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17. 23:01

" 뭐야, 이거."

" 그거입니다."

" 그게 뭔데 ?"

히지카타는 지금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비번인 날이지만 부지런한 그였기에 일찍 잠에서 깨버려, 이불위에서 담배한대를 뻑뻑 피워대고 있던 참이었는데, 갑자기 들어온 오키타가 히지카타의 입에 물려있는 담배를 빼서 꺼버리고, 자신의 품 가득히 무언가를 안겨준 것이다. 자신의 두 팔 아래 안겨있는 보드라운 천으로 둘러싸여진 무언가. 처음 건내받았을 때만해도 얌전하던 그것이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꼬물거린다. 점점 강도가 심해지는 꼬물거림을 이기지 못한 천이 스륵, 하고 흘러내리고 그 안에 있던것의 정체가 들어났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거쳐나가는 시기. 개구리로 치자면 개구리 알에서 막 깨어나온 꿈틀꿈틀한 흑갈색 점같은 올챙이랄까. 응, 바로 그것이다.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듯한 자그마한 아기.

" 네놈이 질러놨냐 ?"

" 그럴리가 있습니까 ? "

" 그럼 얜 누구야."

" 자세히 보세요."

정말 뭐야, 이자식. 오키타의 말에 히지카타는 마음속으로 욕짓거리를 내뱉으며 얌전히 고개를 떨구었다. 어라, 그러고보니 조금 낯익기도 하다. 뭐지 ? 이 낯익은 은발은 ? 요 반쯤 감겨인듯 힘풀린 생선같은 눈깔은 ? 응 ? 뭐야 ? 지금 정말 내가 생각하고있는 그것 ? 응. 역시나 그것이었다. 아무리봐도 지금 독자분들도 생각하고계실 긴토키 주니어였다. 아니, 그 주니어가 아니라. 남자의 제 3의 다리가 아니라. 그거면 여러므로 혐오스럽잖아요. 그런것이 천에 돌돌 감싸여 꼬물거린다니. 애초에 그런것을 떼어내면은 긴토키는 고자가 되잖아요. 긴토키가 고자가 되면은 이렇고 저런짓을 할수 없으니 무리. 아니, 애초에 주니어를 보고 그런것 ? 이라는 생각을 하는 분이 계시려나. 아니 지금 무슨 헛소리래. 아무튼.

아무튼 긴토키주니어였다. 반쯤밖에 뜨여있지 않은 자그마한 눈을 열심히 끔벅대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 그거냐 ? 긴토키자식의 올챙이로 만들어놓은거 ? 아니 이아기도 나름 올챙이긴 한데. 무튼 이녀석 다른 여자랑 붕가를 했단말이야 ? 이런 파렴치한 ! 그럼 왜 이 아기가 나한테 있는건데 ! 내가 낳지 않았다고 ! 긴토키자식이 낳았을리가 없잖아 !? 애초에 그녀석의 엄청난 올챙이를 받아낸건 나니까. 어라, 왠지 패배감이 드는데. 아냐아냐아냐 내가 무슨 올챙이를 받아내. 내가 무슨 개울도 아니고 개구리알따위 받아내고싶지 않다고.

" 그거 아닐까요 ? 천인들의 기계로 작아져버린.."

" ...무슨 젊어지는 샘물이라도 마셨다냐 ?"

아, 그래. 이건 긴토키라는 개구리의 옛날 모습인 올챙이구나. 랄까, 난 왜 아까부터 올챙이올챙이 거리는거야 ? 아무튼 품속의 아기는 오키타의 말에 따르면 긴토키였다. 그래서 긴토키와 똑같이 생겼구나. 다행히도 긴토키자식이 다른 여자와 붕가뜬게 아니었구나. 아니, 다행이라는 생각은 왜 드는거지 ? 별로 그렇게 여길 것 없는데 말이지. 품 속의 아기는 있는곳이 불편한지 열심히도 몸을 꼬물거렸다. 마치 X이라도 씹은것 같은 표정을 하고 몸을 꿈틀꿈틀. 입술을 잔뜩 삐죽이며 편안한 자세를 만들려 노력하는 녀석을 다시 고쳐안았다. 한쪽 팔로 밑을 받혀주고, 나머지 팔로 고개를 받혀주니 이제야 괜찮아진듯, 무슨 노인이 온천에 들어가 ' 아이고.. 살것같다. 이렇게 편안히 죽으면 얼마나 좋을꼬..' 하는 소리를 늘어놓으며 짓는 표정같은 것을 지어보였다. 아무래도 반쯤밖에 뜨여있지 않은 눈이 더 작아진것 같다. 너말야, 아기 주제에 건방지다고.

