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17. 01:56

- 사이데리 / 사이츠가 '역' 이라는 것은 사이케가 공이라는 뜻입니다.

" 그러니까, 사이케형이.. 좋아."

데리오가 머쓱한듯 머리뒷편을 긁적이며 말을 꺼냈을 때, 츠가루는 솔직하게 말해서 정말 기뻤다. 주변인들보다 특히나 어른스럽던 츠가루로써는, 화도 잘내고 부끄러움도 잘 타는 데리오가 - 자신보다 어리기는 해도 - 너무나도 어린아이 같아 보였기에 데리오에게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걱정이 샘솟던 참에 데리오가 자신에게 그렇게 고백을 해와서, 츠가루는 그의 말에 그저 기쁘게 미소지을수 밖에 없었다. 그 상대가 남자건, 자신들의 본체가 너무너무 싫어하는 이자야씨의 모습을 하고있건 간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이해심이 많은 츠가루는 동성간의 사랑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조금의 반발심도 없었고, 자신도 정말 그 사람이 좋다면 상대가 남자건 여자건 신경쓰지 않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츠가루는 정말 진심에서 우러나온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 정말요 ? 축하해요, 데리오씨 !"

하얀 기모노를 입고있기에, 아무래도 하얀 피부가 눈에 띄는 츠가루가 파아란 눈동자를 예쁘게 휘며 말했다. 손을 들어 데리오의 머리를 조금 쓰다듬자, 자신이 게다를 신고 있다고는 해도 자신보다 키가 조금 더 큰 데리오가 고개를 약간 숙여가며 그것을 받았기에, 데리오가 겉으로는 까칠하고 신경질 적으로 보여도 이런것에서 볼 수 있듯 배려심 많다는것을 알고있는 츠가루는 그러한 작은 몸짓에 역시나 지어지는 미소를 숨길 수 없었다.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해 항상 화내고 있는것 같아 보여 마냥 어려보이고 어려보였던 데리오가, 이제는 이렇게 한 사람을 좋아하는 남자가 되어버리다니, 형으로써 한편은 조금 씁쓸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츠가루는 기쁜마음으로 데리오를 응원해주고 싶었다.

그랬기에 츠가루는 '제가 응원해 줄께요 !'하며 긴 소맷자락을 팔랑이며 주먹을 불끈, 쥐고 화이팅 ! 하는 제스츄어를 취했다. 바다처럼 푸른빛의 기모노가 눈앞에 살랑거려, 하얀 츠가루가 마치 고운 선을 띄고있는 기모노에 녹아든듯 보였기에 데리오는 자신과 똑같은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츠가루가 매우 예쁘고 신비롭게 보였다. 게다가 어린아이처럼 화이팅이라니. 동생인 자신에게도 존댓말을 쓰며 항상 반듯이 웃고있고, 바른 말투에 차분한 성격인 츠가루의 순수한 모습에, 데리오는 방금까지 고백때문에 약간 찡그리고 있던 인상을 곧게 펴며 츠가루와 같이 예쁘게 웃었다. 항상 날카롭게 깎여있던 분홍색 눈동자가 호를 그리며 휘어있는 모습은, 썩 보기 좋았다.

데리오가 돌아간 후, 츠가루는 자신이 존재하고있는 프로그램속에서 자신의 의지로 하얀색 의자를 만들어놓고 그것에 털썩 앉아서는, 조금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츠가루의 방은 그 주인의 성격을 닮아 새하얬다. 하얀 벽지에 바닥, 한구석에 놓여있는 새하얀 침대까지. 물론, 이불은 츠가루가 즐겨입는 기모노를 닮아 푸른색의 무늬가 방울방울 새겨져 있었지만, 그것은 바르게 개어있었으므로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언뜻보면 어딘가 불안한 환자의 방 같아 보일수도 있었지만, 그 안에 츠가루가 존재하고 있었음으로 그 방은 새하앴음에도 불구하고 생기넘쳤고, 텅 비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넓은 초원을 보는것같은 편안함을 주었다.

츠가루가 진지한 표정을 짓고있는 이유는 당연히 방금의 데리오 때문이었다. 응원해줄께요 ! 하고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사실 아직 자신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져본적이 없었고, 그렇기에 남을 좋아하는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했기에, 책으로 몇번 봐오고 몇번 상상은 해봤지만 아직도 두리뭉실한 그 감정을 파악하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는게 츠가루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만약 자신이라면 데리오가 좋아해준다는 것만으로도 기뻐서 똑같은 감정을 가져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나, 사이케는 자신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아무리 같은 프로그램이라도,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듯이 츠가루 또한 사이케의 마음을 알 수 없으므로, 사이케가 데리오를 어떻게 생각할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츠가루가 고민하고 있을무렵,

" 츠-으 가루우-!!"

