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7. 14. 00:24

- 원고로 하던거였는데 모종의 이유로 그냥 공개.. 뒤는 이을지 안이을지 모릅니당








 형님들께서 마련해 주신 요양지는 생각보다 구석진 곳에 있었다. 보통 타고 다니던 리무진보다 작은 차가 향한 곳은 바다를 옆에 둔 어느 한적한 마을이었고, 도착한 곳은 그 마을에서도 조금 떨어진 별장이었다. 나의 건강을 위해 지었다고 형님들은 말했지만, 사실 병원에 있어봤자 차도가 보이지 않는 자신을 신경 쓰지 않으려 보내버렸다는 것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만죠메는 혼자 살기엔 커다란 별장을 고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 수는 없었다.


 만죠메가 처음으로 안에 들어서 한 일은, 자신의 시중을 들어주기 위해 있던 가정부와 집사들을 모두 내쫓는 것이었다. 옷을 받아주겠다며 옆으로 다가온 여자에게 필요 없으니 당장 나가라며 소리쳤다. 당황하는 눈빛들이 쏟아졌지만 그것에 주춤할 자신이 아니었다. 너희들은 모두 해고를 할 것이고, 만약 필요하다면 본가로 보내줄 테니 당장 짐을 싸라고 한바탕 난리를 치고 나서야 부랴부랴 방으로 돌아가는 그들을 볼 수 있었다. 아마 그들은 자신을 욕 할 것이다. 운전기사만 제외하면 모두 처음 보는 얼굴이었고, 자신은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을 향해 화를 낸 것이었다. 병원에서 자신의 병수발을 들어주던 사람들도 모두 내쫓았고, 본가에 있던 가정부들도 자신의 짜증에 견디지 못해 모두 그만두었다. 형님들께서는 생각해서 새로운 사람들을 뽑아 보내준 것이겠지만 아무것도 필요 없었다.


 자신의 병이 낫지 않을 것이라는 건 알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약했던 몸이었다. 언제 발작을 일으켜 쓰러질지도 모르는데, 그런 꼴사나운 모습을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고, 아무리 치료를 받아봤자 차도도 없을 테니 병수발 따위를 받고 싶지도 않았다. 이런 큰 별장 따위 필요 없다고, 혼자 살 수 있는 공간이면 된다고 형님들께 말했지만 아마 이 크기의 집과 사람들은 형님들의 최소한의 형제간의 우애, 혹은 죄책감일 것이다. 어짜피 곧 죽을 사람일 것을 왜 굳이 신경을 쓰는 것인지 만죠메로써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만죠메 그룹에 도움은커녕 방해만 되는 열등생 따위, 더 이상 필요 없을 터인데. 성급하게 집에서 쫓겨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만죠메는 들고 있던 가방을 조금 더 꽈악 쥐었다. 식료품은 제가 사다 드리겠습니다. 뒤에서 운전사가 말했다. 자신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유일하게 남아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아마 자신이 다 내쫓을 것이라는 것을 예측한 모양이었다.



“ …필요 없어.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돌아가.”


“ 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군말 없이 고개를 숙이는 운전사의 태도는 나쁘지 않았다. 넓은 거실과는 떨어져 있는 2층의 방을 써야겠다고 생각하며 계단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형님들께서는 생각보다 도련님을 걱정하고 계십니다. 너무 미워하지 말아주세요. 금방이라도 나갈듯이 문을 잡고 있는 운전사의 표정은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확인할 수 없었다. 쓸데없는 참견이니까 당장 나가라, 하고 일갈하고 나서도 그의 말은 생각보다 기분이 나빴기 때문에 내딛어지는 발에 조금 힘이 들어갔다. 그럼에도 해고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은 아마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이기 때문이겠지.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기분이 나빴다. 하여간 오래 산 영감들은 남의 속을 너무 잘 파악해서 문제였다.


 처음부터 2층은 자신을 위해 지어진 것인지 문이 하나밖에 없었다. 어렸을 적부터 자신은 살짝 높은 층을 좋아했다는 것을 신경써준 것 같아서 만죠메는 괜히 입술을 조금 삐죽였다. 고급스러운 손잡이는 손에 감기는 느낌도 병실과는 달랐고, 문 또한 조금의 삐걱임 없이 열렸다. 쓸데없는 소리로 시끄러운 것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나마 마음에 든다는 생각이 들었던 참에, 그런 만죠메의 감성을 방해하는 목소리 하나가 끼어들었다.



“ 여어, 왔어? 기다리고 있었다구.”



 자신이 싫어하는 세상에 아무 걱정도 없는 것 같은 아주 가벼운 목소리를 가진, 자신의 방에 멋대로 침입해 온 처음 보는 남자였다. 게다가 초면에 반말까지 찍찍 해대다니 예의라는 것을 조금도 모르는 녀석인 것 같아서 만죠메의 인상이 조금 더 찡그려졌다. 자신의 집에 있는 것 보면 형님들이 보낸 고용인인 것 같기도 한데 멋대로 반말이라니. 남의 침대에 멋대로 걸터앉아 가볍게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아 만죠메는 들고 있던 짐을 힘을 주어 내려놓고는, 불쾌함이 잔뜩 묻어있는 목소리로 답했다.



“ 네 놈은 누구야. 고용인이라면 당장 내 집에서 나가.”


“ 음-. 그건 안 되겠는데.”



 자신을 향해 씨익 웃어 보인 남자는 호이, 하고 장난스럽게 침대에서 내려와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난 고용인이 아니거든. 자신과 나이대도 비슷해 보이는 남자는 여전히 가벼운 발걸음으로 자신을 스쳐지나갔다. 배고프지 않아? 밥 차려올게. 자신이 매서운 눈초리로 쏘아보든 말든 남자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으며 방에서 나가 1층으로 향했다. 고용인도 아닌데 남의 집에 멋대로 쳐들어와 멋대로 행동하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행동에 만죠메 역시 쿵쾅거리며 계단을 내려갔다. 이미 이 집의 구조를 알고 있는 것인지 남자는 벌써 1층의 안쪽에 있는 부엌의 냉장고를 뒤지고 있었다.



“ 뭐 하는 거야. 못 들었어? 내 집에서 당장 나가라고!”


“ 거 참 말 많네. 요리하는데 집중할 수가 없으니까 그냥 올라가 있을래? 만죠메.”



 낯선 남자의 입에서 나온 자신의 이름에 만죠메의 눈썹이 조금 움찔거렸다. 감히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을 이렇게나 무시하다니! 이렇게 불쾌한 사람은 만죠메의 인생에서 처음이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뒤를 돌아 냄비에 물을 올리고 있는 남자에게 다가가 만죠메는 거칠게 멱살을 잡았다. 남자의 손에 들려있던 냄비가 바닥에 떨어져 귀 아픈 소리를 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남자의 조금 놀란 것 같은 동그랗게 뜨여진 눈과 시선을 마주하자 화가 더욱 치밀었다.



“ 야, 너 뭐야. 사람의 말이 말 같이 안 들려? 신고하기 전에 빨리 나가!”



 오랫동안 병실에 있으면서 산책조차 제대로 하지 않아 폐활량이 낮아진 것인지, 아니면 그저 감정이 격해진 탓인지 벅차온 숨에 만죠메는 한참을 숨을 헐떡였다. 자신에게 멱살이 잡힌 남자는 자신이 숨을 고를 때까지 기다려주다가, 천천히 손을 풀었다. 더 이상 소리를 지를 기력이 남아있지 않아 그저 눈에 잔뜩 힘을 주고 노려봤더니 남자는 그대로 자신의 등을 밀어 2층까지 데려가는 것이었다. 뭐 하는 거야, 당장 나가, 하고 아무리 짜증을 내어도 남자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굳이 힘을 주어 자신을 침대에까지 눕혔다.



" 조용히 있고 싶어서 여기로 온 거 아니야? 금방 밥 만들어 올 테니까 얌전히 있어."



 마지막으로 이불 위를 툭툭 두드리는 것까지 자신을 한없이 얕보고 있는 것 같아 짜증이 났다. 만죠메는 남자가 작게 문을 닫고 나가는 것을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지만, 곧 놔버렸다. '조용히 있고 싶어서' 남자가 한 말이 맞았다. 낫지 않는 병에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는 치료사들을 보고 싶지 않아서. 평생 병원 신세를 져야 하는 귀찮은 동생을 돌봐야 하는 형들을 볼 면목이 없어서. 매일같이 사람이 죽어나가는 병원의 답답한 공기 안에 더 이상 있고 싶지 않아서 자신은 형들에게 요양을 보내달라고 한 것이 맞았다. 게다가 핸드폰으로 연락을 한다면 누구에게 한단 말인가? 형님들? 경찰? 어느 쪽이던 귀찮아질 것임이 분명했다. 게다가 이 나이가 되서 겨우 이런 일도 해결하지 못하다니! 이것은 굴욕이었다.


