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4. 24. 00:29

- 다이켄을 위한 연성 주제 : : 널 보고 웃을 수 있을까?/가을날/눈물

- 짝사랑(http://bit.ly/1M6T88u)과 이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읽지 않아도 이해하는 것에 문제는 없습니다.

- 언제나의 그 내용.


 







 그래. 슬슬 이렇게 될 것이라고 켄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다이스케는 포기를 모르는 녀석이고, 어떠한 목표가 있으면 그것을 향해 똑바로 뛰어가는 녀석이다. 다이스케를 만나는 것을 그만두고, 전화를 하는 것도, 심지어 메일을 주고받는 것조차 그만둔 이후 자신은 어쩌면 이 상황을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늦지도, 빠르지도 않은 시기였다. 켄은 너무나도 예상대로 흘러가는 상황에 옅은 쾌감마저 느껴질 지경이었다.



안녕?”



 다이스케는 그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인사를 해온다. 그 나름대로 어색함을 지우기 위한 행동임은 바로 알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것이 어색한 것인지, 연락을 받지 않는 내가 어색한 것인지, 그가 혼자서 했을 자책감으로 인한 거리감인지 알 수는 없었다. 어쩌면, 모두 다일지도 모르지. 켄은 그 때와 마찬가지로 조금 놀란 척을 하고, 천천히 강변가로 걸음을 옮긴다. 자신의 뒤로 쫓아오는 다이스케의 발소리가 들렸다. 켄은 다이스케에게 보이지 않도록 숨을 몰아쉰다. 그래,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 연락을 받지 않는 나에게 초조해진 너가 찾아오는 이 순간을. 너를 마지막으로 만날 이 순간을.



많이, 바빴어?”


.”



 자신을 한 번, 흐르는 강물을 한 번 바라본 다이스케가 조심히 입을 연다. 그는 어쩌면 자신을 걱정하고 있었을런지도 모른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그래서 연락을 못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생활하고 있는 자신을 본 다이스케는 마침내 도달했을 것이다. 마음 속 저 편에 밀어두었던 불안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내가 정말로 다이스케를 피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렇기에 다이스케는 이토록 조심스레 말을 고르고 있는 것이겠지. 마치 네가 나를 동료로 끌어들이기 위해 찾아왔던 그 때처럼.


 걱정했었어. 미안해. 단조로운 대화가 딱딱하게 이어갈수록 켄은 머릿속이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그를 만나면 흘러넘쳐버릴까 걱정했던 그 감정들이 오히려 메말라가는 것 같았다. 몇 번이나 시뮬레이션 해오던 일이었다. 다이스케는 자신을 찾아올 것이고, 그 때야말로 자신은 그에게 끝을 고할 것이다. 자신은 더 이상 다이스케를 그저 우정으로만, 친구로만 대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그의 곁에 있을 수 없다. 있어선 안 된다. 곁에 있으면 나는 계속 다이스케에게 욕정 해버릴 테니까. 자신의 더러운 욕망에 휘둘리는 다이스케를 더 이상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이것조차 자신의 이기심임은 알고 있었다. 다이스케를 멋대로 좋아해놓고, 이제는 멋대로 떠나가려 하다니. 다이스케는 이런 나를 놓치려하지 않을 것이다. 다이스케는 밝은 아이였고, 그의 세계는 그에게 상냥했다. 다이스케였기 때문에 가능한 세계였다. 그런 그는 아마 이별에는 무딜 것이다. 이런 식으로 떠나가는 것을 그대로 놔둘 리가 없었다. 그가, 자신을 포기할리가 없었다. 그랬기에.