하며, 갑자기 발랄한 목소리를 하며 뛰어들어 오는 사이케에 한참 어떻게 해야 둘을 엮어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사이케에게 데리오의 매력(?)을 알려줄 수 있을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던 츠가루가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새하얀 코트와 핫핑크색 헤드셋을 한 채로 방방 뛰고 있는 사이케가, 츠가루의 방에 들어오자마자 도도도, 뛰어 츠가루에게 안겼다. 순간 사이케의 품안에 가득 안겨버린 츠가루가 갑자기 눈에 한가득 들어오는 하얀색에 정신을 못차리며 허둥지둥 했다. 그러는 틈에 츠가루가 앉아있는 의자의 양 옆 약간 비어있는 곳에 자신의 무릎을 걸치고 자세를 잡은 사이케가 위에서 츠가루를 내려다보는듯한 포즈로 츠가루를 향해 예쁘게 웃어보였다. 항상 웃는얼굴이라 별로 달라질것은 없었지만.

" 사실 아까아까 왔는데, 데리랑 웃고있어서 못들어왔다구 ! 데리가 웃는얼굴 처음봐 !"

여전히 방방거리는 목소리로 빙글빙글 웃으며 떠들어대는 사이케가 여전히 약간 당황한 얼굴을 하고있는 츠가루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자신을 향하게 올렸다. 갑자기 뛰어든 사이케 때문이기도 했지만, 보고있었다는 사이케의 말에 혹시 처음 데리오가 고백한 순간부터 보고있던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더더욱 당황해있던 츠가루가 갑자기 자신의 고개를 올리는 사이케의 행동에 자신의 당황한 얼굴을 완전히 드러내보였다. 그러나 그러한 츠가루의 얼굴조차 뭐가 그리 좋은지 방긋방긋 웃던 사이케가 다시 입을 열고 조잘거렸다.

" 저기저기, 츠가루 ! 사이케, 좋아 ? 나나, 사실 오늘 히비- 에게 갔다왔는데 ! 그냥 고백하는게 좋다고 해서 ! 사이케는 츠가루가 너-무 너무 좋다구 !"

얼굴이 매우 가까워서, 가뜩이나 높고 큰 사이케의 목소리가 귀로 그대로 전해져들어와 쨍쨍하고 울렸지만, 츠가루는 그것에 조금의 불쾌함도 없이, 당황한 표정을 다시 정리하여 편안한 얼굴로 만들고는 사이케를 향해 웃었다. 나도, 사이케가 좋아요. 하고, 츠가루로써는 당연한 말을 하자, 사이케는 그것에 뭐가 불만인지 인상을 살짝 찡그리며 볼을 부풀렸다. 아니야, 아니야 ! 하며 아무래도 큰 목소리의 톤을 더더욱 높히며 부정하는 사이케가, 무엇이 잘못된것인지 잘 모르겠는 츠가루는 그저 고개를 갸웃, 할 뿐이었다. 정말 츠가루는 데리오와 사이케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을 좋아하고 있었기에, 자신의 말에는 조금의 거짓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부분에서 사이케가 삐져버린것인지 전혀 모르겠을 다름이었다.

" 틀려 ! 사이케는 정-말 정말 좋아한다구 !"

" 네 ? ...저도 사이케가 정말 좋아-,"

사이케의 불만에 츠가루가 조곤조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자, 그 대답 또한 마음에 들지 아니했던 것인지 사이케는 츠가루의 말을 끈으며 자신의 고개를 내려 그대로 츠가루에게 입맞추었다. 고개가 올라간 채로 말을 하고있었던 츠가루는 아무런 저항없이 사이케에게 입술을 내주었고, 입술에 닿는 몰캉하고 따듯한 무언가가 처음에는 무엇인지 몰라 그저 눈만 동그랗게 떴으나, 곧 가까워진 꼭 감고있는 사이케의 속눈썹과 입술의 느낌에 당황하고 말았다. 의자의 손잡이에 가지런히 놓여있던 파란색 매니큐어가 발린 츠가루의 손끝이 움찔, 했다.

" 내가 츠가루를 좋아하는 마음은 이만-큼이라구 !"

