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17. 01:56

- 사이데리 / 사이츠가 '역' 이라는 것은 사이케가 공이라는 뜻입니다.

" 그러니까, 사이케형이.. 좋아."

데리오가 머쓱한듯 머리뒷편을 긁적이며 말을 꺼냈을 때, 츠가루는 솔직하게 말해서 정말 기뻤다. 주변인들보다 특히나 어른스럽던 츠가루로써는, 화도 잘내고 부끄러움도 잘 타는 데리오가 - 자신보다 어리기는 해도 - 너무나도 어린아이 같아 보였기에 데리오에게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걱정이 샘솟던 참에 데리오가 자신에게 그렇게 고백을 해와서, 츠가루는 그의 말에 그저 기쁘게 미소지을수 밖에 없었다. 그 상대가 남자건, 자신들의 본체가 너무너무 싫어하는 이자야씨의 모습을 하고있건 간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이해심이 많은 츠가루는 동성간의 사랑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조금의 반발심도 없었고, 자신도 정말 그 사람이 좋다면 상대가 남자건 여자건 신경쓰지 않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츠가루는 정말 진심에서 우러나온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 정말요 ? 축하해요, 데리오씨 !"

하얀 기모노를 입고있기에, 아무래도 하얀 피부가 눈에 띄는 츠가루가 파아란 눈동자를 예쁘게 휘며 말했다. 손을 들어 데리오의 머리를 조금 쓰다듬자, 자신이 게다를 신고 있다고는 해도 자신보다 키가 조금 더 큰 데리오가 고개를 약간 숙여가며 그것을 받았기에, 데리오가 겉으로는 까칠하고 신경질 적으로 보여도 이런것에서 볼 수 있듯 배려심 많다는것을 알고있는 츠가루는 그러한 작은 몸짓에 역시나 지어지는 미소를 숨길 수 없었다.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해 항상 화내고 있는것 같아 보여 마냥 어려보이고 어려보였던 데리오가, 이제는 이렇게 한 사람을 좋아하는 남자가 되어버리다니, 형으로써 한편은 조금 씁쓸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츠가루는 기쁜마음으로 데리오를 응원해주고 싶었다.

그랬기에 츠가루는 '제가 응원해 줄께요 !'하며 긴 소맷자락을 팔랑이며 주먹을 불끈, 쥐고 화이팅 ! 하는 제스츄어를 취했다. 바다처럼 푸른빛의 기모노가 눈앞에 살랑거려, 하얀 츠가루가 마치 고운 선을 띄고있는 기모노에 녹아든듯 보였기에 데리오는 자신과 똑같은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츠가루가 매우 예쁘고 신비롭게 보였다. 게다가 어린아이처럼 화이팅이라니. 동생인 자신에게도 존댓말을 쓰며 항상 반듯이 웃고있고, 바른 말투에 차분한 성격인 츠가루의 순수한 모습에, 데리오는 방금까지 고백때문에 약간 찡그리고 있던 인상을 곧게 펴며 츠가루와 같이 예쁘게 웃었다. 항상 날카롭게 깎여있던 분홍색 눈동자가 호를 그리며 휘어있는 모습은, 썩 보기 좋았다.

데리오가 돌아간 후, 츠가루는 자신이 존재하고있는 프로그램속에서 자신의 의지로 하얀색 의자를 만들어놓고 그것에 털썩 앉아서는, 조금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츠가루의 방은 그 주인의 성격을 닮아 새하얬다. 하얀 벽지에 바닥, 한구석에 놓여있는 새하얀 침대까지. 물론, 이불은 츠가루가 즐겨입는 기모노를 닮아 푸른색의 무늬가 방울방울 새겨져 있었지만, 그것은 바르게 개어있었으므로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언뜻보면 어딘가 불안한 환자의 방 같아 보일수도 있었지만, 그 안에 츠가루가 존재하고 있었음으로 그 방은 새하앴음에도 불구하고 생기넘쳤고, 텅 비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넓은 초원을 보는것같은 편안함을 주었다.

츠가루가 진지한 표정을 짓고있는 이유는 당연히 방금의 데리오 때문이었다. 응원해줄께요 ! 하고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사실 아직 자신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져본적이 없었고, 그렇기에 남을 좋아하는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했기에, 책으로 몇번 봐오고 몇번 상상은 해봤지만 아직도 두리뭉실한 그 감정을 파악하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는게 츠가루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만약 자신이라면 데리오가 좋아해준다는 것만으로도 기뻐서 똑같은 감정을 가져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나, 사이케는 자신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아무리 같은 프로그램이라도,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듯이 츠가루 또한 사이케의 마음을 알 수 없으므로, 사이케가 데리오를 어떻게 생각할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츠가루가 고민하고 있을무렵,

" 츠-으 가루우-!!"

