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17. 01:56

- 사이데리 / 사이츠가 '역' 이라는 것은 사이케가 공이라는 뜻입니다.

" 그러니까, 사이케형이.. 좋아."

데리오가 머쓱한듯 머리뒷편을 긁적이며 말을 꺼냈을 때, 츠가루는 솔직하게 말해서 정말 기뻤다. 주변인들보다 특히나 어른스럽던 츠가루로써는, 화도 잘내고 부끄러움도 잘 타는 데리오가 - 자신보다 어리기는 해도 - 너무나도 어린아이 같아 보였기에 데리오에게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걱정이 샘솟던 참에 데리오가 자신에게 그렇게 고백을 해와서, 츠가루는 그의 말에 그저 기쁘게 미소지을수 밖에 없었다. 그 상대가 남자건, 자신들의 본체가 너무너무 싫어하는 이자야씨의 모습을 하고있건 간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이해심이 많은 츠가루는 동성간의 사랑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조금의 반발심도 없었고, 자신도 정말 그 사람이 좋다면 상대가 남자건 여자건 신경쓰지 않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츠가루는 정말 진심에서 우러나온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 정말요 ? 축하해요, 데리오씨 !"

하얀 기모노를 입고있기에, 아무래도 하얀 피부가 눈에 띄는 츠가루가 파아란 눈동자를 예쁘게 휘며 말했다. 손을 들어 데리오의 머리를 조금 쓰다듬자, 자신이 게다를 신고 있다고는 해도 자신보다 키가 조금 더 큰 데리오가 고개를 약간 숙여가며 그것을 받았기에, 데리오가 겉으로는 까칠하고 신경질 적으로 보여도 이런것에서 볼 수 있듯 배려심 많다는것을 알고있는 츠가루는 그러한 작은 몸짓에 역시나 지어지는 미소를 숨길 수 없었다.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해 항상 화내고 있는것 같아 보여 마냥 어려보이고 어려보였던 데리오가, 이제는 이렇게 한 사람을 좋아하는 남자가 되어버리다니, 형으로써 한편은 조금 씁쓸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츠가루는 기쁜마음으로 데리오를 응원해주고 싶었다.

그랬기에 츠가루는 '제가 응원해 줄께요 !'하며 긴 소맷자락을 팔랑이며 주먹을 불끈, 쥐고 화이팅 ! 하는 제스츄어를 취했다. 바다처럼 푸른빛의 기모노가 눈앞에 살랑거려, 하얀 츠가루가 마치 고운 선을 띄고있는 기모노에 녹아든듯 보였기에 데리오는 자신과 똑같은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츠가루가 매우 예쁘고 신비롭게 보였다. 게다가 어린아이처럼 화이팅이라니. 동생인 자신에게도 존댓말을 쓰며 항상 반듯이 웃고있고, 바른 말투에 차분한 성격인 츠가루의 순수한 모습에, 데리오는 방금까지 고백때문에 약간 찡그리고 있던 인상을 곧게 펴며 츠가루와 같이 예쁘게 웃었다. 항상 날카롭게 깎여있던 분홍색 눈동자가 호를 그리며 휘어있는 모습은, 썩 보기 좋았다.

데리오가 돌아간 후, 츠가루는 자신이 존재하고있는 프로그램속에서 자신의 의지로 하얀색 의자를 만들어놓고 그것에 털썩 앉아서는, 조금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츠가루의 방은 그 주인의 성격을 닮아 새하얬다. 하얀 벽지에 바닥, 한구석에 놓여있는 새하얀 침대까지. 물론, 이불은 츠가루가 즐겨입는 기모노를 닮아 푸른색의 무늬가 방울방울 새겨져 있었지만, 그것은 바르게 개어있었으므로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언뜻보면 어딘가 불안한 환자의 방 같아 보일수도 있었지만, 그 안에 츠가루가 존재하고 있었음으로 그 방은 새하앴음에도 불구하고 생기넘쳤고, 텅 비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넓은 초원을 보는것같은 편안함을 주었다.

츠가루가 진지한 표정을 짓고있는 이유는 당연히 방금의 데리오 때문이었다. 응원해줄께요 ! 하고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사실 아직 자신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져본적이 없었고, 그렇기에 남을 좋아하는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했기에, 책으로 몇번 봐오고 몇번 상상은 해봤지만 아직도 두리뭉실한 그 감정을 파악하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는게 츠가루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만약 자신이라면 데리오가 좋아해준다는 것만으로도 기뻐서 똑같은 감정을 가져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나, 사이케는 자신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아무리 같은 프로그램이라도,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듯이 츠가루 또한 사이케의 마음을 알 수 없으므로, 사이케가 데리오를 어떻게 생각할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츠가루가 고민하고 있을무렵,

" 츠-으 가루우-!!"

하며, 갑자기 발랄한 목소리를 하며 뛰어들어 오는 사이케에 한참 어떻게 해야 둘을 엮어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사이케에게 데리오의 매력(?)을 알려줄 수 있을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던 츠가루가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새하얀 코트와 핫핑크색 헤드셋을 한 채로 방방 뛰고 있는 사이케가, 츠가루의 방에 들어오자마자 도도도, 뛰어 츠가루에게 안겼다. 순간 사이케의 품안에 가득 안겨버린 츠가루가 갑자기 눈에 한가득 들어오는 하얀색에 정신을 못차리며 허둥지둥 했다. 그러는 틈에 츠가루가 앉아있는 의자의 양 옆 약간 비어있는 곳에 자신의 무릎을 걸치고 자세를 잡은 사이케가 위에서 츠가루를 내려다보는듯한 포즈로 츠가루를 향해 예쁘게 웃어보였다. 항상 웃는얼굴이라 별로 달라질것은 없었지만.

" 사실 아까아까 왔는데, 데리랑 웃고있어서 못들어왔다구 ! 데리가 웃는얼굴 처음봐 !"

여전히 방방거리는 목소리로 빙글빙글 웃으며 떠들어대는 사이케가 여전히 약간 당황한 얼굴을 하고있는 츠가루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자신을 향하게 올렸다. 갑자기 뛰어든 사이케 때문이기도 했지만, 보고있었다는 사이케의 말에 혹시 처음 데리오가 고백한 순간부터 보고있던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더더욱 당황해있던 츠가루가 갑자기 자신의 고개를 올리는 사이케의 행동에 자신의 당황한 얼굴을 완전히 드러내보였다. 그러나 그러한 츠가루의 얼굴조차 뭐가 그리 좋은지 방긋방긋 웃던 사이케가 다시 입을 열고 조잘거렸다.

" 저기저기, 츠가루 ! 사이케, 좋아 ? 나나, 사실 오늘 히비- 에게 갔다왔는데 ! 그냥 고백하는게 좋다고 해서 ! 사이케는 츠가루가 너-무 너무 좋다구 !"

얼굴이 매우 가까워서, 가뜩이나 높고 큰 사이케의 목소리가 귀로 그대로 전해져들어와 쨍쨍하고 울렸지만, 츠가루는 그것에 조금의 불쾌함도 없이, 당황한 표정을 다시 정리하여 편안한 얼굴로 만들고는 사이케를 향해 웃었다. 나도, 사이케가 좋아요. 하고, 츠가루로써는 당연한 말을 하자, 사이케는 그것에 뭐가 불만인지 인상을 살짝 찡그리며 볼을 부풀렸다. 아니야, 아니야 ! 하며 아무래도 큰 목소리의 톤을 더더욱 높히며 부정하는 사이케가, 무엇이 잘못된것인지 잘 모르겠는 츠가루는 그저 고개를 갸웃, 할 뿐이었다. 정말 츠가루는 데리오와 사이케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을 좋아하고 있었기에, 자신의 말에는 조금의 거짓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부분에서 사이케가 삐져버린것인지 전혀 모르겠을 다름이었다.

" 틀려 ! 사이케는 정-말 정말 좋아한다구 !"

" 네 ? ...저도 사이케가 정말 좋아-,"

사이케의 불만에 츠가루가 조곤조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자, 그 대답 또한 마음에 들지 아니했던 것인지 사이케는 츠가루의 말을 끈으며 자신의 고개를 내려 그대로 츠가루에게 입맞추었다. 고개가 올라간 채로 말을 하고있었던 츠가루는 아무런 저항없이 사이케에게 입술을 내주었고, 입술에 닿는 몰캉하고 따듯한 무언가가 처음에는 무엇인지 몰라 그저 눈만 동그랗게 떴으나, 곧 가까워진 꼭 감고있는 사이케의 속눈썹과 입술의 느낌에 당황하고 말았다. 의자의 손잡이에 가지런히 놓여있던 파란색 매니큐어가 발린 츠가루의 손끝이 움찔, 했다.

" 내가 츠가루를 좋아하는 마음은 이만-큼이라구 !"

