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2. 20. 01:09






 수업 시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단잠을 자고 있는 쥬다이를 만죠메는 불만이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신성한 수업시간에 잠꼬대로 자신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며 잠을 자는 그에게 화가 난 것은 아니다. 자고 있는 그에게 질려 더 이상 지적하지 않는 선생님에게 불만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가 조용하면 수업시간은 잠잠히 지나갔기 때문에 이 편이 나았다. 그러니까 만죠메가 수업에조차 집중을 못하며 화가 난 이유는, 저기 저 자고 있는 유우키 쥬다이 놈과 연인 사이가 된지도 몇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둘 사이에 진척이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손은 잡았다. 고백을 받고, 그것을 승낙하는 순간에 혼자 감격에 벅차 끌어안아오는 녀석으로 인해 포옹도 했다. 몇 주 뒤에는 잔뜩 긴장한 녀석에게 뽀뽀도 받았다. 같은 기숙사인 이상 같은 곳으로 향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어색했던 것인지 뒷머리를 긁적이며 허둥지둥 돌아가려 하는 녀석에게 답례도 해주었다. 그 때의 붉어진 볼은 아마 잔뜩 져있던 노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여기까지는 평범하게 잘 되어간다고 할 수 있었는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쥬다이는 그 뒤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고등학생 정도 되었으면 더 야한, …그러니까, 그, …키스 같은 것도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그가 분위기를 잡으려 할 때 언제라도 받아주기 위해 머리를 굴리기도 수십 번. 이젠 기다리기도 지쳤다. 오늘만큼은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라고 다짐하며 만죠메는 잔뜩 날카로워진 눈초리로 쥬다이의 뒤통수를 쏘아보았다. 어쩐지 쥬다이 놈보다는 그의 옆에 있는 쇼가 몸을 움찔, 하고 떠는 것이 보였다.


 사실 만죠메는 전에도 쥬다이에게 키스를 하기 위해 시도한 적이 있었다. 둘 다 남자인 이상 누가 먼저 입을 맞춘다던가 하는 것은 상관없는 것이었다. 오히려 이런 것에서 먼저 주도권을 잡는 것이 남자답다고 만죠메는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먼저 쥬다이에게 분위기를 잡고 다가갔었다. 처음엔 뽀뽀라고 생각하고 받아주던 쥬다이도 자신이 입을 열자 깜짝 놀라며 자신을 떨어뜨려 놓는 것이었다. 한창 둘밖에 없는 방 안이었고, 분위기도 괜찮았기 때문에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처음으로 키스하는 소녀의 반응이 나와 만죠메도 오히려 당황해서 눈을 끔뻑였던 것 같다. 그러한 상황이 두 세 번정도 이어지니 마침내 한계였던 것이다. 오늘은 아무리 도망가도 놓치지 않을 테다! 그리하여, 만죠메는 수업이 끝난 후 나가려던 쥬다이를 붙잡았다.



“ 어, 어엉? 왜 그래, 만죠메….”



 우리의 사이를 어렴풋하게 눈치 챈 것 같은 쇼와 켄잔을 먼저 내보내는 것은 쉬웠다. 잔뜩 질렸다는 눈으로 바라보며 나란히 나가는 녀석들이 신경은 쓰였지만 그런 사소한 것에 계획을 망칠 만죠메 님이 아닌 것이었다. 요 며칠 동안 내가 째리고 있다는 것은 아무리 눈치가 없는 이 녀석이라도 알고 있었기에, 어색한 말투로 도망가려 하는 녀석의 손을 꽉 붙잡고 벽으로 몰았다. 힘은 아무래도 쥬다이의 쪽이 더 세기 때문에 자신이 이기려면 유리한 위치를 잡는 수밖에 없었다.


 턱, 하고 벽에 등을 부딪치면 곤란해진 쥬다이의 얼굴이 보였다. 시선을 자신에게 고정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하는 것이 어쩐지 성취감이 느껴져 만죠메의 얼굴에 자신만만한 미소가 띄워졌다. 도망가지 마라, 쥬다이. 하고 낮게 말하면 잔뜩 풀죽은 강아지 얼굴을 한 쥬다이가 동그란 눈을 데굴데굴 굴려 자신을 올려다보았다. 언제나 듀얼링의 위에서 당당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는 자신보다 작았기 때문에 당연했다. 또다시 도망가기 위해서 인지 눈을 옆으로 굴리는 것을 턱을 잡는 것으로 막았다. 다시 한 번 시선이 맞았다가, 아래로 떨어졌다.


 천천히 입술을 마주대면 쥬다이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한 번, 다시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려 두 번 쪽쪽 키스를 해도 여전히 감길 줄 모르고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는 녀석을 위해 벽을 짚고 있던 손으로 눈을 가려주었다. 차단된 시야에 쥬다이의 도망가려던 몸이 천천히 잦아들었다. 천천히 입술을 핥으면 긴장한 듯이 떨고 있던 쥬다이도 이내 입을 열어주었고, 그 안으로 혀를 미끄러뜨렸다.


 그 이후는, 아까 전부터 교실에 남아 있었지만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고 결국 자신의 친구들의 첫 키스장면까지 보게 된 미사와에게 물어보기로 하자.






---------------

끝이 이래서 죄송합니다.... 이후 만죠메는 금세 키스에 능숙해진 쥬다이에게 역공을 당하게 되는데(ry

Posted by 하리쿠
2014. 12. 16. 03:57

- 감금, 폭행, 유혈, 얀데레 등 취향 타는 소재가 들어있습니다

- 십만 온리 십만죠메 투자자 세미나에서 배포한 글입니다







 만죠메가 눈을 떴을 때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제는 흐릿해진 시야로도 확실히 주변엔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만죠메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다가, 무언가를 깨달았다. 몸이 가벼웠다. 만죠메는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손목을 짚었다. 발목도 어루만지고, 목도 더듬었다. 평소 자신의 몸을 짓누르는 구속구가 없었다. 오랜만에 만져보는 맨살은 거친 쇠에 몇 번이고 긁혀 짓무른 상처가 있었다. 하지만 만죠메는 그것으로도 좋았다. 손끝에 닿는 감각은 차가운 수갑이 아닌 아무리 엉망이 된 것이라도 자신의 피부였다.


 어째서 자신을 구속하던 것들이 풀려있는 지에 대한 의문은 나중에 가서야 들었다.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어 주위를 둘러보다가, 문이 열려있는 것을 알았다. 평소엔 굳게 닫혀있던 문은 닿을 수도 없는 것이었다. 이젠 걷는 것조차 힘겨운 다리의 근육을 애써 움직여 문으로 향하면 목에 걸려있는 개목걸이가 자신을 막았다. 몇 번이나 몸을 비틀어도 쇠사슬이 맞부딪치는 소리만 낼 뿐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침대에서 내려와 있는 것을 들키면 손과 발까지 구속되어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것이 바로 어저께 같은데, 지금은 구속도 없었고, 문도 열려있었다.


 사실상 지금이 찬스였다. 만죠메는 떨리는 다리로 조심히 지면을 밟았다. 순간 휘청거리는 몸에 넘어질 뻔 했지만, 만죠메는 천천히 문을 향해 다가갔다. 혹시나 문의 사이에서 자신을 감금한 이가 보일까 심장이 두근거렸지만, 다행히도 문을 지나칠 때까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한기마저 느껴지는 어두운 복도엔 인기척 하나 느껴지지 않았다. 언제나 자신을 감시하는 이들도 보이지 않아서, 만죠메는 서둘러 그곳을 벗어나려 발걸음을 옮겼다. 운동이라곤 자신을 감금한 이와 침대에서의 성행위 외엔 없었기 때문에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찼다. 하지만 이렇게 성이 텅 비어있을 때가 기회였다. 만죠메는 온 몸에서 느껴지는 격통에도 이를 악 문채로 몸을 움직였다. 잘 보이지 않는 시야에 언제 몬스터가 나타날지 몰랐기 때문에 걸음을 옮길 때마다 심장이 덜컹거렸다.