그러더니 천속에 고이 모셔있는 팔을 천천히 들어올린다. 아기답게 통통히 살이 올라있는 팔뚝이 마치 곰인형의 팔같이 자그마했다. 아직 밖에 몇번 나갈 기회조차 없었던 것인지 태양의 안좋은 자외선을 몇번 맞지 않은 팔뚝은 정말 우유같이 새하얬다. 들어올려진 팔이 히지카타를 향해 수직으로 뻗어올려졌다. 그리고 그 끝에, 마치 가지의 끝부근의 열매처름 달려있는 정말 자그마한 손이 히지카타를 보고있었다. 정말 움직일까,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작은 손이 정말 오물오물 움직인다. 너무나도 작아서 손가락 마디마디조차 보이지 않는 뭉툭한 손이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는것을 반복한다. 마치 무언가를 쥐어달라는 움직임 같아서 히지카타는 저도 모르게 그 자그마한것에 자신의 손가락을 올렸다. 아, 고개가 뒤로 획 젖혀지지 않도록 자세를 고친것은 당연하다.

그러자 그 자그마한 손가락들이 자신의 그 손가락을 잡아챘다. 식인식물이 파리를 잡으려 입구를 막듯이 빠르게 조여든 손가락의 악력은, 아기의 그것이라고 말할 수 없을만큼 강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아기는 아기. 깜짝 놀란 히지카타가 손가락을 빼내려 뒤로 무르자, 금새 놓쳐버린다. 이에 아기의 눈망울에 눈물이 맺힌다. 아우우우, 하는 자그마한 울음섞인 소리를 내며 울듯말듯 입술을 오물거리며 훌쩍훌쩍 거리는 아기의 보챔에, 당황해버린 히지카타가 다시 손가락을 내어준다. 그 손가락을 다시 잡은 아기가 고인 눈물을 다 없애버리고는 베시시.

" 아무튼 그겁니다. 그럼."

" 글쎄, 그게 뭐냐니까 ? 넌 왜 가려고 하는건데 ? 이봐, 이 아기는 ? 어이, 소우고 ? 소우고 !???????"

히지카타와 아기의 아기자기한 행동을 보며 오키타는 횅하고 나가버렸다. 재빠르게 열렸다 재빠르게 닫히는 문의 아가리를 향해 히지카타가 있는힘껏 소리를 질러보았지만, 오키타는 이런다고 다시 돌아올 위인이 아니었다. 방 안에는 히지카타와 아기만이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응, 아기라고 하기 좀 그러니까 긴토키라고 해야겠다. 어른긴토키가 아니라는것을 염두해놓도록 하자. 어? 아니다. 역시 긴토키하면 어른긴토키니까 아기긴토키라고 표현하겠다. 무튼 히지카타의 손가락을 쥐고 히지카타의 텐션높은 샤우팅을 들은 아기긴토키는 그런 히지카타를 보며 상황을 이해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지만 꺄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그 웃음소리에 다시 아기쪽으로 시선을 떨군 히지카타가 어쩔수 없다는듯이 한숨지었다. 아아,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거냐고. 넌 왜 아기가 되어버린거냐고. 난 왜 그런 너를 데리고 있는거냐고. 왜 당장 쫓아나가서 다시 오키타에게 돌려주지 않는거냐고. 이 아기가 너라는것을 알자마자 왜이렇게 편안해 지는거냐고. 그냥 아기일 뿐인데. 쳇이다, 증말. 너도 쳇이고, 이 아기도 쳇이고, 이 상황을 만든 오키타도 쳇이고, 나도 쳇이다. 쳇쳇쳇쳇 히지카타 삐지꼬에염, 뿌우...... 가 아니라.

