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17. 01:55

츠키시마는 솔직히 말해서, 울고싶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발로 거리의 아스팔트를 밟으며 걷고있자니 넘어져버릴것 같기도 했고, 어디서 돌부리가 튀어나와 자신의 발을 방해할지 불안했다. 원래 길을 잘 잃어버리는 터라 모르는 거리로 나서는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는 했지만, 여기는 자신이 자주 와보던 이케부쿠로의 거리였다. 그렇기에 길을 잃어버려 당황할 염려는 없었지만, 자신이 당면한 문제는 그것과는 전혀 다른것이었다. 평소라면 전혀 걱정할것이 못되는, 아주 당연스럽게 여겨지던 무언가의 부재. 그렇기에 새로운것에 익숙하지 못한 츠키시마가 이렇게 무기력하게 당하고있는것은 어찌보면 어쩔 수 없는것이었다.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며 거리의 구석구석까지 밝혀주는, 태양의 고도가 가장 높은 점심무렵, 츠키시마 시즈오는, 지금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시력이 없다던가, 하는것이 아니다. 딱히 다친것도 아니다. 그러나 시즈오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원인은, 겉으로 볼 때에는 츠키시마가 평소에 쓰고있는 것과는 전혀 다를것이 없어보이는, 선글라스였다. 매직으로라도 칠해놓았는지 바깥의 풍경을 전혀 내비치지 못하고 그저 새까만 암흑만을 보여주고 있었다. 분명 눈을 뜨고 있었음에도 눈을 감은것 같은 그러한 광경. 솔직히 말하자면 눈을 아래로 내리깔면 자신의 발밑정도는 보였고, 눈을 위로 치켜뜨면 파아란 하늘정도는 보였지만, 그정도로는 바로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불안감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츠키시마는 떨리는 손으로 잡아들고있는 핸드폰에 더더욱 귀를 파뭍으며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 그렇게 조금씩 걷다가는 날 새겠어."

있는힘껏 귀를 대고있기에, 핸드폰의 스피커를 타고 츠키시마의 귓속으로 직접 타고 들어온 목소리가 잔잔하게 울렸다. 분명 목소리는 무척이나 미성이었지만, 츠키시마는 여전히 앞이 보이지 않는 불안함에 바들바들 떨며 그 목소리에 대답조차 못한 채 발걸음을 옮겼다. 데이트약속이 있던 일요일 아침. 몇번을 만나도 두근두근한 마음이 전혀 가시지 않아, 오늘도 역시 자신의 연인 생각을 하며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준비를 마쳤을 때, 전화가 왔다. 발신자는 자신의 연인, 팔면육비 이자야. 몇분뒤에 만나기로 되어있어 그것조차 떨리는데, 벌써 전화로 대화를 하게 되다니. 츠키시마는 벌써부터 육비의 목소리를 듣게될 생각에 얼굴까지 빨갛게 달아올라 머리가 딩딩 하고 울렸다. 아.... 아...아아아아아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되있어요....!!!

그러나 기껏온 전화를 받지 않으면 육비에게 미움을 받아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츠키시마는 허둥지둥 그 전화를 받았고, -너무 허둥대는 바람에 전화기를 떨어뜨릴뻔했다.-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감춘 채 '여보세요' 하자, 스피커 저편에서 들려온 첫 소리는 '선글라스는 잊어버렸어 ?' 였다. 그러고보니, 항상 쓰고다니던 선글라스를 쓰는것을 잊어버릴뻔 했던 츠키시마는, 자신이 선글라스를 쓰고있지 않은 사실을 육비가 어떻게 알고있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일으키지 않은 채 자신의 침대옆에 놓여있던 그것을 썼고, 거기서부터가 시작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선글라스에게 당황하는 츠키시마를 향해 육비는 조용한 목소리로 그 선글라스를 쓰고 자신의 전화에만 의지한 채 약속장소로 오라는 터무니없는 것을 요구했고, 차마 육비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던 츠키시마는 얌전히 그 요구를 허락했다.