 나는 그가 자신에게 질려버렸으면 했다. 붙잡는 다이스케에게 자신이 흔들리지 않도록, 그가 자신을 혐오해버렸으면 했다. 자신에게 화를 내 주었으면 했고, 자신을 어처구니없는 이상한 아이로 기억했으면 했다. 내가 그를 떠나는 것이 아닌, 그가 자신에게서 떨어졌으면 했다. 켄은 몇 번이나 곱씹었던 수많은 문장들을 다시금 떠올린다. 그를 더 상처 입힐 수 있는 말이 필요했다. 그가 자신을 더러워하고, 싫어하고, 다시는 다가오지 않을 말이 필요했다. 그런 이별을, 나는 웃으며 너에게 전하고 싶었다.



다이스케.”



 왜 내 연락을 받지 않았어? 그 한 마디를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는 그를 조용히 부른다. 노을이 내려앉은 강물을 보고 있던 다이스케가 움찔 어깨를 떨며 자신에게로 시선을 옮긴다. 방금까지 했던 아무 의미 없는 대화는 이미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무어라 말을 하고 있던 다이스케가 벌어진 입을 꾸욱 다물었다.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진지해진다. 지금부터 할 말이 오늘 이렇게 만나게 된 이유임을 알고 있는 듯 한 얼굴이었다.


 모든 것을 끝내고 싶은 것은 내 욕심이다더 이상 너의 흔적을 더듬으며 자신을 위로하고 싶지 않았다내가 상처받고 싶지 않았고너를 위한다는 변명으로 귀와 눈을 닫아버리고 싶지 않았다. 너를 만나는 것조차 겁내며 도망 다니고 싶지 않았다. 너가 언제 자신을 찾아올지 불안해하고, 기대하며 날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너를 마지막으로 볼 날을 기다리던 하루하루는 마치 지옥 같기도 했고, 천국 같기도 했다. 빨리 너를 떨쳐내고 싶었고, 미련하게 붙잡고 있고 싶었다. 모순된 감정을 가진 자신을 비웃으며 켄은 다이스케와 시선을 맞춘다.


 평소보다 진지해 보이는 눈이 노을을 받아 붉게 빛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으려는 얼굴을 한 그는 내가 제일 좋아하고 있는 다이스케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자 괜히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만 같았다. 그를 더 찬찬히 바라볼 수 있도록, 기억 속에 각인할 수 있도록 시간이 자신을 배려해주고 있는 것만 같았다. 쓸데없는 짓이었지만, 이 정도의 억지는 부려도 괜찮다고 또 다시 이기심을 부렸다. 뒤에서부터 불어온 시원한 바람에 다이스케의 머리칼이 흔들린다. 내가 반했던, 좋아했던, 계속 곁에 있고 싶었던 그 얼굴을 하고 너는 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웃어야만 하는데. 웃어야만 했는데. 흔들리는 자신의 마음처럼 노을에 젖은 붉은 강물 또한 흔들리고 있었다.


 얼굴 근육이 자신의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마음이 차갑게 식었다고 생각했지만 파도처럼 한 순간에 복받쳐온다. 이 상태로는 자신은 덤덤하게 그에게 이별을 고할 수 없었다. 아직 이야기를 꺼낼 때가 아니라고 판단했지만, 입 주위의 근육 또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였다. 널 보고 웃으면서, 세상에서 제일 싸늘한 말을 꺼내야 한다고 필사적으로 마음을 다잡으려 했지만 이미 무너져 내린 둑은 흘러 넘치는 감정을 막을 수 없었다. 투둑, 하고 형태가 된 마음이 뺨을 타고 흐른다.



좋아해.”



 수 없이 머릿속에서 반복했던 이별은 현실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모든 것이 끝나버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Posted by 하리쿠
2017. 1. 16. 04:18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2016. 12. 31. 04:34

천천히 잠에서 깨었을 때엔 자신이 누워있는 곳이 자신의 방이 아니라는 사실을 금세 눈치 챌 수 있었다. 자신의 것이 아닌 시트와 이불이었지만 켄은 이 침대에는 이미 익숙해져 있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몸을 조금 더 이불 속으로 넣으며 움직이자 엉덩이 쪽에서 아릿한 둔통이 올라온다. 찝찝한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은 오늘 타카이시 군이 콘돔을 사용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타카이시 군은 행위가 끝난 후 뒷정리 같은 귀찮은 것을 해주지 않는다. 오늘은 일어나자마자 찝찝한 기분을 느끼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다시금 잠에 들기 위해 뒤척이는데, 이치죠우지 군, 하는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 불이 꺼져있는 책상 쪽에서이다.



