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8. 12. 03:02

-사카타 긴토키x키르아=조르딕

 

 

 

 키르아는 지금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았다. 몸에 딱 달라붙는 수트덕분에 움직이기도 불편하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고, 두 번째는 자신이 어린아이라는 점과 귀여운 외모(?) 때문에 눈에 아주 많이 띄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두 이유를 다 씹어버릴 정도로 큰 원인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의 옆에 서있는 한 명의 남자. 분명, 사카타 긴토키라고 했었다. 자신과 똑같은 은발에 곱슬머리를 하고는 온 몸의 기력을 쭉 빨아먹을 것 같이 힘빠진 눈동자를 하고 있는 남자인데, 처음 만날 때 부터 빙글빙글 웃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자신의 옆에 딱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조차 않는 것이 아닌가! 키르아는 지금이라도 자신이 이 곳에 온 목적을 달성하고 이 장소를 떠나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너도, 저 남자를 죽이러 온거지? 긴토키라는 사내가 제일 처음 자신에게 한 말이었다. 키르아가 심장이 발 끝까지 떨어진 것 같은 느낌으로 그 사내를 쳐다보자 곤란한 듯이 웃어보이던 남자는 자신의 옆으로 한 발자국 더 다가오더니 소란을 피우고 싶지 않으면 얌전히 있으라고 조용히 속삭였다. 정곡을 찔린 느낌에 키르아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그의 말마따나 자신은 아버지에게로부터 임무를 받고 정치계에 큰 영향력을 가진 사내 하나를 죽이러 와있었다. 집안에 자신을 과시하고 싶었기에 일부러 날짜를 큰 행사가 있는 날로 잡고, 그 곳에 잠입했다. 자연스럽게 파티에 녹아들어 암살의 상대를 생각하며, 그가 혼자 남았을 때 순식간에 해치우고 유유히 자리를 떠날 생각이었것만, 그런 생각을 하며 그를 흘끗 바라본 순간 옆에서 목소리가 끼어든 것이었다.

 

살기가 새었나? 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하지만 자신이 고작 살기 하나 숨기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는 일을 생기게 할리가 없었다. 만약에 새었다고 하더라도 아무도 눈치 못 챌 만큼의 미세한 것이었을 텐데, 의뢰의 대상자를 한 번 흘끗 본 것만으로도 자신의 생각을 눈치채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을리가 없었다. 그 남자의 경비원이라도 되는 것일까 싶어서 한 발자국 물러서며 인상을 썼다. 경비원은 커녕 지나가던 아저씨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태평하게 생겼으면서! 혹시나 그렇다면 당장 이 남자부터 죽이는 것이 맞았다. 키르아가 손 끝의 근육에 힘을 가하며 긴토키를 노려보자, 긴토키는 다시 한 번 곤란하다는 듯이 웃었다. 그런거 아니야, 꼬맹아.

 

 

" 나도 너와 같은 목적이라고. 그렇게 경계할 필요 없어."

 

 

 정말로 결백하다는 것을 증명할 심산인지 긴토키라는 남자는 아무것도 들지 않은 두 손을 곱게 펴서 들어보였다. 전혀 신뢰가 가지 않는 말에 키르아는 인상을 조금 더 썼다. 키르아의 주변을 감싸고 있는 공기가 조금씩 굳어갔다. 온 몸을 짜릿짜릿하게 찌르는 듯 한 느낌에 긴토키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키르아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날카롭게 신경을 곤두세우며 손가락의 뼈를 뚜둑거리며 공격하기 쉽게 변형시키고 있던 키르아를, 확실하게는 그런 키르아의 손을 긴토키가 잡아챈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잔뜩 긴장하고 있던 터라 긴토키에게서 조그마한 움직임이라도 있었다면 바로 어떠한 대처를 했을 텐데,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키르아는 손을 붙잡히고도 자신이 지금 어떠한 상태인지 알아채지 못했다.

 