키스, 라기에는 너무나도 짧은, 그러니까 가벼운 뽀뽀를 한 사이케가 여전히 눈을 동그랗게 뜨고있는 츠가루를 내려다보며 츠가루의 고개를 잡고있던 손을 놓고 허공을 향해 내뻗으며 휘져었다. 아마 이-따만큼 좋아한다는 표시이리라. 그러나, 츠가루에게 그런것따위는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츠가루의 머릿속은 이미 사이케와의 뽀뽀와 말로 인해 어지러웠기 때문에. 그러니까, 츠가루의 마음상태로 끝을 맺자면.

…………에 ?

- fin.

 

Posted by 하리쿠
2013. 1. 17. 01:55

츠키시마는 솔직히 말해서, 울고싶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발로 거리의 아스팔트를 밟으며 걷고있자니 넘어져버릴것 같기도 했고, 어디서 돌부리가 튀어나와 자신의 발을 방해할지 불안했다. 원래 길을 잘 잃어버리는 터라 모르는 거리로 나서는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는 했지만, 여기는 자신이 자주 와보던 이케부쿠로의 거리였다. 그렇기에 길을 잃어버려 당황할 염려는 없었지만, 자신이 당면한 문제는 그것과는 전혀 다른것이었다. 평소라면 전혀 걱정할것이 못되는, 아주 당연스럽게 여겨지던 무언가의 부재. 그렇기에 새로운것에 익숙하지 못한 츠키시마가 이렇게 무기력하게 당하고있는것은 어찌보면 어쩔 수 없는것이었다.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며 거리의 구석구석까지 밝혀주는, 태양의 고도가 가장 높은 점심무렵, 츠키시마 시즈오는, 지금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시력이 없다던가, 하는것이 아니다. 딱히 다친것도 아니다. 그러나 시즈오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원인은, 겉으로 볼 때에는 츠키시마가 평소에 쓰고있는 것과는 전혀 다를것이 없어보이는, 선글라스였다. 매직으로라도 칠해놓았는지 바깥의 풍경을 전혀 내비치지 못하고 그저 새까만 암흑만을 보여주고 있었다. 분명 눈을 뜨고 있었음에도 눈을 감은것 같은 그러한 광경. 솔직히 말하자면 눈을 아래로 내리깔면 자신의 발밑정도는 보였고, 눈을 위로 치켜뜨면 파아란 하늘정도는 보였지만, 그정도로는 바로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불안감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츠키시마는 떨리는 손으로 잡아들고있는 핸드폰에 더더욱 귀를 파뭍으며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 그렇게 조금씩 걷다가는 날 새겠어."

있는힘껏 귀를 대고있기에, 핸드폰의 스피커를 타고 츠키시마의 귓속으로 직접 타고 들어온 목소리가 잔잔하게 울렸다. 분명 목소리는 무척이나 미성이었지만, 츠키시마는 여전히 앞이 보이지 않는 불안함에 바들바들 떨며 그 목소리에 대답조차 못한 채 발걸음을 옮겼다. 데이트약속이 있던 일요일 아침. 몇번을 만나도 두근두근한 마음이 전혀 가시지 않아, 오늘도 역시 자신의 연인 생각을 하며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준비를 마쳤을 때, 전화가 왔다. 발신자는 자신의 연인, 팔면육비 이자야. 몇분뒤에 만나기로 되어있어 그것조차 떨리는데, 벌써 전화로 대화를 하게 되다니. 츠키시마는 벌써부터 육비의 목소리를 듣게될 생각에 얼굴까지 빨갛게 달아올라 머리가 딩딩 하고 울렸다. 아.... 아...아아아아아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되있어요....!!!

그러나 기껏온 전화를 받지 않으면 육비에게 미움을 받아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츠키시마는 허둥지둥 그 전화를 받았고, -너무 허둥대는 바람에 전화기를 떨어뜨릴뻔했다.-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감춘 채 '여보세요' 하자, 스피커 저편에서 들려온 첫 소리는 '선글라스는 잊어버렸어 ?' 였다. 그러고보니, 항상 쓰고다니던 선글라스를 쓰는것을 잊어버릴뻔 했던 츠키시마는, 자신이 선글라스를 쓰고있지 않은 사실을 육비가 어떻게 알고있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일으키지 않은 채 자신의 침대옆에 놓여있던 그것을 썼고, 거기서부터가 시작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선글라스에게 당황하는 츠키시마를 향해 육비는 조용한 목소리로 그 선글라스를 쓰고 자신의 전화에만 의지한 채 약속장소로 오라는 터무니없는 것을 요구했고, 차마 육비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던 츠키시마는 얌전히 그 요구를 허락했다.

그리고 후회했다. 뭐든지 잘 해내는 육비였기에, 이러한 안내도 잘 할것이라 믿고 있었던 츠키시마에게 눈이 보이지 않는 장애는 생각보다 무서웠다. 물론, 육비의 설명이 부족했던것은 아니다. 정면에 사람이 있으니까 피해라, 앞으로 세발자국정도 더 가라, 여기는 횡단보도니 기다려라, 등등. 마치 바로 옆에서 보고있는것처럼 조곤조곤 설명해주는 육비의 목소리는 분명 완벽했지만, 무서운것은 무서운것이었다. 대체 뭐하는 짓이냐고 물어도 핸드폰 저편의 그사람은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유도 모른 채 덜덜 떨리는 발걸음을 옮기고있는 츠키시마는 아주 죽을맛이었다.

" 거기서 멈추고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

하는 명령에, 츠키시마는 바로 앞에 상대가 있는것도 아니것만 고개를 끄덕, 하고는 발걸음을 멈추고 몸을 틀었다. 그리고 그 순간, 바로 코앞에 세찬바람이 지나가며 자동차의 엔진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너무나도 놀라버린 츠키시마는 저도 모르게 히끅, 하고 딸꾹질을 해버렸고, 눈가에 하나가득 차있던 눈물이 흘러내려 버릴것만 같아서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입고있는 와이셔츠의 소매깃을 밑으로 끌어내려 눈가를 훔쳐보았지만 어째서인지 계속해서 소매가 젖어만갔다. 방금, 자신의 앞에 차가 지나갔다는, 그러나 자신은 그것을 보지 못했다는, 어쩌면 그것에 자신이 다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츠키시마는 차마 눈물을 그칠수가 없었다. 더이상 안돼, 무리야. 아무리 자신이 좋아해 마지않는 육비의 명령이라 할지라도 츠키시마는 다시는 이렇게 무서운 경험따위를 하고싶지 않았다.

이건 그거다. 전에 이자야씨의 '사무실을 이전했으니 놀러와도 좋아☆'하는 말에 큰맘먹고 지하철을 타고 모험을 떠났을 때, 분명 이자야가 자신에게 그려준 지도대로 찾아갔고, 혹시나 길을 잘 잃어버리는 자신이 실수라도 할까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갔것만, 이자야의 사무실은 커녕 우락부락 이상한 아저씨들이 모여있는 사무실의 문을 두드려버려서, 그 아저씨들이 자신을 째려봤을 때 같은 무서움. 결국 그것은 뉴페이스인 자신을 골려주기 위한 이자야씨의 장난이었고, 그것을 눈치챈 육비의 보호로 인해 째림을 당한것도 단 한순간 뿐이었지만, 츠키시마는 그 잠깐이 엄청난 무서움으로 다가와 그대로 주저앉아버렸었다. 츠키시마는 갑자기 몇달전의 자신이 생각났을만큼 지금의 상황이 무서워졌기에, 저도 모르게 다리의 힘이 빠져버렸다.

그리고, 그것은 츠키시마 시즈오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눈물이 차오른것이 귀까지 멍멍하게 만들어버린 것인지 겉의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서 무슨상황인지 잘 모르는것이 당연했지만, 겉으로는 위험천만했다. 왜냐하면, 츠키시마는 바들바들 떨리는 다리를 간신히 가누고 있었고, 그렇기에 비틀비틀했고, 방금 육비가 말했듯이 츠키시마는 횡단보도에 있었으며, 차가 바로 앞에 지나간것으로 알 수 있듯이 절때 인도에 있지 않았다. 그렇게 눈도 귀도 제 기능을 수행 못하는 상황에서 츠키시마는 여전히 훌쩍이고 있었고, 소매는 잔뜩 젖어버렸기에 자신이 이렇게 울어버렸다는 사실이 육비에게 전해진다면 '울보와는 사귀고싶지 않아.'하는 소리를 들어버릴까 두려웠고, 그러나 지금 상황도 충분히 무서워서, 빨리 상황을 끝내버리고 싶었기에 저도 모르게 육비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은 채 발을 내딛어버렸다. 그리고, 지금은 빨간불. 그리고,

빠아앙─────

하고 드라마에서나 울릴법한 길게 여운을 남기며 들려오는 경적소리 따위는, 츠키시마의 귀의 고막을 울리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옆에서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만큼의 약간의 거리를 두고 걷고있던 육비가 노리던 상황.

" .......내가 없으면 안된다니까."

