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18. 23:26

미도리마 신타로는 손바닥에서 저릿하게 올라오는 고통을 차마 견딜수가 없었다. 멀쩡히 자고있던 자신을 발로 깨우고 손바닥에 칼을 꽂아넣은 장본인인 타카오에게 '왜'냐고 물을 수도 없을만큼, 악 소리 하나 나오지 않을만큼의 고통이 남아있던 잠기운마저 물리치고 온 몸의 끝까지 흐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안경이 없어 흐릿한 눈 앞에 조금 더 흐릿해진 것은 갑자기 느껴진 엄청난 고통에 의해 생긴 눈물이 눈에 왈칵 차올랐기 때문이리라. 그 증거로 몸을 동그랗게 웅크린 미도리마의 이마가 닿는 바닥 앞에 동그란 무늬가 방울방울 생겨났다. 욱씬거리는 오른손을 향하려는 왼손은 벽에 묶여있는수갑에 의해 막히어져 챙강거리는 철의 마찰음만 내놓을 뿐이었다. 옅게 흘러나오는 신음소리 사이로 멀쩡한 목소리 하나가 비집고 들어왔다.

" 신쨩."

무엇에 그렇게 흥분한 것인지 잔뜩 심호흡을 하던 타카오가 마음을 가다듬고 처음으로 뱉은 말이었다. 타카오의 날카로운 눈빛이 자신이 내리꽂은 이의 시선과 마주칠때마다 미도리마의 어깨가 흠칫 떨려왔다. 잔뜩 화나있는 타카오를 보고있자니 전에 타카오에게 당한 손가락과 발목이 욱씬거려 미도리마는 차마 그와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눈을 계속 피하고 있자니 그것 또한 그를 화나게 할 것이 분명하기에 미도리마로써는 미칠 노릇이었다. 어떻게든 그가 화난 이유를 알아내어 비위를 맞춰야 오른손의 고통이라도 덜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게 그것 뿐이고, 그렇게 단정짓고있는 자신을 생각하고 있으면 자존심이 상해 죽을 노릇이었지만, 그것을 생각하기에 미도리마는 이미 지쳐있었다.

같은 남자에게 세어보기도 지친 시간동안 감금당해있었다. 그동안 타카오를 제외한 사람은 보지도 못했다. 수백번의 감정을 강요하는 소리를 들었고 몇 번인지도 모를 키스도 당했다. 밥을 제 손을 먹지 못하는 것은 예삿일이었고, 심지어 자기손으로 씻는 것 조차 허락되지 않는 날도있었다. 빠져나가려고 노력하지 않았던것도 아니었다. 구조요청을 시도하다 손가락이 부러졌다. 탈출을 시도했단 이유로 몇일동아 홀로 지하실에 갇혀 소중히 여기던 손톱이 부러지고 손 끝의 지문이 닳아 피가 나도록 문을 긁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도록 발목의 힘줄을 강제로 끊겼다. 이런 생활을 하는동안 미도리마는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져버리고 말았던 것이었다. 얌전히만 있으면 그는 화내지 않았다. 화내지 않는 그의 얼굴은 언젠가 슈토쿠에서 함께 농구하던 그것과 같아서 미도리마는 그것만을 보기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렇기에, 갑자기 다가온 그의 돌변에 미도리마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 오늘, 쿠로코를 만났어. 세이린의 보이지 않는 패스주자말이야."

상황은 이랬다.

미도리마에게 요리를 해주기 위해 시장에 다녀오던 타카오가 뒤에서 쫓아오던 쿠로코를 발견했던 것이었다. 사실, 쿠로코가 마트에 들어설 때 부터 보였기에 처음엔 내버려두기로 했지만, 자신을 발견하곤 말을 걸기 위해 따라오는 것을 사람 많고 복잡한 마트라는 특성을 이용해 교묘히 따돌리고 나왔지만, 역시나 미도리마가 신경쓰던 인물이니만큼 금방 자신을 찾았던 것이었다. 걸음을 약간 빠르게 하여 코너를 돌아 기대어 선 후, 자신을 쫓아 코너를 돌려는 쿠로코를 한숨에 잡은 타카오가 쫓아온 이유를 물었고, 잠시 놀라하던 쿠로코가 금방 평소의 표정으로 조용히 입을 열었다.