 생각해 보면 전에도 자신을 이렇게 귀찮게 굴던 간호사가 있었던 것 같다. 식욕이 없어 먹지 않겠다고 하면 굳이 한 숟가락만 더 먹으라고 한다던가, 올 때마다 산책 좀 하라고 잔소리를 하던 간호사도 결국 자신의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밥을 가져온다면 먹지 않으면 된다. 말을 건다면 무시하면 된다. 그렇게 한다면 왜 이 곳에 있는지 모를 저 남자도 분명 자신을 포기할 것이었다. 요양을 선택한 것은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싶지 않아서도, 형님들께 부담이 되고 싶지 않아서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제일 큰 이유는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끝내고 싶어서도 있었다. 자신의 몸 상태는 자신이 제일 잘 알았다. 건강 상태가 악화되었다고 해서 별로 고치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이런 상태로 오래 살 마음도 없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좋았다. 오히려 치료 없이 조금이라도 이 질긴 목숨이 빨리 끊어진다면 그 쪽이 더 좋은 것이었다. 만죠메는 눈을 감고 자신이 이곳으로 오면서 했던 생각을 다시 떠올렸다. 햇빛이 비치는 깨끗한 침대 안에서 조용히 꺼져가는 자신의 목숨. 그래. 자신은 그것을 위해 온 것이었다. 그러니까, 지금의 자신에게 저 남자는 방해였다.



“ 어라, 만죠메. 벌써 자는 거야? 밥도 안 먹고?”



 남자는 비교적 빨리 음식을 들고 나타났다. 애초에 배도 고프지 않았고, 정체도 알 수 없는 저런 남자가 만든 음식을 먹을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낮잠이라도 자기 위해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던 상태였다. 아직 밖은 밝은 대낮이었고, 병원에서 이미 오래 자고 왔기 때문에 딱히 졸리지는 않았기 때문에 감은 눈동자 너머로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이대로 눈을 감고 있으면 나가지 않을까 싶어 미동도 않고 자는 척을 하고 있는데, 남자가 움직이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것일까, 왜 나가지도 않고 있는 것일까, 싶어 살짝 실눈을 떴다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저도 모르게 인상이 확 찌푸려졌다.



“ 깼어? 아니면 자는 척이었나? 아무튼, 뭔가 먹고 자는 게 좋아. 아무것도 안 먹었다고 들었다구.”



 그 새하얗게 머리가 샌 할아버지랑 통화했거든. 남자의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도 만죠메에게는 한없이 불쾌하게 다가왔다. 머리가 샌 할아버지는 아마 운전사 영감을 말하는 것이겠지. 이제 남자는 아예 멋대로 내가 누워있는 침대에 엉덩이까지 붙이고 앉아있었다. 어째서 자신이 이렇게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스스럼없이 다가와 말을 걸 수 있는지 신기할 다름이었다. 만죠메가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홱 돌리자 남자의 입에서 조금 웃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대체 이렇게 예의 없는 사람을 앞에 두고 뭘 하고 있는 것인지 이해 할 수 없어 조금 더 이불 속으로 파고들며 나가, 하고 딱 잘라 말했다.



“ 밥은 안 먹어?”


“ 안 먹으니까 나가라고.”



 에에이, 그래도 한 입만 먹어봐. 남자는 계속해서 끈질기게 말을 걸어왔다. 요리도 못하는 자신이 열심히 만들었다느니, 안에 재료가 엄청 많았으니 저녁엔 좀 더 맛있게 만들겠다느니 하며 쉬지도 않고 떠드는 남자의 목소리에 결국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밀고 말았다. 원래 신경질 적인 성격이긴 했지만 이 남자는 정말 사람을 화나게 하는데 재주라도 있는 것 같았다. 누워있던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니 남자의 눈이 조금 동그랗게 변했다. 와장창! 옆 탁자에 올려져 있던 남자가 들고 온 쟁반을 들고 성큼성큼 방의 밖으로 나가 바닥으로 던져버리자 그릇이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게도 났다. 당장 나가라고!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자 남자의 바보 같은 얼굴도 조금 움찔거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있던 정마저 모두 사라질 행동이었다. 남자는 조금 곤란하다는 듯이 머리를 조금 긁적이고, 내 눈치를 조금 살피는 듯이 나와 시선을 마주치더니 아까보다는 조금 장난기가 사라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미안, 그러고 보니 내 소개도 아직 안했네. 내 이름은 유우키 쥬다이. 나이는 아마 너랑 같을 거야. 너와 같이 살려고 왔어. 일단 진정하고. 음….”



 자신을 유우키 쥬다이라고 소개한 남자는 자신의 강경한 태도에 당황이라도 한 모양이었다. 어떻게든 말을 이어가려는 모습에 다시 목소리에 힘을 주어 나가, 하자 벌어져있던 남자의 입이 다물어졌다. 남자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이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다가 멋대로 앉아있던 침대에서 슬그머니 일어났다. 남자가 터벅거리는 시끄러운 슬리퍼 소리가 울렸다. 남자는 굳이 거부하는 자신을 다시 침대에까지 데려다놓고, 저녁에 또 오겠다며 나가버렸다. 닫힌 문의 밖에서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아마 자신이 깨버린 그릇을 치우고 있는 모양이었다. 왜 이런 취급을 받으면서까지 나가지 않는지. 왜 또 오겠다고 하는지 묻고 싶었지만 만죠메는 그냥 안으로 삭혀두기로 했다. 만약 자신이 그에게 관심을 가진다면 아마 나가지 않을 것이다. 유우키 쥬다이. 심지어 이름조차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만죠메는 신경질적으로 자리에 누웠다. 자신은 저 남자의 이름을 부르는 일이 없을 것이고, 없어야만 했다.

 



 생각보다 잠이 들어 있었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새로 지은 집의 고약한 냄새의 탓인지, 아니면 아직 길들여지지 않아 심하게 사각거리는 이불이 불편했던 것인지, 아니면 어색한 공기의 탓인지 생각나는 것은 산더미같이 있었기 때문에 만죠메는 이유를 찾는 것을 포기하고 몸을 일으켰다. 옆에 걸려있는 시계를 흘끗 보니 2시간도 흘러있지 않았다. 아직도 하루를 끝내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저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졌다. 병실에서는 놓여있던 책을 읽거나, 오래 전에 다니기를 그만둔 학교의 공부를 하거나, 수면제에 취해 잠을 자거나 하는 생활을 했다. 가끔 그것이 지루하면 나가서 산책을 했고, 병원 밖에 나가지 말라던 간호사의 말을 무시하고 서점에 들렀다. 아직 다 읽지 못한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직 자신의 짐은 이 집에 다 도착하지 못했기 때문에 한 권도 있지 않았다. 이곳으로 향하던 리무진의 안에서 운전사 영감에게 내일 중으로 모두 옮기겠다는 말을 들었지만 당장 지금 할 일이 없으니 지루한 것이었다. 한 권 정도는 챙겨올걸, 하는 후회를 하며 만죠메는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직 자신은 이 집의 구조조차도 잘 몰랐다. 이왕 할 일도 없으니 집 안을 돌아보고, 이 근처를 산책이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은 겉에서 본 것만큼이나 컸다. 2층은 자신을 위한 커다란 방과 커다란 욕실이 있었고, 1층은 고용인들이 지내는 공간인지 여러 개의 방들이 있었다. 자신이 모두 내쫓았기 때문에 텅 비어있는 방이 묘하게 커보였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청소나 빨래를 할 사람을 불러야지. 조금 나가면 인가가 있으니 식재료도 살 수 있으니 사는 것에는 지장이 없겠어. 따위의 생각을 하며 집안을 둘러보다가 문득 만죠메의 머리를 스친 생각이 있었다. 집 안은 텅 비어있었다. 그렇다면 그 남자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인가? 자신이 깨뜨린 그릇과 바닥에 널부러져 있던 음식물들이 사라진 것을 보니 착실하게 청소를 한 것 같은데, 혹시나 자신의 행동에 질려 나간 것일까? 겨우 이 정도에 나갈 거면서 어째서 그렇게나 자신을 귀찮게 한 것인지. 그나마 하루 만에 나가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만죠메는 밖으로 나가기 위해 문을 열었다.