 자신을 감금한 이는 패왕이라고 불렸다. 이세계를 지배하는 자, 라고 설명하는 것을 몸을 피하는 것에 도움을 준 마을에서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마을은 불에 타버렸다. 홀로 쓰려져 있던 자신에게 죽을 주고 잠자리를 마련해 주었던 상냥한 사람들은 모조리 패왕의 손에 목이 잘려 죽었다. 항상 밝게 웃어보이던 사람들의 피를 온 몸에 뒤집어쓰고 떨고 있던 자신을 패왕은 거칠게 끌고 갔다. 


 말을 타거나, 단단한 갑옷을 입고 있는 다른 병사들과는 다르게 신발조차 신지 않은 만죠메는 패왕의 성까지 수 백 킬로를 걸었다. 손목을 감싼 밧줄을 풀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였지만 절대로 그것은 풀리지 않았고, 혹시나 자신이 움직여 패왕의 걸음에 방해가 된다면 그에게 직접 뺨을 맞았다. 발에 물집이 잡히고 다시 터져, 그 위에 또 다시 물집이 생기기를 반복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패왕은 걷는 것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 만죠메는 다시 일어나 걸을 수밖에 없었다. 잡혀가는 자신을 조롱하는 병사들의 목을 직접 베어버리는 패왕의 눈은 차가웠다. 죽지 않은 것에 안도해야 하는지, 아니면 그 때 죽었어야 했다며 후회해야 하는지 그 때의 만죠메는 알지 못했다. 


 패왕은 만죠메를 하나의 방에 가두었다. 도망갈 수 없도록 사지를 묶어놓는 수갑과 목을 조르는 목걸이에 만죠메는 몇 번이나 풀어달라고, 무슨 짓이냐고 소리쳤다. 하지만 만죠메에게 돌아오는 것은 패왕의 싸늘한 시선과, 거친 폭행과, 강제적인 성행위뿐이었다. 그의 손길 하나하나가 닿을 때마다 만죠메는 무서움에 몸을 떨었다. 부드럽게 몸을 쓰다듬던 손은 언제 무기가 될지 몰랐다. 뺨을 맞는 것은 예삿일로 심할 때엔 발에 채이거나 주먹으로 맞아 피를 토하기까지 했다. 단단한 갑주로 덮여 있던 패왕의 손발은 자신의 뼈조차 손쉽게 부러뜨렸다. 도망치려는 시도를 했다가 양 발목이 부러지고, 목을 조르는 패왕의 손길에 숨이 부족해 기절하고 나면 항상 치료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픔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온 몸의 뼈가 바스라질 것 같은 느낌에 만죠메는 몇 날 며칠을 울었다. 비명을 지르느라 이미 쉬어버린 목에서 피가 나올 때까지 울고, 위장에 위액도 안남을 때까지 입에 아무것도 대지 않아 정신까지 혼미해 질 즈음, 패왕은 자신에게로 왔다.


 차라리 죽이라고, 죽이지 않겠다면 내가 죽겠다고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소리치자 패왕은 자신에게 키스를 해주었다. 목 너머로 물이 넘어갔다. 충분히 목이 축여질 때까지 몇 번이고 키스를 하던 패왕은 밖에 있던 병사에게 죽을 가져오라 지시했다. 먹지 않겠다며 고집을 부리면 죽을 가져온 병사를, 자신 외에도 포로로 잡혀온 마을 사람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만죠메는 그것을, 그 후에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자살할 수도 없었다. 몸의 고통에 죽여 달라고 빌면 패왕은 자신을 감옥으로 데려갔다. 반란을 일으킬 수 없는 어린 아이들과 여자, 늙은 사람들이 수십, 수백 명이 잡혀있는 것을 보여주며 네가 자살하거나 죽여 달라고 말하면 이들을 모두 죽일 거라고 했다. 만죠메는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여 반쯤 쓰러져 있는 감옥 안의 사람들을 보며 울었다. 어째서, 왜 자신에게 이런 짓을 하느냐고 패왕의 멱살을 잡고서라도 물어보고 싶었다.



 패왕성은 비어있었다. 패왕은 다른 마을을 정복하러 나설 때에도 항상 패왕성 안에도 병사들을, 그것도 자신의 주변에는 특히나 배치해 놓았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성에서 느껴지는 싸늘한 기운에 몸을 떨면서도 만죠메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이 성은 별로 돌아다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지리를 잘 알지 못했지만 일단 밑으로 내려가야 한다는 것은 확실했다. 흐릿해진 시야로는 사물을 제대로 분간할 수 없어서 몇 번이나 넘어졌다. 손에서 느껴지는 벽의 느낌에 의지하여 걸어도 어딘가 불안한 것은 사실이었다. 만죠메의 눈은, 패왕이 멀게 만든 것이었다.


 패왕은 만죠메의 눈을 좋아했다. 만죠메가 강제로 이어진 몸의 고통에 울고 있으면 항상 그것을 핥아주며 눈 위에 키스하곤 했다는 것에서 알 수 있었다. 패왕은 눈 위에 키스를 하다가도 금방 눈알에 혀를 대고는 했다. 눈알의 얇고 섬세한 각막에 혀의 거친 면이 닿으면 정말 미칠 듯이 아팠다.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고 새빨개 진 눈을 부여잡고 울면 패왕은 만족스러운 듯이 웃었다. 다음 날도, 그 다음날도 패왕은 몇 번이고 만죠메의 눈에 키스했다. 아무리 인간이 고통에 익숙해지는 동물이라 할지라도 그 고통만은 절대로 익숙해 질 수 없었다. 시야가 흐릿해 진 것 같다고 느낀 것은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만죠메는 어두운 패왕성에서 나갈 수 없었으므로 그저 어두운 것에 익숙해져 그런 것이라 생각했었다.


 어느 날이었나, 만죠메가 자신의 얼굴이 비칠 정도로 잘 갈려있는 돌 판을 볼 때가 있었다. 그것을 통해 보이는 자신의 얼굴이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번이고 들여다보며 눈을 한참을 깜빡이고 난 뒤에야 만죠메는 달라진 것이 무엇 이었나 알 수 있었다. 자신의 눈 색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자신은 머리도, 눈도 새까만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눈은 머리색과 비교해보면 확연하게 색이 옅어져있었다. 만죠메는 그것의 이유가 패왕이 자신에게 하는 눈의 키스 때문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시야에 들어오는 흐릿한 것 같은 자신의 모습에 만죠메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뒤로 만죠메는 몇 번이나 패왕의 키스를 거부했다. 차라리 다른 곳에 하라고, 시력을 잃고 싶지 않다고 아무리 소리쳐도 패왕은 조금도 들어주지 않았다. 혀에 피 맛이 느껴지고, 머리가 멍해질 때까지 맞고 나서야 만죠메는 절대로 이것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패왕의 혀가 눈에 닿기도 전에 피눈물이 흘렀다. 정말로 점점 시야가 흐릿해 진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만죠메는 패왕에 대한 증오에 몸을 떨었다.


 지금 만죠메의 눈은 예전에 까맣다고 하면 믿지 못할 만큼 색이 옅어져 있었다. 시야도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제래도 보이지도 않았다. 간신히 가까이 있는 사람이나 사물을 구분할 수 있는 정도의 시야에는, 어제까지만 해도 패왕만 보였다. 병사들은 자신에게 밥을 줄 때 외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혹여나 병사들 중 하나가 자신의 옆에 있거나, 대화를 하면 최소한 팔이 잘렸다. 그것도 자신이 죽이지 말라고 그를 붙잡아가며 말릴 때에야 그것으로 끝났다. 만약 만죠메가 그렇게 병사의 목숨을 구하면 그 날 하루는 정말 버티지 못할 만큼의 괴롭힘을 당했다. 차라리 기절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였지만, 그런 날에 패왕은 물까지 뿌려가며 자신이 쓰러지는 것을 막았다. 장난감에 괴롭힘을 당하고 땅을 기어 다니며, 만죠메는 그래도 자신 때문에 다른 병사가 죽지 않은 것에 대해 안도했다.



