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금, 폭행, 유혈, 얀데레 등 취향 타는 소재가 들어있습니다
- 십만 온리 십만죠메 투자자 세미나에서 배포한 글입니다
만죠메가 눈을 떴을 때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제는 흐릿해진 시야로도 확실히 주변엔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만죠메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다가, 무언가를 깨달았다. 몸이 가벼웠다. 만죠메는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손목을 짚었다. 발목도 어루만지고, 목도 더듬었다. 평소 자신의 몸을 짓누르는 구속구가 없었다. 오랜만에 만져보는 맨살은 거친 쇠에 몇 번이고 긁혀 짓무른 상처가 있었다. 하지만 만죠메는 그것으로도 좋았다. 손끝에 닿는 감각은 차가운 수갑이 아닌 아무리 엉망이 된 것이라도 자신의 피부였다.
어째서 자신을 구속하던 것들이 풀려있는 지에 대한 의문은 나중에 가서야 들었다.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어 주위를 둘러보다가, 문이 열려있는 것을 알았다. 평소엔 굳게 닫혀있던 문은 닿을 수도 없는 것이었다. 이젠 걷는 것조차 힘겨운 다리의 근육을 애써 움직여 문으로 향하면 목에 걸려있는 개목걸이가 자신을 막았다. 몇 번이나 몸을 비틀어도 쇠사슬이 맞부딪치는 소리만 낼 뿐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침대에서 내려와 있는 것을 들키면 손과 발까지 구속되어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것이 바로 어저께 같은데, 지금은 구속도 없었고, 문도 열려있었다.
사실상 지금이 찬스였다. 만죠메는 떨리는 다리로 조심히 지면을 밟았다. 순간 휘청거리는 몸에 넘어질 뻔 했지만, 만죠메는 천천히 문을 향해 다가갔다. 혹시나 문의 사이에서 자신을 감금한 이가 보일까 심장이 두근거렸지만, 다행히도 문을 지나칠 때까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한기마저 느껴지는 어두운 복도엔 인기척 하나 느껴지지 않았다. 언제나 자신을 감시하는 이들도 보이지 않아서, 만죠메는 서둘러 그곳을 벗어나려 발걸음을 옮겼다. 운동이라곤 자신을 감금한 이와 침대에서의 성행위 외엔 없었기 때문에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찼다. 하지만 이렇게 성이 텅 비어있을 때가 기회였다. 만죠메는 온 몸에서 느껴지는 격통에도 이를 악 문채로 몸을 움직였다. 잘 보이지 않는 시야에 언제 몬스터가 나타날지 몰랐기 때문에 걸음을 옮길 때마다 심장이 덜컹거렸다.
자신을 감금한 이는 패왕이라고 불렸다. 이세계를 지배하는 자, 라고 설명하는 것을 몸을 피하는 것에 도움을 준 마을에서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마을은 불에 타버렸다. 홀로 쓰려져 있던 자신에게 죽을 주고 잠자리를 마련해 주었던 상냥한 사람들은 모조리 패왕의 손에 목이 잘려 죽었다. 항상 밝게 웃어보이던 사람들의 피를 온 몸에 뒤집어쓰고 떨고 있던 자신을 패왕은 거칠게 끌고 갔다.
말을 타거나, 단단한 갑옷을 입고 있는 다른 병사들과는 다르게 신발조차 신지 않은 만죠메는 패왕의 성까지 수 백 킬로를 걸었다. 손목을 감싼 밧줄을 풀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였지만 절대로 그것은 풀리지 않았고, 혹시나 자신이 움직여 패왕의 걸음에 방해가 된다면 그에게 직접 뺨을 맞았다. 발에 물집이 잡히고 다시 터져, 그 위에 또 다시 물집이 생기기를 반복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패왕은 걷는 것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 만죠메는 다시 일어나 걸을 수밖에 없었다. 잡혀가는 자신을 조롱하는 병사들의 목을 직접 베어버리는 패왕의 눈은 차가웠다. 죽지 않은 것에 안도해야 하는지, 아니면 그 때 죽었어야 했다며 후회해야 하는지 그 때의 만죠메는 알지 못했다.
패왕은 만죠메를 하나의 방에 가두었다. 도망갈 수 없도록 사지를 묶어놓는 수갑과 목을 조르는 목걸이에 만죠메는 몇 번이나 풀어달라고, 무슨 짓이냐고 소리쳤다. 하지만 만죠메에게 돌아오는 것은 패왕의 싸늘한 시선과, 거친 폭행과, 강제적인 성행위뿐이었다. 그의 손길 하나하나가 닿을 때마다 만죠메는 무서움에 몸을 떨었다. 부드럽게 몸을 쓰다듬던 손은 언제 무기가 될지 몰랐다. 뺨을 맞는 것은 예삿일로 심할 때엔 발에 채이거나 주먹으로 맞아 피를 토하기까지 했다. 단단한 갑주로 덮여 있던 패왕의 손발은 자신의 뼈조차 손쉽게 부러뜨렸다. 도망치려는 시도를 했다가 양 발목이 부러지고, 목을 조르는 패왕의 손길에 숨이 부족해 기절하고 나면 항상 치료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픔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온 몸의 뼈가 바스라질 것 같은 느낌에 만죠메는 몇 날 며칠을 울었다. 비명을 지르느라 이미 쉬어버린 목에서 피가 나올 때까지 울고, 위장에 위액도 안남을 때까지 입에 아무것도 대지 않아 정신까지 혼미해 질 즈음, 패왕은 자신에게로 왔다.