“ 어라, 만죠메. 잘 잤어?”



 그리고 그 생각은 밖으로 한 발자국 내딛자마자 사라졌다.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뻔뻔한 목소리로 남자가 인사를 해 온 것이었다. 아쉽게도 남자는 그저 정원정리를 하기 위해 집 안에 있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누가 이기나 해보자고. 절대로 이 집에서 제 발로 나가게 해주겠다고 다짐하며 만죠메는 남자에게서 흥! 하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차를 타고 올 때엔 몰랐지만, 별장이 위치한 장소는 꽤나 괜찮은 곳이었다. 바로 옆에 깨끗한 공기가 올라오는 숲이 있었고, 조금만 걸어가면 시원한 바다가 있었다. 꽤나 걸어야 했지만 숲의 밖으로 나가면 인가도 있었고, 자신이 잠시 둘러본 것만으로도 가볍게 인사해오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봐선 민심도 좋은 것 같았다. 그저 시골 촌구석이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있을 것은 다 있는 길거리까지 확인한 만죠메는 서서히 아파오는 다리를 자각하며 별장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어두워진 주위에 차고 있는 시계를 확인해보면 7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숲 주변엔 딱히 가로등 같은 것이 없기 때문에 어두워지면 다시 돌아갈 방법이 없어서, 서둘러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서둘렀다. 사실 조금만 두리번거리다가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저녁시간에 맞추어서 돌아가면 그 귀찮은 남자가 또 밥을 먹으라며 귀찮게 굴 것 같아서 조금 더 걷는다는 것이 벌써 이 시간이었다. 하여간, 정말 도움이 조금도 되지 않는 남자였다.


 마을에 있을 때엔 몰랐지만, 숲은 정말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아무리 눈이 어둠에 익숙해져있다고 해도 눈앞만 보일 뿐 먼 곳은 보이지 조차 않았다. 다행히 길은 하나뿐이었기 때문에 자신이 이상한 곳으로 들어가지 않는 한 길을 잃을 염려는 없을 것이지만, 혹시나 산짐승이라도 나타날까 긴장이 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숲속의 싸늘한 공기까지 올라와 얇은 옷을 입고 있던 만죠메는 팔위로 돋은 소름을 쓰다듬어 가라앉혔다. 앞으론 이런 밤중까지 돌아다니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돌아갈 거리를 계산하고 있는데 저 멀리서 불빛이 보였다. 자신의 별장에서 나온 불빛일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에 만죠메는 천천히 그 불빛을 바라보며 걸음을 옮겼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 상태에서 걸을 때엔 속도도 나지 않고 다리만 아팠지만, 별장이 보이자 저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졌다. 어서 들어가서 족욕이라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종종걸음으로 별장을 향해 가면, 문 앞에 자신을 기다리는 이가 있었다.



“ 늦었잖아, 만죠메. 이 시간까지 돌아다니면 안 된다구?”



 그 남자였다. 현관 쪽의 불을 밝게 켠 채로 자신을 기다리던 남자는 살짝 쌀쌀한 공기에 아까 전엔 보지 못한 붉은 색의 자켓을 걸치고, 언제부터 기다린 것인지는 몰라도 자신을 발견하자마자 밝게 웃으며 다가오는 것이었다. 왜 굳이 밖에까지 나와서 자신을 기다린 것인지, 그렇게 무시하는 자신이 기분 나쁘지도 않은 것인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물음을 간신히 삼켰다. 집에 돌아왔을 때, 고용인이 아닌 누군가가 자신을 기다리는 느낌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어쩐지 가슴 안쪽이 간질간질한 것도 같아서 만죠메는 멍하게 바라보다가, 이럴 때가 아니라는 것을 퍼뜩 깨닫고 성큼성큼 걸어서 지나쳤다.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뒤에서 키득키득 웃는 소리가 들렸다.


 별장의 문을 열면 맛있는 냄새가 났다. 그동안 이런저런 요리를 고민해 본 것인지 아까와는 다르게 국도 끓여져 있었고, 반찬도 여러 개 놓여 있는 탁자가 보였지만 만죠메는 그것을 지나쳐 2층 계단으로 향했다. 뒤에서 고생해서 만든거라느니, 데워줄 테니 같이 먹자느니, 배고파 죽겠다느니 하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자신도 배가 고프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워낙 굶는 것에 익숙하기도 했고, 아무리 저 남자가 자신을 기다려줬다고는 해도 저 남자가 만든 것을 먹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저 남자를 쫓아내는 것이었다. 밥은 다음에 먹어도 괜찮았기 때문에 2층까지 따라오려는 남자에게 큰 소리로 먹지 않겠다고 소리치곤 문을 쾅 닫아버렸다. 다행히도 남자는 방 안까지 따라 들어오지는 않았다. 분명 밖에서는 족욕을 해야겠다느니, 다리가 아프다느니 하는 생각을 했었지만 막상 방에 들어와 침대에 누우니 마치 그곳만 중력이 세게 작용하는 듯이 몸이 일으켜지지를 않았다. 병실에 살게 된 이후 이렇게 오랫동안 걸어본 적이 없으니 아마 몸이 많이 피곤했던 것 같았다. 씻고 자야하는데, 씻고 자야하는데, 하는 생각을 하다가 어느새 만죠메는 까무룩 잠이 들고야 말았다.

 

'유희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야신고/R19] 내 사와타리가 이렇게 못됐을리가 없어  (0) 2015.10.11
[야마신고] 두근거려요!  (0) 2015.10.11
[포리오] to 갈릭님  (0) 2015.06.29
[전력 60분/십만] 요리  (0) 2015.04.25
[꼬붕만/R17] 리퀘  (0) 2015.04.19
Posted by 하리쿠
2015. 6. 29. 05:48

- 갈릭님께 드리는 연성 사다리타기! 늦어서 죄송합니닷.. 짧아서 더 죄송합니닷...

- 캐붕 주의!








 듀얼 대회가 있던 날이었다. 미리 얘기하지 않고 찾아간 듀얼장은 평소와는 달리 앞좌석이 아니었기 때문에 모습을 제대로 볼 수는 없었지만, 전광판에 비치는 모습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기 때문에 아무래도 괜찮았다. 순간순간 보이는 듀얼에 집중하는 진지한 모습은 자신에 앞에서 보여주는 표정과는 달라서 꽤나 좋아하는 부분이었다. 굳이 표까지 끊어가며 보러 와달라는 말을 거절했을 때의 그의 표정은 꽤나 볼만했었다. 아마, 그는 자신이 지금 이 장소에 왔을 줄은 조금도 생각하지 못 할 것이다. 오랜만에 보는 자신을 의식하지 않은 채 듀얼 하는 그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듀얼은 당연하게도 자신이 보러온 남자의 승리였다. 매너 있는 미소를 띄우고는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며 천천히 일어나 출구로 향했다. 그를 놀래키기 위해 가져온 작은 꽃 세 송이가 바스락거렸다. 지금 그가 있을 대기실로 들어가면 표정이 어떨까? 당황할까? 아니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을까. 이미 너무 익숙해져 눈에 보이는 반응이었다. 꽃을 들고 찾아온 자신의 모습에 그의 매니저는 자신을 쉽게 통과시켜 주었다. 인기가 많은 그였기에 이미 몰려있는 그의 팬들의 눈초리를 무시하는 것은 이미 익숙했다.


 작게 두드린 문의 너머는 조용했다. 천천히 문을 열었을 때에도 아무런 대답도 없어서 잠시 그가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곧 소파의 한쪽에 엎드려 자고 있는 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최대한 구두소리를 죽여 다가갔음에도 일어나지 않는 모습에 대회 때문에 피곤했나보다, 하는 짐작을 약간 할 뿐이었다. 조용히 감겨 있는 눈꺼풀을 잠시 바라보며 리오는 소파의 끝에 살짝 앉았다. 리오의 무게에 들썩거리는 소파에도 남자는 눈을 뜰 줄을 몰랐다. 흐음. 어쩐지 조금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들고 온 꽃을 옆 탁자에 내려놓으며 조금씩 뻗혀가는 셋팅된 머리를 쓰다듬자 손끝에 닿아오는 약간의 머리칼과 살짝 땀에 젖어있는 목덜미가 따듯했다. 에어컨이 틀어진 방의 싸늘한 공기에 식은 손끝에서 올라오는 따스한 기운이 어쩐지 간질간질해 잠시 손가락을 접었다 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실체가 있는 무언가가 묻은 것 마냥 사라지지 않았다. 만약 자신이 오늘 그의 초대에 응했더라면, 지금의 그는 피곤함도 숨기고 자신을 맞이하고 있었겠지. 



