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7. 14. 00:24

- 원고로 하던거였는데 모종의 이유로 그냥 공개.. 뒤는 이을지 안이을지 모릅니당








 형님들께서 마련해 주신 요양지는 생각보다 구석진 곳에 있었다. 보통 타고 다니던 리무진보다 작은 차가 향한 곳은 바다를 옆에 둔 어느 한적한 마을이었고, 도착한 곳은 그 마을에서도 조금 떨어진 별장이었다. 나의 건강을 위해 지었다고 형님들은 말했지만, 사실 병원에 있어봤자 차도가 보이지 않는 자신을 신경 쓰지 않으려 보내버렸다는 것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만죠메는 혼자 살기엔 커다란 별장을 고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 수는 없었다.


 만죠메가 처음으로 안에 들어서 한 일은, 자신의 시중을 들어주기 위해 있던 가정부와 집사들을 모두 내쫓는 것이었다. 옷을 받아주겠다며 옆으로 다가온 여자에게 필요 없으니 당장 나가라며 소리쳤다. 당황하는 눈빛들이 쏟아졌지만 그것에 주춤할 자신이 아니었다. 너희들은 모두 해고를 할 것이고, 만약 필요하다면 본가로 보내줄 테니 당장 짐을 싸라고 한바탕 난리를 치고 나서야 부랴부랴 방으로 돌아가는 그들을 볼 수 있었다. 아마 그들은 자신을 욕 할 것이다. 운전기사만 제외하면 모두 처음 보는 얼굴이었고, 자신은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을 향해 화를 낸 것이었다. 병원에서 자신의 병수발을 들어주던 사람들도 모두 내쫓았고, 본가에 있던 가정부들도 자신의 짜증에 견디지 못해 모두 그만두었다. 형님들께서는 생각해서 새로운 사람들을 뽑아 보내준 것이겠지만 아무것도 필요 없었다.


 자신의 병이 낫지 않을 것이라는 건 알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약했던 몸이었다. 언제 발작을 일으켜 쓰러질지도 모르는데, 그런 꼴사나운 모습을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고, 아무리 치료를 받아봤자 차도도 없을 테니 병수발 따위를 받고 싶지도 않았다. 이런 큰 별장 따위 필요 없다고, 혼자 살 수 있는 공간이면 된다고 형님들께 말했지만 아마 이 크기의 집과 사람들은 형님들의 최소한의 형제간의 우애, 혹은 죄책감일 것이다. 어짜피 곧 죽을 사람일 것을 왜 굳이 신경을 쓰는 것인지 만죠메로써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만죠메 그룹에 도움은커녕 방해만 되는 열등생 따위, 더 이상 필요 없을 터인데. 성급하게 집에서 쫓겨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만죠메는 들고 있던 가방을 조금 더 꽈악 쥐었다. 식료품은 제가 사다 드리겠습니다. 뒤에서 운전사가 말했다. 자신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유일하게 남아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아마 자신이 다 내쫓을 것이라는 것을 예측한 모양이었다.



“ …필요 없어.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돌아가.”


“ 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군말 없이 고개를 숙이는 운전사의 태도는 나쁘지 않았다. 넓은 거실과는 떨어져 있는 2층의 방을 써야겠다고 생각하며 계단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형님들께서는 생각보다 도련님을 걱정하고 계십니다. 너무 미워하지 말아주세요. 금방이라도 나갈듯이 문을 잡고 있는 운전사의 표정은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확인할 수 없었다. 쓸데없는 참견이니까 당장 나가라, 하고 일갈하고 나서도 그의 말은 생각보다 기분이 나빴기 때문에 내딛어지는 발에 조금 힘이 들어갔다. 그럼에도 해고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은 아마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이기 때문이겠지.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기분이 나빴다. 하여간 오래 산 영감들은 남의 속을 너무 잘 파악해서 문제였다.


 처음부터 2층은 자신을 위해 지어진 것인지 문이 하나밖에 없었다. 어렸을 적부터 자신은 살짝 높은 층을 좋아했다는 것을 신경써준 것 같아서 만죠메는 괜히 입술을 조금 삐죽였다. 고급스러운 손잡이는 손에 감기는 느낌도 병실과는 달랐고, 문 또한 조금의 삐걱임 없이 열렸다. 쓸데없는 소리로 시끄러운 것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나마 마음에 든다는 생각이 들었던 참에, 그런 만죠메의 감성을 방해하는 목소리 하나가 끼어들었다.



“ 여어, 왔어? 기다리고 있었다구.”