 만죠메가 마지막으로 다다른 곳은 지하의 도살장이었다. 한 마디로 인질이나 반란을 일으킬 수 있는 남자들을 죽이는 공간이었다. 언제나 용암이 끓고 있는 그곳에서는 항상 피비릿내와 죽음의 냄새가 났다. 수천, 수만, 수십만 명의 사람이 이곳에서 죽었을 것이다. 뜨거운 용암에 자신의 살과 내장이 녹아가는 것을 느끼면서, 고통 속에서 패왕을 원망하며 죽었을 것이다. 만죠메는 차마 이곳에서는 오래 있을 수 없어 다리를 서둘렀다. 이곳만 지나가면 밖이었다. 온갖 이물질에 긁혀 피가 나고 물집이 잡힌 발은 만죠메의 탈출의 방해물이 되지는 못했다.


 만죠메는, 여기서 사람이 죽는 것을 보았다. 탈출을 시도했을 때였다. 문 앞을 감시하던 병사를 어찌저찌 기절시키고 만죠메가 간신히 밖으로 나왔을 때, 패왕이 보였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패왕이 무서워 도망쳤지만 다리를 거의 쓸 수없다고 해도 무방한 만죠메는 절대로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강제로 머리채를 잡혀 끌려간 곳은 도살장이었다. 만죠메는 드디어 패왕이 자신에게 질려 죽인다고 생각했다. 마침내 그동안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하면 당장이라도 패왕의 손을 뿌리치고 자진해서 용암 속으로 뛰어들고 싶었다. 하지만 패왕은 결코 만죠메를 놓지 않았다. 그리고 그 곳을 담당하는 코자키라고 하는 자에게 감옥에 있는 인질들을 데려오라고 했다. 만죠메는 경악한 시선으로 패왕을 보았다. 설마,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잔뜩 말라 죽어가고 있는 어린 아이들과 여성, 늙은 사람들이 채찍에 맞고 수갑에 이끌려 도살장으로 끌려왔다.


 그들을 보자마자 만죠메는 패왕에게 빌었다. 잘못했다고, 다시는 탈출 같은 건 꿈도 꾸지 않겠다고. 제발 저 사람들을 죽이지 말아달라고. 뭐든지 하겠다고, 앞으론 반항 같은 것도 하지 않겠다고 무릎을 꿇고 두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패왕의 다리를 부여잡고 제발 그러지 말아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하지만 패왕은 그런 만죠메를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인질들은 모두 죽었다. 뜨거운 용암에 피부가 녹고 안의 내장이 쏟아져 나와, 그것조차 모두 녹아버렸다. 끝까지 살려달라며 자신을 보고 울던 어린아이의 안구가 터졌다. 뇌가 녹아가는 고통에 터져 나오는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고막을 찢어버릴 정도로 울렸다. 패왕은 만죠메가 시선을 피하는 것조차도 용서하지 않았다. 자신 때문에 죽는 사람들을 위해 만죠메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목이 찢어질 때까지, 더 이상 몸의 수분이 남아있지 않을 때까지 우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의 무력함을 뼛속까지 느끼며 만죠메는 오열했다.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몇 억 번을 빌어가며 만죠메는 그렇게 실신할 때까지 울었다.


 만죠메는 빠르게 그곳에서 벗어났다.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다. 패왕성의 밖에도 인기척 하나 없었다. 만죠메는 걷고, 또 걷고, 걸을 수 없을 때에는 기어서라도 패왕성에서 도망쳐 나왔다. 패왕성이 저 멀리 보일 때가 되어서야 온 몸의 고통이 느껴져 만죠메는 길바닥에 쓰러졌다. 발은 이미 물집과 피고름 투성 이었고, 발목과 손목에서는 그동안 수갑에 쓸린 것 때문에 잔뜩 짓물어 피와 진물이 흐르고 있었다. 머리는 깨질듯이 아팠으며, 더 이상 움직일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차가운 길바닥에 누워, 만죠메는 이제는 패왕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왜 여기까지 오는 데에 패왕도, 패왕군도 보이지 않았냐는 물음은 들지도 않았다. 서서히 꺼져가는 의식에 만죠메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제, 자신은 자유였다.




“ 패왕을 죽여라! 패왕군을 죽여라!”



 그곳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장소에서 들리는 소리는 이미 잠들어버린 만죠메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불타고 있는 패왕과 패왕군들의 갑주와 바닥에 흩뿌려진 패왕의 피를 만죠메가 알게 되는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모두 죽어버린 패왕성에서 만죠메가 벗어난 것은


 만죠메를 사랑했지만 제대로 표현을 할 수 없었던


 패왕님의 마지막 선물.

Posted by 하리쿠
2014. 12. 13. 00:47










“ 만죠메 씨. 괜찮으세요?”



 귓속에서 들려오는 말에 만죠메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을 동그랗게 둘러싸고 있는 관객들의 시끄럽던 함성소리가 이어폰을 끼고 있지 않은 반대편 귀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제야 자신이 방금 전까지 듀얼을 하고 있었고, 승리했다는 사실이 떠올라 만죠메는 조용히 들고 있던 패를 정리하였다. 듀얼 중에는 어떻게든 집중을 했던 것 같지만, 요즘 따라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집중력도 현저하게 떨어졌다. 승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썩 기분이 좋지가 않아 조용히 들어가고 싶었지만 이어폰 속에서 졸업을 하고, 굳이 자신의 매니저 일을 하고 싶다고 자청하던 고카이도의 목소리로 ‘팬의 목소리에 답해 달라’는 말이 들렸기 때문에 만죠메는 자신의 이름을 외치고 있던 관객석을 향해 손가락을 치켜 올리며 1을 외쳤다. 뒤이어 들려오는 점점 커지는 숫자들과, 결국 자신의 이름으로 이어지는 썬더콜이 현기증을 일으킬 정도로 귀 안에서 윙윙 울렸다.


 질리지도 않고 이어지는 썬더를 외치는 소리를 뒤로 하고 대기실로 들어오면 듀얼 디스크를 받아들던 고카이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요즘 계속 기운이 없어 보여요. 무슨 일 있어요? 입을 꾹 다물고 옷장에 잘 정리되어 있는 목도리를 꺼내어 두르고 있으면 정말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고카이도가 신경에 거슬려 만죠메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신경 쓰지 마라, 고 한다면 분명 매니저인데 당연하지 않냐며 잔뜩 잔소리를 해 올 것임이 분명했기 때문에 조용히 말을 골랐지만 마땅한 변명이 떠오르지 않았다.



“ …별거 아니야. 오늘 약속은 취소해줘.”



 자신의 옆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고카이도에게 수트케이스를 넘겨주고 만죠메는 외출용 코트를 입고는 서둘러 밖으로 향했다. 뒤에서 오랜만의 스폰사와의 약속이라 빠질 수 없다는 둥, 적어도 얼굴은 비춰야 하지 않겠냐는 둥 하는 고카이도의 잔소리가 들려왔지만 만죠메는 걸음을 더 빨리하는 것으로 답했다. 저렇게 말은 하지만 꽤나 수완이 좋은 녀석이었기 때문에 잘 둘러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듀얼 대회가 있었던 곳을 뒷길로 나서면 찬 공기가 매섭게도 얼굴을 때렸다. 요 며칠 동안 급하게 추워진 날씨는 다시 따듯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익숙하게 목도리 안으로 얼굴을 숨기고 만죠메는 걸음을 옮겼다. 아마 고카이도가 불렀을 리무진은 팬들이 잔뜩 줄서있을 앞길 쪽에 있을 것이다. 팬들을 관리하는 것도 프로의 한 역할이었기 때문에 단 한 번도 사진세례와 팬들을 손길을 피해 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어쩐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간혹 자신의 옆 가까이에 와 깜빡이를 켜대는 택시도 있었지만 만죠메는 그것들마저 모두 거절했다.