" 바보 같은 남자"



 -라고 말하면 그는 언제나 어색하게 웃으며 그거 아쉽군요, 하고 대답하곤 했지만, 그는 바보가 맞았다. 하여간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늘어놓는 것에 능숙한 남자였다. 물론, 그것을 알아채는 사람은 몇 되지 않을지라도. 그의 이러한 모습을 보기 위해 오지 않겠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하며 리오는 천천히 그에게로 다가갔다. 하필 엎드려 자는 틈에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 괘씸했지만 얼굴을 보면 참을 수 없을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그에게 불평은 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그래도 조금쯤은 탓을 해도 되겠지.


 척추의 선이 선명하게 보이는 뒷 목덜미에 살짝 남은 손톱자국은 당분간 그를 괴롭힐 지라도, 짧게 닿은 리오의 입술은 아마 자고 있는 포로써는 알아채지 못 할 것이다.

 

'유희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야마신고] 두근거려요!  (0) 2015.10.11
[십만] only you  (0) 2015.07.14
[전력 60분/십만] 요리  (0) 2015.04.25
[꼬붕만/R17] 리퀘  (0) 2015.04.19
[십만/R19] 기어와라, 만죠메!1  (0) 2015.04.19
Posted by 하리쿠
2015. 4. 25. 03:30

 오랜만에, TV에서 유우키 쥬다이 녀석을 봤다. 정말 지나가듯이 나온 듀얼 대회에서 1등을 했다는 듀얼 뉴스였기에 여전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만죠메는 핸드폰을 쥐었다. 이제 녀석의 번호 정도는 딱히 번호 등록부에 들어가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멍하게 신호가 가는 음을 들으며 만죠메는 마지막으로 쥬다이 녀석과 전화한 것이 언제였는지를 떠올렸다. 사실 목소리는 정말 고등학생 때 3년 동안 지겹도록 들어왔기 때문에 잊을 래야 잊을 수 없었다. 얼굴도, 탁자위에 놓은 사진만 봐도 알 수 있었으므로 녀석에 대한 것은 조금도 잊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슬슬 언제 만났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때 즈음이 된 것이다. 아마 슬슬, 쥬다이도 그렇게 느끼고 있을 터였다.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기 때문에 만죠메는 솔직하게 그에게 전화를 하기로 했다.



“ 어, 만죠메?”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평소 자신이 알던 것과 같았다. 자신이 어째서 전화한 지도 모르고 혼자 신나서는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 아냐며 물어보는 그에게 설렁설렁 대답을 해주며 약속을 잡았다. ‘밥을 먹으러 오겠다.’며 통보를 해오는 녀석에게 신경질을 내는 척 하며 시선 끝으로 시간을 살피었다. 1시. 아마 그는 점심을 먹는 것조차 잊은 채로 듀얼에 몰두했을 터였다. 8시쯤엔 도착할 것이라는 말을 들으며 만죠메는 전화를 끊었다. 대충 본 뉴스에 따르면 듀얼 대회는 시애틀 쪽에 있다고 했는데 7시간 안에 어떻게 올 생각인지 물어보려다가 만죠메는 그냥 입을 다물기로 했다. 녀석은 한다면 하는 놈이었고, 아마 그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으리라. 쥬다이라면 어떻게든 하겠지, 싶었다.


 약속이 정해지고 나면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혼자 살 때에는 요리를 잘 하지 않기 때문에 냉장고에 마땅한 것이 없었다. 지갑을 쥐는 손에 어쩐지 물기가 어려 있었다. 그 잠깐의 통화에, 시간이라는 이름의 긴장감이 방울졌던 모양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만큼 신경써주자는 생각에 시장에 가서 재료를 골랐다. 7시간이면 어떤 요리를 할 수 있지? 그러고보니 녀석, 조금 마른 것 같던데 영양제라도 사서 들려 보내야할까. 좋아하던 새우튀김도 살까. 이왕이면 갓 나온걸 먹이고 싶은데 시간에 맞춰서 배달시키는 편이 좋을까. 어디가 맛있더라. 평소라면 금방 끝낼 시장을 1시간을 훌쩍 넘겨 집에 돌아왔을 때에는 어쩐지 거실은 태풍이라도 맞은 듯이 엉망이었고, 그 가운데에는 유우키 쥬다이가 있었다. 나름 치우려는 노력이라도 한 것인지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화분으로 추정되는 도자기 조각들을 들고서.



“ 마, 만죠메. 이게 말이지….

“ …….”

“ 거, 으음. ……왔어?”



 두 손 가득한 봉투를 털썩 내려놓은 만죠메는 기가 차서 그의 말에 대답을 할 수 조차 없었다.

 



 그러니까, 시차를 잊어버렸다고 했다. 정말 그 다운 변명이라 만죠메는 머릿속을 가득 메운 잔소리를 늘어놓는 것을 포기했다. 그래, 쥬다이 놈이 시차를 생각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한 자신이 잘못한 것이었다. 조금 더 빨리 올 수 있었는데 대회장 앞에서 기자들에게 잡혔다 던지, 거꾸로 날아가는(여기서 딴지를 걸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바람에 돌아오느라 늦었다 던지 하는 말을 잔뜩 늘어놓은 쥬다이를 보며 만죠메는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눈까지 가려진 주제에 하여간 말은 많았다.


 결국 녀석이 오기 전에 한 상 가득 차려준다는 계획은 물 건너 간 것이었다. 그러니까 애써 사온 재료들도, 시켜놓은 최고급 새우튀김도, 자기 직전에 목을 축일 최고급 와인도 모두 쓸모가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쥬다이 녀석은 당장 무언가를 먹고 싶어 했기 때문에 만죠메는 그저 급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뒤에 있는 쥬다이는 자신의 넥타이로 눈을 가린 채 홀로 떠들고 있었다. 요리를 하고 있는 남자 뒤의 눈을 가린 남자라니 누가 보면 이상한 취미라고 생각할만한 광경이었지만, 요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으므로 어쩔 수 없었다. 이래서 진작 상을 차려놓으려고 했는데! 하여간 생각한대로는 되지 않는 녀석이었다. 삐뚤빼뚤 썰어 넣은 야채가 익어가는 냄새에 쥬다이의 보채는 소리가 늘었다.


 결국 상에는 상상했던 것 이하의 요리들이 놓였지만 쥬다이 녀석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 같았다. 제대로 뜸을 들이지도 못한 밥을 급하게 입으로 욱여넣는 녀석을 보고만 있어도 밥을 먹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는 아마 이것을 먹고 나면 다시 가버릴 것이다.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오래 붙들고 있을 이유를 만들어보려 더 많은 준비를 하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이었다. 자신은 차마 그를 붙들 수조차 없었다. 그저 허겁지겁 밥을 먹는 녀석의 얼굴이라는 액자에 가지 마, 가지 마, 하고 생각으로 외치는 관람객밖에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 맛있었다! 고마워, 만죠메.”



 하며 자신을 향해 웃어 보이는 녀석의 얼굴만 봐도 모든 것이 용서되어 버리는 멍청이였다. 창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커튼과 쥬다이의 머리카락이 함께 나풀거렸다. 열린 창문으로 들어온 바람은 아마 집 안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흘끗 시계를 보면 슬슬 마트에서 시킨 요리 재료들이 도착할 시간이었다. 쥬다이 녀석은 이미 갈 준비를 마치고 베란다에 서있었다. 


" 아아, 그래. 어서 가버려라, 멍청아."


내가 시킨 너에 대한 마음 한 보따리가 도착하기 전에.

