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17. 23:32

밥상을 차리던 델릭은 식탁을 내려다보며 자연스레 한숨을 내쉬었다. 항상 차리던 밥상의 한 구석이 허전하다. 몇일째 돌아오지 않는, 항상 지겨울정도로 옆에 붙어다니던 어떤 한 사람-사람은 아니었지만-의 부재 때문이었다. 자신과 같은 집에서 사는 남자 셋 모두가 요리를 하면 음식의 재창조를 할 만큼 재능이 없어서 어거지로 맡게 된 요리는 의외로 재미가 있었기에 지금은 일상이 되어있었다. 항상 놓는 젓가락의 갯수는 먹는이의 수만큼 4개였지만 언젠가 3개로 줄어있었고 그 횟수도 두 손이 넘어갔다. 안들어온 날도 세기를 포기할 정도로 늘어났다. 원래는 점심을 안드신다고 들었지만 이사오고 난 뒤부터는 먹기 시작한 히비야의 것까지 차리고 난 델릭은 사이케의 빈자리로 시선을 옮기고는 인상을 조금 찌푸렸다.

…밥은 잘 쳐먹고 있는거냐고.

곧 츠가루와 히비야가 차려진 점심을 먹기위해 앉았지만 델릭은 차마 그들에게 시선을 줄 수가 없었다. 밥밥밥-! 하던 사이케가 눈에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아 왜 안오냐고, 하고 불평을 해보아도 자리에 없는 이는 들을 수 없었다. 사이케의 빈자리는 이렇게 언제 어디서나 느껴졌기때문에 델릭은 요즘 심기가 예민해져 있었다. 몇번이고 문자를 하고 멘션을 보내도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핸드폰을 보지도 못 할 정도로 바쁜것인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씹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언제나 좋아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살던 사이케에게 의심이 들기 시작한 것은 좀 된 일이었다.

" 안 먹나요?"

멍하게 사이케의 빈자리를 바라보던 델릭의 정신을 차리게 한 것은 츠가루의 목소리였다.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보는 사람이 다 안쓰러울 정도로 침울해 있어 사람을 걱정시킨 주제에 집을 나가있던 히비야를 데려온 츠가루는 뻔뻔스럽게도 너무나도 기쁜 얼굴을 하고 있어서 델릭은 차마 그를 마주하고 심하게 화를 낼 수가 없었다. 비록 멘션을 몇 개 보내고, 돌아왔을 때 한 대 때리긴 했지만 델릭의 성격으로는 상당히 많이 참은 것이었다. 내심 보고 싶기는 했기에 몇 일 동안은 그에게 아침마다 불평불만않고 깜짝 놀랄만큼의 진수성찬을 차려주긴 했지만 지금은 의미가 없었다. 항상 맛있게 먹어주던 사람이 없는데 대체 무슨 맛으로 상을 차리란 말인가. 물론 츠가루와 히비야도 늘 자신의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긴 했지만 그것과는 달랐다. 반찬을 부실하게 만든다던가는 아니었지만 델릭은 요즘 통 요리에 재미를 붙일수가 없었다. 자신이 재미를 가지지 않고 만든 요리는 다른 사람은 어떨지는 몰라도 장본인에게는 맛이 없는 법이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그랬다.

츠가루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린 델릭은 고개를 몇 번 끄덕인 후 밥그릇을 들었다. 젓가락으로 뜨여진 밥은 고슬고슬했고 갓 한 것이었기 때문에 무척이나 맛이 있었지만 델릭은 아무래도 좋았다. 애써 한 반찬은 거들떠도 안보고 밥을 입 속에 우겨넣은 델릭이 눈을 조금만 위로 올리면 젓가락질이 서투른 탓에 자꾸 반찬이며 밥을 흘리는 히비야를 위해 감자조림이며 고기완자 같은 것들을 손수 먹여주는 츠가루가 보였다. 타임라인에서도, 이 건물 안에서도 4차원 주민으로 유명한 그들이었다. 자신의 타임라인에 유일하게 있는 누님은 그들을 신혼부부라고 칭했다. 맞는 말이었다. 사이케가 있었으면 에! 에에! 사이케 이런거 반대! 하며 달려들었겠지만 지금은 그럴 사람이 없었다. …형 보고싶다.

" ? 델릭?"

