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2. 6. 16:49










 꿈을 꾸었다. 가위에 눌린 것처럼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아 만죠메는 몇 번이나 몸을 비틀다가, 곧 포기했다. 마치 돌덩이에 눌리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바닥에 닿아있는 등만은 푹신푹신했기 때문에 만죠메는 그다지 반항하고 싶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이대로 푹 잠들면 좋은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대로 잠에 들려다가 제대로 뜨여지지 않는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 올렸을 때, 만죠메는 자신을 보고 있는 어린 아이를 보았다.

 

 동글동글한 갈색 눈동자에 동글동글한 투톤의 머리카락. 오동통하게 젖살이 남아있는 볼을 한껏 부풀린 채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이가 유우키 쥬다이라는 것을 알아챈 순간, 그와 자신의 사이에 유리벽이 생겼다. 당장이라도 손을 뻗어 그의 부슬부슬한 머리칼을 쓰다듬어주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만죠메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눈물을 한아름 머금고 있는 어린 쥬다이의 어깨에 커다란 손이 얹히자 그는 자신에게 작은 손바닥을 들어 인사했다. 왜, 어째서 그가 자신에게 인사를 하는지 알 수 없어 그저 멍하게 눈을 깜빡이는데, 쥬다이가 점점 멀어졌다.

 

 어디가, 쥬다이. 만죠메는 제대로 열리지 않는 입으로 그에게 물었다. 좁은 공간에 홀로 남아있는 자신을 보며 쥬다이는 결국 울음을 터트린 것인지 아버지로 추정되는 인물의 바지에 얼굴을 묻고는 자신을 보고 있지 않았다. 젖 먹던 힘까지 다하여 몸을 움직이고, 닫힌 유리를 열기 위해 힘을 주었지만 단단하게 고정되어있는 그것은 자신의 힘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 젠장…!”


 

 아무리 꿈속이지만 어린 쥬다이가 저렇게 울고 있는데, 손을 뻗어주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했다. 여기를 봐. 내가 있어, 쥬다이. 울지 마. 비록 들리지 않는 말이라도 할지라도 그가 눈치를 채주길 바라며 만죠메는 계속해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덜컹, 하는 소리가 들리며 자신이 있는 공간이 뒤흔들릴 때까지. 어딘가 딱딱한 것에 부딪힌 것인지 점점 아파오는 뒷통수와 옅어져가는 정신의 끝에서 만죠메는 부모로 추정되는 어른의 손을 꽈악 붙잡고 멀어지는 쥬다이를 보았다. 이대로 깨면 후회할 텐데, 너를 위로해 주지 못했다고 후회할 텐데. 점점 어두워지는 시야 속에서 숨을 헐떡이며 만죠메는 결국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온통 어두운 우주공간 안이었다. 바로 우주라고 알아챈 이유는 단순히 투명한 유리벽 너머로 보이는 공간이 영화나 TV속에서나 보던 그러한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대체 어떤 정신 나간 꿈이 길래 이딴 식이냐고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만죠메는 주위를 살피었다. 정신까지 아득하게 만들만큼 어두운 우주. 나가지 못하도록 꽈악 닫혀있는 자신이 위치한, 아마도 우주선 비슷한 것으로 추정되는 공간. 그나마 호흡이 가능한 것은 꿈이기 때문일까, 하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래, 우주로 올 일이 평생 생길 리가 없지. 이상한 꿈이지만 그럭저럭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만죠메는 멍하게 바깥이 바라보았다. 멀리서 태양빛을 받아 반짝이는 별들이 그다지 나쁘지는 않아보였다. 여기는 어디쯤일까, 지구와는 멀어져버린 것일까, 태양계는 벗어난 걸까. 저 행성은 이름이 있을까, 혹시나 움직이는 다른 행성과 부딪친다면 작은 자신의 우주선을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차라리 그렇게라도 깨어나는 편이 나은 것일까. 대체 언제쯤 이 꿈에서 깨어날 수 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겨나는 물음에 만죠메는 몸을 동그랗게 말고 마지막으로 본 쥬다이를 떠올렸다. 쥬다이는, 지금쯤 무얼 하고 있을까.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고 생각했다. 아니, 한 달이 지났을지도 몰랐다. 오히려 만죠메는 일 년이 지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꿈속이라고 생각했것만 시간의 흐름만큼은 소름끼칠 만큼 생생하게 느껴져 만죠메는 미칠 지경이었다. 입을 열어본지 며칠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누군가를 본지 몇 달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누군가의 소리를 듣고, 무언가를 만지고, 냄새를 맡고, 맛본지 몇 년이 지났는지조차 모르겠다. 금방 깰 것이라고 생각했던 꿈이 어째서 이렇게 깨지 않는 것인지 만죠메는 피가 날 만큼 볼을 꼬집어보았지만 아픔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벽에 나있는 손톱자국과 핏자국이 얼마나 그가 필사적으로 탈출하기 위해 애썼는지 알 수 있었다. 손톱은 이미 모두 부러졌다. 피가 흐르다 못해 피부마저 뭉개진 손끝의 아픔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못한 위장이 쪼그라들다 못해 위액으로 녹아버린 기분이었지만 자신은 죽지도, 꿈에서 깨지도 않았다.

 

 오히려 만죠메는 이것이 꿈이 맞는지 조차 헷깔리는 기분이었다. 내가, 만죠메가 맞던가? 만죠메 가의 셋째로 태어나서 엘리트 교육을 받고, 카드를 잡고, 형님들과 카드계의 최고가 되겠다고 맹세하고, 듀얼 아카데미아로 입학해서 쥬다이를 만나고, 졸업을 한 것이 오히려 꿈이 아니었을까? 우주선에서 외롭게 썩어가던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은 아니었을까? 만약 그것이 정말 환상이라면 좀 더 오랫동안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어도 되지 않았냐고, 어째서 이렇게 된 것이냐고 오갈 곳 없는 분노와 울분을 터트리기도 만죠메는 지쳐있었다. 만약, 정말 만약에 이것이 꿈이 맞다면. 어서 구해줘, 쥬다이. 이미 말라버린 눈물이 살가죽밖에 남지 않은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며칠, 아니 몇 달, 어쩌면 몇 년을 더 떠돌아다니다가, 자살조차 할 수 없는 꿈속에서 헤메던 만죠메는 눈부신 빛을 보았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똑같은 광경에 지쳐있던 만죠메는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힘조차 없었다. 그것은 모든 피부가 녹아버릴 만큼 뜨거웠고, 어쩔 땐 감각이 없어질 만큼 차가웠다. 몸을 힘껏 잡아당기는 듯 하더니, 어느새 바늘로 찌르는 것같이 아팠다. 칼에 베이는 것 같으면서도 정신을 차려보면 잘근잘근 썰리고 있었다. 발이 엿가락처럼 늘어나 무언가에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아 소리의 형태를 띄지 못한 비명을 지르다가도 손끝에 만져지는 정상적인 발의 표면에 안심하기를 수백 번 반복했다. 뼈에 사무치는 외로움과 고통, 그리고 괴로움에 시달리며 만죠메는 쥬다이를 찾았다. 바보 같은 쥬다이. 왜 날 잡지 않았어. 왜 나를 이런 곳으로 보내는 것을 말리지 않았어. 왜 나를 구하러 와주지 않는 거야. 보고 싶어.

 

 울고 있는 쥬다이를 안아 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되어 절망과 분노, 그리고 원망을 거친 감정이 마침내 닿은 곳은 사랑이었다. 외로움에 몸서리칠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은 쥬다이였다. 괴로움에 울부짖을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 또한 쥬다이였다. 몸이 아플 때에도, 정신을 잃을 것 같을 때에도,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에마저 만죠메는 쥬다이를 지울 수 없었다. 그를 몸에 각인시키기 위해 이런 일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했다. 외로워도, 아프고 괴로워도, 그것이 쥬다이가 자신에게 그를 기억시키기 위해 준 아픔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었다. 아플 때마다 너를 생각할게, 쥬다이. 괴로울 때마다 너를 생각할게, 쥬다이. 절대로 너를 잊지 않을게.

