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17. 23:32

밥상을 차리던 델릭은 식탁을 내려다보며 자연스레 한숨을 내쉬었다. 항상 차리던 밥상의 한 구석이 허전하다. 몇일째 돌아오지 않는, 항상 지겨울정도로 옆에 붙어다니던 어떤 한 사람-사람은 아니었지만-의 부재 때문이었다. 자신과 같은 집에서 사는 남자 셋 모두가 요리를 하면 음식의 재창조를 할 만큼 재능이 없어서 어거지로 맡게 된 요리는 의외로 재미가 있었기에 지금은 일상이 되어있었다. 항상 놓는 젓가락의 갯수는 먹는이의 수만큼 4개였지만 언젠가 3개로 줄어있었고 그 횟수도 두 손이 넘어갔다. 안들어온 날도 세기를 포기할 정도로 늘어났다. 원래는 점심을 안드신다고 들었지만 이사오고 난 뒤부터는 먹기 시작한 히비야의 것까지 차리고 난 델릭은 사이케의 빈자리로 시선을 옮기고는 인상을 조금 찌푸렸다.

…밥은 잘 쳐먹고 있는거냐고.

곧 츠가루와 히비야가 차려진 점심을 먹기위해 앉았지만 델릭은 차마 그들에게 시선을 줄 수가 없었다. 밥밥밥-! 하던 사이케가 눈에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아 왜 안오냐고, 하고 불평을 해보아도 자리에 없는 이는 들을 수 없었다. 사이케의 빈자리는 이렇게 언제 어디서나 느껴졌기때문에 델릭은 요즘 심기가 예민해져 있었다. 몇번이고 문자를 하고 멘션을 보내도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핸드폰을 보지도 못 할 정도로 바쁜것인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씹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언제나 좋아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살던 사이케에게 의심이 들기 시작한 것은 좀 된 일이었다.

" 안 먹나요?"

멍하게 사이케의 빈자리를 바라보던 델릭의 정신을 차리게 한 것은 츠가루의 목소리였다.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보는 사람이 다 안쓰러울 정도로 침울해 있어 사람을 걱정시킨 주제에 집을 나가있던 히비야를 데려온 츠가루는 뻔뻔스럽게도 너무나도 기쁜 얼굴을 하고 있어서 델릭은 차마 그를 마주하고 심하게 화를 낼 수가 없었다. 비록 멘션을 몇 개 보내고, 돌아왔을 때 한 대 때리긴 했지만 델릭의 성격으로는 상당히 많이 참은 것이었다. 내심 보고 싶기는 했기에 몇 일 동안은 그에게 아침마다 불평불만않고 깜짝 놀랄만큼의 진수성찬을 차려주긴 했지만 지금은 의미가 없었다. 항상 맛있게 먹어주던 사람이 없는데 대체 무슨 맛으로 상을 차리란 말인가. 물론 츠가루와 히비야도 늘 자신의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긴 했지만 그것과는 달랐다. 반찬을 부실하게 만든다던가는 아니었지만 델릭은 요즘 통 요리에 재미를 붙일수가 없었다. 자신이 재미를 가지지 않고 만든 요리는 다른 사람은 어떨지는 몰라도 장본인에게는 맛이 없는 법이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그랬다.

츠가루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린 델릭은 고개를 몇 번 끄덕인 후 밥그릇을 들었다. 젓가락으로 뜨여진 밥은 고슬고슬했고 갓 한 것이었기 때문에 무척이나 맛이 있었지만 델릭은 아무래도 좋았다. 애써 한 반찬은 거들떠도 안보고 밥을 입 속에 우겨넣은 델릭이 눈을 조금만 위로 올리면 젓가락질이 서투른 탓에 자꾸 반찬이며 밥을 흘리는 히비야를 위해 감자조림이며 고기완자 같은 것들을 손수 먹여주는 츠가루가 보였다. 타임라인에서도, 이 건물 안에서도 4차원 주민으로 유명한 그들이었다. 자신의 타임라인에 유일하게 있는 누님은 그들을 신혼부부라고 칭했다. 맞는 말이었다. 사이케가 있었으면 에! 에에! 사이케 이런거 반대! 하며 달려들었겠지만 지금은 그럴 사람이 없었다. …형 보고싶다.

" ? 델릭?"

물음표를 띄우는 츠가루를 뒤로하고 델릭은 먹던 밥그릇을 내려놓고 일어났다. 식사중에 먼저 일어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언젠가 다같이 나베를 먹을 때 이자야에게 들은 적이 있었지만 그때에도 너나 잘하라고 대강 넘기었기에 별로 상관은 없었다. 그릇은 물에 담궈놓고 식탁 치우기 싫으면 걍 냅두슈. 내가 이따 나와서 설거지도 하고 치울테니까.

" 델릭 님."

발걸음을 조금도 숨기지 아니하고 내보이며 쿵쾅거리며 방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붙잡은 것은 델릭이 존경해 마지않는 히비야였다. 비록 그의 앞에는 밥풀을 비롯한 온갖 것들이 잔뜩 떨어져 있었지만 히비야의 표정은 그것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이케는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시지않습니까. 어디서 굶거나 잘못되지 않으실 분이라는 것을. 고개를 돌려 그의 말을 들은 델릭은 히비야를 향해 알았다는 듯이 입꼬리를 조금 올려보이고는 다시 돌아 방으로 들어갔다.

……그냥 제가 보고싶을 뿐임다, 왕자님. 나오는 것은 한숨 뿐이었다.

머리를 신경질 적으로 긁은 델릭은 음악이나 듣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의자에서 옆을 돌아보면 처음 만들어졌을 때 사이케가 연주해달라고 졸랐던 기타가 있었다. 4월이 시작할 때 나가서 새로운 기타를 사서 자신의 작업실에 넣어놓기는 했지만, 이것만큼은 버릴 수 없어서 자신의 옆에 놓아두었다. 종종 사이케가 자신이 작업실에 있지 아니할 때에도 기타연주를 듣고 싶어 했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자신이 이렇게 사이케를 보고싶어 하지 않았을 때 자신의 목에 매달리며 기타연주를 해달라며 그가 조를 때가 있었다. 기분이 좋으면 그것을 들어주었고, 기분이 나쁠때에는 오히려 신경질을 내며 내쫓았다. 지금의 기분이라면 그가 잠들 때까지 기타연주며 온갖 것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만들어 달라는 디저트도, 음식도, 불러달라는 노래도 다 불러줄 수 있을텐데 정작 해달라고 붙어있는 사람은 없었다.

델릭의 또다른 낙은 자신이 새로 시도한 음식을 사이케에게 맛보이는 것이었다. 녹화까지 해가며 항상 챙겨보는 요리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간혹 진짜 만들고 싶어지는 것이 생기면 나가서 재료를 사와 그날 저녁에 만들기도 했다. 재료를 사가지고 오면 사이케는 항상 델릭의 옆에 붙어 무엇을 만드냐고, 어떻게 만드냐고, 하며 떠들어 대곤 했다. 가끔 사이케가 너무 귀찮게 할 때에는 좀 꺼지라고 화를 내기도 막상 그가 옆에 없으면 심심했기에 항상 후회하곤 하는 행동이었다.. 델릭은 레시피 그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또는 먹어주는 사람의 입맛에 맞추어 조금의 양념을 더 추가했기 때문에 가끔 이상한 것을 넣어 맛이 엇나가기도 했다. 그렇기에 만들고 나서는 사이케에게 먹여주곤 했는데, 의외로 입맛이 까다로운 그는 생각보다 완벽한 평가를 했고, 그 뒤부터 음식의 평가는 사이케에게 맡겨졌다.

" …형, 보고싶다."

생각을 하고 나니까 더 보고싶은 마음이 강해졌다. 도대체 무슨 작업을 하기에 사람-은 아니지만-을 이렇게 집에 돌려보내지도 않는단 말인가! 델릭은 입술을 삐죽이며 컴퓨터 옆에 놓여있는 핸드폰을 켜보았지만 역시나 온 문자는 없었다. 트위터를 켜봐도 멘션함에는 익숙한 하얗고 핑크한 귀여운 남자는 없었다. 멘션함을 가득 채운 새까만 플사에게 테러 좀 그만 하라고 생각하며 델릭은 트윗 버튼을 눌렀다. 처음에는 사이케에게 멘션 오는 것 자체도 호모냄새때문에 싫어서 멘션도 스루하곤 했지만 이제는 익숙한 그의 아이디를 쳐 넣고는 델릭은 있는 힘껏 그에게 하고싶은 말을 써넣기 시작했다. 그래봤자 보고싶다로 시작해서 보고싶다로 끝나는 멘션이긴 했지만, 그 생각밖에 없음으로 당연했다.

그러니까 좀 돌아오라고…. 저도 모르게 입술에 가져다 댄 액정 너머의 사이케의 입술은 차가웠다.

Posted by 하리쿠
2013. 1. 17. 23:31

사이케의 방은 언제나 순수하구나, 하고 츠가루는 막연하게 생각했다. 사이케의 방으로 이동해올 때 마다 처음으로 보이는 것이 공중을 둥둥 떠다니는 장난감들이니 당연했다. 사이케는 나이 -프로그램에 나이라고 해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에 맞지 않게 순수했고, 행동이 어렸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상할 수는 있는 방이었다. 외출할 때에도 언제든지 놀러오라며 잠금은 해놓지 않기 때문에 츠가루는 언제든지 사이케의 방을 드나들 수 있었다. 자신의 눈높이에서 천천히 등속도 운동을 하고 있는 작은 곰 인형 하나를 잡아챈 츠가루가 그것을 끌어안으며 몸을 뒤로 눕혔다. 중력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만 언제든지 그것을 부정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속이기 때문에 츠가루는 그것에 영향 받지 아니하고 공중으로 떠올랐다. 이자야와는 다르게 사이케는 단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방에서는 옅은 단내가 났다. 단것은 자신도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에 츠가루는 사이케의 방이 좋았다. 푹신푹신한 솜이 가득 들어가 있는 곰 인형을 가득 끌어안고 공중을 떠다니던 츠가루가 사이케가 돌아올 때 까지 에너지를 아낄 겸 잠이나 잘까 싶어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 때 일이 터졌다.

토독, 하고 실밥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편안히 낮잠을 자려 하던 츠가루가 깜짝 놀라 눈을 뜨며 몸을 일으켰다. 반쯤 몽롱하게 정신이 나가있던 차에 급하게 현실로 끌려 온 것이라 잠시 균형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렸지만, 츠가루는 차분히 발을 땅에 대었다. 순식간에 생겨난 게다가 땅에 닿아 또각, 하는 소리를 내었다. 조용한 방 안을 가득 울리는 소리에 츠가루는 긴장한 마음을 다잡고 -아무도 없는 것이 당연하지만- 주위를 둘러보고는 천천히 자신의 품에 안겨있는 인형을 내려다보았다. 일 났다. 츠가루는 잠시 정신이 멍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옅은 갈색 곰돌이의 옆구리를 비집고 튀어나온 것은 그 안에 있는 새하얀 솜. 아마 자신도 모르게 팔에 힘을 주어버린 모양이었다. 어린아이답게 자신의 것을 끔찍하게 아끼는 사이케가 화를 낼 것은 당연한 일이었기에, 어떻게 해서든 손끝으로 꾹꾹 눌러서 안으로 넣어보려고 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말끔하게 정리되어 새파란 매니큐어까지 발라져있는 손톱에 찢겨 더욱 더 아가리를 벌릴 뿐이었다. 곰 인형의 상처가 커질수록 츠가루의 패닉 상태도 커져만 갔고, 당황한 나머지 과부하로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았다.

" 츠으-가루!"

그리고 그 순간 사이케의 등장은, 츠가루로써는 정말 최악의 타이밍이었다. 급하게 뒤로 곰 인형을 숨긴 츠가루가 간신히 입 꼬리를 올려 하늘에서부터 천천히 전송되며 떨어지는 사이케를 맞이하였다. 혹시나 곰 인형의 뭉툭한 팔이나 다리가 자신의 뒤에서 튀어나오기라도 할까봐 츠가루는 긴장하며 사이케를 바라보았다. 밖으로 나갔던 것인지 밖의 사람들처럼 간편복이던 사이케의 옷이 프로그램에 설정되어 있는 새하얀 털코트로 바뀌었다. 다다다, 하며 자신의 쪽으로 달려오는 사이케가 언젠가 자신에게 무섭게 화를 내던 그로 겹쳐 보여 츠가루는 자신도 모르게 발을 뒤로 빼었고, 밟히는 자동차의 바퀴가 츠가루의 무게로 인해 뒤로 굴러가는 바람에 츠가루는 아무런 생각 없이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갑자기 넘어지는 츠가루 탓에 깜짝 놀란 사이케가 급하게 방을 변환시키며 그를 끌어안았다. 사이케의 무게가 덧붙여져 급하게 땅으로 가라앉은 츠가루의 등에 닿는 것은 액체였고, 빠르게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순간에 자신이 다치지 않도록 물을 만들어낸 사이케의 순발력에 감탄하며 츠가루는 자신의 허리를 강하게 안고 있는 사이케를 한 손으로 토닥였다.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장난감들은 물 위에 둥둥 떠있었기에, 천천히 떠오르고 있는 장난감들을 제외하고 물속에는 츠가루와 사이케, 그 둘밖에 없었다. 츠가루를 가득 껴안은 사이케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잔뜩 휘어져 웃음을 잔뜩 머금고 있는 눈이 사이케의 머리와 함께 츠가루의 가슴에 품어져 있었다. 사이케는 남에게 안기기를 좋아했지만, 그만큼 자신이 누군가를 가득 끌어안고 있는 것을 좋아했고, 그 상대는 종종 자신이 되곤 했다. 그렇기에 언제나처럼 사이케에게 가득 안겨 있는 츠가루는 평소처럼 미소를 지어보이며 사이케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츠가루가 여기서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다. 츠가루와 사이케가 빠져있는 액체는 물이 아니었다는 것. 보통 물이었다면 곰 인형의 솜은 그것을 잔뜩 흡수하여 잔뜩 무거워져 얌전히 츠가루의 손에 들려있었겠지만, 액체를 흡수하기는커녕 액체보다 밀도가 작은 것인지 떠오르기 시작했다. 한 손으로 간신히 그것을 잡고 있던 츠가루가 아차, 하는 동안에 곰 인형은 츠가루의 손을 거부하고 위로 떠올랐다. 급하게 그것을 잡으려 츠가루는 손을 뻗었지만, 그것을 먼저 잡아채는 손이 있었다.

" , 내 인형!"

사이케는 인형을 잡자마자 그것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챘다. 츠가루가 침을 꿀꺽, 삼킴과 동시에 그들을 품어주던 액체가 사라졌고, 츠가루의 등에는 땅이 닿았으며 하늘에서 장난감이 쏟아져 내려왔다. 장난감은 누워있는 츠가루와 그 위에 앉아 인형을 끌어안고 있는 사이케를 피하듯 그 주위로만 떨어져 내렸기에 둘은 다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에는 신경도 못 줄 만큼 츠가루는 긴장해 있었다. 사이케의 반응이 어느 쪽으로 나올지 예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이케가 정말로 화가 나면 이자야조차 손이 댈 수 없을 만큼 무서워지기 때문에 츠가루는 특히 조심하곤 했다. 다행히도 츠가루는 누군가를 열받게 하는 성격이 아닌지라 사이케가 자신 때문에 화를 낸 적은 없었지만, 그의 동생인 데리오는 가끔 정말 사이케를 화나게 하곤 했기에, 그것을 받아줘야 하는 입장은 츠가루가 난감했었다. 이런 일로 과연 화를 낼까 ? 싶긴 했지만 최근에 사이케가 데리오와 심하게 다툰 원인이 시즈오가 사준 딸기케이크를 누가 먹었느냐 였기에 -결국 범인은 츠키였기에, 사이케와 데리오는 이자야에게 크게 혼났었다.- 그럴 수도 있다고 결론을 내린 츠가루는 조심히 사이케의 눈치를 살폈다. 사이케의 얼굴이 인형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기에 츠가루는 더욱 더 긴장하고 있었다.

" 내 인형을……. 츠가루 미워!"

