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4. 25. 03:30

 오랜만에, TV에서 유우키 쥬다이 녀석을 봤다. 정말 지나가듯이 나온 듀얼 대회에서 1등을 했다는 듀얼 뉴스였기에 여전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만죠메는 핸드폰을 쥐었다. 이제 녀석의 번호 정도는 딱히 번호 등록부에 들어가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멍하게 신호가 가는 음을 들으며 만죠메는 마지막으로 쥬다이 녀석과 전화한 것이 언제였는지를 떠올렸다. 사실 목소리는 정말 고등학생 때 3년 동안 지겹도록 들어왔기 때문에 잊을 래야 잊을 수 없었다. 얼굴도, 탁자위에 놓은 사진만 봐도 알 수 있었으므로 녀석에 대한 것은 조금도 잊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슬슬 언제 만났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때 즈음이 된 것이다. 아마 슬슬, 쥬다이도 그렇게 느끼고 있을 터였다.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기 때문에 만죠메는 솔직하게 그에게 전화를 하기로 했다.



“ 어, 만죠메?”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평소 자신이 알던 것과 같았다. 자신이 어째서 전화한 지도 모르고 혼자 신나서는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 아냐며 물어보는 그에게 설렁설렁 대답을 해주며 약속을 잡았다. ‘밥을 먹으러 오겠다.’며 통보를 해오는 녀석에게 신경질을 내는 척 하며 시선 끝으로 시간을 살피었다. 1시. 아마 그는 점심을 먹는 것조차 잊은 채로 듀얼에 몰두했을 터였다. 8시쯤엔 도착할 것이라는 말을 들으며 만죠메는 전화를 끊었다. 대충 본 뉴스에 따르면 듀얼 대회는 시애틀 쪽에 있다고 했는데 7시간 안에 어떻게 올 생각인지 물어보려다가 만죠메는 그냥 입을 다물기로 했다. 녀석은 한다면 하는 놈이었고, 아마 그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으리라. 쥬다이라면 어떻게든 하겠지, 싶었다.


 약속이 정해지고 나면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혼자 살 때에는 요리를 잘 하지 않기 때문에 냉장고에 마땅한 것이 없었다. 지갑을 쥐는 손에 어쩐지 물기가 어려 있었다. 그 잠깐의 통화에, 시간이라는 이름의 긴장감이 방울졌던 모양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만큼 신경써주자는 생각에 시장에 가서 재료를 골랐다. 7시간이면 어떤 요리를 할 수 있지? 그러고보니 녀석, 조금 마른 것 같던데 영양제라도 사서 들려 보내야할까. 좋아하던 새우튀김도 살까. 이왕이면 갓 나온걸 먹이고 싶은데 시간에 맞춰서 배달시키는 편이 좋을까. 어디가 맛있더라. 평소라면 금방 끝낼 시장을 1시간을 훌쩍 넘겨 집에 돌아왔을 때에는 어쩐지 거실은 태풍이라도 맞은 듯이 엉망이었고, 그 가운데에는 유우키 쥬다이가 있었다. 나름 치우려는 노력이라도 한 것인지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화분으로 추정되는 도자기 조각들을 들고서.



“ 마, 만죠메. 이게 말이지….

“ …….”

“ 거, 으음. ……왔어?”



 두 손 가득한 봉투를 털썩 내려놓은 만죠메는 기가 차서 그의 말에 대답을 할 수 조차 없었다.

 



 그러니까, 시차를 잊어버렸다고 했다. 정말 그 다운 변명이라 만죠메는 머릿속을 가득 메운 잔소리를 늘어놓는 것을 포기했다. 그래, 쥬다이 놈이 시차를 생각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한 자신이 잘못한 것이었다. 조금 더 빨리 올 수 있었는데 대회장 앞에서 기자들에게 잡혔다 던지, 거꾸로 날아가는(여기서 딴지를 걸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바람에 돌아오느라 늦었다 던지 하는 말을 잔뜩 늘어놓은 쥬다이를 보며 만죠메는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눈까지 가려진 주제에 하여간 말은 많았다.


 결국 녀석이 오기 전에 한 상 가득 차려준다는 계획은 물 건너 간 것이었다. 그러니까 애써 사온 재료들도, 시켜놓은 최고급 새우튀김도, 자기 직전에 목을 축일 최고급 와인도 모두 쓸모가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쥬다이 녀석은 당장 무언가를 먹고 싶어 했기 때문에 만죠메는 그저 급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뒤에 있는 쥬다이는 자신의 넥타이로 눈을 가린 채 홀로 떠들고 있었다. 요리를 하고 있는 남자 뒤의 눈을 가린 남자라니 누가 보면 이상한 취미라고 생각할만한 광경이었지만, 요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으므로 어쩔 수 없었다. 이래서 진작 상을 차려놓으려고 했는데! 하여간 생각한대로는 되지 않는 녀석이었다. 삐뚤빼뚤 썰어 넣은 야채가 익어가는 냄새에 쥬다이의 보채는 소리가 늘었다.


 결국 상에는 상상했던 것 이하의 요리들이 놓였지만 쥬다이 녀석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 같았다. 제대로 뜸을 들이지도 못한 밥을 급하게 입으로 욱여넣는 녀석을 보고만 있어도 밥을 먹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는 아마 이것을 먹고 나면 다시 가버릴 것이다.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오래 붙들고 있을 이유를 만들어보려 더 많은 준비를 하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이었다. 자신은 차마 그를 붙들 수조차 없었다. 그저 허겁지겁 밥을 먹는 녀석의 얼굴이라는 액자에 가지 마, 가지 마, 하고 생각으로 외치는 관람객밖에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 맛있었다! 고마워, 만죠메.”



 하며 자신을 향해 웃어 보이는 녀석의 얼굴만 봐도 모든 것이 용서되어 버리는 멍청이였다. 창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커튼과 쥬다이의 머리카락이 함께 나풀거렸다. 열린 창문으로 들어온 바람은 아마 집 안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흘끗 시계를 보면 슬슬 마트에서 시킨 요리 재료들이 도착할 시간이었다. 쥬다이 녀석은 이미 갈 준비를 마치고 베란다에 서있었다. 


" 아아, 그래. 어서 가버려라, 멍청아."


내가 시킨 너에 대한 마음 한 보따리가 도착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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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리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