" 이 꼬맹아. 아기야. 아가야. 애기야. 정말 긴토키냐? 응 ? 네 정체가 뭐야. 정말 젊어지는 샘물을 마신거냐 ?"

" 우으으"

" 우으으, 가 아니잖아. 응 ? 대답해봐. 어 ? 대답못하나 ?"

" 하우우우"

.......할리가 없지. 히지카타는 지금까지 한 자신의 뻘짓이 바보같았다. 그래 애긴데 무슨말을 하리오. 그렇게 계속 안고있다보니, 아무리 아기라도 몸무게가 나가서, 팔이 조금씩 저려오는것 같아, 이불위로 내려놓았다. 혹시 아기의 성질을 건드릴까 조심히. 누구보다도 민감한것이 아기니까, 언제 눈물을 터트릴 지 모르므로 조심히 행동해야 했다. 그러나 그런 히지카타의 생각과는 다르게, 이 아기긴토키는 아기답지않게 어른스러웠다. 그래봤자 아기이므로 얼마나 어른스럽겠냐만은.

이불위로 조심히 놓여진 아기긴토키가 여전히 잡고있는 히지카타의 손가락을, 이번에는 두 손으로 쥐었다. 너무나도 작은 손이라, 히지카타의 검지손가락 하나를 두 손으로 쥐어도 남는곳이 더 많을 정도였다. 히지카타는 그저 할짓이 없어 아기긴토키가 하는짓을 바라보았다. 애기를 데리고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 애기가 손가락을 잡고있는이상 다른 어떤것도 할 것이 없었다. 그렇게 두 손으로 히지카타의 손가락을 소중한것을 다루듯이 가득 잡고있던 아기긴토키가 그것을 입으로 가져갔다. 붉은 자그마한 입술이 조심스레 열리며 작은 구멍을 하나 만들어냈다.

그것은 히지카타의 검지손가락이 간신히 들어갈만큼 작았다. 그래도 아기긴토키는 그 자그마한 입에 히지카타의 손가락을 집어넣고는 쪽쪽 빨기 시작했다. 배가 고픈것일까. 무언가를 주어야하나, 하고 생각한 히지카타가 부엌에라도 나가볼 생각으로 아기긴토키에게 들려있던 손가락을 빼고 일어났다. 그러자 아기긴토키가 빼액, 울어댄다. 다시 주저앉아 손가락을 내어주자, 다시 그것을 집어들더니 입속으로 가져간다. 아참, 그러고보니 나, 오늘 손 안씻었는데. 노폐물이라던가, 아기에게 안좋은 세균이 잔뜩잔뜩 우글우글할텐데. 괜찮으려나.

히지카타는 하는수 없이 아기긴토키에게 손가락을 물려준채로 안아들었다. 아니, 안아들려 했다. 히지카타가 긴토키의 몸을 받혀 안아들자마자, 자신의 몸이 공중에 붕 뜨는 느낌이 맘에 안든건지 그저 누워있던거 싶은건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징징댄다. 얌전하다고 해도 아기인 것인가. 다시 내려놓자 징징거리던것이 뚝. 너말야, 혹시 나 놀리려는거냐 ? 응 ? 그래도 아기에게 화를 낼 수 없으므로 히지카타는 침묵. 여전히 물려있는 손가락에 무언가를 줘야할것만 같아서 근처에 널부러져있는 마요네즈를 집어들었다. 어제 자기전까지 먹다가 놔둔거라, 방바닥의 열기에 조금 따듯했다.

차가운것은 아기에게 먹이면 안된다지. 따듯한 그것에 안심한 히지카타가 한손으로 뚜껑을 열어 손가락에 조금 발랐다. 이거, 애기가 먹어도 되려나 ? 음, 부들부들 하니까 괜찮을지도. 애초에 마요는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음식이니까. 아, 참고로 내가 제일 좋아한다. 마요를 좋아하는 이 마음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어. 마요마요. 마요마요마요. 그니까 아기긴토키도 마요를 좋아할꺼야마요. 먹어주길바래마요 !