사이케가 빼액, 하고 귀가 멍멍할 정도로 소리를 지르자마자 츠가루는 강제적으로 사이케의 방에서 튕겨져 나오고 말았다. 순간적으로 보인 사이케의 꽉 감긴 눈에 순간적으로 눈물이 보인 것 같아서 츠가루는 조금 미묘한 기분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빽 소리를 지르고 자신을 쫓아버린다는 것은 화내는 것이 아니라 삐진 것이라는 뜻이라서 자신이 걱정하던 상황이 되는 것은 아니기에 일단 다행이었다. 사이케는 화가 나면 일단 그 사람과 마주하고 말로 쏘아붙이거나 분위기로 밀어붙이는 타입이라서, 차라리 이렇게 소리 지르고 쫓는 게 마음이 편했다. 물론, 그렇다고 지금 이것이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으로 전송당한 츠가루는 주위를 살피며 사이케에게 가기 위해 시도해보았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다. 위치를 변경할 수 있는 상태 창을 빨간색의 SCREEN, 이라는 글자가 가득 채우는 것을 보니 자신에게만 제한을 건 모양이었다. 자물쇠로 꼭꼭 잠궈 버린 것이다. 작은 한숨을 내쉬며 츠가루는 일단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방으로 몸을 옮겼다. 새하얀 방으로 들어온 츠가루는 의자에 앉아서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일단 사이케가 소중히 아끼는 것을 멋대로 망가뜨린 것은 자신의 잘못이었기에 사이케에게 사과를 해야 했다. 그러나 사이케가 이렇게 꼭꼭 잠구고 틀어박혀 버리면 자신은 그를 만날 수 없었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착한 츠가루는 상대방에게 미움을 받는다는 것이 견딜 수 없었다. 그것도 상대가 자신의 연인인 사이케라면 더욱 더 싫었다. 감정의 영향을 잘 받는 시즈오나 데리오와는 다르게 자신은 힘 조절을 꽤나 잘 한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잘못하여 실수를 저지른 것이니 약간의 충격이 일기도 했다. 하아아아. 츠가루는 재차 한숨을 내쉬었다. 츠가루의 영향을 받는 방은 그가 걱정 섞인 한숨을 내쉴 때 마다 파란색 연기를 뽀글뽀글 내뱉었다. 뽀글뽀글뽀글 비눗방울 같은 연기들이 퐁퐁 생겨나 츠가루의 방 안을 채워나갔다.

대체 무슨 일이야?”

츠가루 밖에 없는 방 안에 새로운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숙인 고개를 천천히 든 츠가루의 눈에 약간 짜증스러운 얼굴을 한 채 전송이 제대로 되었는지 상태창을 띄워 확인하는 데리오가 보였다. 데리오는 곧 그것을 지우고 공중에 동동 떠다니는 연기 하나를 두 손으로 양쪽에서 때렸다. 연기는 기체였기에 짝, 하고 데리오의 두 손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들렸고, 동시에 연기가 사라지며 팡, 했다. 방 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이 자신의 손 박수로 인해 사라졌다는 사실에 재미를 느낀 것인지 잠시 웃음을 터트리던 데리오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츠가루에게를 흘끗 바라보며 무안한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내 방까지 이 녀석들이 날아왔다구. 변명 같은 말을 작게 중얼거린 데리오가 분명 침울해진 것이 분명한 츠가루의 표정에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유를 물었고, 츠가루는 조잘조잘 그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츠가루의 말을 들을수록, 그의 앞에 의자를 만들어 앉은 데리오의 인상이 점점 찌푸려졌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자신의 형이 츠가루에게 삐져서 그를 쫓아버렸다는 것인데, 그것에 침울해진 츠가루도 딱히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것보다 더 어이가 없는 것은,

하아? 겨우 곰 인형이 터졌다고? 애냐!”

였던 모양이었다. 츠가루가 갑자기 터져나온 불만에 눈을 끔뻑끔뻑 하는 동안에 혼자서 바보 아니야 ? 그럴 수도 있는거잖아 ! 하며 혼자 씩씩대며 공중에다가 화를 내던 데리오가 자신의 흥분을 주체할 수 없는 듯 공중에 있는 연기 하나를 주먹으로 퍽 치며 터트려버렸다. 파란색의 연기가 눈앞에서 사라짐에 츠가루는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찔, 했다. 자신의 일도 아닌데 순수하게 분노를 터트리는 데리오가 무서워 츠가루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고, 그에 따라 츠가루의 방안을 날아다니던 연기도 하나 둘 씩 사라졌다. 더 이상 자신의 분노를 표출할 것이 사라지자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긁던 데리오가 결국에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사이케에게 다녀올게 ! 하고 소리치며 상태창을 띄워 위치를 입력하더니 냉큼 가버렸다. 멋대로 왔다가 멋대로 화를 내고 멋대로 사라져버린 데리오의 행동이 너무나도 순식간에 이루어져 츠가루는 그저 눈만 깜빡거렸다. 화날 내용이 있었나 ? 싶긴 했지만 데리오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조건 화부터 내는 타입이었기에 딱히 이상할 것은 없었다. 그저 데리오의 혼잣말 덕분에 떠들썩하다 한 순간에 조용해진 방 안이 어색할 뿐이었다. 잠시 눈을 깜박이던 츠가루는 곧 자신의 창을 켜 데리오가 간 곳을 검색해 보고는, 그 곳이 사이케의 방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그를 쫓아가기로 마음 먹었다. 이건 자신이 잘못한 것이었고, 사이케에게 사과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마음을 먹은 츠가루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잔뜩 삐져버린 사이케에게 어떻게 말을 꺼낼지 생각만 해도 앞이 깜깜했지만, 그래도 분명 사과하면 그가 받아줄 것이라 믿고 츠가루는 전송을 시작했다.

**

빠르게 사이케의 위치를 스캔하여 그가 있을 곳으로 이동해 온 데리오가 눈을 뜨기도 전에 느껴지는 은은한 향기에 고개를 갸웃, 했다. 사이케가 있는 방은 몇 번 들른 적 있었지만, 그가 있는 곳은 절대로 이러한 향기가 나지 않았다. 달콤한 냄새가 주로 났는데, 그것은 자신도 좋아하는 종류였기에 장난감만 가득한 사이케의 방에서 유일하게 마음에 드는 것이었다. 아무튼, 분명한 것은 여기는 분명 사이케의 방이 아니었다. 익숙한 향기. 눈을 뜬 데리오는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정원에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히비야의 방이었다. 아마 사이케가 이쪽으로 온 것이겠지. 은은한 홍차향기를 맡으며 데리오는 천천히 정원을 걷기 시작했다. 사이케의 하얗고 핑크한 코트라면 어디서든 눈에 띌 것임이 분명했다. 게다가 그는 자신과 같은 사이키델릭이 아니던가. 그리고, 곧 사이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딱 보기에도 어려워 보이는 두꺼운 책을 읽고 있는 히비야의 맞은편에 몸을 동그랗게 말고 앉아서, 케이크를 포크로 쿡쿡 쑤시고 있는 모양이 사이케쪽도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데리오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일부러 발소리를 숨기지 않고 내자 그들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쏟아졌지만, 데리오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사이케! 네가 애야!? 형이면 형답게 굴란 말이야!”

하지만하지만! 츠가루가 내 인형을! 내 인형으을!!”

징징거리지 마 ! 사이케의 울음 섞인 외침에 데리오가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조용한 방 안에 두 남자의 빽빽거리는 외침이 가득 떠돌았지만 히비야는 그들에게 시선하나 주지 않았다. 저 둘이 싸우는 건 일상다반사였고, 항상 싸우지만 형제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서로를 아낀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몇 분전 사이케가 울면서 자신의 방으로 쳐들어와 자신의 앞에 앉아 츠가루가 자신의 인형을 망가뜨렸는데 소리를 질러버렸다고 조잘조잘 얘기를 늘어놓았었다. 결국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신이 츠가루에게 그렇게 해버려서 그가 화가 났을까 무섭다는 내용이었는데, 가서 사과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하고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말해주자 사이케는 금세 시무룩해져 버렸다. 만약 그것이 됐다면 이렇게 자신에게 조잘거리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건 알고는 있었지만, 히비야는 딱히 시무룩해진 사이케를 달래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고, 책의 뒷내용이 궁금했기에 그것을 읽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이 이 책을 다 읽을 때 까지 사이케가 기운을 내지 못하면 도와줄 생각이었지만, 데리오의 등장이 좀 더 빨랐다. 저렇게 데리오와 투닥이다 보면 자연히 기분이 나아질 것이 분명했기에 히비야가 끼어들지 않았던 것이다. 어짜피 저 둘이 놀러오지 않으면 아무도 없는 이 방은 조용하기에, 가끔 이렇게 떠들썩한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바보냐! 인형 같은 건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잖아!”

몰라! 그건 소중한 사람한테 받은 거란 말이야!”

둘의 끝도 없는 논쟁 -그저 소리 지르는 것이지만-을 보고 있던 히비야가 결국 안 되겠다고 판단한 것인지 읽고 있던 책을 탁, 소리 나게 덮고, 일단 시비를 걸기 위해 온 데리오를 진정시키기 위해 말을 꺼내려 그를 바라본 순간, 히비야의 시선에 무언가 이상한 것이 걸렸다. 데리오의 옷은, 비록 약간의 핑크색으로 칠해진 부분이 있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하얀색이었는데, 그의 너머에 무언가 다른 색이 끼어있었다. 그것에 의구심을 느낀 히비야가 눈을 깜박이며 데리오의 뒤를 보았고, 히비야가 책을 덮는 소리에 잠시 그의 쪽으로 신경을 쏟던 두 어린이는 그가 자신들의 쪽이 아닌 뒤를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다. 여섯 개의 눈이 향한 곳에는, 츠가루가 서 있었다. 데리오 혼자만 온 줄 알았는데 갑자기 츠가루까지 자신의 앞에 나타남에 사이케는 놀란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에, , 하는 짧은 소리를 내었다. 츠가루는 자신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는 사이케와 데리오를 번갈아 보더니 눈을 잠시 감았다. 그의 뒤에서 알 수 없는 오오라가 짙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기에 두 어린아이는 영문도 모르고 츠가루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보다 소중한 사람이 있단 말이죠."

뜬금없이 츠가루가 낮게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아무리 온화한 츠가루라고 할지라도 본판은 시즈오였기에 목소리를 내리까니 온 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무서워졌다. 그의 말에 사이케와 데리오는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찔, 했다. 사이케는 자신이 무언가 말실수를 해버렸다는 것을 깨닫고 움찔거린 것이었지만, 데리오는 자신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겁을 먹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사실상 데리오가 겁을 먹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지만, 굳이 따지자면 사이케의 옆이라 츠가루의 화가 영향을 미치는 범위 안에 있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알 리가 없는 데리오는 그저 왜 자신이 이런 상황에 놓여야 하는 것인지 (데리오의 기준에서) 가장 만만한 사이케에게 윽박이라도 지르며 물어보고 싶은 기분이었다. 감고 있던 츠가루의 눈이 천천히 뜨여졌고,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츠가루의 날카롭게 깎인 눈동자가 드러났다. 언제나 고요하던 푸른 눈동자가 날이 선 칼로 자른 듯 세워지자, 분명 시즈오와, 그리고 자신과 같은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더욱 더 무서워 보이는 것이 데리오는 너무 억울하여 울고 싶어졌다.

알았어요.”

츠가루의 말은 고드름같이 얼어서 뚝뚝 떨어졌다. 말을 마치자마자 츠가루는 몸을 획 돌려 걸어 나갔고, 하오리의 푸른 잔상이 눈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이동해버렸다. 깜짝 놀란 사이케가 그를 잡으려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손을 뻗었지만, 그의 손에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으아앙, 하고 일부러 낸 듯한 울음소리를 지른 사이케가 발을 동동 구르며 몸을 이동시켰고, 그것을 보고 있던 데리오도 그들을 따르기 위해 발을 옮겼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그를 붙잡는 손길만 없었어도 그것은 실현되었을 것이다. 갑자기 자신의 손목을 누군가가 붙잡는 바람에 무게중심이 뒤로 쏠린 데리오가 뒤로 휘청, 하는 동시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의 손목에 보드랍게 닿아오는 면의 느낌은 분명 히비야였고, 역시나 그 생각은 맞았다. 쫓아갈 필요 없습니다. 조용히 말을 건내며 히비야는 호박색 눈동자를 살짝 휘어 웃었다. 그의 예쁜 웃음에 데리오는 순간 덜컹, 해버린 심장을 부여잡고 간신히 그의 손길을 뿌리치며 얌전히 방금까지 사이케가 앉아있던 의자에 천천히 앉았다. , 그런가. 그의 말이 붉어서 히비야는 작게 웃었다.

츠가루는 바깥으로 나간 것이니, 육비나 이자야 님께서 어떻게는 해주겠지요.”

히비야의 점잖은 말에 데리오는 짧게 답하며 두 손을 가지런히 무릎 위에 모은 채로 시선을 아래로 깔아 사이케가 잔뜩 헤집어 놓은 케이크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더 이상 케이크라고 칭할 수 없게 되어버린 물체를 복구시켜 원상태로 만든 데리오가 그제서 무언가를 깨닫고는 아, 했다. , 하고 고개를 든 데리오의 시선이, 그의 행동을 조용히 바라보던 히비야와 마주쳤다. 데리오가 깨달은 것을 히비야 역시 알았는지 눈동자가 조금 동그랬다. 그 둘은, 정말 바보같은 싸움을 하고 있었다.

**

" 그거, 복구하면 되잖아."

그리고, 그것을 츠가루가 알아 챈 것은 조금 시간이 지난 다음이었다. 홧김에 밖으로 나와버린 츠가루가 허공을 향해 혼자 투덜댔고, 갑자기 옆에서 무슨 일이냐고 물어오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 그 목소리의 주인을 찾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았고, 아무런 인기척도 없이 자신의 옆 책상에서 자신에게 시선 하나 주지 않은 채로 노트북에 열중하고 있는 육비를 발견했다. 상대가 누구가 되었건 지금 자신은 무척이나 답답한 상태였고, 털어놓을 상대가 필요했기에 츠가루는 따각따각 화난 발걸음을 숨기지 않으며 그에게 다가가 자신의 심정을 얘기했다. 일하고 있는 노트북에 집중하면서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육비가 처음으로 꺼낸 말은 저것이었다. 지금까지 전혀 생각도 못하고 있었던 부분을, 자신의 말을 듣자마자 아무렇지도 않게 찔러오는 육비의 말에 츠가루는 아, 하고 바보 같은 짧은 탄성을 내질렀다. 처음에 그렇게 되자마자 복구를 하면 됐을 텐데.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데리오, 그리고 화가 나면 주체를 못하는 시즈오와는 달리 힘으로 실수를 하여 물건을 부수는 일이 별로 없었던 츠가루는 복구라는 기능 자체를 거의 쓰지 않았고, 그렇기에 그것이 필요한 순간에 떠올리지 못했던 것이었다. 사이케로서도, 안의 물건들을 부술 정도로 큰 힘을 쓰지 않기 때문에 기억하고 있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자신들이 방금 한 싸움은 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는 뜻이라서, 츠가루는 갑자기 머리가 아파와 손을 들어 미간을 꾹꾹 눌렀다.

그러나 자신이 이쪽으로 온 것은 다른 이유였다. 자신이 사이케를 피해서 이쪽으로 온 것은 그것이 아니었으니, 그건 그거였고 이건 이거다. 사이케가 분명 누군가 소중한 사람에게 받은 것이라고 했었다. 자신은 사이케에게 곰 인형을 준 적이 없다. 다시 말해서,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받은 것이라는 건데, 츠가루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당연하게도 그와 사귀고 있는 사이케였기에, 사이케도 그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순간 그의 옆에 있는 데리오가 준 것일까? 하고 생각을 했지만 아무리 데리오라고 할지라도 사이케의 가장 소중한 사람의 자리에 그가 위치하여 있다면 그를 질투하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딱히 사이케가 자신만을 바라보고 사랑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그렇지 않는다면 상처받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츠가루는 낑낑대는 강아지 마냥 고개를 푹 숙이고 중얼거리듯 육비에게 말을 걸었다. 육비는 여전히 그를 신경도 쓰지 않을 채 노트북만 바라보고 있었다.

사이케에게도 소중한 사람이 있을 텐데.. 제가 경솔했던 것 같아요.”

츠가루는 감정에 복받쳐 사이케에게 화를 내고 만 자신이 바보 같았기에, 자신의 경솔했던 행동을 탓하며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한순간 어색해져버린 방 안에는 육비의 타자 소리만이 울렸다. 그리고 그것이 멎는 순간, 육비의 것으로 추정되는 한숨소리가 터져나와 츠가루는 자신도 모르게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자신의 쪽으로 고개를 돌린 육비의 붉은 눈이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자야와 같지만, 그것이 자아내는 분위기만은 그것과 달랐기에 츠가루는 그를 바라보며 눈을 깜박였다. 바보같이 여기서 침울해 하지마, 하고 차갑게 내뱉은 육비가 천천히 일어나 츠가루에게 다가왔다.

까지 쓰다가 육비츠가가 될 것 같아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손을 못대겠어요...ㅜ.ㅜ

으아아앙, 츠가루 밉다고 해서 미안해! 사이케는 츠가루가 너무너무 좋은걸!"