 

'유희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십만] only you  (0) 2015.07.14
[포리오] to 갈릭님  (0) 2015.06.29
[꼬붕만/R17] 리퀘  (0) 2015.04.19
[십만/R19] 기어와라, 만죠메!1  (0) 2015.04.19
[유야신고] 하나하키  (0) 2015.04.19
Posted by 하리쿠
2015. 4. 19. 05:12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2015. 4. 19. 05:04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2015. 4. 19. 04:57

- 졸려서 내용이 엉망.... 신고가 토하는걸 보고싶었을 뿐입니다u_u

- 하나하키 소재가 들어갔습니다









 분명히,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를 하고 왔을 터였다. 사와타리는 턱을 타고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닦으며 방금 전의 자신을 떠올렸다. 점심을 먹기 위해 먼저 옥상으로 올라갔을 야마베들을 따라 옥상으로 올라가던 길, 창문 밖으로 보이는 사카키 유우야 녀석과 히이라기 유즈를 보고 발걸음을 옮긴 것이 방금 전의 일이었다. 히이라기 유즈에게 멋진 모습을 보이고, 유우야 녀석에게 제대로 한 마디를 해준 것은 좋았지만 그 뒤로의 자신은 어쩐지 화장실의 구석에 있었다. 그에게 이기겠다는 마음으로 뿌듯해진 기분에 옥상으로 올라가다가, 어쩐지 올라온 토기를 억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점심을 먹기 전이었기에 위장에서 나온 것은 쓴 위액과 섞인, 쉬는 시간에 먹었던 간식에 들어있던 밀가루밖에 없었다. 먹기 전엔 예쁘게 꾸며져 있던 간식을 굳이 다시 꺼내어 보는 취미는 없었으므로 변기통 안에 들어있는 덩어리들을 보자 더욱 더 속이 울렁거렸다. 차라리 배가 고픈 상태였다면 이렇게 구역질나는 것을 보지는 않았을 터였다. 오늘따라 쉬는 시간에 간식을 내민 야마베 녀석이 미워질 정도였기에, 사와타리는 눈을 감으며 입 안에 남아있는 쓴 액체들을 모아 변기 안으로 떨어뜨렸다.


 어째서 갑자기 속이 안 좋아진 것인지에 대해선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새로운 펜듈럼 카드를 손에 넣어 유우야 녀석을 이길 것이라는 생각에 기분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고, 싫어하는 음식이나 상한 음식을 먹은 기억도 없었다. 몸이 안 좋은 것이라고 하기엔 자신은 딱히 문제가 없었다. 혹시나 유우야 녀석과 듀얼을 할 생각에 긴장이라도 한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자신은 겨우 그런 것에 긴장을 할 사람도 아니었다. 오늘은 일찍 조퇴하고 파파에게 말하여 병원이라도 가야할까. 하필 유우야 녀석을 본 다음에 이럴게 뭐람. 녀석의 앞에서는 절대로 컨디션이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괜히 입술을 삐죽이며 방금 전 대화한 유우야 녀석을 떠올린 순간, 또 다시 토악질이 올라왔다.



“ 우욱!”



 이미 위장이 아릴 정도로 모든 것을 쏟아내었기 때문에 몇 번이나 변기를 부여잡고 헛구역질을 해도 나오는 것은 없었다. 생리적으로 흘러나온 눈물이 어느새 뺨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젠 위아래로 흔들리는 머리까지 어지러울 지경이라 빨리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자 이번엔 식도를 타고 역류하는 것이 있었다. 아직도 위장 안에 남아있는 것이 있다니, 분명 이것을 뱉어내면 더 이상은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사와타리는 손가락을 목구멍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입 안은 끈적한 위액으로 더러워져 있었기 때문에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일단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처음 몇 번은 잘만 나오던 구역질이 어느 순간 기도까지 막아버려 기침이 되었다. 아, 정말 나 몸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걸까. 후들거리는 다리를 벽을 붙잡는 것으로 애써 지탱하며 몇 번을 쿨럭거리니 눈앞에 있는 손바닥이 붉었다. 순간, 현기증이 났다고 생각했다.



“ ……뭐야, 이건.”



 덜덜 떨리고 있는 손바닥에 있는 것은, 형체를 간신히 알아볼 정도로 눅진눅진해진 장미꽃이었다. 사람의 입에서 꽃이 나오다니, 이건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자신은 절대로 꽃을 먹은 적이 없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멍하게 손바닥을 바라보고 있으면, 다시금 토악질이 올라와 변기에 머리를 박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엔 아까와는 다르게 목구멍을 찢는 고통이었다. 안쪽에서 부글거리는 무언가를 내뱉기 위해 식도를 움직이면 배 안쪽에서부터 입에까지 날카로운 통증이 이어졌다. 차라리 올라오는 것들을 삼키고 싶었지만 위장에서 무언가 알 수 없는 것이 번식하고 있다는 느낌이 징그럽게 올라왔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변기를 잡고 있는 팔이 덜덜 떨렸다. 마치 위장 안에 살아있는 생물이 들어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식도를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그것은 식도의 근육들을 모두 찢어발기고 있었기 때문에 사와타리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헛구역질을 했다. 이게 무엇인지는 몰라도 빨리 뱉어내고 싶었다. 벌어진 입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보며 사와타리는 흐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목구멍에서 떨어진 것은, 아까와 같은 새빨간 꽃잎이었다.


 한 장, 두 장, 천천히 떨어지던 꽃잎은 토기가 목구멍까지 다다르자 이내 위액과 함께 쏟아져나왔다. 변기 안에 있던 것들이 빨갛게 변했다. 그것들의 안에는 줄기까지 선명한 것이 있었기에 자신이 고통스러웠던 이유가 가시가 목구멍을 긁었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속에 있던 것들을 모두 토해내고 나자 어지러워진 머리에 사와타리는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자신의 안에서 꽃이 자라나다니 직접 토해내고 나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정말 이건 병원에 가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도저히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흐릿흐릿한 시야가 반전하더니 어느새 화장실의 타일이 보였다. 미칠 듯이 아프던 통증은 어느새 서서히 멀어지고 있었다. 멍하게 눈을 깜빡이며 사와타리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자신이 쓰러졌다는 사실은 나중에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타일의 한기가 스멀스멀 몸에 침식해왔지만 바들바들 떨리는 몸을 도저히 통제할 수 없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이렇게 될 줄은 조금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체 자신의 안에서 자라는 것은 무엇이었으며, 왜 자신은 꽃을 토한 것일까. 머릿속에 이어지는 의문은 아쉽게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점점 멀어지는 의식을 붙잡으려 했지만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막을 수는 없었다. 눈을 천천히 깜빡이다보면 방금 전 자신이 토한 꽃이 보였다. 언제 변기의 옆에까지 떨어진 걸까, 따위의 태평한 생각을 하며 사와타리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붉은 색의 꽃잎과 녹색의 잎사귀가, 어쩐지 사카키 유우야를 닮은 것 같았다. 













------------

사와타리 안죽었습니다(...) 내용이 뭐이래...ㅏ아ㅏ아ㅏㅇ;ㅐㅑㅓ; 

'유희왕' 카테고리의 다른 글

[꼬붕만/R17] 리퀘  (0) 2015.04.19
[십만/R19] 기어와라, 만죠메!1  (0) 2015.04.19
[유야아카/R15] 발목  (0) 2015.04.11
[전력 60분/십만] 빨간색  (0) 2015.04.11
[유야신고] 첫 키스  (0) 2015.04.06
Posted by 하리쿠
2015. 4. 11. 23:13

- 약간 수위 주위







 회사의 안쪽에 마련해 둔 방 안으로 들어선 아카바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펜듈럼 카드의 개발에 힘쓰기 시작한 이후로, 제대로 집에서 쉬어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집에 돌아갈 시간조차 아까워 회사에서 지내는 것은 꽤나 피곤한 일이었지만, 자신의 밑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직원들을 생각하면 그것을 내색할 수도 없었다. 원래는 오늘도 지금보다 더 늦은 시간까지 실험을 해봐야 했지만 피곤해 보인다며 오늘은 들어가 쉬어달라며 간곡하게 부탁하는 나카지마 덕분에 조금 일찍 들어올 수 있었다. 부하 직원에게까지 걱정을 끼칠 정도로 얼굴에 내색하고 있었다니, 이것은 분명한 자신의 실책이었다. 오늘은 이만 잠에 들고, 내일은 누구보다 일찍 나와 있으리라, 하는 생각을 하며 머플러를 푸는데, 어두운 자신의 방 안에서 작은 인기척이 났다.



“ 누구냐.”



 방 안쪽 구석에서 누군가 움직이는 실루엣이 보여 아카바는 조금 더 눈을 가늘게 떴다. 자신의 방은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보안이 철저하게 되어있을 터라 누군가 들어올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동안 자신의 행적을 생각해보면, 멋대로 들어온 그의 목적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닐 것이었다. 듀얼디스크를 발동시킬 것인지, 아니면 경비를 부를 것인지 고민하던 아카바가 조금 몸을 뒤로 빼며 방 안의 불을 켜기 위해 벽을 더듬거리자 어두운 실루엣이 그를 향해 다가왔다. 가까이 오기 전에 불을 켜야 하는데, 하며 다급하게 손을 움직이다 마침내 손끝에 닿은 스위치를 누른 아카바에게 보인 것은,



“ 어서오세요, 주인님~!”