 

 그리고 이것이 그와 융합한 유벨의 생각과 닮았다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만죠메는 꿈에서 깨었다.

 

 


“ ………하.”


 

 일어난 곳은 자신의 침대였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피부에 느껴지는 이불의 사각거리는 감촉이 너무나도 어색했다. 손을 들면 보이는, 썩지 않은 자신의 손가락이 어색했다. 손을 뻗어도 닿는 것은 딱딱한 유리가 아닌 허공이었다. 입을 열면 목소리가 나왔고, 배를 만져보면 정상적인 내장이 위치하여 있었다. 손끝까지 따듯한 혈액을 전달해주기 위해 열심히 뛰고 있는 심장의 느낌마저 너무 생경하여 만죠메는 잠시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옆에 위치한 시계는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겨우, 몇 시간동안 꾸었던 꿈이었다.

 

 길고 긴 꿈에서 깬 것에 대해 안심해야할지, 어째서 이런 꿈을 꾼 것인지에 의문을 품어야 할지 알 수 없어 혼잡한 머리가 빙글빙글 돌았다. 정말 자신이 제대로 돌아온 것이 맞는 지에 대해 고민하다 고개를 돌렸을 때, 만죠메는 깨끗하게 닦인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쥬다이에게 보이던, 녹색과 주황색의 눈이 번뜩이고 있었다. 그제야 만죠메는, 그 꿈이 유벨이 자신에게 보여준 그녀(혹은 그)가 겪은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괴로웠구나. 이렇게 외로웠구나. 이렇게 쥬다이를 사랑했구나, 하는 것까지.

 


“ 쥬다이.”


 

 만죠메는 조용히 자신의 옆에서 자고 있는 이의 이름을 불렀다. 좋은 꿈이라도 꾸고 있는 것인지 입까지 오물거리며 자신을 향해 돌아누운 쥬다이의 얼굴이 보였다. 오랫동안, 아주, 아주아주 오랫동안 찾아 헤맸어, 쥬다이. 보고 싶었어, 쥬다이. 나의 사랑스런 쥬다이.

 

 만죠메는 저도 모르게 올라가는 입 꼬리를 막을 수 없었다. 차갑게 식은 손끝에 닿는 보드라운 피부가, 꿈을 꾸기 전까지만 해도 닿아있던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황홀함이 짜릿짜릿하게 올라왔다. 만죠메는 자신이 유벨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가, 혹은 쥬다이가 유벨이냐고 물었을 때 부정은 할 수 없었다. 쥬다이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면 자신은 그 누구라도 괜찮았다.

 

 사랑해, 쥬다이……. 자고 있는 쥬다이의 입술에 살며시 키스한 만죠메의 표정은 진심으로 기뻐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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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십만 합작 인터십마니에 참여했습니다

원본은 http://anilir0627.wix.com/intersibmani 이쪽에서 감상해주세요 다른 존잘님들의 연성이 정말 환상적입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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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리쿠
2015. 1. 9. 23:57

- 시간이 없어서 전력 30분...orz

- 둘 다 여자입니다!






“ 쥬다이, 그 반지는 뭐야?”



 체육 시간을 앞둔 쉬는 시간이었다. 여학교였기 때문에 체육복으로 갈아입는데 탈의실이나 화장실로 이동하는 여학생들보다 교실을 이용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쥬다이는 교실파였다. 일찍 갈아입고 누구보다 먼저 운동장에 나가서 준비운동이나, 공을 꺼내들어 오늘은 피구를 하자며 체육 선생님께 조르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커튼 안으로 들어가 꼬물꼬물 옷을 갈아입는 쇼와는 다르게 눈 깜짝할 사이에 탈의를 마친 쥬다이가 체육복 상의를 집어 들었을 때, 그녀의 짝꿍이던 미사와가 물어왔다.


 미사와의 예쁘게 정리된 손톱 끝이 가리키고 있는 것은 쥬다이가 목걸이처럼 걸고 있는 반지였다. 얇고 작은 반지의 가운데서는 붉은 빛의 보석이 하나 박혀 빛나고 있었다. 금빛의 얇은 반지에 꼼꼼하고 작게 세공된 것이 보기만 해도 값이 저렴하지는 않을 것임을 알 수 있었기에 미사와는 의구심을 품은 것 같았다. 언제나 교복 치마보다는 체육복을, 지하철이나 버스보다는 자전거를 이용하여 등교하는 쥬다이는 항상 꾸미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기에 더더욱 그랬다. 귀찮다며 목걸이도 하지 않을 것 같은 쥬다이가 반지를 목걸이처럼 걸고 있다니! 언제부터 하고 다녔는지는 모르겠지만 언제나 교복 아래 숨겨져 있던 모양이었다. 나시로 가려진 봉긋한 가슴 위에서 교실의 형광등 불빛에 반짝이는 반지를 한 번 바라본 쥬다이의 얼굴이 갑자기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 …혹시 쥬다이. 남자친구 생겼어?”



 그러한 쥬다이의 반응에 무언가 눈치 챈 듯이 미사와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제대로 된 대답도 못한 채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던 쥬다이가 곤란하다는 듯이 얼버무리자 파앗! 하는 소리와 함께 남자친구라는 말에 옷을 갈아입던 쇼가 커튼을 확 제쳤다. 이미 체육복을 말끔하게 갈아입은 쇼가 놀란 눈을 하며 허둥지둥 쥬다이에게 다가왔다. 진짜에요!? 언니, 정말 남자친구 생겼어요!? 알려주지 않다니 너무해! 쥬다이가 대답할 틈도 없이 반지를 살펴보며 예쁘다는 둥, 좋겠다는 둥의 말을 하는 쇼와 미사와를 보며 어색하게 웃던 쥬다이가 급하게 체육복 상의를 위에 덮어 입었다.



“ 이, 일단 나가자구! 오늘은 피구다! 절대로 지지 않을 거니까!”



 부끄러움에 재빨리 말을 돌린 쥬다이가, 체육복을 입은 덕분에 가려진 반지에 아쉬워하는 그녀들을 뒤로 한 채 후다닥 뛰어나갔다. 쥬다이의 붉어진 볼에 더더욱 의심을 한 듯 따라나서는 쇼와 미사와의 발걸음이 빨랐다. 정말 남자친구에요? 정말? 복도에 울려 퍼지는 쇼의 목소리를 뒤로,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온 학생들이 교실에 들어섰다.



“ 만죠메 씨, 빨리 나가야 해요.”



 옆에서 재촉하는 여학생의 말에도 느긋하게 썬크림을 바르고 있는 만죠메의 약지에 예쁘게 빛나고 있는 반지가 쥬다이의 것과 닮았다는 것은 아마 그녀 둘을 제외하곤 아무도 모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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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리쿠
2015. 1. 3. 00:45








 나 만죠메에게 모닝키스 받고 싶어. 햇볕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어느 날, 쥬다이가 나에게 말했다. 오시리스 레드의 기숙사 주변엔 숲이 있었기 때문에 여러 비밀장소가 생겨나곤 했는데, 지금 자신들은 그중 한 곳에 있었다. 오벨리스크 블루 기숙사에 있을 때에는 반대편에 위치한 숲 근처에는 와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딱히 가고 싶다는 마음도 없었다) 이런 곳이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기숙사를 오시리스 쪽으로 옮긴지 얼마 되지 않아 쥬다이가 알려준 장소였다. 아무래도 오시리스의 학생 수는 적고, 아카데미아의 숲은 생각보다 어둡고 넓기 때문에 자세히 들여다보는 학생도 적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숲 안에 위치한 작은 공간은 자신들을 제외한 소수의 학생들 외에는 몰랐기에 항상 조용했고, 분위기가 좋았다.