 자신이 싫어하는 세상에 아무 걱정도 없는 것 같은 아주 가벼운 목소리를 가진, 자신의 방에 멋대로 침입해 온 처음 보는 남자였다. 게다가 초면에 반말까지 찍찍 해대다니 예의라는 것을 조금도 모르는 녀석인 것 같아서 만죠메의 인상이 조금 더 찡그려졌다. 자신의 집에 있는 것 보면 형님들이 보낸 고용인인 것 같기도 한데 멋대로 반말이라니. 남의 침대에 멋대로 걸터앉아 가볍게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아 만죠메는 들고 있던 짐을 힘을 주어 내려놓고는, 불쾌함이 잔뜩 묻어있는 목소리로 답했다.



“ 네 놈은 누구야. 고용인이라면 당장 내 집에서 나가.”


“ 음-. 그건 안 되겠는데.”



 자신을 향해 씨익 웃어 보인 남자는 호이, 하고 장난스럽게 침대에서 내려와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난 고용인이 아니거든. 자신과 나이대도 비슷해 보이는 남자는 여전히 가벼운 발걸음으로 자신을 스쳐지나갔다. 배고프지 않아? 밥 차려올게. 자신이 매서운 눈초리로 쏘아보든 말든 남자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으며 방에서 나가 1층으로 향했다. 고용인도 아닌데 남의 집에 멋대로 쳐들어와 멋대로 행동하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행동에 만죠메 역시 쿵쾅거리며 계단을 내려갔다. 이미 이 집의 구조를 알고 있는 것인지 남자는 벌써 1층의 안쪽에 있는 부엌의 냉장고를 뒤지고 있었다.



“ 뭐 하는 거야. 못 들었어? 내 집에서 당장 나가라고!”


“ 거 참 말 많네. 요리하는데 집중할 수가 없으니까 그냥 올라가 있을래? 만죠메.”



 낯선 남자의 입에서 나온 자신의 이름에 만죠메의 눈썹이 조금 움찔거렸다. 감히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을 이렇게나 무시하다니! 이렇게 불쾌한 사람은 만죠메의 인생에서 처음이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뒤를 돌아 냄비에 물을 올리고 있는 남자에게 다가가 만죠메는 거칠게 멱살을 잡았다. 남자의 손에 들려있던 냄비가 바닥에 떨어져 귀 아픈 소리를 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남자의 조금 놀란 것 같은 동그랗게 뜨여진 눈과 시선을 마주하자 화가 더욱 치밀었다.



“ 야, 너 뭐야. 사람의 말이 말 같이 안 들려? 신고하기 전에 빨리 나가!”



 오랫동안 병실에 있으면서 산책조차 제대로 하지 않아 폐활량이 낮아진 것인지, 아니면 그저 감정이 격해진 탓인지 벅차온 숨에 만죠메는 한참을 숨을 헐떡였다. 자신에게 멱살이 잡힌 남자는 자신이 숨을 고를 때까지 기다려주다가, 천천히 손을 풀었다. 더 이상 소리를 지를 기력이 남아있지 않아 그저 눈에 잔뜩 힘을 주고 노려봤더니 남자는 그대로 자신의 등을 밀어 2층까지 데려가는 것이었다. 뭐 하는 거야, 당장 나가, 하고 아무리 짜증을 내어도 남자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굳이 힘을 주어 자신을 침대에까지 눕혔다.



" 조용히 있고 싶어서 여기로 온 거 아니야? 금방 밥 만들어 올 테니까 얌전히 있어."



 마지막으로 이불 위를 툭툭 두드리는 것까지 자신을 한없이 얕보고 있는 것 같아 짜증이 났다. 만죠메는 남자가 작게 문을 닫고 나가는 것을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지만, 곧 놔버렸다. '조용히 있고 싶어서' 남자가 한 말이 맞았다. 낫지 않는 병에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는 치료사들을 보고 싶지 않아서. 평생 병원 신세를 져야 하는 귀찮은 동생을 돌봐야 하는 형들을 볼 면목이 없어서. 매일같이 사람이 죽어나가는 병원의 답답한 공기 안에 더 이상 있고 싶지 않아서 자신은 형들에게 요양을 보내달라고 한 것이 맞았다. 게다가 핸드폰으로 연락을 한다면 누구에게 한단 말인가? 형님들? 경찰? 어느 쪽이던 귀찮아질 것임이 분명했다. 게다가 이 나이가 되서 겨우 이런 일도 해결하지 못하다니! 이것은 굴욕이었다.