이자야도 정말정말 좋아하지만, 츠가루도 정말정말 이~~~따만큼 좋아!”

이케이케해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원고였습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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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리쿠
2013. 1. 17. 01:59

조용한 집 안을 울리는 네 번의 기계음 소리가 끝난 후에야 열린 문의 바깥에는 이 집의 주인이 서있었다. 다녀왔어, 하고 끊어진 기계음 소리가 아쉬웠단 듯이 바로 딸려 들어오는 목소리는 약간의 피곤기를 담고 있었다. 바깥은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저녁무렵 이었다. 아침. 언제나 처럼 울린 알람에 작은 짜증을 부리며 일어난 이자야가 그것을 끄고 사무실에 가기 위해 일어났을 때, 그것을 막기 위해 자신의 허리를 끌어안아오는 단단한 팔이 있었다. 자연스레 감겨온 팔의 주인은 당연하게도 자신의 동거인, 헤이와지마 시즈오. 한숨을 내쉬며 그것을 풀어내려 끙끙거렸지만 시즈오는 그것을 조금도 들어주지 않았다. 좀 더 자라, 이자야. 하고 잠에 덜 깬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자야, 하고 자신의 이름을 불러오는 목소리는 언제나 들어도 좋았지만, 이렇게 잠에 덜 깨어 허스키한 목소리가 평소보다 조금 더 갈라졌을 때의 그것은 특히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었다. 이 목소리에는 질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렇게 허리를 꽉 잡고 놔주지 않지 않는가.

이자야는 하는 수 없다는 듯이 다시 자리에 누웠다. 잠시 손에 닿은 시즈오의 팔은 외부의 차가운 공기에 의해 차갑게 식어있었지만, 자신이 누움으로써 자연스레 닿게 된 시즈오의 가슴은 평소와 같이 따듯했다. 시즈오의 옆에 누우면 키가 작은 자신은 자연스레 안기는 꼴이 되어 버린다. 어쩔 수 없었지만 가끔은 억울하기도 했다. 키가 작아 시즈오를 올려다 봐야한다던가, 누울 때에면 이렇게 안겨버린 다는 것이. 그래도 차가운 자신과는 다르게 따듯한 시즈오의 몸은 항상 기분이 좋았기에 이자야는 조금 더 시즈오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온 몸 가득 닿아오는 시즈오의 따듯한 기운이 나른하게 잠을 몰고왔다. 어울리지 않게 자신에게 잠을 강요하던 시즈오는 이미 세상 모르게 잠이 들어 있었다. 이자야는 그의 자는 얼굴을 조금 보다가, 곧 잠이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어났을 때에는 어느새 정오가 지나가고 있었고, 자신을 안고 잠이 든 시즈오는 침대 끝에 가 있었다. 아직도 곤히 잠이 들어있는 그를 굴려 침대 가운데에 데려다놓고, 그제서야 이자야는 씻고 집을 나설 수 있었다. 바른생활을 하는 자신의 동거인 덕분에 항상 챙겨먹을 수 밖에 없던 아침을 굶은 점심은 동거 전보다 훨씬 더 허기가 졌기에 집 앞 자주 가던 커피숍에서 커피 한 잔을 샀다. 빈 속에 마시는 커피는 몸에 좋지 않다고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어왔지만, 입 맛이 없는 아침에 간단히 챙겨주던 동거인의 아침을 제외하고 먹을 수 있는 것은 이것밖에 없었다.

예정은 아침에 나가 3시 이전에 귀가하는 것이었지만, 조금 엇나가 정오가 지난 다음에야 나갈 수 있었기에, 이렇게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늦어지고 만 것이었다. 밖에 나가면 밥이란 것을 챙기는 습관이 없었기 때문에 내내 먹은 것은 집을 나서면서 마셨던 커피와 사무실에서 나미에씨가 챙겨준 커피 몇 잔이 다였다. 집에 돌아 왔을 때에는 배가 조금 고팠다. 휴일이었기에 언제나처럼 청소같은 집안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을 시즈오가 지금 쯤이면 저녁을 준비하고 있을거라 생각하고 거실로 발을 옮긴 이자야는 맥이 탁 빠지고 말았다. 어쩐지 집 안에 들어왔을 때 조용하다 했다.

시즈오는 소파에 기대어 자고 있었다.

소파의 등받이는 시즈오의 앉은 키보다 훨씬 작았기에 고개를 불편하게 기울이고 있는 시즈오의 자는 얼굴은 평소보다 맹해보였다. 가까이 와야 들릴만큼의 작은 볼륨의 티비가 재미없는 광고를 지껄이고 있었다. 바닥은 자신이 나갈 때 보다 깨끗했으며 흘끗 쳐다본 부엌의 싱크대도 역시 약간의 물기가 남아있기는 했지만 깨끗했다. 아마 비몽사몽 일어나 밥을 먹고 평소 휴일에 하는 것 처럼 청소과 설거지를 끝낸 후 간단한 후식을 먹으며 티비를 보다 잠이 들었으리라. 그 증거로 시즈오가 잠들어 있는 소파의 앞에 있는 탁자에 귤 껍질 몇개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패턴이었다. 잠시 피식, 하고 웃음을 흘린 이자야가 시즈오에게 다가가 두 뺨을 손으로 감싸 고개를 바로 해주었다. 시즈오는 한 번 잠이 들면 왠만해선 절대로 깨지 않는 타입이었기에 아침마다 그를 깨우기 위해 이자야는 항상 고생을 하곤 했다. 그렇기에 원래 차갑긴 하지만 밖에 나갔다 왔기에 더욱 더 차가워진 이자야의 손이 뺨에 닿아도 약간 인상을 찌푸렸을 뿐 조금도 깨지 못한 것이겠지.

" 바보같은 얼굴."

하고 약간의 비웃음 섞인 말을 내밷은 이자야가, 그의 말에 따르면 바보같은 얼굴을 하고 자고 있는 시즈오를 바라보았다. 두 손에 닿아있는 뺨은 무척 따듯했다. 오늘 하루 종일 잔 덕분인지 부드러운 피부가 손끝에 느껴졌다. 이거 꽤나 잘생긴 얼굴이잖아? 항상 드는 생각을 다시 한 번 떠올리며 이자야는 시즈오의 고개를 뒤로 젖힌 후 자신의 고개를 숙여 그의 입술에 살짝 자신의 그것을 갖다대었다. 따듯한 기운이 물씬 느껴졌다. 고개를 살짝 돌리면 서로의 입술이 가득 닿는 느낌이 좋았다. 자고 있는 상대에게 키스하는 것은 익숙했다. 아침마다 잠에서 깨지 못해 끙끙대는 남자를 몇번이고 키스로 깨워주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때에는 자신이 키스받는 것도 모른채 자기도 했고, 어느 때에는 잠결에 키스를 받아주기도 했다. 둘 중 어느 것이었던 완전히 깨고 나서 자신과 키스한 사실을 눈꼽만큼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똑같지만. -심지어 말해줘도 믿지 않으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숙인 고개가 조금 아파올 때까지 입을 맞추고 있던 이자야가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오늘도 하루 종일 잤을 주제에 뭐가 그렇게 졸렸던 것인지 시즈오는 여전히 눈치 하나 못채고 자고 있었다. 시즈오의 자는 얼굴은 사람을 나른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편안한 사람처럼 표정을 풀고 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곱게 닫혀진 눈동자 사이의 평평한 미간이 그렇게 나른할 수가 없었다. 이자야는 속 아래서부터 천천히 밀려오는 하품을 막을 수가 없었다. 시즈오에게 끌어안긴 채 정오까지 잤음에도 불구하고, 원래 잠을 별로 자지 않는 사람을 이렇게 졸립게 만드는 놀라운 능력이었다. 소파에서 자고 있는 시즈오를 침대까지 옮긴 후 옆에서 잘까, 하고 잠시 생각하며 잡고있던 시즈오의 볼을 놓은 이자야는, 기대고 있을 곳을 잃은 시즈오의 고개가 잠들기 불편하게 기울어지는 것을 보고는, …그냥 시즈오의 옆에 앉기로 했다.

시즈오와 약간의 거리를 둔 옆에 앉은 이자야는 불편하게 자고 있는 시즈오의 고개를 끌어 자신의 허벅지 위에 올려두었다. 자연히 따라오는 몸뚱아리가 소파 위로 엎어졌다. 한번 잠들면 세상 모르게 잠드는 남자였기에, 이정도로는 당연하게도 깨지 않았다. 이자야는 여전히 평온한 얼굴로 자고 있는 시즈오의 자신의 허벅지 위해 이리저리 흩어진 금발의 사이에 손가락을 넣어 손바닥 가득 느껴지는 따스한 기운을 느끼며 천천히 쓰다듬었다. 동시에 쏟아져오는 잠을 이기고 싶지 않아졌다. 여전히 할 일은 남아있었지만, 이대로 잠든 다음에 해도 상관 없을 것 같았다. 이자야는 그대로 조용한 집안에서 울려퍼지는 자신의 것이 아닌 숨소리를 자장가 삼아 눈을 감았다. 시즈오와 닿아있는 손바닥, 그리고 허벅지서부터 천천히 시즈의 잠이 전염되어 오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오늘 정도는 잠으로 보내도 괜찮겠지.

…시즈도 있고.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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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리쿠
2013. 1. 17. 01:58

소리 없이 열린 문의 안쪽은 깜깜했다. 아주 작은 조명에 의지하고 있는 어두운 복도가 그나마 방 안보다는 밝았으므로 회색빛이 방 안으로 길게 늘어졌다. 조용히 안으로 들어온 청년은 약간의 현기증을 느끼며 밖은 햇빛이 밝은 낮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점의 불빛 하나조차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이 커튼까지 굳게 치고 있는 방 안의 주인을 향하여 다가갔다. 바닥에 잘 끌리는 슬리퍼를 신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리 없이 침대 가까이 다가간 청년이 조심스럽게 커튼을 걷었다. 한 번에 와르르 쏟아지는 햇빛이 청년의 까만 머리와 침대에 누워 있는 이를 비추었다. 갑자기 콕콕 찔러대는 햇빛에 눈이 부셔 청년은 손으로 눈을 가렸다. 빛에 적응하기 위해 로돕신이 분해되는 짧은 시간동안 시야를 가리던 손을 바라보던 청년은 시선을 옆으로 옮겨 이불 속에서 얌전히 자고 있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하얀 베게 위에 이리저리 흐트러진 금발이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빛에 의해 반짝반짝했다. 잠시 창백한 그의 얼굴을 바라보던 청년은 조심스럽게 그의 뺨을 매만졌다. 푸석해진 피부가 손가락 끝에 닿아왔다. 한없이 거칠어진 피부가 안쓰럽기까지 했지만 청년의 손길은 마치 아주 사랑스러운 아기를 쓰다듬는 그것과 같았다. 몇 번을 쓰다듬어도 미동조차 없는 얼굴을 감싸듯 따듯한 눈길로 바라본 청년의 입술이 살짝 열렸다.

“ 데리오.”

청년의 깔끔한 얼굴만큼 미성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를 들은 것인지 얌전히 감기어 있던 눈꺼풀이 조금 떨렸다. 옆모습이라 더욱 더 도드라져 보이는 속눈썹이 살며시, 그리고 천천히 들어 올려졌다. 한순간 거칠게 들어오는 반짝이는 햇빛에 적응이 되지 않아 눈이 몇 번이고 깜박깜박했다. 분홍색의 예쁜 눈동자가 눈꺼풀에 가리어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했다. 햇빛이 눈동자의 망막에 반사되어 핑크색으로 반짝반짝했다. 초점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던 눈동자가 조금 시간이 흐른 뒤에야 옆에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를 향해 데굴데굴 굴러왔다. 얌전히 그가 자신을 보기만을 기다리던 청년의 말끔한 얼굴이 눈동자에 비추어졌다가 곧 사라졌다. 금방 눈을 돌려버린 것이었다. 눈은 침대 옆에 있는 탁자를 향했다. 곧 이불 속에 있던 비쩍 마르고 이리저리 주사바늘 자국과 멍으로 어지러운 팔이 탁자위의 깨진 유리컵을 향해 뻗어졌다. 옆에 있는 사람을 인식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그를 상관하지 않는 것 같았다. 새하얀 손가락이 유리컵의 깨어진 부분을 더듬더니 곧 그것을 들어 올렸고, 깨진 부분 사이로 흐른 물이 손가락을 타고 흘렀다. 데리오라고 불린 남자의 물기가 없어 잔뜩 말라 갈라진 입술이 찢어지듯 벌어졌다.

“여기는 무슨 일이야 ? 이자야.”

잔뜩 갈라진 목소리는 귀찮음을 가득 담고 있었다. 유리컵 속을 부유하는 희뿌연 가루들을 응시한 청년, 이자야의 입술이 고운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곧 데리오는 몸을 일으키며 자신이 잡은 유리컵 속의 물을 단숨에 마사며 인상을 있는 힘껏 찌푸렸다. 어디가 불편한 것인지 찌푸려진 인상이 더욱 더 구겨졌다. 데리오가 괴로워 보이는 얼굴을 하고 마른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는 것과 동시에 힘이 들어간 손 안에 있던 유리컵이 쨍 하고 다시 한 번 깨져 산산조각이 났다. 그 파편들이 손 안에 있었지만 데리오는 상관하지 아니하고 손을 꽈악, 쥐었다. 새하얗게 질린 손 안쪽의 유리가 그의 여린 살 속으로 파고들어 결국엔 피를 보았다. 경련하듯 떨리는 데리오의 주먹의 움직임이 잦아들 무렵, 이자야는 한숨하며 그가 있는 침대의 한쪽 끝에 앉았다. 한순간에 체중이 쏠린 침대가 크게 들썩였다. 바르르, 떨리는 주먹이 다급하게 탁자 위를 더듬었다. 그곳에 시선조차 주지 못할 만큼 괴로운 것인지 데리오는 쳐다보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가 무엇을 찾고 있는지는 알고 있었기에 이자야는 손을 뻗어 유리병 하나를 탁자 위에서 미친 듯이 움직이는 손에 쥐어주었다. 하얀 가루가 가득 들어있는 유리병이 자신의 손에 쥐어지자 데리오는 그것을 급하게 자신의 쪽으로 끌어들이고는 입구를 막고 있는 마개를 들어내고는 병의 아가리를 자신의 입에 들이대었다. 중력에 따라 밑으로 쏟아지는 가루들이 데리오의 입 안으로 쏟아졌다. 약간 버거울 만큼의 양을 자신의 입에 털어 넣은 데리오가 그제서 병을 다시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공기 중에 흩어진 가벼운 하얀 가루들이 데리오 앞을 하염없이 부유했다. 햇빛 때문에 더 도드라져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방금 전의 데리오의 행동은 분명 보통사람이 할 말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을 잠시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던 이자야가, 자신의 입 안에 있는 것을 섭취하느라 정신없는 데리오를 대신하여 병의 마개를 닫아주었다. 뻑뻑한 마개를 닫는 동안 데리오에게 가까이 다가간 이자야는 처음 들어왔을 때 보다 약간 심해진 두통을 느꼈다. 이 방 전체에 이 가루가 퍼져있음이 틀림없어 보였다. 그렇기에 들어오자마자 현기증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겠지. 계속해서 경련하던 데리오의 주먹은 그가 입을 우물거림에 따라 잦아들고 있었다.

마약중독. 그것 외에는 그의 행동을 정의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 내가 왜 왔는지는 상관없잖아 ?”

“ …그렇네. 히비야는 ?”

가루가 든 병을 들고 있던 이자야의 손이 움찔, 하고 떨렸다. 이름에 반응한 것이 틀림없어 보이기에, 그것을 얌전히 보고 있던 데리오가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았다. 얼굴 곳곳에 퍼져있어야 하는 모세혈관에 피가 전혀 흐르지 않는 것처럼 새하얗게 질려있는, 창백하다고 표현해야 맞을 듯 한 얼굴에 영양이 제대로 섭취되지 않아 가는 속눈썹이 도드라졌다. 마른 입술을 축이기 위해 조금 핥던 데리오가, 입술과 마찬가지로 물기가 거의 없는 혀 탓에 별로 소용없는 행동이었음을 깨닫고 그만두었다. 히비야는 역시, 감옥에 있는 거지 ? 눈을 감은채로 데리오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의 이름을 말하는 것만으로 감정이 격해지는지 데리오의 가지런히 놓여있던 손바닥이 침대시트를 꽈악, 잡았다. 짜증난다는 듯이 얼굴을 잔뜩 찌푸린 데리오가 대답을 바라며 이자야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의 시선을 맞던 이자야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들고 있던 병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들어왔을 때와는 다르게 발소리를 조금도 숨기지 않으며 밖으로 나가던 이자야가 뒤를 돌아보며 그를 향해 말을 던졌다.

