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18. 23:25

" 의사 선생님! 어디가세요?"


밝게 울리는 작은 여자아이의 목소리에 옆으로 지나가던 사내의 발걸음이 멈췄다. 의사선생님이라 불린 만큼 새하얀 가운을 입고 있던 이 작은 시골 마을의 의사- 아카시 세이쥬로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동그란 눈을 깜박거리며 물어오는 그녀의 주위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 또한 꺄르르거리며 아카시에게 몰려들었다. 화창한 낮에 놀 것이 없는 이런 시골 마을의 어린 아이들이 밖에서 뛰어 노는 것은 당연했다. 모래로 잔뜩 헝크러진 소녀의 머리 위에 아카시의 손이 올려짐으로 손목에 걸려있던 검은색 비닐봉투가 바스락거렸다. 궁금증을 가득 담은 눈으로 안을 들여다보던 소년소녀들의 입에서 사과! 배추!- 하는 그 안에 들어있던 물품들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 먹이주러."


선생님께서 기르시는 애완동물이요? 저희도 보고싶은데. 언제 보여주시는 거에요? 고양이? 강아지? 사자일지도 몰라!- 하는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목소리를 잠자코 듣고있던 아카시가 좀 잠잠할 즈음이 되어서야 소녀의 머리에서 손을 치우며 살짝 굽혔던 몸을 일으켰다. 다음에 보여줄께. 하고 아카시는 멈췄던 발거름을 다시 옮겼다. 아이들도 별 다른 말 없이 보내주는 것을 보면 이러한 일이 한 두번 있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것도, 항상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아이들이 작은 시골 마을에 딱 한 분 계시는 의사선생님께 달라붙는 것도, 그들을 적당히 상대하는것도, 적당한 먹을거리들을 사들고 애완동물을 보러가는 것 또한 말이다. 아카시는 익숙한 발걸음으로 마을 한 쪽에 있는 사당으로 향했다. 이 시간쯤 되면 그 곳에는 한발 먼저 와있는 애완동물이 있었다. 아카시가 사당을 찾아가는 시간은 매번 달랐지만 그쪽에서 먼저 와있는 것은 항상 같았다. 사당이 다다라감에 따라 작은 계단에 앉아있는 사람이 한 명 보였다. 아카시는 그를 '미도리마'라고 불렀다. 난 머리가 붉어서 아카시니까, 넌 미도리마. 하는 가벼운 이유로 붙여준 이름이었다. 그가 직접 이름을 붙여줘야만 하는 이유는, 그가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통칭 '요괴'라고 불리는 종으로써, 사람으로 변신을 하면 보통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왜 자신에게는 보이는지 물어봤지만 다른 요괴들은 전혀 보이지 않는데 굳이 미도리마만 눈에 보이는 이유를 그라고 해서 알 수는 없었기에 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미도리마가 처음으로 아카시의 눈 앞에 나타난 것은 약 10년 전 일이었다. 학교에서 집으로 향하던 아카시가 숲속 구석에 버려져있던 여우 한 마리를 주운 것이 그 화근이었다. 쓰러져 있던 여우를 주운 것이기 때문에 부모님과 함께 병원에 데려가고, 먹을 것을 가져다 주고 하며 기르기를 한 달. 학교를 다녀온 아카시의 눈 앞에는 여우에게 덮어주었던 이불을 머리 위에 올리고 있던 어린아이 한 명이 있었다. 자신이 그 여우라고 설명하는 아이의 말은 머리에 달려있던 귀를 보면 설득력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사람으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부모님께 숨겨가며 대학에 합격하기 전까지, 여우를 키운다는 명목으로 미도리마와 아카시는 한 방에서 지냈고, 아카시가 도쿄에 있는 대학에 합격하고 헤어지게 됐지만, 아카시는 의사가 되어 돌아왔다. 여우 요괴라 그런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가는 미도리마는 처음엔 아이었지만, 어느새 자신과 비슷한 나이대로 커 있었다. 자신의 반도 오지 않던 키도 훌쩍 커버려서, 아카시는 미도리마가 일어서면 굳이 자리에 앉히곤 했다.


" 잘 있었어?"


아카시의 입술은 약간의 미소를 띄고 있었다. 미도리마는 아카시가 앉아있는 자신을 내려다보며 내미는 무언가가 잔뜩 들어있는 봉투를 잠자코 받아들여, 사과 하나를 꺼내어 아카시에게 건낸 미도리마가 양배추 한 잎을 물었다.


" 이틀 전에도 봤다는 것이다."

여우인 만큼 사람의 말에는 어색하던 미도리마는 다른 사람들의 어깨너머로 배운 탓인지 약간 특이한 일본어를 구사했다. 말투가 보통사람들과는 다르게 차가운 것도 그 영향인듯 했다. 물론, 그의 성격을 대변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아카시와의 만남에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눈에 띄게 쫑긋거리는 귀가 미도리마의 반가운 심정을 말해주고 있었기에. 옛날부터, 거짓말을 못 하는 사내였다. 미도리마 자신은 모르고 있는 것 같았지만 말이다. 미도리마가 들고 있던 사과 한 입을 깨문 아카시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어서, 아카시가 할 말 있어? 하고 물었고, 입을 다물고 있던 미도리마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 …왜 이 곳으로 왔냐는 것이야."


" 뭐?"


" 도쿄엔 더 좋은 병원이 있다고 마을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들었다. 왜 굳이 이쪽으로 온 것이냐는거지. 네가 공부를 잘했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미도리마의 목소리는 한껏 진지해져 있었다. 자신을 바라봐오는 미도리마를 흘끗 바라본 아카시가 미도리마의 옆에 앉으며 다시 사과를 입에 물었다. 아삭아삭 베어무는 소리가 조용한 사당에서 울렸다. 아카시가 사과를 반 이상 먹을 때 까지 미도리마는 아무런 말없이 조용히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 …장기, 두고싶어서."


" ……하?"


" 너 혼자선 심심할테니까 말이야."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하는 미도리마의 입술에 아카시가 먹고 있던 사과가 들이밀어졌다. 사과에 의해 막혀서 반쯤 열린 입과 함께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미도리마의 입술에 사과가 꾹꾹 눌러져 미도리마는 하는 수 없이 그것을 받아먹었다. 아삭아삭 씹어먹는 미도리마를 바라보던 아카시의 입술이 예쁜 호를 그렸다.


이런, 이유야. 미도리마.


…역시 모르겠다는 것이야.

 

Posted by 하리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