키스, 라기에는 너무나도 짧은, 그러니까 가벼운 뽀뽀를 한 사이케가 여전히 눈을 동그랗게 뜨고있는 츠가루를 내려다보며 츠가루의 고개를 잡고있던 손을 놓고 허공을 향해 내뻗으며 휘져었다. 아마 이-따만큼 좋아한다는 표시이리라. 그러나, 츠가루에게 그런것따위는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츠가루의 머릿속은 이미 사이케와의 뽀뽀와 말로 인해 어지러웠기 때문에. 그러니까, 츠가루의 마음상태로 끝을 맺자면.

…………에 ?

- fin.

 

Posted by 하리쿠
2013. 1. 17. 01:55

츠키시마는 솔직히 말해서, 울고싶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발로 거리의 아스팔트를 밟으며 걷고있자니 넘어져버릴것 같기도 했고, 어디서 돌부리가 튀어나와 자신의 발을 방해할지 불안했다. 원래 길을 잘 잃어버리는 터라 모르는 거리로 나서는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는 했지만, 여기는 자신이 자주 와보던 이케부쿠로의 거리였다. 그렇기에 길을 잃어버려 당황할 염려는 없었지만, 자신이 당면한 문제는 그것과는 전혀 다른것이었다. 평소라면 전혀 걱정할것이 못되는, 아주 당연스럽게 여겨지던 무언가의 부재. 그렇기에 새로운것에 익숙하지 못한 츠키시마가 이렇게 무기력하게 당하고있는것은 어찌보면 어쩔 수 없는것이었다.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며 거리의 구석구석까지 밝혀주는, 태양의 고도가 가장 높은 점심무렵, 츠키시마 시즈오는, 지금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시력이 없다던가, 하는것이 아니다. 딱히 다친것도 아니다. 그러나 시즈오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원인은, 겉으로 볼 때에는 츠키시마가 평소에 쓰고있는 것과는 전혀 다를것이 없어보이는, 선글라스였다. 매직으로라도 칠해놓았는지 바깥의 풍경을 전혀 내비치지 못하고 그저 새까만 암흑만을 보여주고 있었다. 분명 눈을 뜨고 있었음에도 눈을 감은것 같은 그러한 광경. 솔직히 말하자면 눈을 아래로 내리깔면 자신의 발밑정도는 보였고, 눈을 위로 치켜뜨면 파아란 하늘정도는 보였지만, 그정도로는 바로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불안감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츠키시마는 떨리는 손으로 잡아들고있는 핸드폰에 더더욱 귀를 파뭍으며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 그렇게 조금씩 걷다가는 날 새겠어."

있는힘껏 귀를 대고있기에, 핸드폰의 스피커를 타고 츠키시마의 귓속으로 직접 타고 들어온 목소리가 잔잔하게 울렸다. 분명 목소리는 무척이나 미성이었지만, 츠키시마는 여전히 앞이 보이지 않는 불안함에 바들바들 떨며 그 목소리에 대답조차 못한 채 발걸음을 옮겼다. 데이트약속이 있던 일요일 아침. 몇번을 만나도 두근두근한 마음이 전혀 가시지 않아, 오늘도 역시 자신의 연인 생각을 하며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준비를 마쳤을 때, 전화가 왔다. 발신자는 자신의 연인, 팔면육비 이자야. 몇분뒤에 만나기로 되어있어 그것조차 떨리는데, 벌써 전화로 대화를 하게 되다니. 츠키시마는 벌써부터 육비의 목소리를 듣게될 생각에 얼굴까지 빨갛게 달아올라 머리가 딩딩 하고 울렸다. 아.... 아...아아아아아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되있어요....!!!

그러나 기껏온 전화를 받지 않으면 육비에게 미움을 받아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츠키시마는 허둥지둥 그 전화를 받았고, -너무 허둥대는 바람에 전화기를 떨어뜨릴뻔했다.-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감춘 채 '여보세요' 하자, 스피커 저편에서 들려온 첫 소리는 '선글라스는 잊어버렸어 ?' 였다. 그러고보니, 항상 쓰고다니던 선글라스를 쓰는것을 잊어버릴뻔 했던 츠키시마는, 자신이 선글라스를 쓰고있지 않은 사실을 육비가 어떻게 알고있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일으키지 않은 채 자신의 침대옆에 놓여있던 그것을 썼고, 거기서부터가 시작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선글라스에게 당황하는 츠키시마를 향해 육비는 조용한 목소리로 그 선글라스를 쓰고 자신의 전화에만 의지한 채 약속장소로 오라는 터무니없는 것을 요구했고, 차마 육비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던 츠키시마는 얌전히 그 요구를 허락했다.