“ 먹을 만한 걸 가져올 테니 얌전히 있어.”

데리오는 자신의 질문에 답 없이 나가버린 이자야의 차가운 뒷모습을 바라보다 곧 시선을 돌려버렸다.

 

 

 

 

 

원고중 일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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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비츠키] 어딘가 불안한 발걸음이 하나  (0) 2013.01.17
Posted by 하리쿠
2013. 1. 17. 01:57

눈은 오늘따라 무거웠다. 잘 뜨여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뜨고 나서, 나른한 눈꺼풀을 어떻게든 하기 위해 손을 들어 눈을 매만졌을 때에야 손의 뭉툭함이 느껴졌고, 그제서야 이자야쿠마는 어제 자신이 곰이 되었다는 것을 눈치챘다. 손가락이 없어서 보드라운 천의 느낌만이 있는 손으로 눈을 문질렀다. 꾹꾹 누르면서 잠을 깨고 싶었지만 솜이 든 손은 자신의 마음대로 무게가 실어지지 않았기에 불가능했다. 몇 번 눈 비비는 것을 시도하던 이자야쿠마는 곧 그것이 시간낭비, 힘낭비라는 것을 깨닫고 그만두었다. 몸을 일으키려고 시도하였으나 곧 자신의 허리-이 통통한 것을 허리라고 표현해야 하는 것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부근 압박감이 느껴졌다. 분명 어제 잘 때에는 시즈오쿠마쪽이 먼저 잠에 들어, 솜으로 되어있는 자신들이 덮기에는 두꺼운 이불 대신 얇은 천을 둘둘 감고 자는 따듯한 시즈오쿠마를 자신이 안고 잤는데, 어느새 자신들의 자세는 반전되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시즈오가 자신을 끌어안고 있는 것은 자주 있던 일이었기 때문에 별 감흥은 없었다. 항상 춥다고 투덜대면서도 시즈오는 항상 자신을 끌어안고 자고는 했다. 시즈오는 따듯했기에 끌어안으면 잠이 잘 왔지만, 왜 시즈오가 자신을 안고 자는지는 모를 노릇이었다.

아무튼, 오늘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손을 치우고 일어나 욕실로 건너가 세수를 했겠지만, 오늘은 그럴 기분이 들지 않았다. 몸은 솜밖에 들지 않아 가벼웠기에 손은 금방 치울 수 있었지만, 나른했다.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어제 처음 곰이 되었을 때, 자신과 시즈오가 데굴데굴 구르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했는지 생각해보았다. 평소라면 생각도 못할 행동이었지만, 곰이 되어서 인지는 몰라도 그 때에는 그것이 마냥 좋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은 겨우 7시밖에 되지 않았다. 잠시 눈을 굴려 시간을 확인한 이자야는 다시 눈을 감고 자신을 안고 있는 시즈오쿠마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몸 안에서 어제 먹은 핫케익과 생크림의 향기가 났다. 그 달콤한 향기를 맡으며, 이자야쿠마는 금방 잠에 빠져들었다. 폭신폭신한 구름속에 파고들어 둥둥 날고있는 기분이었다.


이자야쿠마가 다시 눈을 뜬 것은 조금 더 시간이 흐르고 난 뒤였다. 햇빛이 잘 드는 쪽을 선택했기에, 침실안에는 길게 햇빛이 스며들어 있었다. 솜이 그것에 의해 데워진 것일까, 몸이 답지 않게 따듯했다. 낯선느낌이 드는것이, 이 몸에는 쉽게 적응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물론, 익숙해 지면 안되겠지만. 이자야쿠마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자신의 허리를 꽉 붙들고 있던 시즈오쿠마는 어느새 데굴데굴 굴러서 저 침대 끝으로 가있었다. 건장한 남정네 둘이서 자던 침대였다. 특대인형도 아니고, 작은 인형 둘이서 자기에는 넓은 공간이었다. 어제 했던 것 처럼 이 위에서 데굴데굴 구르고 싶었지만 관두었다. 다시 손을 들어 눈을 비비었다. 천의 보드라운 느낌이 여전히 기분좋았다. 이자야쿠마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시즈오쿠마를 데굴데굴 굴려 침대의 가운데로 옮겨놓은 다음, 가장자리로 와서 바닥을 향해 뛰어내렸다. 콩. 의외로 귀여운 소리가 났다

평소에는 가까운 노선이었지만, 몸이 인형만큼 작아진 지금은 침대에서 문까지 가는 데에만 오랜 시간이 걸렸다. 발바닥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뾱, 뾱, 하고 울었다. 도대체 이 몸은 어떤 구조로 되어있는거지 ? 이자야쿠마로써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열심히 발을 움직인 결과 문이 있는 곳 까지 다다른 이자야쿠마는 또 다른 난관에 부딛쳤다. 어째서인지, 항상 열려있던 문이 오늘따라 닫혀있었던 것이다. 사는 사람이라곤 자신과 시즈오밖에 없고, 그렇기에 딱히 방문을 닫는데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데 오늘따라 왜 굳게 닫혀있는지 모를 노릇이었다. 입술을 한 번 삐죽인 이자야쿠마는 -항상 삐죽거리는 입술이긴 했지만- 문고리를 잡기 위해 손을 위로 뻗었다. 아슬아슬하게 문고리 쇠의 아랫부분이 손끝에 스쳤다. 이 정도로는 안닿나 ? 하는 수 없이 꽁지발을 들어 두 손으로 문고리를 움켜쥔 이자야쿠마가 간신히 그것을 돌렸고, 의외로 가볍게 돌아간 문고리는 금방 문이 열릴 수 있게 만들어주었고, 문은 생각보다 매끄럽게 열려 자신의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콩.

이자야쿠마는 문에 밀려 넘어져 엉덩방아를 찢고 말았다. 가벼운 솜이었기에 바닥에 닿은 몸은 공중을 향해 튀어올라 한참을 콩콩거렸다. 들썩이던 몸이 잦아들었을 때, 왠지 모르게 위아래로 튀어오르던 방금전이 재미있었던 이자야쿠마는 몇 번 더 몸을 위아래로 들썩였다. 몸 안에서 솜이 움직였다. 썩 좋은 느낌은 아니었기에 곧 그만두었다. 이제 일어나서 욕실을 향해 가야하는데 영 움직이기가 귀찮았다. 곰이 된 이후로부터 몸이 나른한게…, 왠지 굴러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기에, 이자야쿠마는 오늘도 구르기로 했다. 굴러서 욕실에 도착을 한다면 구르고 싶은 자신의 마음도, 욕실에 도착한다는 자신의 목적도 해결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자야쿠마는 구르기로 했다. 몸에 힘을 꽉 주고 데굴, 하고 굴렸다.

데굴데굴데굴데굴('')( :)(..)(: )...

열심히 몸을 굴렸것만 눈 앞의 풍경은 별로 바뀌지 않았다. 이자야쿠마는 다시 한 번 몸을 더 굴리기로 했다.

데구르르르...('')( :)(..)(: )('')( :)(..)(: )

구르는 동안 천장을 보았는데, 왠지 모르게 똑같은 무늬가 반복되었다. 그제서야 이자야쿠마는 자신이 똑같은 자리를 빙글빙글 돌고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곰이 되니 이런 것 조차 둔해진 모양이었다. 자신이 생산성없이 그저 제자리를 데굴데굴 구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챈 이자야쿠마는, 조금 더 제자리를 구르기로 했다.

데굴데굴 데구르르('')( :)(..)(: )('')( :)(..)(: )('')( :)(..)(: )...


아, 재미있었다. 아무 의미 없이 제자리를 도는 것을 마친 이자야쿠마는 여전히 일어날 생각은 눈꼽만큼도 하지 않고, 아까 자신이 목표한 대로 욕실을 향해 몸을 굴렸다. 조금 아픈 문턱을 넘고 거실을 데굴데굴 굴러 욕실 앞에 다다른 이자야쿠마는 천천히, 아주아주 천천히,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으로 몸을 일으켜 욕실안으로 기어가는 듯이 들어갔다. 키가 닿지 않아, 곰이 되기 전에 미리 가져다 놓은 의자 위로 올라가 거울을 보았다. 새까만 구슬같은 눈과 삼자형의 입모양-물론 한 쪽이 조금 올라가긴 했지만.-, 새까만 머리 위에 동그랗게 나있는 귀까지. 손을 들어 귀를 만져보고 싶었지만 머리가 커서 귀까지 닿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이따가 시즈오쿠마의 귀라도 만져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이자야쿠마는 수도꼭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앗, 그러고보니. …인형인데 물이 닿아도 되나 ? 아주 간단한 의문이 떠올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물이 닿으면 솜에 금방 흡수되어 몸이 무겁고 축축해 질 것 같았다. 이자야쿠마는 거울을 보고 눈꼽만 대충 떼고는 의자에서 뛰어내렸다. 여전히 콩, 했다.

뾱뾱뾱뾱.

천천히 걸어서 거실로 나온 이자야쿠마는 약간의 허기짐을 느끼고 냉장고를 향해 다가갔다. 커다란 냉장고의 손잡이를 두 손으로 잡고 열었고, 여전히 익숙하지 않음에 엉덩방아를 콩, 했다. 엉덩이쪽에는 특히나 솜이 많아서 전혀 아프지는 않았다. 넘어진 몸을 일으켜 냉장고 안을 살피니, 단것을 좋아하는 시즈오 때문에 항상 사다놓는 푸딩이 있었다. 설탕덩어리인 저것을 맛있게 먹는 시즈오가 항상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곰이 되고 나니 단것이 끌렸다. 그래서인지 어제는 시즈오쿠마가 한 산더미같은 핫케이크를 다 먹었었다. 이자야쿠마는 푸딩을 집었다. 냉장고 문을 닫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푸딩이 담겨있는 곽의 껍질을 깠다. 달콤한 향기가 울컥 올라왔다. 기분이 좋아졌다. 시즈오는 가끔 접시에 그것을 엎어놓고 말랑말랑한 푸딩의 느낌을 즐기며 먹곤했지만, 그렇게까지 할 기분은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귀찮았다. 숟가락을 가지러 가기도 귀찮았다. 이자야쿠마는 무작정 푸딩을 향해 입을 돌진시켰다. 입술에 닿아오는 푸딩은 말랑말랑했고 보들보들했고 달콤했다. 이자야쿠마는 그자리에서 숟가락도 없이 푸딩 하나를 먹어치웠다. 그럼에도 배는 차지않아서, 오히려 조금 들어온 단 것에 자극을 받았는지 단 것을 더 먹고싶다고 난리를 쳤다. 이자야쿠마는 하는 수 없이 시즈오쿠마를 깨우기로 했다. 자신은 요리를 할 줄 모르니 당연했다. 손에 들린 쓰래기를 대충 탁자, 는 손이 닿질 않아서 의자 위에 올려놓고는 이자야쿠마는 침실을 향해 갔다.

부엌에서 침대까지는 멀었다. 침대는 높았다. 두 손을 침대 위에 올린 다음 이불을 잡아 끙끙 기어오른 이자야쿠마는 시즈오쿠마를 향해 기어갔다. 시즈오쿠마는 여전히 세상모르게 자고있었다. 곰이 되자 더 잠이 많아지고 게을러진 것 같았다. 아직 겨울잠 잘 때는 아니라구, 시즈오쿠마. 이자야쿠마는 조심스레 시즈오쿠마를 살피었다. 갈색에 가까운 피부톤, 여전히 둘둘 말고있는 이불, 곱게 감기어진 눈. 여전히 바보같은 얼굴이었다.

" 하암…. /)ㅅ`"

시즈오쿠마의 얼굴을 살피던 도중, 이자야쿠마에게 하품이 튀어나왔다. 너무나도 곤히 자고있는 시즈오쿠마에게서 잠이 전염된 것 같았다.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이자야쿠마는 어느새 배고픔도 잊고 시즈오쿠마의 옆에 누웠다. 여전히 햇빛은 따듯했다. 몸은 노곤했다. 시즈오쿠마를 끌어안으면 따듯했다.

졸려…. 밥은 나중에 먹어야지. 구르는 것도 조금 더 있다가 해야겠어.

- fin.

 

Posted by 하리쿠
2013. 1. 17. 01:56

- 사이데리 / 사이츠가 '역' 이라는 것은 사이케가 공이라는 뜻입니다.

" 그러니까, 사이케형이.. 좋아."

데리오가 머쓱한듯 머리뒷편을 긁적이며 말을 꺼냈을 때, 츠가루는 솔직하게 말해서 정말 기뻤다. 주변인들보다 특히나 어른스럽던 츠가루로써는, 화도 잘내고 부끄러움도 잘 타는 데리오가 - 자신보다 어리기는 해도 - 너무나도 어린아이 같아 보였기에 데리오에게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걱정이 샘솟던 참에 데리오가 자신에게 그렇게 고백을 해와서, 츠가루는 그의 말에 그저 기쁘게 미소지을수 밖에 없었다. 그 상대가 남자건, 자신들의 본체가 너무너무 싫어하는 이자야씨의 모습을 하고있건 간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이해심이 많은 츠가루는 동성간의 사랑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조금의 반발심도 없었고, 자신도 정말 그 사람이 좋다면 상대가 남자건 여자건 신경쓰지 않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츠가루는 정말 진심에서 우러나온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 정말요 ? 축하해요, 데리오씨 !"

하얀 기모노를 입고있기에, 아무래도 하얀 피부가 눈에 띄는 츠가루가 파아란 눈동자를 예쁘게 휘며 말했다. 손을 들어 데리오의 머리를 조금 쓰다듬자, 자신이 게다를 신고 있다고는 해도 자신보다 키가 조금 더 큰 데리오가 고개를 약간 숙여가며 그것을 받았기에, 데리오가 겉으로는 까칠하고 신경질 적으로 보여도 이런것에서 볼 수 있듯 배려심 많다는것을 알고있는 츠가루는 그러한 작은 몸짓에 역시나 지어지는 미소를 숨길 수 없었다.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해 항상 화내고 있는것 같아 보여 마냥 어려보이고 어려보였던 데리오가, 이제는 이렇게 한 사람을 좋아하는 남자가 되어버리다니, 형으로써 한편은 조금 씁쓸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츠가루는 기쁜마음으로 데리오를 응원해주고 싶었다.

그랬기에 츠가루는 '제가 응원해 줄께요 !'하며 긴 소맷자락을 팔랑이며 주먹을 불끈, 쥐고 화이팅 ! 하는 제스츄어를 취했다. 바다처럼 푸른빛의 기모노가 눈앞에 살랑거려, 하얀 츠가루가 마치 고운 선을 띄고있는 기모노에 녹아든듯 보였기에 데리오는 자신과 똑같은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츠가루가 매우 예쁘고 신비롭게 보였다. 게다가 어린아이처럼 화이팅이라니. 동생인 자신에게도 존댓말을 쓰며 항상 반듯이 웃고있고, 바른 말투에 차분한 성격인 츠가루의 순수한 모습에, 데리오는 방금까지 고백때문에 약간 찡그리고 있던 인상을 곧게 펴며 츠가루와 같이 예쁘게 웃었다. 항상 날카롭게 깎여있던 분홍색 눈동자가 호를 그리며 휘어있는 모습은, 썩 보기 좋았다.

데리오가 돌아간 후, 츠가루는 자신이 존재하고있는 프로그램속에서 자신의 의지로 하얀색 의자를 만들어놓고 그것에 털썩 앉아서는, 조금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츠가루의 방은 그 주인의 성격을 닮아 새하얬다. 하얀 벽지에 바닥, 한구석에 놓여있는 새하얀 침대까지. 물론, 이불은 츠가루가 즐겨입는 기모노를 닮아 푸른색의 무늬가 방울방울 새겨져 있었지만, 그것은 바르게 개어있었으므로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언뜻보면 어딘가 불안한 환자의 방 같아 보일수도 있었지만, 그 안에 츠가루가 존재하고 있었음으로 그 방은 새하앴음에도 불구하고 생기넘쳤고, 텅 비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넓은 초원을 보는것같은 편안함을 주었다.

츠가루가 진지한 표정을 짓고있는 이유는 당연히 방금의 데리오 때문이었다. 응원해줄께요 ! 하고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사실 아직 자신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져본적이 없었고, 그렇기에 남을 좋아하는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했기에, 책으로 몇번 봐오고 몇번 상상은 해봤지만 아직도 두리뭉실한 그 감정을 파악하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는게 츠가루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만약 자신이라면 데리오가 좋아해준다는 것만으로도 기뻐서 똑같은 감정을 가져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나, 사이케는 자신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아무리 같은 프로그램이라도,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듯이 츠가루 또한 사이케의 마음을 알 수 없으므로, 사이케가 데리오를 어떻게 생각할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츠가루가 고민하고 있을무렵,

" 츠-으 가루우-!!"