손에 가득 닿은 남자의 단단한 손바닥은 차가웠다. 어린아이인 자신이 어른보다 체온이 높더라도, 혹여 이 남자의 체온이 다른 사람들의 체온보다 낮다고 할지라도 이렇게까지 체온의 차이가 크게 날리가 없어서 손이 마주 닿자마자 키르아는 시간이 멈추어버린 것 같았다.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나서 손을 다시 빼려고 해도 단단하게 잡힌 손은 결코 빠지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반대쪽 손으로 그를 겨냥하고 빠르게 뻗었지만 그 손도 곧 잡히고 말았다. 날카로운 손톱에 닿지 않게 유연히 손을 비틀어 자신의 손목을 잡아챈 남자의 실력은 상당했다. 게다가 손목을 잡은 채로도 여유롭게 손가락을 움직여 자신의 손바닥을 꾸욱, 누르며 긴장한 근육을 풀어주는 손놀림이라니. 키르아는 온 몸으로 이 남자는 엄청난 실력자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붙잡혔다고 해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있는 힘껏 손목을 비틀며 긴토키를 노려본 키르아는, 그와 눈을 마주친 순간 온 몸이 얼어붙고 말았다. 방금까지만 해도 서글서글한 아저씨에 불과했는데, 순간 눈빛이 변하고 만 것이었다. 자신과 똑같은 은발이 이렇게 어둡게 빛날 수 있을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진하게 그늘진 얼굴 안에서 붉게 빛나고 있는 눈은 피에 굶주린 살인귀의 그것같았다. 눈빛만으로도 살해당한다. 키르아의 머리 속에 경보음이 울렸다. 이 남자는 결코 이길 수 없는 남자였다. 키르아는 눈을 빠르게 돌려 도주로를 찾았다. 이런 남자가 세상에 존재할 줄은 몰랐다. 도망가야해. 손을 빼내지 못하면 손목을 잘라서라도. 그렇지 않는다면 살해당한다! 도망가. 도망가. 도망가!

 

 

" 영-차."

 

 

 세포 하나하나를 짓누르는 압박감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맥빠지는 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 다음이었다. 순간 바뀌어져버린 눈 앞의 풍경에 키르아는 자신의 목이라도 날아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행히도 그의 목은 몸과 제대로 붙어있었다. 그저, 구석에서 홀 쪽으로 몸을 옮긴 긴토키에게 손이 붙잡혀 있었기에 그대로 따라온 것 뿐이었다. 그것을 파악하고 나자 주위에서 왈츠을 추고있는 사람들이 보였고, 그것을 쫓아오듯 부드러운 음악소리가 들렸다. 눈 앞의 남자는 음악에 맞추어 부드럽게 몸을 흔들고 있었고, 자신은 그대로 그에게 매달려 있었다. 올려다 본 남자의 눈은 아까전 그렇게 빛을 발했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만큼 힘이 빠져있었다. 사람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아서 한참을 그에게 몸을 맞기며 바라보자, 한창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던 남자가 자신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으며 입모양으로 말했다. 이런 곳에서 눈에 띄이는 짓을 하면 곤란하지 않겠어? 도련님.

 

 

 그렇게, 춤을 끝마치고 나서도 얌전히 그의 옆에 있었던 것이었다. 졌다는 느낌과 함께 불쾌함이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자신이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바로 그의 시선이 따라오고, 그의 몸 또한 따라왔기 때문에 벗어날 수가 없었다. 속으로 욕짓거리를 뱉으며 키르아는 모르는 척 암살 상대를 훔쳐보았다. 파티장에서는 여전히 부드러운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있었다. 무대 끝에 모여 바이올린이나 첼로 따위의 현을 문지르며 나오는 소리의 향연에 몸을 흔들고 있는 목표는 자신을 죽이고 싶어하는 사람이 둘 씩이나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는 듯 했다. 하긴 보통 그런 생각은 안하면서 살겠지. 키르아는 살며시 주먹을 쥐었다가 힘을 뺐다. 옆에 서있는 남자는 음악에 맞추어 고개를 끄덕이면서 주위를 둘러보며 입술을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무슨 말이라도 하나 싶어서 조용히 귀를 기울이면 춤을 추고 있는 여자들의 몸매에 대해 감탄을 하고 있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아서, 키르아는 당장이라도 이 남자의 옆을 벗어나고 싶었다. 힘이 쭉 빠지는 것 같은 썩어버린 눈에 입으로 내뱉는 말이라고는 저런 아저씨같은 말 뿐이고! 애초에 여기엔 뭐하러 온거야! 목표를 죽일 생각은 있는거냐고!

 

…그러고보니, 이 남자는 왜 저 사람을 죽이려 하는걸까. 자신과 같이 의뢰라도 받은 것일까?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 …아저씨."

 

" 하아? 긴상은 아직 아저씨라고 불릴 나이는 안됬거든!?"

 

" 아저씨. 아저씨는 왜 저 남자를 죽이려고 하는거야?"

 

 

 자기는 아저씨가 아니라고 투덜거리던 남자는 키르아의 물음에 금방 입을 다물었다. 그 호칭을 부정하는 것이 더 아저씨같다고 생각하며 낄낄 웃던 키르아는 갑자기 표정을 굳히는 남자에 의해 같이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대답을 고르는 것 같이 보이던 남자의 뒤에서, 목표가 혼자 어디론가 가는 것이 보였다. 방향을 보아하니 화장실에라도 가는 것 같았다. 이 남자의 대답을 기다리는 것 보다 모처럼 온 찬스를 잡는것이 더 중요했다. 키르아는 순식간에 온 몸의 근육에 힘을 밀어넣으며 목표를 향해 움직였다. 아니, 정확히는 움직이려 했다. 발을 움직이자마자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단단한 팔이 없었더라면 키르아는 분명 그대로 미끄러지듯이 목표를 향해 가서는 그의 심장을 정확하게 끄집어 내었을 테였다.