그러나 그런 히지카타의 마음은 무산되었다. 자신에게로 가까이 다가온 히지카타의 손에 뭍어있는 물질에, 아기긴토키가 조금의 호기심을 가지고 그것의 냄새를 맡아보다 바로 고개를 돌려버린것이다. 이에 상처받은 히지카타가 흑흑, 하며 손가락에 묻어있는 마요를 빨았다. 이 맛난걸 안먹다니.... 응 그거다. 이 아기는 지금 배가 부른거야. 그러니까 이 맛있는 마요도 안먹지. 그렇지, 아가야 ? 아기는 대답이 없었다. 그렇지, 마요야 ? 마요도 역시 대답이 없었다. 나 씹혔구나.

히지카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아기긴토키는 어느새 히지카타의 손가락을 쭈쭈, 빨며 졸고있었다. 깜박깜박 거리는 눈동자의 움직임이 천천히 느려지다, 이내 감겨버린다. 그 모습을 본 히지카타가 역시 아기는 정말 인형같다고 느꼈다. 저 조그마한 것들이 어찌 움직이는지 신기할 다름이었다. 아기는 자버렸고. 내 손가락은 아직도 아기의 입속에 있고. 이걸 빼내면 깨겠지 ? 아기는 많이 자야한다는데. 하는수 없이 히지카타는 아기긴토키의 옆에 누웠다. 그리고 조심히 아기의 얼굴을 살피었다.

그래, 너의 어린모습이구나. 이게 너라고 생각을 하니까, 무진장 음.. 음... 응. 그렇다. 보기가 음. 응. 더 이상 말을 하면 손발이 오글오글 오그라들어 불판위의 오징어같이 쪼그라들것 같음으로 안하겠다. 무튼 너구나. 어째서 작아져 버린걸까, 너. 이 모습도 괜찮긴 하지만, 난 역시 원래대로의 너가. 말도 통하고. 나와 대화도 하고. 나를 항상 보고싶어서 전전긍긍하는. 내가 바빠서 조금이라도 보지 못하면 꿈에서 까지 내가 나온다며 툴툴대는 네가. 언제나 휘적휘적 걸어와서 나를 끌어안는 네가. 가끔 야한짓도 하는 네가. 그런 네가, 더이상은 볼 수 없는 걸까 ? 넌 언제쯤에야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이냐.

항상 보는 꼬불꼬불 엉켜있는, 아침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은색 머리칼. 아기답게 긴 은색의 속눈썹. 통통한 볼살. 그래. 응 참 귀엽구나. 히지카타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고 관찰하고 있었다. 얌전히 감긴 눈. 동그란 콧방울. 아기라 그런지 살짝 붉은듯한 볼. 그리고 작은 입술. 언제인지 모르게 내 손가락을 뱉어내었구나. 그래도 여전히 두손으로 붙들고 있고. 아무튼, 이 입술이 너의 것이지. 항상 내게 입맞춰오던 그것. 이제는, 그렇게 입맞춤받을수 없나 ? 언제와, 긴토키. 히지카타는 조심스레 아기긴토키를 향해 입술을 떨구었다. 그 작은 입술과 맞닫고, 아기다운 보드라움을 잠시 느끼다 금새 떼어내었다. 나, 지금 뭐하는거냐. 자는 아기한테.

역시나 바보같다고 느끼며 히지카타는 다시 몸을 뉘었다. 그리고 아기긴토키를 품으로 끌어들여 가득 안았다. 아기답게 자신보다 더 높은 체온이 노곤노곤 깨었던 잠을 다시 불러들였다. 이에, 아까의 아기긴토키처럼 히지카타의 눈도 점점 감긴다. 그리고, 히지카타 역시 다시 잠들어버렸다.

-

" 오쿠지군 !!!!!!!!!!!!!!!!!!!!!"

쿠당탕 탁탁탁 드르륵 버럭 ! 시끄러운 소리에 히지카타의 눈이 번쩍 뜨였다. 아기는 민감하다지만, 이 아기는 아닌듯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듯 했다. 응 ? 잠깐. 그 소리 긴토키 아니었어 ? 어라, 이 아기도 긴토킨데 ? 응 ??? 히지카타는 고개를 들어 자신의 방 안으로 들어온 이를 확인했다. 역시나 긴토키. 옆에서 자고있는 애기도 긴토키. 모다모다 ? 벙찐 히지카타에게로 다가와 그 어깨를 움켜진 긴토키가 여전히 버럭버럭 소리질렀다.