 생각해 보면 전에도 자신을 이렇게 귀찮게 굴던 간호사가 있었던 것 같다. 식욕이 없어 먹지 않겠다고 하면 굳이 한 숟가락만 더 먹으라고 한다던가, 올 때마다 산책 좀 하라고 잔소리를 하던 간호사도 결국 자신의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밥을 가져온다면 먹지 않으면 된다. 말을 건다면 무시하면 된다. 그렇게 한다면 왜 이 곳에 있는지 모를 저 남자도 분명 자신을 포기할 것이었다. 요양을 선택한 것은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싶지 않아서도, 형님들께 부담이 되고 싶지 않아서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제일 큰 이유는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끝내고 싶어서도 있었다. 자신의 몸 상태는 자신이 제일 잘 알았다. 건강 상태가 악화되었다고 해서 별로 고치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이런 상태로 오래 살 마음도 없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좋았다. 오히려 치료 없이 조금이라도 이 질긴 목숨이 빨리 끊어진다면 그 쪽이 더 좋은 것이었다. 만죠메는 눈을 감고 자신이 이곳으로 오면서 했던 생각을 다시 떠올렸다. 햇빛이 비치는 깨끗한 침대 안에서 조용히 꺼져가는 자신의 목숨. 그래. 자신은 그것을 위해 온 것이었다. 그러니까, 지금의 자신에게 저 남자는 방해였다.



“ 어라, 만죠메. 벌써 자는 거야? 밥도 안 먹고?”



 남자는 비교적 빨리 음식을 들고 나타났다. 애초에 배도 고프지 않았고, 정체도 알 수 없는 저런 남자가 만든 음식을 먹을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낮잠이라도 자기 위해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던 상태였다. 아직 밖은 밝은 대낮이었고, 병원에서 이미 오래 자고 왔기 때문에 딱히 졸리지는 않았기 때문에 감은 눈동자 너머로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이대로 눈을 감고 있으면 나가지 않을까 싶어 미동도 않고 자는 척을 하고 있는데, 남자가 움직이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것일까, 왜 나가지도 않고 있는 것일까, 싶어 살짝 실눈을 떴다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저도 모르게 인상이 확 찌푸려졌다.



“ 깼어? 아니면 자는 척이었나? 아무튼, 뭔가 먹고 자는 게 좋아. 아무것도 안 먹었다고 들었다구.”



 그 새하얗게 머리가 샌 할아버지랑 통화했거든. 남자의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도 만죠메에게는 한없이 불쾌하게 다가왔다. 머리가 샌 할아버지는 아마 운전사 영감을 말하는 것이겠지. 이제 남자는 아예 멋대로 내가 누워있는 침대에 엉덩이까지 붙이고 앉아있었다. 어째서 자신이 이렇게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스스럼없이 다가와 말을 걸 수 있는지 신기할 다름이었다. 만죠메가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홱 돌리자 남자의 입에서 조금 웃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대체 이렇게 예의 없는 사람을 앞에 두고 뭘 하고 있는 것인지 이해 할 수 없어 조금 더 이불 속으로 파고들며 나가, 하고 딱 잘라 말했다.



“ 밥은 안 먹어?”


“ 안 먹으니까 나가라고.”



 에에이, 그래도 한 입만 먹어봐. 남자는 계속해서 끈질기게 말을 걸어왔다. 요리도 못하는 자신이 열심히 만들었다느니, 안에 재료가 엄청 많았으니 저녁엔 좀 더 맛있게 만들겠다느니 하며 쉬지도 않고 떠드는 남자의 목소리에 결국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밀고 말았다. 원래 신경질 적인 성격이긴 했지만 이 남자는 정말 사람을 화나게 하는데 재주라도 있는 것 같았다. 누워있던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니 남자의 눈이 조금 동그랗게 변했다. 와장창! 옆 탁자에 올려져 있던 남자가 들고 온 쟁반을 들고 성큼성큼 방의 밖으로 나가 바닥으로 던져버리자 그릇이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게도 났다. 당장 나가라고!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자 남자의 바보 같은 얼굴도 조금 움찔거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있던 정마저 모두 사라질 행동이었다. 남자는 조금 곤란하다는 듯이 머리를 조금 긁적이고, 내 눈치를 조금 살피는 듯이 나와 시선을 마주치더니 아까보다는 조금 장난기가 사라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미안, 그러고 보니 내 소개도 아직 안했네. 내 이름은 유우키 쥬다이. 나이는 아마 너랑 같을 거야. 너와 같이 살려고 왔어. 일단 진정하고. 음….”



