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었다. 가위에 눌린 것처럼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아 만죠메는 몇 번이나 몸을 비틀다가, 곧 포기했다. 마치 돌덩이에 눌리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바닥에 닿아있는 등만은 푹신푹신했기 때문에 만죠메는 그다지 반항하고 싶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이대로 푹 잠들면 좋은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대로 잠에 들려다가 제대로 뜨여지지 않는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 올렸을 때, 만죠메는 자신을 보고 있는 어린 아이를 보았다.
동글동글한 갈색 눈동자에 동글동글한 투톤의 머리카락. 오동통하게 젖살이 남아있는 볼을 한껏 부풀린 채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이가 유우키 쥬다이라는 것을 알아챈 순간, 그와 자신의 사이에 유리벽이 생겼다. 당장이라도 손을 뻗어 그의 부슬부슬한 머리칼을 쓰다듬어주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만죠메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눈물을 한아름 머금고 있는 어린 쥬다이의 어깨에 커다란 손이 얹히자 그는 자신에게 작은 손바닥을 들어 인사했다. 왜, 어째서 그가 자신에게 인사를 하는지 알 수 없어 그저 멍하게 눈을 깜빡이는데, 쥬다이가 점점 멀어졌다.
어디가, 쥬다이. 만죠메는 제대로 열리지 않는 입으로 그에게 물었다. 좁은 공간에 홀로 남아있는 자신을 보며 쥬다이는 결국 울음을 터트린 것인지 아버지로 추정되는 인물의 바지에 얼굴을 묻고는 자신을 보고 있지 않았다. 젖 먹던 힘까지 다하여 몸을 움직이고, 닫힌 유리를 열기 위해 힘을 주었지만 단단하게 고정되어있는 그것은 자신의 힘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 젠장…!”
아무리 꿈속이지만 어린 쥬다이가 저렇게 울고 있는데, 손을 뻗어주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했다. 여기를 봐. 내가 있어, 쥬다이. 울지 마. 비록 들리지 않는 말이라도 할지라도 그가 눈치를 채주길 바라며 만죠메는 계속해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덜컹, 하는 소리가 들리며 자신이 있는 공간이 뒤흔들릴 때까지. 어딘가 딱딱한 것에 부딪힌 것인지 점점 아파오는 뒷통수와 옅어져가는 정신의 끝에서 만죠메는 부모로 추정되는 어른의 손을 꽈악 붙잡고 멀어지는 쥬다이를 보았다. 이대로 깨면 후회할 텐데, 너를 위로해 주지 못했다고 후회할 텐데. 점점 어두워지는 시야 속에서 숨을 헐떡이며 만죠메는 결국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온통 어두운 우주공간 안이었다. 바로 우주라고 알아챈 이유는 단순히 투명한 유리벽 너머로 보이는 공간이 영화나 TV속에서나 보던 그러한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대체 어떤 정신 나간 꿈이 길래 이딴 식이냐고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만죠메는 주위를 살피었다. 정신까지 아득하게 만들만큼 어두운 우주. 나가지 못하도록 꽈악 닫혀있는 자신이 위치한, 아마도 우주선 비슷한 것으로 추정되는 공간. 그나마 호흡이 가능한 것은 꿈이기 때문일까, 하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래, 우주로 올 일이 평생 생길 리가 없지. 이상한 꿈이지만 그럭저럭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만죠메는 멍하게 바깥이 바라보았다. 멀리서 태양빛을 받아 반짝이는 별들이 그다지 나쁘지는 않아보였다. 여기는 어디쯤일까, 지구와는 멀어져버린 것일까, 태양계는 벗어난 걸까. 저 행성은 이름이 있을까, 혹시나 움직이는 다른 행성과 부딪친다면 작은 자신의 우주선을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차라리 그렇게라도 깨어나는 편이 나은 것일까. 대체 언제쯤 이 꿈에서 깨어날 수 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겨나는 물음에 만죠메는 몸을 동그랗게 말고 마지막으로 본 쥬다이를 떠올렸다. 쥬다이는, 지금쯤 무얼 하고 있을까.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고 생각했다. 아니, 한 달이 지났을지도 몰랐다. 오히려 만죠메는 일 년이 지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꿈속이라고 생각했것만 시간의 흐름만큼은 소름끼칠 만큼 생생하게 느껴져 만죠메는 미칠 지경이었다. 입을 열어본지 며칠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누군가를 본지 몇 달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누군가의 소리를 듣고, 무언가를 만지고, 냄새를 맡고, 맛본지 몇 년이 지났는지조차 모르겠다. 금방 깰 것이라고 생각했던 꿈이 어째서 이렇게 깨지 않는 것인지 만죠메는 피가 날 만큼 볼을 꼬집어보았지만 아픔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벽에 나있는 손톱자국과 핏자국이 얼마나 그가 필사적으로 탈출하기 위해 애썼는지 알 수 있었다. 손톱은 이미 모두 부러졌다. 피가 흐르다 못해 피부마저 뭉개진 손끝의 아픔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못한 위장이 쪼그라들다 못해 위액으로 녹아버린 기분이었지만 자신은 죽지도, 꿈에서 깨지도 않았다.