 그래서 쥬다이는 이 장소에서 낮잠을 자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이 곳 외에도 방 안이라던가, 기숙사 뒤의 풀밭 같은 곳에서도 낮잠을 청하는 것을 자주 봤지만, 여기서는 좀 더 푹 잠드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수업이 없는 주말에는 주로 쥬다이와 듀얼을 하거나, 덱을 정비하거나 밀린 과제나 공부를 하며 보냈지만 가끔 이렇게 느슨하게 하루를 보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만죠메는 손을 들어 자신의 허벅지를 베고 누워있는 쥬다이의 머리를 조금 쓰다듬었다. 손 안에서 부스러지는 머릿결이 살랑살랑 쥬다이의 얼굴 위로 흩어졌다.


 오늘 만죠메는 손을 꼬옥 붙잡고 이곳으로 향하는 쥬다이를 거절하지 못했다. 쇼와 켄잔이 기숙사 일로 바쁜 이 시점, 쥬다이의 방에 있는 사람은 자신과 그 둘 뿐이었기 때문에 어쩐지 마음이 들떠버렸다는 것이 제일 큰 이유였다. 칙칙하고 어두운 방보다는 나뭇잎 사이로 햇볕이 여러 갈래로 갈라지고 풀내음이 가득한, 눈을 감으면 물 흐르는 소리와 바람소리마저 들려오는 이 장소가 나았다. 쥬다이와 함께 이곳으로 향할 때부터 잡힌 손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던 따듯한 기운은 그가 머리를 자신의 다리에 올려놓았을 때 더 심해졌다. 그 기운은 마치 혈관을 타고 흐르는 것처럼 심장 안으로 들어와 어쩐지 마음을 간질간질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매번 자신이 거절하는 것이었다. 지금도, 얌전히 눈을 감고 조용히 숨을 내쉬고 있는 쥬다이의 얼굴을 볼 때마다 심장이 덜컹거렸다.


 하필 제일 마음이 느슨할 때 모닝키스라던가, 하는 말을 꺼낸 쥬다이는 심술궂었다. 물론 그가 자신의 마음이 느슨할 시기를 알리는 없었지만, 항상 눈치가 없는 듯이 굴다가도 가끔 이렇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말을 하면 자신은 어쩔 수 없이 그의 페이스에 말려들게 되는 것이었다. 다시 생각나는 쥬다이의 웃는 얼굴이 어쩐지 눈앞에 아른거려 만죠메는 눈을 꼬옥 감았다가 떴다. 아직도, 쥬다이의 조용한 숨소리가 허벅지로부터 올라와 다시 마음을 간질였다.



“ 바보 같은 자식.”



 모닝 키스 같은 것은 이렇게 따로 시간을 내지 않아도 얼마든지 해줄 수 있었다. 대부분 자신의 부끄러움에 가려져 표현되지는 않지만, 자신이 직접 쥬다이에게 먼저 키스하고 싶을 때도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잠들어버리면 남은 자신이 긴장을 하게 되지 않는가. 언제쯤 쥬다이가 깰까, 어떻게 키스를 해 주어야 할까. 머릿속에서 자신과 쥬다이와의 키스 장면이 빙글빙글 맴돌아 사라지지 않았다. 이것을 노린 것인지, 아니면 정말 솔직한 마음을 내뱉은 것뿐이었는지는 몰라도 오늘의 쥬다이는 너무 치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동화 속의 왕자님은 키스로 공주를 깨웠지만, 자신은 지금 그것조차 하지 못한 채 상대가 일어나기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 …어서 일어나.”



 무방비하게 잠든 얼굴도, 햇볕을 받아 반짝거리는 밝은 머리칼도, 살며시 내려앉아있는 얇은 속눈썹도, 조용히 닫혀있는 입술도 모두 좋았지만, 역시 자신은 깨어있는 쥬다이가 좋았다. 어서 잠이 깬 쥬다이에게 키스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만죠메는 다시금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끝에서부터 올라오는 따스한 기운이 오늘만큼은 기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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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리쿠
2015. 1. 2. 05:07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2014. 12. 31. 03:55

- 타블님께 드리는 게리더...... 음..... 의미불명한 내용입니다












 잠에서 깼을 때에는, 이미 방 안은 매캐한 연기로 가득 차있었다. 새틀라이트의 건물은 무너진 곳이 많기 때문에 군데군데 나있는 콘크리트 안의 구멍으로도 차마 빠져나가지 못한 연기가 뿌옇게 유세이의 시야를 가렸다. 눈을 잠시 끔뻑인 것만으로도 매운 찌꺼기들이 안구 가득히 들어와, 유세이는 팔을 들어 부비었다. 새틀라이트의 공기가 아무리 좋지 않다 한들 이렇게까지 썩어있지는 않기 때문에, 자신의 옆에서 누군가가 이것을 뿜어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범인은, 당연하게도 밤을 함께 한 키류였다. 비비고 있던 손의 틈새로 옆을 바라보면 허옇고 늘씬한 허리가 보였다. 자신에게 등을 돌리고, 공중으로 연기를 뱉어내는 키류는 당연하게도 몸에 아무것도 걸치고 있지 않았다. 아직 자신이 깨어 있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한 것인지 시선 한 번 주지 않는 키류를 어떻게 불러야 하나 잠시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조용한 목소리가 들렸다.



“ 깼냐.”



 어젯밤 무리를 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눈이 아플 정도로 피워댄 담배 탓인지 키류의 목소리는 잔뜩 갈라져있었다. 새틀라이트 안에서는 담배가 귀하기 때문에 키류는 이렇게 줄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까지 자신을 망치는 짓을 하고 있는 이유를 알고 있기 때문에 유세이는 굳이 그에게 담배를 꺼달라는 부탁을 하지 않았다. 담배를 태우지 않는 깨끗한 폐를 가진(새틀라이트의 공기 때문에 딱히 깨끗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지만) 유세이가 말을 한다면 키류는 그를 비웃으면서도 아마 깔끔하게 피우는 것을 멈출 것이었다. 하지만 어젯밤에도 그렇고, 키류의 상태는 평소 같지 않았다. 이유라면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친우인 두 사람밖에 없었다. 팀 새티스팩션을 떠나간 두 사람에게, 키류는 눈에 띌 정도로 동요하고 있었다.


 너도 나갈 거냐, 하고 어젯밤 흔들리는 몸으로 키류는 물었다. 팔로 가려진 키류의 표정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유세이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울고 있었을까, 아니면 평소처럼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얼굴이었을까. 지금 생각해봐도 해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에 어제의 자신은 그의 가려진 얼굴에 키스하는 것으로 답했다. 힘줄이 떠오른 팔에 닿아오는 입술의 느낌에 키류는 피식,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었다. 자신의 대답을 알아들은 것이리라. 이내 이어지는 달콤한 신음에 묻혀버렸지만, 유세이는 눈치 챌 수 있었다.


 키류를 보며 눈을 깜빡이고 있으면 자신을 향해 등을 돌린 그가 이미 반도 남지 않은 담배를 쪽 빨아들였다. 그가 내뿜는 연기는 이미 공중에 흩여져있는 그것과 색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옆을 살피면 이미 수 십 개의 담배가 잔뜩 구겨진 채로 시트에 비벼 꺼져있었다. 크로우가 본다면 시트에 구멍이 나지 않았느냐고, 이 자국은 네가 빨래 할 것이냐고 잔뜩 잔소리를 했을 터이지만 더 이상 크로우는 이곳에 오지 않을 것이다. 타들어가는 담뱃재가 금방이라도 떨어질듯 흐물거려서 키류는 손을 들어 입에서 그것을 뽑아내었다. 그러한 키류를 보고 있으면, 아직도 붉은 담배 끝이 유세이에게 다가왔다.