그리고 후회했다. 뭐든지 잘 해내는 육비였기에, 이러한 안내도 잘 할것이라 믿고 있었던 츠키시마에게 눈이 보이지 않는 장애는 생각보다 무서웠다. 물론, 육비의 설명이 부족했던것은 아니다. 정면에 사람이 있으니까 피해라, 앞으로 세발자국정도 더 가라, 여기는 횡단보도니 기다려라, 등등. 마치 바로 옆에서 보고있는것처럼 조곤조곤 설명해주는 육비의 목소리는 분명 완벽했지만, 무서운것은 무서운것이었다. 대체 뭐하는 짓이냐고 물어도 핸드폰 저편의 그사람은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유도 모른 채 덜덜 떨리는 발걸음을 옮기고있는 츠키시마는 아주 죽을맛이었다.

" 거기서 멈추고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

하는 명령에, 츠키시마는 바로 앞에 상대가 있는것도 아니것만 고개를 끄덕, 하고는 발걸음을 멈추고 몸을 틀었다. 그리고 그 순간, 바로 코앞에 세찬바람이 지나가며 자동차의 엔진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너무나도 놀라버린 츠키시마는 저도 모르게 히끅, 하고 딸꾹질을 해버렸고, 눈가에 하나가득 차있던 눈물이 흘러내려 버릴것만 같아서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입고있는 와이셔츠의 소매깃을 밑으로 끌어내려 눈가를 훔쳐보았지만 어째서인지 계속해서 소매가 젖어만갔다. 방금, 자신의 앞에 차가 지나갔다는, 그러나 자신은 그것을 보지 못했다는, 어쩌면 그것에 자신이 다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츠키시마는 차마 눈물을 그칠수가 없었다. 더이상 안돼, 무리야. 아무리 자신이 좋아해 마지않는 육비의 명령이라 할지라도 츠키시마는 다시는 이렇게 무서운 경험따위를 하고싶지 않았다.

이건 그거다. 전에 이자야씨의 '사무실을 이전했으니 놀러와도 좋아☆'하는 말에 큰맘먹고 지하철을 타고 모험을 떠났을 때, 분명 이자야가 자신에게 그려준 지도대로 찾아갔고, 혹시나 길을 잘 잃어버리는 자신이 실수라도 할까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갔것만, 이자야의 사무실은 커녕 우락부락 이상한 아저씨들이 모여있는 사무실의 문을 두드려버려서, 그 아저씨들이 자신을 째려봤을 때 같은 무서움. 결국 그것은 뉴페이스인 자신을 골려주기 위한 이자야씨의 장난이었고, 그것을 눈치챈 육비의 보호로 인해 째림을 당한것도 단 한순간 뿐이었지만, 츠키시마는 그 잠깐이 엄청난 무서움으로 다가와 그대로 주저앉아버렸었다. 츠키시마는 갑자기 몇달전의 자신이 생각났을만큼 지금의 상황이 무서워졌기에, 저도 모르게 다리의 힘이 빠져버렸다.

그리고, 그것은 츠키시마 시즈오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눈물이 차오른것이 귀까지 멍멍하게 만들어버린 것인지 겉의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서 무슨상황인지 잘 모르는것이 당연했지만, 겉으로는 위험천만했다. 왜냐하면, 츠키시마는 바들바들 떨리는 다리를 간신히 가누고 있었고, 그렇기에 비틀비틀했고, 방금 육비가 말했듯이 츠키시마는 횡단보도에 있었으며, 차가 바로 앞에 지나간것으로 알 수 있듯이 절때 인도에 있지 않았다. 그렇게 눈도 귀도 제 기능을 수행 못하는 상황에서 츠키시마는 여전히 훌쩍이고 있었고, 소매는 잔뜩 젖어버렸기에 자신이 이렇게 울어버렸다는 사실이 육비에게 전해진다면 '울보와는 사귀고싶지 않아.'하는 소리를 들어버릴까 두려웠고, 그러나 지금 상황도 충분히 무서워서, 빨리 상황을 끝내버리고 싶었기에 저도 모르게 육비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은 채 발을 내딛어버렸다. 그리고, 지금은 빨간불. 그리고,

빠아앙─────

하고 드라마에서나 울릴법한 길게 여운을 남기며 들려오는 경적소리 따위는, 츠키시마의 귀의 고막을 울리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옆에서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만큼의 약간의 거리를 두고 걷고있던 육비가 노리던 상황.

" .......내가 없으면 안된다니까."