 오늘 듀얼이 어땠더라, 하고 생각해보면 엉망진창이었다. 플레잉 미스도 많았고, 정말 어처구니없는 실수도 했던 것 같다. 집중은 하려 했지만 몇 번이나 정신을 놓았다. 오늘 뿐만이 아니었다. 어제의 대회 때도 그랬고, 지난주에 있었던 촬영도 영 집중을 하지 못하여 미뤄졌다. 정말 멍청한 짓이었다. 프로씩이나 되어서 자신의 마음 하나 다스리지 못하고 민폐를 끼치고 있다니. 만죠메는 미끄러운 빙판길에서 조용히 걸음을 멈추고는 심호흡을 하였다. 집에 도착하면 전화로 듀얼에 대한 감상이나 쓰잘머리 없는 일에 대한 것들을 잔뜩 들어놓을 사람이 없다. 가끔 편지로 자신의 사진이나 외국의 우표 같은 것을 보내오는 사람 또한 없다. 굳이 넓게 잡아놓은 집에 돌아 올 사람도 없다.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은 채 뜬금없이 찾아왔던 남자는 정말로 뜬금없이 이별을 고하고 떠났다. 그 후의 날씨는 혼자 남은 만죠메를 비웃듯이 추워졌고, 쓸데없이 커다란 집은 쓸쓸해졌다. 그리고 만죠메는.



“ 추워….”



 껴입은 코트 속으로 아무리 몸을 밀어 넣어도 좀처럼 따듯해지지 않았다. 앞으로 조금만 더 가면 집임에도 불구하고, 들어가고 싶지가 않아 만죠메는 괜히 집 주변을 조금 돌다가, 장기가 깊숙이 박혀있는 배 안쪽까지 얼어붙을 정도로 몸이 차가워지고 나서야 다시금 집으로 향했다. 기다릴 수 없는 커다란 집은 더 이상 필요 없었다. 이사를 생각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던 만죠메가 누군가와 콩 부딪쳤다. 죄송, 하고 사과하며 얼굴을 확인하려다가 허리가 붙잡혔다. 점차 힘이 들어가는 팔에, 누군가에게 꽈악 껴안기는 꼴이 되어버렸지만 귓가에 울리는 숨소리가 익숙해서 만죠메는 그를 떨쳐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 만죠메.”



 들려오는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만죠메, 만죠메. 한 번 부를 때마다 허리를 감싼 팔에 점점 조여들었지만 만죠메는 잠자코 입술을 내리눌렀다. 지금 답한다면 분명 그보다 더 꼴사나운 목소리가 나올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훌쩍거리는 소리가 한참을 이어졌다. 어쩐지 눈가가 따듯해져 만죠메는 조금 더 힘을 주었지만, 이어서 들려오는 미안하다는 작은 속삭임에 결국 흘려내고야 말았다. 널 놓아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겠어. 미안해. 미안해, 만죠메. 엉엉 울고 있는 녀석의 숨이 따듯했다.



“ 괜히 쓸데없이 생각이나 하고 말이야. …멍청한 자식이.”



 애써 덤덤한 척 하려 했지만 결국 울음이 섞였다. 좋아해, 쥬다이. 마주 안아주며 만죠메는 솔직하게 고백했다. 맞붙은 몸에선 더 이상 날씨의 싸늘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

매번 내용이 똑같아서...죄송합니다OTL... 민망하다.....

Posted by 하리쿠
2014. 12. 6. 00:12

- 영생 쥬다이 주의









 눈이 왔다. 주위에서 뛰어다니던 어린 아이들이 눈이다! 하고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자신은 아마 그것을 눈치 채지도 못했을 것이다. 언제부터 내리기 시작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눈발이 제법 굵은 것을 보니 아마 내린지 시간이 꽤나 지난 모양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머리에 눈이 잔뜩 쌓여 있어서 모자를 쓸 타이밍조차 놓쳤다. 멍하게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으면 옆에서 유벨이 ‘목도리를 두른 척이라도 하라’며 말을 걸어왔다. 어느새 발밑까지 얼어버린 영하의 날씨에 얇은 자켓 하나 걸치고 있는 자신은 누가 봐도 이상했기 때문에, 그 말을 듣고 나서야 흘끔거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보는지는 조금도 상관없었지만, 몇 년 전에 멍하게 비를 맞고 있다가 경찰에게 집이 어디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 뒤론 날씨에 반응하는 척이라도 하곤 했다. 몇 년 전이었는지는, …세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메고 있던 가방에서 낡아빠진 목도리를 꺼내 대충 두르고 눈을 피할 곳을 찾았다. 이젠 추움이라는 감각조차 잊어버린지 오래였기 때문에 눈을 맞는 것은 별로 상관이 없었지만 아무래도 축축해지는 것은 싫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세월을 생각하면 아주 잠깐의 시간일 뿐이었기 때문에. 적당한 지붕만 있으면 눈이 멎을 때까지 기다릴 수 있었다. 점점 거세지는 눈길에 쥬다이는 가방을 꽉 잠그고는 걸음을 서둘렀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머리에서 눈이 후두둑 떨어졌다.


 다행히 근처엔 공원이 있었다. 안에 있는 정자에서라도 눈을 피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공원 안으로 들어와 주위를 살피는데, 사물조차 분간하지 못 할 정도로 몰아치는 눈길의 사이에서 누군가의 인영이 보였다. 바람이 세기도 하고, 눈이 내린지 꽤나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대부분 집 안에 틀어 박혔을텐데 어째서 아직까지 밖에 있는지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아무생각 없이 가까이 가다가, 얼굴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을 때 쥬다이는 저도 모르게 웃고야 말았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같이 옷을 잔뜩 껴입고, 목도리와 모자에 새빨게진 얼굴까지 단단히 가린 남자는 자신이 아는 얼굴이었다. 끝나지 않는 여행을 하는 자신에게 가끔, 아주 가끔씩 선물처럼 내려오는 남자는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인 것을 알고 있을지언정 따듯한 얼굴로 웃어주고 있었다. 이번에도 잊지 않고 와줬구나. 눈을 피할 지붕을 찾는 것도 잊어버린 채 쥬다이는 천천히 그를 향해 다가갔다.



“ …만죠메.”



 천천히 이름을 부르면 사박사박 다가온 만죠메가 주머니 속에 숨겨져 있던 손을 들어 볼을 감싸주었다. 마치 이 눈길 사이에서 오랫동안 자신을 기다린 것 마냥 손끝까지 새빨간 것이 디테일한 환상이었다. 주위에 있는 놀이기구들은 눈에 가려져 모두 사라졌지만 자신의 앞에 있는 만죠메만큼은 확실히 보였다. 추위와 아픔을 비롯한 감각들을 잊어버린 지 오래였지만, 어쩐지 만죠메의 손이 닿은 볼이 따듯해진 것 같다는 착각까지 들었다. 이번엔 왜 이렇게 늦게 왔어. 기다렸잖아. 작게 투정을 부리면 금방이라도 대답을 할 것 같은 얼굴로 입술을 조금 삐죽이는 것이 보였다. 아마 그가 말을 할 수 있었더라면 그건 자신이 할 말이라며 되받아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순간도 잊어버린 적이 없던 그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의 환상은 자신에게 한 번도 말을 해 준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대답이 없음에도 아무래도 좋았다. 가끔 앞에 나타나 준다는 것만으로도 잊혀지지 않았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어서. 정말 그가 나타나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자신의 환상일 뿐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확신만으로도 길고 긴 여행을 미치지 않고 할 수 있었기 때문에.