 후두둑 떨어진 담뱃재들은 아무리 찬 공기에 닿을지언정 사람의 피부에는 뜨거웠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맨 몸에 떨어진 뜨거운 재에 유세이의 표정이 조금 찡그려졌다. 허나 그것에는 조금도 신경을 주지 않고 담배 끝을 가져다 대던 키류가 조금 유세이의 눈치를 살피다가, 이내 그가 앉아있는 시트에 비벼 꺼버렸다. 유세이의 눈은 아까부터 키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재미없어. 작게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키류가 앉아있던 침대에서 일어나면 삐걱거리며 스프링이 크게 울었다. 오래되고 낡은 침대이니 당연했다. 유세이가 몸을 일으키는 사이 바닥에 널부러져 있던 트렁크가 키류의 매끈한 허벅지를 타고 올라와 골반에 안착했다. 이어지는 바지, 티, 그리고 팀 새티스팩션의 조끼까지 갖추어 입는 키류를 보고 있던 유세이가 입을 열어 키류, 하고 그를 불렀다. 밖으로 나가려던 그의 시선이 잠시 유세이를 향했다. 어제도 하루 종일 행해졌던 듀얼 갱들의 잔당 처치와 밤중에 이루어졌던 자신과의 행위 때문에 몸도 성치 않을 터인데 키류의 몸짓에는 조금의 삐걱임도 없었다.



“ B구역의 잔당들을 찾으러 갈 거야. 네 놈은 거기에 찌그러져 덱이나 정비하고 있어.”



 다시 그를 부를 새도 없이 쾅, 하고 닫힌 문이 녹슨 쇳소리를 내었다. 유세이는 그를 잡을 수 없었다. 자신이 말리더라도 키류는 그가 정한 일을 계속 할 것이고,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유세이는 단 한 번도 키류에게 부정의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그것이 키류를 더욱 더 초조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유세이는 아마 알지 못할 터였다.


 담배를 태우던 이가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공기에 가득 남은 연기가 마치 그가 아직 남아있는 것 같아 유세이는 조금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목구멍이 아팠다. 벌써부터 지끈거리는 머리를 보아하니 오늘은 아마 순탄치 않은 하루일 것 같았다. 유세이에게도, 키류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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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리쿠
2014. 12. 27. 01:45

- ts주의 노멀주의

- 오늘따라 글이.. 안써져서..orz 내용이 이상합니다..








만죠메는 잡히지 않은 손을 한 번 꾹 쥐었다 폈다. 자신의 손을 붙잡고 앞으로 성큼성큼 걷고 있던 쥬다이의 걸음이 빠르다. 한 해의 마지막 날, ‘같이 있고 싶다’는 쥬다이의 말에 예쁘게 입고 나온 것이 몇 시간 전의 일이었다.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아껴두던 원피스도 차려입었고, 전에 그가 선물해준 머리핀도 했다. 선물 받은 지는 오래 되었지만 부끄럽다는 이유로 집 밖에는 단 한 번도 하고 나간 적이 없었기 때문에 쥬다이는 나를 보자마자 정말 기쁘다는 듯이 환하게 웃어주었다. 그렇게 하루 종일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데이트를 했고, 만죠메의 통금 시간이 다가왔기 때문에 쥬다이가 데려다 주기 위해 가던 중이었다.


 데이트를 할 때마다 굳이 자신을 집 앞까지 데려다 주는 그의 배려는 항상 두근두근 설렜다. 어두운 밤거리를 단 둘이 걷고 있었기 때문에 비밀스러운 느낌도 났고, 그와의 첫 키스도 이 때 즈음에 했기 때문에 마음이 설레기도 했다. 따듯한 그의 손을 꼭 붙잡고 집으로 향하다가, 자신은 그대로 집에 들어가면 된다. 하지만 자신의 집과 쥬다이의 자취방까지는 꽤나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돌아가는 길은 춥고 쓸쓸할 것이다. 아무리 먼저 들어가라 해도 ‘끝까지 같이 있고 싶다’는 그의 고집은 꺾을 수 없었기 때문에 항상 잠자코 있었지만, 오늘 만큼은 자신이 다짐한 것이 있었다. 하루 종일 말할 타이밍을 잡으려 했으나 부끄러워 입 밖에 내지 못한 상태로 여기까지 왔다. 조금만 더 가면 자신의 집이었다. 올해의 마지막 날에, 쥬다이를 이렇게 보낼 수는 없었다.



“ 쥬, 쥬다이!”



 앞서가던 쥬다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만죠메를 바라보았다. 응? 하고 대답해주는 목소리는 밝았지만 그도 아마 이렇게 돌아가기는 싫을 것이다. 지금밖에 기회가 없었다. 오늘 아침, 얇게 입고 나온 자신을 위해 쥬다이가 둘러주었던 그의 목도리를 꽉 쥔 만죠메가 다시 심호흡 하며 입을 열었다.



“ 네 자취방으로 가자.”


“ 응? 무슨 소리야. 통금까지 얼마 안 남았다구?”



 여전히 눈을 동그랗게 깜빡깜빡 거리는 쥬다이가 다시 손을 이끌어서, 만죠메는 그의 손을 놓아버렸다. 다시 자신에게로 시선을 돌린 쥬다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째서 바로 알아듣지 못하는 거야. 처음 나올 때부터 이럴 생각이었기 때문에 미리 준비도 했고, 오빠들에게 연락도 못 오도록 핸드폰도 꺼 놨다. 쥬다이만 알아들어주면 될 텐데, 바보 같은 이 남자는 아직까지도 자신을 이상하다는 눈으로 보고 있었다.



“ 집에는 안 들어갈 거야. …추우니까 빨리 가자구!”



 오늘 같이 있겠다고 했잖아. 천천히 쥬다이에게로 다가가 그의 어깨에 포옥 얼굴을 기대면 쥬다이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다. 자신이 좀 더 작았더라면 쥬다이에게 좀 더 안길 수 있었을 텐데, 괜히 높은 굽을 신고 나온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만죠메는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을 숨기기 위해 그의 옷을 꽈악 잡았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알아듣지 못하면 정말 화 낼 거야, 하고 생각하며 쥬다이의 표정을 살피기 위해 고개를 들려는데 순간 허리를 꽈악 잡혔다.



“ …괜찮아?”



 귓가에서 속삭여지는 목소리가 달콤하다. 쥬다이의 품에 안겨서, 만죠메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통금 시간은 이미 지나있었고, 만죠메가 오늘 집에 들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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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리쿠
2014. 12. 25. 03:46









 패왕군이 지나간 마을은 폐허였다. 사람은커녕 인기척 하나 느껴지지 않는 거리에선 회색의 먼지만이 날렸다. 세 개의 태양이 보이지 않게 된지 한참 지났기 때문에 어두워진 거리를 요한은 홀로 걷고 있었다. 무너져 내린 건물은 바람을 막아주지 못하기에 두르고 있던 천의 사이에서는 주황빛의 눈이 반짝였다. 고개를 돌리면 오래되어 썩어 문드러진 핏자국이 있었고, 다른 쪽으로 돌리면 구더기가 들끓는 시체들이 있었다. 언제쯤 점령당한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눈을 감으면 갑자기 쳐들어온 패왕군들의 손에 죽어나가는 마을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이곳저곳 탄 자국이 있는 것을 보면 아마 한 쪽에서부터 시작된 불을 피해 도망가다가, 반대편에서 나타난 군사들에게 포로로 사로잡힌 이들을 제외하곤 모두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살가죽이 찢어지는 소리와 비명소리, 그리고 어린 아이의 울음소리로 가득한 끔찍한 살육의 공간에서, 홀로 고고히 서서 모든 것을 지켜보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을 이를 생각하면 온 몸에서 짜릿짜릿 소름이 돋았다.


 사랑하는 이를 보러 가는 길은 아직 한참 남았지만 그 고통의 시간마저 결국 사랑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즐거웠다. 가는 길의 어려움만큼, 드는 시간만큼 그를 생각하는 시간은 많아질 것이고, 그것은 결국 자신이 그를 더욱 사랑할 수 있도록 만들 것이다. 이 고난의 길의 끝은 결국 사랑하는 이라는 행복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요한은 터져나오는 웃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요한은 지금 사랑하는 이에게 파티를 해주러 가는 길이었다. 성 안에서 나올 수 없는 가엾은 자신의 연인을 위해 세간의 행사를 보여주려 한 것이다. 예수가 태어났다든지 하는 얘기는 잘 모른다. 사실 별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그 날이 연인들의 날이라는 것이 중요했고, 다른 사람들은 보통 파티를 하며 즐긴다는 것이 중요했다. 원정을 나가지 않은 패왕은 분명 아무것도 없는 쓸쓸한 성 안에 홀로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 그와 단 둘이 있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만으로도 기뻐, 요한은 작게 캐롤을 흥얼거렸다. 물건의 원형조차 남지 않고 타버린 잿더미와 무너져버린 건물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즐거운 캐롤에 작은 종소리가 섞였다.