여전히 연결되어있는 핸드폰에게 들릴만큼 속삭이듯 작게 중얼거린 육비가 진한 미소를 지으며, 차가 오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차도를 걷고있는 츠키시마의 행동에 경악과 걱정으로 놀란얼굴을 하고잇는 사람들사이를 헤치가 나가, 멍해있는 츠키시마의 허리에 자신의 팔을 감싸 끌어당겼다. 얼굴에 핸드폰의 자국이 생길정도로 꾹꾹 누르고있던 츠키시마의 귀에 박혀든 육비의 소리에, 그 말의 뜻을 모르고 멍해있던 츠키시마는 갑자기 자신의 허리에 감겨든 팔의 힘에 넘어지듯 자신을 맡기었고, 그랬기에 자신보다 키가 작은 육비의 품에 안겨들 수 있었다.

백허그당하듯 자신의 가슴에 가득 안겨든 츠키시마가, 아까의 반동으로 매직으로 칠해놓은 선글라스가 반쯤 벗겨진채, 아무것에도 가려지지 않은, 게다가 아직도 눈물이 한가득 담겨있는 맨눈을 동그랗게 뜨며 자신을 올려보자, 육비는 딱히 이런것을 원한것이 아니었지만, 정말 오늘 츠키시마를 괴롭히기를 잘 했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육비는 오늘 가만히 데이트하기가 심심했고, 자신이 먼저 한방 먹여주기도 전에 이자야에게 선수를 뺐긴것이 분했기도 했고, 얼마나 츠키시마가 자신을 좋아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기에, 오늘 그를 괴롭히겠다, 하는 생각으로 일을 벌인것이었지만, 츠키시마의 반응이 생각보다 재미있었기에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 ...육비씨 ?"

-하고, 물기어린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는것 마저도.

" 많이 무서웠어 ?"

육비는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다정한 목소리를 내며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예쁘게 호를 그리고있는 입술에 역시나, 츠키시마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어버버, 하며 말을 잇지 못했고, 그러한 츠키시마의 모습을 귀여워하는 육비는 예상했던 반응에 살며시 츠키시마의 앞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를 일으켰다. 차는 이미 지나갔고, 벌써 초록불이 되어있어 횡단보도를 지나가던 사람들이 흘끗흘끗 그들을 쳐다보았지만, 그것은 츠키시마와 육비의 신경을 조금도 끌지 못했기에 방해가 되지 못했고, 육비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난 츠키시마는 어정쩡하게 안겨있던 탓에 다리가 저려왔지만 내색하지 않은 채 육비를 마주보고 자그마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무서웠어요.

" 그럼, 데이트를 마저 하자구."

시원스럽게 내뻗어진 손이 잡으라는듯이 동그란 모양을 띄고있었기에, 츠키시마는 차마 그 손을 보고있는것마저 부끄러워져버려 눈을 최대한 내리깔았다. 아직 손보지 않았기에 반쯤 벗겨져있는, 밖을 투영시키지 않는 선글라스로 인해 내리깐 시선에는 까만색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츠키시마는 그것이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너무너무 좋아하고 있는 육비를, 그의 모습을 맨눈으로 계속 보고있자면 그것만으로도 얼굴에 피가 쏠려 화끈화끈했고, 관자놀이까지 지끈지끈해와서 츠키시마는 차마 그를 바로 마주볼수가 없었다. 그래도, 계속 손을 내뻗은채로 있으면 육비씨가 힘들테니까.

츠키시마의 손은 아까와 다른 의미로 떨리고 있었다. 아까는 무서움에 의해 떨렸다면, 지금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인해 차마 손끝을 제어할 수 없었다. 눈을 내리깔고 있어 육비의 손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점점 목 안으로 파고들어가는 고개를 더더욱 아래로 끌어내린 채 천천이 허공을 향해 손을 내뻗자, 곧 자신의 손을 가득 잡아오는 다른 손바닥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역시나 육비의 것이라서 츠키시마는 피어오르는 미소를 숨길 생각도 못한채 그대로 내보이며 얌전히 그를 따랐다. 역시, 육비씨를 좋아하기를 잘했어, 하며.

fin.

Posted by 하리쿠
2013. 1. 17. 01:54

" 시즈 ?"

하고 공기중에 가볍게 울려퍼지는 소리가 조용한 공원안을 가득 메웠지만, 그 말을 듣는 이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니, 그 이전에 얌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이가 그 소리를 들었을지는 미지수였지만. 가볍고, 어떻게 들으면 상큼한, 그리고 미성의, 그러한 목소리로 말을 꺼낸 이는 그 목소리 만큼이나 미형의 얼굴을 하고있었다. 결좋은 검정색 머리카락을 멋낸듯한 적당한 길이로 자르고, 가볍게 손질하놓은 머리모양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미청년, 신주쿠의 정보상 오리하라 이자야. 그 특유의 날카로운 눈매가 모처럼 자신이 부른 이에게 궁금증을 띄우고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꽤나 부드러워보이는, 이자야 만큼이나 얇은 머리칼을 - 금발이라 더 얇아보이는것인지는 모르겠으나 - 늘어뜨리고 있는 남자. 머리카락만 묘사를 해놓은 것은, 그만큼 푹 숙여진 머리에 그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얼굴이 머리칼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의 정체를 알 수 없는것은 아니었다. 이케부쿠로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바텐더차림의, 저런 금발을 하고 있는 남자가 또 있을리가 만무했다. 그렇기에 이자야가 벤치에 앉아있는 그의 모습에 바로 그의 이름을 입에 담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자야는 말을 마치자마자, 공원을 빠져나가려던 발걸음의 방향을 그에게로 바꾸었다. 조용한 공원에서는 몇몇 새들이 자그마하게 짹짹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이자야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고, 그리고 발걸음 소리가 멈추었을 무렵에는 그것을 대신하듯 작은 숨소리가 들렸다. 새근새근, 하고.

" 시- 즈."

자그마하게 그를 불렀지만, 역시 그는 자고있었다. 태양이 깊게 비추고있는 대낮의 공원. 비록 나무가 그늘의 역활을 하고있어 모든 빛이 그에게 닿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뭇잎사이로 실같이 들어오는 가느다란 햇빛에 유난히도 그의 머리칼이 금빛으로 반짝였고, 그것을 보고있자니 이자야는 묘하게 눈이부셔, 그대로 살짝 주저앉아 그의 얼굴을 살피었다. 위에서 올려다본 그의 얼굴은, 평소와는 다르게 곱게 펴진 미간과 튀어올라와 있지 않은 핏줄이 눈에 띄었다. 자주 그의 얼굴을 보기위해 이케부쿠로에 왔지만, 이렇게 편안해보이는 시즈오의 얼굴을 정면으로 본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었기에, 이자야는 신기한것을 보는듯한 눈으로 계속 그의 얼굴을 살피었다.

항상 쓰고있던 선글라스는 벗어두었는지 아무런 장애물 없이 보이는 살짝 감겨있는 눈과 얇게 뻗어있는 긴 속눈썹, 오똑한 콧날과 앙다문 입술까지. 이토록 평안한 얼굴을 보고 누가 그를 이케부쿠로 최강 사나이라고 생각할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곱게 펴진 미간 사이가, 물론 항상 쓰고있는 인상으로 인해 조금의 파임이 보이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나 밋밋한 형태를 띄고있어서, 이자야는 저도 모르게 손을 올려 그곳을 건들였다. 살짝 손이 닿은 미간사이는 손가락끝이었지만 느껴질정도로 따듯했고, 그것이 햇빛의 영향인지 시즈오의 체온때문인지는 몰랐지만 이자야의 손끝에 따스하게 데워진 공기의 느낌이 미미하게 다가와서, 그 따스한 느낌에 이자야는 저도 모르게 손바닥을 좌악, 펴고 시즈오의 얼굴 앞에 들이대었다.

손바닥으로 말끔히 가려지는 얼굴. 그리고, 벌어진 손가락 사이사이로 보여지는 얼굴의 파편. 원래, 멀쩡하게 보이는 것보다 드문드문 보이는것이 더욱더 눈길을 끄는것이 인간의 본성이므로, 그 손가락 사이의 형상들이 이자야의 눈에 박혀들었다. 정말로, 평소보다 얌전하고, 평안하고, 조금 강아지같기도 해서 귀엽다는 생각도 들고, 아니, 물론 인간은 모두 귀엽지만 시즈오는 인간이 아니고, 뭐랄까, 보면 볼수록 가슴속에서 무언가 형용할수 없는 감정이 스멀스멀 기어오르는것 같아서, 그러니까, 뭐였더라.

─────이걸, 뭐라고 표현하더라. ... 그러니까,

손바닥 가득 느껴지는 공기는 따스했다. 옅게 색색거리는 숨이 닿아오는 손바닥은 간지러웠다.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바람에 살랑이는 금발은 부드러웠다. 곱게 감긴 속눈썹은 가지런했다. 손바닥에 가려진, 아마 귀여울듯한 동그란 콧망울과 곧은 콧대가 잘 어울렸다. 그러니까 이건, 그거다.