여전히 연결되어있는 핸드폰에게 들릴만큼 속삭이듯 작게 중얼거린 육비가 진한 미소를 지으며, 차가 오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차도를 걷고있는 츠키시마의 행동에 경악과 걱정으로 놀란얼굴을 하고잇는 사람들사이를 헤치가 나가, 멍해있는 츠키시마의 허리에 자신의 팔을 감싸 끌어당겼다. 얼굴에 핸드폰의 자국이 생길정도로 꾹꾹 누르고있던 츠키시마의 귀에 박혀든 육비의 소리에, 그 말의 뜻을 모르고 멍해있던 츠키시마는 갑자기 자신의 허리에 감겨든 팔의 힘에 넘어지듯 자신을 맡기었고, 그랬기에 자신보다 키가 작은 육비의 품에 안겨들 수 있었다.

백허그당하듯 자신의 가슴에 가득 안겨든 츠키시마가, 아까의 반동으로 매직으로 칠해놓은 선글라스가 반쯤 벗겨진채, 아무것에도 가려지지 않은, 게다가 아직도 눈물이 한가득 담겨있는 맨눈을 동그랗게 뜨며 자신을 올려보자, 육비는 딱히 이런것을 원한것이 아니었지만, 정말 오늘 츠키시마를 괴롭히기를 잘 했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육비는 오늘 가만히 데이트하기가 심심했고, 자신이 먼저 한방 먹여주기도 전에 이자야에게 선수를 뺐긴것이 분했기도 했고, 얼마나 츠키시마가 자신을 좋아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기에, 오늘 그를 괴롭히겠다, 하는 생각으로 일을 벌인것이었지만, 츠키시마의 반응이 생각보다 재미있었기에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 ...육비씨 ?"

-하고, 물기어린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는것 마저도.

" 많이 무서웠어 ?"

육비는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다정한 목소리를 내며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예쁘게 호를 그리고있는 입술에 역시나, 츠키시마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어버버, 하며 말을 잇지 못했고, 그러한 츠키시마의 모습을 귀여워하는 육비는 예상했던 반응에 살며시 츠키시마의 앞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를 일으켰다. 차는 이미 지나갔고, 벌써 초록불이 되어있어 횡단보도를 지나가던 사람들이 흘끗흘끗 그들을 쳐다보았지만, 그것은 츠키시마와 육비의 신경을 조금도 끌지 못했기에 방해가 되지 못했고, 육비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난 츠키시마는 어정쩡하게 안겨있던 탓에 다리가 저려왔지만 내색하지 않은 채 육비를 마주보고 자그마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무서웠어요.

" 그럼, 데이트를 마저 하자구."

시원스럽게 내뻗어진 손이 잡으라는듯이 동그란 모양을 띄고있었기에, 츠키시마는 차마 그 손을 보고있는것마저 부끄러워져버려 눈을 최대한 내리깔았다. 아직 손보지 않았기에 반쯤 벗겨져있는, 밖을 투영시키지 않는 선글라스로 인해 내리깐 시선에는 까만색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츠키시마는 그것이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너무너무 좋아하고 있는 육비를, 그의 모습을 맨눈으로 계속 보고있자면 그것만으로도 얼굴에 피가 쏠려 화끈화끈했고, 관자놀이까지 지끈지끈해와서 츠키시마는 차마 그를 바로 마주볼수가 없었다. 그래도, 계속 손을 내뻗은채로 있으면 육비씨가 힘들테니까.

츠키시마의 손은 아까와 다른 의미로 떨리고 있었다. 아까는 무서움에 의해 떨렸다면, 지금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인해 차마 손끝을 제어할 수 없었다. 눈을 내리깔고 있어 육비의 손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점점 목 안으로 파고들어가는 고개를 더더욱 아래로 끌어내린 채 천천이 허공을 향해 손을 내뻗자, 곧 자신의 손을 가득 잡아오는 다른 손바닥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역시나 육비의 것이라서 츠키시마는 피어오르는 미소를 숨길 생각도 못한채 그대로 내보이며 얌전히 그를 따랐다. 역시, 육비씨를 좋아하기를 잘했어, 하며.

fin.

Posted by 하리쿠
2013. 1. 17. 01:54

" 시즈 ?"