“ ?”



 요한은 자신의 발밑에서 흘러나온 소리에 고개를 밑으로 내렸다. 잔뜩 흥이 올라있었던 요한를 방해한 것은 그의 발에 채인 붉은 색의 리본이 묶인 두 개의 작은 종이었다. 오늘이 크리스마스인 만큼, 아마 이 마을의 사람들도 오늘을 위해 즐겁게 준비를 하였을 터였다. 어떤 집에서는 트리를 장식했을지도 모르고, 어떤 집에서는 커다란 고기를 구웠을 지도 모른다. 주위 마을에서 들려오는 패왕의 소식에 자신들은 해당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준비하고 있었겠지. 요한은 허리를 숙여 그것을 집어 몇 번 딸랑거린 후 주머니에 넣었다. 다시 한 번 입가로 새어나오는 흥겨운 음악을 리듬삼아 멀리서 보이는 패왕성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요한의 표정은 꽤나 즐거워보였다.


 패왕성의 구조는 손바닥 보듯이 모두 꿰고 있었기 때문에 안으로 숨어드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경비병들은 자신을 여러 번 봤음에도 불구하고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사랑의 방해물이라고 생각하면 그것 또한 즐거웠기 때문에 요한은 신나게 패왕성의 복도 안을 거닐었다. 아마 자신의 연인이 있는 곳의 근처 또한 경비병이 있을 것이었다. 요한은 조금 우회하여 가기로 하곤, 그가 있는 최상위층의 바로 아래쪽으로 향했다. 패왕성에는 창문 같은 것이 따로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쪽으로 가는 것이 편했다. 마치 선물을 주러 가는 산타클로스가 된 기분이 들었다. 아, 그쪽은 굴뚝이던가. 아무튼.



“ 패왕님.”



 창문의 틀에 무사히 안착한 요한이 발걸음 소리를 숨기지 아니하고 내비치며 조용히 그를 불렀다. 높은 곳에 위치한 왕좌에 앉아있던 패왕의 눈썹이 조금 움찔, 했다. 그러한 작은 반응까지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던 요한이 그의 정면에 서서 반듯이 허리를 숙였다. 파티의 자리에서 여성에게 댄스 신청을 하는 것 같은 우아한 인사가 이어지고, 요한은 고개를 들며 눈꼬리를 휘어 살풋 웃었다. 패왕은 그것을 아무런 표정 없는 얼굴로 보고 있었다.



“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



 요한은 천천히 패왕에게로 다가가 손을 붙잡았다. 다행히도 그는 오늘 갑주를 착용하고 있지 않았다. 어짜피 금방 벗겨질 것이므로 잘됐다는 생각에 요한은 그의 두 손을 한데 모아 잡고 옷의 안쪽에서 오는 길에 챙겨온 빛바랜 붉은색의 테이프를 꺼내었다. 찌직거리며 자신의 손이 테이프로 인해 묶여가는 과정을 패왕은 눈을 내려 바라보다가,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요한에게로 옮기었다. 굳이 입을 열지 않아도 ‘뭐하는 짓이냐’고 묻는 것 같은 눈짓에 요한은 패왕의 손을 가지런히 테이프로 감고, 이를 세워 찢은 후 시선을 맞추었다.



“ 크리스마스라고 들어봤어? 나는 패왕님에게 파티를 열어주고, 패왕님은 보답으로 패왕님 자신을 선물로 준다는 계획이야. 어때?”



 자신의 계획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던 요한이 패왕의 왕좌 아래 무릎을 꿇고 앉아 곱게 포장되어있는 손에 입을 맞추려 얼굴을 내렸을 때, 퍼억, 하고 타격감 있는 소리가 났다. 징 박힌 패왕의 신발이 정확히 요한의 뺨을 가격한 것이었다. 동시에 균형을 잡지 못하고 옆으로 쓰러져버린 요한이 잠시 혼란스러워진 시야를 바로잡지 못하고 누워있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혀를 굴려 입 안쪽에 대어보면 비릿한 피 맛이 났다. 손을 올려 얼얼한 입술에 대어보면 붉은색의 피가 보였다. 아, 그렇구나. 깔깔깔, 하고 요한의 웃음소리가 났다.



“ 알아들었다고. 크리스마스하면 붉은 색이지. 그렇지?”



 붉은색을 좋아했잖아. 다시 한 번 패왕의 옥좌 쪽으로 기어온 요한이 손을 뻗어 그의 품 안에 숨겨져 있는 단도를 꺼내었다. 조용한 패왕의 공간에 스르릉, 하고 칼집이 우는 소리를 내었다. 그는 왕이었기 때문에 언제 생명의 위협을 받을지 몰랐다. 따라서 항상 가지고 다니던 단도가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요한은 얇은 손가락 끝으로 칼날을 조금 쓸고, 손바닥 위에 놓고 주먹을 꽈악 쥐었다. 날카로운 칼날이 요한의 손바닥 피부에 파고들어 금세 붉은 혈액이 떠올라 손바닥을 타고 흘렀다. 무채색의 천에 감싸여 색이 없어진 그를 장식하려는 듯이 뚝, 하고 공중으로 흐른 핏방울은 포장된 패왕의 손 위에도 떨어졌고, 그의 피부를 덮고 있는 검은색의 옷 위에도 떨어졌다.


 요한이 쥐고 있던 단도를 바닥에 대충 버리면 유난히도 쨍 하는 소리가 울렸다. 손바닥 가득히 고여 있는 혈액을 방울방울 흘려보내며 요한은 패왕의 입술 앞에 손을 내밀었다. 금방이라도 얼굴에 닿을 듯이 가까이 다가오는 붉고 비릿한 향에 패왕의 인상이 다시 한 번 찌푸려졌다. 어라, 이게 아닌가. 잠시 고개를 갸웃, 하던 요한이 또다시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어린아이처럼 꺄르르 웃으며 손뼉을 짤깍짤깍 쳤다. 멀쩡하던 반대쪽의 손이 피범벅이 되고 나서야 박수를 멈추고, 요한은 손가락에 아직도 울컥 흘러나오는 혈액을 묻혀 자신의 입술에 발랐다. 어두운 패왕의 방에서 몇 되지 않는 색을 가지고 있는 붉어진 요한의 입술이 호를 그리며 예쁘게 휘어졌다.



“ 메리 크리스마스, 패왕님.”


“ 요,”



 자신을 향해 올라오는 요한에 무언가 말하려는 듯이 벌어지던 패왕의 입술에 피의 따듯한 느낌이 닿았다. 멋대로 혀까지 침투시켜 키스해오는 요한에게 질렸다는 듯이 천천히 깜빡이던 노란색의 눈이 감겼다. 그것이 신호가 된 양 패왕의 옷을 벗겨내는 요한의 손이 성급해졌다. 자신의 옷은 복잡했기 때문에 벗기 힘들 테지만, 아침이 오지 않는 정령계의 밤은 길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좋았다. 천천히 옥좌의 위로 다리를 걸치고 올라오는 요한의 품속에서 아까 전 마을에서 주웠던 작은 종이 바닥으로 떨어져 딸랑딸랑 울었다.