이자야는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키며, 손바닥을 내렸다. 이자야의 눈동자 안에 가득하던 시즈오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졌다. 사실상, 가만히 자고있는 시즈오에게 다가가고 있는것은 이자야였지만, 아무튼. 이자야가 시즈오의 앞에 쪼그려 앉음으로써 가까워진 둘 사이의 거리는, 조금 더 좁혀지고 있었고, 이자야는 마치 비디오를 슬로우모션으로 돌리듯 천천히 시즈오를 향해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정말, 지금 분명 자신의 앞에있는 인물은 시즈오였지만, 무언가, 시즈오 같지 않다고 해야하나, 아니면 자신의 시즈오를 향한 감정이 평소같지 않다고 해야하나. 이건 다, 괜히 자고있는 시즈의 탓이야, 하고 괜한 변명거리를 속으로 중얼거리며, 이자야는 움직이는 자신의 몸을 애써 저지하지 않았다.

그렇게, 거리는 좁혀지고 좁혀지고 가까워져서, 마침내 아까 손바닥으로 느꼈던 따스한 공기의 느낌이 자신의 안면 가득히 느껴졌고, 시즈오의 숨결이 자신의 피부에 와닿아서, 이자야는 그제서야 자신이 미쳤구나, 싶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기에는 안쪽에서 저릿하게 퍼지는 몰랑거리는 감정이 쿡쿡 찔러와서, 이건 다 시즈때문이야, 하며 이자야는 조금 고개를 틀었다. 자그마하게 벌어진 시즈오의 입술사이로 옅게 드나드는 숨이 이자야의 입술사이로 살며시 전해져왔다. 그와 동시에 이자야도 조금 입을 열었고, 두 숨이 교환되며 두 입사이로 왕래하는것이, 분명 두 사람의 입은 닿지조차 않았음에도 아주 뜨거운 키스를 나누는것마냥 야릇했다. 이자야는, 잠시 그것을 느긋하게 즐기다, 조금 더 힘을 주어 몸을 일으켰다. 이제, 곧. 피부에만 느껴지는 사람의 체온이, 입술에서도 따스하게 느껴지겠지, 하며.

" ......... 음, "

그러나, 그것은 실현되지 않았다. 이자야가 시즈오의 체온을 가득 느끼고있었던것처럼, 이자야의 체온으로 뎁혀진 공기가 거슬렸던건지, 아니 둘 사이에 끼어있어 그 공기는 더욱 더 가열되었을터이지만, 아무튼 그것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한 인기척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단순한 잠꼬대인지, 시즈오의 입술 사이에서 나즈막한 소리가 흘러나왔고, 그에 깜짝 놀라버린 이자야는 재빨리 자신의 몸을 시즈오의 앞에서 떨어뜨렸다. 그렇게 벌떡 일어난 이자야가, 잠시 시즈오에게 닿을뻔 했던 입술을 손바닥으로 가렸다. 나, 도대체 무슨짓을 한거지, 하며. 한순간에, 몸속의 모든 피가 얼굴을 향해 몰린것같이 뇌속에 디잉- 하고 울렸다. 아마, 그것때문에 자신의 얼굴은 붉게 물들어있을듯 했다. 그 증거로, 머릿속은 엉망징창이었고 얼굴은 화끈거렸다. 마치 불속에 다이빙이라도 한듯이, 온 몸이 후끈거려 이자야는 도저히 이 열기를 견뎌낼수가 없었다. 도대체, 뭐가 이렇게 민망하고 이상한거람. 물론, 그 이유는 알고있지만.

이자야는 잠시 입을 가리고 있던 손을 서서히 내렸다. 정말, 공원에 사람이 없다는것이 정말 다행이었다. 만약, 자고있는 남자에게 키스따위나 하려하는 남자의 모습을 누가 곱게 봐줄것인가. 물론, 곱게 봐주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은 극소수였으므로 가볍게 넘기었다. 아무튼, 정말 자신은 무슨행동을 하고 있는건지. 이자야는 자신은 이렇게 복잡한 감정으로 자신의 행동조차 통제를 못하고있는데, 아무것도 모른채 여전히 잘도 자고있는 시즈오에 갑자기 심통이 났다. 심통, 이라고 하니까 마치 초등학생 아이같은 표현이었지만, 이자야의 속에 있는 감정은 정말, 그것과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물론, 이자야는 초등학생이 아니었지만.

" .............정말 싫다구."

.

.

.

" 오... ......시즈오 !??"

다급한 목소리로 자신을 깨우는 소리가 들려서, 여전히 잘도 자고있던 시즈오가 닫혀있던 눈꺼풀을 들어올리고 자신의 어깨를 쥐어흔드는 자신의 선배- 톰을 바라보았다. 화를 잘내는 다혈질이었지만, 그와 맞지않게 약간의 저혈압인 시즈오는 일어나자마자 평소와 마찬가지로 진하게 느껴지는 두통에 손을 들어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왜 톰이 자신을 저렇게 자급하게 부르는지에 대해 의문을 담아 톰을 바라보았다. 평소와 다름없이 수금을 하러간 어느 아파트. 그 전 수금자에게 조금의(?) 난리를 친 탓인지 톰은 시즈오에게 먼저 공원에 가있으라고, 자신이 수금해서 가겠노라고, 그렇게 말했고, 시즈오는 조용히 동의하며 얌전히 그 말을 따라 공원에 앉아있다, 그렇게 잠든것 같았다. 그런데, 저렇게 다급하게 부를만한 사정이 무언가 있던가 ?

그러고보니, 조금 이상한것이 있다. 자신의 눈에 보이는 하늘은 여전히 새파랬고, 태양은 밝았으며 세상은 여름을 향해 가고있었으므로 조금은 따듯했다. 그러나, 자신의 피부는 약간의 싸늘함을 호소하고있었다. 또한, 톰이 쥐고있는 어깨또한, 무언가 허전했다. 이것은, 만약 보통 사람이었다면 단숨에 눈치를 챌만한 현상이었지만, 시즈오는 자신의 몸에 대해서는 둔했고,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기에, 그렇기에 눈치를 채지 못한 부분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반쯤 꿈속을 헤메고 있는 시즈오를 깨우던 톰이, 그 이유를 말해주고 나서야, 시즈오는 알 수 있었다. 왜 자신들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시즈오 자신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것인지에 대해.

" 시즈오 ! 너 셔츠, 셔츠 어디갔어 !??"

하고, 톰이 소리치고 나서야, 시즈오는 자신이 아까까지만해도 입고있었던 셔츠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셔츠'가 사라졌다. 그 위에 입고있던 조끼는 아무일도 없었다는양 멀쩡히 입혀져있었것만, 셔츠만 홀연히. 시즈오는, 그제서야 왜 피부가 조금이나마 싸늘했는지, 어깨위에 놓인 톰의 손이 가까웠는지, 사람들의 시선이 저리도 이상했는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맨몸위에 조끼만 입고있었음으로, 그런것이었다. 시즈오는 깜짝놀라 자신의 상반신을 살피었고, 전혀 아픔따위는 느껴지지 않았기에 몰랐지만, 자신의 오른쪽 팔에 길게 그어진 상처를 발견했다. 물론, 그것은 시즈오의 튼튼한 육체로 인해 심하게 파여있지는 않았지만, 시즈오가 자고있던 탓에 조금의 힘도 주고있지 않았음으로 그나마, 평소보다 더 아가리를 열고있었고, 그 사이로 비집고 올라오는 피는, 이미 마르고 있었다. 그리고, 또하나, 시즈오가 자신을 살피며 알 수있던 것.

자신의 옆에, 눈을 찌르는 빛의 무언가가 꽂혀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여기 이런 평화로운 곳에 있을리가 없는, 은빛 나이프였다. 햇빛을 반사하여, 반짝반짝 빛나는, 자신에게 익숙한 그것. 시즈오는 단숨에 알아챘다. 저것은 자신이 전에 입으로 부순적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저것을 자신에게 던졌던 사람, 즉 저것의 주인이 오리하라 이자야 라는것을. 그리고, 그 칼날에 박혀있는 이리저리 찢긴 천쪼가리들이 자신의 셔츠의 잔해라는것을.

" ..........이..... 자야..... 이자식.........!!!!"

시즈오는 그 사실을 알아채자마자 손으로 그 나이프를 꽉쥐어 깨트렸고, 소리쳤고,. 톰이 말릴새도 없이 그저 조끼차림으로 어디론가 뛰어갔다. 그리고, 그의 목적지는 다들 알 그곳. 신주쿠의 정보상, 나이프를 아주 잘 다루는, 시즈오의 셔츠를 갈기갈기 찢어 조끼차림으로 만든 범인, 그리고 자신이 했다는 사실을 일부로 그에게 알리기 위해 팔을 긋고, 나이프까지 남겨둔, 오리하라 이자야의 아파트.

-fin

 

Posted by 하리쿠
2013. 1. 17. 01:52

**늦은 저녁. 이케부쿠로, 어느 무면허 의사의 집.

가끔 떠들썩해지기는 하지만, 애초에 사는 사람은 둘 뿐이라 나름 조용히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어느 고급아파트의 최상층의 집은, 지금 한 사람으로 인해 조용히라는 말과는 전혀 다르게 떠들썩해지고 있었다. 거실의 소파에 앉아있는 사람은 세명이었으나, 새어나오는 목소리는 단 두개. 그도 그럴것이, 그 셋중에서 유일한 여자인 새까만 라이더 복을 입은 이는- 목이 없었음으로 말을 할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 집에 있는 또 한사람은 지금 거실이 아닌 다른 방에 있었으므로, 거실에서 나오는 소리에 자신을 더할일이 없었다. 그렇게 남은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잔뜩 언성을 높히고 있었다.

