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6. 29. 05:48

- 갈릭님께 드리는 연성 사다리타기! 늦어서 죄송합니닷.. 짧아서 더 죄송합니닷...

- 캐붕 주의!








 듀얼 대회가 있던 날이었다. 미리 얘기하지 않고 찾아간 듀얼장은 평소와는 달리 앞좌석이 아니었기 때문에 모습을 제대로 볼 수는 없었지만, 전광판에 비치는 모습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기 때문에 아무래도 괜찮았다. 순간순간 보이는 듀얼에 집중하는 진지한 모습은 자신에 앞에서 보여주는 표정과는 달라서 꽤나 좋아하는 부분이었다. 굳이 표까지 끊어가며 보러 와달라는 말을 거절했을 때의 그의 표정은 꽤나 볼만했었다. 아마, 그는 자신이 지금 이 장소에 왔을 줄은 조금도 생각하지 못 할 것이다. 오랜만에 보는 자신을 의식하지 않은 채 듀얼 하는 그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듀얼은 당연하게도 자신이 보러온 남자의 승리였다. 매너 있는 미소를 띄우고는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며 천천히 일어나 출구로 향했다. 그를 놀래키기 위해 가져온 작은 꽃 세 송이가 바스락거렸다. 지금 그가 있을 대기실로 들어가면 표정이 어떨까? 당황할까? 아니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을까. 이미 너무 익숙해져 눈에 보이는 반응이었다. 꽃을 들고 찾아온 자신의 모습에 그의 매니저는 자신을 쉽게 통과시켜 주었다. 인기가 많은 그였기에 이미 몰려있는 그의 팬들의 눈초리를 무시하는 것은 이미 익숙했다.


 작게 두드린 문의 너머는 조용했다. 천천히 문을 열었을 때에도 아무런 대답도 없어서 잠시 그가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곧 소파의 한쪽에 엎드려 자고 있는 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최대한 구두소리를 죽여 다가갔음에도 일어나지 않는 모습에 대회 때문에 피곤했나보다, 하는 짐작을 약간 할 뿐이었다. 조용히 감겨 있는 눈꺼풀을 잠시 바라보며 리오는 소파의 끝에 살짝 앉았다. 리오의 무게에 들썩거리는 소파에도 남자는 눈을 뜰 줄을 몰랐다. 흐음. 어쩐지 조금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들고 온 꽃을 옆 탁자에 내려놓으며 조금씩 뻗혀가는 셋팅된 머리를 쓰다듬자 손끝에 닿아오는 약간의 머리칼과 살짝 땀에 젖어있는 목덜미가 따듯했다. 에어컨이 틀어진 방의 싸늘한 공기에 식은 손끝에서 올라오는 따스한 기운이 어쩐지 간질간질해 잠시 손가락을 접었다 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실체가 있는 무언가가 묻은 것 마냥 사라지지 않았다. 만약 자신이 오늘 그의 초대에 응했더라면, 지금의 그는 피곤함도 숨기고 자신을 맞이하고 있었겠지. 



" 바보 같은 남자"



 -라고 말하면 그는 언제나 어색하게 웃으며 그거 아쉽군요, 하고 대답하곤 했지만, 그는 바보가 맞았다. 하여간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늘어놓는 것에 능숙한 남자였다. 물론, 그것을 알아채는 사람은 몇 되지 않을지라도. 그의 이러한 모습을 보기 위해 오지 않겠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하며 리오는 천천히 그에게로 다가갔다. 하필 엎드려 자는 틈에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 괘씸했지만 얼굴을 보면 참을 수 없을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그에게 불평은 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그래도 조금쯤은 탓을 해도 되겠지.


 척추의 선이 선명하게 보이는 뒷 목덜미에 살짝 남은 손톱자국은 당분간 그를 괴롭힐 지라도, 짧게 닿은 리오의 입술은 아마 자고 있는 포로써는 알아채지 못 할 것이다.

 

'유희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야마신고] 두근거려요!  (0) 2015.10.11
[십만] only you  (0) 2015.07.14
[전력 60분/십만] 요리  (0) 2015.04.25
[꼬붕만/R17] 리퀘  (0) 2015.04.19
[십만/R19] 기어와라, 만죠메!1  (0) 2015.04.19
Posted by 하리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