차라리 죽이라고, 죽이지 않겠다면 내가 죽겠다고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소리치자 패왕은 자신에게 키스를 해주었다. 목 너머로 물이 넘어갔다. 충분히 목이 축여질 때까지 몇 번이고 키스를 하던 패왕은 밖에 있던 병사에게 죽을 가져오라 지시했다. 먹지 않겠다며 고집을 부리면 죽을 가져온 병사를, 자신 외에도 포로로 잡혀온 마을 사람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만죠메는 그것을, 그 후에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자살할 수도 없었다. 몸의 고통에 죽여 달라고 빌면 패왕은 자신을 감옥으로 데려갔다. 반란을 일으킬 수 없는 어린 아이들과 여자, 늙은 사람들이 수십, 수백 명이 잡혀있는 것을 보여주며 네가 자살하거나 죽여 달라고 말하면 이들을 모두 죽일 거라고 했다. 만죠메는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여 반쯤 쓰러져 있는 감옥 안의 사람들을 보며 울었다. 어째서, 왜 자신에게 이런 짓을 하느냐고 패왕의 멱살을 잡고서라도 물어보고 싶었다.
패왕성은 비어있었다. 패왕은 다른 마을을 정복하러 나설 때에도 항상 패왕성 안에도 병사들을, 그것도 자신의 주변에는 특히나 배치해 놓았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성에서 느껴지는 싸늘한 기운에 몸을 떨면서도 만죠메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이 성은 별로 돌아다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지리를 잘 알지 못했지만 일단 밑으로 내려가야 한다는 것은 확실했다. 흐릿해진 시야로는 사물을 제대로 분간할 수 없어서 몇 번이나 넘어졌다. 손에서 느껴지는 벽의 느낌에 의지하여 걸어도 어딘가 불안한 것은 사실이었다. 만죠메의 눈은, 패왕이 멀게 만든 것이었다.
패왕은 만죠메의 눈을 좋아했다. 만죠메가 강제로 이어진 몸의 고통에 울고 있으면 항상 그것을 핥아주며 눈 위에 키스하곤 했다는 것에서 알 수 있었다. 패왕은 눈 위에 키스를 하다가도 금방 눈알에 혀를 대고는 했다. 눈알의 얇고 섬세한 각막에 혀의 거친 면이 닿으면 정말 미칠 듯이 아팠다.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고 새빨개 진 눈을 부여잡고 울면 패왕은 만족스러운 듯이 웃었다. 다음 날도, 그 다음날도 패왕은 몇 번이고 만죠메의 눈에 키스했다. 아무리 인간이 고통에 익숙해지는 동물이라 할지라도 그 고통만은 절대로 익숙해 질 수 없었다. 시야가 흐릿해 진 것 같다고 느낀 것은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만죠메는 어두운 패왕성에서 나갈 수 없었으므로 그저 어두운 것에 익숙해져 그런 것이라 생각했었다.
어느 날이었나, 만죠메가 자신의 얼굴이 비칠 정도로 잘 갈려있는 돌 판을 볼 때가 있었다. 그것을 통해 보이는 자신의 얼굴이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번이고 들여다보며 눈을 한참을 깜빡이고 난 뒤에야 만죠메는 달라진 것이 무엇 이었나 알 수 있었다. 자신의 눈 색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자신은 머리도, 눈도 새까만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눈은 머리색과 비교해보면 확연하게 색이 옅어져있었다. 만죠메는 그것의 이유가 패왕이 자신에게 하는 눈의 키스 때문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시야에 들어오는 흐릿한 것 같은 자신의 모습에 만죠메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뒤로 만죠메는 몇 번이나 패왕의 키스를 거부했다. 차라리 다른 곳에 하라고, 시력을 잃고 싶지 않다고 아무리 소리쳐도 패왕은 조금도 들어주지 않았다. 혀에 피 맛이 느껴지고, 머리가 멍해질 때까지 맞고 나서야 만죠메는 절대로 이것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패왕의 혀가 눈에 닿기도 전에 피눈물이 흘렀다. 정말로 점점 시야가 흐릿해 진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만죠메는 패왕에 대한 증오에 몸을 떨었다.
지금 만죠메의 눈은 예전에 까맣다고 하면 믿지 못할 만큼 색이 옅어져 있었다. 시야도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제래도 보이지도 않았다. 간신히 가까이 있는 사람이나 사물을 구분할 수 있는 정도의 시야에는, 어제까지만 해도 패왕만 보였다. 병사들은 자신에게 밥을 줄 때 외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혹여나 병사들 중 하나가 자신의 옆에 있거나, 대화를 하면 최소한 팔이 잘렸다. 그것도 자신이 죽이지 말라고 그를 붙잡아가며 말릴 때에야 그것으로 끝났다. 만약 만죠메가 그렇게 병사의 목숨을 구하면 그 날 하루는 정말 버티지 못할 만큼의 괴롭힘을 당했다. 차라리 기절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였지만, 그런 날에 패왕은 물까지 뿌려가며 자신이 쓰러지는 것을 막았다. 장난감에 괴롭힘을 당하고 땅을 기어 다니며, 만죠메는 그래도 자신 때문에 다른 병사가 죽지 않은 것에 대해 안도했다.