하며, 갑자기 발랄한 목소리를 하며 뛰어들어 오는 사이케에 한참 어떻게 해야 둘을 엮어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사이케에게 데리오의 매력(?)을 알려줄 수 있을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던 츠가루가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새하얀 코트와 핫핑크색 헤드셋을 한 채로 방방 뛰고 있는 사이케가, 츠가루의 방에 들어오자마자 도도도, 뛰어 츠가루에게 안겼다. 순간 사이케의 품안에 가득 안겨버린 츠가루가 갑자기 눈에 한가득 들어오는 하얀색에 정신을 못차리며 허둥지둥 했다. 그러는 틈에 츠가루가 앉아있는 의자의 양 옆 약간 비어있는 곳에 자신의 무릎을 걸치고 자세를 잡은 사이케가 위에서 츠가루를 내려다보는듯한 포즈로 츠가루를 향해 예쁘게 웃어보였다. 항상 웃는얼굴이라 별로 달라질것은 없었지만.

" 사실 아까아까 왔는데, 데리랑 웃고있어서 못들어왔다구 ! 데리가 웃는얼굴 처음봐 !"

여전히 방방거리는 목소리로 빙글빙글 웃으며 떠들어대는 사이케가 여전히 약간 당황한 얼굴을 하고있는 츠가루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자신을 향하게 올렸다. 갑자기 뛰어든 사이케 때문이기도 했지만, 보고있었다는 사이케의 말에 혹시 처음 데리오가 고백한 순간부터 보고있던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더더욱 당황해있던 츠가루가 갑자기 자신의 고개를 올리는 사이케의 행동에 자신의 당황한 얼굴을 완전히 드러내보였다. 그러나 그러한 츠가루의 얼굴조차 뭐가 그리 좋은지 방긋방긋 웃던 사이케가 다시 입을 열고 조잘거렸다.

" 저기저기, 츠가루 ! 사이케, 좋아 ? 나나, 사실 오늘 히비- 에게 갔다왔는데 ! 그냥 고백하는게 좋다고 해서 ! 사이케는 츠가루가 너-무 너무 좋다구 !"

얼굴이 매우 가까워서, 가뜩이나 높고 큰 사이케의 목소리가 귀로 그대로 전해져들어와 쨍쨍하고 울렸지만, 츠가루는 그것에 조금의 불쾌함도 없이, 당황한 표정을 다시 정리하여 편안한 얼굴로 만들고는 사이케를 향해 웃었다. 나도, 사이케가 좋아요. 하고, 츠가루로써는 당연한 말을 하자, 사이케는 그것에 뭐가 불만인지 인상을 살짝 찡그리며 볼을 부풀렸다. 아니야, 아니야 ! 하며 아무래도 큰 목소리의 톤을 더더욱 높히며 부정하는 사이케가, 무엇이 잘못된것인지 잘 모르겠는 츠가루는 그저 고개를 갸웃, 할 뿐이었다. 정말 츠가루는 데리오와 사이케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을 좋아하고 있었기에, 자신의 말에는 조금의 거짓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부분에서 사이케가 삐져버린것인지 전혀 모르겠을 다름이었다.

" 틀려 ! 사이케는 정-말 정말 좋아한다구 !"

" 네 ? ...저도 사이케가 정말 좋아-,"

사이케의 불만에 츠가루가 조곤조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자, 그 대답 또한 마음에 들지 아니했던 것인지 사이케는 츠가루의 말을 끈으며 자신의 고개를 내려 그대로 츠가루에게 입맞추었다. 고개가 올라간 채로 말을 하고있었던 츠가루는 아무런 저항없이 사이케에게 입술을 내주었고, 입술에 닿는 몰캉하고 따듯한 무언가가 처음에는 무엇인지 몰라 그저 눈만 동그랗게 떴으나, 곧 가까워진 꼭 감고있는 사이케의 속눈썹과 입술의 느낌에 당황하고 말았다. 의자의 손잡이에 가지런히 놓여있던 파란색 매니큐어가 발린 츠가루의 손끝이 움찔, 했다.

" 내가 츠가루를 좋아하는 마음은 이만-큼이라구 !"

키스, 라기에는 너무나도 짧은, 그러니까 가벼운 뽀뽀를 한 사이케가 여전히 눈을 동그랗게 뜨고있는 츠가루를 내려다보며 츠가루의 고개를 잡고있던 손을 놓고 허공을 향해 내뻗으며 휘져었다. 아마 이-따만큼 좋아한다는 표시이리라. 그러나, 츠가루에게 그런것따위는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츠가루의 머릿속은 이미 사이케와의 뽀뽀와 말로 인해 어지러웠기 때문에. 그러니까, 츠가루의 마음상태로 끝을 맺자면.

…………에 ?

- fin.

 

Posted by 하리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