 실로 즐거운 크리스마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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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요쥬요 합작에 쥬요로 참여했습니다

합작은 http://481048.tistory.com/ 이쪽에서 감상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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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리쿠
2014. 12. 25. 03:43










 녀석을 처음 만난 것은, 녀석이 아주아주 어렸을 때였다. 수업이 끝나고 돌아가는데 초등학생 정도로 되어 보이는 어린 아이가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면서 물품에 손을 대는 것이 보였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지갑을 꺼내거나, 액세서리를 훔치는 것을 멍하게 지켜보다가 성큼성큼 다가가 손을 잡고 강제로 사람이 없는 곳으로 끌고 들어와 머리를 딱콩 때렸다. 뭐하는 짓이냐고 잔뜩 성을 내던 녀석을 이끌고 근처 옷가게에 들어가 체격에 맞을 법 한 옷을 사고, 아이가 좋아할 법 한 패스트푸드도 사들고 집으로 향하자 어느덧 녀석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집에서 나와 혼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없는 집에서 피자를 나누어 먹으며, 녀석에게 이름을 물었다. 유우키 쥬다이. 허겁지겁 입으로 밀어 넣던 녀석의 발음은 불명확했지만, 알아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혼자 사는 것이 외로웠고, 녀석은 집이 없었다. 보답을 하고 싶다며 마음대로 남의 지갑 같은 것을 훔쳐와 내미는 녀석의 머리를 딱콩 때리고, 제대로 글도 읽을 줄 모르는 녀석에게 글을 가르치면서, 그렇게 동거를 했던 것 같았다.



 왜 이렇게 된 것 일까, 하고 만죠메는 생각했다. 어두운 저녁, 퇴근길에서 돌아가는 도중 익숙한 얼굴을 만났다. 어쩌다가 손이 잡혔고, 막무가내로 좁은 골목길로 끌고 가려 했기 때문에 그가 원하는 대로 해줬던 것 같다. 이 녀석과 연애를 시작하면서부터 연하 특유의 막무가내와 철없음에 일일이 반응하기도 지쳤다. 오늘은 외근이 있어 하루 종일 돌아다니느라 몸도 피곤했기 때문에 굳이 힘을 빼고 싶지도 않았다.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안쪽으로 들어가고 나면 차가운 벽에 등이 부딪쳤고,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입이 막혔다. 한참을 멋대로 쪽쪽거리는 녀석을 받아주다가 숨이 부족해져 작은 어깨를 내리누르면 잔뜩 불만을 품은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것이었다. 심통이 난 녀석은 대하기 피곤했기 때문에 저도 모르게 작게 한숨을 내쉬자 녀석의 눈썹이 작게 꿈틀거렸다. 앗차, 싶어 서둘러 눈치를 살피자 녀석의 고개가 가슴팍에 포옥 닿아왔다.



“ 만죠메, 좋아해. 좋아해….”



 천천히 닿아오는 고백이 물기를 가지고 바들바들 떨렸다. 작은 손으로 꼬옥 잡아오는 셔츠가 잔뜩 구겨져 신경 쓰였지만, 그것보다 자신의 아래쪽에서 울고 있는 녀석에게 더 눈길이 갔다. 녀석은 사랑을 못 받고 자랐기 때문인지 정말 필사적으로 사랑을 갈구했다. 자신이 조금만 늦으면 집 앞에서 안절부절 못해했고, 자신이 키스하기를 거부하면 바로 울상을 지었다. 처음엔 조금 심하지 않을까, 싶은 정도였지만 점점 녀석의 집착하는 강도가 세어졌던 것 같았다. 출근하기 전 나가지 말아달라며 손목을 꽉 부여잡는 손길이 점점 강해지고, 잠자리 시 물리는 목덜미가 점점 아파졌다. 오늘은 아마, 내가 다른 여자와 외근을 다니는 것을 본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이렇게 나를 기다린 것이 아닐까.


 사박사박 떨리는 녀석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천천히 쓰다듬었다. 어서 달래지 않으면 또 녀석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었다. 오늘 밤에도 꽤나 무리를 하게 될 것 같다고 생각하며 알았어, 하고 대답하면 어두운 골목길 안에서 무언가가 희미한 달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났다. 서서히 고개를 드는 녀석의 두 손에 가지런히 들려있는 것은.



“ 정말 좋아해…….”



 아, 그러고 보니 너무 얌전해서 잊고 있었다. 언젠가 같이 살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내가 녀석에게 지금까지 한 번도 도둑질을 들킨 적이 없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두 자리 수의 곱셈에 끙끙대고 있던 녀석이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있었는데, 죽였어. 했다. 마치 오늘 아침엔 고등어를 먹었어. 하는 것 같은 가벼운 말투였기 때문에 난 오히려 깜짝 놀라서 들고 있던 펜까지 떨어뜨려 버렸다. 그런 나를 보고 동그란 눈을 깜빡깜빡 거리던 쥬다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외에도 있었다고, 돈을 뺐기 위해 일부러 끌어들여서 죽인적도 있었다고. 녀석은, 내가 생명의 소중함을 역설하는 그 순간까지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 그 때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눈물범벅이 되어서는 나에게 좋아한다고 끊임없이 속삭이는 녀석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나, 나 있잖아. 만죠메가 다른 사람이랑 친하게 지내는 거 싫어. 으응? 만죠메를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 만죠메, 나랑 있을 거지…? 불안한 눈동자로 물어오는 녀석의 물음에 나는 한 마디도 대답할 수 없었다. 녀석의 집착이 심한 것은 알고 있었다. 가족도, 친구도 없는 어린 쥬다이가 기댈 곳은 나 하나밖에 없었다. 나까지 사라져 버린다면 불안했겠지. 녀석의 간절한 사랑을 온 몸으로 받으며, 만죠메는 끓어올라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만죠메? 하고, 쥬다이가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부르기도 전에 녀석의 작은 손을 부여잡았다. 아니, 정확히는 녀석의 작은 손에 들린 것을 잡았다. 쥬다이의 눈이 깜빡깜빡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쥬다이는 나를 사랑한다. 그래, 이 한 순간을 위해 자신은 그토록 그를 좋아하여 주었던 것이다. 나만을 원하는 단 한사람을, 아무도 바라봐주지 않는 집에서 나오는 그 순간부터. 그 사람의 안에 영원히 남기 위하여.



“ ……윽!”



 생살을 찢고 근육을 가르며 들어오는 날카로운 느낌은 생각보다 아팠다. 깜짝 놀란 쥬다이가 손을 떼기 위해 바르작댔지만 아직 작은 녀석은 성인 남자인 나를 이길 수 없었다. 한 손으로 붙잡힌 녀석의 손이 필사적으로 벗어나기 위해 움직였지만, 조금 더 힘을 주어 눌러 잡으며 몸 안으로 파고든 날카로운 것을 이리저리 비틀었다. 장기가 뒤틀리며 이리저리 찢기는 느낌을 근육의 떨림으로 느끼며, 만죠메는 짧게 숨을 내뱉었다. 뭐 하는 거냐고, 당장 그만 두라고 소리치는 쥬다이의 목소리가 즐거웠다.


 녀석은 모른다. 그가 나에게 보였던 집착에 기뻐했던 내 자신을 모른다. 그와 마찬가지로, 똑같이 사랑 받지 못해 좋아해줄 사람을 찾고 있던 나 또한 모른다. 오늘, 쥬다이 녀석의 나를 따라왔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같이 외근을 나갔던 여직원에게 더 친절히 대했고, 녀석이 깜짝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했다. 쥬다이 녀석이 나를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더욱 녀석의 집착을 갈구했다. 나를 좋아해주는 녀석이 있다는 사실이 기뻤고, 좀 더 좋아해주기를 바랬고, 혹시 녀석이 나를 좋아하는 것을 그만둘까 두려워했다.



“ 사랑해, 쥬다이.”



 울고 있는 쥬다이의 작은 어깨에 힘 빠진 몸을 서서히 기대었다. 이리저리 헤집은 피부를 통해 안에 들어있던 내장이 쏟아져 흘렀다. 텅 비어버린 뱃속을 통해 피가 새어나가는 느낌이 들면서, 빠진 체액에 몸이 점점 싸늘해졌다. 쥬다이의 보드라운 피부에는 이리저리 피가 튀어 있었다. 만죠메, 만죠메! 하고 부르는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녀석과 닿아있는 피부를 통해서 두근두근 그가 살아있다는 소리가 느껴졌다.