오히려 만죠메는 이것이 꿈이 맞는지 조차 헷깔리는 기분이었다. 내가, 만죠메가 맞던가? 만죠메 가의 셋째로 태어나서 엘리트 교육을 받고, 카드를 잡고, 형님들과 카드계의 최고가 되겠다고 맹세하고, 듀얼 아카데미아로 입학해서 쥬다이를 만나고, 졸업을 한 것이 오히려 꿈이 아니었을까? 우주선에서 외롭게 썩어가던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은 아니었을까? 만약 그것이 정말 환상이라면 좀 더 오랫동안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어도 되지 않았냐고, 어째서 이렇게 된 것이냐고 오갈 곳 없는 분노와 울분을 터트리기도 만죠메는 지쳐있었다. 만약, 정말 만약에 이것이 꿈이 맞다면. 어서 구해줘, 쥬다이. 이미 말라버린 눈물이 살가죽밖에 남지 않은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며칠, 아니 몇 달, 어쩌면 몇 년을 더 떠돌아다니다가, 자살조차 할 수 없는 꿈속에서 헤메던 만죠메는 눈부신 빛을 보았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똑같은 광경에 지쳐있던 만죠메는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힘조차 없었다. 그것은 모든 피부가 녹아버릴 만큼 뜨거웠고, 어쩔 땐 감각이 없어질 만큼 차가웠다. 몸을 힘껏 잡아당기는 듯 하더니, 어느새 바늘로 찌르는 것같이 아팠다. 칼에 베이는 것 같으면서도 정신을 차려보면 잘근잘근 썰리고 있었다. 발이 엿가락처럼 늘어나 무언가에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아 소리의 형태를 띄지 못한 비명을 지르다가도 손끝에 만져지는 정상적인 발의 표면에 안심하기를 수백 번 반복했다. 뼈에 사무치는 외로움과 고통, 그리고 괴로움에 시달리며 만죠메는 쥬다이를 찾았다. 바보 같은 쥬다이. 왜 날 잡지 않았어. 왜 나를 이런 곳으로 보내는 것을 말리지 않았어. 왜 나를 구하러 와주지 않는 거야. 보고 싶어.
울고 있는 쥬다이를 안아 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되어 절망과 분노, 그리고 원망을 거친 감정이 마침내 닿은 곳은 사랑이었다. 외로움에 몸서리칠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은 쥬다이였다. 괴로움에 울부짖을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 또한 쥬다이였다. 몸이 아플 때에도, 정신을 잃을 것 같을 때에도,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에마저 만죠메는 쥬다이를 지울 수 없었다. 그를 몸에 각인시키기 위해 이런 일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했다. 외로워도, 아프고 괴로워도, 그것이 쥬다이가 자신에게 그를 기억시키기 위해 준 아픔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었다. 아플 때마다 너를 생각할게, 쥬다이. 괴로울 때마다 너를 생각할게, 쥬다이. 절대로 너를 잊지 않을게.
그리고 이것이 그와 융합한 유벨의 생각과 닮았다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만죠메는 꿈에서 깨었다.
“ ………하.”
일어난 곳은 자신의 침대였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피부에 느껴지는 이불의 사각거리는 감촉이 너무나도 어색했다. 손을 들면 보이는, 썩지 않은 자신의 손가락이 어색했다. 손을 뻗어도 닿는 것은 딱딱한 유리가 아닌 허공이었다. 입을 열면 목소리가 나왔고, 배를 만져보면 정상적인 내장이 위치하여 있었다. 손끝까지 따듯한 혈액을 전달해주기 위해 열심히 뛰고 있는 심장의 느낌마저 너무 생경하여 만죠메는 잠시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옆에 위치한 시계는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겨우, 몇 시간동안 꾸었던 꿈이었다.
길고 긴 꿈에서 깬 것에 대해 안심해야할지, 어째서 이런 꿈을 꾼 것인지에 의문을 품어야 할지 알 수 없어 혼잡한 머리가 빙글빙글 돌았다. 정말 자신이 제대로 돌아온 것이 맞는 지에 대해 고민하다 고개를 돌렸을 때, 만죠메는 깨끗하게 닦인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쥬다이에게 보이던, 녹색과 주황색의 눈이 번뜩이고 있었다. 그제야 만죠메는, 그 꿈이 유벨이 자신에게 보여준 그녀(혹은 그)가 겪은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괴로웠구나. 이렇게 외로웠구나. 이렇게 쥬다이를 사랑했구나, 하는 것까지.
“ 쥬다이.”
만죠메는 조용히 자신의 옆에서 자고 있는 이의 이름을 불렀다. 좋은 꿈이라도 꾸고 있는 것인지 입까지 오물거리며 자신을 향해 돌아누운 쥬다이의 얼굴이 보였다. 오랫동안, 아주, 아주아주 오랫동안 찾아 헤맸어, 쥬다이. 보고 싶었어, 쥬다이. 나의 사랑스런 쥬다이.
만죠메는 저도 모르게 올라가는 입 꼬리를 막을 수 없었다. 차갑게 식은 손끝에 닿는 보드라운 피부가, 꿈을 꾸기 전까지만 해도 닿아있던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황홀함이 짜릿짜릿하게 올라왔다. 만죠메는 자신이 유벨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가, 혹은 쥬다이가 유벨이냐고 물었을 때 부정은 할 수 없었다. 쥬다이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면 자신은 그 누구라도 괜찮았다.
사랑해, 쥬다이……. 자고 있는 쥬다이의 입술에 살며시 키스한 만죠메의 표정은 진심으로 기뻐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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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십만 합작 인터십마니에 참여했습니다
원본은 http://anilir0627.wix.com/intersibmani 이쪽에서 감상해주세요 다른 존잘님들의 연성이 정말 환상적입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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