하며, 갑자기 발랄한 목소리를 하며 뛰어들어 오는 사이케에 한참 어떻게 해야 둘을 엮어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사이케에게 데리오의 매력(?)을 알려줄 수 있을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던 츠가루가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새하얀 코트와 핫핑크색 헤드셋을 한 채로 방방 뛰고 있는 사이케가, 츠가루의 방에 들어오자마자 도도도, 뛰어 츠가루에게 안겼다. 순간 사이케의 품안에 가득 안겨버린 츠가루가 갑자기 눈에 한가득 들어오는 하얀색에 정신을 못차리며 허둥지둥 했다. 그러는 틈에 츠가루가 앉아있는 의자의 양 옆 약간 비어있는 곳에 자신의 무릎을 걸치고 자세를 잡은 사이케가 위에서 츠가루를 내려다보는듯한 포즈로 츠가루를 향해 예쁘게 웃어보였다. 항상 웃는얼굴이라 별로 달라질것은 없었지만.

" 사실 아까아까 왔는데, 데리랑 웃고있어서 못들어왔다구 ! 데리가 웃는얼굴 처음봐 !"

여전히 방방거리는 목소리로 빙글빙글 웃으며 떠들어대는 사이케가 여전히 약간 당황한 얼굴을 하고있는 츠가루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자신을 향하게 올렸다. 갑자기 뛰어든 사이케 때문이기도 했지만, 보고있었다는 사이케의 말에 혹시 처음 데리오가 고백한 순간부터 보고있던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더더욱 당황해있던 츠가루가 갑자기 자신의 고개를 올리는 사이케의 행동에 자신의 당황한 얼굴을 완전히 드러내보였다. 그러나 그러한 츠가루의 얼굴조차 뭐가 그리 좋은지 방긋방긋 웃던 사이케가 다시 입을 열고 조잘거렸다.

" 저기저기, 츠가루 ! 사이케, 좋아 ? 나나, 사실 오늘 히비- 에게 갔다왔는데 ! 그냥 고백하는게 좋다고 해서 ! 사이케는 츠가루가 너-무 너무 좋다구 !"

얼굴이 매우 가까워서, 가뜩이나 높고 큰 사이케의 목소리가 귀로 그대로 전해져들어와 쨍쨍하고 울렸지만, 츠가루는 그것에 조금의 불쾌함도 없이, 당황한 표정을 다시 정리하여 편안한 얼굴로 만들고는 사이케를 향해 웃었다. 나도, 사이케가 좋아요. 하고, 츠가루로써는 당연한 말을 하자, 사이케는 그것에 뭐가 불만인지 인상을 살짝 찡그리며 볼을 부풀렸다. 아니야, 아니야 ! 하며 아무래도 큰 목소리의 톤을 더더욱 높히며 부정하는 사이케가, 무엇이 잘못된것인지 잘 모르겠는 츠가루는 그저 고개를 갸웃, 할 뿐이었다. 정말 츠가루는 데리오와 사이케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을 좋아하고 있었기에, 자신의 말에는 조금의 거짓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부분에서 사이케가 삐져버린것인지 전혀 모르겠을 다름이었다.

" 틀려 ! 사이케는 정-말 정말 좋아한다구 !"

" 네 ? ...저도 사이케가 정말 좋아-,"

사이케의 불만에 츠가루가 조곤조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자, 그 대답 또한 마음에 들지 아니했던 것인지 사이케는 츠가루의 말을 끈으며 자신의 고개를 내려 그대로 츠가루에게 입맞추었다. 고개가 올라간 채로 말을 하고있었던 츠가루는 아무런 저항없이 사이케에게 입술을 내주었고, 입술에 닿는 몰캉하고 따듯한 무언가가 처음에는 무엇인지 몰라 그저 눈만 동그랗게 떴으나, 곧 가까워진 꼭 감고있는 사이케의 속눈썹과 입술의 느낌에 당황하고 말았다. 의자의 손잡이에 가지런히 놓여있던 파란색 매니큐어가 발린 츠가루의 손끝이 움찔, 했다.

" 내가 츠가루를 좋아하는 마음은 이만-큼이라구 !"

키스, 라기에는 너무나도 짧은, 그러니까 가벼운 뽀뽀를 한 사이케가 여전히 눈을 동그랗게 뜨고있는 츠가루를 내려다보며 츠가루의 고개를 잡고있던 손을 놓고 허공을 향해 내뻗으며 휘져었다. 아마 이-따만큼 좋아한다는 표시이리라. 그러나, 츠가루에게 그런것따위는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츠가루의 머릿속은 이미 사이케와의 뽀뽀와 말로 인해 어지러웠기 때문에. 그러니까, 츠가루의 마음상태로 끝을 맺자면.

…………에 ?

- fin.

 

Posted by 하리쿠
2013. 1. 17. 01:55

츠키시마는 솔직히 말해서, 울고싶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발로 거리의 아스팔트를 밟으며 걷고있자니 넘어져버릴것 같기도 했고, 어디서 돌부리가 튀어나와 자신의 발을 방해할지 불안했다. 원래 길을 잘 잃어버리는 터라 모르는 거리로 나서는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는 했지만, 여기는 자신이 자주 와보던 이케부쿠로의 거리였다. 그렇기에 길을 잃어버려 당황할 염려는 없었지만, 자신이 당면한 문제는 그것과는 전혀 다른것이었다. 평소라면 전혀 걱정할것이 못되는, 아주 당연스럽게 여겨지던 무언가의 부재. 그렇기에 새로운것에 익숙하지 못한 츠키시마가 이렇게 무기력하게 당하고있는것은 어찌보면 어쩔 수 없는것이었다.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며 거리의 구석구석까지 밝혀주는, 태양의 고도가 가장 높은 점심무렵, 츠키시마 시즈오는, 지금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시력이 없다던가, 하는것이 아니다. 딱히 다친것도 아니다. 그러나 시즈오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원인은, 겉으로 볼 때에는 츠키시마가 평소에 쓰고있는 것과는 전혀 다를것이 없어보이는, 선글라스였다. 매직으로라도 칠해놓았는지 바깥의 풍경을 전혀 내비치지 못하고 그저 새까만 암흑만을 보여주고 있었다. 분명 눈을 뜨고 있었음에도 눈을 감은것 같은 그러한 광경. 솔직히 말하자면 눈을 아래로 내리깔면 자신의 발밑정도는 보였고, 눈을 위로 치켜뜨면 파아란 하늘정도는 보였지만, 그정도로는 바로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불안감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츠키시마는 떨리는 손으로 잡아들고있는 핸드폰에 더더욱 귀를 파뭍으며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 그렇게 조금씩 걷다가는 날 새겠어."

있는힘껏 귀를 대고있기에, 핸드폰의 스피커를 타고 츠키시마의 귓속으로 직접 타고 들어온 목소리가 잔잔하게 울렸다. 분명 목소리는 무척이나 미성이었지만, 츠키시마는 여전히 앞이 보이지 않는 불안함에 바들바들 떨며 그 목소리에 대답조차 못한 채 발걸음을 옮겼다. 데이트약속이 있던 일요일 아침. 몇번을 만나도 두근두근한 마음이 전혀 가시지 않아, 오늘도 역시 자신의 연인 생각을 하며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준비를 마쳤을 때, 전화가 왔다. 발신자는 자신의 연인, 팔면육비 이자야. 몇분뒤에 만나기로 되어있어 그것조차 떨리는데, 벌써 전화로 대화를 하게 되다니. 츠키시마는 벌써부터 육비의 목소리를 듣게될 생각에 얼굴까지 빨갛게 달아올라 머리가 딩딩 하고 울렸다. 아.... 아...아아아아아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되있어요....!!!

그러나 기껏온 전화를 받지 않으면 육비에게 미움을 받아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츠키시마는 허둥지둥 그 전화를 받았고, -너무 허둥대는 바람에 전화기를 떨어뜨릴뻔했다.-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감춘 채 '여보세요' 하자, 스피커 저편에서 들려온 첫 소리는 '선글라스는 잊어버렸어 ?' 였다. 그러고보니, 항상 쓰고다니던 선글라스를 쓰는것을 잊어버릴뻔 했던 츠키시마는, 자신이 선글라스를 쓰고있지 않은 사실을 육비가 어떻게 알고있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일으키지 않은 채 자신의 침대옆에 놓여있던 그것을 썼고, 거기서부터가 시작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선글라스에게 당황하는 츠키시마를 향해 육비는 조용한 목소리로 그 선글라스를 쓰고 자신의 전화에만 의지한 채 약속장소로 오라는 터무니없는 것을 요구했고, 차마 육비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던 츠키시마는 얌전히 그 요구를 허락했다.

그리고 후회했다. 뭐든지 잘 해내는 육비였기에, 이러한 안내도 잘 할것이라 믿고 있었던 츠키시마에게 눈이 보이지 않는 장애는 생각보다 무서웠다. 물론, 육비의 설명이 부족했던것은 아니다. 정면에 사람이 있으니까 피해라, 앞으로 세발자국정도 더 가라, 여기는 횡단보도니 기다려라, 등등. 마치 바로 옆에서 보고있는것처럼 조곤조곤 설명해주는 육비의 목소리는 분명 완벽했지만, 무서운것은 무서운것이었다. 대체 뭐하는 짓이냐고 물어도 핸드폰 저편의 그사람은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유도 모른 채 덜덜 떨리는 발걸음을 옮기고있는 츠키시마는 아주 죽을맛이었다.

" 거기서 멈추고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

하는 명령에, 츠키시마는 바로 앞에 상대가 있는것도 아니것만 고개를 끄덕, 하고는 발걸음을 멈추고 몸을 틀었다. 그리고 그 순간, 바로 코앞에 세찬바람이 지나가며 자동차의 엔진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너무나도 놀라버린 츠키시마는 저도 모르게 히끅, 하고 딸꾹질을 해버렸고, 눈가에 하나가득 차있던 눈물이 흘러내려 버릴것만 같아서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입고있는 와이셔츠의 소매깃을 밑으로 끌어내려 눈가를 훔쳐보았지만 어째서인지 계속해서 소매가 젖어만갔다. 방금, 자신의 앞에 차가 지나갔다는, 그러나 자신은 그것을 보지 못했다는, 어쩌면 그것에 자신이 다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츠키시마는 차마 눈물을 그칠수가 없었다. 더이상 안돼, 무리야. 아무리 자신이 좋아해 마지않는 육비의 명령이라 할지라도 츠키시마는 다시는 이렇게 무서운 경험따위를 하고싶지 않았다.

이건 그거다. 전에 이자야씨의 '사무실을 이전했으니 놀러와도 좋아☆'하는 말에 큰맘먹고 지하철을 타고 모험을 떠났을 때, 분명 이자야가 자신에게 그려준 지도대로 찾아갔고, 혹시나 길을 잘 잃어버리는 자신이 실수라도 할까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갔것만, 이자야의 사무실은 커녕 우락부락 이상한 아저씨들이 모여있는 사무실의 문을 두드려버려서, 그 아저씨들이 자신을 째려봤을 때 같은 무서움. 결국 그것은 뉴페이스인 자신을 골려주기 위한 이자야씨의 장난이었고, 그것을 눈치챈 육비의 보호로 인해 째림을 당한것도 단 한순간 뿐이었지만, 츠키시마는 그 잠깐이 엄청난 무서움으로 다가와 그대로 주저앉아버렸었다. 츠키시마는 갑자기 몇달전의 자신이 생각났을만큼 지금의 상황이 무서워졌기에, 저도 모르게 다리의 힘이 빠져버렸다.

그리고, 그것은 츠키시마 시즈오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눈물이 차오른것이 귀까지 멍멍하게 만들어버린 것인지 겉의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서 무슨상황인지 잘 모르는것이 당연했지만, 겉으로는 위험천만했다. 왜냐하면, 츠키시마는 바들바들 떨리는 다리를 간신히 가누고 있었고, 그렇기에 비틀비틀했고, 방금 육비가 말했듯이 츠키시마는 횡단보도에 있었으며, 차가 바로 앞에 지나간것으로 알 수 있듯이 절때 인도에 있지 않았다. 그렇게 눈도 귀도 제 기능을 수행 못하는 상황에서 츠키시마는 여전히 훌쩍이고 있었고, 소매는 잔뜩 젖어버렸기에 자신이 이렇게 울어버렸다는 사실이 육비에게 전해진다면 '울보와는 사귀고싶지 않아.'하는 소리를 들어버릴까 두려웠고, 그러나 지금 상황도 충분히 무서워서, 빨리 상황을 끝내버리고 싶었기에 저도 모르게 육비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은 채 발을 내딛어버렸다. 그리고, 지금은 빨간불. 그리고,

빠아앙─────

하고 드라마에서나 울릴법한 길게 여운을 남기며 들려오는 경적소리 따위는, 츠키시마의 귀의 고막을 울리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옆에서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만큼의 약간의 거리를 두고 걷고있던 육비가 노리던 상황.

" .......내가 없으면 안된다니까."

여전히 연결되어있는 핸드폰에게 들릴만큼 속삭이듯 작게 중얼거린 육비가 진한 미소를 지으며, 차가 오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차도를 걷고있는 츠키시마의 행동에 경악과 걱정으로 놀란얼굴을 하고잇는 사람들사이를 헤치가 나가, 멍해있는 츠키시마의 허리에 자신의 팔을 감싸 끌어당겼다. 얼굴에 핸드폰의 자국이 생길정도로 꾹꾹 누르고있던 츠키시마의 귀에 박혀든 육비의 소리에, 그 말의 뜻을 모르고 멍해있던 츠키시마는 갑자기 자신의 허리에 감겨든 팔의 힘에 넘어지듯 자신을 맡기었고, 그랬기에 자신보다 키가 작은 육비의 품에 안겨들 수 있었다.

백허그당하듯 자신의 가슴에 가득 안겨든 츠키시마가, 아까의 반동으로 매직으로 칠해놓은 선글라스가 반쯤 벗겨진채, 아무것에도 가려지지 않은, 게다가 아직도 눈물이 한가득 담겨있는 맨눈을 동그랗게 뜨며 자신을 올려보자, 육비는 딱히 이런것을 원한것이 아니었지만, 정말 오늘 츠키시마를 괴롭히기를 잘 했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육비는 오늘 가만히 데이트하기가 심심했고, 자신이 먼저 한방 먹여주기도 전에 이자야에게 선수를 뺐긴것이 분했기도 했고, 얼마나 츠키시마가 자신을 좋아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기에, 오늘 그를 괴롭히겠다, 하는 생각으로 일을 벌인것이었지만, 츠키시마의 반응이 생각보다 재미있었기에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 ...육비씨 ?"

-하고, 물기어린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는것 마저도.

" 많이 무서웠어 ?"

육비는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다정한 목소리를 내며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예쁘게 호를 그리고있는 입술에 역시나, 츠키시마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어버버, 하며 말을 잇지 못했고, 그러한 츠키시마의 모습을 귀여워하는 육비는 예상했던 반응에 살며시 츠키시마의 앞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를 일으켰다. 차는 이미 지나갔고, 벌써 초록불이 되어있어 횡단보도를 지나가던 사람들이 흘끗흘끗 그들을 쳐다보았지만, 그것은 츠키시마와 육비의 신경을 조금도 끌지 못했기에 방해가 되지 못했고, 육비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난 츠키시마는 어정쩡하게 안겨있던 탓에 다리가 저려왔지만 내색하지 않은 채 육비를 마주보고 자그마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무서웠어요.

" 그럼, 데이트를 마저 하자구."

시원스럽게 내뻗어진 손이 잡으라는듯이 동그란 모양을 띄고있었기에, 츠키시마는 차마 그 손을 보고있는것마저 부끄러워져버려 눈을 최대한 내리깔았다. 아직 손보지 않았기에 반쯤 벗겨져있는, 밖을 투영시키지 않는 선글라스로 인해 내리깐 시선에는 까만색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츠키시마는 그것이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너무너무 좋아하고 있는 육비를, 그의 모습을 맨눈으로 계속 보고있자면 그것만으로도 얼굴에 피가 쏠려 화끈화끈했고, 관자놀이까지 지끈지끈해와서 츠키시마는 차마 그를 바로 마주볼수가 없었다. 그래도, 계속 손을 내뻗은채로 있으면 육비씨가 힘들테니까.

