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1. 11. 01:32

- ts 주의 백합 주의~









 짹짹, 하고 창문 너머에서 울리는 새소리에 몸을 뒤척이자 옆에서 자고 있던 사람과 몸이 닿았다. 어제 켄이 놀러왔었지. 슬금슬금 생각나는 기억에 다이스케는 고개를 완전히 켄의 쪽으로 돌려 누웠다. 살며시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켄의 잠든 얼굴이 예뻤다. 살며시 감겨진 눈과 앙다문 얇은 입술, 새근새근, 하는 아기 같은 소리가 날 것 같은 작은 숨소리까지, 찬찬히 뜯어볼수록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는 그녀의 모습에 다이스케는 손님용 이불에서 자겠다는 그녀를 굳이 함께 자자며 자신의 옆에 눕히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곤란해 보이는 표정을 하고, 할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포옥 내쉬며 승낙 하던 그녀가 자신에게 약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친절함을 자신이 이용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곤란해 보이는 그녀의 얼굴은 좋아하는 것 중 하나였으므로 어쩔 수 없었다.


 천천히 자고 있는 그녀의 이리저리 흩어져있는 얇은 머리칼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린 다이스케에게 보인 것은 알람이 꺼져있는 탁장시계였다. 8시를 가리키는 시계를 바라보며 눈을 깜빡거린 다이스케가 베게에 얼굴을 조금 묻었다. 금방이라도 감길 것 같은 눈을 끔뻑거리며 멍하게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굴리던 다이스케가, 갑자기 스쳐지나간 오늘이 평일이라는 사실에 벌떡 몸을 일으켰다. 지각이다! 빽 소리를 지르자 자고 있던 켄도 깜짝 놀라 몸을 획 뒤집어 시계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꺄아, 하는 짧은 비명소리와 함께 몸을 일으킨 켄이 약간 뻗친 머리칼을 부여잡고 시선을 이리저리 방황시키는 것이었다. 그녀의 머리 굴러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는 것 같아 다이스케는 후다닥 일어나 거실로 튀어나갔다.



왜 안 깨운 거야, 오빠-!”



 빽 소리를 질렀지만 돌아오는 목소리가 없었다. 부모님께서 집을 비운 오늘, 분명 몇 번이나 깨워달라고 당부를 했었는데! 어젯밤 TV를 보며 설렁설렁 대답하는 그를 처음부터 믿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너무 많이 구워서 놓고 간 것이 분명한 몇 개의 토스트와 함께 탁자 위에 놓인 엉망인 글씨로 안 일어나서 먼저 간다~’고 쓰여 있는 쪽지를 꽈악 쥐어 구겨버리며 다이스케는 속으로 오빠에게 몇 번이고 화냈다. 하필 켄이 집에 놀러온 날에! 자명종 또한 자신이 꺼버린 것이 분명했기에 차마 켄에게 할 말이 없어 다이스케는 있는 힘껏 손에 잡혀있는 종이를 휴지통에 던져 넣었다. 오늘 만나면 반드시 등짝을 콱콱 밟아줄 테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얄미운 오빠의 얼굴에 속이 더욱 더 부글부글 끓는 것 같았다.



다이스케! 계산해봤는데, 일단 지하철을 타고 가는 건 무리야. 버스도 없고, 택시를 탄다고 해도 나에게 그 정도의 돈은 없어. 자명종의 소리를 못 들은 건 내 잘못도 있으니 빨리 선생님께 전화를.”


자전거!”



 갑자기 크게 외친 다이스케의 말에 진지하게 말을 꺼내던 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잠시 깜빡, 깜빡, 했다. ? 하고 고개를 갸웃 거린 그녀에게 주먹을 꽈악 쥐며 자전거로 데려다 줄께! 하고 외치자 금세 켄의 얼굴이 구겨졌다. 내 기초체력을 고려해보면 여기서 내 중학교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는 건 무리야, 다이스케. 아니, 나도 같이 갈께! 번갈아서 밟으면 둘이서는 갈 수 있어! 오케이! 아니, 그러니까 무리. 계속 말을 이으려는 켄에게 그녀가 어제 벗어준 교복을 들려주며 다이스케는 어깨를 빙빙 돌렸다. 맞겨두라니까! 이렇게 나오는 다이스케는 더 이상 말릴 수 없다는 것을 그동안의 경험으로 알고 있던 켄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작게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재빨리 양치와 세수를 마치자마자 입고 있던 잠옷을 휙휙 벗어 침대에 던져두자 옆에서 켄의 잔소리가 들린다. 그럼 바쁜데 어떻게 해? 평소에도 비슷하지만 괜한 변명을 덧붙이며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마침 잠옷 상의를 벗고 있던 켄과 시선이 마주쳤다. 한 눈에 들어오는 그녀의 얇은 몸과 새하얀 피부가 괜히 당황스러워 재빨리 시선을 돌리자 어쩐지 방금 행동이 더 부자연스러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모습에 뒤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지만 다이스케는 차마 다시 고개를 돌려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를 대할 자신이 없어 교복을 입는 것에 집중하는 척 했다. 눈앞에서 켄의 속옷 아래 가려진 봉긋하게 나온 가슴이 어른거린다.



, 먼저 나가있을게.”