있었다면 인기척 정도는 내 줬으면 하는데.”


그 정도는 알아서 느끼라구.”



 자신이 이불 속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고 나서야 책상 위에 놓여진 스탠드를 켠 타카이시 군이 자신을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 했다. 자고 있는 남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니 취미가 나쁘다. 자신이 일어난 것을 눈치 채고 나서도 인기척을 내지 않은 것도, 자신이 다시 잠이 들려 할 때 방해하듯이 이름을 부른 것도 일부러 였을 것이다. 자신이 싫어하는 행동만 골라서 하는 것이 그다워 켄은 잠자코 몸을 일으키기로 했다. 그가 굳이 다시 자려는 자신을 부른 것은 자고 있는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이 질렸기 때문일 테니까. 천천히 침대에 앉자 기다렸다는 듯이 타카이시 군이 그가 마시고 있던 컵을 자신에게로 내민다. 켄은 웃고 있는 그의 표정을 잠시 바라보고, 그 컵을 받아 들었다.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데운 우유였다. 이 또한 일부러 일 테다.



저녁 먹고 갈래? 편의점 음식이지만.”


먹고 싶지 않아.”



 아, 그래. 가볍게 답하며 자리에서 일어난 타카이시 군은 닫혀있는 방문을 연다. 단번에 쏟아진 거실의 불빛에 켄은 조금 인상을 찌푸렸다. 그가 자신에게 물어본 말은 아마 별다른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자신을 위해 이인분의 음식을 데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먹겠다고 해도 가볍게 답을 하고는 그제부터야 무엇을 먹일 것인지를 고민했을 것이고, 아마 지금 같은 기분 나쁜 웃는 표정을 하고는 저녁을 먹는 자신을 압박하듯이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이 우유부터가 자신을 위해 준비한 것일 테니까.


 켄은 먼저 나가버린 타케루를 바라보며 바닥을 향해 발을 내렸다. 깔끔하게 접혀져 있는 자신의 옷이 놓여있다. 방금 전까지 따듯한 이불의 안에 있었기 때문에 그다지 춥지는 않았지만 켄은 간단히 속옷과 바지만을 입고 방 밖으로 나선다. 한 걸음을 걸을 때마다 다리로 방사통이 이어졌지만 이 또한 익숙한 통증 중 하나였다. 켄은 밖으로 나오자마자 손에 들려있던 컵을 내려놓는다. 당연하게도 한 입도 대지 않았다. 자신의 불편한 걸음을 감상하듯 탁자에 앉아있던 타카이시 군이 그 안으로 조금 바라보다 인상을 찌푸렸다. 그의 날카로워진 시선을 받으며 켄은 다른 컵에다 냉장고에 있던 냉수를 따른다. 불쾌해 보이는 저 표정과 시선이 만족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벌써 저녁 시간대네. 자신이 타카이시 군의 집에 들어온 것은 분명 학교가 끝난 직후였는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잤다고 생각하며 켄은 베란다의 문을 연다. 안쪽으로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아직 덜 깬 자신을 깨워주는 것 같았다. 꽉 막혀 질식할 것 같이 무거운 집 안의 공기보다는 훨씬 낫다. 자신이 오래 자버린 것은 그가 무리를 시켜서 일 것이다. 자신을 미묘하게 불쾌하게 만드는 엉덩이 쪽의 통증도, 기운이 나지 않는 나른한 기분도, 순식간에 없어져버린 자신의 느긋한 저녁 시간이 사라져버린 이유도 모두 그였다. 불쾌한 기분이 올라온다. 그리고, 이 기분을 표출할 수 있는 상대는 자신의 앞에 있었다.