 자신을 유우키 쥬다이라고 소개한 남자는 자신의 강경한 태도에 당황이라도 한 모양이었다. 어떻게든 말을 이어가려는 모습에 다시 목소리에 힘을 주어 나가, 하자 벌어져있던 남자의 입이 다물어졌다. 남자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이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다가 멋대로 앉아있던 침대에서 슬그머니 일어났다. 남자가 터벅거리는 시끄러운 슬리퍼 소리가 울렸다. 남자는 굳이 거부하는 자신을 다시 침대에까지 데려다놓고, 저녁에 또 오겠다며 나가버렸다. 닫힌 문의 밖에서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아마 자신이 깨버린 그릇을 치우고 있는 모양이었다. 왜 이런 취급을 받으면서까지 나가지 않는지. 왜 또 오겠다고 하는지 묻고 싶었지만 만죠메는 그냥 안으로 삭혀두기로 했다. 만약 자신이 그에게 관심을 가진다면 아마 나가지 않을 것이다. 유우키 쥬다이. 심지어 이름조차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만죠메는 신경질적으로 자리에 누웠다. 자신은 저 남자의 이름을 부르는 일이 없을 것이고, 없어야만 했다.

 



 생각보다 잠이 들어 있었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새로 지은 집의 고약한 냄새의 탓인지, 아니면 아직 길들여지지 않아 심하게 사각거리는 이불이 불편했던 것인지, 아니면 어색한 공기의 탓인지 생각나는 것은 산더미같이 있었기 때문에 만죠메는 이유를 찾는 것을 포기하고 몸을 일으켰다. 옆에 걸려있는 시계를 흘끗 보니 2시간도 흘러있지 않았다. 아직도 하루를 끝내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저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졌다. 병실에서는 놓여있던 책을 읽거나, 오래 전에 다니기를 그만둔 학교의 공부를 하거나, 수면제에 취해 잠을 자거나 하는 생활을 했다. 가끔 그것이 지루하면 나가서 산책을 했고, 병원 밖에 나가지 말라던 간호사의 말을 무시하고 서점에 들렀다. 아직 다 읽지 못한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직 자신의 짐은 이 집에 다 도착하지 못했기 때문에 한 권도 있지 않았다. 이곳으로 향하던 리무진의 안에서 운전사 영감에게 내일 중으로 모두 옮기겠다는 말을 들었지만 당장 지금 할 일이 없으니 지루한 것이었다. 한 권 정도는 챙겨올걸, 하는 후회를 하며 만죠메는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직 자신은 이 집의 구조조차도 잘 몰랐다. 이왕 할 일도 없으니 집 안을 돌아보고, 이 근처를 산책이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은 겉에서 본 것만큼이나 컸다. 2층은 자신을 위한 커다란 방과 커다란 욕실이 있었고, 1층은 고용인들이 지내는 공간인지 여러 개의 방들이 있었다. 자신이 모두 내쫓았기 때문에 텅 비어있는 방이 묘하게 커보였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청소나 빨래를 할 사람을 불러야지. 조금 나가면 인가가 있으니 식재료도 살 수 있으니 사는 것에는 지장이 없겠어. 따위의 생각을 하며 집안을 둘러보다가 문득 만죠메의 머리를 스친 생각이 있었다. 집 안은 텅 비어있었다. 그렇다면 그 남자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인가? 자신이 깨뜨린 그릇과 바닥에 널부러져 있던 음식물들이 사라진 것을 보니 착실하게 청소를 한 것 같은데, 혹시나 자신의 행동에 질려 나간 것일까? 겨우 이 정도에 나갈 거면서 어째서 그렇게나 자신을 귀찮게 한 것인지. 그나마 하루 만에 나가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만죠메는 밖으로 나가기 위해 문을 열었다.



“ 어라, 만죠메. 잘 잤어?”