" 그-러니까 ! 의사인 네가 말하면, 시즈는 단순하니까 믿을거아냐 !"

" 내가 왜 그런 고생을 해야하는데 ?"

아니, 두 사람이라기 보다는 언성을 높히고 있는 이는 단 하나였다. 어디 불량배에게 맞고오기라도 했는지 머리에 붕대를 둘둘 감고있는 신주쿠의 정보상 오리하라 이자야. 그를 치료할 때 쓰인것으로 보이는 구급상자를 정리하고 있는 무면허 의사인 신라는 조금 시큰둥하게 그의 말을 받아쳐주고 있었다. 그 사이에 껴있는 목없는 라이더 세르티는, 한숨을 (한숨을 쉴 입이 없어 이리 표현하는것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내쉬며 그들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이자야가 지금 왜 이런 상처를 달고 자신들에게 하소연하고 있느냐, 이것은 이자야의 말을 따라 조금 전의 상황으로 거슬러간다.

**저녁. 시즈오의 아파트.

" 시즈는 그냥 우리집에 들어와도 괜찮은데 말이야."

" 매일 아침 벽에 짓이겨지고 싶으면 그러던지."

" 죄송합니다."

평소라면 자신의 바로 앞에 서있는 이자야를 보자마자, 얼굴에 혈관을 띄우며 잔뜩 역성을 낼 시즈오였지만, 지금은 조금 달랐다. 물론 웃고있다던가, 하는 부드러운 표정은 아니었지만, 살짝 이자야에게 비스듬히 고개를 돌리며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고있는 시즈오의 모습은 평소 화를 내는 모습과는 갭이 있었다.

시즈오는 지금 무척이나 긴장하고 있었다. 이자야, 그의 말로는 '우연히'라고는 하지만 그의 우연히는 99%정도가 거짓말이었으므로 믿지 않고 하여튼, 거리에서 그를 만났다. 보자마자 평소와 다름없이 옆에 꽂혀있는 표지판을 뽑아들고 그를 향하여 휘둘렀지만, 그 또한 평소와 다름없이 그것을 피했고, 또다시 이자야와 시즈오의 추격전이 펼쳐졌다. -사실상 시즈오가 이자야를 죽어라 쫓아간것이지만- 평소라면 사람이 많건 적건을 따지지 않고 이리저리 피하며 시즈오를 골릴생각으로 가득 차있을 그였는데, 오늘은 왠지 모르게 인적이 드문곳으로 가는것이 조금 이상했지만, 시즈오는 아랑곳않고 무작정 그를 쫓았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조용한 골목길. 그제서야 이자야의 의도를 눈치챌 수 있었던 시즈오가 급하게 발을 멈추었을 무렵, 이자야는 도망가던 발걸음을 빙글, 돌려 시즈오와 마주보았다. 좁은 골목길이라, 자신이 휘두르느라 이리저리 찌그러진 표지판을 들고 올수가 없어 내던져버린것을 후회하며, 시즈오는 어느새 주먹의 반정도 크기의 돌 위에 한쪽 발로 서서 균형을 잡고있는 그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몇번이고 있던 상황인지라, 겨우 이정도의 학습능력도 없는 시즈오는 아니었기에 지금 이자야의 의도는 아주 잘 알 수 있었다.

갑자기 얌전해진 시즈오의 모습에, 이자야는 돌맹이 위에서 균형을 잡으며 미소지었다. 이제서야 자신의 의도를 눈치챈듯한 표정의 시즈오가, 역시나 너무너무 둔하다고 생각하며. 사귀는 사이라고 하여, 이자야를 너무너무 싫어하는 시즈오와, 시즈오를 너무너무 싫어하는 이자야의 모습이 달라질것은 없었다. 그러나, 가끔씩은 연인의 분위기를 내는것은 맞다. 지금 이렇게- 얌전해진 시즈오는 그런 분위기를 내기위한 전 과정이었다. 물론 마음 속 깊이서 앞에 서있는 금발의 사내를 좋아하는것은 맞았지만, 그것은 절대 마음 속 깊은곳에 있는 본심이었고, 그것을 미움과 싫다는 감정으로 꼭꼭 숨겨놓은 이자야는 절대 표면만으로는 시즈오가 너무너무 싫은것처럼 행동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시즈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좋아하고 있다고 해도, 그것을 대놓고 표현한다는 그런 오글거리는 것은, 이자야에게도 시즈오에게도 너무나도 민망한 것이었음으로. 그것을 애써 싫은척, 미운척, 덮고있는, 초등학생 남자애들이 자주 한다는 그런 행위. 두 남자의 그런 새침부끄한 행동은 겉으로는 너무나도 사이가 좋지않은 이케부쿠로 24시간 전쟁콤비라는 별명까지 자아낼 정도였다. 아무튼, 그렇게 골목에서 대치하고있던 두 사람은, 먼저 다가온 이자야로 인해 두 실루엣이 하나로 합쳐지는 광경을 만들어내게 되었다. 얌전히 그의 키스를 허리까지 굽혀가며 받아주던 시즈오가 먼저 입술을 떼며 약간이지만 민망한 표정을 짓자, 그것에 아주 곤란해하던 이자야의 손에 의해 시즈오의 아파트에까지 들어오게 된 것이 지금까지의 줄거리였다.

그리고 지금 하고있는짓은 그것의 연장선이었다.

" ... . .....음, "

-하고 시즈오의 목울대가 짙게 울리는 소리가 방 안을 가득 메우듯 들려오고 나서야, 이자야는 그제서야 자신이 사과의 말을 내뱉은 후 그에 대한 대답이 돌아오기도 이전에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 상황을 눈치채지 못 할 정도로 흥분해버리고 만것이가- 따위는 상관 없었다. 그저 지금 자신과 시즈오가 입을 맞추고 있는 사실이 중요했다. 골목에서 부터 잔뜩 분위기를 잡고있어, 그것에 잔뜩 젖어버린 시즈오는 조금의 반항도 없이 입술을 내어주고 있었고, 그 특유의 낮은 목소리에 어울리는 중저음의 허스키하고 섹시한 신음을 내어주고 있었고, 자신은 그것을 너무나도 당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입술을 맞대는것으로 시작한 키스는, 남자의 속 안에서 꿈틀거리는 욕망이라는 본성을 이기지 못하고 그것을 고지곧대로 보여주는 뜨거운 살덩이가 섞이는 것으로 이어졌고, 타액으로 끈적거리는 붉은 혀가 엮이며 이루어내는 야한 마찰음은 그 둘 사이에서 울리며 분위기를 후끈 달아올려주고 있었다. 이자야는 오랜만에 자신의 하반신이 뻐근해짐을 느끼며, 입술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숨에 그도 자신과 같을것이라 예상하며, 손을 아래로 내렸다. 만일 키스하고 있는 이가 여자였다면 손을 위로 올렸겠지. 하는 가벼운 우스갯소리를 속으로 하며. 천천히 그의 허리에 한쪽 팔을 감으며 다른 쪽 손으로는 시즈오의 셔츠의 아랫부분속에 숨겨진 버클을 풀러내렸다. 철컹거리는 쇠마찰음의 소리가 분위기를 더욱 야릇하게 만들려는듯 유난히도 크게 들려왔고, 그에 반응하듯 작게 떨려오는 시즈오의 몸을 느끼며 이자야는 뜨지 않은 눈에 더욱 민감해진 손끝의 촉각으로 그의 살결을 느꼈다. 배꼽 아래로 매끈하게 이어진 골반과, 그것을 타고 미끄러지듯 내려가며 부드러운 안쪽 속살을 더듬던 이자야의 손이 더욱 더 아래로 내려갈 무렵-

" …………………야이새끼야안떨어져 !??????"

솔직히 말해서는 너무 가까워져있던 둘 사이였기에, 잔뜩 내지르는 시즈오의 말은 이자야의 고막을 심하게 울려, 그것의 강도가 너무 심해 이자야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인식할 수 없었다. 어라, 지금 시즈가 무슨말을 했지 ? - 라는 순수한 의문을 머릿속에 떠올린 이자야는, 시간이 몇 초 흐른 후에야 자신과 달라붙어있던 시즈오가 멀리 보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고, 그 다음에야 골을 울리는 고통이 허둥지둥 찾아왔다.


자신은, 시즈오의 손에 저 멀리 팽개쳐진 것이다.

