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일은 특별한 날이었다. 타이치 씨들이 처음으로 디지털 세계에 갔을 때의 날짜라고 했다. 그들이 갔을 때 이후로 매년 돌아오는 8월 1일마다 그 때 선택받은 아이들은 모여서 그 당신의 일을 회상했고, 다이스케와 자신들이 디지털 세계로 가면서 그 멤버에 추가되었다. 처음 그들의 모임-이라고 부르면 이상하지만-에 초대되었을 때엔 내가 그 곳에 가도 되는지, 그들 사이에 껴도 괜찮은지 고민했었다. 애초에 자신이 처음 디지털 세계에 갔던 날짜는 8월 1일이 아니다. 자신에게 8월 1일은 아무런 날도 아닌 것이다.
상관없잖아. 나도 8월 1일이 아니었고, 미야코나 이오리도 마찬가지니까! 망설이고 있는 자신에게 올 것을 제안한 다이스케가 말했었다. 굳이 자신의 집까지 찾아와서 말을 해 준 다이스케는 양보할 생각이 없어보였기에 켄은 그냥 고개를 끄덕이기로 했다. 그날 밤, 자신이 정말 그들의 모임에 참가해도 되는 것인지, 자신에게 정말 그럴 자격이 있는 것인지 고민하던 켄은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웜몬을 안고 잠에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다. 아무도 타락했던 자신의 얘기를 꺼낼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자신을 생각해서 일부러 화제를 피해준 그들에게 감사함을 느끼며 그 때 처음 타이치들이 디지털 세계를 구했을 때의 얘기를 들었다. 재밌었지? 켄쨩. 집으로 돌아오는 길 품속에서 들려오는 웜몬의 물음에 켄은 더 꼭 안아주는 것으로 답했다.
그 뒤로도 8월 1일은 특별한 날이다. 초등학생, 중학생이던 선택받은 아이들이 커갈수록 서로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기에, 그 날이 매우 소중했기 때문이었다. 가뜩이나 동네도 달라 학교가 같을 수 없는 켄은 다른 아이들을 보려면 굳이 하루를 내야 했기에 더더욱 그랬다. 그렇게 만나서, 그동안 있었던 일이나 그 때의 회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마치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실, 그 때를 떠올리면 허무하고 씁쓸한 감정이 느껴지는 것이 맞았다. 은퇴한 영웅은 외로운 법이었다. 그렇게 인상적인 사건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얘기는 다들 성인이 되고 술이 들어가자 입으로 나왔다. 누가 처음 말을 꺼냈는지는 모를 만큼 취어있을 때 즈음이었다. 다들 그 얘기에는 공감하는 듯해서 켄은 괜히 동질감을 느꼈다.
“ 켄은 싸움이 좋은 거야?”
켄은 그나마 덜 취한 쪽에 속했기에 많이 마신 다이스케와, 술에 약한 죠가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해 택시에 태워 보내고, 머리 좀 식힐 겸 산책을 하고 있을 즈음이었다. 일부러 가지고 나온 커다란 가방 속에 숨어있던-날이 어두웠기에 반쯤 열어두고 있었다- 웜몬이 한참을 뜸들이더니 처음으로 꺼낸 말이었다. 아마 아까 나온 주제를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차마 다들 공감하던 와중에 물어볼 수는 없고, 그럼에도 궁금증을 참을 수 없어서 결국 자신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본 것이리라. 여름의 밤 치고는 꽤나 시원한 바람이 뜨거워진 얼굴을 식혔다. 속에서 잠들어있던 뜨거운 숨을 푸하, 하고 내어놓자 썩 좋아하지 않는 알코올의 맛이 느껴졌다. 웜몬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켄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켄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많이 마신 것 같지는 않았지만 위장에서 알코올의 맛이 식도를 타고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 아니이-. 그건 아니야.”
취해서인지 목소리가 조금 늘어져서 나왔다. 그게 아니라, 나와 다이스케들은 세상을 구한 거잖아. 그치? 다들 정말 노력했었지. 그러니까 그리운 거야. 머리가 어지러웠기 때문에 대답할 말은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다. 아마 웜몬은 횡설수설하는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을 거라고 제대로 생각했지만, 입에서는 아무렇게나 짝지어진 말들이 튀어나왔다. 어렸을 때의 나는 세상을 구했단 말이야.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근데 지금의 나는 평범한 대학생에 불과하잖아. 그게 기분을 이상하게 만든다는 말이야. 전에는 자주 만났던 다이스케도, 타케루도, 히카리도, …미야코 씨도, 이오리도 제대로 못 만나고…. 그리고…….