 그리고 그 생각은 밖으로 한 발자국 내딛자마자 사라졌다.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뻔뻔한 목소리로 남자가 인사를 해 온 것이었다. 아쉽게도 남자는 그저 정원정리를 하기 위해 집 안에 있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누가 이기나 해보자고. 절대로 이 집에서 제 발로 나가게 해주겠다고 다짐하며 만죠메는 남자에게서 흥! 하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차를 타고 올 때엔 몰랐지만, 별장이 위치한 장소는 꽤나 괜찮은 곳이었다. 바로 옆에 깨끗한 공기가 올라오는 숲이 있었고, 조금만 걸어가면 시원한 바다가 있었다. 꽤나 걸어야 했지만 숲의 밖으로 나가면 인가도 있었고, 자신이 잠시 둘러본 것만으로도 가볍게 인사해오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봐선 민심도 좋은 것 같았다. 그저 시골 촌구석이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있을 것은 다 있는 길거리까지 확인한 만죠메는 서서히 아파오는 다리를 자각하며 별장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어두워진 주위에 차고 있는 시계를 확인해보면 7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숲 주변엔 딱히 가로등 같은 것이 없기 때문에 어두워지면 다시 돌아갈 방법이 없어서, 서둘러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서둘렀다. 사실 조금만 두리번거리다가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저녁시간에 맞추어서 돌아가면 그 귀찮은 남자가 또 밥을 먹으라며 귀찮게 굴 것 같아서 조금 더 걷는다는 것이 벌써 이 시간이었다. 하여간, 정말 도움이 조금도 되지 않는 남자였다.


 마을에 있을 때엔 몰랐지만, 숲은 정말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아무리 눈이 어둠에 익숙해져있다고 해도 눈앞만 보일 뿐 먼 곳은 보이지 조차 않았다. 다행히 길은 하나뿐이었기 때문에 자신이 이상한 곳으로 들어가지 않는 한 길을 잃을 염려는 없을 것이지만, 혹시나 산짐승이라도 나타날까 긴장이 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숲속의 싸늘한 공기까지 올라와 얇은 옷을 입고 있던 만죠메는 팔위로 돋은 소름을 쓰다듬어 가라앉혔다. 앞으론 이런 밤중까지 돌아다니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돌아갈 거리를 계산하고 있는데 저 멀리서 불빛이 보였다. 자신의 별장에서 나온 불빛일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에 만죠메는 천천히 그 불빛을 바라보며 걸음을 옮겼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 상태에서 걸을 때엔 속도도 나지 않고 다리만 아팠지만, 별장이 보이자 저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졌다. 어서 들어가서 족욕이라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종종걸음으로 별장을 향해 가면, 문 앞에 자신을 기다리는 이가 있었다.



“ 늦었잖아, 만죠메. 이 시간까지 돌아다니면 안 된다구?”



 그 남자였다. 현관 쪽의 불을 밝게 켠 채로 자신을 기다리던 남자는 살짝 쌀쌀한 공기에 아까 전엔 보지 못한 붉은 색의 자켓을 걸치고, 언제부터 기다린 것인지는 몰라도 자신을 발견하자마자 밝게 웃으며 다가오는 것이었다. 왜 굳이 밖에까지 나와서 자신을 기다린 것인지, 그렇게 무시하는 자신이 기분 나쁘지도 않은 것인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물음을 간신히 삼켰다. 집에 돌아왔을 때, 고용인이 아닌 누군가가 자신을 기다리는 느낌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어쩐지 가슴 안쪽이 간질간질한 것도 같아서 만죠메는 멍하게 바라보다가, 이럴 때가 아니라는 것을 퍼뜩 깨닫고 성큼성큼 걸어서 지나쳤다.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뒤에서 키득키득 웃는 소리가 들렸다.


 별장의 문을 열면 맛있는 냄새가 났다. 그동안 이런저런 요리를 고민해 본 것인지 아까와는 다르게 국도 끓여져 있었고, 반찬도 여러 개 놓여 있는 탁자가 보였지만 만죠메는 그것을 지나쳐 2층 계단으로 향했다. 뒤에서 고생해서 만든거라느니, 데워줄 테니 같이 먹자느니, 배고파 죽겠다느니 하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자신도 배가 고프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워낙 굶는 것에 익숙하기도 했고, 아무리 저 남자가 자신을 기다려줬다고는 해도 저 남자가 만든 것을 먹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저 남자를 쫓아내는 것이었다. 밥은 다음에 먹어도 괜찮았기 때문에 2층까지 따라오려는 남자에게 큰 소리로 먹지 않겠다고 소리치곤 문을 쾅 닫아버렸다. 다행히도 남자는 방 안까지 따라 들어오지는 않았다. 분명 밖에서는 족욕을 해야겠다느니, 다리가 아프다느니 하는 생각을 했었지만 막상 방에 들어와 침대에 누우니 마치 그곳만 중력이 세게 작용하는 듯이 몸이 일으켜지지를 않았다. 병실에 살게 된 이후 이렇게 오랫동안 걸어본 적이 없으니 아마 몸이 많이 피곤했던 것 같았다. 씻고 자야하는데, 씻고 자야하는데, 하는 생각을 하다가 어느새 만죠메는 까무룩 잠이 들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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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리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