 손수건을 문대어 거뭇한 먼지와 핏자국을 닦아내었다. 하얗게 눌러 붙은 더러운 것들을 닦을 때엔 자신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다. 종아리를 닦던 손수건이 살짝 말랑거리는 허벅지에 닿을 때엔 사와타리가 조금 더 입술을 깨무는 것이 보였다. 남들에게 잘 보여 지지 않는 부분에 손이 닿는 것이 수치스러운 것일까, 아니면 아까 전 다른 남자애들에게 당했던 일이 생각나는 것일까. 야마베는 괜히 궁금해지는 마음에 조금 시선을 올려 사와타리의 얼굴을 살피었더니 붉게 부어오른 눈가에 다시 눈물이 맺히는 것이 보였다.



“ 가만 안 둘 거야, 그 녀석들…. 가만 안 둘 거야….”



 앙 다문 입술이 조금씩 들썩거리고 꽉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훌쩍이느라 달아오른 볼과 들썩이는 작은 어깨가 어쩐지 계속 눈길이 가는 바람에 야마베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문득 자신이 그의 다리 사이에 있는 것을 깨닫고 순간 부끄러워져버렸다. 단지 다친 그의 상처를 닦아주기 위해서였는데 어째서 이렇게까지 부끄러워지는지 알 수 없어 야마베는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났다. 꼬물꼬물거리며 상처에 천이 닿지 않게 천천히 바지를 입는 사와타리의 벌어진 다리 사이와 드러난 허벅지가 괜히 하얗게 눈에 들어와 괜히 등을 돌리니 청각만 더 예민해져 천이 피부에 스치는 소리가 더욱 귀를 자극했다. 사, 사와타리 씨. 보건실에 데려다 드릴까요? 어째서인지 목소리는 떨려서 나왔다.



“ 아니, 이런 모습을 보일 수는 없지. …집으로 가자.”



 조금 갈라져있는 그의 목소리조차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 것인지 야마베는 알 수 없었다. 빨리 그를 데려가야 한다는 생각에 허둥지둥 오오토모에게 가방을 챙겨달라는 메일을 보내고, 아직 제대로 설 수 없는 그를 부축하는데, 닿은 곳에서 어쩐지 열이 나는 것 같았다. 가까이에 있는 그의 얼굴을 볼 수조차 없어 야마베는 괜히 고개를 돌리며 천천히 화장실에서 나섰다. 걸을 때마다 몸이 아픈 것인지 인상을 찌푸리는 그의 표정과 작게 새는 신음에 심장이 덜컹거렸다.

사와타리 씨를 집으로 데려다주고 가는 길, 어쩐지 눈앞에 어른거리는 그의 모습에 야마베는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대체 자신이 왜 이러는 것인가. 다음 날, 그의 얼굴을 어떻게 봐야할지 고민하는 야마베의 뒷모습은 쓸쓸하기만 했다.





-

너무 급하게 써서.. 부끄럽다.......

'유희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십만] 보름달  (0) 2015.11.05
[유야신고/R19] 내 사와타리가 이렇게 못됐을리가 없어  (0) 2015.10.11
[십만] only you  (0) 2015.07.14
[포리오] to 갈릭님  (0) 2015.06.29
[전력 60분/십만] 요리  (0) 2015.04.25
Posted by 하리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