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18. 23:24

- 형이랑 나에게 보내는 키워드: TV, 몸살, 차가운 손 kr.shindanmaker.com/215124

 

 

 

 

 

 

사이케가 아프다고 했다.

델릭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자신과 매우 비슷한 목소리- 츠가루를 통해 이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자신도 모르게 들고 있던 감자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냥 알려두는게 맞는 것 같아서요. 라는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끝기고 나서도, 델릭은 잠시 떨어진 감자를 주을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프로그램에게도 병이란 것이 존재하나? -라는 생각이 첫번째로 떠올랐다. 하지만 프로그램인 자신들에게도 피곤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였고, 온도까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인간과 닮은 그들이었기에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건물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던 츠가루가 쓰러져있는 사이케를 발견하자마자 이자야에게 옮겨 주었다고 했다. 그렇게 큰 상처를 입었던 츠가루도 일주일도 안걸려서 고쳐내었던 이자야에게 옮겨진 만큼 사이케는 큰 이상이 없을 것이다.

생각을 마친 델릭은 곧 떨어뜨린 감자를 주워들었다. 바닥에 닿은 껍질이 약간 벗겨져 있어서, 이건 영락없이 살 수 밖에 없었다. 들고있던 시장 바구니에 들고 있던 감자를 넣은 델릭은 일단 눈에 띄는 야채들에게 손을 뻗었다. 계산대로 가는 델릭의 발걸음은 평상시보다 조금 더 빨랐다. 카드를 내미는 손은 약간 떨렸고, 시장을 나와 집으로 향하는 델릭의 옆으로 거리들이 휙휙 지나갔다. 머릿속에는 사지못한, 오늘 저녁으로 만들 닭감자조림의 재료인 닭과 대파들이 떠올랐지만 아무래도 상관 없다고 생각했다. 사이케는 괜찮을 것이리라. 하지만 아픈 형의 곁에 자신이 없는 것이 말이 안된다. 떠밀리듯 집으로 들이닥친 델릭의 신발이 이리저리 거칠게 벗겨져 우당탕, 했다.

사이케는 자신의 침대에 누워 자고있었다. 숨을 고르기도 이전에 보이는 멀쩡한 모습에 맥이 풀렸다. 츠가루의 말만 들으면 -사람의 경우엔- 일주일 입원이라도 해야할 것 같았는데, 막상 그런것도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델릭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사이케가 누워있는 침대 옆에 엉덩이를 붙였다. 엄살이 너무 심하잖아. 사이케의 이마라도 찰싹찰싹 때릴까 싶었지만, 여기서 공격해야 할 것은 츠가루의 어휘선택이었기에 관두었다. 요새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밖으로 나다녔으니 힘들법도 했다. 자는 모습을 조금 훔쳐보다 거실로 나온 델릭운 대충 던져놓느라 바닥에서 구르고 있는 당근을 주워들며 저녁 계획을 세웠다. 죽이라도 만들 계획으로 닭이건 뭐건 아무것도 사오지 않았기에, 선택사항은 죽 외에는 없었다. 이것 가지고는 배가 부르지 않는다며 불평을 할 선배의 얼굴을 떠올리며 델릭은 룰루랄라 찹쌀을 씻기 시작했다.

" 데- 리-!"

냉장고에 있던 푸딩을 먹으며 TV를 보고 있던 델릭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 자신을 부른 사람- 형의 방으로 들어갔다. 곤히 자고 있던 아까의 모습과는 다르게 이불을 뒤집어쓰고 빼꼼히 나와있는 눈만 깜빡깜빡 거리던 사이케가 들어온 델릭을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이제 좀 괜찮냐? 하고 델릭이 묻자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모양이 아무래도 다 나은 모양이었다.

" 아파! 사이케 많이 아파!"

잔뜩 심통난 목소리를 하고는 획 등을 돌리는 사이케를 보고 델릭은 어쩔 수 없이 그의 침대 옆에 다시 앉았다. 삐걱거리는 침대의 무게감을 들으면서도 사이케는 델릭쪽으로 돌아 누울 생각도 안하고 등만 내보이고 있었다. 어디서 이렇게 삐져 온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럴 때에는 얌전히 져 주는 편이 나았다. 이불위로 삐죽이 나와있는 동그란 두상을 쓰다듬으며 델릭을 조용히 그의 기분에 맞추어 주기로 했다. 사이케는 아프니까 건들이면 안 돼. 하는 어투가 많이 누그러져 있어서 델릭은 조금 웃었다. 두상을 쓰다듬던 손이 땀에 살짝 젖은 목쪽으로 내려가자 사이케는 소리를 빽 질렀고, 그 반응에 껄껄 웃으며 델릭은 죽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 눕는 소리가 나서 델릭은 괜시리 기분이 좋았다.

