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17. 01:51

 이자야는 오늘 기분이 좋았다. 만면에 미소를 가득 띄운 채 폴짝폴짝 뛰어가는 모습은, 누가 봐도 기쁜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활발해보였다. 앞으로 내딛어지는 발걸음은 어찌나 가벼운지, 조금 진부한 표현을 빌리자면 '구름 위를 걷고 있는 것' 처럼 사뿐사뿐했다. 웃음끼를 가득 안고 있는 얼굴은 마치 여자처럼 고와서, 꽃이라도 흩뿌려지는 배경이라도 넣어주어야 할 만큼 생기넘쳤다. 스무살이 넘은 남자가 할 수 있는 행동을 넘어서 조금 유치하고, 좋게 말하자면 순수해 보이는 모습의 그는, 오늘도 역시 이케부쿠로의 거리에 위치해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자야가 걸음을 멈춘곳은 이케부쿠로 역의 동쪽출구인 이케후쿠로. '이케후쿠로' 라는 부엉이 동상이 배치되어있는 그곳은 젊은이들의 만남의 장소로 자주 이용되는 곳이었다. 이자야는 언뜻 보기에는 그저 친구라던가, 연인을 만나러 온 젊고 잘생긴 청년같아보였다. 그리고, 오늘만은 그것이 정답. 평소 어둠에 몸을 반쯤 담그고 정보상인으로써 야쿠자를 비롯한 일상 뒤편의 사람들부터 시작해서, 그저 평범하다면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일반 고교생들까지에게 정보를 넘겨주고 돈을 받거나, 아니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로써 여러 사람들을 움직여 자신의 '인간러브'라는 철학과 취미를 즐기는 그런 것 말고, 이자야는 오늘만큼은 평범하게 인간적인 일을 해보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잠시 걸음을 멈춘 이자야는 아직도 충분히 밝아보이는 눈빛으로 그 동상앞에 짜증스러운 얼굴로 서있는 남자를 응시했다. 보통 일본 남자들보다는 크다고 할 수 있는 키와, 그와 걸맞지 않는 얄쌍한 몸매를 드러내주는 바텐더차림의, 이케부쿠로 최강남자, 싸움인형 헤이와지마 시즈오. 멀리서 보기에도 눈에 띄는 그는, 역시 멀리서 보기에도 잔뜩 짜증이 나있음을 알 수 있었다. 화를 식히려고 나름 노력하는 모양인지 앙 다문 입술에 물고있는 담배나, 초조함과 지루함을 한껏 들어내주는 떨리는 다리나, 팔짱을 낀 채 계속 핸드폰을 내려다보는 시선 또한 그랬다. 그리고, 역시나 그 원흉은 이자야였기에, 그것을 보고도 이자야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 시즈~ 오래 기다렸어 ?"

" 네놈..... 지금이 몇시인줄 알아 !?!!"

화가 나 있음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짜증을 더욱 돋우기위해 평소보다 더 밝고 상큼한 목소리로 말을 건 이자야가, 역시나 잔뜩 돌아오는 고함에 만족스럽게 웃었다. 정말, 이런 가벼운것 만큼은 이렇게도 자신의 예상에 맞게 반응해주는 그가 참으로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자신이 공을 들여 세워놓은 계획을 예상에 벗어난 행동을 하여 망처놓는것 또한 그였지만. 아무튼, 시즈오를 이곳으로 불러낸것은 자신. 귀찮다며 내빼는 그를 슬슬 꼬시며 기어코 나오게 만든것도 자신. 그리고 약속시간은 오후 3시였으며, 지금 시간은-

" 음~ 정확히 4시 13분 42초 지나고있어."

정작 먼저 약속을 잡은주제에 한참을 늦은 것 또한 자신이었다. 사실, 이자야가 이곳에 도착한것은 2시가 막 지났을 무렵이었다. 말썽없이 동상 앞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던 이자야는 문득 무료함을 느꼈고, 장난삼아 그를 화나게 만들고 싶어졌기에 일부러 근처 카페숍에 들어가 커피한잔을 마시며 동상근처를 관찰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약속은 잘 지키는 타입인 시즈오는, 그가 정말정말 싫어하는 이자야지만 그래도 연인이라는 자각이 있는것인지, 아니면 그저 배려심이 많은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약속시간보다 약 10분정도 먼저 나왔고, 이자야는 그를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느긋하게 커피를 한잔 더 주문했다.

시간이 지나고, 지나고, 지나갈수록 나오지않는 자신에게 짜증이 치미는지 얌전히 서있던 그의 다리가 떨리고, 빼어무는 담배의 수가 늘고, 핸드폰을 바라보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이자야는 튀어나오는 웃음을 숨길수가 없었다. 결국 커피숍 안에서 크게 웃음까지 터트리며 그의 모습을 지켜보고있던 이자야는, 시간이 꽤나 지났음을 확인한 후에야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즐거운 마음으로 시즈오에게 다가갔다. 하나부터 열까지, 그를 짜증나게 만들기위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고생(?)한만큼 짜증을 내주는 시즈오가 무척이나 재미있어, 그를 만날때마다 이러한 행동을 자제할 수 없었다.

"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거냐, 이 벼룩새끼야 !!!"