하고 공기중에 가볍게 울려퍼지는 소리가 조용한 공원안을 가득 메웠지만, 그 말을 듣는 이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니, 그 이전에 얌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이가 그 소리를 들었을지는 미지수였지만. 가볍고, 어떻게 들으면 상큼한, 그리고 미성의, 그러한 목소리로 말을 꺼낸 이는 그 목소리 만큼이나 미형의 얼굴을 하고있었다. 결좋은 검정색 머리카락을 멋낸듯한 적당한 길이로 자르고, 가볍게 손질하놓은 머리모양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미청년, 신주쿠의 정보상 오리하라 이자야. 그 특유의 날카로운 눈매가 모처럼 자신이 부른 이에게 궁금증을 띄우고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꽤나 부드러워보이는, 이자야 만큼이나 얇은 머리칼을 - 금발이라 더 얇아보이는것인지는 모르겠으나 - 늘어뜨리고 있는 남자. 머리카락만 묘사를 해놓은 것은, 그만큼 푹 숙여진 머리에 그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얼굴이 머리칼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의 정체를 알 수 없는것은 아니었다. 이케부쿠로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바텐더차림의, 저런 금발을 하고 있는 남자가 또 있을리가 만무했다. 그렇기에 이자야가 벤치에 앉아있는 그의 모습에 바로 그의 이름을 입에 담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자야는 말을 마치자마자, 공원을 빠져나가려던 발걸음의 방향을 그에게로 바꾸었다. 조용한 공원에서는 몇몇 새들이 자그마하게 짹짹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이자야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고, 그리고 발걸음 소리가 멈추었을 무렵에는 그것을 대신하듯 작은 숨소리가 들렸다. 새근새근, 하고.

" 시- 즈."

자그마하게 그를 불렀지만, 역시 그는 자고있었다. 태양이 깊게 비추고있는 대낮의 공원. 비록 나무가 그늘의 역활을 하고있어 모든 빛이 그에게 닿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뭇잎사이로 실같이 들어오는 가느다란 햇빛에 유난히도 그의 머리칼이 금빛으로 반짝였고, 그것을 보고있자니 이자야는 묘하게 눈이부셔, 그대로 살짝 주저앉아 그의 얼굴을 살피었다. 위에서 올려다본 그의 얼굴은, 평소와는 다르게 곱게 펴진 미간과 튀어올라와 있지 않은 핏줄이 눈에 띄었다. 자주 그의 얼굴을 보기위해 이케부쿠로에 왔지만, 이렇게 편안해보이는 시즈오의 얼굴을 정면으로 본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었기에, 이자야는 신기한것을 보는듯한 눈으로 계속 그의 얼굴을 살피었다.

항상 쓰고있던 선글라스는 벗어두었는지 아무런 장애물 없이 보이는 살짝 감겨있는 눈과 얇게 뻗어있는 긴 속눈썹, 오똑한 콧날과 앙다문 입술까지. 이토록 평안한 얼굴을 보고 누가 그를 이케부쿠로 최강 사나이라고 생각할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곱게 펴진 미간 사이가, 물론 항상 쓰고있는 인상으로 인해 조금의 파임이 보이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나 밋밋한 형태를 띄고있어서, 이자야는 저도 모르게 손을 올려 그곳을 건들였다. 살짝 손이 닿은 미간사이는 손가락끝이었지만 느껴질정도로 따듯했고, 그것이 햇빛의 영향인지 시즈오의 체온때문인지는 몰랐지만 이자야의 손끝에 따스하게 데워진 공기의 느낌이 미미하게 다가와서, 그 따스한 느낌에 이자야는 저도 모르게 손바닥을 좌악, 펴고 시즈오의 얼굴 앞에 들이대었다.

손바닥으로 말끔히 가려지는 얼굴. 그리고, 벌어진 손가락 사이사이로 보여지는 얼굴의 파편. 원래, 멀쩡하게 보이는 것보다 드문드문 보이는것이 더욱더 눈길을 끄는것이 인간의 본성이므로, 그 손가락 사이의 형상들이 이자야의 눈에 박혀들었다. 정말로, 평소보다 얌전하고, 평안하고, 조금 강아지같기도 해서 귀엽다는 생각도 들고, 아니, 물론 인간은 모두 귀엽지만 시즈오는 인간이 아니고, 뭐랄까, 보면 볼수록 가슴속에서 무언가 형용할수 없는 감정이 스멀스멀 기어오르는것 같아서, 그러니까, 뭐였더라.

─────이걸, 뭐라고 표현하더라. ... 그러니까,

손바닥 가득 느껴지는 공기는 따스했다. 옅게 색색거리는 숨이 닿아오는 손바닥은 간지러웠다.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바람에 살랑이는 금발은 부드러웠다. 곱게 감긴 속눈썹은 가지런했다. 손바닥에 가려진, 아마 귀여울듯한 동그란 콧망울과 곧은 콧대가 잘 어울렸다. 그러니까 이건, 그거다.