 그 소리를 들으며, 정신이 혼미해지는 이 순간이 만죠메는 너무나도 즐거웠다. 나를 진심으로, 정말 진심으로 좋아하고 사랑하고 있는 너의 안에서 나는 영원히 남을 것이기 때문에. 내 마지막 기억 또한 나를 상해 입힐 수 있을 만큼 진심으로 사랑했던 너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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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왕 죽음 합작에 십만으로 참여했습니다

합작은 이쪽-> 글: http://blog.naver.com/syd4936/220213138205 그림: http://blog.naver.com/syd4936/220213172208 에서 감상해주세요

Posted by 하리쿠
2014. 12. 25. 01:25

- 둥님과의 연성교환~ 이런 것도... 괜..찮습니까..?ㅠ.ㅠ








 평소 연락이랄 것도 거의 없는 무뚝뚝한 연인에게서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마침 학교도, 학원도 없는 휴일이었기 때문에 가벼운 차림으로 파파가 사다준 간식을 먹고 있었기 때문에, 가볍게 들여다보던 패드에 아카바의 이름이 뜬 것을 보고 먹고 있던 케이크를 뱉을 뻔 했다. 간신히 목구멍 너머로 넘기고 콜록거리며 전화를 받자 나오는 소리는 간단했다. ‘회사의 내 방으로 와라.’ 정말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끊어진 전화에 사와타리는 뭐라 대꾸도 못한 채 어버버거리다가, 갈 곳 없는 짜증을 공중에다가 내보내며 부랴부랴 외출 준비를 했다. 아카바의 방에 처음 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부분 자신이 직접 찾아가거나 나카지마 씨를 통해 연락이 왔기 때문에 이렇게 초대를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서둘러 옷을 고르던 사와타리의 손이 잠시 멈칫, 했다. 굳이 자신에게 연락까지 해가며 부른 이유가 무엇일까? 혹시 오늘이 무슨 특별한 날이라던가? 잠시 침을 꿀꺽 삼킨 사와타리는, 며칠 전 파파가 새로 사준 코트를 개시하기로 했다. 어쩐지 집을 나서는 발걸음이 두근두근 떨렸다.


 그리고, 아카바의 방으로 들어온 사와타리가 지금까지 한 일은 아카바의 뒤통수를 노려보고 있는 것밖에 없었다. 겨우, 애써, 이 몸께서 바쁜(?) 몸을 이끌고 여기까지 왔는데 아카바는 단 한 번도 자신을 돌아봐주지 않았다는 것 이었다! 자연스레 아카바의 뒤에 있는 푹신푹신한 소파에 몸을 맞긴 것은 좋았다. 사와타리의 취향에 맞추었을 딸기와 초코로 데코레이션 되어있는 크레이프와 오렌지 쥬스가 마침 옆에 놓여있었기에 그것을 맛있게 먹은 것까지는 좋았다. 아카바의 일이 바쁜 것은 하루 이틀이 아니었기 때문에 처음엔 그저 기다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것이 한 시간이 넘어가면 얘기가 다른 것이었다. 대체 나를 왜 여기까지 부른 거야! 사와타리는 지금 당장이라도 끌어안고 있는 베개를 저 조용한 뒤통수를 향해 던져버리고 싶었다.


 애초에 그에게 연인이라는 자각이 있는 것인지조차 의심이 갔다. 이게 고백인지, 아니면 통보인지 모를 만큼 무미건조한 말투로 고백을 받고, 대답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그러한 사이로 발전했다. 그 뒤로 아카바를 만나게 되는 시간이 늘어난 것은 확실히 좋았지만 그는 언제나 바빴기 때문에 어쩐지 두근거리는 것은 자신뿐인 것 같았다. 아카바에게 카드나 접시 같은 것을 건네받을 때 손가락이 잠시 마주한 것만으로도 심장이 덜컹거리는 자신과는 다르게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아카바를 볼 때마다 어쩐지 억울한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오늘도 내가 얼마나 기대하며 왔는데! 아카바의 뒤통수를 보면서 갑자기 뒤를 돌아보면서 다가오면 어떻게 하나, 오늘에야 말로 드디어 커플로써의 진도(!)를 나가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자신은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고민했었는데! 울컥 눈물이라도 나올 것 같은 기분에 저 대답 없는 뒤통수를 한 대 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 어느새 사와타리의 손에 들려진 베개가 사라지고 없었다.



“ 어라.”



 퍼-억. 경쾌한 소리가 들렸다. 정말 속으로만 때려주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손은 실행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카바의 뒤통수에 제대로 처박힌 베개는 곧 힘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언제나 자신을 위해 준비되어있는 푹신푹신한 종류의 것이기 때문에 아프지는 않았을 테지만, 사와타리는 속으로 망했다, 고 생각했다. 아카바의 뒤통수가 천천히 자신을 향해 돌아보는 것에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 이게 무슨 짓이지?”



 아카바의 목소리에서는 냉기가 뚝뚝 떨어졌다. 평소와 다름없다고도 할 수 있었지만 사와타리에게는 어쩐지 엄청 기분이 안 좋은 것으로 들렸기 때문에 어깨를 확 움츠렸다. 정말, 정말 던질 생각은 없었다고! 사와타리는 어쩐지 아까보다 울 것 같은 기분이 되어버렸다. 젠장, 이판사판이다. 대답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이 이상했는지 의자에서 일어나는 아카바를 보자마자 사와타리는 빼액 소리를 높였다.



“ 이, 이건 아카바가 잘못한 거야! 사람을 불러놓고 방치하다니. 신경도 안 써주고! 이 몸의 시간이 얼마나 귀한 줄 알아!?”



 어느새 가드까지 올리고 있는 자신이 찌질해 보였지만, 처음 통화를 했을 때도 그렇고 아카바의 목소리는 사람을 주눅 들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으므로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의 말을 들은 아카바가 신경? 하고 고개를 갸웃, 하는 것이 가드를 올린 팔의 사이로 보였다. 신경을 써야한다는 사실 조차 몰랐던 거냐고! 다시 한 번 소리를 빽 지르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자신에게로 가까이 다가와 뒤에 있는 벽에 손을 올려두고 자신을 내려다보는 아카바로 인해 곧 사라져버렸다. 다시 심장이 덜컹거렸다. 아카바는 여자들에게도 인기가 많을 정도로 미남이었기 때문에 가까이서 얼굴을 마주하고 있으면 저도 모르게 말이 막혔다. 무언가 말하려 하던 사와타리가 입을 꾹 다물어버리자 이번엔 아카바의 쪽에서 입을 열었다.



“ 이런 걸 원하나?”


“ 그, 그런 게 아니라…!”



 하고 사와타리가 반박을 하려는 순간 입이 막혔다. 어느새 턱을 잡고 있던 아카바의 손끝이 부드러웠다. 몇 번이나 머릿속으로 그려오던 아카바와의 키스였지만 자신이 생각하던 것은 좀 더 뭐랄까, 더 분위기가 있는 그런 것이었는데! 분명 마주 닿는 입술은 따듯하고 말랑말랑 했지만 어딘가 달랐다. 입술을 떼면 다시 한 마디 해줘야지, 하고 다짐하는데, 입술 사이에서 말캉한 것이 느껴졌다. 힉, 하고 순간 등 쪽에 소름이 돋아 사와타리는 저도 모르게 아카바를 확 밀쳐내고 말았다. 순순히 물러나준 아카바의 눈이 자신을 향하고 있어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물론 자신이 머릿속으로 열심히 아카바와의 키스를 그려보았던 것은 맞았다. 하, 하지만, 그, 그런 건…! 순간 자신의 입술에 닿은 것이 아카바의 혀라고 다시 떠올리니 순식간에 부끄러워 져버려 손바닥으로 입술을 가렸다. 분명 아까 전에는 지금 입술에 닿는 차가운 손바닥보다 더 따듯한 아카바의 입술이 닿았고, 그것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더 따듯한, 그, 그러니까, 아카바의 혀가 닿았다. 만약 자신이 그를 밀쳐내지 않았더라면?



