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17. 23:00
시계바늘은 어느새 새벽 3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가로등조차 없어 칠흙같이 어두운 밤의 거리를 비틀거리며 걷고있던 검은 양복의 그는 어둠과 하나가 된듯 자연스러웠다. 그는 술이라도 한잔 한건지 짙은 알코올 향기를 품에 안고 흐릿한 눈을 반쯤 뜨고있었다. 후우ㅡ.. 하고 내쉬어지는 한숨은 아직 추운 기운이 감도는 공기안을 하얗게 물들였다. 순간 차가운 바람이 그의 피부를 스쳐지나갔다. 움찔, 하고 떨리는 몸에 오른쪽손으로 왼쪽팔을 슥슥 문대던 그는 긴장한듯 굳는 얼굴로 주위를 살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볼의 안쪽살을 이로 잘근잘근 씹으며 발걸음을 빨리했다.

점점 빨라지는 발걸음 소리가 조용한 거리안을 울렸다. 순간 뒤에서 들려오는 하나 더의 발걸음 소리. 순간 풍겨지는 피비릿내. 달리던 이의 눈동자가 크게 뜨여졌다. 멈칫, 하고 달리던 다리가 멈추었다. 새하얀 얼굴에 식은땀 한방울이 흘러내렸다. 두근거리는 심장소리가 자신의 귓가를 울렸다. 바들바들 떨리는 몸을 간신히 가누며 다리를 움직였다. 슈트 안쪽에 넣어놓은 권총을 손끝으로 느끼며 발걸음을 옮겼다. 제발, 이 피비린내의 주인이 '그' 가 아니기를.

그가 빠른건지, 자신이 느린건지는 모르겠지만 또하나의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점점 짙어지는 비릿내. 알코올기운에 어질어질거리는 머리가 더욱더 아파옴을 느끼며 흐읍, 하고 숨을 드리켰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은척 주머니속의 담배곽을 꺼내어 얇고 사각거리는 담배를 집어들었다. 걸음을 멈추고 뒤의 사람을 확인하기 위해 옆쪽으로 비켜선 후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하얗게 퍼지는 연기. 폐안을 가득 채우는 맵고 쓴 느낌의 연기를 뱉어내기 위해 손을 들어 담배를 입에서 뗀 후 입안 가득한 하얀색을 내어놓고는 다시 입으로 가져가려 손을 들어 입에 담배를 무는데, 순간 그 손에 커다란 손바닥이 겹쳐진다. 소스라치게 놀라며 재빠르게 손을 뿌리치고는 눈을 꽈악 감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몇걸음 앞으로 갔을까, 푹신한 무언가에 얼굴을 부딭쳤다. 더 강렬해진 피내음내. 눈을 뜨자 보이는 흰 와이셔츠에 뭍어있는 빨간색. 자신의 턱을 감싸는 차가운 손바닥. 서서히 올려지는 고개. 익숙한 턱선과 숨소리에 눈을 감아버렸다. 부드럽게 맞추어지는 입술선. 역시나 익숙한 느낌. 아랫입술을 까끌하게 핥는 혀와 자신의 허리를 감싸는 팔. 미끄러지듯 자신의 입안에 파고드는 혀가 자신의 굳어버린 혀를 감싸고 따듯한 타액이 끈적이며 자신의 입안으로 흘러들어왔다. 손을 자신의 슈트안으로 넣어 권총을 집어 들었다. 재빨리 안전장치를 풀고 그의 심장을 향하여ㅡ

허억, 헉. 빠르게 숨을 내쉬며 차의 문 손잡이를 잡았다. 술에 취한터라 대리운전을 불러 집까지 갈 생각이었으나, 이미 술은 다 깬지 오래. 어서 도망가야겠다는 생각만이 들 뿐이다. 새빨간 피가 번져나가는 바닥에 가지런히 놓여있던 긴 다리. 그것을 보자마자 죽어라 뛰었었다. 혹시 모르는 마음에 자신이 뛰쳐나온 골목을 쳐다보자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재빨리 차 안으로 들어가 시동을 걸며 골목을 살피었으나, 그 안에서 나온 사람은 자신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처음보는 회사원. 혹시 '그'가 저 사람에게도 보였을까. 내가 총으로 '그'를 쏜것을 보고있었을까. 그러나 별로 그런 눈치는 아닌것 같아 한숨을 내쉬며 지나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순간, 눈이 마주치고, 소름이 돋아왔다. 검은눈 검은눈 검은눈......... 붉은눈 붉은눈 붉은눈붉은눈 붉은눈 붉은눈 붉은눈 붉은눈 새빨간 눈

또다시 떨려오는 다리를 간신히 움직여 엑셀을 밟았다. 서서히 움직이는 차가 갑자기 무겁다. 그것을 느낀 순간 바로 뒤에서 바삭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 차에는 나 혼자일텐데. 엑셀에서 발을 떼는 동시에 목덜미에 머리칼이 찌르는 따가운 느낌이 들었다. 눈앞에 어른거리는 은발. 자신의 어깨를 잡는 팔. 앞으로 넘어오는 몸. 중간이 동그랗게 뚫린 셔츠. 서서히 드리워지는 그림자. 목덜미를 핥는 혀의 느낌. 이윽고 깨물어지는 느낌과 동시에 자신의 버클을 잡는 손길. 분명 죽었을텐데. 어째서, 어째서. 숨이 턱 막히고 온 몸이 힘이 들어가 뻣뻣해지자 목덜미에 숙여 키스하던 입술이 귓가로 올라온다.

" 힘 빼. 긴장하지 마."

귓가를 울리는 마성의 목소리. 순간 몸에 힘이 쫙 빠지며 나른해져왔다. 허리선을 쓸며 내려가는 익숙한 손길. 싫어, 하고 웅얼거리자 응응 알았어, 하고 자신을 달래는 목소리가 무섭다. 왜 아직 살아있는거야. 언제까지 나를 따라다닐꺼야. 내가 처음부터 너를 처리하기 위해 다가간게 그렇게 원한이었나. 수십번, 수백번을 죽여도 자신을 쫓아다니며 괴롭히는 너. 점점 달아오르는 몸에 저항하려 고개를 저었다.

제발, 그만해.

피해망상 Part 3.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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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리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