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17. 23:38

방과후, 여느날처럼 나츠메가 친구들과 함께 하교하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항상 있는 일은 아니지만 가끔 이럴 때 요괴들의 습격같은게 있었기에, 대낮부터 낮술을 마시겠다며 팽하고 가버린 냥코선생이 조금 원망스럽기도 했다. 뭐가 수호자냐구, 뭐가. 작게 투정한 나츠메의 시선 구석에, 무언가 까만 형상이 잡힌것은 순식간이었다. 재빨리 시선을 돌린 나츠메에게 보인것은 한 새까만 남자였다. 그리고 그에게 붙어있는 것은 한눈에 보기에도 절대 좋지않은 '무언가'. 멍하게 그것을 보고있자 옆에서 들려오는 친구들의 소리에(어이, 나츠메. 뭘 보고 있는거야?) 나츠메는 그냥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 남자가 신경쓰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남자가 사람이라는 보장도 없었고, 무엇보다 또 만날 것 같았기에 친구들 사이에 다사 섞일 수 있었다. -물론, 미련은 남았는지 몇번 힐끗힐끗 남자가 간 쪽을 바라봤지만.

그리고, 나츠메의 예감은 맞았다. 나츠메가 친구들과 헤어져 집을 향해 발을 옮긴 순간 안녕, 하고 그 남자가 말을 걸어온 것이었다. 너무나도 자연스레 걸려온 말에 나츠메는 두어번 눈을 깜박이며 인사를 했다. 누가 봤다면 몇년만에 만난 친척사이나 이웃사이, 정도로 해석했으리라. 그정도로 친근하게 다가온 남자의 뒤에는 여전히 새까맣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것들이 있어서, 나츠메는 저도 모르게 남자보다는 그것들에게 시선을 주고 있었다.



" 내 뒤에 뭔가가 있니?"



남자가 그렇게 말했기에 나츠메는 부랴부랴 아니라며 손을 내젓고 남자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았다. 새까만 머리와 하얀 얼굴, 새빨간 눈이 무척이나 잘 어울려져있는 예쁜 얼굴. 남자에게 예쁘다, 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겠지만 나토리 씨와는 조금 다른 의미로 잘생긴, 그런 남자였다. 처음 본 사람에게 잠시 얘기가 하고 싶다는 수상한 말을 꺼내는 남자를 순순히 따라간 것은, 그 남자 뒤의 까만 무언가 때문이 아니라 자신을 향해 살짝 웃어보인 얼굴이 무척이나 매력적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고 나츠메는 생각했다.

남자는 자신을 나쿠라 라고 말했다. 나츠메가 자신의 이름을 밝힌 후로부터는 나쿠라의 말을 한참을 들어주느라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풀밭에서, 자신의 옆에 앉아있던 나쿠라 씨는 도쿄에서 왔다고 했다. 나쿠라 씨의 얘기는 솔직히 재미있었고, '말을 잘한다' 는 감상을 떠오르게 했다. 특이하게도 목소리가 자신과 아주 비슷하여, 자신이 어른이 되면 이렇게 될까, 하는 감상마저 불러일으켰다.


" 나쿠라 씨의 뒤에, 무언가가 잔뜩 있어요."


나츠메의 말은 바람에 실려나오듯 아주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소리에 나츠메는 재빨리 입을 막았다. 어쩌지? 나쿠라 씨가 이상하게 볼지도 몰라. 응? 하고 되묻는 나쿠라의 말에 어버버하며 나츠메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변명을 늘어놓았고, 자신을 바라보는 붉은 눈동자에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그냥 입을 다물면 이상하게 생각하고 말아버리겠지, 라는 생각으로. 제풀에 지쳐 고개를 푹 숙여버린 나츠메를 바라보던 나쿠라는 작게 웃더니 입을 열었다.


" 너, 요괴같은게 보이지?"

" ..네?"

" 나츠메 타카시. 사실 널 만나려 이곳까지 왔어. 요괴를 보는 소년, 이라고 하길래 설마 싶었는데 진짜로 있었다니. …무언가 있다고 했지? 사실 여기 들어왔을 때 어떤 스님 한 분을 봤는데, 그 사람도 똑같은 말을 하더라구. 검은 무언가라…. 원한, 같은게 아니려나? 난 인간을 매우 좋아하지만 그렇기에 인간의 다양한 면을 보고싶었고, 지금 하고 있는 일로 인간의 원한을 잔뜩 사고 있거든. 뭐, 그 점까지 인간은 사랑스러운 거지만…. 내 이름은 오리하라 이자야. 잘 부탁해, 나츠메 타카시 군."


여전히, 나쿠라의 말은 나츠메가 끼어들 틈이 없이 흘러나왔다. 너무나도 많은 말들이 쏟아져 나왔기에 나츠메는 어안이 벙벙하여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고, 그런 나츠메의 앞에 가볍게 일어선 나쿠라- 가 아닌 이자야, 라는 남자는 나츠메에게 손을 내밀었다. 잡으라는 듯이 동그랗게 말려있었기에 나츠메는 단순하게 그것을 잡았고, 이자야는 그를 일으켰다. 나츠메가 엉덩이부근에 뭍은 풀을 털 동안 이자야는 그럼, 다음에 봐. 하는 짧은 인사를 남기고 미련없이 발걸음을 돌려버렸기에, 나츠메는 목소리를 높히기로 했다.


" -계속 그것을 키울 생각이세요!?"


잠시 눈을 동그랗게 뜬 남자의 입술이 예쁘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남자는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며 아무런 말 없이 가버렸다. 나츠메는 그 뒷모습을 멍하게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 네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너무 신경쓸 필요는 없다, 나츠메. 저 남자는 그냥 저대로가 좋은 것이겠지. 인간이 좋다는 말은 이해할 수 없다만." 하고, 어느새 나타난 냥코선생이 그렇게 말했지만, 나츠메는 다음에 봐, 하는 이자야의 인사를 잊을 수 없었다. 신기한 사람이라, 다시 한 번 만나고 싶다고, 그때까지 저 남자 뒤의 '원한'이 더 이상 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Posted by 하리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