이자야는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키며, 손바닥을 내렸다. 이자야의 눈동자 안에 가득하던 시즈오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졌다. 사실상, 가만히 자고있는 시즈오에게 다가가고 있는것은 이자야였지만, 아무튼. 이자야가 시즈오의 앞에 쪼그려 앉음으로써 가까워진 둘 사이의 거리는, 조금 더 좁혀지고 있었고, 이자야는 마치 비디오를 슬로우모션으로 돌리듯 천천히 시즈오를 향해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정말, 지금 분명 자신의 앞에있는 인물은 시즈오였지만, 무언가, 시즈오 같지 않다고 해야하나, 아니면 자신의 시즈오를 향한 감정이 평소같지 않다고 해야하나. 이건 다, 괜히 자고있는 시즈의 탓이야, 하고 괜한 변명거리를 속으로 중얼거리며, 이자야는 움직이는 자신의 몸을 애써 저지하지 않았다.

그렇게, 거리는 좁혀지고 좁혀지고 가까워져서, 마침내 아까 손바닥으로 느꼈던 따스한 공기의 느낌이 자신의 안면 가득히 느껴졌고, 시즈오의 숨결이 자신의 피부에 와닿아서, 이자야는 그제서야 자신이 미쳤구나, 싶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기에는 안쪽에서 저릿하게 퍼지는 몰랑거리는 감정이 쿡쿡 찔러와서, 이건 다 시즈때문이야, 하며 이자야는 조금 고개를 틀었다. 자그마하게 벌어진 시즈오의 입술사이로 옅게 드나드는 숨이 이자야의 입술사이로 살며시 전해져왔다. 그와 동시에 이자야도 조금 입을 열었고, 두 숨이 교환되며 두 입사이로 왕래하는것이, 분명 두 사람의 입은 닿지조차 않았음에도 아주 뜨거운 키스를 나누는것마냥 야릇했다. 이자야는, 잠시 그것을 느긋하게 즐기다, 조금 더 힘을 주어 몸을 일으켰다. 이제, 곧. 피부에만 느껴지는 사람의 체온이, 입술에서도 따스하게 느껴지겠지, 하며.

" ......... 음, "

그러나, 그것은 실현되지 않았다. 이자야가 시즈오의 체온을 가득 느끼고있었던것처럼, 이자야의 체온으로 뎁혀진 공기가 거슬렸던건지, 아니 둘 사이에 끼어있어 그 공기는 더욱 더 가열되었을터이지만, 아무튼 그것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한 인기척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단순한 잠꼬대인지, 시즈오의 입술 사이에서 나즈막한 소리가 흘러나왔고, 그에 깜짝 놀라버린 이자야는 재빨리 자신의 몸을 시즈오의 앞에서 떨어뜨렸다. 그렇게 벌떡 일어난 이자야가, 잠시 시즈오에게 닿을뻔 했던 입술을 손바닥으로 가렸다. 나, 도대체 무슨짓을 한거지, 하며. 한순간에, 몸속의 모든 피가 얼굴을 향해 몰린것같이 뇌속에 디잉- 하고 울렸다. 아마, 그것때문에 자신의 얼굴은 붉게 물들어있을듯 했다. 그 증거로, 머릿속은 엉망징창이었고 얼굴은 화끈거렸다. 마치 불속에 다이빙이라도 한듯이, 온 몸이 후끈거려 이자야는 도저히 이 열기를 견뎌낼수가 없었다. 도대체, 뭐가 이렇게 민망하고 이상한거람. 물론, 그 이유는 알고있지만.

이자야는 잠시 입을 가리고 있던 손을 서서히 내렸다. 정말, 공원에 사람이 없다는것이 정말 다행이었다. 만약, 자고있는 남자에게 키스따위나 하려하는 남자의 모습을 누가 곱게 봐줄것인가. 물론, 곱게 봐주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은 극소수였으므로 가볍게 넘기었다. 아무튼, 정말 자신은 무슨행동을 하고 있는건지. 이자야는 자신은 이렇게 복잡한 감정으로 자신의 행동조차 통제를 못하고있는데, 아무것도 모른채 여전히 잘도 자고있는 시즈오에 갑자기 심통이 났다. 심통, 이라고 하니까 마치 초등학생 아이같은 표현이었지만, 이자야의 속에 있는 감정은 정말, 그것과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물론, 이자야는 초등학생이 아니었지만.

" .............정말 싫다구."

.

.

.

" 오... ......시즈오 !??"