" 오쿠지군 어떻게 이럴수가 있어 !? 내가 아닌 다른 남자와 동침을 하다니 ! 이럴수는 없어 !"

" 이 아기가 남자냐 !? 애초에 이건 너잖아 ! 그리고 조용히 해 ! 아기 깨겠어 !"

" 지금 이 긴상보다 다른남자가 더 중요하다 이거야 !? 브로큰 하트하겠어 !"

얌전했던 아기보다 더 찡찡대는 어른의 찡찡거림을 받아내며 히지카타는 긴토키의 등을 두드리며 닥쳐. 했다.

나중에 말을 들어보니, 오키타의 말은 구라란다. 너는 나의 함정에 걸려들었어 ! 함정카드 발동 ! 우하하하 ! 였던 것이다. 오키타에게 낚여버린것이다. 파닥파닥 파닥닥ㄷ가더;배서ㅏ;;ㅓ입허 머라구 !?!!?!!!!!!!!!!! 그럼 머야, 디스 베이비 노 긴토키 ? 나우 쳐들어온 긴토키 이즈 레알 긴토키 ? 베이비 이즈 낫 ?????????????????????????????? 뜨헐 ? 우띠, 아기한테 베푼 애정 돌려내 !

.................뭐, 돌아오지 않는게 아니라서 조금. 아주 조금. 응. 엄청 쪼오오오오오오오오금. 음음. 다행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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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리쿠
2013. 1. 17. 23:00
시계바늘은 어느새 새벽 3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가로등조차 없어 칠흙같이 어두운 밤의 거리를 비틀거리며 걷고있던 검은 양복의 그는 어둠과 하나가 된듯 자연스러웠다. 그는 술이라도 한잔 한건지 짙은 알코올 향기를 품에 안고 흐릿한 눈을 반쯤 뜨고있었다. 후우ㅡ.. 하고 내쉬어지는 한숨은 아직 추운 기운이 감도는 공기안을 하얗게 물들였다. 순간 차가운 바람이 그의 피부를 스쳐지나갔다. 움찔, 하고 떨리는 몸에 오른쪽손으로 왼쪽팔을 슥슥 문대던 그는 긴장한듯 굳는 얼굴로 주위를 살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볼의 안쪽살을 이로 잘근잘근 씹으며 발걸음을 빨리했다.

점점 빨라지는 발걸음 소리가 조용한 거리안을 울렸다. 순간 뒤에서 들려오는 하나 더의 발걸음 소리. 순간 풍겨지는 피비릿내. 달리던 이의 눈동자가 크게 뜨여졌다. 멈칫, 하고 달리던 다리가 멈추었다. 새하얀 얼굴에 식은땀 한방울이 흘러내렸다. 두근거리는 심장소리가 자신의 귓가를 울렸다. 바들바들 떨리는 몸을 간신히 가누며 다리를 움직였다. 슈트 안쪽에 넣어놓은 권총을 손끝으로 느끼며 발걸음을 옮겼다. 제발, 이 피비린내의 주인이 '그' 가 아니기를.

그가 빠른건지, 자신이 느린건지는 모르겠지만 또하나의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점점 짙어지는 비릿내. 알코올기운에 어질어질거리는 머리가 더욱더 아파옴을 느끼며 흐읍, 하고 숨을 드리켰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은척 주머니속의 담배곽을 꺼내어 얇고 사각거리는 담배를 집어들었다. 걸음을 멈추고 뒤의 사람을 확인하기 위해 옆쪽으로 비켜선 후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하얗게 퍼지는 연기. 폐안을 가득 채우는 맵고 쓴 느낌의 연기를 뱉어내기 위해 손을 들어 담배를 입에서 뗀 후 입안 가득한 하얀색을 내어놓고는 다시 입으로 가져가려 손을 들어 입에 담배를 무는데, 순간 그 손에 커다란 손바닥이 겹쳐진다. 소스라치게 놀라며 재빠르게 손을 뿌리치고는 눈을 꽈악 감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몇걸음 앞으로 갔을까, 푹신한 무언가에 얼굴을 부딭쳤다. 더 강렬해진 피내음내. 눈을 뜨자 보이는 흰 와이셔츠에 뭍어있는 빨간색. 자신의 턱을 감싸는 차가운 손바닥. 서서히 올려지는 고개. 익숙한 턱선과 숨소리에 눈을 감아버렸다. 부드럽게 맞추어지는 입술선. 역시나 익숙한 느낌. 아랫입술을 까끌하게 핥는 혀와 자신의 허리를 감싸는 팔. 미끄러지듯 자신의 입안에 파고드는 혀가 자신의 굳어버린 혀를 감싸고 따듯한 타액이 끈적이며 자신의 입안으로 흘러들어왔다. 손을 자신의 슈트안으로 넣어 권총을 집어 들었다. 재빨리 안전장치를 풀고 그의 심장을 향하여ㅡ