물음표를 띄우는 츠가루를 뒤로하고 델릭은 먹던 밥그릇을 내려놓고 일어났다. 식사중에 먼저 일어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언젠가 다같이 나베를 먹을 때 이자야에게 들은 적이 있었지만 그때에도 너나 잘하라고 대강 넘기었기에 별로 상관은 없었다. 그릇은 물에 담궈놓고 식탁 치우기 싫으면 걍 냅두슈. 내가 이따 나와서 설거지도 하고 치울테니까.

" 델릭 님."

발걸음을 조금도 숨기지 아니하고 내보이며 쿵쾅거리며 방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붙잡은 것은 델릭이 존경해 마지않는 히비야였다. 비록 그의 앞에는 밥풀을 비롯한 온갖 것들이 잔뜩 떨어져 있었지만 히비야의 표정은 그것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이케는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시지않습니까. 어디서 굶거나 잘못되지 않으실 분이라는 것을. 고개를 돌려 그의 말을 들은 델릭은 히비야를 향해 알았다는 듯이 입꼬리를 조금 올려보이고는 다시 돌아 방으로 들어갔다.

……그냥 제가 보고싶을 뿐임다, 왕자님. 나오는 것은 한숨 뿐이었다.

머리를 신경질 적으로 긁은 델릭은 음악이나 듣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의자에서 옆을 돌아보면 처음 만들어졌을 때 사이케가 연주해달라고 졸랐던 기타가 있었다. 4월이 시작할 때 나가서 새로운 기타를 사서 자신의 작업실에 넣어놓기는 했지만, 이것만큼은 버릴 수 없어서 자신의 옆에 놓아두었다. 종종 사이케가 자신이 작업실에 있지 아니할 때에도 기타연주를 듣고 싶어 했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자신이 이렇게 사이케를 보고싶어 하지 않았을 때 자신의 목에 매달리며 기타연주를 해달라며 그가 조를 때가 있었다. 기분이 좋으면 그것을 들어주었고, 기분이 나쁠때에는 오히려 신경질을 내며 내쫓았다. 지금의 기분이라면 그가 잠들 때까지 기타연주며 온갖 것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만들어 달라는 디저트도, 음식도, 불러달라는 노래도 다 불러줄 수 있을텐데 정작 해달라고 붙어있는 사람은 없었다.

델릭의 또다른 낙은 자신이 새로 시도한 음식을 사이케에게 맛보이는 것이었다. 녹화까지 해가며 항상 챙겨보는 요리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간혹 진짜 만들고 싶어지는 것이 생기면 나가서 재료를 사와 그날 저녁에 만들기도 했다. 재료를 사가지고 오면 사이케는 항상 델릭의 옆에 붙어 무엇을 만드냐고, 어떻게 만드냐고, 하며 떠들어 대곤 했다. 가끔 사이케가 너무 귀찮게 할 때에는 좀 꺼지라고 화를 내기도 막상 그가 옆에 없으면 심심했기에 항상 후회하곤 하는 행동이었다.. 델릭은 레시피 그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또는 먹어주는 사람의 입맛에 맞추어 조금의 양념을 더 추가했기 때문에 가끔 이상한 것을 넣어 맛이 엇나가기도 했다. 그렇기에 만들고 나서는 사이케에게 먹여주곤 했는데, 의외로 입맛이 까다로운 그는 생각보다 완벽한 평가를 했고, 그 뒤부터 음식의 평가는 사이케에게 맡겨졌다.

" …형, 보고싶다."

생각을 하고 나니까 더 보고싶은 마음이 강해졌다. 도대체 무슨 작업을 하기에 사람-은 아니지만-을 이렇게 집에 돌려보내지도 않는단 말인가! 델릭은 입술을 삐죽이며 컴퓨터 옆에 놓여있는 핸드폰을 켜보았지만 역시나 온 문자는 없었다. 트위터를 켜봐도 멘션함에는 익숙한 하얗고 핑크한 귀여운 남자는 없었다. 멘션함을 가득 채운 새까만 플사에게 테러 좀 그만 하라고 생각하며 델릭은 트윗 버튼을 눌렀다. 처음에는 사이케에게 멘션 오는 것 자체도 호모냄새때문에 싫어서 멘션도 스루하곤 했지만 이제는 익숙한 그의 아이디를 쳐 넣고는 델릭은 있는 힘껏 그에게 하고싶은 말을 써넣기 시작했다. 그래봤자 보고싶다로 시작해서 보고싶다로 끝나는 멘션이긴 했지만, 그 생각밖에 없음으로 당연했다.

그러니까 좀 돌아오라고…. 저도 모르게 입술에 가져다 댄 액정 너머의 사이케의 입술은 차가웠다.

Posted by 하리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