만죠메가 마지막으로 다다른 곳은 지하의 도살장이었다. 한 마디로 인질이나 반란을 일으킬 수 있는 남자들을 죽이는 공간이었다. 언제나 용암이 끓고 있는 그곳에서는 항상 피비릿내와 죽음의 냄새가 났다. 수천, 수만, 수십만 명의 사람이 이곳에서 죽었을 것이다. 뜨거운 용암에 자신의 살과 내장이 녹아가는 것을 느끼면서, 고통 속에서 패왕을 원망하며 죽었을 것이다. 만죠메는 차마 이곳에서는 오래 있을 수 없어 다리를 서둘렀다. 이곳만 지나가면 밖이었다. 온갖 이물질에 긁혀 피가 나고 물집이 잡힌 발은 만죠메의 탈출의 방해물이 되지는 못했다.
만죠메는, 여기서 사람이 죽는 것을 보았다. 탈출을 시도했을 때였다. 문 앞을 감시하던 병사를 어찌저찌 기절시키고 만죠메가 간신히 밖으로 나왔을 때, 패왕이 보였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패왕이 무서워 도망쳤지만 다리를 거의 쓸 수없다고 해도 무방한 만죠메는 절대로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강제로 머리채를 잡혀 끌려간 곳은 도살장이었다. 만죠메는 드디어 패왕이 자신에게 질려 죽인다고 생각했다. 마침내 그동안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하면 당장이라도 패왕의 손을 뿌리치고 자진해서 용암 속으로 뛰어들고 싶었다. 하지만 패왕은 결코 만죠메를 놓지 않았다. 그리고 그 곳을 담당하는 코자키라고 하는 자에게 감옥에 있는 인질들을 데려오라고 했다. 만죠메는 경악한 시선으로 패왕을 보았다. 설마,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잔뜩 말라 죽어가고 있는 어린 아이들과 여성, 늙은 사람들이 채찍에 맞고 수갑에 이끌려 도살장으로 끌려왔다.
그들을 보자마자 만죠메는 패왕에게 빌었다. 잘못했다고, 다시는 탈출 같은 건 꿈도 꾸지 않겠다고. 제발 저 사람들을 죽이지 말아달라고. 뭐든지 하겠다고, 앞으론 반항 같은 것도 하지 않겠다고 무릎을 꿇고 두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패왕의 다리를 부여잡고 제발 그러지 말아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하지만 패왕은 그런 만죠메를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인질들은 모두 죽었다. 뜨거운 용암에 피부가 녹고 안의 내장이 쏟아져 나와, 그것조차 모두 녹아버렸다. 끝까지 살려달라며 자신을 보고 울던 어린아이의 안구가 터졌다. 뇌가 녹아가는 고통에 터져 나오는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고막을 찢어버릴 정도로 울렸다. 패왕은 만죠메가 시선을 피하는 것조차도 용서하지 않았다. 자신 때문에 죽는 사람들을 위해 만죠메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목이 찢어질 때까지, 더 이상 몸의 수분이 남아있지 않을 때까지 우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의 무력함을 뼛속까지 느끼며 만죠메는 오열했다.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몇 억 번을 빌어가며 만죠메는 그렇게 실신할 때까지 울었다.
만죠메는 빠르게 그곳에서 벗어났다.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다. 패왕성의 밖에도 인기척 하나 없었다. 만죠메는 걷고, 또 걷고, 걸을 수 없을 때에는 기어서라도 패왕성에서 도망쳐 나왔다. 패왕성이 저 멀리 보일 때가 되어서야 온 몸의 고통이 느껴져 만죠메는 길바닥에 쓰러졌다. 발은 이미 물집과 피고름 투성 이었고, 발목과 손목에서는 그동안 수갑에 쓸린 것 때문에 잔뜩 짓물어 피와 진물이 흐르고 있었다. 머리는 깨질듯이 아팠으며, 더 이상 움직일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차가운 길바닥에 누워, 만죠메는 이제는 패왕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왜 여기까지 오는 데에 패왕도, 패왕군도 보이지 않았냐는 물음은 들지도 않았다. 서서히 꺼져가는 의식에 만죠메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제, 자신은 자유였다.
“ 패왕을 죽여라! 패왕군을 죽여라!”
그곳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장소에서 들리는 소리는 이미 잠들어버린 만죠메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불타고 있는 패왕과 패왕군들의 갑주와 바닥에 흩뿌려진 패왕의 피를 만죠메가 알게 되는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모두 죽어버린 패왕성에서 만죠메가 벗어난 것은
만죠메를 사랑했지만 제대로 표현을 할 수 없었던
패왕님의 마지막 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