허억, 헉. 빠르게 숨을 내쉬며 차의 문 손잡이를 잡았다. 술에 취한터라 대리운전을 불러 집까지 갈 생각이었으나, 이미 술은 다 깬지 오래. 어서 도망가야겠다는 생각만이 들 뿐이다. 새빨간 피가 번져나가는 바닥에 가지런히 놓여있던 긴 다리. 그것을 보자마자 죽어라 뛰었었다. 혹시 모르는 마음에 자신이 뛰쳐나온 골목을 쳐다보자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재빨리 차 안으로 들어가 시동을 걸며 골목을 살피었으나, 그 안에서 나온 사람은 자신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처음보는 회사원. 혹시 '그'가 저 사람에게도 보였을까. 내가 총으로 '그'를 쏜것을 보고있었을까. 그러나 별로 그런 눈치는 아닌것 같아 한숨을 내쉬며 지나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순간, 눈이 마주치고, 소름이 돋아왔다. 검은눈 검은눈 검은눈......... 붉은눈 붉은눈 붉은눈붉은눈 붉은눈 붉은눈 붉은눈 붉은눈 새빨간 눈

또다시 떨려오는 다리를 간신히 움직여 엑셀을 밟았다. 서서히 움직이는 차가 갑자기 무겁다. 그것을 느낀 순간 바로 뒤에서 바삭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 차에는 나 혼자일텐데. 엑셀에서 발을 떼는 동시에 목덜미에 머리칼이 찌르는 따가운 느낌이 들었다. 눈앞에 어른거리는 은발. 자신의 어깨를 잡는 팔. 앞으로 넘어오는 몸. 중간이 동그랗게 뚫린 셔츠. 서서히 드리워지는 그림자. 목덜미를 핥는 혀의 느낌. 이윽고 깨물어지는 느낌과 동시에 자신의 버클을 잡는 손길. 분명 죽었을텐데. 어째서, 어째서. 숨이 턱 막히고 온 몸이 힘이 들어가 뻣뻣해지자 목덜미에 숙여 키스하던 입술이 귓가로 올라온다.

" 힘 빼. 긴장하지 마."

귓가를 울리는 마성의 목소리. 순간 몸에 힘이 쫙 빠지며 나른해져왔다. 허리선을 쓸며 내려가는 익숙한 손길. 싫어, 하고 웅얼거리자 응응 알았어, 하고 자신을 달래는 목소리가 무섭다. 왜 아직 살아있는거야. 언제까지 나를 따라다닐꺼야. 내가 처음부터 너를 처리하기 위해 다가간게 그렇게 원한이었나. 수십번, 수백번을 죽여도 자신을 쫓아다니며 괴롭히는 너. 점점 달아오르는 몸에 저항하려 고개를 저었다.

제발, 그만해.

피해망상 Part 3.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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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리쿠
2013. 1. 17. 22:25

" 선생, 언제부터 학교 쉬어?"

어쩐일인지 공부가 안된다며 집까지 쳐들어와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점프나 읽어대던 긴토키가 넌지시 물었다. 히지카타는 응? 하고 반문하며 긴토키를 바라보았다. 학교를 쉬다니. 갑자기 무슨 소리인지. 컴퓨터를 달깍이던 손의 움직임도 잠시 멈춘다. 그 다음의 대답을 기다리며 응시하자 누워있던 긴토키는 그자리에 벌떡 앉더니 읽고있던 점프를 닫고 내려놓는다. 항상 이녀석만 왔다가면 집안이 엉망이 된다니까. 좀 어질지좀 말란말이다, 요녀석아.