“ 고마워.”



 대답해주듯이 맞닿아오는 입술이 따듯하다.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생각을 하며 쥬다이는 눈을 감았다.





--------------

첫 눈 = 선물 = 연인

'유희왕'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패만/R15] 패왕님의 마지막 선물  (1) 2014.12.16
[전력 60분/십만] 좋아해  (0) 2014.12.13
[전력 60분/십만/ts] 스킨쉽  (0) 2014.11.29
[사장신고/유야신고/R19] 흔들흔들  (0) 2014.11.23
[전력 60분/십만] 다툼  (0) 2014.11.22
Posted by 하리쿠
2014. 11. 29. 00:13

- ts주의! 둘 다 여자입니다.

- 살~짝 수위 주의










 사각사각, 하고 샤프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수학 문제를 풀기 위해 손을 움직이면 좀 더 크게 들렸고, 생각을 하기 위해 멈추면 소리가 멎었다. 방 안에 있는 사람은 자신 한 명이 아니었기 때문에 왜 나 하나만의 소리가 들릴까, 하고 고개를 들면 정말 재미없다는 표정을 하고 설렁설렁 책을 넘기고 있는 쥬다이가 있었다. 기말고사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 여전히 시끄러운 교실 안에서 귀마개를 하고 공부에 집중하고 있던 자신에게 갑자기 교실의 소리가 쏟아져 들어왔다. 이번 주 토요일에 같이 공부할래? 자신의 귀에 있던 귀마개를 들고, 그렇게 물어오는 그녀를 자신은 거절할 수 없었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손바닥에 놓여지는 귀마개에서부터 두근두근 따듯한 감각이 전해져 와서 괜히 손을 꽉 쥐었다. 주위에 누가 있으면 공부에 집중할 수 없는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거절할 수 없었던 건, 글쎄. 표현은 하지 못해도 자신이 그녀를 좋아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공부엔 전혀 흥미가 없는 그녀가 굳이 자신에게 공부하자며 집으로 찾아온 이유가 무엇일까, 하고 생각을 해보아도 어째서인지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라도 자만해도 괜찮은 것일까. 연인이라고 정의 내려진 우리의 관계를 근거삼아 네가 나를 보고 싶었던 것이라고 그렇게 자신감을 가져도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들이 머릿속에 퐁퐁 생겨났다. 고백해온 것은 쥬다이의 쪽이었지만 자신은 그 전부터, 정말 예전부터 그녀를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도 같은 것일까 언제나 고민이었다. 이렇게 애교성 없는 자신의 어떤 면이 좋은 것일까, 하며 샤프를 꾹 쥐었지만 어제의 귀마개처럼 두근거림은 느껴지지 않았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를 따라서 시선을 옮기면 단정한 쥬다이의 손가락이 있었다. 어제의 귀마개는 아마 그녀의 손길이 닿았기 때문에 그렇게 따듯하고, 부드러웠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다보면 자신은 어느새 그녀의 손가락에 자신의 손을 올려놓고 있었다. 언제나 차가운 자신의 손과는 다르게 높은 온도의 체온이 서서히 전해져왔다. 깜짝 놀라 자신의 바라보는 쥬다이를, 자신은 ‘좋아한다’는 마음을 담아 보고 있었을 것이다.


 덜컹, 하고 가운데에 놓인 책상이 크게 울었다. 마주 닿은 입술이 따듯했다. 몸 안으로 전해져오는 따끈따끈한 느낌이 간질간질했다. 공부하던 책들이 남아있는 책상을 옆으로 옮기는 소리를 들으며 얌전히 눈을 감으면 입술을 핥아오는 혀가 생생하다. 아래층에 있는 오빠들도, 아직 산더미만큼 남아있는 공부도 아무래도 좋았다. 내가 조금 힘들어하면 바로 떨어지는 고개에 조금 더 입술을 비볐다. 너의 눈치를 살피며 본심을 숨기는 행위도, 뒤에서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있는 것도 이제 그만두기로 했다. 쥬다이, 하고 애타는 목소리로 너를 부르며 다시 키스하면 갈피를 못 잡고 허공을 떠돌던 손이 조심스레 허벅지에 닿았다.



“ …미안!”



 순간 치마 안쪽에서 느껴지는 열기에 깜짝 놀라 입술을 떼었더니 쥬다이가 사과했다. 미안, 미안해. 너무 갑작스러웠지. 미안…. 시선을 이리저리 굴리며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로 자신에게 사과하며 떨어지려는 그녀를 급하게 붙잡았다. 공중에서 흩날리는 옅은 갈색의 결 좋은 머리칼이 형광등의 불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났다. 그녀는 나에게 사과할 것이 없다. 모든 것은 솔직하지 못한 자신의 탓이었다. 네가 싫었던 것이 아니야, 너와 닿는 것이 싫은 것이 아니야. 머릿속에 온통 엉망진창이라 입조차 제대로 열리지 않았다.



“ 아니야. 좋아해, 쥬다이…!”



 간신히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지금 상황과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꼭 하고 싶었던 말이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좋았다. 쥬다이의 놀란 눈이 깜빡깜빡거렸다. 얼굴이 후끈후끈거리는 것을 보면 자신의 얼굴도 아마 그녀의 것처럼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금방이라도 울 것같이 떨리는 입술이 다시 쥬다이에게 닿았다. 울상이 되어버린 흉한 자신이 거절당할까 무서웠지만 쥬다이는 얌전히도 그것을 받아들여주었다. 다시 천천히 치마 안쪽에 닿아오는 따듯한 느낌에 만죠메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유희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력 60분/십만] 좋아해  (0) 2014.12.13
[전력 60분/십만] 첫 눈  (0) 2014.12.06
[사장신고/유야신고/R19] 흔들흔들  (0) 2014.11.23
[전력 60분/십만] 다툼  (0) 2014.11.22
[전력 60분/십만] 오프 더 레코드  (0) 2014.11.16
Posted by 하리쿠
2014. 11. 23. 05:34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2014. 11. 22. 00:41








 만죠메에게는 현재 커다란 고민이 있었다.


 언제나 정말 실증이 날 정도로 자신에게 달라붙던 쥬다이가 몇 시간째 자신을 돌아봐주지 않는다. 이건 정말 큰 사건이었다. 강의 시간에도 툭하면 뒤에 앉아있는 자신을 돌아보며 말을 걸고, 장난을 치던 녀석이었는데 전혀 자신을 봐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 자신이 평소와는 다르게 쥬다이의 바로 뒤가 아니라 조금 더 떨어진 뒤쪽, 그것도 옆으로 한참을 떨어진 곳에 앉아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래도 자신은 계속해서 시선이 쥬다이의 쪽으로 향함에도 불구하고 그랑 전혀 눈이 마주치지 않는다는 것은 문제가 있었다. 졸고 있는 것인지 고개가 심하게 위아래로 끄떡거리던 쥬다이가 잠꼬대로 머리를 긁기 위해 손을 올렸을 때, 만죠메는 저도 모르게 흠칫 놀라고 말았다.


