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18. 23:24

으아아앙. 옆에서 뒤뚱뒤뚱 걸어가던 분홍색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은 애기가 꽈당! 하고 넘어지고는 울음을 터뜨렸어. 나도 저렇게 어렸을 때에는 넘어지는 걸로 울고 그랬는데. 아, 지금은 아니야! 토시로는 남자인걸! 아파도 꾹꾹 참는다구. 긴파치 형아 선생님께서 20분째 초코맛 젤라또를 먹을까 딸기맛 젤라또를 먹을까 고민하는 동안 전혀 손을 놔주지 않아서 난 울고 있는 아이에게 다가가지도 못했어. 예쁜 머리띠를 하고 있는 머리를 살짝 쓰다듬어주면서 아픔아 날아가라, 하고 주문을 걸어주고 싶었는데. 앗, 엄마가 왔어! 내가 해주고 싶었던 걸 대신 해줘서 조금 안도했어.

…볼에 뽀뽀해주는 건 생각 안해봤던 건데…….

부럽다……….

범죄에요, 선생님.

Sakata ginpachi X Hijikata toushirou

write by, 하리쿠

화창한 휴일의 어느날 이었다. 학교도 쉬겠다 하루종일 집에서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고 뒹굴뒹굴하며 점프나 뒤적거리려는 긴파치의 계획은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 때문에 산산조각이 났다. 찾아온 사람은 평소에 많이 신세지던-분리수거하기 귀찮은 쓰레기를 몰래 갖다놓는다던지, 반찬이 없을 때 얻어온다던지, 술 취해 잘못 문을 두들길 때 받아주며 숙취를 도와준다던지- 옆집사람이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학생 아닌 손님이 자신의 엉덩이만큼도 오지 않는 아이의 손을 꼭 붙잡고 있는 남자라니. 이건 뭐 툭하면 무단침입으로 집을 점령하며 밥통을 바닥내는 자신의 반 천덕꾸러기 카구라만큼의 불청객이라고 생각하며 인터폰 너머로 보고있던 긴파치는 문을 열었다.

그리고, 카구라보다 더한, 다크마타를 들고 찾아오는 오타에보다 더한 불청객이란 생각을 한 것은 대화를 나누자마자였다. 남자의 부탁은 하루만 그 꼬맹이를 맡아달라는 거였다. 바람난 남편이 데려온 자식이라는 둥의 이유로 집에선 별로 환대를 받지 못한다는 꼬맹이의 사정은 말 그대로 꼬맹이의 사정이었으므로 긴파치는 전혀 조금도 네~버 관심이 없었다. 그래도 장남이라는 이 남자만큼은 잘해주는 모양이었는데, 오늘은 사정이 있어서 하루종일 밖으로 나가있어야 해서 다른 가족들이 무슨 짓을 할 지 모르겠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하도 신세를 많이 지는 신세라-월급날 일주일 전부터 밥을 얻어먹으러 다닌다던지, 집주인 할망구(오토세)가 집세를 받으러 올때 미리 연락을 넣어 도망칠 수 있게 해준다던지, 집 앞에서 시끄럽게 떠들며 문을 열라고 으름장을 놓는 카구라를 대신 상대해준다던지- 차마 거절할 수 도 없었던 긴파치는 하루종일 뒹굴뒹굴한다던 자신의 계획에 히지카타 토시로, 라는 꼬맹이를 집어넣었다.

" 안녕하세요…."

긴파치 형아야. 라고 소개를 받자-형이라고 불릴 나이는 아니었지만- 조그마한 목소리로 히지카타 형씨의 뒤에 꼭꼭 숨어서 눈만 빼꼼히 내밀고는 인사를 하는 토시로의 첫인상은 '눈치를 본다' 였다. 집에서 환대를 못받아서 그런지 처음 인사할 때도 자신과 눈을 마주치지도 못하고 머뭇거리는 것이나, 형씨가 간 후에도 집 현관에서 우물쭈물 대는 것을 보니 그랬다. 어서 들어오라고 재촉을 하자 깜짝 놀라서는 후다닥 신발을 벗고 그것을 가지런히 해놓은 뒤 거실 소파에 얌전히 앉아있는 것 또한 그랬다. 행동 하나하나가 어른들의 눈치에 의해 지어진 인형같았다.

월급을 받은지 얼마 되지 않아 자신의 찬장에 과자며 초콜렛이며 하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단 것들이 잔뜩 들어있었기에, 긴파치는 대강대강 주스와 함께 그것들을 탁자 위에 올려주었다. 허리가 90도로 꺾일 정도로 인사를 하고 주스를 집어드는 아이는, 자신이 가끔 옆 집에 있을 때 형씨와 놀면서 보이던 활발한 모습따위를 눈꼽만큼도 찾을 수 없었다. 불쌍한 아이,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가지고서 는 것은 아이의 이러한 모습을 보는 것과, 사람들이 많은 곳에 있을 때 조용히 시키려는 본능밖에 없어서 긴파치는 금방 아이의 집안환경을 눈치챌 수 있었다. 하여간, 세상엔 형씨처럼 좋은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니까.