……읏!”



 떠오르는 것은 차마 자신의 입에도 담기 힘든 장면이었다. 자신은 이것에 첫 번째 연애고, 첫 번째 키스일지라도 아카바는 자신보다 2년이나 더 살았으니 자신이 하는 것보다 더 어른스러운 연애를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부끄러운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겨우 이런 것에 당황할 사와타리 님이 아니라고 아무리 타일러도 쿵쾅거리는 심장은 도저히 진정할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아, 젠장. 이런 때에도 아카바는 자신을 보고 있었다. 자신이 밀쳤을 때 잠자코 입술을 떼어준 것은 고맙지만 지금 만큼은 아까처럼 내가 아닌 일을 보고 있어도 괜찮을 텐데! 사와타리는 달아오른 얼굴을 진정시키기 위해 천천히 심호흡을 하고, 다시 아카바를 향해 고개를 올렸다. 자신을 바라보는 아카바의 얼굴에 다시 심장이 덜컹거렸다.


 좀 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는 생각했지만 입술을 가리고 있던 손바닥은 제멋대로 밑으로 떨어졌다. 동시에 다시 닿아온 아카바의 입술에 사와타리는 어쩔 수 없이 눈을 꽈악 감았다. 천천히 사와타리의 입술을 핥아오는 혀도, 그것이 벌어진 입술 안쪽으로 들어와 자신의 혀를 감아오는 것도 다 넘어가기로 했다. 자신이 생각한 키스와는 전혀 다른 형태였지만, 그것을 모두 넘어갈 만큼 기분 좋은 키스였다.




Posted by 하리쿠
2014. 12. 21. 00:08

- 데스티니 드로의 마지막 전력 주제인 '동인 활동을 하는 유희왕 캐릭터'를 보자마자.. 떠올랐습니다 이벤트에 참여하지는 않지만 기왕 생각한김에~^^)/








 천천히 집밖으로 나서는 만죠메의 발걸음이 벌벌 떨렸다. 오늘은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준비를 했다. 머리를 감으려다 홧김에 샤워까지 했고, 평소보다 샤워 코롱도 많이 썼다. 머리는 평소보다 왁스를 많이 펴발랐으며 안 쓰던 향수까지 뿌렸다. 며칠 전에 새로 샀던 옷도 처음으로 개시했다. 혹시나 길을 못 찾을까봐 어제부터 몇 십번이나 읽어보아 외울 지경인 루트도 다시 읽어보고는, 밤새 닦아대었던 구두도 신었다. 긴장하지 말자, 고 몇 번이나 다짐했지만 문 밖을 나서자마자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천하의 만죠메가 이렇게 긴장을 하고 있는 이유는, 오늘 만나러 가는 사람이 자신이 몇 년 동안 좋아해온 존잘님이기 때문이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에게 사랑받는 엘리트 학생, 학생들 사이에선 싸가지 없는 도련님, 사회에서는 만죠메 그룹의 삼남의 위치에 있는 그의 은밀한 취미는, 동인 활동이었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밤새는 줄 모른다고 했던가. 어렸을 때부터 공부만을 강요해오던 집안이었기 때문에 나중에 접한 만화가 이렇게 자신을 빠지게 할 줄은 몰랐다. 그러다가 동인을 알게 되었고, 팬아트를 찾아보다가 오늘 만나러 가는 존잘님을 보았다. 선의 느낌에서부터 시작해서 특이한 색 배합, 칠하는 방식, 심지어 구도까지 완전히 자신의 취향이었기 때문에 그 사람이 그린 모든 그림을 찾아보았다. ‘갓챠’라는 닉네임을 가진 존잘님은 아메리카 코믹스 위주로 연성을 하시는 듯 했고, 그쪽에서도 특이한 그림으로 유명한 것 같았다.


 존잘님과 같은 장르를 파고 싶다는 생각에 한 번도 본적이 없던 아메리카 코믹스를 주문했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존잘님께서 그림을 올리시는 사이트에 일부러 같은 장르의 그림도 올리고, 그 존잘님께서 파시는 커플링도 그렸다. 차마 부끄러운 마음에 컨택 한 번 못해보고 뒤에서 몰래 연성만 수집하기만을 몇 년. 트위터로도 구독만 하며 알티는 커녕 소심하게 별만 찍고 있었는데 마침내 맞팔을 받았던 날에는 정말 하늘로 승천할 뻔 했다. 자신의 연성의 분위기가 좋다고 칭찬해주시는 존잘님의 가벼운 한마디에는 눈물까지 나올 뻔 했다.


 멘션을 나누다가 같은 나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멀리서 지켜봤을 때보다 친해지기 쉬운 사람이라는 것도 알았지만 만죠메는 차마 편하게 대할 수 없었다. 핥러들도 많고, 친한 지인도 많은 존잘님께서 다른 지인들과 놀러갔다는 트윗을 볼 때마다 부러워서 언젠간 같이 가고 싶다는 말을 (속으로만) 중얼거리고 있었는데, 어느 날 존잘님을 만날 기회가 생겼다. 이번에 새로 나온 ‘네오 스페이시언’이라는 영화를 보고 싶다는 존잘님의 트윗에 몇 십번이나 고쳐가며 우연히 표가 생겼는데 보러 가실래요? 하는 답을 보냈는데, 승낙을 받은 것이었다. 물론 우연히 표가 생겼다는 것은 뻥이었지만 만죠메는 그 자리에서 인터넷을 뒤져 제일 좋은 영화관의 제일 좋은 장소를 예약했다. 그리고 오늘은 그 날 당일! 데이트 하는 남자마냥 영화관 주변엔 어떤 음식집이 좋은지, 어떤 카페가 (연성받기에) 좋은지를 이틀 전부터 찾아보았으니 오늘 하루의 계획은 완벽했다. 절대로 존잘님과의 데이트를 성공시킬 거라 주먹을 꽉 쥐고 집을 나서는데,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 만죠메!”



 설렁설렁 손을 흔들며 다가오는 사람은 옆집에 사는 자신과 같은 반의 유우키 쥬다이 놈이었다. 잔뜩 설렜던 마음이 순식간에 땅으로 떨어지는 것을 느끼며 썬더다! 하고 외치자 깔깔 웃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다. 왜 존잘님의 생각을 하는데 저 놈이 끼어드는 것인지 아침부터 재수가 없다고 생각하며 그 뒤로 대화를 이어가려는 녀석을 무시하고 쿵쾅쿵쾅 걸음을 옮기자 녀석이 쫄랑쫄랑 뒤따라왔다.



“ 만죠메, 어디가? 역으로 가? 나도 같이 가자고! 어-이, 만죠메!”



 하필 행선지까지 겹치다니! 괜히 울컥하는 기분에 녀석을 한 번 째리고 역으로 향하다가, 이상하게 딴 곳으로 새는 녀석을 붙잡았다. 역으로 가는 제일 빠른 길을 놔두고 어째서 다른 길로 새는 것인지 자신과는 전혀, 조금도 상관도 없고 딱히 신경이 쓰이는 것은 아니지만 순전히 녀석의 약속 상대가 불쌍했기 때문이라고 자신을 납득시키며 다른 곳으로 가려는 녀석의 옷을 붙잡았는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바라본 녀석이 뜬금없이 말했다.



“ 아냐, 이쪽이 맞아. 만죠메, 너도 이쪽으로 가야 할껄?”


“ 어엉? 무슨 소리야.”



 네 약속 상대는 지금 여기에 있으니까. 눈을 가늘게 휘어 웃으며 쥬다이가 꺼낸 핸드폰을 보는데, 어쩐지 익숙한 화면이 보였다. 익숙한 파랑새가 그려진 앱에, 익숙한 ‘갓챠’라는 닉네임. 게다가 홈으로 가기를 누르면 보이는 자신이 열심히 그려 갓챠 씨에게 준 그림까지! …자, 잠시만. 이건,



“ 영화표는 취소하는 게 낫지 않겠어?”



 ……에에에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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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리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