츠키시마의 손은 아까와 다른 의미로 떨리고 있었다. 아까는 무서움에 의해 떨렸다면, 지금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인해 차마 손끝을 제어할 수 없었다. 눈을 내리깔고 있어 육비의 손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점점 목 안으로 파고들어가는 고개를 더더욱 아래로 끌어내린 채 천천이 허공을 향해 손을 내뻗자, 곧 자신의 손을 가득 잡아오는 다른 손바닥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역시나 육비의 것이라서 츠키시마는 피어오르는 미소를 숨길 생각도 못한채 그대로 내보이며 얌전히 그를 따랐다. 역시, 육비씨를 좋아하기를 잘했어, 하며.

fin.

Posted by 하리쿠
2013. 1. 17. 01:54

" 시즈 ?"

하고 공기중에 가볍게 울려퍼지는 소리가 조용한 공원안을 가득 메웠지만, 그 말을 듣는 이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니, 그 이전에 얌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이가 그 소리를 들었을지는 미지수였지만. 가볍고, 어떻게 들으면 상큼한, 그리고 미성의, 그러한 목소리로 말을 꺼낸 이는 그 목소리 만큼이나 미형의 얼굴을 하고있었다. 결좋은 검정색 머리카락을 멋낸듯한 적당한 길이로 자르고, 가볍게 손질하놓은 머리모양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미청년, 신주쿠의 정보상 오리하라 이자야. 그 특유의 날카로운 눈매가 모처럼 자신이 부른 이에게 궁금증을 띄우고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꽤나 부드러워보이는, 이자야 만큼이나 얇은 머리칼을 - 금발이라 더 얇아보이는것인지는 모르겠으나 - 늘어뜨리고 있는 남자. 머리카락만 묘사를 해놓은 것은, 그만큼 푹 숙여진 머리에 그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얼굴이 머리칼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의 정체를 알 수 없는것은 아니었다. 이케부쿠로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바텐더차림의, 저런 금발을 하고 있는 남자가 또 있을리가 만무했다. 그렇기에 이자야가 벤치에 앉아있는 그의 모습에 바로 그의 이름을 입에 담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자야는 말을 마치자마자, 공원을 빠져나가려던 발걸음의 방향을 그에게로 바꾸었다. 조용한 공원에서는 몇몇 새들이 자그마하게 짹짹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이자야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고, 그리고 발걸음 소리가 멈추었을 무렵에는 그것을 대신하듯 작은 숨소리가 들렸다. 새근새근, 하고.

" 시- 즈."

자그마하게 그를 불렀지만, 역시 그는 자고있었다. 태양이 깊게 비추고있는 대낮의 공원. 비록 나무가 그늘의 역활을 하고있어 모든 빛이 그에게 닿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뭇잎사이로 실같이 들어오는 가느다란 햇빛에 유난히도 그의 머리칼이 금빛으로 반짝였고, 그것을 보고있자니 이자야는 묘하게 눈이부셔, 그대로 살짝 주저앉아 그의 얼굴을 살피었다. 위에서 올려다본 그의 얼굴은, 평소와는 다르게 곱게 펴진 미간과 튀어올라와 있지 않은 핏줄이 눈에 띄었다. 자주 그의 얼굴을 보기위해 이케부쿠로에 왔지만, 이렇게 편안해보이는 시즈오의 얼굴을 정면으로 본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었기에, 이자야는 신기한것을 보는듯한 눈으로 계속 그의 얼굴을 살피었다.

항상 쓰고있던 선글라스는 벗어두었는지 아무런 장애물 없이 보이는 살짝 감겨있는 눈과 얇게 뻗어있는 긴 속눈썹, 오똑한 콧날과 앙다문 입술까지. 이토록 평안한 얼굴을 보고 누가 그를 이케부쿠로 최강 사나이라고 생각할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곱게 펴진 미간 사이가, 물론 항상 쓰고있는 인상으로 인해 조금의 파임이 보이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나 밋밋한 형태를 띄고있어서, 이자야는 저도 모르게 손을 올려 그곳을 건들였다. 살짝 손이 닿은 미간사이는 손가락끝이었지만 느껴질정도로 따듯했고, 그것이 햇빛의 영향인지 시즈오의 체온때문인지는 몰랐지만 이자야의 손끝에 따스하게 데워진 공기의 느낌이 미미하게 다가와서, 그 따스한 느낌에 이자야는 저도 모르게 손바닥을 좌악, 펴고 시즈오의 얼굴 앞에 들이대었다.

손바닥으로 말끔히 가려지는 얼굴. 그리고, 벌어진 손가락 사이사이로 보여지는 얼굴의 파편. 원래, 멀쩡하게 보이는 것보다 드문드문 보이는것이 더욱더 눈길을 끄는것이 인간의 본성이므로, 그 손가락 사이의 형상들이 이자야의 눈에 박혀들었다. 정말로, 평소보다 얌전하고, 평안하고, 조금 강아지같기도 해서 귀엽다는 생각도 들고, 아니, 물론 인간은 모두 귀엽지만 시즈오는 인간이 아니고, 뭐랄까, 보면 볼수록 가슴속에서 무언가 형용할수 없는 감정이 스멀스멀 기어오르는것 같아서, 그러니까, 뭐였더라.

─────이걸, 뭐라고 표현하더라. ... 그러니까,

손바닥 가득 느껴지는 공기는 따스했다. 옅게 색색거리는 숨이 닿아오는 손바닥은 간지러웠다.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바람에 살랑이는 금발은 부드러웠다. 곱게 감긴 속눈썹은 가지런했다. 손바닥에 가려진, 아마 귀여울듯한 동그란 콧망울과 곧은 콧대가 잘 어울렸다. 그러니까 이건, 그거다.

이자야는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키며, 손바닥을 내렸다. 이자야의 눈동자 안에 가득하던 시즈오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졌다. 사실상, 가만히 자고있는 시즈오에게 다가가고 있는것은 이자야였지만, 아무튼. 이자야가 시즈오의 앞에 쪼그려 앉음으로써 가까워진 둘 사이의 거리는, 조금 더 좁혀지고 있었고, 이자야는 마치 비디오를 슬로우모션으로 돌리듯 천천히 시즈오를 향해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정말, 지금 분명 자신의 앞에있는 인물은 시즈오였지만, 무언가, 시즈오 같지 않다고 해야하나, 아니면 자신의 시즈오를 향한 감정이 평소같지 않다고 해야하나. 이건 다, 괜히 자고있는 시즈의 탓이야, 하고 괜한 변명거리를 속으로 중얼거리며, 이자야는 움직이는 자신의 몸을 애써 저지하지 않았다.

그렇게, 거리는 좁혀지고 좁혀지고 가까워져서, 마침내 아까 손바닥으로 느꼈던 따스한 공기의 느낌이 자신의 안면 가득히 느껴졌고, 시즈오의 숨결이 자신의 피부에 와닿아서, 이자야는 그제서야 자신이 미쳤구나, 싶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기에는 안쪽에서 저릿하게 퍼지는 몰랑거리는 감정이 쿡쿡 찔러와서, 이건 다 시즈때문이야, 하며 이자야는 조금 고개를 틀었다. 자그마하게 벌어진 시즈오의 입술사이로 옅게 드나드는 숨이 이자야의 입술사이로 살며시 전해져왔다. 그와 동시에 이자야도 조금 입을 열었고, 두 숨이 교환되며 두 입사이로 왕래하는것이, 분명 두 사람의 입은 닿지조차 않았음에도 아주 뜨거운 키스를 나누는것마냥 야릇했다. 이자야는, 잠시 그것을 느긋하게 즐기다, 조금 더 힘을 주어 몸을 일으켰다. 이제, 곧. 피부에만 느껴지는 사람의 체온이, 입술에서도 따스하게 느껴지겠지, 하며.

" ......... 음, "

그러나, 그것은 실현되지 않았다. 이자야가 시즈오의 체온을 가득 느끼고있었던것처럼, 이자야의 체온으로 뎁혀진 공기가 거슬렸던건지, 아니 둘 사이에 끼어있어 그 공기는 더욱 더 가열되었을터이지만, 아무튼 그것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한 인기척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단순한 잠꼬대인지, 시즈오의 입술 사이에서 나즈막한 소리가 흘러나왔고, 그에 깜짝 놀라버린 이자야는 재빨리 자신의 몸을 시즈오의 앞에서 떨어뜨렸다. 그렇게 벌떡 일어난 이자야가, 잠시 시즈오에게 닿을뻔 했던 입술을 손바닥으로 가렸다. 나, 도대체 무슨짓을 한거지, 하며. 한순간에, 몸속의 모든 피가 얼굴을 향해 몰린것같이 뇌속에 디잉- 하고 울렸다. 아마, 그것때문에 자신의 얼굴은 붉게 물들어있을듯 했다. 그 증거로, 머릿속은 엉망징창이었고 얼굴은 화끈거렸다. 마치 불속에 다이빙이라도 한듯이, 온 몸이 후끈거려 이자야는 도저히 이 열기를 견뎌낼수가 없었다. 도대체, 뭐가 이렇게 민망하고 이상한거람. 물론, 그 이유는 알고있지만.

이자야는 잠시 입을 가리고 있던 손을 서서히 내렸다. 정말, 공원에 사람이 없다는것이 정말 다행이었다. 만약, 자고있는 남자에게 키스따위나 하려하는 남자의 모습을 누가 곱게 봐줄것인가. 물론, 곱게 봐주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은 극소수였으므로 가볍게 넘기었다. 아무튼, 정말 자신은 무슨행동을 하고 있는건지. 이자야는 자신은 이렇게 복잡한 감정으로 자신의 행동조차 통제를 못하고있는데, 아무것도 모른채 여전히 잘도 자고있는 시즈오에 갑자기 심통이 났다. 심통, 이라고 하니까 마치 초등학생 아이같은 표현이었지만, 이자야의 속에 있는 감정은 정말, 그것과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물론, 이자야는 초등학생이 아니었지만.

" .............정말 싫다구."

.

.

.

" 오... ......시즈오 !??"

다급한 목소리로 자신을 깨우는 소리가 들려서, 여전히 잘도 자고있던 시즈오가 닫혀있던 눈꺼풀을 들어올리고 자신의 어깨를 쥐어흔드는 자신의 선배- 톰을 바라보았다. 화를 잘내는 다혈질이었지만, 그와 맞지않게 약간의 저혈압인 시즈오는 일어나자마자 평소와 마찬가지로 진하게 느껴지는 두통에 손을 들어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왜 톰이 자신을 저렇게 자급하게 부르는지에 대해 의문을 담아 톰을 바라보았다. 평소와 다름없이 수금을 하러간 어느 아파트. 그 전 수금자에게 조금의(?) 난리를 친 탓인지 톰은 시즈오에게 먼저 공원에 가있으라고, 자신이 수금해서 가겠노라고, 그렇게 말했고, 시즈오는 조용히 동의하며 얌전히 그 말을 따라 공원에 앉아있다, 그렇게 잠든것 같았다. 그런데, 저렇게 다급하게 부를만한 사정이 무언가 있던가 ?

그러고보니, 조금 이상한것이 있다. 자신의 눈에 보이는 하늘은 여전히 새파랬고, 태양은 밝았으며 세상은 여름을 향해 가고있었으므로 조금은 따듯했다. 그러나, 자신의 피부는 약간의 싸늘함을 호소하고있었다. 또한, 톰이 쥐고있는 어깨또한, 무언가 허전했다. 이것은, 만약 보통 사람이었다면 단숨에 눈치를 챌만한 현상이었지만, 시즈오는 자신의 몸에 대해서는 둔했고,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기에, 그렇기에 눈치를 채지 못한 부분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반쯤 꿈속을 헤메고 있는 시즈오를 깨우던 톰이, 그 이유를 말해주고 나서야, 시즈오는 알 수 있었다. 왜 자신들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시즈오 자신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것인지에 대해.

" 시즈오 ! 너 셔츠, 셔츠 어디갔어 !??"

하고, 톰이 소리치고 나서야, 시즈오는 자신이 아까까지만해도 입고있었던 셔츠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셔츠'가 사라졌다. 그 위에 입고있던 조끼는 아무일도 없었다는양 멀쩡히 입혀져있었것만, 셔츠만 홀연히. 시즈오는, 그제서야 왜 피부가 조금이나마 싸늘했는지, 어깨위에 놓인 톰의 손이 가까웠는지, 사람들의 시선이 저리도 이상했는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맨몸위에 조끼만 입고있었음으로, 그런것이었다. 시즈오는 깜짝놀라 자신의 상반신을 살피었고, 전혀 아픔따위는 느껴지지 않았기에 몰랐지만, 자신의 오른쪽 팔에 길게 그어진 상처를 발견했다. 물론, 그것은 시즈오의 튼튼한 육체로 인해 심하게 파여있지는 않았지만, 시즈오가 자고있던 탓에 조금의 힘도 주고있지 않았음으로 그나마, 평소보다 더 아가리를 열고있었고, 그 사이로 비집고 올라오는 피는, 이미 마르고 있었다. 그리고, 또하나, 시즈오가 자신을 살피며 알 수있던 것.

자신의 옆에, 눈을 찌르는 빛의 무언가가 꽂혀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여기 이런 평화로운 곳에 있을리가 없는, 은빛 나이프였다. 햇빛을 반사하여, 반짝반짝 빛나는, 자신에게 익숙한 그것. 시즈오는 단숨에 알아챘다. 저것은 자신이 전에 입으로 부순적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저것을 자신에게 던졌던 사람, 즉 저것의 주인이 오리하라 이자야 라는것을. 그리고, 그 칼날에 박혀있는 이리저리 찢긴 천쪼가리들이 자신의 셔츠의 잔해라는것을.

" ..........이..... 자야..... 이자식.........!!!!"

시즈오는 그 사실을 알아채자마자 손으로 그 나이프를 꽉쥐어 깨트렸고, 소리쳤고,. 톰이 말릴새도 없이 그저 조끼차림으로 어디론가 뛰어갔다. 그리고, 그의 목적지는 다들 알 그곳. 신주쿠의 정보상, 나이프를 아주 잘 다루는, 시즈오의 셔츠를 갈기갈기 찢어 조끼차림으로 만든 범인, 그리고 자신이 했다는 사실을 일부로 그에게 알리기 위해 팔을 긋고, 나이프까지 남겨둔, 오리하라 이자야의 아파트.

-fin

 

Posted by 하리쿠
2013. 1. 17. 01:52

**늦은 저녁. 이케부쿠로, 어느 무면허 의사의 집.

가끔 떠들썩해지기는 하지만, 애초에 사는 사람은 둘 뿐이라 나름 조용히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어느 고급아파트의 최상층의 집은, 지금 한 사람으로 인해 조용히라는 말과는 전혀 다르게 떠들썩해지고 있었다. 거실의 소파에 앉아있는 사람은 세명이었으나, 새어나오는 목소리는 단 두개. 그도 그럴것이, 그 셋중에서 유일한 여자인 새까만 라이더 복을 입은 이는- 목이 없었음으로 말을 할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 집에 있는 또 한사람은 지금 거실이 아닌 다른 방에 있었으므로, 거실에서 나오는 소리에 자신을 더할일이 없었다. 그렇게 남은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잔뜩 언성을 높히고 있었다.

" 그-러니까 ! 의사인 네가 말하면, 시즈는 단순하니까 믿을거아냐 !"

" 내가 왜 그런 고생을 해야하는데 ?"

아니, 두 사람이라기 보다는 언성을 높히고 있는 이는 단 하나였다. 어디 불량배에게 맞고오기라도 했는지 머리에 붕대를 둘둘 감고있는 신주쿠의 정보상 오리하라 이자야. 그를 치료할 때 쓰인것으로 보이는 구급상자를 정리하고 있는 무면허 의사인 신라는 조금 시큰둥하게 그의 말을 받아쳐주고 있었다. 그 사이에 껴있는 목없는 라이더 세르티는, 한숨을 (한숨을 쉴 입이 없어 이리 표현하는것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내쉬며 그들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이자야가 지금 왜 이런 상처를 달고 자신들에게 하소연하고 있느냐, 이것은 이자야의 말을 따라 조금 전의 상황으로 거슬러간다.

**저녁. 시즈오의 아파트.

" 시즈는 그냥 우리집에 들어와도 괜찮은데 말이야."

" 매일 아침 벽에 짓이겨지고 싶으면 그러던지."

" 죄송합니다."

평소라면 자신의 바로 앞에 서있는 이자야를 보자마자, 얼굴에 혈관을 띄우며 잔뜩 역성을 낼 시즈오였지만, 지금은 조금 달랐다. 물론 웃고있다던가, 하는 부드러운 표정은 아니었지만, 살짝 이자야에게 비스듬히 고개를 돌리며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고있는 시즈오의 모습은 평소 화를 내는 모습과는 갭이 있었다.