 치마 아래 입을 체육복 바지를 챙겨 방 밖으로 나온 다이스케가 급하게 숨을 몰아쉬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조금 붉어져있는 것 같아서 손등을 가져다 댄다. 어쩌지, 들켰을지도 몰라. 돌아보지 말걸, 하고 후회해도 이미 엎어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었다. 티를 내지 않으려 해도 가끔 이렇게 흘러넘치는 감정의 표현을 숨길 수가 없는 것이었다.


 켄을 좋아하고 있다.


 그 사실을 인지한 순간부터,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들이 너무나도 예쁘고 달콤해 조금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왕이면 조금 더 많이, 조금 더 가까이 있고 싶다. 그녀를 바라보는 감정에 이름표를 붙여놓자 이제야 알았냐는 듯이 쏟아져 내리는 애틋함을 어찌할 수 없었다. 주먹을 꾸욱 쥐면 자신의 세포 하나하나에서 체액처럼 감정이 새어나올 수 있을 만큼 그녀를 좋아하고 있었다. 같은 성별이라는 장벽조차 소용없을 만큼. 그 장벽조차 허물어버릴 만큼 거센 파도를 다이스케는 애써 억제하고 있는 것이었다.

 

 켄은 상냥하다. 만약 자신이 이 감정을 내비친다면 분명 그녀는 고민할 것이다. 자신에게 상처주지 않기 위해서. 아직까지도 자신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그녀라면 그녀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자신을 받아들일 가능성도 있었다. 눈썹을 살짝 내리고, 눈을 조금 휘어서, 가슴 안쪽이 아릴만큼 상냥한 미소를 지으면서. 분명, 그렇게 받아들여 주겠지. 그것이 그녀의 속죄인 것처럼. 눈치가 빠른 그녀는 금방 자신의 감정을 알아챌 수도 있었다. 만약 그렇다고 해도 자신은 그것을 모르는 척 할 수밖에 없다.


 가끔씩, 아주 가끔씩 그녀의 상냥함을 이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생각할 수 있는 퇴로를 모두 막아버리고, 그녀의 가는 손목을 발갛게 달아오를 정도로 잡아 구석까지 몰아버리고는, 자신의 감정을 강요한다면. 차마 자신을 쳐내지도 못하고 겁에 질린 눈동자를 도록도록 굴리며 말라버린 아랫입술을 조금 깨물고는 수긍해버리는 그녀를 몇 번이나 떠올렸는지 셀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올곧은 시선을 볼 때마다 포기해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아직까지는, 그녀가 바라보는 자신이 되고 싶다고. 그녀가 바라는 자신의 위치에 있고 싶다고.


그것이 자신의 최선이었기에.


 아직까지 화끈화끈 거리는 볼을 한 번 짝, 소리 나도록 때리고는 다이스케는 거실 탁자 위의 토스트 하나를 입에 욱여넣었다. 반쯤 눅눅해진 토스트가 입 안에서 녹아간다. 어제 미리 샤워를 해둔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머리를 높게 올려 묶고 나자 이리저리 뻗힌 머리를 정리하고 단정하게 교복을 차려입은 켄이 방에서 나왔다. 허벅지 근처에서 살랑거리는 치마와 그 밑의 니삭스에 다이스케는 모르는 척 시선을 돌렸다.



저기, 다이스케. 나 진짜 괜찮으니까 먼저, 으웅.”



 멘션의 앞에서, 자전거를 꺼내든 다이스케를 향해 또 무어라 말을 하려던 그녀의 입에 다른 토스트를 물려준 다이스케가 다시 괜찮다니까! 하고 씨익 웃었다. 정말 자신이 어떻게 말릴 수 없었다. 더 말을 하려 입을 오물거려도 씹히는 것은 눅눅한 토스트였기 때문에, 켄은 작게 한숨을 쉬며 그녀가 물려준 토스트를 조금 더 우물거리기로 했다.


 자, 출발한다구! 먼저 페달을 밟겠다는 켄을 굳이 뒤에 앉혀둔 다이스케가 기운차게 외쳤다. 뒤에서 느껴지는 무게에도 불구하고 즐겁게 밟은 페달이 가볍다. 갑작스런 출발에 꺄앗, 하고 짧은 비명과 함께 자신의 옷을 살짝 잡아오는 그녀의 손길도 뿌듯했다. 옆으로 지나가는 배경을 따라 시선을 뒤로 살짝 돌리면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날리는 치마를 살며시 누르고, 손이 부족해 날리는 머리칼을 어찌할 줄 몰라 하는 그녀의 곤란한 표정이 보였다. 살금살금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숨기지 않으며 다이스케는 조금 소리 내어 웃었다.


 늦어버린 아침. 제대로 챙겨먹지 못해 허전한 위장. 살짝 보여 버린 비밀스런 감정과 화끈거렸던 볼. 조곤조곤 수다를 떨며 함께 걸어갈 수 없어져버린 등굣길.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었지만, 시선을 살짝 내리면 보이는 자신의 허리를 감싼 그녀의 가는 팔뚝을 보면 어쩐지 다 괜찮아지는 것이었다. 오빠의 등짝은 조금만 밟아줘야지. 콧노래라도 나올 것 같은 둥실둥실한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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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리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