그리고 후회했다. 뭐든지 잘 해내는 육비였기에, 이러한 안내도 잘 할것이라 믿고 있었던 츠키시마에게 눈이 보이지 않는 장애는 생각보다 무서웠다. 물론, 육비의 설명이 부족했던것은 아니다. 정면에 사람이 있으니까 피해라, 앞으로 세발자국정도 더 가라, 여기는 횡단보도니 기다려라, 등등. 마치 바로 옆에서 보고있는것처럼 조곤조곤 설명해주는 육비의 목소리는 분명 완벽했지만, 무서운것은 무서운것이었다. 대체 뭐하는 짓이냐고 물어도 핸드폰 저편의 그사람은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유도 모른 채 덜덜 떨리는 발걸음을 옮기고있는 츠키시마는 아주 죽을맛이었다.

" 거기서 멈추고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

하는 명령에, 츠키시마는 바로 앞에 상대가 있는것도 아니것만 고개를 끄덕, 하고는 발걸음을 멈추고 몸을 틀었다. 그리고 그 순간, 바로 코앞에 세찬바람이 지나가며 자동차의 엔진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너무나도 놀라버린 츠키시마는 저도 모르게 히끅, 하고 딸꾹질을 해버렸고, 눈가에 하나가득 차있던 눈물이 흘러내려 버릴것만 같아서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입고있는 와이셔츠의 소매깃을 밑으로 끌어내려 눈가를 훔쳐보았지만 어째서인지 계속해서 소매가 젖어만갔다. 방금, 자신의 앞에 차가 지나갔다는, 그러나 자신은 그것을 보지 못했다는, 어쩌면 그것에 자신이 다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츠키시마는 차마 눈물을 그칠수가 없었다. 더이상 안돼, 무리야. 아무리 자신이 좋아해 마지않는 육비의 명령이라 할지라도 츠키시마는 다시는 이렇게 무서운 경험따위를 하고싶지 않았다.

이건 그거다. 전에 이자야씨의 '사무실을 이전했으니 놀러와도 좋아☆'하는 말에 큰맘먹고 지하철을 타고 모험을 떠났을 때, 분명 이자야가 자신에게 그려준 지도대로 찾아갔고, 혹시나 길을 잘 잃어버리는 자신이 실수라도 할까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갔것만, 이자야의 사무실은 커녕 우락부락 이상한 아저씨들이 모여있는 사무실의 문을 두드려버려서, 그 아저씨들이 자신을 째려봤을 때 같은 무서움. 결국 그것은 뉴페이스인 자신을 골려주기 위한 이자야씨의 장난이었고, 그것을 눈치챈 육비의 보호로 인해 째림을 당한것도 단 한순간 뿐이었지만, 츠키시마는 그 잠깐이 엄청난 무서움으로 다가와 그대로 주저앉아버렸었다. 츠키시마는 갑자기 몇달전의 자신이 생각났을만큼 지금의 상황이 무서워졌기에, 저도 모르게 다리의 힘이 빠져버렸다.

그리고, 그것은 츠키시마 시즈오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눈물이 차오른것이 귀까지 멍멍하게 만들어버린 것인지 겉의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서 무슨상황인지 잘 모르는것이 당연했지만, 겉으로는 위험천만했다. 왜냐하면, 츠키시마는 바들바들 떨리는 다리를 간신히 가누고 있었고, 그렇기에 비틀비틀했고, 방금 육비가 말했듯이 츠키시마는 횡단보도에 있었으며, 차가 바로 앞에 지나간것으로 알 수 있듯이 절때 인도에 있지 않았다. 그렇게 눈도 귀도 제 기능을 수행 못하는 상황에서 츠키시마는 여전히 훌쩍이고 있었고, 소매는 잔뜩 젖어버렸기에 자신이 이렇게 울어버렸다는 사실이 육비에게 전해진다면 '울보와는 사귀고싶지 않아.'하는 소리를 들어버릴까 두려웠고, 그러나 지금 상황도 충분히 무서워서, 빨리 상황을 끝내버리고 싶었기에 저도 모르게 육비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은 채 발을 내딛어버렸다. 그리고, 지금은 빨간불. 그리고,

빠아앙─────

하고 드라마에서나 울릴법한 길게 여운을 남기며 들려오는 경적소리 따위는, 츠키시마의 귀의 고막을 울리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옆에서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만큼의 약간의 거리를 두고 걷고있던 육비가 노리던 상황.