 메이드 복장을 한 사카키 유우야였다. 방금 전까지 긴장했던 것이 풀리며 갑자기 아파오는 머리에 아카바는 잠시 눈을 꾸욱 감았다 떴다. 혹시나 헛것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도 눈을 뜨면 보이는 것은 분명 고약한 취미의 유우야였다. 자신의 저택에 있는 고용인들도 입지 않는 저런 프릴이 잔뜩 달린 옷을 아무렇지도 않게 입는 남자라니, 자신은 그런 사람을 연인으로 둔 기억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다지 거부감이 들지 않는 것은, 그가 여자만큼이나 곱상한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었다.


 자신보다 작은 몸집의 그는 그와 함께 다니는 소녀와 비교해도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커다란 눈망울을 깜박이는 그를 보고 있자면 가끔 여자아이라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는데, 그럼에도 단 한 번도 그에게 치마를 입혀보고 싶다거나 하는 생각을 해본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가 제 의지로 입을 줄이야! 눈을 조금 내리면 여성용인지 살짝 늘어나있는 가슴부분 사이로 안쪽이 훤하게 들여다보여 아카바는 시선을 조금 반대쪽으로 끌어내렸다. 아무리 남자치고는 작다고 해도 여성용은 버거웠던 것인지 치마가 유난히 짧아 새하얀 스타킹에 감싸여진 다리가 아슬아슬한 부분까지 보였다. 쓸데없이 아랫배가 욱신거렸다. 그런 자신을 보고 입 꼬리를 말아웃은 유우야가 아카바의 손목을 붙잡고 성큼성큼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했다.



“ 여기 앉아.”


“ 대체 뭘 하려는 거지?”



 그가 이끈 곳은 자신의 의자였다. 멋대로 치마 같은 것을 입고 자신의 방 안에 침입한 것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알 수 없는 행동까지 하는 것이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아카바는 얌전히 그가 하라는 대로 따랐다. 새하얀 장갑의 부드러움이 손목에서 느껴졌다. 스타킹과 같은 색의 면장갑이라니, 사소한 부분에서 세심한 녀석이었다. 잠시 그가 원하는 대로 앉아있다 보면 유우야가 자그마한 대야를 들고 오는 것이 보였다. 꽤나 무거웠던 탓인지 몇 번이나 휘청인 대야에서 물이 금방이라도 흐를 듯이 넘실거렸다.



“ 늦은 시간까지 힘낸 주인님에게 봉사를 해드리지요.”



 자신의 앞에 대야를 내려놓으며 주먹까지 불끈 쥐어 보이며 의욕을 불태우는 유우야에게 차마 그만두려는 말조차 할 수 없어 아카바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일찍 자려 했지만 아마 조금 늦어질 것 같았다. 의자 앞에 조심히 무릎까지 꿇고 앉은 유우야가 입술 사이로 새하얀 이를 조금 내밀어 장갑의 끝을 물었다. 부드러운 손의 살결을 쓸며 벗겨진 장갑이 유우야의 붉은 입술 사이에 걸려 흔들거렸다. 저도 모르게 침이 꿀꺽 넘어가서, 아카바는 그런 자신을 유우야가 보지 못하기를 바랐다.


 장갑을 벗어던진 길게 뻗은 손가락은 곧 아카바의 발목을 잡았다. 언제나 양말을 신지 않는 탓에 딱히 벗겨낼 것은 없었다. 어린 유우야의 높은 체온은 손가락까지 유효했기에 언제나 차가운 외부 공기에 노출되어 있는 발목에 닿자 저도 모르게 다리가 움찔거렸다. 카드의 표면을 쓸어 올리듯이 가볍게 복사뼈를 쓰다듬는 유우야의 손가락이 간지러웠다. 유우야의 손길이 이끄는 대로 대야 위로 발을 올려놓으면 이내 안쪽의 물에 손가락을 담구어 발등을 적시기 시작했다. 언제 받아놓은 것인지 살짝 차가운 물의 온도에 조금 몸을 떨면 따듯한 손바닥으로 발을 감싸며 유우야가 자신을 보며 웃었다. 피곤한 몸의 영향인지, 아니면 치마를 입고 있는 유우야 때문인지 아까부터 묘한 기분이 드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긴장을 해버린 탓에 딱딱하게 굳은 발을 다시 유우야가 따듯한 손으로 어루만졌다.


 한 번 시작한 이상 제대로 하려는 것인지 유우야의 손가락은 천천히 발바닥을 쓰다듬고, 이내 물로 발가락 안쪽까지 씻어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목적은 발을 씻는 것에 있지 않아서 손가락이 닿는 곳마다 묘하게 끈적함이 묻어나는 것이었다. 처음 그를 볼 때부터 목적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카바는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불안감을 애써 누르며 그의 세족을 받고 있었다. 시선을 내리면 자신의 발을 잡고 있는 유우야의 고운 손가락이 보였고, 조금 아래로 내리깔아진 긴 속눈썹과 앳된 얼굴이 보였다. 그 아래에는 헐렁거리는 앞섬 사이로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속살이 선명하게 보였으며, 물에 닿을까 걷어 올린 치마의 안쪽에선 가터벨트까지 한 다리가 보였다. 하얀색 가터벨트를 따라 올라가면 치마의 안쪽까지 멋대로 상상하게 되는 것이 저도 모르게 머릿속을 이상한 생각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었다. 유우야는 자신이 그를 외형까지 포함하여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일을 꾸몄을 것이었다. 그의 뜻대로 놀아나고 있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아카바는 그의 하얀 허벅지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 변태 주인님.”



 위쪽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려 시선을 올리자 자신의 발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유우야가 자신 쪽을 보고 있는 것이었다. 언제부터 보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그는 자신의 시선을 즐기고 있었다. 가늘게 휘어진 눈동자가 요염하게 반짝였다. 자신에게 보여지며 그도 조금씩 흥분하고 있었는지 볼이 조금 붉었다. 자신을 조롱하려는 듯이 살짝 내밀어진 혀가 야하다고 생각할 무렵, 유우야의 입이 조금 열렸다. 마치, 며칠 전 잠자리를 함께 할 때 자신의 것을 입에 넣을 때처럼.


 하지만 이번에 그가 입 안에 넣는 것은 자신의 발이었다. 내밀어진 혀로 조금 엄지발가락을 할짝이더니 이내 입 안에 넣는 그의 행동에 긴장한 발끝이 떨렸다. 혀로는 발을 핥고 있는 주제에 어느새 손가락은 발목을 타고 종아리로 올라와 있었다. 바지의 사이로 들어온 손가락이 오금을 간질이며 허벅지를 쓸었다. 이렇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카바는 그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점점 가빠지는 숨을 숨기지 않고 내어놓으면 자신을 바라보던 유우야가 쌜쭉 웃으며 반대쪽 손으로 대야를 옆으로 치우는 것이었다. 아마 그는 반대쪽까지 씻어줄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 이걸 바랬던 것 아닌가.”


“ 물론 그랬지.”



 점점 끈적해져가는 발의 표면이 어쩐지 방금 씻은 행위조차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직접 씻어준 주제에 별로 상관하지 않는 듯이 마지막으로 발바닥 안쪽에 키스까지 한 유우야가 천천히 올라와 아카바의 입술을 핥았다. 방금 전까지 자신의 발을 핥고 있었던 입술이지만, 입을 열어 초대하면 금방 입 안쪽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이제는 셔츠의 안쪽으로 들어오는 유우야의 손이 아까보다 뜨거웠다. 아까부터 신경 쓰이던 허벅지에 손을 올려 쓰다듬으면 크게 헐떡이는 유우야의 목소리를 들으며 아카바는 성급하게 그의 속옷에 손을 대었다. 이쪽까지 여성용이라니, 정말 도발적인 남자였다. 내일은 일찍 일어나려 했지만, 이렇게까지 자신을 유혹해오는 남자를 앞에 두고는 아마 무리일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하리쿠
2015. 4. 11. 00:23









 어느 날부터인가, 침대에서 일어났을 때 어쩐지 몸이 찌뿌듯했다. 바뀐 환경의 탓인지, 아니면 취직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기 때 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요즘 따라 힘들어진 크로노스 교수님의 수업 탓인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많았기 때문에 만죠메는 조금 몸을 이리저리 비틀어 스트레칭을 하다가 천천히 발을 바닥을 향해 내렸다. 오늘은 평소보다 더 일찍 자야지. 어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씻기 위해 화장실로 향한 만죠메가 거울을 봤을 때 처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목덜미에 선명하게 나타나있는 붉은 멍 자국이었다.