 

 

" -여기는 나한테 맡겨, 꼬맹아."

 

 

 잔뜩 가라앉은 남자의 목소리처럼 싸늘하게 식어버린 시선이 느껴져서 키르아는 그대로 멍하게 서있었다. 남자는 지금까지 자신이 봐온 사람과는 전혀 달랐다. 힘이라던가, 살기같은 부분에서는 자신보다 한참을 웃돌고 있다는 것은 알겠는데 평소의 모습에서는 그것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평소의 모습은 그저 한심한 아저씨일 뿐인데, 한 번 힘이 들어가면 사람이 바뀌어 버린다. 세상엔 이렇게 알기 힘든 사람도 있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보이는 것으로만 사물을 판단했던 키르아의 세상이 뒤집어지는 순간이었다. 목표를 향해 걸어가던 남자의 넓은 등이 눈 앞에서 아른거렸다.

 

 안타깝게도 남자의 암살실력은 그리 좋지 않았던 것인지 파티장은 금방 아수라장이 되었다. 당장이라도 나가고 싶어하는 파티장 안의 사람들과 그들을 진정시키려는 주최쪽의 노력으로 난리가 난 파티장 안에서, 여유롭게 긴토키는 키르아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나가자, 하며 긴토키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 죽인 건 네가 했다고 해도 괜찮아. 나는 상관없거든."

 

" 이렇게 눈에 띄는 암살이 어딨어? 당신 몰래 죽이려는 생각도 없었지? 이런건 말해봤자 욕만 먹는다구."

 

" 아아, 너는 암살자구나. 이렇게나 어린데."

 

 

 어린애 취급하지 마. 나즈막히 말하자 긴토키는 손을 들어 키르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온 몸으로 어린애 취급을 하고 있다는게 느껴져서 순간 울컥했지만 더이상 어린애 취급하지 말라고 화를 내어도 들어줄 것 같지않아서 키르아는 입을 다물었다. 주변에서는 밖으로 나가려는 사람들로 인해 시끄러웠다. 이리저리 밀쳐지는 몸뚱아리 사이로 결 좋은 키르아의 머리를 몇 번 만지작거리던 긴토키가 작게 입을 열었다. 나도 너 처럼 어린 시절이 있었지, 하고.

 

 

" 너도 만날 수 있었음 좋겠다. 단단하게 쥐고 있는 검을 놓게 만들어 줄 사람을."

 

 

 검? 무슨 검? 이해가 되지 않는 말에 키르아는 긴토키의 손을 치우고 그를 바라보았다. 대답을 원하는 키르아에게 어깨를 으쓱해보인 긴토키는 그대로 키르아를 잡고 주변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의 물결속으로 들어갔다. 사람을 죽이고 나온주제에 너무나도 자연스레 다른 사람들과 섞인 남자는 한껏 여유로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통제덕분에 긴토키와 키르아는 금방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키가 작은 덕분에 다른 사람들에게 더 많이 치여야 했던 키르아가 엉망이 되어버린 옷을 정리하고 있자 긴토키가 가려는 듯이 가볍게 몸을 돌렸다. 아직 아무런 말도 못했는데! 깜짝 놀란 키르아가 급하게 고개를 들자 얼굴만 돌린 채로 자신을 보고있던 남자와 시선을 마주쳐버려서, 키르아는 순간 부끄러워졌다. 남자는 자신보다 아주아주 컸고, 정말정말 강했으며, 어느 누구보다 자유롭고 여유로웠다.

 

 

" 왜 죽이느냐고 물어봤지?"

 

 

 키르아는 자신의 삶에 의욕이라는 것을 별로 갖고있지 않았다. 자신의 손 안에서 두근거리는 심장은 사람의 생명이라는 것을 끌어안고 있기에는 너무나도 작고 연약해서, 키르아는 생명이라는 것에 별다른 생각을 갖고있지 않았다. 다른 사람과의 접촉조차 할 수 없었던 키르아의 삶에 타인이란 죽이는 상대밖에 되지 못했기에 키르아는 자신이 왜 살고 있는 지 조차 알고있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자신보다 강한 사람은 형과 아버지밖에 없었다. 쉽게 죽어버리는 타인들과 그들을 쉽게 죽여버리는 자신. 삶은 무료했고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키르아는 빨리 어른이 되고싶었다. 누구보다, 심지어 자신의 아버지보다 강하고,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만끽할 수 있는 그런 어른이.

 

 

" 복수, 였어."

 

 

 남자의 표정은 매우 후련해보였다. 자신에게 손을 흔들며 떠나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며 키르아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저런, 어른이 되고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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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돼 키르 백수가 되면

 

졸려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겟슴다 일단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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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리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