시즈오는 지금 무척이나 긴장하고 있었다. 이자야, 그의 말로는 '우연히'라고는 하지만 그의 우연히는 99%정도가 거짓말이었으므로 믿지 않고 하여튼, 거리에서 그를 만났다. 보자마자 평소와 다름없이 옆에 꽂혀있는 표지판을 뽑아들고 그를 향하여 휘둘렀지만, 그 또한 평소와 다름없이 그것을 피했고, 또다시 이자야와 시즈오의 추격전이 펼쳐졌다. -사실상 시즈오가 이자야를 죽어라 쫓아간것이지만- 평소라면 사람이 많건 적건을 따지지 않고 이리저리 피하며 시즈오를 골릴생각으로 가득 차있을 그였는데, 오늘은 왠지 모르게 인적이 드문곳으로 가는것이 조금 이상했지만, 시즈오는 아랑곳않고 무작정 그를 쫓았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조용한 골목길. 그제서야 이자야의 의도를 눈치챌 수 있었던 시즈오가 급하게 발을 멈추었을 무렵, 이자야는 도망가던 발걸음을 빙글, 돌려 시즈오와 마주보았다. 좁은 골목길이라, 자신이 휘두르느라 이리저리 찌그러진 표지판을 들고 올수가 없어 내던져버린것을 후회하며, 시즈오는 어느새 주먹의 반정도 크기의 돌 위에 한쪽 발로 서서 균형을 잡고있는 그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몇번이고 있던 상황인지라, 겨우 이정도의 학습능력도 없는 시즈오는 아니었기에 지금 이자야의 의도는 아주 잘 알 수 있었다.

갑자기 얌전해진 시즈오의 모습에, 이자야는 돌맹이 위에서 균형을 잡으며 미소지었다. 이제서야 자신의 의도를 눈치챈듯한 표정의 시즈오가, 역시나 너무너무 둔하다고 생각하며. 사귀는 사이라고 하여, 이자야를 너무너무 싫어하는 시즈오와, 시즈오를 너무너무 싫어하는 이자야의 모습이 달라질것은 없었다. 그러나, 가끔씩은 연인의 분위기를 내는것은 맞다. 지금 이렇게- 얌전해진 시즈오는 그런 분위기를 내기위한 전 과정이었다. 물론 마음 속 깊이서 앞에 서있는 금발의 사내를 좋아하는것은 맞았지만, 그것은 절대 마음 속 깊은곳에 있는 본심이었고, 그것을 미움과 싫다는 감정으로 꼭꼭 숨겨놓은 이자야는 절대 표면만으로는 시즈오가 너무너무 싫은것처럼 행동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시즈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좋아하고 있다고 해도, 그것을 대놓고 표현한다는 그런 오글거리는 것은, 이자야에게도 시즈오에게도 너무나도 민망한 것이었음으로. 그것을 애써 싫은척, 미운척, 덮고있는, 초등학생 남자애들이 자주 한다는 그런 행위. 두 남자의 그런 새침부끄한 행동은 겉으로는 너무나도 사이가 좋지않은 이케부쿠로 24시간 전쟁콤비라는 별명까지 자아낼 정도였다. 아무튼, 그렇게 골목에서 대치하고있던 두 사람은, 먼저 다가온 이자야로 인해 두 실루엣이 하나로 합쳐지는 광경을 만들어내게 되었다. 얌전히 그의 키스를 허리까지 굽혀가며 받아주던 시즈오가 먼저 입술을 떼며 약간이지만 민망한 표정을 짓자, 그것에 아주 곤란해하던 이자야의 손에 의해 시즈오의 아파트에까지 들어오게 된 것이 지금까지의 줄거리였다.

그리고 지금 하고있는짓은 그것의 연장선이었다.

" ... . .....음, "

-하고 시즈오의 목울대가 짙게 울리는 소리가 방 안을 가득 메우듯 들려오고 나서야, 이자야는 그제서야 자신이 사과의 말을 내뱉은 후 그에 대한 대답이 돌아오기도 이전에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 상황을 눈치채지 못 할 정도로 흥분해버리고 만것이가- 따위는 상관 없었다. 그저 지금 자신과 시즈오가 입을 맞추고 있는 사실이 중요했다. 골목에서 부터 잔뜩 분위기를 잡고있어, 그것에 잔뜩 젖어버린 시즈오는 조금의 반항도 없이 입술을 내어주고 있었고, 그 특유의 낮은 목소리에 어울리는 중저음의 허스키하고 섹시한 신음을 내어주고 있었고, 자신은 그것을 너무나도 당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입술을 맞대는것으로 시작한 키스는, 남자의 속 안에서 꿈틀거리는 욕망이라는 본성을 이기지 못하고 그것을 고지곧대로 보여주는 뜨거운 살덩이가 섞이는 것으로 이어졌고, 타액으로 끈적거리는 붉은 혀가 엮이며 이루어내는 야한 마찰음은 그 둘 사이에서 울리며 분위기를 후끈 달아올려주고 있었다. 이자야는 오랜만에 자신의 하반신이 뻐근해짐을 느끼며, 입술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숨에 그도 자신과 같을것이라 예상하며, 손을 아래로 내렸다. 만일 키스하고 있는 이가 여자였다면 손을 위로 올렸겠지. 하는 가벼운 우스갯소리를 속으로 하며. 천천히 그의 허리에 한쪽 팔을 감으며 다른 쪽 손으로는 시즈오의 셔츠의 아랫부분속에 숨겨진 버클을 풀러내렸다. 철컹거리는 쇠마찰음의 소리가 분위기를 더욱 야릇하게 만들려는듯 유난히도 크게 들려왔고, 그에 반응하듯 작게 떨려오는 시즈오의 몸을 느끼며 이자야는 뜨지 않은 눈에 더욱 민감해진 손끝의 촉각으로 그의 살결을 느꼈다. 배꼽 아래로 매끈하게 이어진 골반과, 그것을 타고 미끄러지듯 내려가며 부드러운 안쪽 속살을 더듬던 이자야의 손이 더욱 더 아래로 내려갈 무렵-

" …………………야이새끼야안떨어져 !??????"

솔직히 말해서는 너무 가까워져있던 둘 사이였기에, 잔뜩 내지르는 시즈오의 말은 이자야의 고막을 심하게 울려, 그것의 강도가 너무 심해 이자야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인식할 수 없었다. 어라, 지금 시즈가 무슨말을 했지 ? - 라는 순수한 의문을 머릿속에 떠올린 이자야는, 시간이 몇 초 흐른 후에야 자신과 달라붙어있던 시즈오가 멀리 보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고, 그 다음에야 골을 울리는 고통이 허둥지둥 찾아왔다.


자신은, 시즈오의 손에 저 멀리 팽개쳐진 것이다.

벽에 부딛쳐 얼얼거리는 머릿속은 그것만으로 너무나 엉망징창이 되어서 지금의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다. 자신과 시즈오는 키스를 하고있었고, 그 키스는 평소라고 할 수 없을만큼 진하고 야했으며, 그것에 흥분해버린 자신은 시즈오와 그보다 더한짓을 하려고 했으나 시즈오가 그것을 거부했다. 그것도 자신의 파워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을 내던져버리는 아주아주 폭력적이고 어이없는 형태로. 거기까지 떠올린 이자야는 그제서야 욱씬거리는 머리로 손을 올려 그 부분을 문질렀다. 아까의 키스로 잔뜩 달아올라있던 몸이 갑자기 끈어져버린 열기에 조금의 한기를 호소하고 있었지만, 그 부분만큼은 고통에 잔뜩 열이 올라있었다. 손에 무언가가 묻어나는 느낌이 드는것을 보니, 상처라도 생긴듯 했다. 따듯하고, 욱씬거리고, 조금 부어버린 머리를 쓰다듬든 매만지던 이자야가 아직도 조금 씩씩거리는 시즈오를 향해 말했다.

" 뭐야, 시즈. 아무리 더한짓이 하기 싫었어도 이건 심하잖아. 엄청나게 분위기 잘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상처라구."

" 분위기고 뭐고, 그런짓은 하면 안되는거잖아. 너 정말 나를 죽이고싶어서 환장한거냐 !?"

" 하면 안되는거라니. 그 무슨 안어울리는 소녀틱한 발언이야. 게다가 죽인다는건 무슨뜻이야."

24살이나 먹은주제에 14살먹은 소녀의 입에서 나올법한 말이나 하고있는 시즈오에게 이자야는 조금 입술을 내밀며 뾰루퉁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래, 여자라면 몰라. 24살이나 먹은 성인이 '그런 나쁜짓은 하면 안돼 !'라는 너무나도 바른생활 어린이같은 말을 하다니. 이자야는 조금 허탈했다. 남녀간도 아니고, 무슨 정조를 지킨다는 조선시대 여성도 아니고, 남자간의 연애에서, 이런 모럴이 바닥일것같은 남자의 입에서 나온 소리가 저런거라니. 순진해도 정도가 있지. 이자야가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있자, 시즈오는 던져버린것에 미안한건지는 몰라도 변명비스무리한 말을 중얼거리듯 말했다. 아파진다고, 하며.

" 넌 모르는 모양이지 ? 남자들끼리는 그런짓 하면 에이스라는 병에 걸린다고 !"

에이스가 아니라 에이즈겠지, 바보 시즈쨩.

**

" 풉......... 아하하하 !!!"

이자야의 말이 끝나자 마자 신라는 배를 움켜쥐고 웃음을 터뜨렸다. 시즈오 답다면 시즈오다운, 그런 너무나도 어이없고 순진하며, 어린아이 같은 말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정말 견딜수 없이 웃겼던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 있던 목없는 라이더- 세르티 마저 어깨를 떨며 소리없이 웃고있었다. 정말 웃고있는것이 맞는지는, 소리가 전혀 없었음으로 추정이었지만. 아무튼 자신의 말이 끝나자마자 죽어라고 웃고있는 두 남녀를 보고있자니 이자야는 무언가 꾸물꾸물 짜증이 밀려오는것 같아서 괜히 빽 소리질렀다.

" 웃지만 말고 좀 ! 시즈가 나오면 바로 말하면 되니까 !"

그러나 그 말이 끝나자마자 또다시 신라의 입에서는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처음, 신라의 집에 쳐들어와 '시즈에게 진실을 말해줘 !!!' 하며 달려들었을때와는 전혀 다른 반응에 이자야는 혼자 뿌득뿌득 이를 갈 뿐이었다. 확실히, 처음에는 정말 뜬금없이 그런 말을 했기에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시큰둥 했으면서 자신이 상황을 말하자마자 저렇게 폭소를 하는 꼴이라니. 잠깐 화장실좀 갔다오겠다는 시즈오가 봤다면 아무리 둔한 그라도 자신을 비웃는 것이라는걸 눈치채고 주먹이라도 날릴만한 상황이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신라가 간신히 웃음을 터트리는것을 멈추었을 무렵, 그제서야 시즈오가 어슬렁어슬렁 거실로 나왔다. 자신이 이자야를 내던지고 소리를 지르자, 잠시 멍한표정을 짓던 이자야가 다짜고짜 손목을 부여잡고 끌고온 곳은 신라의 아파트. 끌려오는동안 계속해서 그 이유를 물었으나, 이자야는 그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고 조금 무서운 얼굴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딱히 그 무서운얼굴에 겁이 먹었다던가, 하는건 아니었지만, 모처럼 얼굴을 굳히고 있는 이자야가 너무나도 진지해보여 그 손을 뿌리치지 못한건 사실이었다. 자신이 정말 힘을 주어 비튼다면, 이자야가 꽉 잡고있는 손목따위 빠져나오는것은 시즈오에게는 식은죽 먹기일테니까 벗어날 기회는 언제든지 있었지만.

아무튼 그렇게 끌려온 시즈오가, 소파로 몸을 뉘이듯 앉자, 이자야가 기다렸다는듯이 시즈오를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언성을 높혔다. 물론, 갑자기 손가락질을 당해 기분이 나빠진 시즈오가 이자야의 검지손가락을 안력만으로 부러뜨릴정도로 강하게 째려본것은 당연하다. (시즈오는 나름 안력만으로도 손가락이 부러질 확률이 0.0000000000000675%는 있다고 믿고 있었다.)

" 어서, 신라 ! 이 밥팅이한테 진실을....!"

" 죽고싶냐 ?! 앙!???"

이자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마에 핏줄을 띄우며 화를 내는 시즈오를 간신히 말리며, 세르티는 가지고있던 PDA에 글자를 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아직도 이 상황을 즐기고있는 신라와 답답해 죽으려고 그러는 이자야는 뒤에서 싸우고있었지만, 시즈오는 이미 그것에는 관심이 없었고, 세르티의 손가락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세르티로써는, 평소에 보는 기분이 나쁠정도로 당당하고 뻔뻔한 모습과 상반되는, 처음보는 이자야의 다급해보이는 모습이 너무나도 새로웠고, 적어도 14살 전에 알것 다 안다는(?)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저리도 순진하다면 순진한, 나쁘게 말하자면 둔한, 그런 발언을 하는 너무나도 시즈오다운 그를 애인으로 둔 것이 약간이나마 연민이 들었기에 -같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자로써 -, 조금이나마 이자야를 도와주기로 했다.

『저기말야, 시즈오. 정말 남자끼리는 그..런거 안된다고 생각해 ?』

그런거, 부분에서는 세르티의 손가락이 약간 머뭇거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세르티는 무난하게 글을 썼고, 시즈오의 옆에 앉으며 그에게 그것을 보여주었다. 이자야에게 끌려올 때 차마 쓰지 못한것인지, 선글라스가 없는 맨 눈인 시즈오는, 약간 인상을 찌푸리며 그것을 바라보았고, 내용이 조금 이상한지라 혹시 시즈오의 신경을 건드리지는 않을까 내심 걱정하던 세르티는 - 시즈오가 자신에게 화를 낸 적은 없었지만 - 긴장한 마음으로 시즈오의 반응을 기다렸다.

" 되고 안되고 이전에 병에 걸린다고. 죽을지도 모른단 말이야."

-하고 너무나도 당연하다는듯한 어투로 돌아오는 대답. 뒤에서 투닥거리는 둘의 소리가 뚝 하고 멎더니, 곧 터져나오는 신라의 웃음소리가 거실안을 가득 메웠다. 다시한번 시즈오에게 그러한 대답을 들어버린 이자야는 이미 체념한듯 지끈지끈 아파오는 머리를 꾹꾹 누르며 답답한 심정을 안으로 눌렀고, 세르티는 그 중간으로써 웃어야할지 말아야할지 미묘한 상태였다. 그런 분위기를 눈치챘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유를 전혀 모르는 시즈오는 무엇이 잘못되어 신라가 저렇게 웃고, 이자야가 저렇게 복잡미묘한 표정을 짓고있으며, 세르티의 손짓이 멈추었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자신이 한 말 중에 그 이유가 될만한 것이 없었기에, 아무리 좋지 못한 머리를 굴려도 그 해답을 찾아낼수는 없었다.

『시즈오.... 그거말야. 잘못된 지식이라구.』

머리위로 계속하여 물음표를 띄우며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시즈오의 모습을 보다못한 세르티가 그의 잘못된 지식을 제대로 되잡아주려 손을 움직였다. 원래대로라면 자신보다는 의학적 지식이 훨씬 더 뛰어난 신라가 설명을 해야했지만, 이미 웃느라 정신이 없는 그는 설명을 할만한 상태가 못되었고, 게다가 신라가 설명을 했다면 그가 가지고 있는 의학적지식과 이상한 사자성어까지 섞어가며 어렵게 말을 꺼냈을 것이므로, 공부쪽으로는 아이같은 지식이 많은 시즈오가 그것을 이해를 할지조차 미지수였기에, 자신이 가볍게 설명하는것이 낫다고 빠르게 판단한 것이다. 거리 뒤쪽의 일을 많이 하고, 싸이코적인 정보상인에게 자주 놀아나며, 이 정신없는 무면허 의사와 지지고 볶으며 함께 산 덕분에 는것은 이런 판단력밖에 없음을 느끼며, 세르티는 자신의 그림자까지 이용하여 빠르게 글을 작성해나가기 시작했다. 시즈오는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것인지 정말 궁금했던 모양인지 PDA의 화면쪽으로 몸을 기울여 그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기 시작했다. 얼핏보이는 시즈오의 진지한 시선이, 세르티는 꽤나 보기 좋다고 생각했다.