다급한 목소리로 자신을 깨우는 소리가 들려서, 여전히 잘도 자고있던 시즈오가 닫혀있던 눈꺼풀을 들어올리고 자신의 어깨를 쥐어흔드는 자신의 선배- 톰을 바라보았다. 화를 잘내는 다혈질이었지만, 그와 맞지않게 약간의 저혈압인 시즈오는 일어나자마자 평소와 마찬가지로 진하게 느껴지는 두통에 손을 들어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왜 톰이 자신을 저렇게 자급하게 부르는지에 대해 의문을 담아 톰을 바라보았다. 평소와 다름없이 수금을 하러간 어느 아파트. 그 전 수금자에게 조금의(?) 난리를 친 탓인지 톰은 시즈오에게 먼저 공원에 가있으라고, 자신이 수금해서 가겠노라고, 그렇게 말했고, 시즈오는 조용히 동의하며 얌전히 그 말을 따라 공원에 앉아있다, 그렇게 잠든것 같았다. 그런데, 저렇게 다급하게 부를만한 사정이 무언가 있던가 ?

그러고보니, 조금 이상한것이 있다. 자신의 눈에 보이는 하늘은 여전히 새파랬고, 태양은 밝았으며 세상은 여름을 향해 가고있었으므로 조금은 따듯했다. 그러나, 자신의 피부는 약간의 싸늘함을 호소하고있었다. 또한, 톰이 쥐고있는 어깨또한, 무언가 허전했다. 이것은, 만약 보통 사람이었다면 단숨에 눈치를 챌만한 현상이었지만, 시즈오는 자신의 몸에 대해서는 둔했고,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기에, 그렇기에 눈치를 채지 못한 부분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반쯤 꿈속을 헤메고 있는 시즈오를 깨우던 톰이, 그 이유를 말해주고 나서야, 시즈오는 알 수 있었다. 왜 자신들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시즈오 자신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것인지에 대해.

" 시즈오 ! 너 셔츠, 셔츠 어디갔어 !??"

하고, 톰이 소리치고 나서야, 시즈오는 자신이 아까까지만해도 입고있었던 셔츠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셔츠'가 사라졌다. 그 위에 입고있던 조끼는 아무일도 없었다는양 멀쩡히 입혀져있었것만, 셔츠만 홀연히. 시즈오는, 그제서야 왜 피부가 조금이나마 싸늘했는지, 어깨위에 놓인 톰의 손이 가까웠는지, 사람들의 시선이 저리도 이상했는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맨몸위에 조끼만 입고있었음으로, 그런것이었다. 시즈오는 깜짝놀라 자신의 상반신을 살피었고, 전혀 아픔따위는 느껴지지 않았기에 몰랐지만, 자신의 오른쪽 팔에 길게 그어진 상처를 발견했다. 물론, 그것은 시즈오의 튼튼한 육체로 인해 심하게 파여있지는 않았지만, 시즈오가 자고있던 탓에 조금의 힘도 주고있지 않았음으로 그나마, 평소보다 더 아가리를 열고있었고, 그 사이로 비집고 올라오는 피는, 이미 마르고 있었다. 그리고, 또하나, 시즈오가 자신을 살피며 알 수있던 것.

자신의 옆에, 눈을 찌르는 빛의 무언가가 꽂혀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여기 이런 평화로운 곳에 있을리가 없는, 은빛 나이프였다. 햇빛을 반사하여, 반짝반짝 빛나는, 자신에게 익숙한 그것. 시즈오는 단숨에 알아챘다. 저것은 자신이 전에 입으로 부순적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저것을 자신에게 던졌던 사람, 즉 저것의 주인이 오리하라 이자야 라는것을. 그리고, 그 칼날에 박혀있는 이리저리 찢긴 천쪼가리들이 자신의 셔츠의 잔해라는것을.

" ..........이..... 자야..... 이자식.........!!!!"

시즈오는 그 사실을 알아채자마자 손으로 그 나이프를 꽉쥐어 깨트렸고, 소리쳤고,. 톰이 말릴새도 없이 그저 조끼차림으로 어디론가 뛰어갔다. 그리고, 그의 목적지는 다들 알 그곳. 신주쿠의 정보상, 나이프를 아주 잘 다루는, 시즈오의 셔츠를 갈기갈기 찢어 조끼차림으로 만든 범인, 그리고 자신이 했다는 사실을 일부로 그에게 알리기 위해 팔을 긋고, 나이프까지 남겨둔, 오리하라 이자야의 아파트.

-fin

 

Posted by 하리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