벽에 부딛쳐 얼얼거리는 머릿속은 그것만으로 너무나 엉망징창이 되어서 지금의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다. 자신과 시즈오는 키스를 하고있었고, 그 키스는 평소라고 할 수 없을만큼 진하고 야했으며, 그것에 흥분해버린 자신은 시즈오와 그보다 더한짓을 하려고 했으나 시즈오가 그것을 거부했다. 그것도 자신의 파워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을 내던져버리는 아주아주 폭력적이고 어이없는 형태로. 거기까지 떠올린 이자야는 그제서야 욱씬거리는 머리로 손을 올려 그 부분을 문질렀다. 아까의 키스로 잔뜩 달아올라있던 몸이 갑자기 끈어져버린 열기에 조금의 한기를 호소하고 있었지만, 그 부분만큼은 고통에 잔뜩 열이 올라있었다. 손에 무언가가 묻어나는 느낌이 드는것을 보니, 상처라도 생긴듯 했다. 따듯하고, 욱씬거리고, 조금 부어버린 머리를 쓰다듬든 매만지던 이자야가 아직도 조금 씩씩거리는 시즈오를 향해 말했다.

" 뭐야, 시즈. 아무리 더한짓이 하기 싫었어도 이건 심하잖아. 엄청나게 분위기 잘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상처라구."

" 분위기고 뭐고, 그런짓은 하면 안되는거잖아. 너 정말 나를 죽이고싶어서 환장한거냐 !?"

" 하면 안되는거라니. 그 무슨 안어울리는 소녀틱한 발언이야. 게다가 죽인다는건 무슨뜻이야."

24살이나 먹은주제에 14살먹은 소녀의 입에서 나올법한 말이나 하고있는 시즈오에게 이자야는 조금 입술을 내밀며 뾰루퉁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래, 여자라면 몰라. 24살이나 먹은 성인이 '그런 나쁜짓은 하면 안돼 !'라는 너무나도 바른생활 어린이같은 말을 하다니. 이자야는 조금 허탈했다. 남녀간도 아니고, 무슨 정조를 지킨다는 조선시대 여성도 아니고, 남자간의 연애에서, 이런 모럴이 바닥일것같은 남자의 입에서 나온 소리가 저런거라니. 순진해도 정도가 있지. 이자야가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있자, 시즈오는 던져버린것에 미안한건지는 몰라도 변명비스무리한 말을 중얼거리듯 말했다. 아파진다고, 하며.

" 넌 모르는 모양이지 ? 남자들끼리는 그런짓 하면 에이스라는 병에 걸린다고 !"

에이스가 아니라 에이즈겠지, 바보 시즈쨩.

**

" 풉......... 아하하하 !!!"

이자야의 말이 끝나자 마자 신라는 배를 움켜쥐고 웃음을 터뜨렸다. 시즈오 답다면 시즈오다운, 그런 너무나도 어이없고 순진하며, 어린아이 같은 말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정말 견딜수 없이 웃겼던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 있던 목없는 라이더- 세르티 마저 어깨를 떨며 소리없이 웃고있었다. 정말 웃고있는것이 맞는지는, 소리가 전혀 없었음으로 추정이었지만. 아무튼 자신의 말이 끝나자마자 죽어라고 웃고있는 두 남녀를 보고있자니 이자야는 무언가 꾸물꾸물 짜증이 밀려오는것 같아서 괜히 빽 소리질렀다.

" 웃지만 말고 좀 ! 시즈가 나오면 바로 말하면 되니까 !"

그러나 그 말이 끝나자마자 또다시 신라의 입에서는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처음, 신라의 집에 쳐들어와 '시즈에게 진실을 말해줘 !!!' 하며 달려들었을때와는 전혀 다른 반응에 이자야는 혼자 뿌득뿌득 이를 갈 뿐이었다. 확실히, 처음에는 정말 뜬금없이 그런 말을 했기에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시큰둥 했으면서 자신이 상황을 말하자마자 저렇게 폭소를 하는 꼴이라니. 잠깐 화장실좀 갔다오겠다는 시즈오가 봤다면 아무리 둔한 그라도 자신을 비웃는 것이라는걸 눈치채고 주먹이라도 날릴만한 상황이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신라가 간신히 웃음을 터트리는것을 멈추었을 무렵, 그제서야 시즈오가 어슬렁어슬렁 거실로 나왔다. 자신이 이자야를 내던지고 소리를 지르자, 잠시 멍한표정을 짓던 이자야가 다짜고짜 손목을 부여잡고 끌고온 곳은 신라의 아파트. 끌려오는동안 계속해서 그 이유를 물었으나, 이자야는 그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고 조금 무서운 얼굴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딱히 그 무서운얼굴에 겁이 먹었다던가, 하는건 아니었지만, 모처럼 얼굴을 굳히고 있는 이자야가 너무나도 진지해보여 그 손을 뿌리치지 못한건 사실이었다. 자신이 정말 힘을 주어 비튼다면, 이자야가 꽉 잡고있는 손목따위 빠져나오는것은 시즈오에게는 식은죽 먹기일테니까 벗어날 기회는 언제든지 있었지만.

아무튼 그렇게 끌려온 시즈오가, 소파로 몸을 뉘이듯 앉자, 이자야가 기다렸다는듯이 시즈오를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언성을 높혔다. 물론, 갑자기 손가락질을 당해 기분이 나빠진 시즈오가 이자야의 검지손가락을 안력만으로 부러뜨릴정도로 강하게 째려본것은 당연하다. (시즈오는 나름 안력만으로도 손가락이 부러질 확률이 0.0000000000000675%는 있다고 믿고 있었다.)

" 어서, 신라 ! 이 밥팅이한테 진실을....!"

" 죽고싶냐 ?! 앙!???"

이자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마에 핏줄을 띄우며 화를 내는 시즈오를 간신히 말리며, 세르티는 가지고있던 PDA에 글자를 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아직도 이 상황을 즐기고있는 신라와 답답해 죽으려고 그러는 이자야는 뒤에서 싸우고있었지만, 시즈오는 이미 그것에는 관심이 없었고, 세르티의 손가락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세르티로써는, 평소에 보는 기분이 나쁠정도로 당당하고 뻔뻔한 모습과 상반되는, 처음보는 이자야의 다급해보이는 모습이 너무나도 새로웠고, 적어도 14살 전에 알것 다 안다는(?)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저리도 순진하다면 순진한, 나쁘게 말하자면 둔한, 그런 발언을 하는 너무나도 시즈오다운 그를 애인으로 둔 것이 약간이나마 연민이 들었기에 -같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자로써 -, 조금이나마 이자야를 도와주기로 했다.

『저기말야, 시즈오. 정말 남자끼리는 그..런거 안된다고 생각해 ?』

그런거, 부분에서는 세르티의 손가락이 약간 머뭇거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세르티는 무난하게 글을 썼고, 시즈오의 옆에 앉으며 그에게 그것을 보여주었다. 이자야에게 끌려올 때 차마 쓰지 못한것인지, 선글라스가 없는 맨 눈인 시즈오는, 약간 인상을 찌푸리며 그것을 바라보았고, 내용이 조금 이상한지라 혹시 시즈오의 신경을 건드리지는 않을까 내심 걱정하던 세르티는 - 시즈오가 자신에게 화를 낸 적은 없었지만 - 긴장한 마음으로 시즈오의 반응을 기다렸다.

" 되고 안되고 이전에 병에 걸린다고. 죽을지도 모른단 말이야."

-하고 너무나도 당연하다는듯한 어투로 돌아오는 대답. 뒤에서 투닥거리는 둘의 소리가 뚝 하고 멎더니, 곧 터져나오는 신라의 웃음소리가 거실안을 가득 메웠다. 다시한번 시즈오에게 그러한 대답을 들어버린 이자야는 이미 체념한듯 지끈지끈 아파오는 머리를 꾹꾹 누르며 답답한 심정을 안으로 눌렀고, 세르티는 그 중간으로써 웃어야할지 말아야할지 미묘한 상태였다. 그런 분위기를 눈치챘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유를 전혀 모르는 시즈오는 무엇이 잘못되어 신라가 저렇게 웃고, 이자야가 저렇게 복잡미묘한 표정을 짓고있으며, 세르티의 손짓이 멈추었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자신이 한 말 중에 그 이유가 될만한 것이 없었기에, 아무리 좋지 못한 머리를 굴려도 그 해답을 찾아낼수는 없었다.

『시즈오.... 그거말야. 잘못된 지식이라구.』

머리위로 계속하여 물음표를 띄우며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시즈오의 모습을 보다못한 세르티가 그의 잘못된 지식을 제대로 되잡아주려 손을 움직였다. 원래대로라면 자신보다는 의학적 지식이 훨씬 더 뛰어난 신라가 설명을 해야했지만, 이미 웃느라 정신이 없는 그는 설명을 할만한 상태가 못되었고, 게다가 신라가 설명을 했다면 그가 가지고 있는 의학적지식과 이상한 사자성어까지 섞어가며 어렵게 말을 꺼냈을 것이므로, 공부쪽으로는 아이같은 지식이 많은 시즈오가 그것을 이해를 할지조차 미지수였기에, 자신이 가볍게 설명하는것이 낫다고 빠르게 판단한 것이다. 거리 뒤쪽의 일을 많이 하고, 싸이코적인 정보상인에게 자주 놀아나며, 이 정신없는 무면허 의사와 지지고 볶으며 함께 산 덕분에 는것은 이런 판단력밖에 없음을 느끼며, 세르티는 자신의 그림자까지 이용하여 빠르게 글을 작성해나가기 시작했다. 시즈오는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것인지 정말 궁금했던 모양인지 PDA의 화면쪽으로 몸을 기울여 그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기 시작했다. 얼핏보이는 시즈오의 진지한 시선이, 세르티는 꽤나 보기 좋다고 생각했다.