" .......내가 없으면 안된다니까."

여전히 연결되어있는 핸드폰에게 들릴만큼 속삭이듯 작게 중얼거린 육비가 진한 미소를 지으며, 차가 오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차도를 걷고있는 츠키시마의 행동에 경악과 걱정으로 놀란얼굴을 하고잇는 사람들사이를 헤치가 나가, 멍해있는 츠키시마의 허리에 자신의 팔을 감싸 끌어당겼다. 얼굴에 핸드폰의 자국이 생길정도로 꾹꾹 누르고있던 츠키시마의 귀에 박혀든 육비의 소리에, 그 말의 뜻을 모르고 멍해있던 츠키시마는 갑자기 자신의 허리에 감겨든 팔의 힘에 넘어지듯 자신을 맡기었고, 그랬기에 자신보다 키가 작은 육비의 품에 안겨들 수 있었다.

백허그당하듯 자신의 가슴에 가득 안겨든 츠키시마가, 아까의 반동으로 매직으로 칠해놓은 선글라스가 반쯤 벗겨진채, 아무것에도 가려지지 않은, 게다가 아직도 눈물이 한가득 담겨있는 맨눈을 동그랗게 뜨며 자신을 올려보자, 육비는 딱히 이런것을 원한것이 아니었지만, 정말 오늘 츠키시마를 괴롭히기를 잘 했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육비는 오늘 가만히 데이트하기가 심심했고, 자신이 먼저 한방 먹여주기도 전에 이자야에게 선수를 뺐긴것이 분했기도 했고, 얼마나 츠키시마가 자신을 좋아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기에, 오늘 그를 괴롭히겠다, 하는 생각으로 일을 벌인것이었지만, 츠키시마의 반응이 생각보다 재미있었기에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 ...육비씨 ?"

-하고, 물기어린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는것 마저도.

" 많이 무서웠어 ?"

육비는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다정한 목소리를 내며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예쁘게 호를 그리고있는 입술에 역시나, 츠키시마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어버버, 하며 말을 잇지 못했고, 그러한 츠키시마의 모습을 귀여워하는 육비는 예상했던 반응에 살며시 츠키시마의 앞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를 일으켰다. 차는 이미 지나갔고, 벌써 초록불이 되어있어 횡단보도를 지나가던 사람들이 흘끗흘끗 그들을 쳐다보았지만, 그것은 츠키시마와 육비의 신경을 조금도 끌지 못했기에 방해가 되지 못했고, 육비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난 츠키시마는 어정쩡하게 안겨있던 탓에 다리가 저려왔지만 내색하지 않은 채 육비를 마주보고 자그마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무서웠어요.

" 그럼, 데이트를 마저 하자구."

시원스럽게 내뻗어진 손이 잡으라는듯이 동그란 모양을 띄고있었기에, 츠키시마는 차마 그 손을 보고있는것마저 부끄러워져버려 눈을 최대한 내리깔았다. 아직 손보지 않았기에 반쯤 벗겨져있는, 밖을 투영시키지 않는 선글라스로 인해 내리깐 시선에는 까만색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츠키시마는 그것이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너무너무 좋아하고 있는 육비를, 그의 모습을 맨눈으로 계속 보고있자면 그것만으로도 얼굴에 피가 쏠려 화끈화끈했고, 관자놀이까지 지끈지끈해와서 츠키시마는 차마 그를 바로 마주볼수가 없었다. 그래도, 계속 손을 내뻗은채로 있으면 육비씨가 힘들테니까.

츠키시마의 손은 아까와 다른 의미로 떨리고 있었다. 아까는 무서움에 의해 떨렸다면, 지금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인해 차마 손끝을 제어할 수 없었다. 눈을 내리깔고 있어 육비의 손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점점 목 안으로 파고들어가는 고개를 더더욱 아래로 끌어내린 채 천천이 허공을 향해 손을 내뻗자, 곧 자신의 손을 가득 잡아오는 다른 손바닥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역시나 육비의 것이라서 츠키시마는 피어오르는 미소를 숨길 생각도 못한채 그대로 내보이며 얌전히 그를 따랐다. 역시, 육비씨를 좋아하기를 잘했어, 하며.

fin.

Posted by 하리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