 아, 이건 절대로 내가 찔려서가 아니었다. 오늘 쥬다이가 뒤로 넘어지면서 머리를 박은 것은 절대 내 탓이 아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쥬다이가 유난히도 일어나지 못했고, 그가 아침을 못 먹고 기숙사에서 나서는 날엔 정말 귀찮을 정도로 배가 고프다고 칭얼댔기 때문에(그렇다고 아침을 먹었을 때 칭얼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식당 맞음편에 앉아 졸고 있는 쥬다이의 입에 밥을 쑤셔 넣어주고 있었다. 계속 고개를 꾸벅거리면서도 밥을 넣어주면 열심히 우물거리는 것이 마치 먹이를 받아먹는 아기 새를 보는 어미 새의 마음을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 옐로 기숙사에서 쇼와 켄잔이 그를 데리러 왔다. 언제나 쥬다이 놈의 옆에 있고 싶다던 그들이었지만, 옐로 기숙사의 카바야마 선생님께서 가끔씩은 기숙사로 돌아와 달라고 했기 때문에 아-주 가끔 라 옐로로 돌아가곤 했다. 바로 어제가 그런 날이었기 때문에 아마 아침 일찍 일어나 둘이 경쟁을 하며 쥬다이를 데리러 온 것이 아니랴 싶었다. 아마 알아서 쥬다이를 데려가 줄 것이기 때문에 서로를 보며 으르렁거리고 있는 쇼와 켄잔을 보며 적당히 먹던 것을 치우고는, 아직도 밥상머리에서 졸고 있는 그를 지나치려는데 허리가 잡혔다.



“ 으으, 만죠메에 나 졸려~.”



 당연하게도 쥬다이였다.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머리를 허리에 비비적거리며 달라붙어 오는 그의 입에서 흐르는 침이 옷에 묻을 것만 같아서 만죠메는 당장 떨어지라며 쥬다이의 머리를 밀어내었다. 아무리 밀어내려 해도 졸고 있는 주제에 왜 힘을 주고 있는 것인지 몰라도 단단하게 허리를 감싸고 있는 손은 떨어지지 않았다. 슬슬 자신들을 보고 있는 쇼와 켄잔의 눈치가 이상해지는 것 같아 만죠메는 밀어내던 손에 조금 더 힘을 주었고, 이 부분에서 만죠메가 간과한 것은 쥬다이는 완전히 자신에게 기대고 있었다는 것이고, 레드 기숙사의 시설은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쥬다이가 자신에게서 떨어짐과 동시에 콰장창, 하는 소리가 들렸다. 전부터 삐걱거리던 의자의 다리가 마침내 부러진 것이었다. 의자에 앉아있던 쥬다이는 당연히 그대로 뒤로 넘어갔고, 큰 소리가 났다.


 괜찮냐고 호들갑을 떨며 쥬다이에게 달려가는 쇼와 켄잔과는 다르게 만죠메는 그 상태로 굳어버렸다. 머리가 크게 부딪친 것 같은 소리가 났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방금 그것은 자신이 쥬다이를 밀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을 사건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그에게 무어라 말을 해야 할 지 어버버거리고 있는데, 쥬다이가 뒤통수를 잡으며 일어났다.



“ 아야야.. 아파서 잠이 다 깨버렸다고. 땡큐, 만죠메.”



 어쩐지 그의 목소리는 조금 낮은 것 같기도 했다. 쥬다이의 표정이라도 살피고 싶었지만 쇼와 켄잔에게 가려져서 보이지 않아 더욱 더 불안한 가운데, 쥬다이는 그대로 쇼와 켄잔을 데리고 나가버렸다. 졸지에 식당에 부러진 의자와 단 둘이 남게 된 만죠메는 차마 그들의 뒤를 쫓아가지도 못했다.


 아니, 물론 자신이 그를 밀어버린 것은 잘못한 일이었지만, 이건 평소에도 자신이 자주 하던 행동이었다. 처음부터 자신에게 붙어온 쥬다이가 잘못한 것이 아니냐고! 실컷 찔리는 바람에 쥬다이의 근처에 앉지도 못했지만, 쥬다이 놈이 아무렇지도 않게 평소처럼 헤헤 웃으며 아침엔 미안했다고 말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오늘따라 저 놈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있었다. 언제나 이런 일이 있을 때엔 쥬다이 쪽에서 말을 걸어줬기 때문에 만죠메는 먼저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조차 알지 못했다. 차라리 화가 났다면 화가 났다고 직접 말해달라고! 첫 수업 때부터 쥬다이의 뒤통수만을 노려보고 있는 만죠메는 결국 마지막 수업까지 하나도 집중을 못하고 말았다.



“ …그, 그러니까 말이다.”



 만죠메는 수업이 끝나고 나서까지 책상에 고개를 박고 움직이지 않는 쥬다이의 옆에 있었다. 그를 깨우려던 쇼와 켄잔에게 쥬다이에게 할 말이 있다고 먼저 보내긴 했지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건 네 잘못이다? …이건 분명 더 화를 돋울 것이다. 그러기에 왜 달라붙었냐? …앞에 거랑 비슷하잖아. 미안하다? …이건 절-대로 말할 수 없다고! 하며 고민하기를 벌써 30분. 마침내 깨는 것인지 미묘하게 몸이 움찔거리는 쥬다이를 보며 만죠메는 침을 꿀꺽 삼켰다.



“ 화 풀어라, 쥬다이!”



 마지막으로 만죠메가 선택한 것은, 정말 뜬금없으면서도 진부하고, 많은 연인들 사이에서 통용될 법 한 미안함의 키스였다. 사실 키스라고 하기도 미묘했지만, 아무튼 만죠메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리는 쥬다이의 손을 꽉 부여잡고 입술부터 찾았다. 쥬다이는 자신이 먼저 키스해 주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선택한 것이었지만, 정말 할 때마다 죽을 만큼 부끄러웠기 때문에 눈을 꽉 감았다. 입도 열지 못하고 입술만 조금 부빗거리다가, 왜 쥬다이쪽에서 혀를 넣어주지 않는 것인지 그렇게 화가 난 것인지 불안한 마음에 눈을 천천히 떴는데, 쥬다이의 놀란 표정이 보였다.


 마, 만죠메…. 갑자기 무슨…? 천천히 입술을 떼자 쥬다이의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 아, 아니 이게 뭐냐면…, 하고 설명하기도 어색한 상황에서 만죠메는 한참을 시선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가 화나보여서, 그래서 풀어줄 생각이었다고. 왜 자신이 이런 것을 굳이 설명까지 해주어야 하는 것이냐고 순간 부끄러움에 달아오르는 몸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쥬다이가 과연 자신의 사과를 받아줄 것인지 그의 눈치를 살폈을 때, 쥬다이는 정말 멍청해 보이는 얼굴로 답했다.



“ 어라. 나, 화가 났던가?”



 만죠메는 쥬다이가 이런 것에 오랫동안 화가 나있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순간 자신이 어떠한 행동을 한 것인지 생각나는 바람에 얼굴까지 붉어진 상태로 만죠메는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나와 버렸다. 뒤에서 ‘만죠메, 한 번 더 해주면 안 돼?’ 따위의 말을 해대며 따라오는 쥬다이에게 시끄럽다고 화를 내었지만 화끈거리는 볼은 식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젠장, 이게 무슨 경우냐고!


 애초에 쥬다이는 아팠을 뿐이었고, 하루 종일 자신과 대화를 하지 않은 이유는 그 전날 단 둘이서 잔다는 사실에 잠을 설치는 바람에 졸려서 였다는 것을 만죠메가 알게 된 것은 조금 더 뒤의 일이었다.

'유희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력 60분/십만/ts] 스킨쉽  (0) 2014.11.29
[사장신고/유야신고/R19] 흔들흔들  (0) 2014.11.23
[전력 60분/십만] 오프 더 레코드  (0) 2014.11.16
[전력 60분/십만] 정령  (0) 2014.11.15
[전력 60분/십만/ts] 손  (0) 2014.11.09
Posted by 하리쿠
2014. 11. 16. 00:12

- 유희왕GX를 촬영하고 있는 쥬다이와 만죠메의 얘기입니다

- 112화 뒷이야기












“ 만죠메 씨, 이거 드세요.”