타카이시 군.”



 컵에 든 냉수를 모두 입 안으로 털어 넣은 켄이 타케루를 향해 몸을 완전히 돌리며 그를 부른다. 자신이 걸어가는 것도, 서늘함에 몸을 조금 떠는 것도, 물을 마시는 것도, 천천히 베란다로 보이는 아래를 바라보는 것도 마치 텔레비전 브라우관 속에서 펼쳐지는 쇼를 보는 것 같이 그저 방관자처럼 보고 있던 타카이시 군이 새삼 눈을 어린 아이처럼 뜨고 깜빡인다. 그는 자신이 그를 부를 것이라고는 조금도 생각하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켄은 베란다의 난간에 편하게 몸을 기대어 섰다. 이 위치라면 밖에서는 자신이 완전하게 보일 것이다. 그가 자신을 향해 다가온다면, 그 마저도.


 저녁 시간이 되어간다는 것은 검도를 하기 위해 밖에 있던 이오리 군이 돌아온다는 소리다. 일을 하는 식구들을 위해 다른 집안보다 조금 저녁 식사를 일찍 시작하는 미야코 씨가 편의점의 다른 가족들을 부르려 나올지도 모른다. 히카리 씨는 저녁 식사 전에 미야코 씨의 편의점에서 그녀가 추천해 준 물을 사가곤 했었다. 그런 히카리 씨를 알고 있기 때문에 다이스케 또한 그녀와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위해 미야코 씨의 편의점 앞을 어슬렁거리기도 했다.


 우연히, 정말 우연히 그렇게 타카이시 군이 사는 멘션 앞을 지나가게 된 그들이 그다지 친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나와 그가 키스라도 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사람 좋은 타카이시 군은 어떻게 그 상황을 수습하려 애쓸까. 그 사람 좋은 타카이시 군이, 사실은 그다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을까. 그들이 보고 있는 외면의 타카이시 군은 사실 그다지 좋은 사람이 아니고, 제일 친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자신만이 그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평생 모른 채로 살아갈까.


 켄은 타케루를 향해 손짓한다. 자신이 지을 수 있는 한 제일 기분 나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부르면 분명 타카이시 군은 자신의 의도를 바로 눈치 챌 것이다. 그와 자신은 정말 비슷한 면이 있어서, 서로의 생각 따윈 금세 파악할 수 있었다. 특히 이런 쪽의 목적이 그저 상대를 불쾌하게 하기 위한 종류의 것이면 더더욱. 그리고 상냥하고, 온화한 우리는 이런 것을 표출할 상대가 서로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절대로 거절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심술을 받아주는 것처럼, 타카이시 군도 분명 모든 의도를 파악하고 나서도 자리에서 일어나 줄 것이다. 가소롭다는 듯이 웃으며.



난 성격 나쁜 이치죠우지 군이 제일 좋아.”


나도.”



 켄은 자신을 향해 다가온 타카이시 군을 마치 연인처럼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켄의 의도에 넘치게 응하려 타케루는 그의 남색 머리칼을 휘어잡는다. 강제로 키스하는 듯이 켄의 고개를 억지로 꺾고, 입술을 잡아먹을 듯이 가득 삼킨다. 난간에 기대어 있던 켄이 밖으로 떨어질 듯 몸을 휘청거렸다. 마치 이대로 떨어지고 싶은 듯 했다. 우연을 가장하여 누군가에게 들키고 싶은 듯도 했다. 그런 긴장감과 스릴감. 좀처럼 표출하지 못했던 내면의 못된 마음들을 가득 담아 타케루와 켄은 서로의 입술에 매달렸다.


그들은 이것을 애정이라고 불렀다.

 


Posted by 하리쿠