" 이제 곧 배가 더 불러올꺼고. 그럼 수업도 더이상 못할꺼아냐. 그리고 선생이란게 스트레스도 엄청 받는 직업이고. 아기한테 안좋아."

얼씨구. 꼴에 아빠라고. 하고 비웃어주며 히지카타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눕듯이 앉았다. 사실 창피해서 병원은 가보지 않았지만, 밥이나 먹을것의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나고, 배도 조금씩 나오고있고, 과일이 먹고싶고, 가끔 우울해지고. 하는 자신의 자그마한 모든 변화들이 임산부와 같은 현상이였다. 사실 인정할수는 없는 내용이지만 이 변화를 눈치챈것은 오히려 긴토키 쪽이라 그렇게 티가 많이났나ㅡ라는 기분에 더더욱 인정할수 밖에 없었다. -사실 자신도 조금은 알아채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남자가 임신이라니. 애는 어떻게 낳지? 제왕절개? 하며 혼자 자문자답도 해보았고, 밥맛은 없었지만 밥을 먹으려고 열심히 노력중이었고, 긴토키는 자기 나름대로 자신에게 먹을것을 -주로 당분- 사다준다던가, 힘든일을 해주던가 하며 도와주고 있었다.

" 만약 정말 임신이라 하면. 낳고 나면 돈이 더들어. 조금이라도 괜찮을때 벌어두어야지."

조금 우스갯소리로 내뱉은 말이었는데 긴토키의 표정은 진지하다. 저렇게 진지한 표정은 오랜만이라 할정도로. 역시 남자는 책임감이 강하다는 것인가. 그래도 자기 아이라고. 그래. 정말 임신이라면. 이렇게 농담말고 정말 임신이라면. 언젠가는 진지하게 생각해볼 문제였다. 녀석과 관계를 가졌던 기간을 손꼽아보면 약 3개월정도 된것같고. 그렇다 하면 아이도 3개월. 나타나는 현상도 임신 3개월. 정말 소름끼칠정도로 딱딱 맞아 떨어지기에. 손을 들어 배를 조금 쓸어보았다. 살짝 나온것같은 느낌이 드는것이 정말 이 안에 생명하나가 자라고 있지 않을까, 하는 물음을 안겨준다. 순간, 갑자기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녀석에게 임신 아니냐는 말을 듣고 난 후부터, 뭔가가 마음에 걸려 잠시 끈었던 담배가, 격하게 피우고 싶어졌다. 장난식으로 사귀고, 관계맺고, 하던일이 이렇게 진지하게 변화될줄을 누가 알았던가.

" 내가 알바라도 하지뭐. 선생도 어른이니까 모아둔 돈은 조금이라도 있을것 아냐."

결국 그거냐. 그래도 알바는 안돼. 싫은데? 선생도 일하는것 안돼. 누가 멋대로 이래라 저래라야? 그럼 선생은 왜 멋대로 이래라 저래라야? 선생이 우리 엄마야? - 하며 투탁투탁. 퉁명스러운듯 하지만 분명 안에 애정이 담겨있음이 강하게 느껴지는 말투라 다정하다.

" ‥애인이잖아."

-풉.

콜록이며 뭐? 뭐? 하고 묻는 긴토키의 말에 히지카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아무말도 안했어! 누가 무슨말을 했다고!! 하며 부정하는데 뭐가좋은지 생글생글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히지카타에게 다가간다. 뭐뭐 거리며 신나게 노려보는 히지카타의 눈빛을 스킵, 뒤로 돌아가 와락 껴안는다. 잠시 놓으라며 반항하던 히지카타도 금방 잠잠해진다. 백허그의 느낌이 좋아서 일까. 좀더 뒤로 파고들며 고개를 살짝 위로 올린다. 기다렸듯이 맞추어오는 입술. 혀도 넣지 않고 그저 가만히 맞대고 있을 뿐이었지만 기분 좋은듯 살짝 미소가 걸린다. 여운이라도 남기려는지 금방 떨어지고는 여전히 그 사람좋은 미소만 짓는다.

" 걱정마. 내가 만든 애니까. 내가 책임질께."

퍽이나 그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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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리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