 아, 네. 감사합니다. 작게 웅얼거리며 받아든 컵 안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오고 있는 커피가 들어있었다. 다음 장면도 있을 텐데 자신을 위해 직접 따듯한 커피까지 가져다주시다니 역시 아스린 씨(아스카의 역을 맡은 배우이다.)는 친절했다. 입을 모아 뜨거운 김을 불어낸 뒤 조금 마시자 따듯한 기운이 식도에서부터 몸 안쪽까지 퍼지는 듯 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아직 젖어있는 몸은 제대로 따듯해 지지 않아서, 나는 덮고 있던 담요 안으로 조금 더 몸을 밀어 넣었다.


 이번 촬영은 자신이 맡은 만죠메가 중심으로, 자신의 그룹보다 더 높은 위치에 속한 아몬 그룹의 전학생과 듀얼을 하는 장면이었다. ‘헬리콥터에 연결된 커다란 판의 위에서 듀얼을 한다’는 위험한 장면에 떨어질 것을 대비하여 그물을 깔아야 한다, 말아야 한다로 말이 많았지만 마지막에 만죠메가 밑에 있는 강으로 낙하하는 장면이 있었기 때문에 결국 후자 쪽으로 결정되었다. 마지막 장면은 스턴트맨을 쓸 것이냐, 하고 묻는 감독님의 말에 직접 해보겠다고는 했지만 그 장면이 나오기도 전에 떨어지게 될 줄이야! 발을 헛딛는 순간엔 정말 아찔했기 때문에 나는 꼴사납게 비명까지 질러대고 말았다.


 물에 떨어진 다음엔 정신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수영을 미리 배워두지 않은 자신을 원망하며 차가운 물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는데,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한겨울 물의 차가운 기운이 몸 안쪽까지 퍼져 머리까지 어지러워 진다는 생각이 들 때즈음 누군가 내 허리를 잡고는 밖으로 끌어내어 주었다.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괜찮냐고 물어오는 매니저 형의 목소리는 귀로는 들렸지만 도저히 몸이 움직이지 않아 결국 부축까지 받았다.


 샤워 실은 다른 팀에서 쓰고 있었기 때문에 젖은 옷조차 갈아입지 못한 채로 난로 근처에 앉아서 괜찮냐고 물어오는 스텝들에게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을 해주고 있자 이번 촬영은 연기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오랜만의 만죠메가 메인인 화였기 때문에 조금 아쉬웠지만 몸 상태가 이래서야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샤워 실이 비는 대로 말을 해주겠다며 몸 녹이고 있으라는 매니저 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스텝들을 보며 쓰고 있던 안경을 매만지는데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 만죠메 씨, 괜찮아?”



 자신이 물에 빠졌을 때, 제일 먼저 뛰어들어 구해준 쥬다이 씨였다.(배우의 이름은 따로 있었지만 장기 촬영이었기 때문에 몰입을 위해 배역 이름을 부르기로 했다.) 옆에 물에 젖어 축 쳐져버린 머리를 다시 손질해주고 있는 코디 누나가 있었기 때문에 시선을 피하며 작게 입을 열어 네, 하고 웅얼거리듯이 답했다. 다행이라며 낄낄 웃는 쥬다이 씨는 이 촬영장의 아이돌 같은 존재였기 때문에 이번 촬영이 첫 조연인 자신은 대화하기도 영광스러운 것이었다. 다행이야, 다행이야~ 하며 자신의 머리를 만지고 있는 코디를 휘휘 쫓아 보낸 쥬다이의 얼굴이 갑자기 다가왔다.



“ 쉬고 있어. 금방 찍고 올게.”



 쪽, 소리를 내며 입술이 닿았다 떨어졌다. 들고 있던 대본으로 가린다고 옆을 가린 것 같았지만 겨우 그것만으로 가려질 리가 없었기 때문에 순식간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아, 정말! 밖에서 이런 짓 하지 말라니까! 입 모양으로 항의해도 장난스럽게 웃고 있는 쥬다이에게는 아마 씨알도 먹히지 않겠지. 아마 그는 자신들이 사실은 사귀고 있는 사이라는 것을 비밀로 할 마음조차 없을 것이다. 자신이 어째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존댓말까지 써가며 어색한 척을 하고 있는데! 다음 촬영 장소로 설렁설렁 발걸음을 옮기는 뒷모습을 보며 만죠메는 입술을 조금 삐죽였다.


카메라에 비치는 쥬다이는 정말 쓸데없이 잘생겼기 때문에 조금 더 심통이 났다는 것은 비밀이었다.

'유희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장신고/유야신고/R19] 흔들흔들  (0) 2014.11.23
[전력 60분/십만] 다툼  (0) 2014.11.22
[전력 60분/십만] 정령  (0) 2014.11.15
[전력 60분/십만/ts] 손  (0) 2014.11.09
[전력 60분/십만] 유죄, 무거움  (1) 2014.10.26
Posted by 하리쿠
2014. 11. 15. 03:30








 쥬다이가 점점 정령화가 되어가고 있다고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집으로 찾아온 녀석이,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해온 말이었기 때문에 나는 바보같이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금까지 전례가 없던 사람과 정령의 융합이니만큼 원인이 될 수 있는 요인은 셀 수 없을 만큼 있을 것이다. 유벨이 나를 잡아먹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내 자신이 원인인지조차 모르겠어. 붙잡고 있는 녀석의 손이 조금 떨렸다. 나를 보며 ‘너는 내가 보이지?’하고 묻는 녀석에게 나는 아무런 말도 해줄 수 없었다.


 만약 녀석이 조금만 더, 적어도 2개월만 더 일찍 왔다면 나는 당연하다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을 것이다. 나는 네가 보인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그렇게 당당하게 말해줄 수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불안해하는 녀석의 손을 잡아주며 달래줄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할 수 없었다. 바라보고 있는 시선을 피하며, 살짝 끊겨서 들리는 목소리를 들리는 척 하면서, 아아, 하고 적당히 얼버무리는 나를 녀석은 이상하게 보았을까.


 어느 순간부터 정령이 안보이기 시작했다. 뒤에서 나를 부르는 방해꾼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예삿일로, 집에 데리고 있는 카드의 정령들의 모습들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방해꾼 녀석들에게 말을 걸어도 대답은 끊겨서 들렸고, 어느 날엔 모습 자체가 보이지 조차 않았다. 자신은 정령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직접 보고, 만지고, 대화했기 때문에 정령의 존재를 믿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정령을 볼 수 있는 힘이 사라지는 것인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옐로 녀석을 보기 시작한 것도 노스 교에 가게 된 날 갑자기 였기 때문에, 어느 순간 사라져도 할 말이 없는 힘이기는 했다.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사라진다면 자신은 이제 영영 정령들을, 저 방해꾼 놈들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되는 것일까. 덜컥 무서워져 애써 녀석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고 있었다. 그랬는데, 그 힘이 없어지는 것으로 또 이러한 문제가 생길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자신은 아마 곧 정령을 완전히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쥬다이도 제대로 볼 수 없게 된다는 뜻이 된다. 쥬다이는 이미 다른 듀얼 아카데미아의 동료들이 자신을 볼 수 없는 것을 확인하고 왔다고 했다. 그것만으로도 잔뜩 충격을 받았을 그에게 만죠메는 차마 ‘나도 널 볼 수 없다’고 말할 수 없었다. 어렴풋하게 보이는 녀석을 멀쩡하게 보이는 척, 제대로 들리지 않는 녀석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척 하며 만죠메는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언젠가 녀석을 볼 수 없는 날이 오더라도, 지금 당장은 녀석이 존재하고 있는 장소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얼굴을 가린 채 어깨를 떨고 있는 쥬다이의 실루엣을 보며 만죠메는 빌고 또 빌었다. 그 날이 올 때까지 쥬다이가 힘이 사라진 자신을 눈치 채지 않기를, 이미 상처받았을 그에게 조금이라도 더 위로가 될 수 있기를.



