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17. 01:57

눈은 오늘따라 무거웠다. 잘 뜨여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뜨고 나서, 나른한 눈꺼풀을 어떻게든 하기 위해 손을 들어 눈을 매만졌을 때에야 손의 뭉툭함이 느껴졌고, 그제서야 이자야쿠마는 어제 자신이 곰이 되었다는 것을 눈치챘다. 손가락이 없어서 보드라운 천의 느낌만이 있는 손으로 눈을 문질렀다. 꾹꾹 누르면서 잠을 깨고 싶었지만 솜이 든 손은 자신의 마음대로 무게가 실어지지 않았기에 불가능했다. 몇 번 눈 비비는 것을 시도하던 이자야쿠마는 곧 그것이 시간낭비, 힘낭비라는 것을 깨닫고 그만두었다. 몸을 일으키려고 시도하였으나 곧 자신의 허리-이 통통한 것을 허리라고 표현해야 하는 것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부근 압박감이 느껴졌다. 분명 어제 잘 때에는 시즈오쿠마쪽이 먼저 잠에 들어, 솜으로 되어있는 자신들이 덮기에는 두꺼운 이불 대신 얇은 천을 둘둘 감고 자는 따듯한 시즈오쿠마를 자신이 안고 잤는데, 어느새 자신들의 자세는 반전되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시즈오가 자신을 끌어안고 있는 것은 자주 있던 일이었기 때문에 별 감흥은 없었다. 항상 춥다고 투덜대면서도 시즈오는 항상 자신을 끌어안고 자고는 했다. 시즈오는 따듯했기에 끌어안으면 잠이 잘 왔지만, 왜 시즈오가 자신을 안고 자는지는 모를 노릇이었다.

아무튼, 오늘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손을 치우고 일어나 욕실로 건너가 세수를 했겠지만, 오늘은 그럴 기분이 들지 않았다. 몸은 솜밖에 들지 않아 가벼웠기에 손은 금방 치울 수 있었지만, 나른했다.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어제 처음 곰이 되었을 때, 자신과 시즈오가 데굴데굴 구르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했는지 생각해보았다. 평소라면 생각도 못할 행동이었지만, 곰이 되어서 인지는 몰라도 그 때에는 그것이 마냥 좋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은 겨우 7시밖에 되지 않았다. 잠시 눈을 굴려 시간을 확인한 이자야는 다시 눈을 감고 자신을 안고 있는 시즈오쿠마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몸 안에서 어제 먹은 핫케익과 생크림의 향기가 났다. 그 달콤한 향기를 맡으며, 이자야쿠마는 금방 잠에 빠져들었다. 폭신폭신한 구름속에 파고들어 둥둥 날고있는 기분이었다.


이자야쿠마가 다시 눈을 뜬 것은 조금 더 시간이 흐르고 난 뒤였다. 햇빛이 잘 드는 쪽을 선택했기에, 침실안에는 길게 햇빛이 스며들어 있었다. 솜이 그것에 의해 데워진 것일까, 몸이 답지 않게 따듯했다. 낯선느낌이 드는것이, 이 몸에는 쉽게 적응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물론, 익숙해 지면 안되겠지만. 이자야쿠마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자신의 허리를 꽉 붙들고 있던 시즈오쿠마는 어느새 데굴데굴 굴러서 저 침대 끝으로 가있었다. 건장한 남정네 둘이서 자던 침대였다. 특대인형도 아니고, 작은 인형 둘이서 자기에는 넓은 공간이었다. 어제 했던 것 처럼 이 위에서 데굴데굴 구르고 싶었지만 관두었다. 다시 손을 들어 눈을 비비었다. 천의 보드라운 느낌이 여전히 기분좋았다. 이자야쿠마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시즈오쿠마를 데굴데굴 굴려 침대의 가운데로 옮겨놓은 다음, 가장자리로 와서 바닥을 향해 뛰어내렸다. 콩. 의외로 귀여운 소리가 났다

