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17. 23:30

혜나에게 혹사당한 후 마왕님께 선물 하나를 전해달라는 혜나의 부탁아닌 명령에 성까지 온 것이 방금전의 일이었다. 조금 귀찮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그래도 혜나가 부탁이라고 쓰고 명령이라고 읽는 것을 해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마왕님을 뵈러 왔것만, 옥좌에는 그가 있지 않았다. 분명 경비원에게 안에 계신다는 말을 듣고 들어왔는데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잠시 고개를 갸웃, 한 데일은 그의 행방을 찾기 위해 성 안을 조금 돌아다녔지만, 넓디 넓은 성을 제 안방마냥 쏘다니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으므로 곧 포기했다. 그렇다는 말은 곧 누군가에게 그의 행방을 물어봐야 한다는 것인데 지금 데일이 서있는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돌아다니며 복도를 지키는 경비원들이 있었것만 딱 자신이 찾을 때는 없는, 타이밍도 이런 개같은 타이밍이 다 있냐고 생각하며 데일은 쯧 ! 하고 크게 혀를 찼다. 조용한 복도에서 데일의 혀차는 소리가 메아리쳐 울렸다. 짜증스레 금발의 머리카락 속에 손을 넣어 벅벅 긁은 데일이 멈추어져 있던 다리를 다시 움직였다. 긴 다리를 이용하여 큰 보폭으로 복도를 걷는 데일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 것은 조금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끄아아끼아가아앙겅ㄱ읗윽ㅇ아ㅏ아앍아ㅏㅏ 하는, 인간이 듣기에는 소름끼치는 비명소리가.

데일은 단 한번에 그것이 자신들의 마왕 솔로몬의 보좌관 케인의 악기소리라는 것을 눈치채었다. 걸음을 옮길수록 점점 커지는 비명소리가, 언제나 듣는 것이었기에 이젠 짜증부터 치솟았다. 자신과 같이 있을 때에도 그는 항상 좋아라고 그것을 눌러대곤 했다. 눈알모양의, 아니 진짜 눈알일지도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것을 눌러대며 밝은 표정으로 리듬을 타는 그의 얼굴이 눈에 보이는 듯 했다. 하여간 시끄럽다니깐 ! 발걸음을 재촉하여 거의 뛰다시피 복도를 질주한 데일이 마침내 소리의 근원지에 도착했고, 데일의 짜증스런 손이 케인이 들어있는 방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얇은 문 하나로 가로막힌 비명소리는 그것이 없을 때와 마찬가지로 무척이나 시끄러웠다. 케인이 그것을 산지 얼마 안됬을 무렵, 이리저리 살피며 부럽다고, 자신도 갖고싶다고 방방 뛰었던 자신을 후회하며 데일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 소리 없이 열린 문의 사이에서 눈을 감고 비명소리를 즐기며 연주를 하고 있는 케인이 보였다. 퍽이나 즐거워 보이는 모습이었다. 자신은 혜나의 심부름으로 성까지 오고 만나고자 했던 사람은 못만나고 복도에서 길까지 잃고 헤매었것만, 이 사람은 너무나도 태평하게 악기연주나 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갑자기 심통이 생긴 데일이, 자신의 쪽으로는 시선 하나 주지 않는 케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절대, 자신에게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는 케인님이 보기 싫어서는 아니었다.

" 아 케인님 기타 좀 그만 눌러요. 시끄럽네 증말 !"

" 내가 뭘 하던 무슨 상관이야. 왜 왔는데?"

빽 하고 소리를 지르자 깜짝 놀라 움찔, 하고 멈추어버린 손을 잠시 내려다본 케인이 곧 데일의 쪽으로 눈을 흘기며 입을 열었다. 곧 펑, 소리를 내며 사라진 기타를 들고 있던 두 손을 맞부딛치며 탈탈 턴 케인이 앉아있던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마왕님과 같이 있었던 것인지 케인은 정장차림이었다. 곧 데일쪽으로 일으킨 몸을 돌린 케인이 한쪽 다리로 삐딱하게 서서 그를 바라보자, 데일은 괜시리 입술을 삐죽이며 자신이 들고 있던 쇼핑백을 그에게 내밀었다. 혜나가 마왕님께 가져다 달래요. 마왕님께서 어디 계신지 안보여서…. 하고 작게 웅얼거린 그에게서 그것을 받아든 케인이 안을 들여다보곤 ㅇㅇ, 하고 대답했다. 시선을 약간 위로 올리자 바로 그와 시선이 마주쳐버려서, 자신보다 아주 조금 더 키가 큰 그에게서 조금이라도 눈을 피하기 위해 옆으로 눈을 돌린 데일이 멋쩍은 듯이 뒷통수를 조금 긁었다. 아무런 생

각 없이 이곳으로 오긴 했지만 지금의 그는 어색했다.