쿠로코는, 타카오가 미도리마에게 한 짓을 알고 있다고 했다.-확신은 아닌 듯 했다- 무슨 말이냐고 묻고, 쿠로코의 근거를 다 들을때까지 타카오는 아무런 변화도 없어보였다. 자신의 표정을 살피려는듯 시선을 곧게 하고 말을 이어가는 쿠로코에게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일관하고, 등을 돌린 후부터 타카오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까지 알아낸 쿠로코에 대한것도, 끝까지 숨긴 자신에 대한것도 아니었다.

'미도리마에게 관심을 가진' 쿠로코에 대한 분노.

자신 외의 사람이 미도리마에게 관심을 갖는다는 행위가 이렇게 화가 나게 만들줄은 자신도 예상을 못하고 있었다. 미도리마를 감금한 이후부터 미도리마의 모든것은 오롯이 자신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몇 번이고 탈출을 시도하던 미도리마가 결국 포기한 이후부터, 지하실에 들어설때마다 눈이 잘 보이지 않을터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자신만을 응시하고 있는 눈을 볼 때에는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자신이 없으면 미도리마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것을 새삼 깨우칠때마다 전율이 흐르는 것 같았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염원해오던 일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타카오는 미도리마를 손에 넣었다고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미도리마를 가졌다는 이유로 남들의 미도리마에 대한 생각까지 없애지는 못했다. 이 세상에 남아있는 모든 미도리마의 흔적들을 모조리 도려내버리고 싶었지만, 그것은 불가능했다. 애써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것만 새삼스레 깨닫게 된 것이었다. 뒷통수를 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으리라. 그리고 그것은 미도리마를 본 순간 폭발했다. 그뿐이었다.

" 신쨩은 그런 녀석 생각하지 않을꺼지? 신쨩의 머리 속에는 나만 있으면 되는거잖아."

" ……으, 큭…!"

말을 할 때마다 손에 힘이 들어감에따라 조금씩 파고드는 날에 미도리마가 이를 악물었다. 찔리지 않은 다른 손이 마치 같이 찔리고 있는듯 움찔거렸고, 그 움직임에 따라 철컹거리는 수갑의 마찰음이 공기를 갈랐다. 으드득, 하고 이가 갈리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타카오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후-하. 타카오가 크게 숨을 고르자 미도리마도 겨우 막혔던 숨을 토해놓았다. 숨을 쉴 때마다 욱씬거리며 상처가 아파왔다. 아, 아파, 아프단…거다, 타카오…. 덜덜 떨리는 입술을 간신히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유난히 긴 속눈썹은 이미 잔뜩 젖어있었다. 그것을 본 타카오는 고개를 숙여 미도리마의 눈 위를 핥았다. 익숙해진듯 감겨오는 눈끝에 닿은 혀에는 짠맛이 맴돌았다.

" 잘했어, 신쨩."

미도리마는 나긋하게 칭찬을 담고 울려오는 목소리에 안심하는 자신에 대해 입술을 깨물었다. 타카오는 금새 몸을 일으켜 방 구석에 있는 응급상자를 가져왔다. 그는 애초에 자신을 치료해줄 목적으로 찌른다. 그 없이는 치료받지 못하는 자신과 오직 미도리마를 치료해줄 수 있는 타카오 자신. 그리고 그 행위 때문에 몸을 성하게 움직일 수 없는 미도리마의 필요에 따른 결과에 만족하는듯 했다.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은 하기만해도 피곤했다. 애초에 그가 정상이었다면 자신이 이렇게 묶여있을 일 따위는 없었을것이다. 인사를 다하자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정작 이렇게 묶여있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3년 넘게 해온 농구도, 슛연습도 없었다. 묶이기 전까지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은 아예 다른사람인 것 같았다.

" 신쨩, 손 줘봐. 치료해줄께. 많이 아팠지?"

-하는 타카오의 목소리는 꽤나 즐거워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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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리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