평소에는 가까운 노선이었지만, 몸이 인형만큼 작아진 지금은 침대에서 문까지 가는 데에만 오랜 시간이 걸렸다. 발바닥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뾱, 뾱, 하고 울었다. 도대체 이 몸은 어떤 구조로 되어있는거지 ? 이자야쿠마로써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열심히 발을 움직인 결과 문이 있는 곳 까지 다다른 이자야쿠마는 또 다른 난관에 부딛쳤다. 어째서인지, 항상 열려있던 문이 오늘따라 닫혀있었던 것이다. 사는 사람이라곤 자신과 시즈오밖에 없고, 그렇기에 딱히 방문을 닫는데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데 오늘따라 왜 굳게 닫혀있는지 모를 노릇이었다. 입술을 한 번 삐죽인 이자야쿠마는 -항상 삐죽거리는 입술이긴 했지만- 문고리를 잡기 위해 손을 위로 뻗었다. 아슬아슬하게 문고리 쇠의 아랫부분이 손끝에 스쳤다. 이 정도로는 안닿나 ? 하는 수 없이 꽁지발을 들어 두 손으로 문고리를 움켜쥔 이자야쿠마가 간신히 그것을 돌렸고, 의외로 가볍게 돌아간 문고리는 금방 문이 열릴 수 있게 만들어주었고, 문은 생각보다 매끄럽게 열려 자신의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콩.

이자야쿠마는 문에 밀려 넘어져 엉덩방아를 찢고 말았다. 가벼운 솜이었기에 바닥에 닿은 몸은 공중을 향해 튀어올라 한참을 콩콩거렸다. 들썩이던 몸이 잦아들었을 때, 왠지 모르게 위아래로 튀어오르던 방금전이 재미있었던 이자야쿠마는 몇 번 더 몸을 위아래로 들썩였다. 몸 안에서 솜이 움직였다. 썩 좋은 느낌은 아니었기에 곧 그만두었다. 이제 일어나서 욕실을 향해 가야하는데 영 움직이기가 귀찮았다. 곰이 된 이후로부터 몸이 나른한게…, 왠지 굴러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기에, 이자야쿠마는 오늘도 구르기로 했다. 굴러서 욕실에 도착을 한다면 구르고 싶은 자신의 마음도, 욕실에 도착한다는 자신의 목적도 해결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자야쿠마는 구르기로 했다. 몸에 힘을 꽉 주고 데굴, 하고 굴렸다.

데굴데굴데굴데굴('')( :)(..)(: )...

열심히 몸을 굴렸것만 눈 앞의 풍경은 별로 바뀌지 않았다. 이자야쿠마는 다시 한 번 몸을 더 굴리기로 했다.

데구르르르...('')( :)(..)(: )('')( :)(..)(: )

구르는 동안 천장을 보았는데, 왠지 모르게 똑같은 무늬가 반복되었다. 그제서야 이자야쿠마는 자신이 똑같은 자리를 빙글빙글 돌고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곰이 되니 이런 것 조차 둔해진 모양이었다. 자신이 생산성없이 그저 제자리를 데굴데굴 구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챈 이자야쿠마는, 조금 더 제자리를 구르기로 했다.

데굴데굴 데구르르('')( :)(..)(: )('')( :)(..)(: )('')( :)(..)(: )...


아, 재미있었다. 아무 의미 없이 제자리를 도는 것을 마친 이자야쿠마는 여전히 일어날 생각은 눈꼽만큼도 하지 않고, 아까 자신이 목표한 대로 욕실을 향해 몸을 굴렸다. 조금 아픈 문턱을 넘고 거실을 데굴데굴 굴러 욕실 앞에 다다른 이자야쿠마는 천천히, 아주아주 천천히,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으로 몸을 일으켜 욕실안으로 기어가는 듯이 들어갔다. 키가 닿지 않아, 곰이 되기 전에 미리 가져다 놓은 의자 위로 올라가 거울을 보았다. 새까만 구슬같은 눈과 삼자형의 입모양-물론 한 쪽이 조금 올라가긴 했지만.-, 새까만 머리 위에 동그랗게 나있는 귀까지. 손을 들어 귀를 만져보고 싶었지만 머리가 커서 귀까지 닿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이따가 시즈오쿠마의 귀라도 만져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이자야쿠마는 수도꼭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앗, 그러고보니. …인형인데 물이 닿아도 되나 ? 아주 간단한 의문이 떠올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물이 닿으면 솜에 금방 흡수되어 몸이 무겁고 축축해 질 것 같았다. 이자야쿠마는 거울을 보고 눈꼽만 대충 떼고는 의자에서 뛰어내렸다. 여전히 콩, 했다.