어제, 그와 맞닿았던 입술이 계속 해서 생각이 났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어제는 일요일이었고,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케인은 그의 여친과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 어느 연인들이 그렇듯, 아무리 악마라고 해도 그들의 데이트 코스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밤에는 다시 마왕님께 돌아가 봐야 하기 때문에 달이 뜰 저녁 무렵 끝낸 데이트의 마지막은 공원이었다. 사귄지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손을 잡고 있으면 떨렸고 헤어질 때가 되면 아쉬웠다. 언제나의 아쉬움을 남긴 채 잡고 있던 손을 놓은 케인이 먼저 가보겠다는 여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쉬움에 온기가 떨어져나간 손을 주억거렸고, 성으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리자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데일이 있었다. 데일은 그들의 데이트 장면을 보게 된 것이 민망한 듯 했고, 물론 여친이 없는 그에게는 이런 따뜻한 광경이 민망할 것임이 당연했다. 뭘 보냐, 하며 자연스레 지나치려는 케인의 옷자락을 잡은 것은 데일이었고, 그런 그를 받아주며 한숨을 내쉰것인 케인이었다. 날이 저물어 가고 있음에 사람..이 아닌 악마 없는 공원에서 잠시 같이 걷던 그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멈추어 섰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시선을 마주했고, 그리고….

-까지 떠올린 데일이 깜짝 놀라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대로 집에 와서도 계속 그 광경이 생각났다. 자고 일어나면 없어질 줄 알았지만 그럼에도 기억이 남아 있었고, 혜나에게 불려 일을 나갔다 와도 기억이 났다. 성에 올 때에도 혹시나 마주칠까 두근거렸고, 직접 여기로 찾아올 때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를 대하리라 마음을 먹었었다. 그러나 이렇게 시선을 마주치는 것 만으로도 어젯밤의 일이 떠올라서 미칠 것 같았다. 어쩌지, 하고 있는 데일의 시야 앞에서 무언가가 흔들렸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데일이 깜짝 놀라 흐릿한 시야 앞에서 흔들리고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고, 그것이 케인의 손바닥 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 뭘 그렇게 멍때리고 있어? 먹을래?"

" …네 ?"

케인은 곧 데일이 전해 주었던 쇼핑백의 안에서 무언가 하나를 꺼내서 그에게 쥐어주었다. 마왕님께서 좋아하시는 건데, 하나 둘 쯤 빼먹어도 모르실꺼야, 하고 케인의 설명이 변명하듯 뒤따라왔다. 자신의 손바닥에 들려있는 것은 초코파이, 라고 쓰여진 과자 봉투였다. 처음 보는 과자였기에 데일은 곧 그것을 뜯어 입에 물었고, 그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케인도 봉투를 뜯었다. 안에 들어있는 시꺼만 과자는 달달했

고, 부드러웠다. 맛있네, 하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케인쪽에서 들려왔다.

" 저, 케인님?"

" 어, 왜 ?"

" …아니에요."

물어보고 싶은건 많았다. 왜 키스를 했는지, 그리고 받아주었는지. 자신과의 관계는 무엇인지.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되물어오는 케인에게 괜히 어제 일을 꺼내고 싶지 않았기에 데일은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냥 신경만 쓰지 않으면 아무래도 좋은거잖아 ? 하는 생각이 머릿 속을 점령했기에 조금 찜찜했지만 그냥 마음 속에 묻어두기로 했다. 곧 빠른 속도로 과자를 해치운 데일이 쓰레기를 대충 구겨 케인의 방구석에 있는 쓰레기통에 골인시킨 후, 거의 다 먹어가는 케인을 향해 입을 열어 이만 갈께요, 했다. 아, 잠깐만. 하고 자신을 잡아오는 목소리가 망설임을 가득 안고 있었다.

" …넌 아무렇지도 않은거냐 ? 어제 일."

어,

케인님도 신경 쓰고 계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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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리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