『에이즈는 말이야.... 음.......... 아주아주 희귀한 병이라 염려하지 않아도 되 !』

그러나, 세르티에게는 인간의 병에대한 자세한 지식이 없었다. 감기나 배탈같은, 아주 가벼운 것들정도는 대강이나마 알고 있었지만 에이즈까지는 그리 많이 알고있지는 않았다. 게다가 시즈오에게 그것을 더욱 더 쉽게 풀어서 설명하라니. 세르티는 잠시 고민하듯 '.....'을 반복하더니, 생각하기 귀찮아졌는지 대강 끝을 맺었다. 사실, 그리 희귀한 병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시즈오의 몸은 인간과 다르니까 병에는 잘 걸리지 않지 않을까하는 마음에, 일단 그의 잘못된 지식을 바로잡는것이 우선목표이므로 그리 설명한것이지만, 사실적으로는 잘못된 지식이 바로잡기는 커녕 오히려 더 요상하게 만들어버린것이라는 건, 세르티 그녀조차 알지 못했다. 그리고 세르티의 PDA와는 거리가 있던 신라는 그녀의 잘못된 설명을 보지 못했기에, 시즈오는 그 지식에 그대로 노출되었고, 그대로 받아들였다. 아하, 그렇구나, 하며.

" 그럼 안걸린다는 건가 ?"

『그런거지.』

그렇게 납득한 시즈오는, 아까전 자신이 그것때문에 이자야를 내던진것을 상기하며, 시즈오와 세르티의 대화(?)를 얌전히 시청중이던 이자야에게 아주 짧고 조그마하게 사과의 뜻을 전했고, 그것에 충분히 만족하다 못해 그런 시즈오에게 정말 몸서리쳐질정도의 귀여움을 느낀 이자야가 몸안에서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견디지 못하고 시즈오에게 몸을 날려 그를 꽈악, 껴안았다. 떨어져, 하며 짜증이 난 듯한 어투로 시즈오가 그에게 말을 했지만, 이미 입이 귀까지 걸려있는 이자야는 그것을 듣는둥 마는둥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버렸다.

이제 제대로된 지식을 알게 된 그와 아까 하던짓을 계속 하고싶은 마음이 없는것은 아니었지만, 이자야는 지금당장 이 손끝에 닿고있는 얄쌍한 허리를 탐하고싶은것을 간신히 억둘렀다. 주위에 신라와 세르티가 있는것도 한몫했지만, 지금 그를 덮쳤다가는 자신이 그의 손에 죽을것임이 분명했기 때문에. 이제 그가 병으로 자신의 밀어낼 이유가 사라졌으니, 아까처럼 다시 분위기에 취하게 만들어 그를 탐하는것은 이자야에게는 일도 아니었으므로, 그 날을 기다리며 이자야는 그저 시즈오를 안고있는 팔에 더욱 더 힘을 줄 뿐이었다.

- fin.

그리고 behind story.

**일주일쯤 전. 신주쿠, 오리하라 이자야의 아파트.

" 그래서, 시즈오씨는 이자야와 섹스해본적 있어 ?"

" 푸웁-!"

시즈오는 차마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노란머리 소년의 입에서 나온 말에, 마시고있던 차를 뿜는 행위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교복차림을 자주 봐오고, 얼굴 또한 한참은 앳되어 보여, 자신보다야 한참 어린 소년에게 평소와 같은 ' 존댓말을 써라' 라는 말을 할 수 조차 없을만큼 시즈오는 충분히 당황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저 소년이 지금 무슨 말을 한것이란 말인가 ? 저 입에서 나온 말이 앞으로 이 일본을 끌고갈 창창한 10대 청소년의 입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나올 종류의 것이란 말인가 ? 물론 거리에서 헌팅이라던가, 를 자주 하는것을 봐왔기에 그리 순수하지는 않을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얘기를 꺼낼줄은 몰랐기에 시즈오는 벌어진 입으로 줄줄 흘러내리는 차를 닦을 생각도 못하고 멍하게 자신 앞의 소년- 키다 마사오미를 바라보았다.

" 없구나 ? 안어울리게 순정파네. 재미없어."

이 사무실의 주인이자 자신의 고용주이기도 하는 사람의 험담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키다는 그제서야 주섬주섬 근처의 티슈를 뽑아 입가를 닦기 시작하는 시즈오를 쳐다봤다. 이자야와 시즈오, 겉으로 보기에는 만나기만 하면 펄쩍 뛰며 싸우는 원수사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정작 그 둘은 사귄지 한달이 다되가는 커플이었다. 남자와 남자끼리 어떻게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지, 여친까지 있는 노말인 키다로써는 조금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역겹다고 생각할 정도로 이해심이 부족하지는 않기에 그냥저냥 조금 축하해주며 보고있는 상황이었다.

정작 사귀기 시작했으면서도 만나면 티격태격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 뒤로부터는 시즈오가 화나지 않은 상태로 이자야를 직접 만나러 온다던가, 이자야가 싱글싱글 웃으며 시즈오에게 메일이나 전화를 건다던가, 하는것으로 보아 사귄다는 자각정도는 있는 모양이었다. 이자야에게 적대감이 있는 키다로써는 핑크빛 만발하며 러브콜을 하고있는 그의 모습이 조금 많이 고까웠기에, 조금 그를 골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 무렵, 그냥 혹시나 하여 이자야를 보러 온 시즈오에게 넌즈시 말해본 것인데, 이렇게 격한 반응을 하며 부정할줄은 몰랐기에 조금 흥미가 일기도 했다.

" 하고싶은 마음은 있어 ? 시즈오씨."

" 뭐 ? 있겠냐 !"

펄쩍 뛰며 대답하는 시즈오의 반응이 조금 재밌다고 느낄 무렵, 키다의 마음속에 하나의 사악한 생각이 떠올랐다. 언제던가, 자신이 한 행동을 자랑하기를 좋아하는 이자야가 자신에게 웃으며 말해주었던 말. '시즈는 병이라면 딱 질색을 하니까 ! 무려 총을 피하는 이유가 납중독이 무서워서 라니까 ! 정말 바보같아 !' 입으로는 욕을 하고 있지만 웃고있는게 마치 애인자랑을 하는 팔불출같아서 대강대강 넘긴 말이었지만, 이렇게 기억하고 있는 자신은 정말 천재라고 생각하며 키다는 그 특유의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시즈오에게 말했다.

" 그럼 그 마음 변하면 안돼 ! 이자야는 모르지만 남자끼리 하는건 무지무지 아프고," " 에이즈 라는 무서운 병에 걸릴수도 있다구요 !"

이것이, 사건의 원흉이었으나 아는 이는 키다와 시즈오, 본인들 외에는 아무도 없으리라.

- 진짜로 fin.

 

Posted by 하리쿠
2013. 1. 17. 01:51

 이자야는 오늘 기분이 좋았다. 만면에 미소를 가득 띄운 채 폴짝폴짝 뛰어가는 모습은, 누가 봐도 기쁜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활발해보였다. 앞으로 내딛어지는 발걸음은 어찌나 가벼운지, 조금 진부한 표현을 빌리자면 '구름 위를 걷고 있는 것' 처럼 사뿐사뿐했다. 웃음끼를 가득 안고 있는 얼굴은 마치 여자처럼 고와서, 꽃이라도 흩뿌려지는 배경이라도 넣어주어야 할 만큼 생기넘쳤다. 스무살이 넘은 남자가 할 수 있는 행동을 넘어서 조금 유치하고, 좋게 말하자면 순수해 보이는 모습의 그는, 오늘도 역시 이케부쿠로의 거리에 위치해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자야가 걸음을 멈춘곳은 이케부쿠로 역의 동쪽출구인 이케후쿠로. '이케후쿠로' 라는 부엉이 동상이 배치되어있는 그곳은 젊은이들의 만남의 장소로 자주 이용되는 곳이었다. 이자야는 언뜻 보기에는 그저 친구라던가, 연인을 만나러 온 젊고 잘생긴 청년같아보였다. 그리고, 오늘만은 그것이 정답. 평소 어둠에 몸을 반쯤 담그고 정보상인으로써 야쿠자를 비롯한 일상 뒤편의 사람들부터 시작해서, 그저 평범하다면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일반 고교생들까지에게 정보를 넘겨주고 돈을 받거나, 아니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로써 여러 사람들을 움직여 자신의 '인간러브'라는 철학과 취미를 즐기는 그런 것 말고, 이자야는 오늘만큼은 평범하게 인간적인 일을 해보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잠시 걸음을 멈춘 이자야는 아직도 충분히 밝아보이는 눈빛으로 그 동상앞에 짜증스러운 얼굴로 서있는 남자를 응시했다. 보통 일본 남자들보다는 크다고 할 수 있는 키와, 그와 걸맞지 않는 얄쌍한 몸매를 드러내주는 바텐더차림의, 이케부쿠로 최강남자, 싸움인형 헤이와지마 시즈오. 멀리서 보기에도 눈에 띄는 그는, 역시 멀리서 보기에도 잔뜩 짜증이 나있음을 알 수 있었다. 화를 식히려고 나름 노력하는 모양인지 앙 다문 입술에 물고있는 담배나, 초조함과 지루함을 한껏 들어내주는 떨리는 다리나, 팔짱을 낀 채 계속 핸드폰을 내려다보는 시선 또한 그랬다. 그리고, 역시나 그 원흉은 이자야였기에, 그것을 보고도 이자야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 시즈~ 오래 기다렸어 ?"

" 네놈..... 지금이 몇시인줄 알아 !?!!"

화가 나 있음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짜증을 더욱 돋우기위해 평소보다 더 밝고 상큼한 목소리로 말을 건 이자야가, 역시나 잔뜩 돌아오는 고함에 만족스럽게 웃었다. 정말, 이런 가벼운것 만큼은 이렇게도 자신의 예상에 맞게 반응해주는 그가 참으로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자신이 공을 들여 세워놓은 계획을 예상에 벗어난 행동을 하여 망처놓는것 또한 그였지만. 아무튼, 시즈오를 이곳으로 불러낸것은 자신. 귀찮다며 내빼는 그를 슬슬 꼬시며 기어코 나오게 만든것도 자신. 그리고 약속시간은 오후 3시였으며, 지금 시간은-

" 음~ 정확히 4시 13분 42초 지나고있어."

정작 먼저 약속을 잡은주제에 한참을 늦은 것 또한 자신이었다. 사실, 이자야가 이곳에 도착한것은 2시가 막 지났을 무렵이었다. 말썽없이 동상 앞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던 이자야는 문득 무료함을 느꼈고, 장난삼아 그를 화나게 만들고 싶어졌기에 일부러 근처 카페숍에 들어가 커피한잔을 마시며 동상근처를 관찰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약속은 잘 지키는 타입인 시즈오는, 그가 정말정말 싫어하는 이자야지만 그래도 연인이라는 자각이 있는것인지, 아니면 그저 배려심이 많은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약속시간보다 약 10분정도 먼저 나왔고, 이자야는 그를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느긋하게 커피를 한잔 더 주문했다.

시간이 지나고, 지나고, 지나갈수록 나오지않는 자신에게 짜증이 치미는지 얌전히 서있던 그의 다리가 떨리고, 빼어무는 담배의 수가 늘고, 핸드폰을 바라보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이자야는 튀어나오는 웃음을 숨길수가 없었다. 결국 커피숍 안에서 크게 웃음까지 터트리며 그의 모습을 지켜보고있던 이자야는, 시간이 꽤나 지났음을 확인한 후에야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즐거운 마음으로 시즈오에게 다가갔다. 하나부터 열까지, 그를 짜증나게 만들기위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고생(?)한만큼 짜증을 내주는 시즈오가 무척이나 재미있어, 그를 만날때마다 이러한 행동을 자제할 수 없었다.

"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거냐, 이 벼룩새끼야 !!!"

잔뜩 소리를 지르며 근처 뽑아 던질만한것이 없나 주변을 두리번 거리는 시즈오에게, 이자야는 전혀 미안한 기색없이 - 처음부터 계획한 것이었음으로 - 성큼성큼 다가가 시즈오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내뻗었다. 갑작스레 얼굴로 다가오는 주먹에 시즈오가 크게 움찔하며, 그것을 피하려 고개를 뒤로 물렀으나, 정말로 때릴 생각은 없었는지 주먹은 센티를 남겨두고 멈추었다. 인상을 크게 찌푸리며 시즈오는 뭐냐는듯 이자야를 바라보았고, 이자야는 그의 시선에 빙글빙글 웃으며 주먹을 살며시 폈다. 자그마한, 상자.

" ..............뭐야."

" 시즈가 좋아하는 것 ?"

처음부터, 이걸 주려고 부른거였다구.

하고 가볍게 투정을 부리며,시즈오의 얼굴 앞에 위치해있는 상자를 다시 자신에게 가져와 푸르기 시작했다. 자그마한 상자의 뚜껑을 열자 들어있는 그것은, 자신의 존재를 뽐내듯 열자마자 지독한 단내가 코를 자극하는 예쁜빛깔의 초콜릿이었다. 여기에서 눈치를 챈 사람도 있겠지만, 이자야는 지금 아주아주 진부한 짓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사귀어온 다른 여자들과는 이런 달콤한 연애를 해본적이 없었음으로, 이자야로써는 이것이 최선이었다. 그리고 단것을 좋아하는 시즈오로써는, 그 안에 들어있는 동그랗고 자그마한 초콜릿이 매우 반가웠다. 아무래도 잔뜩 짜증이 나있고 아까부터 담배나 뻑뻑 피워대고 있는터라 입안이 텁텁했는데 잘됬다, 싶었다.

" 내가 직접 만든거라구 ? 아- 해봐."

두 손가락으로 조심스레 집어 초콜릿을 시즈오의 입술 앞으로 가져간 이자야가, 시즈오의 격한 반응을 기대하며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남자들끼리 무슨 징그럽게 먹여주기냐, 하는 짜증섞인 말이라던가, 아니면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오를 정도로 화를 낸다던가 하는, 그런종류의 것이 나오지 않을까 하며 두근대는 마음으로 시즈오를 바라보는데, 이번에의 시즈오의 행동은 이자야의 예상을 벗어났다. 시즈오가 얌전히 입을 벌려 먹어준것이었다. 일부러 조용한곳이라던가, 인적이 드문곳도 아닌 이케부쿠로 거리 한가운데에서 한 행동이었는데, 그것을 순순히 받아준 시즈오에 당황한것은 오히려 이자야쪽이었다.

처음 초콜릿이 입에 들어왔을 때의 달콤함을 지키려는듯 입안에서 그것을 굴리고있는 시즈오의 모습에 이자야는 왠지 모르게 주변사람들의 시선이 자신들에게 꽂히는것을 느꼈다. 하긴, 그것도 그랬다. 거리 한복판에서 초콜릿을 먹여주는 두 남자라니, 조금 징그러울법도 했다. 그 순간, 이자야의 머리속에 하나의 장난이 떠올랐다.

사실, 처음에의 이자야의 계획은, 먹여주려는 자신을 시즈오가 거부하고, 그 후 시즈오와 함께 아까 자신이 있었던 커피숍에 들어가 다시 시즈오에게 그것을 주려고 했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그 초콜릿 안에 자신이 그에게 주려고했던 '무언가'가 들어있기 때문. 다른 남녀간이었다면, 직접 그것을 손에다가 끼워주며 건냈어야함이 맞지만, 그런 행동을 할 정도로 그 둘간의 관계는 정답지 않았고, 그만큼의 오글거리는 행동을 남자 둘이서 할만큼 로맨티스트들도 아니었다. 그래서 이자야는 조금 진부하지만, 음식안에 그것을 넣는것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시즈오가 얌전히 먹어버렸다. 자신의 계획이 틀어져버렸다. 그러나, 이자야는 오히려 잘됬다 싶었다. 이제는 오물거리며 초콜릿을 겉에서부터 씹어먹고있는 시즈오가 금속의 그것을 발견했을 때, 그리고 그것을 뱉어냈을 때 이곳, 거리 한복판에서 크게 프로포즈를 하면, 과연 그의 반응은 어떨까 ? 아마 고개도 들 수 없을만큼 창피하겠지 ? 게다가 그는, 이케부쿠로에서는 모르는사람이 한명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의 유명인인데 ! - 여기까지 생각을 마친 이자야는 이제 곧 자신이 주려고 했던것을 발견하고 뱉어낼 그를 향해 할 고백의 말을 생각했-......

" 콰득,"

" …………응 ?"

순간, 무언가 잔뜩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뜬금없이 울려퍼진 소리에 이자야는 벙찐 얼굴로 그 소리의 출처를 찾기 시작했고, 마침내 알아냈다. 그러나 이자야는, 차마 그 소리가 아직도 평온한 얼굴로 초콜릿을 먹고있는 시즈오의 입에서 났다는것을 인정하고싶지 않았다. 이러한 이자야의 생각을 산산히 짓밟듯, 금속이 망그러지는듯한 소리는 계속해도 울려버렸다. 시즈오는, 아직 그 소리가 자신의 입에서 난다는것을 눈치채지 못한듯, 아직도 오물거리고 있었고, 마침내 입에 물고있던것을 삼켜버렸다.

이자야는, 그 순간에서도 도저히 믿고싶지 않았다. 저기말야 시즈, 그거 꽤나 비싼거였다구……….

-fin

 

Posted by 하리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