잔뜩 소리를 지르며 근처 뽑아 던질만한것이 없나 주변을 두리번 거리는 시즈오에게, 이자야는 전혀 미안한 기색없이 - 처음부터 계획한 것이었음으로 - 성큼성큼 다가가 시즈오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내뻗었다. 갑작스레 얼굴로 다가오는 주먹에 시즈오가 크게 움찔하며, 그것을 피하려 고개를 뒤로 물렀으나, 정말로 때릴 생각은 없었는지 주먹은 센티를 남겨두고 멈추었다. 인상을 크게 찌푸리며 시즈오는 뭐냐는듯 이자야를 바라보았고, 이자야는 그의 시선에 빙글빙글 웃으며 주먹을 살며시 폈다. 자그마한, 상자.

" ..............뭐야."

" 시즈가 좋아하는 것 ?"

처음부터, 이걸 주려고 부른거였다구.

하고 가볍게 투정을 부리며,시즈오의 얼굴 앞에 위치해있는 상자를 다시 자신에게 가져와 푸르기 시작했다. 자그마한 상자의 뚜껑을 열자 들어있는 그것은, 자신의 존재를 뽐내듯 열자마자 지독한 단내가 코를 자극하는 예쁜빛깔의 초콜릿이었다. 여기에서 눈치를 챈 사람도 있겠지만, 이자야는 지금 아주아주 진부한 짓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사귀어온 다른 여자들과는 이런 달콤한 연애를 해본적이 없었음으로, 이자야로써는 이것이 최선이었다. 그리고 단것을 좋아하는 시즈오로써는, 그 안에 들어있는 동그랗고 자그마한 초콜릿이 매우 반가웠다. 아무래도 잔뜩 짜증이 나있고 아까부터 담배나 뻑뻑 피워대고 있는터라 입안이 텁텁했는데 잘됬다, 싶었다.

" 내가 직접 만든거라구 ? 아- 해봐."

두 손가락으로 조심스레 집어 초콜릿을 시즈오의 입술 앞으로 가져간 이자야가, 시즈오의 격한 반응을 기대하며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남자들끼리 무슨 징그럽게 먹여주기냐, 하는 짜증섞인 말이라던가, 아니면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오를 정도로 화를 낸다던가 하는, 그런종류의 것이 나오지 않을까 하며 두근대는 마음으로 시즈오를 바라보는데, 이번에의 시즈오의 행동은 이자야의 예상을 벗어났다. 시즈오가 얌전히 입을 벌려 먹어준것이었다. 일부러 조용한곳이라던가, 인적이 드문곳도 아닌 이케부쿠로 거리 한가운데에서 한 행동이었는데, 그것을 순순히 받아준 시즈오에 당황한것은 오히려 이자야쪽이었다.

처음 초콜릿이 입에 들어왔을 때의 달콤함을 지키려는듯 입안에서 그것을 굴리고있는 시즈오의 모습에 이자야는 왠지 모르게 주변사람들의 시선이 자신들에게 꽂히는것을 느꼈다. 하긴, 그것도 그랬다. 거리 한복판에서 초콜릿을 먹여주는 두 남자라니, 조금 징그러울법도 했다. 그 순간, 이자야의 머리속에 하나의 장난이 떠올랐다.

사실, 처음에의 이자야의 계획은, 먹여주려는 자신을 시즈오가 거부하고, 그 후 시즈오와 함께 아까 자신이 있었던 커피숍에 들어가 다시 시즈오에게 그것을 주려고 했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그 초콜릿 안에 자신이 그에게 주려고했던 '무언가'가 들어있기 때문. 다른 남녀간이었다면, 직접 그것을 손에다가 끼워주며 건냈어야함이 맞지만, 그런 행동을 할 정도로 그 둘간의 관계는 정답지 않았고, 그만큼의 오글거리는 행동을 남자 둘이서 할만큼 로맨티스트들도 아니었다. 그래서 이자야는 조금 진부하지만, 음식안에 그것을 넣는것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시즈오가 얌전히 먹어버렸다. 자신의 계획이 틀어져버렸다. 그러나, 이자야는 오히려 잘됬다 싶었다. 이제는 오물거리며 초콜릿을 겉에서부터 씹어먹고있는 시즈오가 금속의 그것을 발견했을 때, 그리고 그것을 뱉어냈을 때 이곳, 거리 한복판에서 크게 프로포즈를 하면, 과연 그의 반응은 어떨까 ? 아마 고개도 들 수 없을만큼 창피하겠지 ? 게다가 그는, 이케부쿠로에서는 모르는사람이 한명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의 유명인인데 ! - 여기까지 생각을 마친 이자야는 이제 곧 자신이 주려고 했던것을 발견하고 뱉어낼 그를 향해 할 고백의 말을 생각했-......

" 콰득,"

" …………응 ?"

순간, 무언가 잔뜩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뜬금없이 울려퍼진 소리에 이자야는 벙찐 얼굴로 그 소리의 출처를 찾기 시작했고, 마침내 알아냈다. 그러나 이자야는, 차마 그 소리가 아직도 평온한 얼굴로 초콜릿을 먹고있는 시즈오의 입에서 났다는것을 인정하고싶지 않았다. 이러한 이자야의 생각을 산산히 짓밟듯, 금속이 망그러지는듯한 소리는 계속해도 울려버렸다. 시즈오는, 아직 그 소리가 자신의 입에서 난다는것을 눈치채지 못한듯, 아직도 오물거리고 있었고, 마침내 입에 물고있던것을 삼켜버렸다.

이자야는, 그 순간에서도 도저히 믿고싶지 않았다. 저기말야 시즈, 그거 꽤나 비싼거였다구……….

-fin

 

Posted by 하리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