“ 만죠메, 너만은 나를 봐줘….”



 내 거짓말이 쥬다이에게 들키지 않기를.





-----------

정령이 되어가는 쥬다이x정령을 볼 수 없게 된 만죠메를 보고싶었는데 제대로 표현이 되지 않은 것 같아 아쉽습니다ㅇ<-<

'유희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력 60분/십만] 다툼  (0) 2014.11.22
[전력 60분/십만] 오프 더 레코드  (0) 2014.11.16
[전력 60분/십만/ts] 손  (0) 2014.11.09
[전력 60분/십만] 유죄, 무거움  (1) 2014.10.26
[전력 60분] 덱  (0) 2014.10.19
Posted by 하리쿠
2014. 11. 9. 20:13

- ts 주의! 둘 다 여체화입니다








 만죠메는 초조할 때 손톱을 뜯는 버릇이 있었다.

 언제부터 그랬더라, 는 별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예전부터 손톱을 씹고 있으면 부모님이나 자신을 돌보아주는 아줌마에게 혼이 났기 때문에 몇 번이나 고치려 했지만 생각이 많아지면 저도 모르게 손끝이 입으로 갔다. 너덜너덜한 손톱 끝은 여자로써 예쁘지 않았다. 예쁘게 꾸미는 것에 관심을 많이 두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단정한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만죠메는 항상 자신의 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깨끗한 손톱을 위해 너덜너덜한 부분을 잘라내고, 또 정신을 차리고 나면 너덜너덜해진 손톱을 또 자르다 보면 어느새 손 안쪽까지 바짝 다가온 손톱이 아팠다. 그렇게 몇 번을 피를 보고, 기르려고 애를 쓰다가 실패하고를 반복하고 있던 참이었다.


" 만죠메는 왜 손톱을 물어 뜯는거야?"



 어느날 쉬는시간까지 노트를 정리하고 있는 만죠메에게 누군가 물었다. 눈을 깜빡깜빡하곤 바라보면 자신과 같은 반의 쥬다이라는 여학생이었다. 같은 반 학생에게 별로 관심을 두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첫 날부터 자신을 소개하며 친하게 지내자고 다가오는 이 여학생과는 몇 번 말을 섞은적이 있었다. 언제부터 앞에 있었던 건지 앞자리에 자연스레 앉아있는 여학생이 대답을 기다리는 듯이 자신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만죠메는 조금 목을 가다듬었다.


" 버릇이야."


" 하지만 만죠메 손 예쁘잖아. 손톱 기르면 잘 어울릴텐데."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오는 쥬다이의 눈길이 파란색 볼펜을 잡고있는 자신의 손에 고정되어있어 조금 부끄러워져버려 만죠메는 괜히 자신의 손을 문질렀다. 나, 나도 고치려고 해봤는데 잘 되지 않았어. 손끝이 닿아오는 자신의 손의 윤곽이 그녀의 말 때문인지 괜히 눈에 띄었다. 천성부터 하얀 피부의 앏은 손가락은 전에도 그녀에게 칭찬을 들은적이 있었다. 어째서 그런 부끄러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인지 만죠메는 볼이 조금 화끈거릴 것 같았다. 확실히 만죠메의 손은 예쁜 축이었기 때문에 거친 손톱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울퉁불퉁한 손톱 끝을 더듬고 있자니 그것을 바라보던 쥬다이가 그렇다면 매니큐어를 발라줄께, 했다. 갑자기 왠 매니큐어?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일 손톱 정리하고 와! 하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버리는 그녀를 잡기엔 쉬는 시간은 너무 짧았다. 울리는 쉬는 시간이 끝나는 종소리를 들으며 다음 시간의 교과서를 꺼내는 만죠메의 손 끝이 거친 책 표면에 닿아 아팠다.


 다음 날 정말 쥬다이는 매니큐어를 들고 나타났다. 빨강 파랑 분홍 민트 등등 여러색의 매니큐어가 점심시간 교과서를 보고있던 만죠메의 책상 위에 놓여지기 시작했다. 그녀 혼자서 모았다기엔 색상이 너무 다양하고, 쥬다이는 손톱에 아무것도 칠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 너의 것이냐고 물었더니 친구들에게도 부탁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생각해보면 공부 관련해서 몇 번 말을 섞어보았던 미사와도 은근히 이런 여성스러운 것을 좋아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어떤 색을 바를지 이것저것 들여다보고 있는 쥬다이가 형광색이라던가, 무언가 반짝반짝거리는 것들만 손에 쥐었기 때문에 만죠메는 조심히 입을 열었다.


" 투명한 걸로 해줘."

" 에, 왜?"

" 아무튼."


 재미없어~, 따위를 중얼거리며 입술을 삐쭉인 쥬다이가 구석에 있던 투명 매니큐어를 잡았다. 뚜껑을 열면 매니큐어 특유의 자극적인 냄새가 확산되었다. 어젯밤 어째서인지 열심히 다듬은 손톱을 그녀에게 내밀자 잡아오는 손길이 따듯하다. 투명한 액체가 발린 솔이 엄지 손가락의 손톱에 닿았다. 어쩐지 긴장되어 숨을 조금 멈추었더니 약간 차가운 듯 한 점성의 액체게 천천히 발렸다. 시선을 조금 올리면 자신의 손톱에 집중하고 있는 쥬다이가 보였다. 조금 내리깔아져있는 그녀의 속눈썹이 조심스레 움직였다. 지각도 잦고, 툭하면 덜렁대는 모습으로 반에 웃음을 주던 그녀가 이렇게 집중하는 모습은 처음보는 것이었기에 가슴이 조금 떨렸다. 그녀는 나에게 손이 예쁘다며 칭찬을 해주었지만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그녀의 손 또한 예뻤다. 건강한 색의 피부와 예쁜 손톱, 적당히 얇은 그녀의 손은 아마 얇기만 한 자신의 것보다 선호하는 사람이 많으리라 싶었다. 실제로 자신도 그녀의 손이 조금 부럽기도 했다. 차가운 자신의 것과는 다르게 따듯한 그녀의 손 덕분에 맞닿은 부분부터 따듯함이 간질간질하게 퍼졌다.


" 푸하~! 긴장했다!"


 한 쪽 손을 다 바르고 나자 그녀 또한 숨을 멈추었던 것인지 크게 숨을 내쉬며 깔깔 웃었다. 그녀에게 들키지 않을정도로만 참았던 숨을 내쉬며 만죠메는 손을 내려보았다. 단정하게 정리된 손톱 끝이 반짝반짝했다. 화려한걸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한 번도 발라본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보고 있으니 어쩐지 발라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실의 불빛을 반사시키며 빛나는 손톱을 이리저리 보고있으니 가만히 있어야 마른다구, 하고 쥬다이가 말했다. 왠지 방정맞게 굴어버렸다는 생각에 바로 손을 책상으로 내려놓자 쥬다이가 다시 한 번 웃었다.


" 그걸 이번 주 동안 유지하는게 숙제라구? 물어뜯지 마."


 자신을 손가락으로 콕 찍는 쥬다이의 말에 만죠메는 고개를 끄덕었다. 아마 쥬다이의 숙제는 일주일 내내 만죠메를 괴롭힐 것이다.

'유희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력 60분/십만] 오프 더 레코드  (0) 2014.11.16
[전력 60분/십만] 정령  (0) 2014.11.15
[전력 60분/십만] 유죄, 무거움  (1) 2014.10.26
[전력 60분] 덱  (0) 2014.10.19
[전력 60분/십만] 눈물자국  (0) 2014.10.11
Posted by 하리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