『에이즈는 말이야.... 음.......... 아주아주 희귀한 병이라 염려하지 않아도 되 !』

그러나, 세르티에게는 인간의 병에대한 자세한 지식이 없었다. 감기나 배탈같은, 아주 가벼운 것들정도는 대강이나마 알고 있었지만 에이즈까지는 그리 많이 알고있지는 않았다. 게다가 시즈오에게 그것을 더욱 더 쉽게 풀어서 설명하라니. 세르티는 잠시 고민하듯 '.....'을 반복하더니, 생각하기 귀찮아졌는지 대강 끝을 맺었다. 사실, 그리 희귀한 병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시즈오의 몸은 인간과 다르니까 병에는 잘 걸리지 않지 않을까하는 마음에, 일단 그의 잘못된 지식을 바로잡는것이 우선목표이므로 그리 설명한것이지만, 사실적으로는 잘못된 지식이 바로잡기는 커녕 오히려 더 요상하게 만들어버린것이라는 건, 세르티 그녀조차 알지 못했다. 그리고 세르티의 PDA와는 거리가 있던 신라는 그녀의 잘못된 설명을 보지 못했기에, 시즈오는 그 지식에 그대로 노출되었고, 그대로 받아들였다. 아하, 그렇구나, 하며.

" 그럼 안걸린다는 건가 ?"

『그런거지.』

그렇게 납득한 시즈오는, 아까전 자신이 그것때문에 이자야를 내던진것을 상기하며, 시즈오와 세르티의 대화(?)를 얌전히 시청중이던 이자야에게 아주 짧고 조그마하게 사과의 뜻을 전했고, 그것에 충분히 만족하다 못해 그런 시즈오에게 정말 몸서리쳐질정도의 귀여움을 느낀 이자야가 몸안에서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견디지 못하고 시즈오에게 몸을 날려 그를 꽈악, 껴안았다. 떨어져, 하며 짜증이 난 듯한 어투로 시즈오가 그에게 말을 했지만, 이미 입이 귀까지 걸려있는 이자야는 그것을 듣는둥 마는둥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버렸다.

이제 제대로된 지식을 알게 된 그와 아까 하던짓을 계속 하고싶은 마음이 없는것은 아니었지만, 이자야는 지금당장 이 손끝에 닿고있는 얄쌍한 허리를 탐하고싶은것을 간신히 억둘렀다. 주위에 신라와 세르티가 있는것도 한몫했지만, 지금 그를 덮쳤다가는 자신이 그의 손에 죽을것임이 분명했기 때문에. 이제 그가 병으로 자신의 밀어낼 이유가 사라졌으니, 아까처럼 다시 분위기에 취하게 만들어 그를 탐하는것은 이자야에게는 일도 아니었으므로, 그 날을 기다리며 이자야는 그저 시즈오를 안고있는 팔에 더욱 더 힘을 줄 뿐이었다.

- fin.

그리고 behind story.

**일주일쯤 전. 신주쿠, 오리하라 이자야의 아파트.

" 그래서, 시즈오씨는 이자야와 섹스해본적 있어 ?"

" 푸웁-!"

시즈오는 차마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노란머리 소년의 입에서 나온 말에, 마시고있던 차를 뿜는 행위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교복차림을 자주 봐오고, 얼굴 또한 한참은 앳되어 보여, 자신보다야 한참 어린 소년에게 평소와 같은 ' 존댓말을 써라' 라는 말을 할 수 조차 없을만큼 시즈오는 충분히 당황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저 소년이 지금 무슨 말을 한것이란 말인가 ? 저 입에서 나온 말이 앞으로 이 일본을 끌고갈 창창한 10대 청소년의 입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나올 종류의 것이란 말인가 ? 물론 거리에서 헌팅이라던가, 를 자주 하는것을 봐왔기에 그리 순수하지는 않을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얘기를 꺼낼줄은 몰랐기에 시즈오는 벌어진 입으로 줄줄 흘러내리는 차를 닦을 생각도 못하고 멍하게 자신 앞의 소년- 키다 마사오미를 바라보았다.

" 없구나 ? 안어울리게 순정파네. 재미없어."

이 사무실의 주인이자 자신의 고용주이기도 하는 사람의 험담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키다는 그제서야 주섬주섬 근처의 티슈를 뽑아 입가를 닦기 시작하는 시즈오를 쳐다봤다. 이자야와 시즈오, 겉으로 보기에는 만나기만 하면 펄쩍 뛰며 싸우는 원수사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정작 그 둘은 사귄지 한달이 다되가는 커플이었다. 남자와 남자끼리 어떻게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지, 여친까지 있는 노말인 키다로써는 조금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역겹다고 생각할 정도로 이해심이 부족하지는 않기에 그냥저냥 조금 축하해주며 보고있는 상황이었다.

정작 사귀기 시작했으면서도 만나면 티격태격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 뒤로부터는 시즈오가 화나지 않은 상태로 이자야를 직접 만나러 온다던가, 이자야가 싱글싱글 웃으며 시즈오에게 메일이나 전화를 건다던가, 하는것으로 보아 사귄다는 자각정도는 있는 모양이었다. 이자야에게 적대감이 있는 키다로써는 핑크빛 만발하며 러브콜을 하고있는 그의 모습이 조금 많이 고까웠기에, 조금 그를 골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 무렵, 그냥 혹시나 하여 이자야를 보러 온 시즈오에게 넌즈시 말해본 것인데, 이렇게 격한 반응을 하며 부정할줄은 몰랐기에 조금 흥미가 일기도 했다.

" 하고싶은 마음은 있어 ? 시즈오씨."

" 뭐 ? 있겠냐 !"

펄쩍 뛰며 대답하는 시즈오의 반응이 조금 재밌다고 느낄 무렵, 키다의 마음속에 하나의 사악한 생각이 떠올랐다. 언제던가, 자신이 한 행동을 자랑하기를 좋아하는 이자야가 자신에게 웃으며 말해주었던 말. '시즈는 병이라면 딱 질색을 하니까 ! 무려 총을 피하는 이유가 납중독이 무서워서 라니까 ! 정말 바보같아 !' 입으로는 욕을 하고 있지만 웃고있는게 마치 애인자랑을 하는 팔불출같아서 대강대강 넘긴 말이었지만, 이렇게 기억하고 있는 자신은 정말 천재라고 생각하며 키다는 그 특유의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시즈오에게 말했다.

" 그럼 그 마음 변하면 안돼 ! 이자야는 모르지만 남자끼리 하는건 무지무지 아프고," " 에이즈 라는 무서운 병에 걸릴수도 있다구요 !"

이것이, 사건의 원흉이었으나 아는 이는 키다와 시즈오, 본인들 외에는 아무도 없으리라.

- 진짜로 fin.

 

Posted by 하리쿠
2013. 1. 17. 01:51

 이자야는 오늘 기분이 좋았다. 만면에 미소를 가득 띄운 채 폴짝폴짝 뛰어가는 모습은, 누가 봐도 기쁜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활발해보였다. 앞으로 내딛어지는 발걸음은 어찌나 가벼운지, 조금 진부한 표현을 빌리자면 '구름 위를 걷고 있는 것' 처럼 사뿐사뿐했다. 웃음끼를 가득 안고 있는 얼굴은 마치 여자처럼 고와서, 꽃이라도 흩뿌려지는 배경이라도 넣어주어야 할 만큼 생기넘쳤다. 스무살이 넘은 남자가 할 수 있는 행동을 넘어서 조금 유치하고, 좋게 말하자면 순수해 보이는 모습의 그는, 오늘도 역시 이케부쿠로의 거리에 위치해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자야가 걸음을 멈춘곳은 이케부쿠로 역의 동쪽출구인 이케후쿠로. '이케후쿠로' 라는 부엉이 동상이 배치되어있는 그곳은 젊은이들의 만남의 장소로 자주 이용되는 곳이었다. 이자야는 언뜻 보기에는 그저 친구라던가, 연인을 만나러 온 젊고 잘생긴 청년같아보였다. 그리고, 오늘만은 그것이 정답. 평소 어둠에 몸을 반쯤 담그고 정보상인으로써 야쿠자를 비롯한 일상 뒤편의 사람들부터 시작해서, 그저 평범하다면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일반 고교생들까지에게 정보를 넘겨주고 돈을 받거나, 아니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로써 여러 사람들을 움직여 자신의 '인간러브'라는 철학과 취미를 즐기는 그런 것 말고, 이자야는 오늘만큼은 평범하게 인간적인 일을 해보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잠시 걸음을 멈춘 이자야는 아직도 충분히 밝아보이는 눈빛으로 그 동상앞에 짜증스러운 얼굴로 서있는 남자를 응시했다. 보통 일본 남자들보다는 크다고 할 수 있는 키와, 그와 걸맞지 않는 얄쌍한 몸매를 드러내주는 바텐더차림의, 이케부쿠로 최강남자, 싸움인형 헤이와지마 시즈오. 멀리서 보기에도 눈에 띄는 그는, 역시 멀리서 보기에도 잔뜩 짜증이 나있음을 알 수 있었다. 화를 식히려고 나름 노력하는 모양인지 앙 다문 입술에 물고있는 담배나, 초조함과 지루함을 한껏 들어내주는 떨리는 다리나, 팔짱을 낀 채 계속 핸드폰을 내려다보는 시선 또한 그랬다. 그리고, 역시나 그 원흉은 이자야였기에, 그것을 보고도 이자야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 시즈~ 오래 기다렸어 ?"