하아…, 내가 뭐라고 하려 했더라…….
“ 그 때로 돌아가고 싶은 거야?
한참을 할 말을 찾지 못하며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자 웜몬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어왔다. 비틀거리는 몸을 간신히 가누고 바르게 섰다. 여름 밤하늘에 하얀 구름이 달빛을 받아 빛났다. 아니, 그런 건 아니야. 머리가 어지러운 와중에서도 이것만큼은 대답이 확실하게 나왔다. 방황하고 확신이 없던 시절의 기억은 썩 좋지 못했다. 데빌몬의 영향으로 어두운 곳에 트라우마를 가지게 되어서, 밤에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일 때면 여김 없이 안 좋은 쪽으로 생각이 튀었다.
동료가 되자며 끌어들이는 다른 선택받은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은 예삿일이었고, 그동안 해온 일에 대해 생각을 할 때면 꿈에서조차 쉴 수 없었다. 닿을 수 없는 곳에서 디지몬들을 멋대로 학대하는 삐뚤어진 자신을 보며 울부짖는 꿈을 대체 몇 번이나 꿨는지 세기조차 지쳤다. 그 때의 자신은 하루하루가 고통이었다. 차라리 다른 선택받은 아이들이 자신의 얼굴에 대고 욕을 해주기를 바랐다. 그렇게 해서라도 죄책감을 덜어내고 싶었다.
만약에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아주아주 옛날이 좋았다. 천재가 아닌 채로 중학교에 입학하여 밤을 새워가며 공부를 하던 때보다 전으로, 다이스케와 죠그레스를 하면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평화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때보다 전으로, 디지몬 카이져가 되어 디지몬들을 그저 게임의 몬스터정도로만 생각하며 학대하던 시절보다 전으로. 이왕이면 형이 사고를 당하기 전으로 말이다. 만약에 그렇다면 자신은 형이 죽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형은 아직 살아있을 것이고, 자신이 카이져가 될 일은 없을 것이고, 디지바이스를 가지고 있었으니 웜몬과도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꼭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건 아니야. 물론 디지몬 카이져가 되었을 때의 일은 다시 떠올리기도 싫을 만큼 지워버리고 싶은 과거지만, 그래도 덕분에 다이스케들과도 만났고 웜몬과 다시 만나면서 눈물도 흘릴 수 있었던 것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타락했던 자신의 처음부터 끝까지 옆에 있어주었던 웜몬과의 기억을 굳이 리셋하고 싶진 않았다. 그러니까, 형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이대로도 좋은 것이다.
“ …그냥 생각이 난다는 거지. 과거의 영광이 그리울 때가 있기도 한 거야.”
웜몬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어서 켄은 그를 끌어안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어렸을 때의 자신에게는 웜몬이 약간 커서, 안고 다니기에는 살짝 벅찬 느낌이 없잖아 있었것만 이제는 끌어안아도 공간이 조금 남았다. 술기운으로 열기가 오르는 몸에 시원한 웜몬의 피부가 닿으니 기분이 좋았다.
난 켄과 함께 있을 수 있으면 좋아. 자신이 대답하기를 곤란해 한다는 것을 눈치 챘는지 웜몬이 말을 살짝 돌렸다. 웜몬은 굳이 자신이 하고 싶지 않아하는 말이나 곤란해 하는 말에 집착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자신이 다이스케들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을 때에도 어른스럽게 위로하며 기다려준 것도 웜몬이었다. 이런 사소한 것에서 어른스럽구나, 하는 것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 나도 웜몬이 좋아.”
오늘은 걸어서 집에 갈까? 정신도 차릴 겸. 안겨있는 웜몬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느껴져서 켄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숨을 쉴 때마다 나는 알코올 냄새가 밤공기에 섞여 들어갔다.
오늘은 집에 가면, 어쩐지 형의 사진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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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된 선택받은 아이들] 이라는 주제의 디지몬 합작에 이치죠우지 켄으로 참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