“ 뭐야, 이건.”



 혹시나 뭐가 묻은 것은 아닐까, 하고 물을 묻혀 문질러보았지만 아쉽게도 그 자국은 사라지지 않았다. 꾸욱 눌렀을 때 딱히 아픈 것도 아닌 것을 보면 부딪친 자국은 아닌 것 같은데,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없었던 것 같은 멍이 갑자기 생기다니 만죠메는 고개를 조금 갸웃하며 목덜미를 여러 번 문질렀다. 이 정도라면 자신의 목폴라로 아슬아슬하게 가려질 듯한 장소였기에 딱히 문제될 것은 없었지만, 혹시나 벌레에게 물린 것일지도 모르므로 오늘은 매점에 가서 벌레 퇴치제라도 사놓아야겠다고 생각하며 만죠메는 나갈 준비를 시작했다.


 그 이후로는 별다른 상처가 없었기 때문에 만죠메는 솔직하게, 그것에 대해 잊어가고 있었다.


 

“ 헉! 만죠메 군. 등이 왜 이럼까!?”



 그리고 그 자국이 조금의 착색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질 때 즈음, 쇼 녀석이 자신의 등을 보고 놀라는 것이었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따라 제멋대로가 되어버린 크로노스 교수님의 막무가내 체육시간에 옷을 갈아입으러 화장실로 가는 것조차 힘들었다. 유난히 근육이 붙지 않는 몸 때문에 남들 앞에서 옷을 갈아입는 취미는 없었지만, 모처럼 탈의실에서 상의를 벗자마자 들려온 목소리에 만죠메는 인상을 조금 찌푸렸다. 아직 체육복조차 벗지 않은 쇼가 다가와 등의 맨 살을 몇 번 꾸욱 눌렀다. 대체 자신의 등이 어떻기에 그런 반응을 하는지 알 수 없어 몇 번이나 고개를 돌려 등을 확인하려 했지만 아쉽게도 시야에 잡히지 않았다.



“ 어디 부딪치기라도 했슴까? 아니면 벌레? …동물이라도 키우는 검까?”



 대체 어떤 상태인지 알려주지도 않고 이리저리 자신의 할 말만 늘어놓는 쇼에게 조금 짜증을 내고 나서야 만죠메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등을 볼 수 있었다. 상처 하나 없이 매끈했던 자신의 등에, 전에 본 것과 같은 붉고 푸른 멍들이 수없이 들어있었다. 심지어 언제부터 나기 시작했는지 옅어져 가는 것들도 있었고, 이미 자신의 색을 잊어버리고 착색된 피부까지 있었다. 이 정도가 될 때까지 자신이 아무것도 눈치 채지 못했다는 사실조차 이상할 정도로 엉망이 되어있는 등에, 만죠메는 이것저것 물어대는 쇼에게 아무런 말조차 할 수 없었다. 일단 아유카와 선생님에게 가보라는 쇼의 말을 뒤로하고 만죠메는 서둘러 옷을 갈아입은 후 탈의실에서 나왔다. 어쩐지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실수로 어디에 부딪친 것으로 생길 상처는 아니었다. 벌레에게 물린 것이라고 해도 이렇게 많이 생길 때까지 자신이 눈치 채지 못할 리도 없었고, 전에 목에 멍을 발견한 날 벌래 쫓는 약까지 뿌렸었다. 게다가 분명, 그것들 중에 자신이 본 것이 맞다면, 이빨 자국도 있었다. 누가 봐도 사람이 냈을 이빨자국에 만죠메는 소름까지 돋을 지경이었다. 자신은 남에게 등을 허락한 적이 없었다. 단 한 사람, 유우키 쥬다이를 제외하고는. 하지만 그와 몸을 마지막으로 섞은 것은 작년이었고, 그는 자신을 이렇게 깨물지 않았다. 그러니까 자신의 등에는 이러한 자국이 남아있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만죠메의 걸음은 레드 기숙사로 향하고 있었다. 어쩐지 머릿속에서 어른어른거리는 쥬다이의 얼굴이 신경 쓰였기 때문이었다. 요즘 수업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아 볼 일조차 생기지 않던 쥬다이의 얼굴이 마치 어제 본 것처럼 맴돌았다. 자신의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별로 없었다. 혹시 쥬다이가 아니더라도 그는 무언가 알지도 모른다. 점점 가까워지는 레드 기숙사가, 분명 나온 지 꽤나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어제 온 것처럼 익숙했다. 낡은 기숙사의 계단이 끼익거리는 소리조차도 그랬다.



“ 어이, 유우키 쥬다이!”



 쥬다이의 방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커튼을 쳐놓았기 때문인지 어두운 방안에, 가볍게 앉아있는 쥬다이의 눈만이 어두운 갈색으로 반짝인 것 같았다. 자신을 멍하게 보고 있는 쥬다이의 상태가 어쩐지 이상했다. 문을 닫으면 단숨에 빛 하나 들어오지 않게 되어버린 방안이 어쩐지 오싹해 창문이라도 열기 위해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가자 손목에 잡혔다. 무언가 말하기 위해 벌린 입이 단숨에 막히고, 오랜만에 하는 키스 덕인지 단숨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게 되자마자 옷 안으로 손바닥이 들어왔다. 오랜만에 보자마자 인사 한 마디 없이 하는 것이 이런 것이라니, 끝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솔직하게 그의 목에 팔을 걸려는 순간, 등에게 따끔한 감각이 올라왔다.



“ 윽!”



 쥬다이의 손톱이 파고든 것이었다. 단숨에 살점까지 떼어버릴 정도로 강하게 파고들어온 손톱에 저도 모르게 눈물까지 핑 돌았다. 대체 뭐하는 짓이냐고 화를 내려 쥬다이 녀석을 바라본 순간 만죠메에게 보인 것은 그의 붉고 녹색인 눈이었다. 이 감각은 분명, 어디선가 느껴본 적이 있었다. 등에서 아릿하게 올라오는 고통에 신음할 때마다 보이던 쥬다이의 눈. 몇 번이나 그를 떼어내려 했지만 몸에 제대로 들어가지 않던 힘. 그리고 자신이 신경 써서 보지 않으면 모를 장소에 계속해서 집착하던 쥬다이까지.



“ 좋아해, 만죠메….”



 역시, 범인은 쥬다이였구나. 어쩐지 흐릿해져가는 정신 속에서 만죠메는 울 것 같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쥬다이를 보았다.

 






-


 

 아침에 일어났을 땐 어쩐지 몸이 찌뿌듯했다. 몸을 일으키자 관절 이곳저곳에서 뚜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여간 크로노스 교수의 막무가내 체육수업이 분명 몸을 혹사시킨 것이 분명했다. 별로 좋지 않은 몸 상태에 침대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지만, 만죠메는 조금 힘을 주어 몸을 일으켰다. 슬슬 쇼 녀석이 먼저 내려가 식당에 가있을 시간이었다. 하여간 블루 기숙사에 처음 온 놈들은 멋대로 각이 잡혀서 사람을 성가시게 하는 것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어제 체육시간이 끝나고 쇼에게 무슨 말을 들었던 것 같은데. …딱히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을 보면 그다지 중요한 말은 아닌가. 설렁설렁 화장실로 향하는 만죠메의 등에는 어제 새로 새겨진 상처가 하나, 목덜미 뒤의 새빨간 키스마크가 둘.

 

'유희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야신고] 하나하키  (0) 2015.04.19
[유야아카/R15] 발목  (0) 2015.04.11
[유야신고] 첫 키스  (0) 2015.04.06
[유야신고/R19] 터져나오는, 어때?, 좋은데. 넌?  (0) 2015.03.15
[전력 60분/십만] 위로  (0) 2015.03.14
Posted by 하리쿠
2015. 4. 6. 04:03

- 오글거림 주의 아주 살짝 수위 주의










 사와타리 신고에게는 키스는 그다지 큰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아무리 연인사이인 유우야에게라고 할지라도 누군가가 유우야가 좋아, 파파가 좋아? 하고 묻는다면 사와타리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파파에게 자연스럽게 하는 굿나잇, 혹은 굿모닝 키스를 유우야에게도 할 수 있다고 가볍게 생각한 것이었다. 하지만 가벼운 말다툼을 하다가 순전히 유우야의 벌어진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해서 했던 키스가 첫 키스였다는 사실을 유우야는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아까부터 유우야가 잔뜩 삐져있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였다.