" 네놈..... 지금이 몇시인줄 알아 !?!!"

화가 나 있음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짜증을 더욱 돋우기위해 평소보다 더 밝고 상큼한 목소리로 말을 건 이자야가, 역시나 잔뜩 돌아오는 고함에 만족스럽게 웃었다. 정말, 이런 가벼운것 만큼은 이렇게도 자신의 예상에 맞게 반응해주는 그가 참으로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자신이 공을 들여 세워놓은 계획을 예상에 벗어난 행동을 하여 망처놓는것 또한 그였지만. 아무튼, 시즈오를 이곳으로 불러낸것은 자신. 귀찮다며 내빼는 그를 슬슬 꼬시며 기어코 나오게 만든것도 자신. 그리고 약속시간은 오후 3시였으며, 지금 시간은-

" 음~ 정확히 4시 13분 42초 지나고있어."

정작 먼저 약속을 잡은주제에 한참을 늦은 것 또한 자신이었다. 사실, 이자야가 이곳에 도착한것은 2시가 막 지났을 무렵이었다. 말썽없이 동상 앞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던 이자야는 문득 무료함을 느꼈고, 장난삼아 그를 화나게 만들고 싶어졌기에 일부러 근처 카페숍에 들어가 커피한잔을 마시며 동상근처를 관찰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약속은 잘 지키는 타입인 시즈오는, 그가 정말정말 싫어하는 이자야지만 그래도 연인이라는 자각이 있는것인지, 아니면 그저 배려심이 많은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약속시간보다 약 10분정도 먼저 나왔고, 이자야는 그를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느긋하게 커피를 한잔 더 주문했다.

시간이 지나고, 지나고, 지나갈수록 나오지않는 자신에게 짜증이 치미는지 얌전히 서있던 그의 다리가 떨리고, 빼어무는 담배의 수가 늘고, 핸드폰을 바라보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이자야는 튀어나오는 웃음을 숨길수가 없었다. 결국 커피숍 안에서 크게 웃음까지 터트리며 그의 모습을 지켜보고있던 이자야는, 시간이 꽤나 지났음을 확인한 후에야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즐거운 마음으로 시즈오에게 다가갔다. 하나부터 열까지, 그를 짜증나게 만들기위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고생(?)한만큼 짜증을 내주는 시즈오가 무척이나 재미있어, 그를 만날때마다 이러한 행동을 자제할 수 없었다.

"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거냐, 이 벼룩새끼야 !!!"

잔뜩 소리를 지르며 근처 뽑아 던질만한것이 없나 주변을 두리번 거리는 시즈오에게, 이자야는 전혀 미안한 기색없이 - 처음부터 계획한 것이었음으로 - 성큼성큼 다가가 시즈오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내뻗었다. 갑작스레 얼굴로 다가오는 주먹에 시즈오가 크게 움찔하며, 그것을 피하려 고개를 뒤로 물렀으나, 정말로 때릴 생각은 없었는지 주먹은 센티를 남겨두고 멈추었다. 인상을 크게 찌푸리며 시즈오는 뭐냐는듯 이자야를 바라보았고, 이자야는 그의 시선에 빙글빙글 웃으며 주먹을 살며시 폈다. 자그마한, 상자.

" ..............뭐야."

" 시즈가 좋아하는 것 ?"

처음부터, 이걸 주려고 부른거였다구.

하고 가볍게 투정을 부리며,시즈오의 얼굴 앞에 위치해있는 상자를 다시 자신에게 가져와 푸르기 시작했다. 자그마한 상자의 뚜껑을 열자 들어있는 그것은, 자신의 존재를 뽐내듯 열자마자 지독한 단내가 코를 자극하는 예쁜빛깔의 초콜릿이었다. 여기에서 눈치를 챈 사람도 있겠지만, 이자야는 지금 아주아주 진부한 짓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사귀어온 다른 여자들과는 이런 달콤한 연애를 해본적이 없었음으로, 이자야로써는 이것이 최선이었다. 그리고 단것을 좋아하는 시즈오로써는, 그 안에 들어있는 동그랗고 자그마한 초콜릿이 매우 반가웠다. 아무래도 잔뜩 짜증이 나있고 아까부터 담배나 뻑뻑 피워대고 있는터라 입안이 텁텁했는데 잘됬다, 싶었다.

" 내가 직접 만든거라구 ? 아- 해봐."

두 손가락으로 조심스레 집어 초콜릿을 시즈오의 입술 앞으로 가져간 이자야가, 시즈오의 격한 반응을 기대하며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남자들끼리 무슨 징그럽게 먹여주기냐, 하는 짜증섞인 말이라던가, 아니면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오를 정도로 화를 낸다던가 하는, 그런종류의 것이 나오지 않을까 하며 두근대는 마음으로 시즈오를 바라보는데, 이번에의 시즈오의 행동은 이자야의 예상을 벗어났다. 시즈오가 얌전히 입을 벌려 먹어준것이었다. 일부러 조용한곳이라던가, 인적이 드문곳도 아닌 이케부쿠로 거리 한가운데에서 한 행동이었는데, 그것을 순순히 받아준 시즈오에 당황한것은 오히려 이자야쪽이었다.

처음 초콜릿이 입에 들어왔을 때의 달콤함을 지키려는듯 입안에서 그것을 굴리고있는 시즈오의 모습에 이자야는 왠지 모르게 주변사람들의 시선이 자신들에게 꽂히는것을 느꼈다. 하긴, 그것도 그랬다. 거리 한복판에서 초콜릿을 먹여주는 두 남자라니, 조금 징그러울법도 했다. 그 순간, 이자야의 머리속에 하나의 장난이 떠올랐다.

사실, 처음에의 이자야의 계획은, 먹여주려는 자신을 시즈오가 거부하고, 그 후 시즈오와 함께 아까 자신이 있었던 커피숍에 들어가 다시 시즈오에게 그것을 주려고 했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그 초콜릿 안에 자신이 그에게 주려고했던 '무언가'가 들어있기 때문. 다른 남녀간이었다면, 직접 그것을 손에다가 끼워주며 건냈어야함이 맞지만, 그런 행동을 할 정도로 그 둘간의 관계는 정답지 않았고, 그만큼의 오글거리는 행동을 남자 둘이서 할만큼 로맨티스트들도 아니었다. 그래서 이자야는 조금 진부하지만, 음식안에 그것을 넣는것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시즈오가 얌전히 먹어버렸다. 자신의 계획이 틀어져버렸다. 그러나, 이자야는 오히려 잘됬다 싶었다. 이제는 오물거리며 초콜릿을 겉에서부터 씹어먹고있는 시즈오가 금속의 그것을 발견했을 때, 그리고 그것을 뱉어냈을 때 이곳, 거리 한복판에서 크게 프로포즈를 하면, 과연 그의 반응은 어떨까 ? 아마 고개도 들 수 없을만큼 창피하겠지 ? 게다가 그는, 이케부쿠로에서는 모르는사람이 한명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의 유명인인데 ! - 여기까지 생각을 마친 이자야는 이제 곧 자신이 주려고 했던것을 발견하고 뱉어낼 그를 향해 할 고백의 말을 생각했-......

" 콰득,"

" …………응 ?"

순간, 무언가 잔뜩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뜬금없이 울려퍼진 소리에 이자야는 벙찐 얼굴로 그 소리의 출처를 찾기 시작했고, 마침내 알아냈다. 그러나 이자야는, 차마 그 소리가 아직도 평온한 얼굴로 초콜릿을 먹고있는 시즈오의 입에서 났다는것을 인정하고싶지 않았다. 이러한 이자야의 생각을 산산히 짓밟듯, 금속이 망그러지는듯한 소리는 계속해도 울려버렸다. 시즈오는, 아직 그 소리가 자신의 입에서 난다는것을 눈치채지 못한듯, 아직도 오물거리고 있었고, 마침내 입에 물고있던것을 삼켜버렸다.

이자야는, 그 순간에서도 도저히 믿고싶지 않았다. 저기말야 시즈, 그거 꽤나 비싼거였다구……….

-fin

 

Posted by 하리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