자신의 눈치를 보느라 티비를 보지도, 함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토시로를 보며 긴파치는 밖으로 나가기로 결심했다. 아직 봉지를 열지도 않은 과자를 그대로 내팽겨치고는 토시로의 작은 손을 잡고 밖으로 이끌었다. 곧 30살인 아저씨를 밖으로 내모는 짓을 하다니. 못쓰겠구만, 토시로 군은. 그래도 명색에 선생님이니까 오늘 하루는 제대로 책임져 주겠다 이말이야. 신발을 신으며 말을 건내자 토시로는 조금 기쁜듯 한 표정을 지었다. 네, 긴파치 형아 선생님. …호칭은 조금 이상했지만.

그렇게 의욕만 420%로 밖에 나온 긴파치는 자신이 이렇게 어린 아이와 놀아준 적이 없다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애초에 고등학교 선생님이었으므로 중학생 이하 아이들을 상대해 본 적도 별로 없었던 것이었다. 어쩌지, 하고 고민하던 긴파치는 일단 주변의 공원으로 가기로 했고, 거기서 발견한 젤라또 가게에 순전히 자신이 먹고 싶다는 이유로 먼저 향한 것이었다. 결국 자신은 딸기, 토시로는 초코로 결정하고-만일 여기서 자신이 먹지 못한다고 딴지를 거는 사람이 있다면, 선생님은 먹는 것이 아니라 초코 젤라또를 시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다고 말해주지!- 주문을 마친 긴파치가 토시로에게 (뒤늦게) 의견을 물어보았고, 토시로는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자신의 의견을 내세울 것이라고 생각하고 물어본 것은 아니었지만, 진짜 별다른 의견을 말하지 않아서 긴파치는 조금 기분이 미묘해졌다.

" 너 말야. 애들이랑 놀아본 적 없냐?"

주문한 젤라또를 받아들고, 공원의 가운데에 있는 기구를 가르키며 놀아라. 하고 대강 토시로를 보내놓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긴파치는 곧 자신을 따라와 옆에 앉는 토시로를 보며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건내었다. 이왕 더운 날씨에 아이스크림을 사줬는데 그것을 들고 아이답게 놀고있는 애들과 금방 어울려서 노는 모습을 상상했던 긴파치는 곧 그것이 이 아이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란 것을 깨닫고 말이라도 걸어본 것이었다. 초코 젤라또의 끝을 약간 베어먹은 토시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럼 놀이터에서 놀아본 적은?"

" 형이랑 조금…."

하아. 한숨을 내쉰 긴파치는 잠자코 젤라또를 마저 먹고, 토시로가 다 먹을때까지 기다리더니-그동안 둘 사이에는 아무런 말도 오가지 않았다.- 거의 다 먹었을 때 즈음 벌떡 일어났다. 토시로가 끈적거리는 작은 손을 핥다가 깜짝 놀라 긴파치를 올려다 보았다. 그대로 긴파치는 토시로를 번쩍 들어 성큼성큼 기구를 향해 갔다. 처음엔 몇 번 바둥거리던 토시로도 긴파치가 향하는 곳을 보고는 결국 얌전해 졌고, 긴파치는 그런 토시로를 그네 위에 앉혔다. 토시로의 영문이 모르겠다는 표정에 긴파치는 괜히 머쓱해졌다.

" 거 참, 귀찮게. 난 꼬맹이들이랑 놀아준 적이 없단말이다. 고3 애들 상대하는데도 바쁜 어른이라고. 너네 그…. 타, 타치바나-아님- 형씨처럼 잘 놀아주진 못하지만 그네정도는 밀어줄 수 있다는 거지. 이걸로 봐줘라."

" ………네!"

처음으로 들어보는, 토시로의 힘찬 대답이었다. 긴파치는 올라가는 입꼬리를 그냥 내버려두기로 했다.

긴파치가 열심히 밀어주는 그네를 타고 있는 토시로는 무척 재미있는 듯 했다. 곧 30줄인 긴토키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무척 밝게 웃고 있었기에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는 긴파치가 정말 애들을 놀아준 경험이 없다는 것이었고, 그렇기에 아이의 가벼운 몸무게에 따른 힘조절을 못했다는 것이었다.

" 토시로!!!"

조금이라도 더 위로 보내어 재미있게 해주고 싶은 욕심에 긴파치가 미는 손에 힘을 주자, 위로 올라가던 토시로가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떨어져버렸다. 꽤나 위로 올라간 상태에서 떨어졌기에, 얼굴부터 바닥에 부딛쳐버린 토시로는 일어나지도 못하고 얼굴을 바닥에 박은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여전히 흔들리는 그네에게 부딛치는 2차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그네를 대강 정지시킨 긴파치는 토시로에게 달려갔다. 꿈틀꿈틀 일어난 토시로는 발갛게 달아오른 코를 부여잡고 그렁그렁한 눈물을 간신히 집어삼키고 있었다. 가득 차오른 눈물이 금방이라도 떨어질듯이 위태위태하게 흔들거렸다.

" 괜찮아!?"

" 네…."

토시로는 그 와중에서도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 인지 애써 소매로 눈물을 닦고는 비틀비틀 일어나 무릎에 뭍은 흙먼지를 털어내었다. 잔뜩 까진 무릎에 작은 손이 닿을때마다 토시로의 얼굴이 움찔움찔했다. 괜찮아요. 토시로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애를 몰아세웠으면.

쪽.

아이답게, 조금 더 어리광 부려도 될텐데.

토시로의 커다란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한순간에 상처의 아픔이 사라지는 마술이었다.

-fin.

 

Posted by 하리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