 아, 진짜. 대체 어쩌라는 거냐구. 사와타리는 이제 자신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는 연인을 보며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사실 키스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아주 예전부터 있었기 때문에 방금의 키스는 솔직히 나쁘지 않았다고 사와타리는 생각하고 있었다. 비록 자신이 붙잡은 것은 유우야의 멱살이었지만, 제대로 입술도 닿았고, 혼자 연습해본 것처럼 입술도 몇 번 핥았다. 눈을 감는 것도 잊지 않았으며 처음일 유우야를 위해(비록 자신도 처음이었지만) 숨이 차지 않도록 금방 떨어져 주는 것까지 완벽한 매너의 키스였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나 반응이 좋지 않다니. 대체 어떤 키스가 하고 싶었던 거야! 슬슬 화라도 내고 싶었지만 분명 유우야가 삐진 것은 자신의 탓이었기 때문에 사와타리는 조금 더 마음을 다스리며 상냥하게 그를 불렀다.



“ …어이, 사카키 유우야. 넌 대체 어떻게 하고 싶었던 건데.”



 비록 그의 상냥함이 세간에 통용되는 그것이 아니었을지라도, 사와타리 나름대로는 그랬다. 그의 말을 듣고도 한참동안 입을 꾸욱 다물고 있는 유우야에게 몇 번 더 말을 걸던 사와타리가 신경질적으로 뒷머리를 헝클었다. 이건 무슨 삐진 여자 친구도 아니고, 말을 해야 할 거 아니야! 참던 이성의 끈이 끊기는 것을 느끼며 요코 씨에게만 들리지 않을 정도로 화를 내려던 찰라, 조그맣게 유우야의 입이 열렸다. …좀 더, 분위기 있는 첫 키스가 하고 싶었다고, 하고.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도 않을 목소리로,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하. 그 말을 들은 사와타리는, 솔직히 어이가 없었다. 그와 자신은 같은 성별이고, 여자가 아닌 남자에게 그다지 분위기를 잡아야 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는데, 그가 이렇게 신경을 쓰고 있을 줄은 조금도 몰랐던 것이었다. 이 사와타리의 말을 모조리 무시한 이유가 겨우 분위기? 유우야 녀석이 손을 잡을 때에도 묘하게 쭈뼛거린다던가, 말없이 눈을 마주하고 있으면 부끄러워 할 때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정도일 줄이야! 사와타리는 맥이 탁 풀려 어떻게 대답을 해줘야 할 지 조차 알 수 없었다. 하아. 푹 내쉬어진 한숨에 유우야의 어깨가 조금 움찔거렸다.



“ 네가 하고 싶었던 건 뭔데? 한 번 해보시던지.”



 등 뒤에 있던 침대에 몸을 기대며 공중에 손을 휘휘 젓자 유우야의 푹 숙여진 고개가 휙 들어올려졌다. 동그랗게 뜨여 몇 번 깜빡대는 눈동자가 어린아이 같아 사와타리는 어깨를 조금 으쓱거렸다. 더 어른스럽고 남자다운 자신이 참아야지. 제대로 자신을 바라보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거리는 시선에 빨리 해, 하고 재촉하자 마침내 마음을 다잡은 것인지 자신을 똑바로 바라본 유우야가 조금씩 다가왔다. 하여간 성가신 놈이었다.


 텁, 하고 자신의 얼굴 옆의 침대에 놓여진 유우야의 손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가 다시 앞을 바라보니 어느새 그의 얼굴이 바로 앞에 있었다. 하려면 빨리 할 것이지 괜히 왜 뜸을 들이는지 모를 노릇이라 인상을 조금 찌푸리자 유우야가 사와타리, 하고 자신을 불렀다. 대답을 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시선을 맞추는 것으로 대신하자 유우야가 조금 입술을 당겨 웃었다. 두근, 하고 잠시 심장소리가 온 몸으로 퍼졌다. 왜 이런 곳에서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인지, 혹시나 자신이 그의 얼굴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킨 것인지 하는 혼란스러운 마음에 어쩐지 눈동자가 빙글빙글 돌았다. 마음대로 해도 좋다는 말은 했지만 자신을 당황시키라는 말은 한 번도 하지 않았잖아! 자신이 생각해도 억지스러운 생각을 하며 시선을 흐트러뜨리자 유우야의 얼굴이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이렇게 되어서는 어느 쪽을 바라봐도 유우야밖에 보이지 않게 되어버린다. 방금까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던 머리가 단숨에 유우야로 가득 차올랐다. 숨을 크게 쉬면 혹시나 유우야에게 닿을까, 하는 생각에 사와타리는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어째서 그에게 원하는 대로 하라고 했을까, 하고 조금 후회스러웠다. 이래서는 자신의 페이스조차 찾을 수 없지 않은가.



“ 유, 야,”


“ 좋아해.”



 이건 정말 제대로 크리티컬이다. 아까부터 시끄럽게 쿵쿵거리던 심장소리가 더 커진 것 같았다. 이래서는 유우야에게 들려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다스리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 조금 벌어졌던 입술이 닫혔다. 그것과 마주 닿기 위해 성큼 다가온 유우야의 입술에 움찔, 하고 고개를 조금 뒤로 당겼다. 지금 그와 키스를 했다간 분명 무슨 일이 생겨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분명 파파와 했던 키스와는 달랐다. 예전에 키웠던 고양이와 했던 키스와도 달랐고, 방금 전 자신과 유우야가 했던 키스와도 달랐다. 당장이라도 도망가고 싶어 하는 표정의 사와타리에게 유우야는 아까보다 조금 더 성급하게 입술을 마주했다. 부드럽게 닿아오는 유우야의 입술은, 이제는 피할 수 없었다.



 눈은 저절로 꾸욱 하고 감겼다. 얼마나 세게 감았는지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마저 느껴졌지만, 사와타리는 감은 눈을 뜰 수 없었다. 여기서 눈을 떴다간 유우야밖에 보이지 않게 되어버린다는 것이, 참을 수 없었다. 아까전의 키스는 분명 이런저런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이번엔 입술만 닿았을 뿐임에도 머릿속에 새하얗게 변했다. 아까 전부터 제대로 쉬지 못한 숨이 벌써부터 막혔다. 그럼에도 유우야가 바로 앞에 있다는 사실에, 크게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저도 모르게 속눈썹에 눈물이 걸렸다. 부드럽게 머리를 감싸오는 유우야의 손이 처음으로 남자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우야의 고개가 조금 돌아감에 따라 생긴 틈으로 숨을 쉬기 위해 입술을 벌리자 금방 혀로 막혀버렸다. 미끄러지듯 안쪽으로 들어오는 축축한 살덩이가 자신의 그것보다 훨씬 뜨거워 사와타리는 몸을 조금 떨었다. 잠시 치아를 더듬던 혀가 자신의 것과 맞닿고, 천천히 움직였다. 오히려 정신이 없을 만큼 입 안을 헤집었다면 하얗게 변한 머리 덕에 괜찮았을 텐데, 조금씩 할짝이는 바람에 오히려 말캉한 느낌을 더 확연하게 느끼고 있었다. 입 안에서 자신과 유우야의 타액이 섞여 끈적거렸다. 입을 벌리고 있어서는 제대로 삼킬 수도 없었기 때문에 입술 사이로 흘러버릴 것 같아 입술을 조금 모으자 유우야는 금방 입술을 떼어주었다. 금방이라도 흘러넘칠 것 같은 입안의 타액을 꿀꺽 삼키자 자신이 유우야의 것까지 삼켜버렸다는 생각에 괜히 얼굴이 홧홧거렸다.


 유우야의 키스는 제대로 모르는 자신이 느끼기에도 확실히 서툴렀다. 입 안에서 몇 번 움직이지조차 않았고, 아마 그는 어떻게 해야 하는 지조차 제대로 몰랐을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와타리의 숨은 턱까지 차올라 헐떡대었고, 머릿속은 새하얗게 변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숨을 몰아쉬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유우야의 얼굴이 빨간만큼 아마 자신의 얼굴도 빨갛게 달아오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이게 키스구나. 유우야가 원했던 것은 이것이었구나. 유우야의 머릿속에서 이러한 키스가 몇 번이나 리플레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또다시 부끄러운 기분이 들어버렸다. 유우야를 어린 아이라고 놀리고 있었지만, 정말 어린 아이는 자신이었던 것이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유우야의 눈이 남자의 그것으로 변했다. 차마 그것을 피할 수조차 없었다.



“ 사와타리. …한 번 더 해도 돼?”



 거절을, 할 수조차 없었다.

 

Posted by 하리쿠
2015. 3. 15. 04:28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