뾱뾱뾱뾱.

천천히 걸어서 거실로 나온 이자야쿠마는 약간의 허기짐을 느끼고 냉장고를 향해 다가갔다. 커다란 냉장고의 손잡이를 두 손으로 잡고 열었고, 여전히 익숙하지 않음에 엉덩방아를 콩, 했다. 엉덩이쪽에는 특히나 솜이 많아서 전혀 아프지는 않았다. 넘어진 몸을 일으켜 냉장고 안을 살피니, 단것을 좋아하는 시즈오 때문에 항상 사다놓는 푸딩이 있었다. 설탕덩어리인 저것을 맛있게 먹는 시즈오가 항상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곰이 되고 나니 단것이 끌렸다. 그래서인지 어제는 시즈오쿠마가 한 산더미같은 핫케이크를 다 먹었었다. 이자야쿠마는 푸딩을 집었다. 냉장고 문을 닫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푸딩이 담겨있는 곽의 껍질을 깠다. 달콤한 향기가 울컥 올라왔다. 기분이 좋아졌다. 시즈오는 가끔 접시에 그것을 엎어놓고 말랑말랑한 푸딩의 느낌을 즐기며 먹곤했지만, 그렇게까지 할 기분은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귀찮았다. 숟가락을 가지러 가기도 귀찮았다. 이자야쿠마는 무작정 푸딩을 향해 입을 돌진시켰다. 입술에 닿아오는 푸딩은 말랑말랑했고 보들보들했고 달콤했다. 이자야쿠마는 그자리에서 숟가락도 없이 푸딩 하나를 먹어치웠다. 그럼에도 배는 차지않아서, 오히려 조금 들어온 단 것에 자극을 받았는지 단 것을 더 먹고싶다고 난리를 쳤다. 이자야쿠마는 하는 수 없이 시즈오쿠마를 깨우기로 했다. 자신은 요리를 할 줄 모르니 당연했다. 손에 들린 쓰래기를 대충 탁자, 는 손이 닿질 않아서 의자 위에 올려놓고는 이자야쿠마는 침실을 향해 갔다.

부엌에서 침대까지는 멀었다. 침대는 높았다. 두 손을 침대 위에 올린 다음 이불을 잡아 끙끙 기어오른 이자야쿠마는 시즈오쿠마를 향해 기어갔다. 시즈오쿠마는 여전히 세상모르게 자고있었다. 곰이 되자 더 잠이 많아지고 게을러진 것 같았다. 아직 겨울잠 잘 때는 아니라구, 시즈오쿠마. 이자야쿠마는 조심스레 시즈오쿠마를 살피었다. 갈색에 가까운 피부톤, 여전히 둘둘 말고있는 이불, 곱게 감기어진 눈. 여전히 바보같은 얼굴이었다.

" 하암…. /)ㅅ`"

시즈오쿠마의 얼굴을 살피던 도중, 이자야쿠마에게 하품이 튀어나왔다. 너무나도 곤히 자고있는 시즈오쿠마에게서 잠이 전염된 것 같았다.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이자야쿠마는 어느새 배고픔도 잊고 시즈오쿠마의 옆에 누웠다. 여전히 햇빛은 따듯했다. 몸은 노곤했다. 시즈오쿠마를 끌어안으면 따듯했다.

졸려…. 밥은 나중에 먹어야지. 구르는 것도 조금 더 있다가 해야겠어.

- fin.

 

Posted by 하리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