델릭이 불려놓은 찹쌀과 잘게 자른 야채들로 죽을 하는 동안 틈틈히 사이케의 방을 들여다봤지만, 사이케는 이불에서 나오기 싫은지 빼꼽히 내어놓은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아프지 않은 것을 다 들킨 주제에 열심히 아픈 흉내를 내고 있는 사이케가 귀여워서 델릭은 하나밖에 남지 않은 달걀을 꺼냈다. 시장에서 달걀을 사오는 것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어서, 마지막 달걀으로는 자신이 야참으로 바닐라 아이스크림이라도 해 먹으려 했는데 그냥 형에게 주기로 한 것이었다. 야채죽에 달걀을 넣는 것은 아직 해본적이 없어서 맛이 있을까 잠시 고민은 했지만 다 해놓고 먹어보니 의외로 괜찮았기에 델릭은 그것을 그릇에 예쁘게 담았다. 김가루를 조금 뿌렸음에도 어딘가 허전해 보여서 남은 당근으로 토끼모양을 내서 얹었다.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사이케는 분명 마음에 들어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예상은 맞았다. 방으로 들고 가자마자 사이케가 벌떡 일어나서는 토끼! 하고 소리를 친 것이었다. 젓가락으로 낼름 그것을 집어먹은 사이케가 그제서야 아차 싶었는지 다시 이불을 덮고 누웠다. 자신은 환자니까 어서 먹여달라는 투정이 귀여워서 델릭은 큰 소리로 웃었다. 사이케는 자신이 말하고서도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는지 어서 먹여달라고 재촉을 했고, 델릭은 다시 한 번 껄껄 웃었다.

" 어떠냐?"

" 사이케를 위해서 만들어 준거니까 맛있다고 해줄께."

하얗게 연기가 오르는 죽이 뜨거울까 손수 후후 불어서 먹여주자 사이케는 냠냠 잘도 받아 먹었다. 주는 족족히 받아먹으면서 더 달라고 입을 벌리는 모습이 언젠가 시즈오와 나란히 앉아 보던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아기새같았다. 쪼끄만한 형이 괜시리 뿌듯해지는 순간이었다. 열심히 먹던 사이케가 죽이 반쯤 없어진 것을 굳이 고개를 들어 보고는 그만 먹을래! 하며 이불속으로 폭 들어갔다. 더이상 줘봤자 먹지 않을 것 같아서 숟가락에 남아있던 것을 자신의 입에 밀어넣은 델릭이 그릇을 내려놓았다. 가서 설거지나 할 심상으로 일어나려 자세를 잡는 델릭의 옷깃 끝에 잡아당기는 감각이 느껴졌다. 언제부터인지 자신의 셔츠 끝을 잡고 있던 사이케가 다시 이불에서 눈만 빼꼼히 내놓는 것이었다.

" 사이케 아프니까 같이 자!"

어리광이 잔뜩 담긴 말이었다. 결국에 사이케가 원하는 것은 이쪽인 것 같았다. 자신은 게임하느라 바빴고 사이케도 역시 일 때문에 밖으로 나돌아다녔기 때문에 이렇게 둘이 있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제대로 챙겨주는 것 또한 그랬다. 그래서 델릭은 애써 아픈 척-전혀 아파보이지 않지만- 연기를 하는 사이케에게 조금 속아주기로 했다. 사이케가 덮고 있던 이불을 걷고 안으로 들어가자 따듯한 기운이 물씬 풍겨왔다. 자신보다 한참은 체격이 작은 사이케가 자연스레 품 안에 쏙 들어와서 그대로 끌어안으니 얼굴을 가슴팍에 부비면서 덩달아 안아오는 것이 역시 이것이 정답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불 속에 얼마나 있었는지 손이 닿은 사이케의 등은 후끈후끈했다. 물론 밖에 있었던 자신과의 온도 차이 때문에 더더욱 그렇게 느껴졌을지도 모르지만, 뭐, 따듯하니 그러려니 했다.

고개를 살짝 숙이자 보이는 동그란 두상이 귀여워 조금 쓰다듬자 곧바로 자신을 바라봐오는 눈이 동그랬다. 같이 자자고 한 주제에 눈이 이렇게 말똥말똥해서야 잠은 커녕 눈을 감고 싶지도 않잖냐. 그건 사이케 쪽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서 델릭은 고개를 내려 얼굴을 가까이 대었다. 키스라도 하려는 듯이 다가오는 델릭에 사이케가 눈을 꼭 감고 응하려 했지만, 입술에 닿기를 몇미리 남겨두고 소리만 쪽, 하고 내는 것이 아닌가. 델릭은 눈을 꼭 감고있는 사이케를 보며 풋 웃으며 놀리려는 마음 100%인 것을 숨기려 하지 않아서, 사이케는 입술을 조금 삐죽이며 델릭에게 확 덮쳐들며 볼에 쪽! 하고 큰 소리가 나게 뽀뽀를 해주었다. 델릭은 사이케가 이렇게 나올 줄 알았다는 듯이 장난끼 어린 미소를 지으며 얌전히 당해줄 뿐이었다.

하핫, 먼저 달려들었다 이거지?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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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리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